5-86 to 5-105: 서러웠던 하늘의 심정

서러웠던 하늘의 심정
1959.01.03 (토), 한국 전본부교회

5-86
서러웠던 하늘의 심정
마태복음 1:18-2:12

[기 도(Ⅰ)]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비극과 슬픔을 남긴 역사의 사실들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고, 에덴동산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하시던 아버지의 심정이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슬픔의 심정으로 화하였고, 그것이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통하여 역사적인 서러움이 되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나이다. 또한 저희가 마음과 몸을 다하여 아버지의 염려하시는 심정을 붙들고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회복해 드려야 할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잃어버린 아담과 해와를 다시 찾기 위하여 아버지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한 끝에, 아담의 형상을 갖추어 이 땅에 보내진 분이 예수님이었음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예수가 탄생될 때까지의 아버지의 수고가 크면 클수록 그 수고로 인하여 탄생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하늘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했고, 피조만물과 인류의 자랑이 되지 않으면 안 될 모습이었사옵니다. 그러한 사실을 하늘은 알고 있었으나 땅은 무지하여 알지 못하였고, 하늘은 이를 환영하지 못하였음을 오늘날 저희들이 부끄러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수고하신 아버지의 소망의 눈길이 말구유에 누우신 예수의 가련한 모습에 머물러야 했던 이 처량한 사실을 저희들이 회상하면서, 선조들이 불신하였고 선조들의 불충하였던 것을 통절히 느끼옵니다. 아담 해와의 타락의 허물을 인간들이 다시 그 자리에 나타냈다는 이 한 사실을 알고 있사옵기에, 오늘 저희들은 역사적인 서글픈 사실을 마음으로 느끼며 심히 슬퍼할 수밖에 없사옵니다.

