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36 to 5-254: 자랑하고 싶었던 하나님을 알자

자랑하고 싶었던 하나님을 알자
1959.02.08 (일), 한국 전본부교회

5-236
자랑하고 싶었던 하나님을 알자
창세기 1:24-31

[기 도]

아버님, 아버님께서 본연의 동산을 잃어버리고 슬퍼했던 그 심정을 이 시간 저희들이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담 해와의 슬픔이 저희들의 슬픔이 된 것을 지금까지 저희들이 몰랐사옵고, 또한 저희들의 슬픔보다 아버지의 슬픔이 더 컸다는 것도 저희들의 몸으로 마음으로 체휼하지 못하였사옵니다. 아버님께서 저희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무한한 슬픔과 무한한 고통 속에 계셨다는 것을 이 시간 몸 마음에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인한 아버지의 슬픔도 크거니와 복귀섭리의 뜻을 책임지고 땅 위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모든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도 아버님의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슬픔이었고, 외로움이었고, 고통이었음을 이 시간 저희들이 깨달아 그 모든 서글픈 심정을 몸 마음으로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선조들이 아버님을 배반한 연고로 통분할 수밖에 없는 슬픈 역사노정을 거쳐온 것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내 일신이 아버지 앞에 슬픔을 더욱 가하는 불쌍한 자리에 서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담 해와의 슬픔을 대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슬픔을 대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의 몸과 마음이 단순한 저희들의 몸과 마음에만 멎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을 대신하고 저희의 몸이 아버지의 형상을 대신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슬픈 심정을 갖고 계신 아버지를 증거할 수 있고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이 한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위신을 세울 수 없는 저희들이오나 세워 주시고 찾아 주신 아버지의 내적 심정을 알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불초한 모습들이오나 몸 마음을 합하여 아버님께 기원하고 있사오니, 이 시간 긍휼의 손길을 펴시옵고 사랑의 빛을 내려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승리의 정병으로 세우시옵고, 사탄과 싸워나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 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예수가 왔다 간 이후 2천년 역사노정에서 우리의 선조들이 천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선지자들이 피를 흘렸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사실에 대해 분한 마음을 품고, 그들의 실수와 범죄했던 모든 내용들을 책임지고 회개할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선조들이 저지른 역사적인 죄상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이제 저희들을 세우시어 아버지께서 찾고자 하시는 하나의 생명기준을 찾아 세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본연의 아담 해와를 대신한 실체로서 나설 수 있는 당신의 아들 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의 주위에는 억만 사탄들이 배회하며 노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의 갈 길을 인도하여 주시옵고, 억만 사탄들을 물리칠 수 있는 내적 준비와 외적 준비를 갖추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 시간을 통하여 승리의 기준을 세우시옵고,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시옵소서. 잠들어 있는 아들 딸이 있사올진대 그들을 깨워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그들을 친히 맡아 주실 것을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억만 사탄이 틈타는 이 시간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 아버지의 심정을 닮을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분한 마음을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간곡한 심정에 저희들이 화하여 오직 아버지의 충고와 권고를 바랄 수 있는 이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민족을 대신하여 모이는 수많은 제단 위에 축복을 내려 주시옵고, 지방에 널리어 간곡한 심정으로 아버지 앞에 호소하고 있는 외로운 자녀들이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일률적인 은사로써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내적인 사명을 다할 수 있게끔 부활의 역사를 그들에게 더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한 시간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맡겼사오니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에,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5-238
말 씀
본문의 말씀은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첫째 날로부터 여섯째 날까지 지으신 만물을 대하여 하나님은 좋다, 즉, 선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선하다는 말씀 가운데는 무한히 자랑하고 싶은 하나님의 내적 심정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번 회상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보고 있습니다.

