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4 to 5-189:오! 나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오! 나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1959.01.18 (일), 한국 전본부교회

5-164
오 나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마태복음 7:7-8

[기 도(Ⅰ)]

일주일 동안 지나는 가운데 받은 상처와 상한 심령을 가지고 또다시 아버지 앞에 나왔사오니, 긍휼의 아버지시여! 이 한 시간 사랑의 손길을 펴시사 저희의 몸과 마음을 품어 주시옵고, 저희의 심정 위에 아버님의 사랑과 훈계의 말씀을 내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하옵나이다.

아버님, 이날은 새해 들어 세번째 맞이하는 거룩한 날이오니,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의 심정속에 머물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몸은 아버지의 품에 품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한해에 저희들이 아버지와 더불어 즐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소망권내에서 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대신 사탄 대하여 싸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선의 이념과 선의 사랑가 선의 생명과 선의 영광을 가지시고 저희들을 찾아오시기에 수고하신 아버님의 역사노정을 알게 될 때에, 저희는 아버지 앞에 면목없는 종족임을 직고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러하오나 아버님의 선한 그 마음을 돌이키지 마시옵고, 저희들을 찾아 주셔서 다시 훈계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생명과 사망이 오늘날 저희의 한 생명을 저울에 올려놓고 주시하고 있는 이 한 시간인 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몸과 마음을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는 산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지금까지 지내온 날과 오늘 이 한 날의 생활도 성별하지 않으면 안 될 이 한 시간인 줄 알고 있사오니, 몸과 마음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다 드려 다시금 아버지의 인정을 받을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는 아버님께서 큰 기대를 가지고 대하게 될 때에는 낙심하실 수밖에 없는 부족한 것들이오나, 당신과의 역사적인 인연과 혈통적인 인연을 갖고 있는 저희임을 보시고 용납하여 주셔서 이 한 시간 친히 저희를 찾아주시옵소서.