옛날에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지 못했던 그 이스라엘민족, 택함받은 선민을 대신하여 저희들이 아버지의 슬픔을 위로해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 가신 지 어언 2천년이나 경과하였지만, 심정의 세계는 시간이 초월하는 줄 아옵니다. 역사를 초월하여 계시는 아버님, 슬픈 심정을 품고 천성에 가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붙안고 이 시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오셨다 가신 이후 2천년의 서러움을, 오늘 이때까지 하늘과 땅에 남아진 사무친 원한의 저희들이 알아,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그 당시의 모습을 저희들이 마음으로 받들 수 있는 이 한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그 날의 기념하는 이 한 시간을,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고, 예수님께서 소원하셨던 그 기쁨의 영광을 나타내시어서 2천년 전에 왔다 가신 예수님께서 슬퍼하셨던 것이 이 한날로 말미암아 해원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내적 심정을 알고 있는 저희들이 이 날을 기념하고자 하오니 인간들이 알지 못하여 남긴 모든 과거의 서러움을 이 한 시간으로 말미암아 탕감받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가 아버지 앞에 설 수 있게 허락하시어서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아버지께서 위로받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여기 전체적인 복귀의 사명을 맡고 뜻을 대하고 있는 저희들이옵니다. 복귀의 한 부모를 찾아 모셔야 할 입장에 처한 오늘의 저희들임을 당신은 아실 것이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예수를 참형으로 모실 수 있는 때가 되었사옵고, 예수를 참오빠로 모셔야 할 때가 되었사오니, 참형제된 입장에서 이 땅 위에 남겨진 당신의 슬픈 사실을 체휼하여 해원해 드릴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땅 위에 하늘을 향하여 살 길을 찾고 있는 수많은 백성은 있사오되 당신의 생명의 힘이 어떤 뜻 가운데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이 한 시간에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몸을 아버지께서 직접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영적인 모든 움직임을 동원하시어서 그들로 하여금 끝날을 예고하시는 아버지의 전체적인 뜻을 알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내적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참다운 아들 딸들이 될 수 있는 기쁨의 날이 어서 속히 이 땅 위에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땅 위에 와서 십자가의 고난길을 가신 예수님도 이와 같은 일에 협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가 알고 있사오니, 땅에 있는 저희들이 전심전력을 다하여 당신이 기뻐하는 뜻을 이루어 드리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격려해 주시옵고, 땅 위의 형제들이 단결하여 나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이 마음을 묶어 아버님께 바쳐드리는 이것이 역사적인 해원의 제물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남겨진 천추의 한을 저희들로 말미암아 해원함으로써 이제부터 행복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거룩한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잠깐 드리는 경배이지만 축복하여 주시옵고, 부족한 마음과 몸 다 묶으시어 아버지의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현현하실 수 있는 영광의 은사만이 여기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올 때에,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5-88
기 도(Ⅱ)
아버지여, 이 시간에 온 만민 위에 축복의 손길을 다시 허락하시옵소서. 이 시간에 삼천만 민족에게 다시 축복의 손길을 펴시옵소서.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사랑의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고, 더욱이 이 한 시간 외로운 자리에서 마음으로 기도하고자 부복한 자녀들의 머리 위에, 아버지, 사랑의 손길을 들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죄악이 머무는 땅 위에서 남기신 서러움을 일대에 위로해 드리고자 이 시간 아버님을 위해 염려하고 있는 식구들이 있다는 것을, 아버지, 기억해 주시옵고, 이 시간 축복해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이 이날을 알지 못하고 있사옵고, 맺혀진 하늘의 서러움을 깨닫지 못하고 있사옵고, 한없이 슬픈 당신의 심정은 더더욱 알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그날의 통탄스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저희들에게, 아버지, 이날을 허락하여 주시어서 만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 한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서 축하할 수 있는 영광의 은사를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사옵나이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날을 축하하는 것이 2천년 동안 서러워하신 예수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서러운 자리에서 탄생하여 30여년의 생애를 바쳐 골고다의 길을 개의치 아니 하시고 가신 그리스도를 회상하며, 그의 전적(戰跡)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분이 생전에 남기신 위업을 저희의 사명으로 인계받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예수님께서 남기신 원한이 땅 위에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을 이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 그 몸과 마음이 당신의 심정에 사무치고 당신의 심정에 붙잡힐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어린 예수님의 심정을 알고, 죽을 지경에 처했던 예수님의 심정을 깨달아 위로해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인간들은 모르지만 예수님은 지금껏 영계에서 수고하고 계신다는 것을 체휼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한 시간 불충불효한 몸 마음이나마 이날을 축하하기 위하여 아버님 무릎 앞에 엎드렸사오니, 당신이 임하시어 복귀의 새로운 이념을 개척할 수 있도록, 넘치는 은사를 여기에 나타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날을 기억하시옵고 이날을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잠깐 동안 말씀을 전하고자 하오니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날에 저희들이 기도하고 간구하는 모든 것이 하늘과 땅 위에 맺혀진 것을 해원하는 조건으로 남아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귀중한 이날, 저희들이 새로운 뜻을 받들어서라도 한 조건을 세워 아버지 앞에 승리의 표적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날이오니, 이날을 기억하시옵소서. 기쁨으로 아버지 현현하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5-90
말 씀
오늘은 하나님이 소망하신 그 날인지도 모를 중요한 날입니다.

저 역시 뜻을 받들어 나오면서 소망하던 날입니다. 그리고 4수로 탕감하는 동시에 새로운 3수를 찾아서 탕감하는 이 시간이야말로 역사적인 인연의 시간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먼저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앞에 잠깐 말씀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서러웠던 하늘의 심정’입니다. 이러한 내용의 말씀을 가지고 오늘 이 날을 기념하고자 합니다.

