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9 to 5-304: 소망인 이상천국

소망인 이상천국
1959.02.22 (일), 한국 전본부교회

5-279
소망인 이상천국
마태복음 3:1-17

[기 도(Ⅰ)]

본연의 참사람을 잃어버린 아버님께서 기나긴 세월을 통하여 복귀섭리하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는가 하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본연의 아담 해와를 그리워하시면서 역사노정의 피어린 고비고비를 넘어 오셨다는 것을 이 시간 저희들이 마음으로 몸으로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일을 계승하여 섭리의 뜻을 받들어 온 우리의 선조들도 가는 곳곳마다 십자가의 서글픈 노정을 걸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가다가 남겨져 있는 이 십자가의 길을, 오늘 끝날에 처해 있는 저희들이 마저 가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책임과 섭리적인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당신의 힘과 당신의 권고로써 저희들을 다시 충동시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남아진 이 십자가의 고비를 다 넘어가 소원하시던 본연의 동산 가운데서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기쁨의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 자체에 속한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오늘, 남아진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섭리역사 앞에 막혀 있는 십자가의 고비고비를 박차고 나설 수 있는 천적인 각오를 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일을 성취시키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비장한 각오를 하고 총검을 들고 싸움터에 나서듯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오늘도 내일도 어느 때에라도 저희들의 모든 정력을 다 기울여 싸워 나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나아가는 길을 막고 있는 수많은 사탄 대하여 싸워나갈 수 있는 힘을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싸움터에서 승리의 모습으로 나타나 아버지의 영광의 동산에서 아버지를 친히 모시고 살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고, 아버님이 소원하시던 전체의 뜻을 이루어 아버지의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 딸들 되게 하여 주시옵고, 사탄세계와 온 만물 만상 앞에 내세워 자랑할 수 있는, 아버님께서 찾으시던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찾아진 아들 딸로서 아버지와 영원히 동거할 수 있으며, 아버지의 일과 아버지의 사상과 아버지의 소원을 이룬 자로서 기쁨과 영광의 노래로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자식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겨진 싸움의 길과 남아진 십자가의 길을 거쳐서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지시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은 거룩한 날이옵니다. 만민이 합하여 아버지의 전체의 뜻을 받들 수있으며, 만민이 움직여 아버지의 승리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때가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 삼천만 민족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이날 모인 당신의 아들 딸 위에도 특별한 은사의 손길을 내려 주시옵소서.

이 민족을 사랑의 마음으로 품으시어서, 당신이 소망하시는 뜻, 남아진 원한의 전체적인 뜻을 책임지고 싸워 이김으로써 성사시켜 드리는 영광의 모습들로 나타날 수 있는 그때까지 당신이 재촉하시는 대로 움직이는 이 민족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또 그러한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불충스럽고 불비한 자체들로서 이날 아버지 앞에 모였사오니 합당치 못한 일체를 제거하여 , 아버지의 영광의 품에 품길 수 있는 본성의 것만을 이 시간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본연의 영광만을 각자의 심중에 연결시켜 하늘이 바라던 모습으로서 아버지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이 한 모임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오직 아버지의 것으로만 취해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 딸에게도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역사하여 주시옵길 부탁드리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니다. 아멘.

5-281
기 도(Ⅱ)
아버님, 저희들을 불러 모아 주셨사오니, 이 시간 저희들만 남게 하지 마시옵소서.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이 자리까지 나오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런 길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하늘의 슬픔과 땅의 슬픔이 저희들을 조건으로하여 뒤넘이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허락하신 말씀과 허락하신 은사와 허락하신 생명으로 말미암아 오늘 이자리에서 아버지를 대하여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영광의 은사를 가지게 된 것을 황공하게 생각하옵니다.

