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7 to 5-277: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자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자
1959.02.15 (일), 한국 전본부교회

5-257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자
마태복음 26:36-46

[기 도(Ⅰ)]

아버님, 흑암 권세와 어두움과 깊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인류인데, 깨어날 줄 모르고 있사옵니다. 어떤 장벽이 저희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새로운 광명의 깃발을 향하여 달음질칠 수 있도록 아버님의 긍휼의 손길을 저희에게 나타내 주시옵소서.

아버님, 어린 저희들을 위하여 수고하신 아버님의 역사적인 노고를 저희는 알고 있사옵고, 어둠의 근성이 잠재해 있는 자신들을 세워 놓고 슬퍼하지 않으면 안 될 저희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 땅을 바라보시고 슬퍼하셨던 것처럼 오늘 저희들도 자신을 바라보고 슬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옵니다.

나아가 저희자신을 넘어 슬퍼하고 있는 만물에 대한 빚을 청산하고, 슬퍼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해 드려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남아져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는 알고 있사오나, 이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 채 오늘 이 자리까지 나온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슬픔의 역사를 슬픔으로 계승하여 슬픔의 실체를 빚어 놓고 말았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기쁨의 역사와 기쁨의 실체를 세우려 하셨는데, 원망과 탄식의 결실체가 되었으니, 이 어찌 아버님의 슬픔이 아니 되겠으며, 이 어찌 아버지의 심정의 곡절이 아니 되겠사옵니까?

오늘 이러한 처참한 모습들, 재분석되고 재창조의 역사로써 다시 빚어지기를 바라지 않으면 안 될 불쌍한 처지에 있는 저희들을, 아버님, 더욱 불쌍히 보시사 아버지 것으로 취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이념으로 다시 빚어질 수 있는 실체로 취하여 주시옵소서. 원하시는 뜻대로 저희가 하늘의 본성의 미를 갖출 수 있게끔, 이 시간 본연의 창조의 법도에 의하여 저희의 마음과 몸을 다시 빚어 주시옵소서.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슬픔의 장벽을 헤치고 나와 새 아침의 광명을 바라보고, 할렐루야 개가를 부르고, 만우주의 주인을 찾은 기쁨을 노래할 수 있으며, 만우주를 창조하신 아버님을 모신 것을 기뻐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지으신 만상을 대하여 본연의 그리움을 느낄 수 있고, 본연의 자랑을 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람이 타락한 이후로 만물까지 슬퍼하고 탄식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참아들딸의 손길에 의해 본연의 피조물의 입장에 다시 설수 있기를 소원하고 있다는 것을 저희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을 위로해 드리고, 만물을 다시 본연의 입장으로 복귀시켜 주어야 할 사명이 저희에게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저희의 부족한 것을 아버지 앞에 아뢰옵고, 또 다시 아버지의 수고를 고대하지 않으면 안 될 사정에 처해 있는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해서라도 아버지의 소원과 지으신 만물의 소원을 성취하여, 저끄러진 6천년의 탄식을 종결하고, 원한을 해원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저희 각자에게 있다는 것을 아오니, 긍휼의 아버님, 사랑의 아버님, 저희의 마음이 아버님과 먼 거리에서 움직이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성상 형상과 먼 자리에서 움직이는 저희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지으신 고로 아버님과 마음도 통하고 몸도 통할 수 있는 창조의 인연이 있는 것을 아오니, 티끌만도 못하고 미물만도 못한 저희들을 아버지, 본연의 능력의 권한권내(權限圈內)로 인도하여 주시옵고, 본성의 자체들로 다시 세워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자랑할 수 있고 천적인 위신을 세울 수 있는 하나의 아들로서 하나의 딸로서, 어두운 세상에 광명한 빛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어두운 이 땅 위에 새 하늘의 기쁨을 전할 수 있는, 동방의 빛을 대신하여 나타날 수 있는 어린 양떼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는 말씀하신 바대로 작은 자를 일으켜 큰 자를 부끄럽게 하실 것을 알고 있사옵고, 적은 무리를 일으켜 큰 나라를 건설하실 것을 알고 있사오며, 불쌍한 자를 세우시어서 축복받았던 민족 앞에 자랑하실 것을 알고 있사오니, 오늘 지극히 불쌍하고 의지할 곳 없는 저희들을 아버님, 이 날 다시 자랑의 실체들로 세워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대로 저희를 세우실 것을 알고 있사오니, 믿는 마음과 순종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명령하심에 응하여 따라갈 줄아는 어린 양떼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본연의 동산에 남겨진 슬픔을 제거하고 만민의 심신에 스며있는 죄악의 근성을 샅샅이 헤쳐 내여, 그 뿌리를 뽑아버림으로써 하늘의 영광의 터전으로 저희들을 세워 주시옵고,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역군으로 저희들을 보듬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여기 모인 자녀들의 마음 몸을, 아버지,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의 마음 가운데 머물러 있는 자기의 어떤 주의 주장이 있사옵니까? 자기의 어떤 관념을 중심삼고 움직이려는 마음이 있사옵나이까? 그 모든 것을 제거시키시어서 하늘로 연하는 인식을 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사랑에 화하고 정(情)을 체휼하여 본연의 자체와 화할 수 있으며, 통할 수 있으며, 인연맺어질 수 있는 이 한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어두운 세력을 움직이고 있는 억만 사탄들은 이 시간도 저희들을 노리면서 넘보고 있을 줄 아오니, 어둠권내에 사로잡히는 생명이 하나도 없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로지 이 한 시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 식구들과 이 민족과 이 인류 앞에 어서 속히 해방의 날이 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모든 사명과 책임을 저희들이 맡을 수 있게끔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5-260
기 도(Ⅱ)
아버님! 이 땅 위에 슬픈 일이 일어날 때마다 하늘도 슬퍼하셨고, 우리의 조상들도 슬퍼하였고, 만물들도 슬퍼하였고, 오늘 저희들도 슬퍼하옵니다. 이 슬픔이 제거되는 해방의 한날을 바라면서도 갈길을 알지 못하고, 그 무엇을 찾으면서도 깨닫지 못한 채 방황하고 허덕이면서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지내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 아버님, 이제 아버님께서 나타나신다면 붙들고 목을 놓아 한없이 울고 싶은 심정이옵니다.