5-90
인간으로 말미암아 맺혀진 하나님의 슬픔
하나님께서는 사람 하나를 짓기 위해서 모든 만물을 지어 나오셨었습니다. 첫날서부터 닷새날까지 지어지는 그 만물을 바라보시게 될 때에 무한한 소망과 무한한 희망을 갖고 즐거워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모든 만물의 주인공으로서, 하나님 대신 만물을 주관하는 주인으로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해와를 지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무한히 기쁜 심정으로 그들을 위해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즉,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고 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축복의 말씀을 우리 인간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 인간이 지음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도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축복을 아담과 해와는 이루어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이 시간까지 그 축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서러운 역사가 흘러왔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이 한 시간 다시 한번 회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아담이 자라고 있을 때 하늘은 무한히 기뻐하셨습니다. 만물도 아담을 통하여 하늘 앞에 기쁨을 돌려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담이 천륜의 뜻을 완전히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하늘의 뜻을, 하늘의 말씀을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타락이라는 서러운 굴레에 매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천지의 법도를 세우시고 천륜을 세워 나오신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들을 당신의 사랑의 품에서 내놓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서글픈 심정을 만물은 알고 있었고, 천사세계의 선영(善靈)들은 알고 있었으되, 타락한 인간의 후손된 우리들은 지금까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오늘날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모였습니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그러면 그 예수는 어떠한 분이셨던가? 그는 잃어버린 아담을 대신하여 하늘이 찾아 세우신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사람들이 예수의 탄생과 동시에 하나님의 가슴 속에서 4천년 동안 사무쳤던 슬픔을 체휼하여 아기 예수를 붙들고 대신 울어 줄 수 있고, 예수를 붙들고 대신 기뻐해 줄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많아야 할 것이었는데, 탄생하신 예수를 붙들고 기뻐해 주고, 탄생하신 예수를 붙들고 하나님 대신 울어 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슬픔은 인간으로 말미암아 맺혀진 연고로, 하나님의 슬픔은 하나님 홀로 풀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깊이 사무쳐 있는 슬픔이 풀어지려면 반드시 사람을 통해야 됩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런 슬픔이 맺혀진 연고로, 사람이 하나님 대신 슬퍼해 주지 못한다면 하나님 속에 맺혀진 슬픔은 풀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말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를 바라보고 하나님 대신 울어야 할 입장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마리아와 요셉은 하나님의 내적 심정이 이렇게 슬프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런 연고로 요셉과 마리아는 말구유에 있는 예수를 바라보고도 진정한 마음으로 하늘 대신 슬퍼할 줄 몰랐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동방박사 세 사람, 양치는 목자와 안나 등 여러 사람들이 예수를 증거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기뻐하기 전에 하나님 속에 슬픔이 사무쳐 있다는 것을 안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신 하나님의 슬픔을 체휼하는 동시에 예수가 탄생한 이 한 사실을 기뻐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심중에 사무쳐 있는 슬픈 심정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는 인간 조상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이 죄악의 세상을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죄 많은 세상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대신 울 수 있는 간곡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고, 예수를 붙들고 울 수 있는 한 자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일 요셉과 마리아가 이런 사람이 되었던들 예수의 뜻을 받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마음을 가진 동방박사가 되었던들 그들 역시 예수의 뜻을 따랐을 것입니다.

5-92
아무도 알지 못한 하나님의 슬픔과 마리아와 요셉의 소망
그러나 예수를 위하여 수고하고, 예수를 위하여 뜻을 받들고 나서야 했던 요셉과 마리아도 진정으로 하늘의 슬픈 심정을 품고 예수를 대하지 못했고, 동방박사 세 사람도 역시 하늘이 슬픈 심정을 품고 예수를 바라보시는 것처럼 예수를 바라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먼저 예수가 태어날 때까지 하나님께서 슬퍼하셨던 그 심정을 회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들을 추방하실 때의 슬펐던 그 심정, 둘도 없는 독생자로 세운 아담이 원수 사탄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슬프고 처참했던 그 정경을 여러분들이 마음으로 회상해야 되겠습니다.