부족한 몸 마음들이 하나되어 사탄과 대결하기 위하여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오니, 저희들의 호소와 드리는 경배가 아버지 앞에 기쁨이 될 수 있기를 원하옵나이다.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책임지고 대해 주시지 않으면 저희는 사탄 품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이 시간 친히 저희를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 친히 훈계하여 주시옵고 분부하시옵소서. 이 한날 하늘을 위하여 싸울 책임을 저희들이 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사랑하는 어린 아들 딸들이 아버지 앞에 모여 지내고 있는 이번 이 기간을 통하여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번 기회에 아버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걸어간 사람들의 그 자취를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아가 아버님의 아들 딸이 싸워 나가던 그 싸움의 노정을 알게 하여 주시어서 하늘의 일을 알 수있는, 하늘이 영원히 붙들고 놓을 수 없는 아들 딸들로 만들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진심으로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들에게는 만방에 널려 있는 수많은 형제들을 찾아야 할 책임이 있사옵나이다. 숨은 제단을 쌓고 하늘 앞에 간곡히 기도하면서 피어린 제단을 쌓고 있는, 밟힘당하고 있는 당신의 아들 딸이 많은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을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그들을 모으신 것은 하늘의 사명을 주시기 위함인 줄을 아오니, 아버님, 그들을 사탄세계와 영원히 분별시키시옵고 아버지께서 영원히 품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영광의 제단을 책임질 수 있는 제사장들로서 그 책임을 다하는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오늘날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는 저희들이옵고,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는 저희들이오니, 불쌍한 자를 불쌍하게 여기라 하신 아버지, 외로운 자들의 친구가 되라고 하신 아버지, 죄인들을 용서하라 하신 아버지시여, 그와 같은 자리에 있는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이 한 시간 버리지 마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의 마음을 아시는 아버님, 때로는 외로운 자리에 처하여 하늘에 대한 그리움으로 허덕이는 아들 딸들이 있는 것도 아실 것이오니, 그들을 보시옵고 전체를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그들은 이 한 시간 아버지의 용서와 아버지의 권고가 있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오니 그들에게 은사에 은사를 가하여 주시옵고, 긍휼의 손길을 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시여! 이 시간 잠들어 있는 수많은 인류를 축복하여 주시옵고, 도탄 중에 있는 삼천만 민족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길을 잃고 갈 길을 알지 못하여 사분오열되어 싸우고 있는 한국 교단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에게 생명의 깃발을 들게 하시옵고, 채찍을 맞게 해서라도 아버지의 권고를 받을 수 있는 아들 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에게는 오나 가나 제물되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남아 있사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 제물의 생활을 원치 않을 때가 많은 저희들인 것을 아시면서도 이와 같은 책임을 지어 주시는 아버님의 심정을 저희들이 알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모든 조건을 밟고 넘어서서 오늘도 내일도 십년 후에도 나아가 죽음의 고개까지도 저희들이 가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부디 그 한 길을 다 갈 때까지 지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낙망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주저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오늘 저희의 이 한 경배를 친히 받아 주시옵고, 이 시간에도 지방의 외로운 식구들이 목자를 보내 놓고 무릎을 꿇은 채 간곡히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아오니, 부디 그들의 눈물어린 기도를 유린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그들의 진실을 유린하는 자가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심정과 심정이 통하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통하고 사정을 주고 받을수 있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은 시간 친히 권고의 시간으로 세워 주시옵기를 바라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5-167
기 도(Ⅱ)
아버님, 많은 사람들이 가야 할 방향을 알지 못하면서도 당신을 찾기 위하여 지극히 서글픈 역사노정을 허덕이며 걸어왔음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계시는 듯 하면서도 계시지 않는 것 같은 아버지의 실존, 역사와 더불어 살아 계신 것 같으면서도 확실히 존재하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없는 아버님이시여, 저희의 마음과 더불어 같이 계시는 것 같사오나 실체적인 존재로 규정지을 수 없는 아버지를 저희들은 심히도 슬픈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선의 이념으로 만우주를 지으시고 인간에게 참된 양심을 주시어, 지정의(知情意)의 감정을 통하여 그 선의 이념을 체휼할 수 있는 놀라우신 축복을 내려 주신 것을 저희들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하오나 아버지의 실존성은 어느 한 때의 시간적인 한계에서 느껴진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음도 저희들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저희의 마음으로 찾아드는 아버지의 성상이 그리워질 적마다 저희들은 자신도 모르는 서글픔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처참한 자아의 모습을 놓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런 경지로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 그것은 저희의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기 위한 아버지의 역사적인 심적 작용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역사의 배후에서 역사를 하나의 실체적인 이념으로 구성하기 위하여 저희 인간들이 알지 못하였지만 그 심정과 마음을 통하여 찾아 주셨던 아버지를 알기 원하옵고, 아버지의 마음을 저희의 생활의 이념과 생의 이념으로 세우기 간곡히 고대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버님의 실존의 가치를 확실히 알지 못함으로 인해 저희 생활의 가치도 알지 못하고 저희의 생의 가치도 알지 못한 채, 오늘도 내일도 허덕여야 할 처참한 입장에 처해 있사오니, 아버님, 그러한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처참한 사망선상에서 방황하고 있는 오늘날 저희의 개체 개체를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이제 아버님, 사랑의 손길을 펴 주시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된 줄아옵니다. 그 사랑의 물결이 저희들의 주위 환경과 저희들의 심정의 세계에까지 미쳐야 되겠사옵고, 홀로 주도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그 아버지의 심정의 권한을 저희들이 회복해야 될 때인 줄 아옵니다. 마음을 중심 삼고 싸워야 할 시기가 당도할 줄 알고 있사오니, 이제 닫힌 마음문을 열 수 있는 아량을 가진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몸을 굽혀 아버지 앞에 경배드릴 수 있는 준비를 갖춘 아들 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사오니, 저희들의 마음문을 두드리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 앞에 현현하시는 아버지의 손길을 바라볼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겨진 원한의 터전, 원한의 장벽을 저희들이 헤치고 나가지 않으면 끝날에 판가리 싸움이 남아지게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시여, 이것을 알고 아버지의 실존을 알고 있는 당신의 아들 딸에게 힘과 능력을 가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모든 고난을 헤치고 나가 싸울수 있는 늠름한 모습, 하늘 정병의 모습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용단에 맞추어 심판의 권한을 대신하는 데 있어서 늠름하고 자신있는 아들 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택한 무리를 축복하신 분도 당신이었사오니 이를 성사시킬 분도 당신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 마음의 근본은 선이요, 또 선을 통하여 움직이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선의 목적도 역사적인 목적도, 섭리적인 목적도 아버지를 중심삼고 하나가 되는 것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따라서 선의 심령을 통하여 흠모하는 이념적인 정점(頂點)이 결실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이념의 자체가 되기 위해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자신을 세우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의 마음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고, 저희의 몸이 어디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는가 살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선을 흠모하는 데 모든 정력을 기울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몸은 선을 붙들기 위해 허덕이며 갈급한 손길을 붙들고 아버지를 부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붙들고 간구해 온 것이 6천년 역사라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앞에 솔직한 자체를 세워 경배하고 자기의 모든 사정을 직고하여 분부의 권고를 받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여기에 모인 아들 딸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고, 이 시간은 아버지 앞에 제물드리는 시간이었사오니 이제 이 시간만은 하늘도 머리 숙이고, 천천만 성도도 머리 숙이고, 만민도 머리 숙이고, 만물도 머리 숙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옛날 이스라엘민족이 아버지 앞에 제물을 드릴 때, 아버님께서도 머리 숙여 살펴보셨사옵고, 지상의 만민, 만물도 머리 숙인 줄 알고 있사오니, 오늘의 이 한 시간 저희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숙여 긍휼의 은사를 바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바라오니, 아버님, 친히 찾아 주시옵고 받아 주시옵고 이끌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이 아니라 하는 길로 몰아내시는 분도 아버지였사옵고, 가기 어려운 길로 인도하시는 분도 아버지였사오니, 아버지께서 이 길을 책임져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어떠한 인간의 마음에 의해 움직인 것도 아니었사옵고, 어떠한 인간의 사정에 끌려온 것도 아니었사오며,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마음의 힘에 이끌리어 이 자리까지 왔사오니, 게으르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재촉하시는 권고의 말씀을 모르는 저희들이오니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의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시간 시간 힘의 충격을 가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모처럼 당신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에서 낙오되는 사람이 없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자신의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내놓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제단을 더럽히는 일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성심을 다하여 아버지 앞에 제물드리고자 부복하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자기의 주의나 인식 또는 어떠한 관념이 남아 있사올진대 이 시간 다제해 주시옵고,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아버지의 것으로 드림으로써 다시 돌려 받아 가지고 땅 위의 사탄에 대하여 자랑할 수 있는 아들 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말씀을 대하고자 하오니 아버님,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권고의 말씀을 주실 줄 아오니, 듣고난 후에 하늘을 섭섭하게 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만은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어머님의 품에 안기어 젖을 먹는 것과 같은 그러한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5-170
말 씀
오늘날 여러분은 신(神)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니 살래야 아니 살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고, 또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은 항상 더 좋은 것을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오늘도 내일도 아니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후손까지도 이 길을 갈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5-170
무지 가운데서 자탄하고 있는 인간
어차피 어떤 목적을 향하여 가야 할 우리라면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야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행해야 하며, 선과 악에 대하여 어떠한 주장을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복잡다단한 모든 문제를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해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할지라도 이 세상의 현실을 바라보게 될 때 후퇴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입니다. 눈을 떠 모든 세상을 바라보아도 세상이 여러분이 원하는 환경이 되어 있지 않고, 몸이 돌이켜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돌아보아도 사회가 내 마음이 원하는 하나의 복지사회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느낄 것입니다.