이제 이 모든 것을 알고 본연의 부모님을 찾아나선 저희들, 슬픈 눈물 대신 기쁜 눈물을 흘리고, 저희 자신의 존재의식을 잊어 버리고 땅과 하늘을 대하여 통곡할 수 있는 한날, 슬픔을 제거하고 기쁨만이 남을 수있는 한날이 어서 속히 오기를, 이 시간 마음으로 몸으로 바라고 있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갈 곳이 어디라는 것을 알았사옵고, 저희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도 알았사오며, 본연의 무엇이 어떻다는 것도 알았사옵나이다. 잃어버린 자녀의 가치를 알았사오나, 저끄러짐으로 말미암아 슬픔과 죄악의 소리가 너무나 커서, 오늘날 저희들이 듣고자 하는 아버님의 말씀을 가로막고 있는데, 그 세력을 물리칠 수 없는 무능력한 저희들인 것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사옵나이다.

아버님! 이제, 복귀의 능선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저희들, 상한 다리를 이끌고 아담 해와가 소망하였던 그 정상을 향해 나가고 있는 저희들, 이제 최후의 힘을 가하여 이 선을 넘을 수 있게끔 채찍을 들어서 저희들을 몰아쳐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그 선을 넘어갈 수 있도록 아버님의 충격을 저희들의 몸 마음에 나타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 아버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이 시간 말씀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할진대, 아버님이 기쁘셨다는 것이 아니오라 아버님이 무한히 슬펐다는 사실, 아버님이 무한히 어려웠다는 사실, 아버님이 무한히 고통스러웠다는 사실임을 아옵니다. 이것을 저희들이 마음으로 깨닫고 체휼하여 아버지의 본연의 심정을 대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을 잃어버린 하늘은 어떠하셨을 것인가. 그 심정과 사정을 알고, 또 하늘의 사정을 안 한 분의 심중을 통하여 흘러나오는 말씀에 저희들이 화할 수 있는 이 한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나로 화하여 아버지의 뜻만이 저희 전체 위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탄이 틈타는 시간이 되지 말게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5-261
말 씀
이 시간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고 하는 제목은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자’입니다.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자’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5-261
아담 해와의 무지로 인한 타락의 결과와 하나님의 소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하나님의 창조의 이념이 이루어진 새로운 아침을 바라보지 못한 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기나긴 잠 가운데 흘러 내려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가 그러하였거니와 우리가 지니고 있는 마음 역시 그러하며, 우리가 바라는 심정, 우리가 찾고자 하는 모든 것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즉, 사탄권내에서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날 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어 놓으시고 손을 들어 축복하실 때의 아담 해와는 깨어 있는 모습이었고 영원한 이념세계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아담 해와를 지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자신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이며, 어떤 이념밑에서 온 만물을 대해야 하는가를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이 완성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미완성 단계에서 타락이라는 서글픈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는 만물의 주인공이 되고, 만우주의 주관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만일 말씀하시던 하나님의 심정과 그 말씀을 듣던 아담 해와의 심정이 완전히 하나되었던들 타락이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말씀하시던 하나님과 말씀을 대하던 아담 해와 사이에는 심정적인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는 성장과정을 거쳐서 말씀의 목적을 성취하여야만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런 입장에 있었던 아담 해와가 만물과 천사를 볼 때마다, 또 어떤 존재물을 대할 적마다 자신들에게 분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말씀이고, 하나님의 심정이 어떤 심정인가 하는 것을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생각하며 대할 줄 알았던들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위치를 알고 깨어난 심정으로 하늘을 생각하고 하늘의 심정을 생각하였던들, 하나님의 말씀과 옆으로 들어오는 천사장의 말을 분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언제나 깨어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있어야 할 아담 해와요, 언제나 깨어 하나님의 심정과 더불어 있어야 할 아담 해와가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하게 될 때, 천사의 유혹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내가 졸고 있을 때나 깨어 있지 못할 때에도 늘 깨어 나를 바라보고 계셨으며, 내가 나의 가치를 알지 못할 때에도 하늘은 내 가치를 알고 나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맡은 바의 책임과 사명과 지킬 바의 전체의 가치를 알고 나를 바라보셨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부자 관계의 일체적인 이념권내에서 , 그 심중에 사무친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같이 살아야 할 전체적인 가치를 아시고 아담 해와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입장에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지 못하였고,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지켜야 할지, 또 자신들이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가를 알지 못한 채 타락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슬픔이 있다 할진대는, 아담 해와를 지어 놓으시고 시간 시간마다 순간 순간마다 그들을 바라보시며 지켜 주시고 위해 주셨던 하나님을 알아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어떤 목적을 향하여 자라기를 고대하고 있는 하늘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 조상이 하늘과 종적인 인연을 맺지 못하였던 연고로, 후손들은 하늘을 모르고 있고, 그 자신들의 존재위치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들이 누구의 것이며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지켜주시고 책임져 주시며 모든 것을 아시고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들도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지향해야 하며 무엇을 지켜야 할 것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사랑의 심정으로 인간과 하나될 것을 소망하시고 바라보셨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몰랐던 연고로, 인간들은 사랑의 길을 찾아 헤매고 있으되, 그 목적마저 알지 못한 채 6천년이 경과했습니다.