이 슬픔을 해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4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시면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보내셔서 이 슬픈 사정을 만민 앞에 통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이런 하나님의 슬픔을 알지 못했고, 하늘이 보낸 선지자의 슬픔을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민족은 하늘을 배반하는 역사노정을 거쳐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필코 뜻을 이루셔야 하므로 잠시도 쉬시지 못하시고 수고하셨습니다. 결국 4천년 역사가 경과한 후 비로소 잃어버렸던 아담을 복귀하실 수 있었는데, 여기에 마리아와 요셉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과 마리아는 어떠한 입장에 있었는가? 아담과 해와는 약혼단계에서 타락하였는데, 요셉과 마리아가 바로 그와 같은 입장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마리아를 그런 입장에 세워 놓고 섭리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요셉과 마리아를 택해 세울 때까지는 4천년이나 걸렸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된 동기는 요셉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된 동기를 생각해 볼 때에, 마리아는 어린 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통하여 섭리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메시아가 이 땅위에 오시기를 누구보다도 간곡히 바랬습니다. 요셉도 역시 자기 민족을 구해줄 수 있으며 택함받은 이스라엘 선민을 하늘왕국의 백성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누구보다도 간곡히 바랬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성심을 다하여 메시아가 오시기를 고대하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그 마음에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정성을 드리면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메시아가 탄생하실 것을 예고해 주시리라 믿었고, 또 예고해 주실 것을 바라며 정성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옛날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는 믿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였지만 그들은 민족을 대표하는 믿는 마음, 메시아가 오시기를 바라는 마음, 정성을 다하는 마음, 충성을 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마음이 하나님을 감동시켰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실 수 있는 동기가 되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메시아를 잉태할 것을 예고했을 때 마리아는 당황했습니다. 자기는 아직까지 남자를 알지 못함으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부인했던 마리아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에 대한 간곡한 마음을 가진 마리아는 천사의 분부에 대답하기를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한 마디는 유대민족이 4천년 동안 지켜온 이스라엘의 율법에 배치되는 대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잉태한 처녀는 당장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해야 할 정도로 모세의 율법이 엄격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이런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처녀의 몸, 더구나 약혼한 처녀의 몸으로 하늘 앞에 택함받은 마리아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입장에 처하게 된것입니다. 또, 자기의 혈족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입장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5-94
메시아를 잉태할 수 있게 한 마리아의 위대한 결심
그런데 마리아는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포기하더라도 아버지 뜻 하나만은 포기할 수 없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는 어떠한 일이라도 감사히 받겠다는 확고한 심정이었습니다. 이렇게 마리아가 전인류를 대신하여 자기의 모든 위신과 체면, 자기의 일생, 자기의 생명까지도 제물로 내놓는 그 순간에 비로소 메시아가 탄생할 수 있는 인연이 맺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그러한 입장에서 메시아를 잉태한 마리아, 하늘 앞에 맡겨진 몸으로서 메시아를 탄생 후에 자기가 나아갈 길을 무한히 그 마음으로서 염려하여야 되는 입장에 있었던 마리아의 사정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사정은 하나님의 딱한 사정을 방불케 하는 사정이었고, 그 염려함을 악한 땅을 염려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방불케 하는 염려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서 요셉에게 마리아를 보호할 것을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요셉 역시 천사를 통하여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가 잉태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이를 용남하기 어려운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나큰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인간을 세우시고 그 인간을 통해서 섭리하신다는 것을 아는 요셉은 천사의 명령에 따라 마리아를 맞아들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마리아와 요셉이 협력하였던 그것이 에덴에서 잃어버렸던 아담을 다시 회생시키는 터전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2천년 전 예수의 시대로 돌아가서 마리아와 요셉의 입장에 처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늘이 여러분을 찾아와 간곡한 사정을 전하고 여러분과 인연맺기를 원하는 일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여러분은 어떠한 심정을 갖고 하늘을 대할것인가.