이제 사회 환경과 세대가 복잡다단하게 흐름에 따라 그 사회에 여러분이 머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도 복잡하지만 오늘날 어떠한 이념을 가지고 심령세계를 이끌고 있는 종교단체의 움직임은 더욱 복잡합니다. 그래서 그런 종교단체를 찾아가 보더라도 마음으로는 이끌리지만 역시 그들을 따라가기는 어렵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복잡다단한 사정에 엉클어져 있어서 마음이 원하고 있고 몸이 가고싶어 하지만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원하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자탄(自嘆)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 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일에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인간들이 살아 있는 동안 스스로를 세워 놓고 비판하지 않는다면 죽은 후에라도 만우주 앞에 자기를 세워 놓고 비판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곳을 종교에서는 누구도 가기를 원치 않는 지옥세계라고 규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니 갈 수 없는 입장에 서 있기에 이럭저럭하면서 이길을 걸어 이 자리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면 내 자신을 세워 여기까지 왔다하는 하나의 가치를 하늘이 찾고자 원할 때에 여러분 자신들은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살아온 과거를 회고하면서 후회의 한숨을 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살아온 과거를 바라보아도 그렇고, 현세를 바라보아도 그렇고, 미래를 바라보아도 그런 입장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인지 모르게 최후의 이념과 최고의 행복을 마음으로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은 모순된 나 자신과 이 세계를 넘어서서 어느 때에 이뤄질 것인가.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마음에 충격을 받아 모순된 환경을 타개하려는 사명감에 사무쳐 있는 참다운 청년 남녀가 있다 할진대는, 그는 생애에 대한 애착심까지도 없어지는 그런 경지에 들어갈 것입니다.

내 몸에서 모든 죄악의 제거하여 버릴 수 있는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있고, 죄악된 몸을 포기하여 누구보다도 낮은 자리에 처할 수 있는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데, 여러분의 마음을 어떠한 무엇이 붙들고 있고 어떤 이념의 지향시키고 있는 이 모순을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온 세계 인류가 여기에 걸려 있습니다. 온 인류와 만물, 즉 하늘 땅의 어떠한 존재물도 이러한 과정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인 것을 여러분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시인하는 그날부터 나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하는 자탄의 호소, 울부짖는 심정의 호소를 들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제목은 `오! 나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입니다. 이러한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5-172
우리에 대한 선조들의 소원
오늘날 우리들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은 타락의 역사노정을 거쳐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타락된 현실에서 살고 있습니다. 또 현실을 근거로 하여 타락역사가 연장될 것이라고 우리는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거의 타락, 현세의 타락성, 미래까지 연장될 타락의 원인을 어떻게 해명지을 것인가. 오늘날까지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거쳐오면서 우리 선조들은 수많은 수고와 수많은 희생을 거듭하면서 이것을 피하기 위하여 애썼지만 타락의 역사를 계속해 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현세에도 죄악된 이 세상을 벗어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허덕이고 있고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러한 세계에 살고 있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될 때에 내 마음에 과거의 선조들이 가졌던 원한의 심정이 움직이고 있고, 현세의 충격으로 인한 슬픈 감정이 흐르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리워지는 한 가지의 인연이 있다 할진대는 그것이 무엇일 것인가?

지금 이때는 타락의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슬픔의 심정을 붙안고 싸워 나왔던 우리의 선조들을 그리워해야 할 때입니다. 또한 이 현세에 있어서 사망권에서 탈피하기 위해, 고난권과 타락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슬픔의 심정을 붙안고 싸우고 있는 우리의 동지들이 그리워져야 할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과거를 그리워한다면 과거에 되어진 역사적인 사실을 그리워할 것이 아닙니다. 그 역사적 비애와 대결하여 참다운 믿음의 심정을 붙안고 싸워나가던 선조들의 그 심정을 그리워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선조들이 역사적인 비애를 청산하기 위해 지녔던 지조는 무엇이었던가. 우리의 선조들이 오늘이 내 일신을 붙안고 세워 놓고자 하는 지조는 무엇인가. 오늘날 미래에 소망을 가지고 현실의 모든 역경을 이겨내면서 내일의 한 선의 터전을 쌓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동지들은 누구인가.