5-263
인간이 알고 깨닫고 체휼해야 할 것들
하늘이 아는 것과 인간이 아는 것이 상반되었던 것이 타락의 곡절인 연고로, 이제 우리들은 나를 일으켜 나의 존재를 회상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내가 나를 회상하고 나를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인간에게 이런 의무가 있는 연고로, 수많은 철학자나 종교인들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싸워 나왔으나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즉, 나라는 존재는 누구의 것이냐 이거예요.

필연적인 인연을 맺고 있는 인간이라면 그 인연의 주체가 있어야 할 것인데, 우리를 존재케 한 그 주체, 그 주인은 어떤 분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주체 앞에 얼마만한 가치의 소유물인가? 우리는 이런 것을 밝혀내어 그 주인과 나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마음의 주인, 내 몸의 주인, 내 심정의 주인, 그리고 내생명의 주인이 있다 할진대, 그 주인은 어떤 분일 것인가. `오! 그분만이 나의 전체를 대신한 분이요, 그분만이 이념을 대신한 분이요, 그분만이 내 생명을 대신한 분이요, 그분은 내게 없어서는 안 될 분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분입니다. 바로 그분을 안 그날 우리는 변하는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시면서도 변치않는 주인의 입장에서 우리들을 붙들기 위하여 싸워나오신 하나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부터 만사가 해결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한 주인으로부터 생겨난 우리들이었으니,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한 자체들을 세워 놓으시고 우리들 앞에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주관하게 하기 위해서 수고하고 계시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을 지어 놓고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셨던고? 지으신 하나님께서 직접 주관하지 않으시고 인간을 세우시어서, 우리를 세우시어서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신 원인은 어디 있는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의 심정을 인간에게 알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신 사정과 심정을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체휼하게 하기 위하여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는 자신들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지키라 하는 것을 지키고, 만물에 대한 자기들의 의식이 높아가는 정도에 따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실 때 느끼시던 미의 감정과 사랑의 감정과 만물을 붙들고 기뻐하시던 심정을 체휼하여 만물을 사랑하고 만물 앞에 하나님 대신적인 입장에서 기뻐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심정을 체휼하려는 입장을 떠나 난데없는 사탄의 유혹, 즉 천사장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느껴서는 안 될 심정을 느끼고 허락하지 않는 곳에 발을 들여 놓아 타락을 저질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듯 우리들은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인 연고로, 오늘날 피조세계를 바라볼 때에 그 마음에 사무쳐 천지 만물을 지으시던 하나님의 기쁨의 심정을 체휼할래야 체휼할 도리가 없는, 영락해 버린 인류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 한 자체를 회복하여 주인을 모시는 입장에 서 가지고 에덴 동산에서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해 주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고, 그 심정을 갖고 나설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지 않는 한 아담 해와가 저질러 놓은 타락의 원한을 풀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상생활권내에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심정으로 만물을 지으셨는가를 마음으로 느끼고 체휼한 적이 있습니까? 있다 할진대 만물을 붙들고 사랑할 수 있는 감정이 동할 것이며 정이 동할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귀에 쟁쟁함을 느낄 것입니다.