여러분이 마리아와 같은 심정, 요셉과 같은 심정을 갖고 하늘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면, 마리아와 요셉이 하늘을 염려하는 심정으로 탄생시킨 그 예수님을 축하하고 있는 오늘날 여러분의 입장은 하늘 앞에 합당한 입장이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은 마음을 돌이켜 내가 과연 요셉의 입장에 있는지 혹은 마리아의 입장에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어느 때에 하늘이 나에게 명령하시더라도 그 뜻을 따르고, 그 뜻을 믿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적인 인습이라든가 풍습, 자기가 믿고 따라나온 윤리관까지도 부정하던 요셉과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자신의 생명을 걸어놓고 이러한 문제를 넘어설 수있는 믿음을 가지고 이 한 시간에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놓고 요셉과 마리아가 염려하지 못하는 염려를 하셨고, 요셉과 마리아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요셉과 마리아가 탄생하신 예수를 품어 고이고이 보호하여 성장시켜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가 원수의 세계 앞에 싸움의 책임자로 나설 때까지 지성으로 다하여 양육하고, 지성을 다하여 받들어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또, 지성을 다하여 예수의 생활적인 제물이 되어 주기를 바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탄생할 때까지는 요셉과 마리아가 하나되어 하나님의 소원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나, 예수가 탄생한 이후에는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염려하지 못했고, 자기들의 염려의 조건을 중심삼고 예수를 바라보았고, 자기들의 생활적인 조건을 통하여 예수를 양육했던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고, 예수의 울타리가 되고, 예수의 싸움의 방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나타난 예수를 죽으나 사나 받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생명을 걸고 예수님을 받들어야 했던 요셉이요 마리아였습니다. 자라고 있는 예수님은 자기가 낳은 아들이로되, 자기에게 속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5-96
메시아로 대접받지 못했던 예수님의 서러움
만일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했을 때에 가졌던 결심을 예수가 자라는 동안에도 가졌던들 예수의 십자가의 길은 막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자가 협조해야 할 내적인 사정과 외적인 사정을 완결짓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가정을 버리고 제자를 찾아나섰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갈릴리 지방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 마리아로부터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달라는 말을 듣고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4)”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예수가 마음에 품은 생각을 마리아가 몰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도 몰랐고 그의 사랑하는 형제도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는 그 마음으로는 하늘을 염려했고 그 몸으로는 생활 환경을 염려했고 그 몸으로는 생활 환경을 염려했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을 염려한 것은 당연한 일이로되 생활 환경을 염려한 것은 서러운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서럽게 났고 서럽게 자란 예수였습니다. 하나님만을 위하고 하나님만을 염려하면서 살아야 할 예수는 그 생활 환경을 잃어버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염려하고 몸으로는 생계를 염려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놓였던 이 슬픈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리하여 예수가 가정을 떠나게 된 것은 곧 형제를 떠나게 된 것이요, 4천년 동안 지나온 요셉의 종족을 떠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믿어주지 않는 모든 무리들을 바라보게 될 때의 예수의 심정은 어느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서글픈 심정이었음을 우리는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마음이 아픈 것은 그의 환경이 슬프고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와 형제들, 그리고 친척들이 자신을 몰라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한사실이 예수에게는 슬픔 중의 슬픔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본래의 마리아의 입장을 회복해야 되겠고, 요셉의 입장을 회복해야 되겠고, 예수의 형제의 입장을 회복해야 되겠고, 예수의 종족의 입장을 회복해야 되겠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의 입장까지 회복해야 되겠습니다. 이러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원한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예수가 탄생하여 이 땅에 왔다가 십자가를 지고 간30여년의 생애를 마음 깊이 느끼고, 예수께서 슬퍼했던 사실, 혹은 마음으로나 몸으로 고통당했던 그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태어나신 예수만을 축하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태어나셨다가 그렇게 슬프게 가신 예수를 알아야만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탄생하신 예수를 품고서 바라보고 있는 그 장면은 하늘 앞에 기쁨의 조건이 되었는지 몰라도, 예수의 전생애를 품어 주지 못하고 축하해 주지 못한 연고로, 하나님 앞에 기쁨의 조건을 세우지 못한 결과를 남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들은 나신 예수를 환영하는 반면 가신 예수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예수를 따라 십자가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나신 예수를 붙들고 축하드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러이러하게 가신 예수였으니, 이러이러하게 싸우신 예수였으니, 그 생애에서 느꼈던 모든 심정을 알고 그 심정을 계승해 가지고 대하지 않으면 왔다 가신 예수를 축하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 일신의 슬픔을 진정한 내 슬픔으로 여기고, 예수의 일생의 고통을 진정한 내 고통으로 여기며, 예수가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역사하신 전체의 뜻을 내 뜻으로 심중에 품고 바라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자랄 때의 예수의 심정과 자라서 고통을 받고 십자가에 돌아가시던 예수의 심정을 우리들이 알아야만 왔다 가신 예수를 축하할 수 있으며, 그 예수와 우리가 인연을 맺을 수 있고, 그 예수를 조건으로 하여 하나님과 우리와 인연이 맺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5-98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소원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 앞에 찾아간 동방박사도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를 찾아가 황금과 몰약과 유향을 갖다 드리고 경배하던 세 동방박사가 준비한 예물도 준비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길 가던 목자가 찾아가 경배하던 그런 준비라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천천만 성도들이 예수가 땅에 탄생하신 것을 기뻐하여 부르던 노래가 하늘에 퍼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알지 못하고 있으되 나신 메시아 한 분을 중심삼고 온 만물까지 화답했던 이 한 사실을 우리들은 생각하면서, 오늘 우리 자신들이 전체를 대신하여 예수를 축하할 수 있는 마음, 세 동방박사를 대신하여 축하할 수 있는 마음, 목자를 대신해서 축하할 수 있는 마음, 만물을 대신하여 축하할 수 있는 마음, 이러한 마음을 갖고 예수를 직접 대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에 온 우주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고 난 다음에 기쁨으로 축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 예수를 보내고 난 오늘날 우리 인류의 사명인 것을 우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이 어떠한 심정을 품기를 바라시는가. 예수님께서는 어떤 심정으로 이 한날을 기념해 주기를 바라시는가. 예수님이 심정으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자신이 땅 위에서 30여년의 생애를 살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그 심정을 알아주는 것이요, 2천년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성도들을 학살당하고 죽는 자리로 내보내셨지만 참아나왔던 심정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을 대신하여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놓는 책임을 다 이루지 못한 이것을 대신 탕감복귀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은 예수의 붉은 마음을 붙들고, 우리의 몸은 피흘리던 예수의 실체를 붙들고, 하늘 땅을 위하여 만민을 위하여 눈물짓고, 원수들을 위하여 복을 빌어주던 예수의 심정을 찾아 마음으로는 아픔을 느껴야 되겠고, 몸으로는 피곤함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하늘의 서글픔을 이 시간 우리들을 통하여 해원받으시옵고, 예수의 역사적인 슬픔을 우리를 통하여 해원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이 여러분의 심중으로부터 우러나야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인연을 맺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영적 구원의 한 터전은 개척하셨으나, 이도 평탄한 길을 거쳐서 개척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음길도 불사하는 외로운 길을 거쳐서 개척하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였던 연고로 오늘날까지 하루도 쉴 사이없이 눈물의 역사를 닦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제 예수를 붙들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할 공동운명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예수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요, 예수의 슬픔이 곧 나의 슬픔이요, 예수의 분함과 억울함이 곧나의 분함과 억울함이라는 것을 느껴야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뼈에 사무치는 분함과 억울한 심정이 아직까지 땅 위에 남아 있는데, 이 분함을 풀어야 할 사람은 예수 자신도 아니요, 하나님도 아니요, 오늘날 우리들이라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축하의 의미를 갖고 예수를 바라보면서 경배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할진댄, 여러분은 이제 예수가 남기고 간 원한의 도성을 향하여, 원한의 땅을 향하여 전진해야 하겠습니다. 이걸 붙들고 먼저 싸우고 책임하고 난 후에 예수를 축하하게 될 때에만 예수는 우리를 대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이루어야 할 뜻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뜻은 이루어야 할 뜻으로 2천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까지 수많은 후손들 앞에 남아져 내려온 것입니다.