이러한 마음을 희생시킬 줄 모르는 사람은 역사적인 인연을 배반한 자요, 시대적인 인연을 배반한 자요, 미래를 망칠 자인 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바로 이러한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선조들이 나타나서 여러분 자신에 대하여 `너는 나를 아느냐’ 할 때에 여러분은 무슨 대답을 할 것인가. 또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서 죄악된 세상과 대항해 싸워 나가는 어떠한 형제에 대하여 `너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해 줄 것인가’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의 길을 타개하기 위하여 싸우고 배척받는 입장에 서 있는 나를 위하여 무슨 권고의 말씀을 해 줄 수 있겠는가’ 라고 물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관점(觀點)에서 들려오는 그 음성을 대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대답을 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선조들이 하신 말씀을 듣고, 선조들이 하신 말씀과 그 심정을 내가 알았다 할지라도 그 앎으로써 끝나지 않는 사실이 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시대적인 사정을 다 앎으로써 끝날 수 없는 사정이 남아 있고, 미래적인 모든 사정을 안다고 해서 그것으로써 끝날 수 없는 사정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곧 역사적인 서러움, 시대적인 서러움, 미래적인 서러움이 남아 있다는것입니다. 이러한 서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선조들을 대신하여, 현재의 인간들은 대신하여, 후손들을 대신하여 대변하여야 할 자신들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책임을 질 수 있는 하나의 후손을 갖지 못했다 할진대는 과거의 우리 선조들이 아무리 공적을 세웠다 할지라도 그 선조들은 탄식할 것입니다.

뜻을 위해 싸우던 분들, 비애의 심정에 북받쳤던 선조들, 하늘 땅을 향한 원한의 심정에 사무쳤던 선조들이 오늘날 우리를 대해 하나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심정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의 선조들의 슬픔은 더 가중되어질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나 미래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5-174
역대 신앙의 선조들의 심정을 능가해야 할 오늘의 성도
복귀노정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가정으로부터 슬픔의 역사가 시작되어 복귀섭리를 받들어 온 선조들은 슬픈 노정을 거쳐나왔습니다.

노아가 거치고 아브라함이 거치고 예수까지 파란 곡절의 비운의 역사를 거치면서 이런 비운의 역사는 세계를 휩쓸어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비운을 가로막기 위하여 하늘을 대표하고 인류를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하고 시대를 대표하고 미래를 대표하여 왔던 예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도 이 역사적인 비운의 운세 앞에 승리적 조건을 완전히 이루지 못하고 하나의 소망의 날을 약속하고 가심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슬픔의 역사가 흘러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나는 어디로 향하여 가고 있느냐! 이제 여러분은 옛날의 아담의 심정을 넘어야 되겠고, 노아·아브라함·모세의 심정을 넘어야 되겠으며, 어느 선지자나 어떤 개인의 심정도 넘어야 될 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심정까지 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 오늘날까지의 2천년역사과정에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학살을 당하고 순교를 당한 애달프고 서글픈 심정을 넘어서야 되겠습니다. 그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의 열매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여러분이 역사적인 그 심정의 인연과 상대되기 위하여 어떠한 심적 기반을 여러분의 마음에 갖고 있는가 반문하실 것입니다.

하늘이 역사를 거쳐오면서 싸웠다 할진대 끝날에 하나의 승리한 아들 딸을 세워 놓고자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적인 슬픔의 심정을 체휼하여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은 이 시대에 있어서 역사에 맺힌 하늘의 슬픈 심정의 모든 조건을 회복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전체 역사에 대한 하늘의 슬픈 심정을 붙들고 위로할 수 있는 하늘의 아들 딸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에 그러한 아들 딸이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어떠한 사람을 품지 못하였을지라도 그러한 개체 개체를 통하여 기쁨의 심정을 갖고 품어 주시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심정이 있다면 이것은 여러분 개체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선조의 인연을 통하여, 선조의 심정적인 기반을 거치지 않은 존재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심정은 역사적인 심정권내에 속하여 있는 심정임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나는 어떠한 심정의 세계에서 방황하고 있으며, 어떠한 시선과 어떠한 오관을 갖고 생을 영위하고 있는가? 그러나 이것을 생각하기 전에 여러분은 먼저 `하늘이여! 내가 그러한 감각을 갖고 생애를 살아가고 있다 할진대, 옛날 에덴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 하나님을 대하던 심정, 타락하던 심정, 하나님이 쫓아내시던 심정, 이 인류를 붙들고 노아를 세울 때까지 1,600년 동안 수고하시던 하나님의 심정, 노아가 120년 동안 산꼭대기에서 방주를 지으면서 무한한 천대와 학대를 받으면서도 하늘을 붙들고 수고해 나오던 그 심정, 우여곡절과 천태만상의 역사과정을 거쳐온 하나님의 심정을 붙들고 한번 살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역사의 산 실체로서, 승리의 표적으로 하나의 인간을 내세우고자 하실진대, 여러분은 `아버지여, 손길을 펴시어서 저희가 인간이 타락 전 아버님과 즐겼던 그 심정으로부터 타락 이후 역사의 비애의 그 장면 장면을 볼 수 있도록 여행시켜 줄 수 없습니까’라고 기도해 보세요.