만물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당시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여 즐거운 심정으로 대했어야 할 아담 해와, 다시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할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5-265
우리가 지켜야 할 것과 소유해야 할 것
그도 그럴 것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은 아담 해와가 그때까지 인지가 발달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고로 하나님의 심정을 깊이 느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생활의 표어로, 느낌 전체의 표어로, 생애의 표어로 그리고 자신들의 생명의 표어로 삼고 지켰던들, 옆으로 들어오는 어떠한 유혹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자신들로 하여금 만물을 주관하게 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어디 있는가를 몰랐습니다. 이렇게 하라 하신 말씀을 지키고 난 후에 올 것 즉, 말씀의 고개를 넘은 후에 올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생명에 대한 인식과 생활 감정을 잊어 버리지 않고 따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지키고 난 후에는 무엇이 올 것인가 하는, 그 이후에 나타날 것에 대한 흠모의 심정이 그들의 생활을 지배하여 끌고 나갈 수 있었던들, 아담 해와는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흠모의 감정이 없었던 아담 해와는 옆으로 들어오는 천사장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귀한 줄 알았습니다. 거기서부터 인류의 슬픔은 시작되었습니다. 어두운 잠의 기원은 바로 그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에 아담 해와가 다시 한 번 눈을 떠서 따먹지 말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인식하고,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신 그 이후에 자신들에게 허락하시려는 그 무엇이 찾아든 천사장의 유혹보다도 크다는 것을 느꼈던들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모든 곡절의 근원이 되었으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나를 찾는 운동을 해야 되겠고, 내게 맡겨진 책임을 찾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그 이후에는 내게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아담이 장성하여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심정을 갖췄다면 그 다음엔 무엇이 이루어졌을 것인가? 아담의 사랑과 해와의 사랑, 만물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로 묶어져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전체적인 인연이 완결지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연고로 오늘날 우리들은 탄식하고 있습니다. 죄악된 이 땅을 원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생의 진정한 가치와 목적을 알지 못한 채 사탄에게 사로잡혀 생의 노정을 걷고 있으며, 죽음의 가치마저 헤아릴 수 없는 흑암권세권내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물리치고 다시 눈을 떠 하나님을 재인식할 수 있는 심적인 변혁이 여러분 자체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할진대는, 절실한 심정이 여러분 자체에서 우러나지 않는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자기 가치를 자랑하고 싶되 자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치는 하늘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생명의 권한은 아무리 자랑한다 할지라도 그것 역시 하늘과는 하등의 인연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천사장의 말을 재분석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던 아담 해와의 입장을 되풀이하는 자리에 서지 말고, 오늘의 나를 살펴 제2의 나로서 다시 눈을 떠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순간에서부터 참다운 나의 모습이 싹틀 수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까지 새로이 눈을 떠 보지 못한 연고로 타락으로 얻어진 슬픔, 타락으로 유전받은 절망과 비운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날 수 없는 우주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이상 슬픈 일이 없으며 이 이상 분한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슬픔과 분함을 풀어야 할 입장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은 이런 슬픔과 분함이 어디서 생겼는지조차 모르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들도 불쌍하거니와 그런 모습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말세에 있어서 모든 것을 재확인하고 재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타락한 인간들의 운명입니다. 모든 것을 재인식하여 다시 눈을 뜨는날, 다시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기쁨의 그날, 새로운 나의 가치를 중심삼고 만우주와 인연 맺을 수 있는 그 순간, 전체적인 가치를 통합하여 하나님과 끊을 수 없는 사랑의 인연을 맺는 그 순간이 인간들이 알지 못하면서도 허덕이며 찾아나온 역사적인 행로의 목적이며 생애의 목적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5-267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
우리는 다시 눈을 떠야 되겠습니다.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될 때에 여러분은 황공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깊은 잠 가운데서, 사망의 세계에서 갈팡질팡 허덕이면서 생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죽음을 앞에 놓고 탄식해 온 인간들을 하늘은 어느 한날 어느 한 순간도 잊지 않으시고 지켜 보셨고, 배역하는 인류를 몇천만 번이나 재인식하셨다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순간, 슬픈 일면 고마움의 심정에 사무쳐 통곡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늘이 오늘날까지 우리의 생명을 붙들고 다시 바라보기를 몇 번이나 하셨던고! 하늘은 우리의 생애 노정과 이념적인 조건을 붙들고, 우리가 소원하는 일체의 조건을 분들고,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때에도 그 조건을 통하여 우리를 바라보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슬픔을 아십니까? 우리의 처참함과 슬픔에 비할 수 없는 하늘의 처참함을 느껴본 때가 있었습니까? 없다 할진대는 오늘날 6천년 역사의 종말에 서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할래야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안 된다는 거예요. 이 담을 전부 다 깨고 본연의 아담의 위치로 돌아가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그 한시간이 오기 전에는 인류의 근본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우리들은 다시 눈이 떠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를 다시 바라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신과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사명을 맡고 왔다 갔던 수많은 선조들을 다시 바라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를 다시 바라보는 동시에 이 시대를 다시 바라보고 앞으로 올 시대를 염려하며 어떻게 될 것인가도 생각하면서 다시 바라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눈을 떠 하늘을 보면서도 여러분에게 `하늘이시여’하고 울부짖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여러분의 소망은 끊어질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가는 길이 왜 다 막히느냐? 종교를 세워 인도하던 성직자마저도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막혀 버리고 철학이나 과학이니 하는 것도 전부 막히는 원인은 무엇이뇨? 그것은 다시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니고 있던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 그것을 저버리고 다시 하늘을 바라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을 향하는 마음과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사람, 그 바라보고 싶은 마음으로 슬퍼하는 사람, 그 바라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인류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망해 들어가는 국가의 운명을 염려하여 나서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민족을 위해서 먼저 외치면 안 됩니다. 먼저는 북바치는 마음으로 하늘을 위하여 외쳐야 합니다. 그 다음에 민족을 위하여 외쳐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민족은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거합니다.