5-100
예수님의 화신체가 되어야 할 우리
예수가 남기신 뜻은 십자가에 죽어가면서라도 이루어야 할 뜻이요, 예수가 남기신 뜻은 하나님이 모른다 하는 자리에 설지라도 이루어야 할 뜻이며, 예수가 남기신 뜻은 민족이 배반하고 이 땅의 어떤 가까운 사람이 배반한다 할지라도 버릴 수 없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 여러분 자신들이 그 뜻을 이루겠다고 예수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서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 뜻을 품고 나서는 데 있어서는 어떠한 무엇이 나를 배반하고 어떠한 무엇이 나를 가로막을지라도 여러분은 옛날 예수가 남기신 뜻을 내가 맡았다는 입장에 서서 그것을 당연한 일로 알고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못한다 할진대 예수가 남기신 뜻을 성사할 수 없는 동시에 예수가 남기신 한을 풀어드릴 도리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남기신 뜻을 이루어드리고 남기신 한을 해원해 드리지 않으면 2천년 동안 우리를 찾아오셨던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원한을 해원해 드릴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의 나’는 개인이로되 `개인적인 나’가 아닌 것을 알고, `나’는 일분자로되 `온 우주와 인연되어 있는 나’라는 것을 알아서 역사적인 전체의 심정을 대신해 주기를 바라고, 예수님의 전체의 뜻을 대신해 주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서는 미래의 소원까지 가하여 오늘날 우리들에게 책임을 맡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어마어마한 위치에 처해 있는 내 한 자체인 것을 알고 예수를 부르고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4천년의 심정과 요셉과 마리아의 심정이 인연이 되어 탄생하신 예수가 30여년 생애를 사시며 우리에게 바라신 간절한 심정이 있고, 다시 이것이 2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가 흘러와서 오늘날 우리한 자체에게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고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까? 몸을 굽혀 하늘을 향하여 회개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사지를 움직여 하늘을 향하여 달릴 수 있는 마음이 있습니까? 내 모든 마음의 준비와 몸의 준비를 갖추어 십자가를 앞에 놓고 싸우던 예수의 장엄한 싸움을 책임질 수 있는 심정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심정을 갖고 있는가 스스로 분별하여 남겨진 역사적인 원한을 해원하는 운동을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통감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예수는 우리 앞에 무엇을 예고할 것인가. 예수는 땅위에서 진정으로 그의 심정을 토로하고 하늘의 사정을 권고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 딸을 찾아오셨으나, 예수는 참다운 아들 딸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30여년 동안 허덕이며 찾아 다니셨으나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사람, 하늘의 유업을 상속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을 만나지 못하여 상속해 주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이러한 예수의 심정을 알고 여러분 자신들도 그와 같은 책임을 지고 그와 같은 입장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불러봐야 되겠고, 땅의 만민을 바라보고 회개하고 외쳐봐야 되겠고, 만물을 바라보고 하늘을 축하하라고 부르짖을 수 있는 간곡한 심정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심적인 충동을 없다 할진대 여러분은 오셨던 예수, 가신 예수, 가셔서도 수고하시고 계시는 예수의 뜻을 받들어 2천년이 지난 이 세월을 거쳐오면서 죽음의 자리에서 싸워나온 수많은 선지선열들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아버지 앞에 손을 들어 간구하고 맹세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시여! 이 시간 부디 원컨대는 저희가 2천년 전에 이땅에 왔던 예수의 몸을 대신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제단 앞에 내놓은 이 몸이 2천년 전에 왔다 가신 예수를 대신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하고 맹세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심정을 걸어 놓고 하늘을 향하여 맹세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품은 심정과 뜻이 예수의 심정과 예수의 뜻을 대신할 수 있고, 우리의 사지백체가 예수의 몸을 대신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심정으로는 하늘을 붙들고, 몸으로는 땅과 만민을 붙들고자 하시던 예수의 심정과 사정을 우리들이 일대에 대신 해원해 드릴 수 있는 예수의 화신체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으로는 하늘을 붙들고 몸으로는 이 땅 위의 인류를 붙들고 싸울 수 있는 우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5-102
예수의 진정한 소원
예수께서 먹은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었고, 사신 것도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었고, 슬퍼하신 것도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었고, 안타까워하신 것도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슬플 때에도 예수님은 자신보다 먼저 슬퍼하시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면목없음을 느꼈습니다. 고통이 있을 때에도 하늘의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머리 숙여 더 강하게 책임감을 느끼던 하늘의 아들인 예수의 모습을 우리들은 본받아야 됩니다.