오늘의 저희들에게 맡겨진 책임이 귀중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오니, 사랑의 아버님! 이 시간 저희들을 버리지 마시옵고, 다시 한번 아버지 품에 품으시어서 전해 주시고자 하셨던 심정을 저희들의 심정에 옮겨 주시옵고, 맡기고자 원하셨던 전체의 뜻을 저희들에게 맡겨 주시어서 아버님께서 안심하실 수 있는 저희들로 만들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의 마음과 몸이 저희들만의 것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시간만은 아버지의 것으로 움직일 수 있는 몸과 마음이 되게해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친히 주관하실 수 있는 하나의 제단이 되어 아버지 것 이외의 것은 일체 용인되지 않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억만 사탄이들이 저희들의 움직임을 막고자 혈안이 되어 있사옵니다. 이때 저희들은 마음과 몸 모두를 기울여 이것을 막아낼 수 있는 천적인 힘과 능력을 고대하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시여!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은사를 내려 주시어서 부활의 권한을 갖추어 사망권 앞에 나설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저희들에게 허락하신 수련 기간을 통하여 수련을 받고 간 당신의 아들 딸들, 간곡한 심정과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가지고 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흩어졌사오니, 아버지, 그들의 갈 길을 아버지께서 열어 주시옵고, 싸움을 하게 될 때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믿음으로 하늘의 권한을 세우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실권의 행사를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들려진 철장의 말씀과 생명의 방패로 원수들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그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천적인 승리의 영광을 그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6천년 동안 참아오신 아버지의 심정을 해원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을 저희들은 이미 알았사옵고, 이미 저희들에게 그 때를 예고시키셨사오니 이 일이 헛되이 돌아가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움직이는 전체 위에 생명의 움직임이 있게 하여 주시옵고, 나타나는 곳곳마다 하늘의 전권적인 역사를 나타내 주시옵소서. 그들로 하여금 생명의 모습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원수들이 입을 다물고 굴복할 수 있는 한날을 맞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은 약속하신 날이오니 축복하여 주시옵고, 허락하신 날이오니 아버지의 뜻을 나타내시옵소서. 숨겨졌던 아버지의 사랑의 심정을 저희들의 마음에 옮겨 주시어서 저희들로 하여금 아버님의 은사를 노래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로 하여금 아버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참다운 경배를 드릴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로 하여금 잠들어 있는 삼천만 민족을 깨우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땅 위의 수많은 인류를 깨우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머무는 곳곳마다 아버지께서 염려하고 계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고, 이들을 쓰러지지 않게 하시기 위해 아버지께서 붙들고 계시다는 것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도 이 민족을 붙들고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인류를 붙들고 싸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우리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들을 위하여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아버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지금도 싸우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 자체도 저희를 위하여 살 것이 아니고 당신을 위하여 살아야 할진대 이들을 붙드시려는 아버지의 뜻과 만민을 대하여 절박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한 날 한 시라도 아껴서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싸워나갈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 만민을 대신하여 모이는 수많은 당신의 제단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생명의 은사에 사무쳐서 아버지 앞에 외로운 제단을 쌓으며 호소하고 있는 숨은 아들 딸들이 많은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에게 각별한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끝날에 하늘의 뜻을 예고시켜 주시옵고, 아버지의 영광의 때가 온다는 것을 그들에게 예고시켜 주시옵소서. 하늘의 은사를 중심하여 모일 수 있는 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리하여 온 만민이 하나의 제단을 갖추어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으며, 아버지 앞에 경배드릴 수 있는 날이 온 땅 위에 임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섭리하시는 뜻 앞에 영광의 한날이 어서 속히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날을 소망하며 싸워나가는 저희들 앞에 기쁨의 승리의 날이 어서 속히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하늘의 영광이요, 땅에는 승리의 개가가 퍼지는 기쁨의 동산이 어서 속히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시간 이후의 모든 시간을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저희들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저희의 모든 주의 주장이나 저희가 느끼는 관념 전부를 제거시켜 주시어서, 천적인 심정에 화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 자신들, 오직 당신에게 사로잡힐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5-284
기 도(Ⅲ)
아버님! 오늘 여기 모인 저희들, 요단강가에 모였던 서글픈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새로운 소식을 듣기 위하여 세계 요한 앞에 모였던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곡한 심정으로 메시아가 오시기를 고대하며 허덕이던 이스라엘민족의 발자취를 더듬어 살펴보는 저희들, 역사적인 모든 슬픔을 넘어 천적인 정을 중심삼고 인연 맺어 세례 요한을 중심삼고 엉클어져 움직이던 무리들의 모습,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의 모습, 심정과 심정을 연하여 새로운 소망에 즐거워하던 무리들의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선민의 권한을 자랑하고 택한 백성임을 자랑하며, 축복권내에 살던 이스라엘은 어디 갔는가 하고 탄식하시는 아버지의 슬픈 눈물이 이 땅에 남아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께서 4천년 동안 역사적인 서글픔을 참으시면서도 택한 이스라엘민족을 붙들고 나오신 것은 메시아 한분을 보내시기 위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메시아를 두고 사탄의 품에 품기었으니, 그것을 바라보신 아버님의 서글픔은 그때만의 서글픔이 아니라 억천만년 역사의 서글픔으로 남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당시에 택한 이스라엘민족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는 것을 저희들이 회상하게 될 때, 오늘 몸을 굽히고 마음을 가다듬어 역사적인 범죄성을 폭로시키고, 그 역사적인 죄악을 대신하여 회개해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음을 저희들은 슬퍼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님, 손길을 펴시옵소서. 아버지, 사랑의 심정을 나타내시옵소서. 아버지, 피곤한 발걸음을 다시 옮기시어서 저희를 찾아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의 서글픈 심정을 갖고 쓰러져가는 민족을 찾아 주셨사옵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고 그들을 찾아 주셨사오나, 택한 민족이라 자칭하던 이스라엘민족은 하늘이 보내신 메시아와 준비하신 세례 요한을 자기들 멋대로 대접하여 역사적인 슬픔의 그늘에 숨겨버렸다는 사실을 오늘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로 하여금 그때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희들보다 못해서 하늘을 배반한 것이 아니었고, 하늘을 위하는 심정이 저희들만 못해서 하늘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새 시대에 대한 소망이 부족하였고, 새로운 메시아의 이념을 갖고 오실 주님의 모습이 클 것으로 알았는데 정작 나타난 메시아가 너무도 초초하고 불쌍하고 형편없이 작은 모습이었기에 그들이 배척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 한 자체가 어떠한 자리에 처해 있는가 살피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오늘 저희들은 흔히 역사적인 이스라엘민족을 비방하고, 역사적인 그때 당시의 사정을 비판하기 좋아하나 그때의 사정이나 오늘의 사정이 차이가 없음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그때에 있었으면 그들과 같은 무리였을 것이며, 저희들이 그 시대에 있었으면 그들과 같은 입장에 있었을 것을 자인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시고, 그러한 역사적인 죄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자신들이라는 것과 사탄의 마수가 저희의 몸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이 시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도 모르는 사이에 생명의 권한을 잃어버리고 허덕일 때가 많사오니, 오늘 이 모든 모순된 환경을 타파해버리고, 환경에 얽매인 모든 사정을 억눌러서 사탄이 즐거워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지 말고, 아버지의 슬픔을 덜어드릴 수 있는 심정의 제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누구를 보려고 이 자리에 나왔겠사옵니까? 누구를 찾아서 이 자리에 나왔겠사옵니까? 오로지 저희가 바라고 찾고자 원하는 것은 아버지의 심정이옵니다. 어떤 역사적인 선생을 찾고자 모이는 무리가 되지 말고, 선지자를 통해 나타나는 아버지의 심정을 찾기 위해 모이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저희의 마음에는 세상에서 더럽혀진 죄악의 쓴 뿌리가 남아 있사옵고, 저희의 몸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상처를 입었사오니, 긍휼의 마음으로 나타나시어서 불쌍한 저희들을 이 한 시간이나마 아버지의 품에 품어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에 취하여 자신의 모든 인식을 넘고 아버지의 실존성에 화하여, 본연의 성품을 갖춘 모습으로 아버지를 대할 수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남기신 천국의 이념을 저희에게 찾아 주시옵고, 남기신 새 나라의 기쁜 소식이 저희를 찾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해방의 종소리가 울리고 자유와 해방의 은사 앞에 저희들이 기뻐 춤출 수 있는 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인류 앞에 새로운 기쁨의 동산이 전개되어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남아진 시간을 주관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허락하신 말씀을 나타내시옵소서. 어두운 사탄의 그늘을 제거시켜 주시옵고 참생명을 얻게 된 기쁨을 소개할 수 있는 천적인 인연을 맺어지는 이 한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고, 죽었던 몸들이 재창조의 부활의 은사를 받아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는 시간 되게 하시옵고, 재창조의 말씀과 재창조의 생명의 움직임을 여기에 나타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올 때에,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5-286
말 씀
우리 인간들은 타락한 그날부터 오늘날까지 잃어버린 이상의 나라를 흠모하면서, 새로운 소망을 품고서 무한한 고초를 겪으며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위는 행복하여야 할 주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음으로 그리며 사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 선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창조이상으로 지으셨던 천국을 잃어버렸기 때문임을 우리들은 다시 회상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모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 중 아담 해와는 만물의 주인공으로 지음받았습니다. 이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창조이상 동산에서 하나님 대신 온 피조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으며, 하늘과 땅 앞에서 화동할 수 있는 영광의 중심, 승리의 중심, 기쁨의 초점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서 하늘과 땅앞에 나타난 아담 해와였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위치를 잃어버리고 맡겨진 바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이 땅은 슬픈과 고통과 죽음의 땅으로 화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타나 이 사실을 부정하고, 그렇지 않다고 어떤 조건을 주장한다 할진대, 그는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는 자요,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하는 자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적인 생활을 부정하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들은 불안하고 초조한 땅에서 살고 있고, 공포와 죽음의 어려움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될 때가 왔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자각하여 새로운 각성을 하고, 현실적인 모순을 제거하면서 새로운 심정에 사무쳐야 하고, 새로운 이념과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는 창조자가 있다 할진대 그가 창조주로서 소망하던 이념을 지니고 오늘도 내일도 아니 일생 동안, 그 이념과 더불어 싸울 수 있는 각오를 가져야만 이런 모순된 환경을 타파하고 천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죽음의 길이요, 아니 부딪칠래야 아니 부딪칠 수 없는 고통의 환경이지만, 이 모든 것을 부정할 수 있는 마음과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나설 수 있는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잊고 달려갈 수 있는 새로운 이상동산,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가야 할 목적이요, 이것이 역사 노정에서, 혹은 역사의 종말에서 찾아 세워야 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소망하시는 것이요, 인류가 소망하는 것이요, 이 민족과 오늘의 우리가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오늘날 여러분은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앞에 말씀 드리고자 하는 제목은 `소망인 이상천국’입니다. `소망인 이상천국’.