5-238
자랑의 조건을 찾으시려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지은 만물을 바라보시고 자랑하고 싶으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바라보게 될 때에 무한히 기쁘셨던 것입니다. 그 기쁜 마음을 가지고 `선한지라’ 선한지라’하고 거듭거듭 하신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하신 말씀이었느냐. 이 말씀은 천사장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만물에게 하신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대해 그렇듯 간절한 마음을 품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지음받은 모든 피조물이 에덴동산에서 선한지라고 찬양을 받았던 그 피조물들이 선의 가치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랑하시려던 그 뜻이 만물 가운데 실체적으로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서러운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선한지라’하셨던 그 말씀이 슬픔의 말씀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번 기억하여야 될 것입니다. 선한지라 하신 그 말씀이 슬픔의 말씀이 된 것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을 알아주는 참다운 본연의 사람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지극한 수고의 손길을 거쳐서 지어진 만물을 바라보며, 더욱더 큰 기쁨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지라 하신 그 말씀의 가치기준을 알고 그 말씀을 대해 준 재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회상하게 될 때에 피조만물을 사랑하셨던 아버지의 심정에는 서글픔이 잠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선하게 지어진 그 피조만물보다도 그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자신을 더 자랑하고 싶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 앞에 말씀드리고자 하는 제목은 `자랑하고 싶었던 하나님을 알자’입니다. `자랑하고 싶었던 하나님을 알자’라는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그들이 자라는 만물을 주관하고 선의 이념권내에서 말씀의 가치를 실현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또, 아담 해와로 말미암아 온 피조만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한날이 도래하기를 고대하면서 아담 해와를 바라보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회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그들이 완성단계에 올라서서 만물을 주관하고 하나님 대신 존재로 나타나는 그 한날을 심중으로 그리워하셨고 고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세워 놓고 오랜 기간을 거치며 만물을 지었던 사실을 자랑할 수 있는 역사적인 한 순간을 갖고 싶었을 것입니다. 또 아담 해와를 세워 놓고 네 자신은 나의 내적 성상과 외적 형상을 닮은 실체로서 네 마음이 곧 내 마음이요, 네가 기쁘면 나도 기쁘고 네가 응하면 나도 응하는, 둘이 아닌 하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그 한날을 소망하며 고대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늘의 심정을 오늘날 우리들은 더듬어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 인간 조상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창세 이후 하나님은 인간 조상을 통하여 자랑할 수 있는 사람, 자랑할 수 있는 가정이 나타나는 한날을 심중으로 고대했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자랑의 조건들이 전부 사라져 버렸습니다. 자랑의 조건이 슬픔의 조건으로 변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타락한 인간들에게는 자신의 모든 정력을 다 기울여 본연의 아버지의 내적 성상에 사무쳐 있는 자랑의 심정을 파고 들어가, 이것을 들추어 내어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 한날을 찾아 헤매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5-240
하나님 앞에 자랑의 존재가 되려면
피조만물을 지어 놓고 한날 한 시간도 자랑하지 못한 그 하나님, 자랑이 변하여 슬픔으로 나타났고 자랑이 변하여 눈물이 나타난 천적인 그 사정을 우리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자랑하시고자 하시는 본성을 찾아야 할 때요, 본연의 생명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본성의 사랑의 심정을 마음 속에 지닌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자랑하시려던 본연의 모습을 갖춰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부끄럽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의 모습,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을 6천년 동안 고대하며 찾아 나왔지만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한 채, 이 시간까지 나오고 있는 이 슬픈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은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자신을 내세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또 나를 중심삼은 부모와 형제와 자녀, 즉, 한 가정의 전부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종족을 내세워 자랑하고 싶고, 국가를 내세워 자랑하고 싶고, 더 나아가 세계와 온 하늘 땅을 내세워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지만 자랑하고 싶은 본심이 여러분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고, 지금까지의 역사를 지배하여 나오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자랑하고 싶은 이 마음을 옳지 못한 것으로 인정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 자체를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이웃사람들에게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사람들에게까지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자기 자체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나쁜 마음이 아니라 본성의 마음입니다. 이것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창조본연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 자체를 자랑하여 가정을 지나고 사회를 지나고 국가를 지나 세계에까지 자기 자신의 이름을 날리고 싶은 것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심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자랑하고픈 심정이 우리의 심정을 움직이고 마음을 격동시키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본성적으로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있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일체적인 이상을 이루었더라면 우리의 자랑이자 하나님의 자랑이요, 하나님의 자랑이자 우리의 자랑이 될 수 있는 본연의 관계가 있었던 연고입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 인간이 타락했을망정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오늘날 우리들은 그러한 만우주의 중심가치를 찾기 위하여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인 연고로 우리의 움직이는 모든 자랑의 법칙이라는 것은 순리적으로 법칙으로 되어 있지 않고, 반대로 역리적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본연의 심정을 따라 순리의 법도를 찾아 나가는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잃어버리고 역로(逆路)를 거쳐 나가야 되는 연고로, 본연의 심정이 지향하고 그 방향과 현실 환경과는 대립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우리, 도의 길을 찾아나가는 우리가 이제 누구를 내세워 자랑해야 할 것인가? 자기를 내세워서 자랑하기 전에 하나의 중심을 내세워 먼저 그를 자랑하여야 될 것입니다. 나라를 자랑하고 싶다 할진대, 자기를 중심삼고 자랑하는 것보다 어떤 충신을 세워 그 나라를 자랑해야 되고, 어떤 종족을 자랑할 때에도 하나의 중심을 세워서 그 종족을 자랑해야 됩니다. 가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은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넘어, 단체에서는 단체의 중심, 도에서는 도의 중심, 국가에서는 국가의 중심, 세계에서는 세계의 중심, 더 나아가 하늘 땅에 있어서는 하늘 땅의 중심인 하나님을 걸어 놓고 자랑하는 그러한 노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자랑의 존재로 설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5-242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려면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가 기쁘기 위해 자랑하는 사람은 천리원칙에 어긋나는 조건을 세우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의 자랑의 조건을 넘어 상대적인 존재를 자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선함을 자랑할 줄 알고 그의 특성을 자랑할 줄 아는 자가 되면 될수록 그 정도만큼 하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자기를 넘어 가정을 자랑하고 싶고, 교회라든가 국가, 세계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혹은 오늘날 이 땅 위에서, 진정으로 머리 숙여 자랑하고 싶은 세계나 국가, 교회, 가정을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세계와 국가, 교회, 가정을 아직까지 찾지 못한 인간들입니다.