불신의 만민을 구하기 위한 책임을 갖고 나타났던 예수였기에 30여년의 생애에 고난의 길, 수고의 길, 원통하고 고통스러운 길이 많았지만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아버지 앞에 서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며 꿈에서까지도 원통해 하시던 그 예수의 심정을 오늘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뜻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마음으로 하늘을 붙들고 몸으로는 땅을 대하여 간절한 마음을 갖고 나타날 수 있어야만 되겠습니다.

예수는 골고다의 길을 가면서도, 피흘리는 자리에서도, 피살이 녹아지는 자리에서도 하늘을 붙들고 위로했고, 만민을 붙들고 염려하던 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러한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불쌍한 분이었습니다. 부모를 가졌으되 진정한 부모를 가지지 못했고, 형제를 가졌으되 진정한 형제를 가지지 못했고, 제자를 가졌으되 진정한 제자를 가지지 못한 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인 일을 회복하여 내 한 자신들이 예수의 진정한 부모가 될 수 있어야 되겠고, 예수의 진정한 형제가 될 수 있어야 되겠고, 예수의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어야 되겠으며, 예수의 진정한 교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나이 어린 사람들은 나이 많은 분들을 바라볼 때에 참다운 부모로 모시고 받들고 싶은 마음이 넘쳐야 될 것입니다. 또 나이 많은 분들은 나이 어린 사람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 그의 모친과 부친과 같은 입장에서 그를 붙안고 자기의 심정을 다하여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자신의 제물될 수 있는 간곡한 마음이 여러분 자신에게서 우러나와야 하겠습니다.