5-287
인간 타락의 결과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망이 꺾어지게 되었고, 인간의 소망도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의 대상인 인간은 우주를 대신한 하나의 주인공으로서, 혹은 천주적인 이념의 개체로서, 이상적인 개체로서, 전체적인 제물로서 하늘을 움직일 수 있고 땅을 움직일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되지 못한 연고로 우리 인간에게는 소망이 남아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소망이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인간을 위하여 지었던 창조동산이요, 인간과 더불어 행복을 누리기 위한 창조이념이라 할진대는, 그 창조동산과 이념은 우리 자신들로 말미암아 결정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다시 한번 회상하여 이 일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하고, 싸울 수 있어야 하겠으며, 하나님의 역사적인 한을 풀어드릴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슬프다면 그 이상 슬픔이 없고, 억울하다면 그 이상의 억울함이 없고, 분하다면 그 이상의 분함이 없는 이러한 심적인 충격이 여러분 자신에서부터 폭발되는 그 시간이 여러분이 새로운 이념과 소망을 찾아나갈수 있는 한 시간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타락한 인간들의 마음에 새로운 충격을 일으켜 주기 위하여 오늘 이 시간까지 싸워오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늘의 사명을 대신 맡았던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잠들어 있는 사망권내의 인류를 깨우쳐 그들에게 새로운 이념의 세계가 있고, 새로운 소망의 동산이 있다는 것을 각성시키고, 지금까지 자기들이 살아온 모든 환경을 부정하고 나설 수 있는 충격을 일으켜 주기 위하여 싸웠고, 또한 죽어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선지선열들이 역사노정을 거쳐 오면서 하늘을 대신하여 그 시대 시대에 경고하였던 말씀에 충격을 받아 그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중심삼고서 그 시대에 박차고 나선 무리, 민족, 인류가 없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범죄를 슬퍼해야 할 자체들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이런 범죄에 대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곱에게 자신이 원치 않았던 21년의 광야 생애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부딪치는 어려움, 21년 동안에 거듭되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마음의 기준이 야곱에서는 잡혀 있었습니다. 즉, 하늘 대한 철석같은 심정과 그의 마음에 부딪친 하늘의 충격에 의한 심정이 그의 생활을 지배할 수 있고 생애를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환경적인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복귀노정을 늠름히 넘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충격을 받았던 그날의 각오를 가지고 일신에 미쳐지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개의치 않고 나선 야곱이야말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실수하였던 연장의 역사를 가로막고 사탄을 물리친 믿음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민족적인 책임을 지고 태어났던 모세의 마음은 호화로운 바로궁중생활로서 지배할 수 없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불쌍한 목자생활을 한 모세였지만 그 환경이 모세의 심정에 스며든 심적을 점령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민족을 넘고, 인류를 넘고, 세계를 넘어서 하늘과 인연맺기를 원하는, 솟구쳐오르는 심적인 충격이 있었기 때문에 미디안 광야 40년을 무난히 넘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선조들이 일심으로 고대하였던 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나라,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싸워나왔던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모세가 60만 대중을 거느리고 광야에 나아가 유리한 40년 기간에도 주위 환경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가 모든 어려운 환경적인 조건들을 잊어버리고 60만 대중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는 사무친 심정과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의 심정이 60만 대중이 반대하는 심정보다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5-289
하늘과 선조들의 수고의 목적
더 나아가서는 4천년 동안 하늘이 소망하셨던 중심존재로, 인류에게 이상적인 천국이념을 소개하고 그 이념을 성취하는 중심존재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시대의 환경에 젖어 있는 말씀에 치우치지 않았고, 그사회환경의 생활에서 만족하지 않았으며, 형식과 규례에 사로잡혀 있는 의식적인 유대교단의 풍습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역사적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충절의 심적 기준과 그것을 중심삼은 새로운 말씀을 갖고 나타났을 때, 그 말씀과 더불어 새로운 행동을 제시하고 나타났을 때에, 역사적인 인물, 역사적인 단체, 역사적인 모든 국가는 예수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이념을 찾아나가는 노정에 있어서 막혀진 곡절이었던 것을 우리들은 역사를 통해서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보다도 내일, 내일보다도 내년에, 내년보다도 금세기에, 금세기보다도 다음 세기에 더 좋은 이념을 인간에게 연결시켜 주셔서, 인간들을 최대의 이념의 수준에까지 끌어올려 주고 싶어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지나온 역사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끝날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 때에 살고 있고, 세계 만민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이런 때, 자체의 존재성을 자랑할 수 없는 이런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소개해 주신 이념을 가지고 각자 각자가 새로운 마음의 충격을 받고, 현실적인 묵은 체제 위에 살고 있는 각자 각자가 새로운 마음의 폭발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 움직임이 이 시대에 나타나지 않을진대, 이 시대는 역사의 슬픔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종말에 처해 있는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말씀은 다 배웠습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2천년 동안 머리가 터지도록 노력을 기울여 성경을 연구해 보았으나, 그것은 그것으로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자기들이 완전하다고 했던 이 모든 움직임이 발전한 것 같고, 이상적인 이념을 인간들 앞에 제시한 것 같으나 그것은 인간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천적인 이념이 아니었고, 심정의 동산을 개척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움직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현실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런 장벽을 무너뜨리고 헤쳐나갈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인류는 너와 나를 막론하고 모두가 절망하고 있는데 제일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창조주가 계신다 할진대 그 창조주가 이루시길 원하시는 천국이 있을 것인데, 그 천국 이념을 어떻게 인간들에게 소개해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이념으로서 안 되겠기에 새로운 이념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마음으로 그 새로운 이념을 흠모하는 심정을 갖지 못한 자가 그냥 새 것을 바라면 그는 역사적인 범죄자라고 보아야 합니다.