그러면 하늘의 슬픔과 인간의 슬픔이 해결되지 않는 촛점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사람은 있지만 하나님의 심정을 붙드는 사람이 없고, 역사적인 심정을 붙드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고, 오늘 이 시대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심정과 미래적인 심정을 붙들어 하나님의 심정을 인간의 심정과 연결짓는 역사를 이루어 놓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의 탄식이 있다 할진댄 이 뜻을 세우지 못한 탄식보다 더 큰 탄식이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하늘을 찾아가는 노정을 다시 회상하여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한 소망의 동산으로 보내기 위하여 우리를 대하여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5-176
참된 실체와 말씀과 참사랑을 찾아야 할 우리
여러분들이 원리를 통하여 아시다시피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한 연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실체를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의 심정은 어떠했으며, 실체를 지을 때의 심정은 어떠했으며, 그 실체를 통하여 자랑하고자 하시던 하나님의 내적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린 자요, 본연의 실체를 잃어버린 자요, 하나님의 이념 동산을 움직여 낼 수 있는 사랑의 실체를 잃어버린 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를 세워 자랑할 수 없는 죄인인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내 실체를 세워 주도적인 행사를 일으킬 수 없는 존재요, 내 마음을 세워 안식의 터전을 찾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된 연고로,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시는 데는 먼저 실체를 찾아오시고 사랑의 심정으로 찾아오고 싶으시되, 인간이 실체와 사랑과 말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실체로 오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실체를 대신하여 오셨으나 예수도 실체를 갖춘 행동을 다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말씀을 배반한 인간에게 실체를 대신한 존재를 주셨으나, 인간이 그 실체마저 배반한 연고로, 또 하나님의 사랑을 주셨으나 그것도 배반한 연고로 오늘날 우리 인간 앞에는 실체와 말씀, 사랑 등의 명사만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그것을 찾아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역사를 돌아가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말씀같은 말씀이 우리를 완성시킬 수 없고, 실체같은 실체가 우리를 실체로서 이끌 수 없고, 사랑같은 사랑으로서 우리의 영원한 안식을 찾을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는 `참다운 말씀이 어디 있느냐, 실체가 어디 있느냐, 사랑이 어디 있느냐’라는 표어를 내걸고 그것을 찾아 허덕여야 할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 처한 인류를 바라보고 예수님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고 말씀하셨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내가 걷고 있는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여 가고 있느냐. 찾기 위해 걷고 있고 구하기 위해 걷고 있고 두드리기 위해 걷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걸음을 타락 이후 6천년 동안이나 걸었으나 아직까지 정지할 줄 모르는 운명을 처해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내가 옮기는 걸음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 땅을 바라보면 선한 것만 있지 않습니다. 선한 것보다 오히려 악한 것이 많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의 발자취가 좌로 가느냐 우로 가느냐 또는 선의 방향으로 옮기고 있느냐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참다운 스승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선의 지도자, 참다운 스승을 찾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그들을 통하여 내 마음의 안위(安慰)와 소망을 일으킬 수 있는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인가 새로운 말씀을 찾기 위하여 새로운 스승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찾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말씀과 하나될 내 자신의 실체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말씀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선조들도 하늘의 존재성을 규명하기 위하여,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수고했고, 또 그러한 수고는 지금 이 시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관념 속에 사로잡혀 있건 없건,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두드리고 있고, 찾고 있고, 구하고 있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모습들을 바라볼 때 여러분도 그러한 입장에서 허덕이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허덕이고 있지 않다면, 역사를 지배해 오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 그러한 사람이 없다 할진대는 하나님의 뜻과 선의 이념, 혹은 우리들이 바라는 소망의 시대는 하늘과 더불어 인간과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을 우리는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모를지라도 기필코 찾고, 헤매고,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선조 때부터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또 앞으로도 끊임없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견지에서 오늘날 나라는 존재는 어떠한 입장에 있느냐 하는 것을 반문해 봐야 될 것입니다.

5-178
어차피 곡절의 판가리고개를 넘어야 할 인간
오늘날 젊은 학생들이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갑니다. 그런데 가방을 들고 어떤 목적으로 가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나는 사회로 나간다. 가면 어디로 갈 것이냐! 나는 국가의 중대한 책임을 지고 나간다. 세계가 있으니, 세계를 이끌기 위해 나간다 하고 나가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면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늘이 있다면 엑스(X)가 가로놓입니다. 세상 만사가 이와 같은 곡절의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내적인 세계도 그렇거니와 외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무한히 뻗어나가고 싶지만 한 발자국 나아갈 때마다 그 곡절의 징조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피하여 내적인 세계로 찾아갈 때, 도의(道義)니 도덕이니 윤리니 종교니 하는 방향으로 내 자신을 이끌어 나가려 하는데, 거기에 또 천태만상의 곡절이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그럴때면 `하나님이여, 종교를 세웠습니까? 하나님이여, 역사를 지배하고 있습니까?’라고 하면서 원망하고 싶은 생각도 들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어찌하여 이러한 비운(悲運)의 역사를 만들어 놓았는가, 또 그것을 체험하게 하는 원인은 어디 있으며, 내가 세상의 모든 내적인 세계를 박찰수 있는 권한이 없어 허덕이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를 해명하려는 입장에서 하늘과 땅과 세상을 걸고, 내 생명을 걸고 이 비운의 힘과 대결해야 합니다. 이것이 판가리 고개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은 어차피 이것을 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비운의 곡절을 어디 가서 풀 것인가. 세상을 보면 천갈래 만갈래 파탄하는 이념밖에 없고, 내적인 세계를 보면 더욱 암담하고 캄캄해지는 입장에 부딪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땅도 하늘도 인간 자신도 잃어버린 가운데, 하늘 땅을 대신하고 역사노정을 대신하여 선조들이 허덕였던 그 역사적인 심정이라도 알아서 자기도 모르는 말로서 역사적인 그 비운의 모든 곡절의 말을 한번 자기 입으로 해보았으면 합니다. 그러나 하늘을 찾아갈 수 없고, 땅을 찾아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되돌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심정의 경지에서 `내가 믿겠습니다’라고 말을 해 보고 싶어도 안 된다는 것이에요. 이런 순간을 여러분이 살아 생전에 느끼지 못하면 운명 직전에 가서라도 봉착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때는 이미 때가 늦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인류가 허덕이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운명 직전에 이러한 난관에 부딪치지 않으려면 젊었을 때 간절히 믿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같이 젊었을 때 간절히 믿는 믿음을 갖고 있는 인간의 소망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운명 직전에 이것에 봉착할 때는 이도 저도 어쩔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하늘은 인간이 젊을 때 선을 중심으로 한 생활관념, 세계관념을 세울 수 있게 하기 위해 즉,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지을 수 있는 하나의 해결점을 지어 주기 위하여 역경이 길로 몰아 넣는 것입니다. 하늘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피하라고 인간을 더 반대의 길로 몰아 넣는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교리, 어떠한 교파보다도 나를 더 믿으라고 강조하고 나옵니다. 나를 믿는 데는 내가 인류를 믿던 것만큼 믿으리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고 있는 모든 신자들을 바라볼 때 그들이 `하나님을 믿소이다’ `예수를 믿소이다’라고 말로만 하고 있는데,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지나가는 행인도 말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믿음을 하늘은 원치 않습니다.