그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찾아도 찾을 수 없고 허덕여도 해결점이 나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추방해 버리고, 본연의 마음으로 돌아가 아무것도 없는 공(空)의 상태에서 다시 눈을 뜨는 그 날, 그 순간은 곧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순간이 될 것이며, 새로운 인생이 출발되는 순간이 될것이며,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재창조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정전으로 녹음이 잠시 중단됨)

하늘을 대해 기도하면서 하늘을 찾아 헤맸던 예수였던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0년 준비 기간에 있었던 예수는 형제들이 기뻐한다고 기쁜 표정을 지을 수 없었고, 친척과 이웃이 즐거워한다고 같이 즐거워 할 수 없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에 하늘이 바라는 방향과 전세계 인류의 방향이 너무나 차이가 있는 것을 바라보고, 이 차이가 크면 클수록 예수님은 더 굳은 결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입을 다물고 지냈던 예수님의 30년 준비기간의 슬픔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30년 준비기간이 지난 다음에 예수님은 하나의 개척자로서 가정을 박차고 나섰습니다. `죽음의 고개가 닥쳐와도 나는 간다, 피곤한 길일지라도 나는 간다, 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간다’라는 마음을 품으시고, 자기의 환경을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정전으로 녹음이 잠시 중단됨)

5-269
예수님의 생활 태도
아담이 옆으로 들어오는 말을 통째로 받아들이다가 망한 것처럼 우리도 흘러 내려오는 사조를 통째로 받아들이다가 죽는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재감정하여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자신의 마음과 생명과 정적인 이념을 통하여 이것을 감정할 수 있는 주인의 입장에 선다면 어떤 사상이 여러분을 구속하겠습니까? 어떠한 사상도 여러분을 구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근본 문제가 해결되었던들 여러분의 마음세계는 평화가 찾아졌을 것이며 여러분의 생활환경에도 행복이 찾아졌을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을 향유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상을 부르짖고 있는 주의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심적인 해방, 정적인 해방, 이념적인 해방을 시켜 준 주의는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눈을 들어 잠자고 있던 자기 일신을 서러워하고 깨어난 해방의 한날을 소망하고 오늘의 환경을 박차고 나선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거기에 주인이 계시다는 것을 인간들은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그러면 역사 노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나온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이뇨, 그들은 시대를 박차고 `오! 하늘이여’ 하였던 사람들이며, 땅을 박차고 하늘을 향하여 솟구쳐 오르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시대에 용납을 받지 못하였고, 그 시대에는 낙오자와 같은 입장에 서서 불쌍한 생애의 노정을 걸어 갔습니다. 이들은 인간 세상에서 불쌍하다면 지극히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남들은 잘도 의지하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의지할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자기의 심정을 털어 놓고 의논할 수 있는 친구도, 자기와 더불어 생명을 걸고 싸워 줄 어떤 동지도 갖지 못한 채 그들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타락 이후 4천년만에 나타난 하나의 청년,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먼저 시대를 부정하고 환경을 부정하고 그때까지의 교단을 부정하고 나섰던 청년 예수는 무엇을 주장했던가? 예수님은 인간이 모르던 하나님의 뜻을 주장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품은 예수는 현실의 모든 것이 인생의 전체적인 이념의 재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세상이 배반하여도 이것을 박차고 다시 새로운 눈으로써 새로운 자아를 바라보았고, 새로운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바라보았으며, 나아가 새로운 주의를 늠름히 바라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 가치가 현세적인 어떤 가치보다도 높고 귀하고 크다는 것을 알았던 그였기에 이스라엘이 배반하고 유대교단이 배반하여도 까딱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회와 가정, 어떤 유명한 학자가 배반하고 어떤 제사장이나 교법사가 반대하더라도, 어떤 풍파나 곡절이 사방에서 자기의 일신에 마구 부딪쳐 들어온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까딱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다시 눈을 들어 `하늘이시여!’ 하셨습니다. 이런 것이 예수님의 생활신조였던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환경을 보고 무한히 슬픔을 느꼈던 예수는 자신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 슬퍼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죄송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예수에게는 자신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보내 주신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배척한 무리에 대해 가슴에 맺힌 서글픔의 장벽이 있었도, 그 하나님을 수없이 배반한 인간들에 대한 서글픔의 장벽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자기 일신이 죽음의 제물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슬퍼하시고 인류를 위하여 싸워 나오신 안타까운 심정에 비하면 초개만도 못하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정하고 하늘의 심정을 앞세워 머리 숙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인류의 새로운 각성은 촉구되었고 제2의 자아가 출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인류는 회생의 봄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4천년간 슬픔과 어두운 잠 가운데 있던 인류가 예수를 믿었다면 새로운 봄을 맞이하고 회생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5-271
메시아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심정기준을 가져야 할 우리 인간
예수님이 왔다가신 이후 2천년, 하늘을 위하여 나선 자 가운데 자신의 생명에 애착심이 없었던 사람이 어디 있었으며, 심정에 느껴오는 슬픔을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에 대한 애착과 슬픔보다도 주인의 슬픔과 주인의 생명이 찢기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던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하늘을 향하여 솟구치는 심정을 지녔던 무리였습니다.