새로운 이념이 나타나길 고대하고, 모든 인류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여러분은 모든 원한의 고개를 넘어야 하고, 현실의 모든 것을 박차고 밀어내고 싸워나갈 수 있는 마음의 각오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5-291
새로운 이념을 소개해 주는 문제
내가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은,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역사적인 고집을 타파해버릴 수 있는 사람, 새로운 충격을 일으키고, 새로운 이념에 불탈 수 있는 사람을 만들 수 있는 이념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하늘이 있다 할진대는 이러한 이념을 우리에게 마음 놓고 소개해 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까? 해보지 못했다 할진대 이 이념의 동산, 즉 이상세계를 그리워하면서 찾아 허덕여 나왔던 우리의 선조들 앞에 면목없는 죄인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늘을 향한 심정에 사무쳐서 새로운 창조이념의 세계, 인간이 찾아가야할 소망의 세계를 마음으로 느끼시고, 그 느낀 충격에 의해 행동할 수 있었던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충격에 의해 행동하실 때의 환경은 어떠한 환경이었던고! 예수께서 발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만민이 화합하여 예수를 환영해야 했는데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역사상의 수많은 인류나,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영인들도 예수님께서 부르짖던 말씀과 그의 역사적인 행적, 또한 예수의 책임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이렇게 예수를 환영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이념을 갖고 오셨던 예수님께서는 그 이념을 세워나가는데 있어서, 그 이념의 목적이 성취되는 날까지 자기의 일신에 부딪쳐 오는 모든 반대의 조건들을 타파하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마음에 사무치게 느끼셨습니다. 이념에 의한 충격이 강하면 강할수록 환경에서 오는 모든 악조건을 물리칠 수 있는 철석같은 일념이 그에게 있었기에, 예수는 어떠한 환경에 부딪쳐도 그것을 물리치고도 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마음으로 그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그 무엇을 찾아 허덕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공포와 불안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처해 있는 우리들은 이 모든 공포와 불안의 조건들을 벗어버릴 수 있는 그날을 동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만이 이러한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2천년 전에 왔다 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러한 환경에 계셨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이 회상하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 환경을 헤쳐가셨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만물이 지어졌고, 그 지어진 만물은 참다운 주인으로부터 주관을 받아 이상천국이 이루어졌어야 할 것이었는데,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창조주께서 이상하셨던 이상천국이 지상지옥으로 화하였고, 말할 수 없는 공포와 불안의 세계로, 싸움의 세계로 반해버렸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그 이념과 이상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상지옥인 이 세상을 책임지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공생애노정을 출발하셨던 것입니다.

이상천국을 향하여 나아가는 예수는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역경과 슬픔에 부딪쳤습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가야할 길인 것을 아셨기에 그러한 길이라 할지라도 이상적인 동산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 동산에서 인류를 대신하여 창조주와 상봉할 수 있을 때까지 예수는 가야만 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우리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그 이상동산을 향하여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이러한 충격을 받았다 할진대, 그 충격과 더불어 여러분은 `아버지여! 나는 가고 싶소이다! 소망의 이상천국을 향하여 나는 가고 싶소이다!’하는 마음, 가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야 되겠습니다.

소망의 이상천국을 향해 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고 슬픈 길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천국에서부터 출발되는 것이 아니라 죄악세계에서 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죄악세계인 지옥에서 출발하여 그 지옥을 박차고 나서야 천국과 연결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소망의 이상천국을 향하여 가야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가야만 했던 예수를 생각해 봅시다. 그 예수는 어떠한 길을 가셨습니까? 평탄한 길을 가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뭇사람으로부터 환영받는 길을 가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만민의 구세주요 만우주의 주인공이었으되, 주인공으로서의 행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자신을 자랑하여 자기를 따르라고 대중에게 선포하기를 주저하셨습니다.