진정한 형제를 갖고 싶어한 예수였는데, 진정한 형제를 갖고 하늘 앞에 나아가고 싶은 간곡한 마음을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한 번도 풀지 못하고 이루어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이 예수의 한이였습니다. 이것을 해원해 드리고자 하는 우리들이라 할진대 우리들은 진정한 형제의 입장에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어야만 예수의 원이 풀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영원히 둘이 아닌 하나의 입장에 설 수 있는 진정한 제자로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자가 없었고, 예수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제자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한이 되었습니다. 이 한을 해원해 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진정한 예수의 제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제자는 어떤 제자이고. 예수의 심정을 통하고 예수의 피를 통한 그런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6천년 역사가 경과하고 예수를 믿는 교인은 많았으되 오늘날까지 진정한 교인을 갖지 못한 예수였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교인을 갖지 못한 예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를 믿는 진정한 교인이 되어 예수를 모실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에게는 진정한 종족이 없었고,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민족이 없었고, 사랑할 수 있는 나라가 없었고, 사랑할 수 있는 세계가 없었음을 깨달아서 오늘날 우리들은 손에 손을 잡고, 마음에 마음을 합하고, 사정에 사정을 합하여 예수의 민족, 예수의 국가, 예수의 세계를 찾아드려야 되겠습니다. 진정으로 예수의 사랑을 받을수 있는 입장에서 이 일을 성취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5-104
예수의 소원을 이뤄드려야 할 우리
그러면 이 땅 위에 있는 만물이나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이 땅 위에 있는 우리에게 호소한다 할진댄 무엇을 호소할 것인고? 예수의 원을 풀어주기를 호소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원은 무엇이었던고? 땅 위에 와서 참부모를 못 가졌고, 참된 형제들을 못 가졌고, 참된 제자를 못 가졌고, 참된 민족과 참된 국가를 못 가졌고, 참된 세계를 못 가진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의 원을 풀어드려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쉬시지 못하시고 싸워나오고 있는 것이 예수의 입장이거늘, 오늘날 우리 한 개체가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 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의 부모도 될 줄 알고, 예수의 참다운 형제도 될 줄 알고, 예수의 참다운 대신자도 될 줄 알고, 예수의 참다운 세계를 이루는 용사도 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만 예수의 원은 비로소 해원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러한 심정을 갖고 예수편에 서는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가 이러한 심정을 가지고 왔으매 오늘날 우리들도 이러한 심정을 갖추어 벅찬 마음을 갖고, 태어나실 때의 예수를 찾아가 만남의 기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예수를 만나서 축하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앞으로 다시 오시는 재림주도 축하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될 것입니다.

지금 하늘은 우리들을 대하여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하늘의 기쁨은 우리들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요, 하늘의 해원도 우리들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 개체는 이제 이러한 역사적인 중요한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말은 예수의 말을 대신해야 하고, 우리의 행동은 예수의 행동을 대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으며 걷는 걸음도 예수가 배척받으며 걸어야 할 발걸음을 대신하는 것으로 알고 친구가 없어 외롭고, 형제를 잃거나, 부모를 잃거나, 제자를 잃더라도 예수의 사정을 여러분들이 체휼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서야 옛날 예수님께서 감람산 기슭을 헤매시던 사정과 통할 것이요, 겟세마네 동산에 돌라가서 기도하던 예수의 비장한 심정과 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뇨. 예수가 찾던 참다운 하나의 가정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의 부모를 모시고 형제들이 하나의 종족을 이루어 가지고 번식하여 하나의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는 것이 예수의 소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각기 가정에 들어가면 부모가 있고 자녀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참질서를 세워 참다운 형제와 부모와 친척과 교단이 민족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마음을 품고 여러분들이 이 땅 위에 태어나신 예수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있다 할진대는, 예수는 말구유에 누웠을 망정 기뻐할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을 갖고 오늘 이 한 날을 기념하기를 부탁합니다.

5-105
기 도
아버님, 보내셨던 예수를 어찌하여 죽음의 자리에 내놓으셨는가를 인간들은 지금까지 알지 못하고 내려왔습니다. 아담을 잃어버린 아버님의 슬픔과 예수를 잃어버린 슬픔을 오늘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불쌍한 예수를 믿는 불쌍한 성도들이 나와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아는 신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섭리의 길을 따라간 사람들은 죽음의 길을 허덕이면서도 참다운 길을 찾아 헤맸다는 걸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참다운 부모를 찾아 헤맸다는걸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천추의 한이 되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이 시간 알고, 나는 참부모를 가졌는가, 참형제를 가졌는가, 참제자를 가졌는가, 참교인을 가졌는가, 참민족을 가졌는가, 참세계를 가졌는가를 음미해 보게 하시옵소서.

하늘의 서러움을 오늘도 땅과 하늘과 만민 가운데서 한없이 사무쳐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날을 축하하는 저희들은 참부모가 되기 위하여, 참아들딸이 되기 위하여 참다운 효자가 되기 위하여, 참다운 충신이 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통하여 지난날 서러우셨던 예수님을 위로해 주시옵고, 아버지의 심정 가운데 항상 머물러 당신의 사정을 해원성사시켜 드릴 수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시옵소서. 모든 것을 맡기오며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