그러한 선조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져 내려온 하늘의 섭리 노정은 어디로 갔는가?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 노정을 동반하여 내려왔는데 이제 역사의 종말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 여기에서 끝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새로운 방향을 찾아 다시 갈 것인가? 이렇게 볼 때 이 섭리의 종말시대를 맞이하여 전체를 대신한 피의 제물, 눈물의 제물, 땀의 제물이 되어 `하늘이시여! 나를 받으십시오’ 할 수 있는 한 모습이 나타난다면 그는 이 종말시대의 눈물의 구세주요, 피땀의 구세주요, 생명의 구세주일 것입니다.

그러한 분이 있어 그러한 섭리를 책임진다 할진대, 그는 천적인 조건을 동반하여 지상에 나타날 것이며, 천적인 심정을 대신하여 지상에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선지자를 대하여 될 때, 그분의 천적인 심정과 천적인 인격은 모를지라도 현실을 부정하고 다시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이라도 가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자리에서 다시 눈을 떠 바라보다 가지고 자기들이 모르는 제2의 가치와 제2의 인격의 기준을 분별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시더라도 그를 모를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민족 60만 대중 앞에 선 모세는 바로 궁중에서 자랐고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목자였습니다. 그 자체를 그냥 바라보면 아무 가치도 없고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천적인 심정과 천적인 인격을 갖추어 나타나게 될 때에 이스라엘민족은 다시 눈을 떠서 그를 바라보아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은 모세를 따라다녔지만 광야에서 다 쓰러졌던 것입니다. 예수시대에도 마찬가지였으며, 오늘날 역사를 종말시대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죄악역사는 여러분 자신에서부터 청산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역사에 마이너스 되는 입장에 서면 지옥이요, 플러스 될 수 있는 입장에 서면 천국입니다. 또 시대와 여러분을 비교할 때, 시대가 여러분보다 크면 지옥이요 여러분이 시대보다 크면 천국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천지 운세를 따라 나온 인간들은 천지 운세를 조정할 수 있는 날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한날을 바라보시며 6천년의 기나긴 세월을 역사해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천지 운세를 따라 나오던 역사의 슬픔을 박차고 이 운세를 주관할 수 있는 하나의 용자를 찾아 헤맨 것이 하나님의 6천년 복귀섭리 노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회복하고 찾아야 할 운명에 처하여 있는 우리들은 제2의 나의 눈을 가지고, 제2의 나의 생명의 감촉을 느끼면서, 제2의 나의 이념을 찾아, 제2의 나의 인격을 갖추어 그 가치를 자랑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천지 운세를 대신하여 여러분을 세워 놓고 복 빌어 줄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야만 6천년 섭리는 종결될 수 있습니다. 또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실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제자를 거느리고 기도하던 예수의 모습을 회상해 보면, 그는 천지의 심정을 통하여, 자기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움직이려는 비장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던 곳이 겟세마네 동산이었습니다. 인류의 심정을 움직여 하늘과 땅, 천정과 지정을 통합시켜야 할 예수가 인정에서 배척을 당하고, 땅에서 축출당하는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천정의 인연을 맺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그런 자리가 겟세마네 동산이었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 인간을 대표한 세 제자가 같이 있었지만 예수가 느끼는 심정과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느끼는 심정이 달랐습니다.

천정을 그리며 죽음을 앞에 놓고 재차 하늘을 바라보는 예수의 시선을 죽음의 고개를 넘어 부활의 영광에 사무칠 수 있었으나, 자기를 중심삼고 바라보던 제자들은 천정에 사무친 예수의 심정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염치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늘을 배반한 선조들의 행동이었습니다.

5-273
최후에 남아질 것
우리의 참부모요, 우리의 주인이요, 우리의 신랑요, 우리의 이념의 주체요, 생명이 주체요, 우리 전체를 대신한 하늘의 실체인 예수는 이렇게 배반하였던 선조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조상들의 후손임을 뼈저리게 느껴 여러분의 심중에 역사적인 인물을 원망하는 사무친 마음이 있습니까?