5-293
고난의 길을 가신 예수
섭리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도 앞장서서 가야 할 예수는 앞서 가지 못하시고 민족의 맨 뒤에 서서 `너희들은 편안한 길을 가라, 나는 제일 어려운 길을 가겠다’고 하시며 민족의 어려움, 세계의 어려움을 도맡고 인류가 싫어하는 고난의 십자가를 도맡아 지고 인류를 위해 가셨습니다. 그 예수께서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역사적인 슬픈 길이요, 악조건으로 엉클어진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을 가셔야 했기에, 30년 준비기간, 3년공생애기간동안 비장한 심적 각오를 하고 걸으셨습니다. 그 각오가 비장하면 비장할수록 슬픔을 겪는 인류의 친구가 되셨고, 인간들이 공포의 생활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과 사탄에게 유린당하는 것을 분해 하시며 누구도 알아 주지 않는 역사적인 최하의 자리에서, 시대적인 최하의 자리에서 사탄과 싸우셨습니다.

`인류의 슬픔이 있다 할진대 그것을 내가, 인류의 어려움이 있다 할진대 그것을 내가, 인류의 죽음이 있다 할진대 그것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마음을 갖고 걸으셨습니다. 그의 발걸음은 개인의 발걸음이로되 그의 지신 바의 사명은 역사적인 사명이요, 시대적인 사명이요, 미래적인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면 창조 이후의 하나님의 심정과 인류의 심정, 또 피조만물에게 어떠한 심정이 있다 할진대 그 심정까지 헤아려 그것을 해원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예수님은 어디를 향하여 걸어 갔던가. 어떤 호화찬란한 궁전을 찾아간 것이 아니요, 영광 가운데 권세를 누리는 어떤 고관의 집을 찾아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시대적으로 모든 조건이 구비되지 아니한 때에 뜻 앞에 세워진 것을 아신 예수는 그 반대의 길을 찾아나섰던 것입니다.

하늘이 4천년 동안 믿어온 이스라엘과 그 나라를 대표한 유대교단이 가야 할 길이, 하늘과 연결할 수 있는 소망의 길이 막혀 있는 것을 아시고, 이 소망의 길을 터치기 위해서 앞장서 나가려 하셨으나 그들이 믿지 않았던 연고로, 민족의 뒷전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던 예수였습니다.

소망의 천국을 향하여 가야 했던 예수, 개인을 넘고 가정을 넘고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 세계를 하늘로 이끌어야 할, 이념의 세계로 이끌어 가야할 예수, 그 예수는 이념을 품고 민족의 선두에 섰으나 민족에게는 쫓겨났습니다. 교단에게서 쫓겨났습니다. 가족에게서 쫓겨났습니다. 제자에게서도 쫓겨났으며 강도한테까지도 쫓겨났습니다. 그때 당시 예수의 심정이 얼마나 서글펐겠습니까?

아버님의 이념으로 전진해야 할 예수께서, 세계 인류 앞에 행복의 동산을 소개해야 할 예수께서 반대의 길을 가셔야 했는데, 그 예수의 모습과 예수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예수님은 가야 할 곳을 향해 바로 가지 못하게 되면 돌아서라도 가야 했습니다. 4천년 역사가 경과했으니 그 4천년 역사를 되돌아서라도 가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사명이요 책임인 연고로 그는 하나님께 몇 번씩이나 기도하였습니다.

`아버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을 버리고 돌아서, 몇 천년 걸리는 길을 걸어서라도 나는 가겠나이다. 오직 소망의 동산을 향하여 나는 가겠나이다. 아버님이여, 내가 있사오니 낙심하지 마시옵소서’라고.

그런데 하늘이 세우신 민족, 하늘이 세우신 교단, 하늘이 세우신 가정, 하늘이 세우신 세례 요한 일당이 모두 예수의 가는 길을 막았으며 배반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예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수 앞에 면목이 없었습니다. 안 그렇겠어요?