우리 인간이 비록 불신의 입장에 서 있지만, 어차피 하나님 앞에 자랑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자신을 넘어 가정을 자랑해야 하고,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자랑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은 항시 그 방향으로 이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사무쳤던 하늘의 심정을 회상해야 되겠습니다. 나를 찾기 위한 하늘의 6천년 동안의 수고의 역사, 혈투전을 벌여 온 비참한 역사의 노정을 거쳐 오늘날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역사노정 중 어느 한 때도 인간을 세워서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천적인 사정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오늘날 우리 자신은 감히 하나님 앞에 자기를 세워 자랑할 수 없고 어떤 조건을 갖고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본래 선의 동산에서는 우리 개체를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개체를 세우시어 만물 앞에 자랑할 수 있었고, 만물을 세우시어서 천사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자랑하고 싶은 본연의 마음이 나에게서 출발하여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통하여 내 자신의 자랑이 하늘의 자랑과 인연맺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한 입장에 있는 타락한 후손들은 반대로 그 자랑의 조건을 세우기 위해 자신을 치는 걸음을 걷지 않으면 안 될 슬픈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랑의 조건인 아담 해와, 사탄까지도 `당신이 자랑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 딸입니다. 과연 당신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합니다’ 라고 하면서 숭배해야 할 본연의 아담 해와가 되지 못하고,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사탄의 제물이 되었었습니다. 이런 인간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슬픔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이러한 슬픔에 처해 있는 하나님께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열이 되고, 열이 천 만을 이루어 민족 혹은 국가, 세계를 이루어 하나님께서 지향하시는 자랑의 방향을 찾아나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방향을 찾아나서지 않으면 안 될 타락한 후손이요,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본연의 세계를 향하여,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주권을 향하여,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본연의 사람을 향하여,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본연의 생명과 본연의 성품과 본연의 사랑을 향하여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바울은 갖춘 바의 지위와 학식을 갖고도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종족을 세워 자랑할 수 있는 배경을 갖고 있고, 자기 교파를 세워 자랑할 수 있고, 자기 국가를 택한 이스라엘이라 자랑할 수 있었는데도, 오직 그 마음에 자랑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내세우신 자랑의 조건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랑하고 싶은 그 자랑의 조건을 붙들고 싸워 나간 바울의 생애를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옛날 노아시대부터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세움받은 수많은 선조들은 무한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조건하에서 우리를 대하시는가? 사탄 세계에서 제일 싫어하는 조건을 세워 우리를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믿지 않고 타락했으니 믿지 못할 환경에서 믿으라고 강조했고, 따먹으면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입장에서 따먹지 않기를 강조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선조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실행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말씀대로 실행해 나왔습니다. 노아는 역경 가운데서도 120년 동안을 하루같이 믿었습니다. 몰려드는 모든 핍박과 비소를 단연히 추방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곡했습니다. 자신이 자랑하고 싶어하는 어떠한 조건보다도 사회의 어떠한 자랑의 조건보다도 하나님이 자랑하고 싶어하시는 그 조건이 크고 귀하다는 것을 알고 따라나왔습니다.