제자들이 눈을 하늘을 바라보지 못할 때, 예수는 기도하다가 몇 번이나 제자들을 바라보았는지 모릅니다. 시험에 들지 말라고 권고하는 예수의 조급하고 안타까운 심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심정을 가진 예수는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면서 자기 자신을 잊은 채 사랑하는 제자들을 몇 번이나 생각하고 몇 번이나 바라보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 제자는 그러한 예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졸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비단 세 제자들만의 표상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내막을 폭로시킨 일면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비장하고 피눈물이 어린 울부짖음이 귀에 쟁쟁하게 울려와도 모르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다시 바라보라고 소리쳐도 못 듣고 있습니다. 잠들어 있는 인류를 깨우려 몸을 뒤흔들고 머리를 때리고 때려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쌍한 인류를 찾아세워 아들 딸로 삼는 축복의 한날을 바라시며 수고하시는 하나님의 서글픈 심정을 아는 자가 이 땅 위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러분은 선의 이념을 갖고 살 수 있는 본연의 아들 딸로서, 하늘의 가슴에 박힌 못 자국을 메우고 역사적인 서글픔을 청산하여 기쁨의 대신 존재요, 만물과 온 천하를 대신한 화동의 매개체로서 `너는 나의 자랑이요, 나의 사랑이요, 나의 행복의 제일 기준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심정으로 여러분을 바라보고 계시는데 오늘 여러분이 눈을 들어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에 부활의 기준이 잡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아담 해와에게 이를 주관하라 하신 것은 제2의 창조의 심정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심정을 느껴야 하고, 만물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신 솜씨와 수고, 그리고 지어진 만물을 보고 기뻐하시던 그 심정을 느껴야 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늘과의 심정의 합일점, 만물과의 심정의 합일점을 찾아 주인의 실체가 되어 하늘 앞에 고스란히 바쳐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순간의 하늘이 바라고 우리 인간이 바라던 종착점이요, 하늘과 우리 인간이 상봉하는 종결점인 것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추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최후에 남아질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천지의 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새로운 본연의 심정을 갖춘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늘이 허락하실 수 있는 새로운 인간으로 보여질 수있고, 나타날 수 있는 본연의 완성된 아담 해와의 모습을 갖추어 하나님께서 쌍수를 들어 축복하시고 기뻐하실 수 있는, 새롭게 찾아진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천지에 이루어진 새로운 가정의 주인, 새천지의 새로운 부모, 새로운 자녀들의 부모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하나의 가정이 여러분을 중심삼고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수천만번 바라보시면서 역사과정을 거쳐 오셨는데 그 역사의 최후의 종착지는 어디일 것인가. 하나님과 인간이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친아들딸로 세워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네가 없어도 안 되고 내가 없어도 안 되고 형제가 없어도 되고 만물이 없어도 안 되는 하나의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가정을 바라고 나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니예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내 것이 아니예요. 내가 살고 있는 이 국가가 내 것이 아니예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늘이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다시 눈을 들어 제2의 나, 제2의 내 것을 찾아 하늘을 향하여 나설 줄 알아야 합니다. 끝날 성도들의 모습은 바로 이런 모습이어야 하겠습니다.