5-180
말씀의 실체인 메시아를 만나 모시고 살아야 할 우리
그러면 하늘은 어떠한 믿음을 원하는가. 예수님이 `나를 믿으라’는 말씀을 하신 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믿듯이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기고 믿듯이 하나님도 자신을 아들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믿음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말씀을 찾아 헤매고 있고, 말씀을 기반으로 한 신앙노정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참신앙을 중심하여 인간들을 찾아오시는 그 실체적인 하나의 중심 존재를 기독교적으로 말할 때 재림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신앙의 표준으로 삼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신앙을 분석해 보면, 말씀을 기반으로 인류를 지도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제까지의 종교가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싸워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말하면 끝날의 7년 대환란 시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실체를 만나야 합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많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많으나 예수님의 실체를 의지하여 따라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가야 할 인간인데 참다운 말씀을 가진 분이 나타나도 믿지 않고 오히려 핍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 말씀과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오신 분은 천적인 유일한 존재요, 모든 인간의 표본이요, 인간의 전체이념을 대표한 존재인데, 그 존재와 우리를 비교할 때 우리가 차이가 있는 존재가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로 선하시고, 최고로 의로우시고, 최대의 승리자이신 그 하나의 실체를 표방하여 여러분은 다시 제2의 발걸음을 옮겨 놓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야할 길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땅 위의 모든 인간들은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지내 오는데 있어서 말씀에 의지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허덕이며 나왔으나, 말씀의 주인공이요 말씀의 실체가 되시는 분을 모시고 산 사람은 없습니다.

역사적인 우리의 선조부터 지금까지 그러한 존재를 제대로 모시고 산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타락이후 4천년 역사를 섭리하시면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세우셨고, 무한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의 중심을 찾게 하기 위하여 민족을 규합시켜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어 나오시면서 말씀의 실체를 보내 줄 것을 약속하셨는데, 그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메시아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 5: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때까지의 모든 말씀을 완결지을 수 있는 분이었고, 하나님께서 역사노정에서 주신 그 말씀 이상의 것을 가지고 오셨던 분입니다. 그러한 존재로 오신 메시아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의 실체인 메시아를 고대하고 나오던 수많은 인류는 정작 나타난 말씀의 실체를 몰라 봤습니다. 말씀의 실체를 다 잃어버리고 만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홀연히 말씀을 가지고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붙들고 판가리싸움을 하여 역사적인 모든 조건을 밟고 넘어선 것과 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붙들고 판가리 싸움을 해야 되는 조건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5-182
실체를 만난 이후에 인간이 해야 할 일
그러면 예수님을 붙들고 어떻게 할 것이냐. 야곱이 천사를 붙들고 싸우던 것과 같은 싸움을 해야 되겠습니다. 장자의 기업을 이삭으로부터 축복받은 야곱은 그날부터 말씀을 중심으로 축복의 조건을 세우려 했습니다. 축복의 조건을 세운 후에는 실체를 회복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을 붙들고 판가리 싸움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 우리 인간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를 바라볼 때 아직 사탄을 지배할 수 있는 말씀의 권한을 이뤄 놓지 못하였습니다. 진실로 사탄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의 실체인 예수님을 소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나서는 신자는 이 땅 위에 드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의 말씀에 포용되어, 거기에서 아무리 해봐도 갈길은 요원합니다.

오늘날까지 6천년 동안 역사를 흘러왔는데 이제 여기에서 어디로 갈 것인가. 어디로 갈 것인고. 말씀을 밟고 올라서 실체를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신약은 대부분 서신인데, 서신으로 만날 것이 아니라 마음에 북받쳐 오는 사정을 통하여 만나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늘과 하나된 하나의 존재, 타락 이후 6천년 역사 속에서 처음 나타나는 그런 입장에 나아가 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밟고 올라서 예수님을 붙드는 사람이 있다 합시다. 그러나 예수앞에 나아가 `당신이 지니고 있는 하늘의 전권의 능력과 구세주의 자격으로서 만민을 구도하기 위한 권한을 나에게 가르쳐 주시옵고, 모든 죄의 근본을 청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 다음에는 `당신과 더불어 영원히 즐길 수 있는 하늘의 사랑을 소개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나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어야만 합니다.