5-244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원인
그러한 길을 따라나온 노아였기 때문에 만민을 물심판 하더라도, 하늘을 배반하고 불신하는 그 무리들이 항거할 수 있는 어떠한 조건도 성립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노아는 하늘이 자랑할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천적인 자랑의 가치와 실체적인 가치를 세워 놓은 것이 노아의 심판입니다. 노아의 아들딸들은 노아가 중심으로 사모하던, 즉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는 자랑의 심정을 통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 중심을 떠나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거기서부터 천륜은 뒤집혀져 나갔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탄세계에서 누구보다 행복스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처는 지극히 아름다웠고, 그의 생활은 풍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세계에서 누구보다도 풍요나 생활의 조건을 갖추고 누구보다도 재미있게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불러, 그 반대의 처지인 역경속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자기 족속들이 걷지 못하고 가족이나 민족 어느누구도 걷지 못했던 역경의 자리로 내모는, 즉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명령을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넘어 종족과 후손을 이상적인 이념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하늘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깊이 느끼고 있었던 사람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의 생활이 민족이 살 수 있는 자랑의 기준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심정을 가진 그에게 하나님의 명령이 있자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재미있게 살던 가정과 모든 재물을 다 버리고 하란광야로 향하던 아브라함의 사정은 비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비록 불쌍한 방랑객의 모습일지라도, 오늘은 비록 자랑할 수 없는 처지와 환경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자랑의 한날이 있을 것을 믿고 가는 아브라함의 발걸음은 늠름하였다는 거예요.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을 부딪쳐 올지라도 그것을 백번 천번 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하늘이 지향하는 자랑의 동산을 찾아가려는 마음은 그 시대의 어느누구보다도 컸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심정과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상대적인 존재를 찾아 헤매던 하나님의 심정이 보이지 않는 이념권 내에서 어떤 합일점이 맺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 자신이 이상하는 절대적인 이념의 동산의 내세우시고 자랑의 축복을 해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리하여 아브라함은 하늘 앞에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받은 자리에 서게 되었는데, 그 후손들은 그 때 자신들이 머무는 곳이 자랑할 수 있는 자리인 줄 알았습니다. 민족을 넘어 세계를 향하여 나가야 하는데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한 곳에 머물러 자기들의 자랑거리를 붙들고 있다가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이념의 때와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인간들은 슬픔 역사노정을 거치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모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호화찬란한 바로궁중에서 40년 동안 어느누구 못지 않게 잘 살았습니다. 그러나 남부럽지 않은 생활적인 환경에서 살았으되 그는 하늘이 민족을 세워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누구보다도 고대했습니다. 애급에서 4백년 동안 도탄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는 불쌍한 민족이었지만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기필코 이들을 축복하시고 허락한 땅 가나안 복지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새로운 소망의 동산을 건설하여, 어느 민족 어느 국가 못지 않은 나라, 하나님께서 제일 자랑하는 지상천국을 건설하여 주실 것을 모세는 바랐습니다.

5-246
모세가 이스라엘민족의 지도자가 된 이유
그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불편한 것이 없었는데, 그것을 전부 거부하고 자랑의 조건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신음하고 고통당하는 이스라엘민족을 하늘 앞에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였던 가나안 땅, 가나안 칠족에게 빼앗긴 그 땅을 사모하며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선민을 세워 자랑하고 싶은 그 마음과 통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민족 앞에 모세를 세워 이스라엘민족을 이끌어 내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정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모세가 60만 대중 앞에 나타났을 때, 이스라엘민족은 모세가 그러한 내적 심정을 갖고 나타난 것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대다수가 모세를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이적과 기사로써 모세가 하나님 대신 이스라엘민족이 살 수 있는 자랑의 동산으로 인도할 책임자는 것을 인식시키고, 그 모세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게 하시어서 이스라엘민족을 끌어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민족은 누구보다도 모세를 하늘이 세운 자로 알고 모세를 끝까지 자랑할 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한 민족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천적인 권한을 갖고 바로궁중에 나타나 궁중을 치게 될때는 하나님이 세운 자요 우리의 지도자라고 좋아하더니, 광야에 나와 보잘것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되자 이스라엘민족을 인도할 수 있는 존재가 못된다고 불신하였습니다.