메시아를 모시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준비하였던 환경적인 모든 조건이 일시에 무너지게 될 때 예수는 도리어 슬퍼하시는 하나님을 위로하려는 입장에 섰습니다. 하나님이 슬프니 그도 슬펐을 것이어늘, 슬픈 자기의 입장을 부정하고 하늘을 위로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섰던 예수, 그 예수는 민족으로부터 원수 취급을 받았고, 교단으로부터 이단자로 몰림받았으며, 가정으로부터 배반자라는 비난을 들었으며, 강도들에게까지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산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서도 죽으려드는 원수를 위해 입을 열어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라고 복을 빌어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늘의 이념 동산을 향해 갈 것을 하늘 앞에 맹세하고 나선 예수는 그의 길이 영광과 행복과 기쁨으로 종결되지 않고, 슬픔과 억울함과 분함과 죽음으로 종결된다 할지라도 가야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그 이념의 동산을 향해 가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이념의 동산을 찾아가신 것은 인류를 대신하여 간 것이요, 역사를 대신하여 간 것이요, 온 피조만물을 대신하여 간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 예수를 따르고 있는 우리들도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살아서 못가면 죽어서라도 가야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5-295
기독교는 십자가의 교단
예수는 인류의 고난을 짊어지고 인간의 말단의 자리에서 출발하여 최후에는 골고다 산정까지 갔습니다. 그 자리는 예수 일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자리였습니다. 오! 하나님의 아들, 하늘의 황태자, 하늘의 왕자의 모습은 어디로 갔던고! 인류의 메시아, 인류의 구세주로서의 그 모습은 어디 갔던고! 그 자리는 자신의 어떠한 가치를 일푼어치도 주장할 수 없는 분하고 억울한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한 죽음의 고개를 넘어 하늘을 바라보시며, 하늘의 이념동산을 향하여 나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이념이 사망의 힘보다 강했고, 그의 이념이 역사적인 어떠한 힘보다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사망권을 헤치고 부활이 벌어졌고, 반대하는 인간들을 회개시켜 오늘날의 기독교가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가신 예수의 뒤를 따라 가야 할 오늘의 우리는 죽어도 가야 하고 살아도 가야 합니다. 이렇게 가고 싶은 마음이 여러분에게 사무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충격을 받아도 그 이념을 향해 가고 싶소이다. 먹어도, 굶어도, 매를 맞아도, 천대를 받아도, 핍박을 받아도 가고 싶소이다’ 할 수 있는, 사망의 힘보다도 큰 느낌이 없다 할진대, 역사적인 종말에 나타나는 대심판에서 사망권을 넘을 수 없습니다. 가고 싶은 마음, 즉 `이래도 가고 저래도 가겠습니다. 아버님이여, 당신이 계심을 알았사오니, 당신의 이념 세계가 이렇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아무도 안 가더라도 나만은 가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는 길을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인간시조가 처음부터 평탄과 행복과 기쁨으로 출발하지 못하고 슬픔과 비애와 역경과 공포와 불안 가운데서 출발했던 연고로 이것을 탕감해야 할 최종말기에 있는 우리도 그러한 역사적인 모든 슬픈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의 천적인 이념을 소개해 줄 메시아가 나오지 않는 한 인류는 불안과 공포와 사망권내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살 길이 없다는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본래 제물의 교단입니다. 십자가의 교단입니다. 피 흘리는 교단입니다. 봉사하는 교단입니다. 먼저 죽기 위해 나서는 교단입니다. 하늘이 움직여 나온 기독교는 이러한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전통을 빛냈거늘, 오늘 이 시대의 기독교에 이런 것이 없다면 천벌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단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세계의 운명을 개척해야 할 기독교는, 세계적인 서러움을 갖고 통곡하시던 예수 대신, 골고다 산정에서 피를 흘리며 운명하시는 그 경각에 `저들의 죄를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하시던 예수님의 심정에 사무쳐 외칠 수 있는 하나의 목자, 하나의 양이 되어 하늘 땅의 원한을 헤치고 새로운 이념과 새로운 소망과 새로운 이상동산을 소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반대와 핍박 끝에 골고다 산정에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몰랐던 이스라엘민족 가운데 그들을 대신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사람이 예수의 죽음을 놓고 죽음을 무릅쓰고 하늘 앞에 나갔던 것과 같이 죽음을 각오하고 하늘 앞에 나타날 수 있는 목자, 그러한 양떼가 있다면 그들이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천적이념을 연결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새로이 감정해야 되겠습니다. 나타나는 어떠한 지도자도 다시 감정해야 되겠습니다. 유대교 제사장들, 그들은 어떤 무리였는가. 그들은 천적인 새로운 소식을 유린한 무리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무엇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고 무엇이 우리의 나라는 정신적으로 주관하고 있는가를 재분석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이 시대적인 모든 죄악의 기반을 타파하고, 새로운 소망 가운데로 이끌어 주는 새로운 이념에 불타게 할 수 있는 충격을 여러분이 교단을 통하여 받지 못할진대, 그 교단은 제1 이스라엘이 받은 것과 같은 심판을 모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5-297
하나님을 만나야 할 인간들
우리는 가야 되겠습니다. 기성교회, 혹은 타종교 신자들의 신앙이념을 타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예수의 십자가를 타고 넘어가고, 더 나아가서 십자가뿐만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의 심정을 타고 넘어가, 하나님의 심정까지도 타고 넘어가서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아들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리까지 우리는 가야만 되겠습니다.

가고 싶은 그 곳, 아버님이 계신 그 곳, 주가 계신 그 곳, 인류의 참다운 형제가 있는 그 곳, 그곳을 향하여 가는 우리들의 발걸음이 어디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땅의 그 무엇이 붙들더라도 가야 할 이념의 길, 우리의 길을 막고 있는 일체의 조건들을 밟고 넘어 서서 그들까지도 이끌고 가야 할 길이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이러한 책임을 짊어지고라도 가야 할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6천년 동안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고, 하늘은 우리를 찾아오셔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를 찾아 오시기에 하늘은 말할 수 없는 수고를 하셨는데, 여러분은 그 하늘의 수고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타락한 그날부터 아담의 뒤를 따르시지 않았던 때가 없었고, 아담의 후손들의 뒤를 따라 오시지 않은 때가 없었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오늘도 여러분이 모르는 사이에 쉬지 않고 여러분을 찾아 오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 하늘을 찾아 보았습니까? 거기에는 6천년의 슬픔과 수천 수만의 사망의 고개가 가로막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하늘의 걸음이 이렇거늘, 하늘을 찾아가는 우리도 이러한 길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일신을 위한 어떤 이념을 찾기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만민을 중심으로서 만민에게 행복과 소망의 동산을 소개해 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래서 만민을 위하여 수고하셨고, 만민을 위해 고통을 당하셨고, 만민을 위해 슬픔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그 예수는 그렇기 때문에 피조만상, 하늘 땅의 어떠한 존재도 예수의 슬픔과 관계없는 것이 없었으나, 그는 갈 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거기에서 슬퍼하고 탄식하며 죽어가지 않고 새로운 소망을 남기셨습니다.

그리하여 메시아의 기준을 완결지어 새로운 소망의 동산을 개척하는 주인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예수님은 분하고 원통하게 가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알았으니 그렇게 보내버린 예수를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만나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에 사무치는 동시에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야 되겠습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손길을 붙들고 싸우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은 예수 이후 2천년 역사, 아니 6천년 전체 역사를 대신한 천적인 모습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그 분께로 가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야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슬플 때 위로해 주시던 하나님과 예수님, 어려울 때 도와주시던 하나님과 예수님, 억울함과 분함을 당할 때 그것을 대신해 주시던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만나는 데는 곡절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실 때 인간들에게 여러가지 부탁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하늘에 가서 있을 곳을 예비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편 다시 만날 그날을 약속해 놓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야 할 걸음이 남아 있는 동시에 만나야 할 한날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가야겠다는 결심만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만나야 되겠습니다.

만날 그날이 역사의 종말이요, 기독교적으로 보면 재림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재림의 날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과 가고 싶은 마음을 갖고 고난과 핍박과 억울함과 사망권내에 있는 지옥의 문까지 박차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일체의 조건이 제거되어 하나님의 이념대로 움직이는 곳이 천국입니다. 고통의 조건이 완전히 제거되고 기쁨으로 출발할 수 있는 곳이 천국인 고로, 땅에서 가야 할 고통의 노정을 다 가지 못하고 남기면 남긴 만큼 영계에서 고통당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들은 가야할 길을 다 가고 난 후에야 만날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예수가 먼저 가신 역사적인 길을 다시 걷고 난 후에야 만날 수 있는 이런 입장에 있는 우리가 만난다면 누구와 만나겠는가.