만일 예수를 만나 그러한 조건을 요구하여 축복을 받고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합시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이 쌍수를 들어 `오! 그대의 소원이 이렇거늘 영원한 행복을 누리라’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심정이 바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서 신랑 신부로서 둘이 하나로 합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이여 당신이 우리 실체를 세웠으니 당신의 속 깊이 숨겨진 사랑을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오냐! 이곳까지 오기에 수고했으니 나를 조건으로 하여서 네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라’고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사랑만 받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사랑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부의 이념을 찾아가는 여러분들은 이러한 말씀을 통하여 실체를 찾았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아버지여, 당신의 사랑을, 사랑의 전권을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입장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우리는 진리를 찾아 넘고 실체를 찾아 넘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이시여! 나에게 사랑의 축복을 해주시옵소서’라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것은 하나님을 찾아온 사람에게 하나님이 `나를 찾아 나올 때까지 수많은 사탄, 수억만의 사탄의 시련을 거쳐 오느라 대단히 수고했다’라고 하면서 사탄과 더불어 싸워 승리한 노정, 하나님을 알게 될 때까지의 노정을 칭찬해 줄 수 있으되, 하나님의 심중으로 그리던 이상동산에서 취하여 살 수 있는 사랑의 심정으로는 축복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그것이 네 소원이거든 이제 죄악된 세상에 나아가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너희는 죄악된 부모의 후손인 고로 복귀의 과정을 거쳐야 되겠다. 그래서 나의 아들 딸이 될 수 있는 자리에 이르렀다 할진대 너희는 잃어버린 참부모를 찾으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면 다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저끄러진 분야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즉, 인간 조상이 인류의 참조상이 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참부모를 가지지 못했고, 참다운 자식이 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양자로서 하나님을 알아 사탄과 싸워 승리했다 할지라도 직계 혈통의 인연을 맺으려면 참부모를 모셔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5-184
복귀의 전체 과정을 넘으려면
어떠한 신앙의 용자라도 하나님 앞을 떠나면 허덕이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 나아가 `그 부모가 땅에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질문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땅에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땅에 없으면 어떻게 할 것이뇨. 여러분이 그 부모대신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네가 한번 부모가 되어 봐라’ 이런 말씀을 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신앙의 용자는 다른 곳으로 발을 옮겨갈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신앙자들을 더듬어 편답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참부모를 찾아서 그 부모 앞에 나아가 `오! 제가 지금까지 어려운 고비를 넘고 넘어 이제 참부모인 당신 앞에 나왔사오니, 아버지여,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느꼈던 역사적인 모든 슬픔을 위로해 주시고, 이제 당신의 영원한 복지에서 살 수 있는 전권, 당신의 이념동산의 전권을 저희에게 인계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호소해도 호소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부모는 또 `네 갈 길이 또 남아 있으니 네가 형제를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부모를 떠나 형제를 찾으러 갑니다. 그래서 땅을 헤매고 헤매여 형제를 만나면, `네가 아니면 내가 못 되고 내가 아니면 네가 못 되는 이러한 형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수 있는 형제, 뼈를 연하고 살을 연한 지체 중의 지체로서 너와 내가 나눠질 수 없는 형제를 찾아서, 내가 이러한 명령을 받고 너에 관한 뜻을 알고 너를 찾아 왔으므로 6천년 역사의 해원이 우리들로 말미암아 된다면, 너와 내가 형제로서 그 해원성사의 행복을 누려보자’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참다운 신앙의 형제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오,그대가 찾아온 것은 고맙소. 그러나 우리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이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또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라고. 그러면 그 길은 무슨 길입니까. 남아 있는 그 길은 선의 종족을 찾아와야 되는 길입니다. 이 신앙의 용자는 또 발길을 옮겨갑니다.

그래서 한 종족을 만나 가지고 `내가 이러이러한 역사과정을 거쳐서 그대들을 만났으니 그대들을 통해 천적인 소원을 성취해야 되겠습니다’라고 사정을 해도 그 종족들은 `환영은 할 수 있으나 기쁨의 춤을 출 수가 없다’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종족을 깨뜨렸던 사탄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사탄으로 인해 깨어진 종족이 있는 동시에 이 종족과 연결된 민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런 민족이 있는 동시에 선한 백성이 있었다’라고 하는 대답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고개를 넘어서 그 백성을 찾아 가지고 `오 이제는 기쁨과 행복과 소원성취를 다 할 수 있는 한 백성을 찾았으니 하늘의 백성될 자들과 즐기자’라고 하지만 안 된다는 거예요. 또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넘어 우리의 참부모와 참형제와 참종족, 참백성, 참민족, 참인류가 모여서 일제히 하나님 앞에 경배를 드리고 난 후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배후를 움직여 나오신 하나님의 심정에 애달픈 곡절을 쌓이게 한 것이고, 이것이 우리들이 살아나온 역사의 목표입니다.

이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엉클어진 것이 죄악의 세상이고, 이 이념을 세우지 못하게 그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 사탄의 역사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필히 가야 할 인생의 행로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진리의 본체로 오셨고, 하나님을 대신한 실체로 오셨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사랑의 실체로 오셨으며, 누구보다도 인류의 참부모, 참아버지의 실체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참아버지로 오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참형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않고 끝날에는 자녀라고 부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라는 거예요.