하늘이 자랑의 인물로 내세운 모세에 대해서, 이스라엘민족은 자랑의 지도자, 자랑의 대표자로 알고 그의 슬픔은 민족의 슬픔이요, 그가 가는 길은 민족의 운명을 해결하기 위하여 가는 길이요, 민족을 지도하는 것도 민족을 살려 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일구월심 모세를 중심삼고 생활하였던 사람이 있었다면, 60만 대중은 광야노정에서 전부 쓰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랑하여야 할 모세를 원망한 그날부터, 따라야 할 모세를 배반한 그날부터, 모셔야 할 모세를 모시지 못한 그날부터 하늘의 자랑과 모세의 자랑과 민족의 자랑은 사라졌습니다. 모세로 말미암아 이러한 뜻을 이뤄야할 것이었는데 이루지 못했습니다. 민족을 대신하여 세운 모세를 민족이 배반했습니다. 여기에서 모세는 바로궁중에서 가나안 땅을 그리워하면 살았던 때 이상의 슬픔을 느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모세는 소망의 동산인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민족을 광야로 이끌고 나왔습니다. 광야에서 민족이 배척하고 불신하는 환경에서도 민족을 이끌어야 했던 모세의 비통한 심정은 이루 다 형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민족 전체가 자랑하여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르고 무시하는 민족은 당장 망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민족이 모세의 심정을 알았더라면 불편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굶주리고 있는 민족을 바라볼 때, 모세는 굶주리고 있는 어떠한 이스라엘민족보다도 비장하고 심각한 입장에서 하늘을 향하여 그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호소하였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하늘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모세가 자신의 처지를 잊고 자기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음을 이스라엘민족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60만 대중이 망하지 않으려면 모세가 자신들보다 더 굶주렸고 자신들보다 더 처참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또 민족을 살리려는 모세였다는 사실도 알아야 했습니다. 따라서 모세를 천추만대 후손 앞에 도리어 뒷걸음질쳐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될 때, 모세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러웠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생명을 바쳐 하늘을 위하는 모세의 뜻에 순응해 나아가야 할 것을 민족이 알지 못하게 될 때에, 그로 인해 모세가 슬퍼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은 모세보다 더 슬퍼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슬픔보다 하늘의 슬픔이 더 컸다는 것, 이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민족을 대표한 지도자, 누구보다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모세였지만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처참한 말로를 가게 되었던 서글픈 사정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5-248
예수님을 내세워 자랑했어야 할 인류
하늘은 이스라엘민족이 모세를 따라 주기를 바랐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세우고자 하는 만큼 따라주기를 바라셨지만 그 소망은 사라져 버리고 이스라엘민족은 원치않는 사탄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바로궁중에서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광야노정에서 40년 동안 한결같이 바라던 소망은 간 데가 없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자랑할 수 있는 민족과 땅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모세는 지지리 못난 이스라엘민족을 이방나라 앞에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하나님이 세운 훌륭한 모세를 이스라엘민족은 자랑할 줄몰랐다는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끝날에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천적인 권한을 소유할 수있는 국가는 어떠한 국가이며 그 백성은 어떠한 백성일 것인가? 하늘이 내세운 사람을 하늘 이상 자랑할 줄 아는 백성과 국가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럴 게 아니겠어요?