5-275
하나님이 바라시는 끝날의 성도들의 모습
그리하여 인류의 참부모를 모시고 모든 곡절과 슬픔과 원한을 해원하고 여러분 자체의 마음이 몽땅 그 마음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어느 한 부분도 기쁨이 안 되는 부분이 없는 기쁨의 자체가 되어서 참부모님께서 너는 나의 사랑이요, 너는 나의 기쁨이요, 너는 나의 선이며 나의 행복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슬픔을 겪어온 나를 바라보게 될 때에 나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한 형상을 하고 있는 나였습니다. 이제 수심에 잠긴 그 습이 희락과 환희와 영광의 모습으로 변하여 춤을 출 수 있는 그런 제2의 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는다 할진대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를 부정하고 새로운 인정을 받아야 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과 이 땅에서의 생활은 우리에게 천적인 소득을 거두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세상이 가고, 친구가 가고, 부모가 가고, 처자가 가고, 땅 위의 모든 것이 다 간다 할지라도 다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간절한 이 마음은 갈 수 없다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변치 않는 존재이신 것과 같이 나도 변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그 모습, 또 천적인 인연과 축복의 인연을 붙들고 죽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사정을 땅 위에 남기고 가겠다는 그 마음, 내 심정이 찢기고 사탄의 제물이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고 싶은 그 마음, 타락의 조건들을 몰아낼 수 있는 그 마음이 남아지기를 소망하여 허덕이는 내가 되었습니까? 하늘이 찾고 있던 내가 되었습니까? 하늘 앞에 보여줄 수 있는 내가 되었습니까? 하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내가 되었습니까? `하늘이시여! 내려오소서. 인류여! 모이소서. 만물이여! 춤을 추소서’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를 조건으로 하여 천상의 원한을 풀고 지상의 원한을 풀고 만물의 원한을 풀고 천주에 사무친 모든 슬픔을 다 해원하고 하늘을 대신하여 노래하며, 땅을 대신하여 노래하며, 만우주를 대신하여 노래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사탄 대하여 명령할 수 있도록 `간곡한 충절의 마음만이 저희에게 남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읍니다. ‘그 마음을 가진 자만이 역사의 주인이 되시옵소서, 그 마음을 가진 자만이 인류 역사를 움직여내게 하소서, 그 마음만이 우리 후손들의 소망의 표적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고, 그런 마음을 넘겨주어야 할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도 이 이념을 위하여 싸웠고, 우리의 선조들도 이 이념을 위하여 싸웠으며, 하나님께서도 이 이념을 위하여 땅을 바라보고 어둠권내의 인간을 깨우쳐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적인 비운의 장벽을 헤치고 하늘의 심정을 통하여 잠들어 있는 인간들의 심정을 깨워 일으킬 자는 누구일 것이며, 잠들어 있는 자기자체를 깨워 일으킬 자는 누구인고. 폭발되어 오는 하늘의 사랑의 심정을 소개할 자 누구일 것인고. 보잘것없이 보이는 여러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밀리고 쫓기며 처참하게 몰려다니더라도, 자신이 그 한 점과 관계 맺어야 할 입장에 처한 선봉자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책임을 갖고 하늘과 땅, 만물 앞에 불러 세워졌으니, 우리는 그 사명과 책임을 다하여 하늘 땅의 원한을 풀고 하늘 땅의 제2의 소망의 존재로서 하나님이 모든 원한을 잊고 다시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실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하겠고, 인류가 기쁨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고, 만물이 기뻐하고 화동하며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가 이념의 동산이요, 거기가 본연의 천국이요, 그러한 자리에 화하여 하나의 이념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곳이 지상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개하기 위하여 하늘은 천만번 우리를 찾아 깨우치고 일으켜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는 잊었으니, 이 슬픔을 마음에 새겨 이것을 책임지기 위하여 제2의 나를 찾아 허덕일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5-277
기 도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아야 되겠사옵니다. 저희의 눈이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졌사오나 낮이나 밤이나 쉬지 않고 그 무엇이 나타나는가를 바라보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담 이후의 역사에 편편이 남아진 모든 것을 바라보아야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것들이 저희로 하여금 생명의 중심과 이념의 기준을 찾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를 극복하고 하늘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마음, 인정을 초월하여 천정에 사무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게 하여 주시옵소서. 땅을 원망하고 하늘을 원망하고 만물을 원망하며 허덕이는 자체를 인식하여 제2의 나를 찾아 나설 수 있는 배고픈 발걸음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조급한 심정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해결하지 않고는 클클하여 못견디는 마음을 갖게 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는 잃어버린 본연의 동산, 잃어버린 아버님의 이념을 찾아서 만물을 주관하고 지켜야 할 자요, 만물과 더불어 사랑의 인연을 맺고 그것을 묶어서 아버지 앞에 돌려 드려야 할 자요, 아버지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심정을 통하여 아버지의 사랑의 꽃을 피워 묶어드려야 할 전체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한걸음도 옮겨 놓지 못한 채 깊은 잠 가운데 들어 있는 모든 세계 인류를 깨우쳐 주시어서, 새로운 광명의 아침을 맞아 하늘을 바라보고 다시 눈을 뜰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새로이 눈을 떠 하늘을 바라보고 세계 역사 앞에 새로운 의지를 일으킬 수 있는 제2의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새로운 이념과 새로운 심정으로 엉켜지는, 새로운 종족을 움직여 내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러한 민족, 그러한 국가가 있다 할진대 세계는 그들로 말미암아 하늘과 인연맺을 수 있을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우리 한민족이 불쌍한 처지에 있다고 낙망하지 말게 이 민족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현실적인 모든 것을 거부하고 다시 눈을 들어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비운의 고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버려야 할 요소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한민족이옵니다. 오늘날 저희의 종교나 정치를 자랑할 수 없고, 갖고 있는 것중에 가지고 넘어 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사오며 버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한 저희들입니다. 이것을 다시 붙들기 위하여 허덕이는 자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늘을 향해 다시 눈을 뜨게 해주시옵소서. 인류가 바라보지 못하는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설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기 위하여 이 민족의 갈 길을 먼저 막아 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낙망하지 않고 피곤함도 잊어버리고 오늘도 내일도 꾸준히 나아가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눈을 떠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무리들이 나와야만 이 땅이 살아 날 것이며, 그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살아날 줄 알고 있사오니, 이것을 책임지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의 심정은 돈 한 푼 없는 사람의 심정이었습니다. 부모를 잃어버린 심정이요, 형제를 잃어버린 심정이요, 국가나 세계를 잃어버린 심정이었사오니, 오늘 저희들도 그런 심정을 갖고, 다 잃어버린 마음에 하늘을 소유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인연은 땅에서 맺어야 되는 연고로 예수는 죽었다가도 다시 부활하셨사옵니다. 인연의 조건을 이 땅에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예수에게 있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저희들도 그런 마음을 중심삼고 땅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천적인 기준만을 가지고 쓰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가 바라던 소망, 하늘이 바라시던 소망, 인류가 바라던 소망이 저희들로 말미암아 기필코 지상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그 한날을 향하여, 오늘도 내일도 일년도 10년도 남은 생애도 아낌없이 바치면서 달음질칠 줄 아는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