5-299
신부(성도)의 책임
하나님은 예수님이 왔다가신 후 2천년 동안 만나기 위한 준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끝날에 하늘의 신부를 만나기 위하여, 영계에 가서 2천년 동안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준비하고 계십니다. 가신 예수님에게는 신랑으로서의 책임 분야가 있고, 땅 위의 인간들에게는 신부로서의 책임 분야가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신랑되신 예수님께서는 영계에 가서 2천년 동안 그 책임을 감당하는 수고를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땅에 남아 있는 신부들이 어떻게 신랑을 만날 것인가, 먼저는 책임을 완수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땅 위에 나타날 책임을 완수하고 나타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책임을 완수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대가로 하늘의 선물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의 입장에 있는 전세계 기독교인들에게는 남아져 있는 신부로서의 책임을 완수해야 되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하셨습니다.

우리는 책임을 수행하는 노정에서 주기 위해 싸우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하루도 마음을 편하게 갖지 못한 신랑된 예수와 마찬가지로 역사 노정을 거쳐 오면서 땅을 위하여 싸운 그 무리들의 심정 앞에 부끄럽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각자가 책임을 다한 후에야 예수를 만날 자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오늘날까지 타락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책임을 다한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낙원에 계십니다. 낙원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대합실입니다.

그러면 인류의 소망은 무엇이뇨? 타락의 원한을 해원할 수 있고, 복귀의 노정을 거쳐서 하늘의 사무친 원한의 조건을 탕감하여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였나이다’할 수 있는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예수께서 2천년 동안 준비하여 찾으려 하시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를 만나고 싶은 심정에 사무쳐 오늘날 생활적인 분야에서 예수의 서글펐던 역사적인 조건을 우리가 청산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서글픈 걸음으로 가신 모든 역경의 노정을 우리는 승리하여 기쁨으로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개척노정을 걸어 골고다로 가시는 예수의 길을 가로막고, 승리의 노정을 개척하여 예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책임을 완수한 입장에서 예수를 맞이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에게 보고 싶은 마음이 어디 있고 가고 싶은 마음이 어디 있습니까. 보고 싶은 마음도, 가고 싶은 마음도 없는 우리입니다. 보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자기 일신이 찢기고 죽임을 당하는 자리에 갈지라도 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것을 넘을 수 있는 간절한 심정을 가진 무리가 땅 위에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2천년 동안 보고 싶어 찾아오신 예수를 만날 면목이 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보고 싶사옵니다. 하늘이여! 예수의 소원이 무엇이었사옵니까? 그의 소원은 이 땅과 하늘이 이상천국이 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 소원의 천국이 건설되기 위해서는 천국에 살 수 있는 백성이 있어야 되고, 천국을 이룰 수 있는 땅이 있어야 되고, 그에 따른 천국의 주권이 있어야 되고, 그 주권을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통치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 땅에 사는 만민이 천국백성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것이 보고 싶사옵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땅이 아무리 넓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땅은 한 조각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내 것이다’할 수 있는 땅도 없습니다. `영원히 사탄이 침범할 수 없다’할 수 있는 한 조각의 땅도 갖지 못한 예수였습니다.

그러한 예수의 이념이 하늘의 이념이요, 땅에 건설해야 할 지상천국이 이념이거늘, 그 이념이 보고 싶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싶어서 허덕이며 찾아 헤매는 무리가 있어야겠기에 예수는 찾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문을 두드리라고 하셨습니다.

5-301
천국 건설을 위해 싸워야 할 우리
우리가 이 땅 위에 남아진 원한의 길을 타개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예수가 마음으로 동경하는 이념의 세계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야만 그 이념의 실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1 이스라엘이 망한 후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제2 이스라엘로서, 예수가 동경하던 그 나라와 그 민족과 그 땅과 그 주권과 그 통치자가 나타나게 하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 이념과 부합되지 않으니 슬픔이 있다면 이 이상의 슬픔이 없을 것입니다.

애국자는 어떤 사람이 애국자입니까? 백성의 불쌍함을 보고 자기의 아픔보다 더 아픔을 느끼는 자요, 그 땅이 유린당하는 것을 볼 때 자기의 몸이 찢어지는 것보다 더 아픔을 느끼는 자요, 그의 주권자나 그의 통치자가 억울하고 불쌍한 처지에 있는 것을 보고 자기가 불쌍하고 억울함을 당하는 이상의 억울함과 불쌍함을 느끼는 자가 애국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늘의 왕자를 대할 신부라는 황공한 말씀이 왠 말입니까? 우리는 말씀조차 대할 수 없는 불충의 모습이요, 불미의 모습이요, 죄악이 모습들입니다. 그러니 황공한 마음을 갖고 하늘의 백성이 유린당하고 이 강토가 사탄에게 짓밟히는 것을 볼 때,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 싸워야 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선의 주권을 회복해야 할 천적인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인들은 양심이념을 갖추어 지상의 악당들을 박멸시켜야 할 때가 온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가 바라시는 모습과 소원의 한날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립고 만나보고 싶은 심정, 예수께서 살아 생전에 고대하시던 그 이념의 땅과 그 백성과 그 주권과 그 통치자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 십자가의 고비도 용서의 심정으로 넘으신 분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내 몸이 사라지기 전에 그 나라를 보고 싶다, 그 나라의 백성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하늘의 땅을 만들고 싶구나, 선의 주권을 회복하고 싶구나, 그런 주의 앞에 충성하고 싶구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시대가 촉박해질수록 우리의 운명은 비장한 역사의 시점에 놓여진다는 어마어마한 사실을 뼈살이 사무치게 느껴야 합니다. 이럴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자신을 위해 있는 것같지만 자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요, 가정을 위해 있는 것같지만 가정을 위한 것이 아니요, 국가, 세계를 위해 있는 것 같지만 국가 세계를 위해 있는 것도 아니라고 나는 단정하고 싶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가정, 우리의 사회, 국가, 우리의 세계가 이대로는 하늘의 이념의 세계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나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해야만 소망하는 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난 다음에는 어떻게 그분을 대해야 할 것인가.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를 붙들려고 했을 때 예수는 거부했습니다. 이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가야 할 길을 다 가지 못했고, 준비해야 할 예물을 다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예물을 갖추지 못한 자는 예수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사실을, 예수는 거기에서 우리에게 훈계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가야 할 길을 다 가고, 싸워야 할 싸움을 다 싸운 승리의 모습으로, 예물을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서의 예물은 무슨 예물입니까? 여러분 자체가 예물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예물이 된 정도만큼 여러분을 대하여 주실 것입니다. 또 그 정도만큼 하나님은 여러분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갈 길을 다 가고 아버지를 만난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또 최후의 신랑 신부의 혼인잔치에 참여하여 기쁨의 상봉을 한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류의 소원입니다. 최후에 남아진 것은 사랑을 받는 일인 것입니다.