예수를 우리들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수는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수고하신 결정체요, 사랑과 심정의 화신체였습니다. 또, 그의 말씀과 사정과 소망과 심정은 하나님의 전체 속성을 대신했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하고 자랑할 수 있는 한 존재로 세웠던 분이 예수였음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이라는 긴긴 세월을 참아나오신 끝에 예수를 자신의 대신자로, 자랑할 수 있는 중심존재로 보내셨는데, 그러한 예수도 이 땅위에 와서 자기를 자랑한 일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예수는 한번도 자랑해 보지 못했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만큼 어느누구도 예수를 들어 자랑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오셨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가정과 교단과 민족과 세계 앞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입니다. 그럴게 아니겠어요. 그는 4천년 동안 고대하던 자랑의 결실체로 오셨던 연고로 자신을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 앞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예수가 수만 군중 앞에 자기를 세워 자랑할 발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예수를 세우실 때에는 하늘 땅의 모든 피조만물 앞에 자랑하고 사탄 앞에까지 자랑하기 위하여 세우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느 한사람도 그를 자랑하지 않았고 하나의 가정도 하나의 교단도 하나의 민족도 세계도 그를 자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을 배반한 종족의 후손인 우리는 하늘 앞에 위신과 체면을 세울 수 없는 무리입니다.역사적 죄과를 저지른 우리 인간은 자기를 내세워 자랑할 수 있는 위치에 서지 못하고 있고, 그런 환경을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람과,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교단과,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민족을 만나지 못한 것이 하늘의 무한한 슬픔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하늘이 그를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세웠을 때`황공하옵니다’하고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마음에 사무친 것은 그 세우신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변명하기보다 `나를 세우 수고하신 아버지의 소원이 이렇게 될줄이야?’라고 탄식하며 하늘앞에 머리를 숙였던 예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이러한 심정을 가졌던 예수를 자랑하여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크리스찬들은 예수가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세계 앞에 세우고 싶었던 자랑의 한날을 이루어 그를 모셔드려야 할 것이 자신들의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늘이 지금까지 바라시는 소원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조하시고 인류를 세워 자랑하고 싶었던 그 본연의 심정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자랑하여야 할 예수님, 영광의 모습으로 자랑하여야 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했던 처참한 모습이 되었던 억울한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십자가 형틀을 지고 골고다를 향하여 걸어가던 예수의 마음, 민족을 대하여, 하늘 땅을 대하여, 사탄을 대하여 품으신 그 원한의 심정을 해원하고 싶은 마음이 여러분의 가슴에 가득차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뜻에 대한 간곡한 심정이 사무쳐야 되겠습니다.

5-240
예수님을 자랑해야 할 우리
심정의 결실체로 오셨고, 인류의 소망의 결실체로 오셨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늘과 끊을 수 없는 부자의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 오셨던 참아버지를 원한의 자리에 몰아놓은 것이 우리의 선조들이었고, 사탄이 저지른 행사였으니, 오늘날 우리들은 그 선조들의 죄를 청산짓고, 사탄을 심판하고 싶은 불타오르는 마음이 있어야겠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혈육에는 악성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늘이여! 힘을 주시옵소서. 하늘이여 나를 용납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고함을 칠 수 있는 마음이라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랑의 동산이 슬픔의 골고다로 변하다니 이 웬 말입니까? 오늘날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자랑할 줄만 알았지 하늘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면서도 예수를 자랑하지 못하고, 하늘을 대해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산 제단을 찾기 위하여 허덕였던 예수의 심정에 대해서는 자랑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 땅에서 찾고자 했던 하나의 사람과 하나의 가정과 하나의 민족을 붙들어서 하늘의 뜻을 이루려 했던 심정은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우리가 최후에 해야 할 것은 역사적으로 저지른 모든 죄를 청산하고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여 하늘이 그렇게 찾고 있던 하나의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가정과 종족이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그러한 선민이 나타나야 하고 그러한 천민(天民)이 나타나야 합니다. 인간의 사정이 아무리 억울하고 어떠한 곡절이 맺혀 있더라도 그것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한 뜻을 이루기 위한 마음이 여러분에게서 솟구쳐 올라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심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을 위하여 오셨던 예수는 불쌍한 분이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상봉한 바울은 그날부터 예수 앞에 고개를 들수 없는, 즉 면목이 없는 자신인 것을 깨닫고 예수를 위해 살려고 했습니다. 그가 예수를 위하여 일생을 바치겠다는 심정에 사로잡혀 `죽으나 사나 당신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면서 예수를 대해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심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독교의 새로운 터전이 여기서부터 닦여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를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그의 심정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예수의 사정과 소원을 자랑하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가 찾고 있던 신부를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찾고 있던 신부를 자랑하는 동시에 예수가 찾고 있던 가정, 민족, 국가, 세계를 자랑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를 드러내어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를 자랑하고자 하는 우리들 앞에 가로놓여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가로막고, 나를 찢고, 나를 핍박하는 십자가가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며 가는 것이 기독교 신자들이 가는 걸음입니다. 이것은 무한히 슬픈 일입니다.

실체 예수를 자랑해야 되는데 골고다의 십자가를 진 예수를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될 조건이 인간 앞에 남아진 연고로 그 십자가를 자랑하지 않으면 여러분 자신들은 자랑의 조건을 세울 수 없습니다. 하늘을 위하여 무한히 고통당했다는 이 하나의 자랑의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하나님의 심정이나 예수의 심정을 지닌, 온 만상에 대하여 자랑의 조건을 갖춘 하늘의 아들 딸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마음으로는 그런 세계를 알고 감정의 느낌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안다할지라도, 실제로 여러분이 활동하는 생활권내에서 자랑의 조건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요 19:13)’고 한 것과 같은 그러한 기준을 갖고 나서야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을 수 있고 예수가 우리를 믿을 수 있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워 자랑할 수 있고 예수가 우리를 세워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5-252
하나님과 예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내가 되자
예수가 왔다 간 이후 2천년 역사가 경과했지만 지금까지 예수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불타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그러한 교단과 지도자가 되지 못하였다면 이는 저끄러진 삯꾼 목자입니다. 자기의 몸이 찢기고 옆구리에 창이 들어오고 이마에 가시 면류관이 씌워지고 손발에 못이 박혀 죽더라도, 하늘 앞에 자랑의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개를 달게 넘어가시던 예수의 모습을 여러분은 자랑하여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으나 그것을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반대로 불쌍한 하나의 죄인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그리하여 죽음의 길에서도 하나님 앞에 자랑해야 되겠다는 심정을 갖고 가신 예수의 생애를 바라보며, 오늘날 우리들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 고개를 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붙들려 하였을 때 거절당했습니다. 부활하신 모습은 환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활하기 이전, 산 예수님의 슬픔을 위로해 드리어 하늘 땅 앞에, 사탄 앞에, `다 이루었다’는 자랑의 기준을 세웠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비운의 골고다가 남아 있는 연고로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그 고개를 올라가다 내려오고 올라가다 내려오는 놀음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올라가다 내려오고 또 올라가다. 내려오는 이 놀음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골고다를 넘어 주님은 영원히 나의 신랑이라고 하늘 땅을 향해 외친 사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 주여 나를 아버지의 품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신앙자는 많았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랑하여야 할 그 내적 사정을 모르고 예수가 오라 하시니 그저 따라갈 뿐입니다. 예수의 심정세계, 그 내적 사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 예수에게서 열매맺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신부를 세워 그 열매를 맺고자 2천년 동안 기다려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여러분 자신들은 예수의 신부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랑하고 싶은 존재, 예수가 자랑하고 싶은 존재, 나아가 여러분이 자신을 자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어린양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모는 당연히 자식을 자랑하려고 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있는 전후 좌우 상하의 모든 것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자신의 주위에 속한 모든 것을 자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전체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예수 앞에 자랑의 조건으로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끝날에 처한 우리들은 자신을 냉정히 비판해야 되겠습니다. 나는 누구를 통하여 자랑하고 있습니까? 하늘은 누구를 통하여 자랑하고자 하시며, 예수는 누구를 통하여 자랑하고자 하시며, 나는 누구를 통하여 자랑하고자 합니까? 하늘을 내세워 나를 자랑하고 싶어하고, 예수를 내세워 나를 자랑하고 싶어하고, 온 만물을 내세워 나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께서 자랑하고 싶었던 본연의 모습, 아버지의 심정을 대신한 자랑스런 모습이 여기 있사오니 이 몸을 내세워 사탄 앞에 자랑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랑의 마음과 생명의 권한과 본연의 성품을 갖추어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내가 되면 하나님과 나 사이의 모든 것을 온 피조 만상 앞에 자랑할 수 있으며, 만인간 앞에 자랑할 수 있으며, 삼위신 앞에도 자랑할수 있는 것입니다. 더 아나가서 사탄까지도 `옳소이다. 당신이 세우신 하늘의 아들 딸이요, 그들은 하늘이 자랑할 만하오니 그들을 내세워 영원히 당신의 영광을 누리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존재가 나타나기를 열망하시며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그 소원의 한날, 자랑의 한날을 찾아 죽음의 고개도 슬픔의 고개도 억울함의 고개도 피의 고개도 넘으시며 찾아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이 자랑하고 싶었던 본연의 심정을 통하여야 되겠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대해 `내가 이 세계를 다 잃더라도 너 하나를 찾으면 만족하도다’라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자리에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 사무쳤던 원한을 해원하는 동시에 소원과 이상을 성취해야 참다운 사랑의 중심과 하나될 수 있고, 영원히 뗄래야 뗄 수 없는 부자의 인연을 맺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이 우리를 영원히 자랑할 수 있고, 우리들 또한 하나님을 영원히 자랑할 수 있으며, 하늘 땅 위에 있는 모든 존재가 우리를 자랑의 조건으로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5-254
기 도
아버님! 오늘날까지 당신을 찾아가는 걸음은 역경의 걸음걸이였사옵고, 모순된 역사노정을 거쳐나온 걸음이였사옵니다.