5-303
천국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자격
`이 사랑을 받기 위하여, 나는 죽음의 길도, 어떠한 어려운 길도, 고통의 길도 거쳐왔습니다. 사탄까지도 사랑하기에 힘썼고, 죽어가는 한 생명을 붙들고 그 생명 대신 제물되려고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땅 위의 인간들에게 내가 모든 심정을 다 기울여 주었사오니, 아버님! 나를 사랑해 주시옵소서!’하는 여러분의 그 한마디에 하늘이 순순히 응할 수 있는 그 한시간을 맞이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는 30여년 동안 눈물의 길을 걸었습니다. 슬픔과 죽음의 고개를 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하나님께서 `아버지, 내가 왔습니다. 4천년의 아버지의 심정을 내가 알았고, 그 심정을 소개하기 위하여 내가 제물이 되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아버님!’ 하게 될 때 하나님은 그 `아버님!’하는 음성에 자신의 위신을 망각하고 예수를 붙들고 통곡하시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순간은 잃어버린 자식을 찾은 순간이요, 하늘과 땅과의 인연이 맺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위신도 잊어버리고 예수를 붙들고 통곡의 눈물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역시 최후에 아버지 앞에 나타나서 `오라 하신 길을 왔사옵고, 만나자 하는 말씀을 믿고 아버님을 만나러 왔사오니, 아버지 이제 황공하신 아버지의 품에 품어 주시옵소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랑의 품에 안기어서 아버지께서 손을 들고 `영원한 사랑권내에서 살지어다’하고 축복해 주시는 그 축복을 받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소원인 이상동산, 즉 천국건설의 종결이 지어집니다.

천국의 건설은 개체 개체가 그렇게 완성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도 이러한 이념을 위하여 싸우셨고, 우리의 선조들도 이러한 이념을 찾아 나왔으며, 오늘날 도의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도 이러한 목적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풀어야 할 심정은 무엇인가. 가고 싶은 마음,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어야 하겠지만, 그것들은 다 지나가는 것이요 타락세계의 인간들이 탕감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은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전부터 하나님이 쌓아두셨던 그 사랑을 받은 하나의 영원한 사랑의 실체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사랑의 아들 딸을 찾았다고 만물 앞에 세워 자랑하고 온 세계 만민 앞에, 사탄 앞에까지도 자랑하게 될 때, `옳소이다. 당신이 찾기를 원하던 사랑의 열매요, 당신이 이념으로 세우고자 하셨던 사랑의 동산의 주인공입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죽지 않고 영육을 합하여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받아서 그대는 아버지가 찾고자 하시던 모든 인류가 소망하던 존재요, 하늘과 땅에 천국이념을 건설하고, 그 이념천국을 지배할 수 있는 제2의 천적인 하나님의 후계자라고 모든 만상과 악한 사탄도 증거하고 머리 숙일 수 있는 그러한 존재가 되어야만, 천국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천국의 아들 딸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5-304
기 도
이날도 재촉하시는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게 될 때에, 저희 인간의 몸이 연약한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오늘도 하늘의 사무친 심정이 저희들에게 연결되어 흐리고 있다는 어마어마한 사실을 느끼게 될 때 황공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를 붙드시고 아버지의 소원과 아버지의 소원과 아버지의 사정을 해원해 달라 하시는 황공하신 분부 앞에 몸과 마음이 제물되어 남기신 십자가의 길을 가고자 원하오니, 끝까지 지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고, 마음에 사무친 충격의 심정으로 죽음의 고개를 넘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고 지친 몸을 지탱할 수 있도록 하늘과의 인연이 끊기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립고 보고 싶은 이상동산을 만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에게 책임이 있사오니, 책임을 다하여 남아진 결실체로서의 조건을 다 갖추어 선물로 드려질 수 있는 기쁨의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이 사랑하고 싶고, 또 하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버지의 참다운 본연의 아들 딸들로서, 영원한 사랑의 인연과 사랑의 생명과 사랑의 영광 속에서 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사랑받지 않을 수 없는 저희들 되게, 아버님, 이끌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그 나라의 아들 딸들로서, 그 나라의 지도자로서 세우시기에 부족함이 없고 억천만 사탄들 앞에 자랑하고도 남음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온 피조세계가 환희와 해방의 송영을 드리게 할 수 있는 기쁨의 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일이 어떤 공간적인 세계에서 벌어질 것이 아니고, 현실적인 이 땅위에 살고 있는 저희들의 몸과 마음을 통하여, 실체를 통하여 결정되지 않으면 하늘의 창조적인 이념을 종결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전체적인 사명 분야에서 저희가 마음으로 느끼고 행동으로 실천하여 소망의 날이 올 때까지 어떠한 싸움의 길도 개척하기에 주저하지 않는 하늘의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겨진 십자가의 원한을 해원하고, 기쁨과 소망의 한 시간, 영원히 즐길수 있는 사랑의 한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어려운 길도 개척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오늘도 그러한 자리에서 살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