옛날의 선지선열들도 그 당시의 인간들이 볼 때에는 정상적인 행동을 한사람들이 아니였사옵니다. 그들은 당시대의 관점에서 볼 때 시대적인 낙오자요, 조롱을 받는 자요, 비정상적인 존재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노아도 그러하였고 아브라함도 그러하였습니다.

독자를 제물로 드리라는 하늘의 명령에 칼을 들어 치려한 아브라함을 보고 칭찬할 사람이 누구겠사옵니까. 그는 미친 자 중의 미친 자요, 이상한자 중의 이상한 자요, 돈 자 중의 돈 자로 보였으나, 당신은 그런 자와 인연맺어 나오셨사옵니다. 또한 그들은 불쌍한 자리에 있는 인간을 아버지 앞에 바로 세우기 위하여 억울한 자리에서 무지한 인간들의 조롱과 반대를 받았사옵니다. 오늘 이 시간까지 당신의 심정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해 주시기 위하여 저희들을 불러주신 아버지, 그 은사 앞에 저희들은 황공함을 금할 바 없사옵니다.

이제 저희가 몸과 마음을 다 드려 아버지의 은사 앞에 보답할 수 있는 역사적인 생축의 제물이 되겠다고 할진대, 자기의 처지와 위신을 잊어 버리고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있고, 그 마음은 하늘을 향하여 무한히 솟구쳐 미친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뜻에 돈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자들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이런 행렬이 이 땅 위에 나타나기를 바라고, 이런 민족이 이 땅 위에 나타나기를 바라고 계시는 아버지의 간곡한 소원과 심정과 사정을 이제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저희를 세워 자랑하고자 하신 것은 땅 위의 인간들 앞에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사옵니다. 저나라에 가서 자랑하시기 위하여 오늘 이런 자리로 몰아내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찢기고 밟히고 난 후에도 죽지 않은 저희를 자랑하기 위한 것이 당신의 뜻이었고, 복귀의 한 때를 바라보면서 섭리해 나오시는 아버지이심을 저희들 잘 알았사옵니다.

오늘, 섭리의 종단을 바라보고 있는 저희들, 생사를 걸고 넘어가야 할 저희들은 아버지의 간곡한 심정과 예수님의 간절한 심정을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골고다를 밟고 넘어가 사탄 앞에 자랑의 조건으로서, 산 제물로서 나설 수 있는 당신의 아들 딸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모습이 되어야만 아버지께서 자랑하실 수 있으며 예수가 자랑할 수 있는 아들 딸인 것을 알았사오나 오늘의 저희들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사옵니다. 혹 저희가 자랑하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다 뽑아버려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쌓은 바의 인격, 가진 바의 지식, 이것들은 모두 아버지로부터 먼 거리에 있음을 알았사옵고, 나아가 이 땅 위의 어떠한 것도 저희들에게는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우리 아버지시요, 우리의 주인이시요,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자랑하고 싶은 심정을 갖고 땅 위의 인간을 대하시거늘, 저희들이 어찌 당신을 뒤에 두고 자신을 내세워 자랑할 수 있사옵니까. 천륜을 배반하는 그러한 자리에 서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원리와 질서를 파괴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자랑의 조건이 있다 할진대 그것을 모두 아버지의 것으로 돌려드리고, 슬픈 조건이 있다면 그것을 우리들의 것으로 인계받아 그 슬픈 일에 있어서 사탄이 따라오지 못하게 하시고 사탄 앞에 당신의 아들 딸임을 자랑할 수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기준을 세워 가지고 아버지 앞에 머리 숙여 나설 수 있는 아들 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께서는 이 민족을 자랑하고 싶으신 심정이오나 이 민족이 자랑의 민족이 되지 못하고, 예수의 자랑스런 신부들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았사오니, 이제 맺혀진 모든 원한의 조건을 넘어서 그의 신부가 될수 있으며,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온 피조만물 앞에, 더 나아가 사탄 앞에까지도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 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