부모이신 예수를 중심삼고 형제를 출발하여 종족을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그 기반이 70문도와 120문도라는 것입니다. 그 무리를 중심삼고 이스라엘교단을 움직이고 민족을 움직이고자 했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제1이스라엘은 깨져나가고 제2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기독교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래서 기독교는 오늘날까지 예수를 중심한 세계 민족을 형성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끝날에 당도한 오늘날 인류들은 자기 한 자체가 역사적인 비운의 고개를 다 넘고 나가는 데 있어 승리적인 인연을 맺고 나아가지 않으면 14만 4천의 무리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묵시록 14장에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인(印) 맞았어요? 먼저 예수님의 인을 맞아야 하고, 그 다음 아버지의 인을 맞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만 맞으면 다 될 줄 압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인을 맞고 아버지의 인을 맞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타락한 인간들이 속죄의 완성을 바라보고 나온 목표인 것입니다.

5-186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해야 할 일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선한 사람의 목표는 먼저 하나님의 인을 받고 내가 형제에게 인을 쳐 주는 것입니다. 나아가 종족과 민족에게 인을 쳐 줄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에 하늘의 슬픔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하늘의 슬픔에 대한 말씀은 꿈에서도 알지 못하였던 말씀이요, 어떠한 친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하였고, 어떠한 스승이나 어떠한 교역자에게서도 듣지 못하였던 말씀인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진실로 심각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오늘 여기에 서 있는 이 발걸음은 내일 어디를 향하여 갈 것인가?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습니까? 참부모의 사랑권내에 있습니까? 참형제의 사랑권내에 있습니까? 참종족의 사랑권내에 있습니까? 참민족의 사랑권내에 있습니까? 하늘땅을 통합해서 하나님 앞에 머리숙일 때 그 하나님이 품을 수 있는 사랑권내에 있습니까? 그러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일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직 낙원에서 보류상태에 머물러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끝날에 다시 오셔서 필히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이일을 회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밟고 올라섰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가 붙들려 할 때 배척하던 분이었고, `신부여! 나와 더불어 아버지 앞에 갑시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를 거치지 못한 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천년 동안 신부의 자리를 찾는 그날을 바라보면서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원래 환희라는 신부와 더불어 아버지 앞에 나아가 축복을 받고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참다운 자식을 품고,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을 건설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천지에 참다운 조상이 되라고 축복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류의 참조상의 입장에서 축복을 받지 못하고 가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슬픔이요, 예수님의 슬픔입니다.

이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는 이러한 비장한 심정의 사무침이 여러분 마음에 동해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말씀을 배반한 나요, 하늘의 실체를 배반한 나요, 하나님을 배반한 나요, 하늘의 형제, 종족, 민족, 백성을 배반한 나요, 더 나아가서는 하늘의 주권을 유린한 나를 어찌 하늘이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알고 자기의 몸 둘 곳을 몰라 몸부림치는 청년 남녀들이 많이 나오기를 하늘은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알게 될때 우리의 심정은 불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이 통하고 마음이 움직이며, 역사를 대하여 원망하고 싶고 시대를 대하여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북바쳐 오를 것입니다.

이 분한 마음이 강할수록 이 분한 마음을 어디 가서 해원할 것이냐 하는 생각이 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비애는 사탄때문이었으니, 사탄과 더불어 일대 격전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각오를 가진 청년 남녀들이 많아야만 부모를 회복할 수 있고, 형제를 회복할 수있고 종족, 민족, 국가와 하늘의 주권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5-188
타락한 인간이 필히 가야 할 목적지
그동안 우리들은 태평세월을 보내왔습니다. 감각없는 무골충으로, 존재의식은 가졌으나 존재의 가치를 갖지 못하며 서글픈 행로를 걸어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래도 잘났다고 뻔뻔스럽게 나서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이같은 죄악의 종족이라는 것을 이 시간만이라도 인식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조차 모르고 있는 인간들은 하늘의 천벌을 받아 마땅하고, 심판날에 유황불 구덩이에 던져지는 심판의 제물이 되어 마땅할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내가 심판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은 나보다 더 슬픈 사정에 처해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또 선조들이 간 걸음이 나보다도 슬픈 사정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오늘날 이 시대에 뜻을 품고 나선 참다운 사람들이 오늘 내가 느끼는 슬픔과 고통 이상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라도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가고 살아서 못가면 죽어서라도 영원을 걸어놓고 가야 합니다. 이런 운명의 고개, 이 비참한 곡절이 사연은 원망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늘은 이 곡절을 일으킨 주인공인 사탄과 격전하기 위한 하늘의 정병이요 용자로서 하늘 땅을 대하여 호령하며 나설 수 있는 청년 남녀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향해 달려나갈 수 있는 하늘의 심정을 가지고 울부짖는 무리가 그립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나아가 참부모의 피를 받은 자녀, 그 피와 연결되어 있는 민족이 되고 백성이 되어야겠습니다. 그 부모와 하나되어 그의 기쁨이 전체의 기쁨이요 전체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만민이 하나님을 모셔놓고 그 앞에 송영을 돌리고 경배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타락한 인간이 필히 가야 할 목적지임을 여러분이 알아야겠습니다.

5-189
기 도
아버님, 에덴동산을 잃어버린 인간이 거쳐온 수모의 역사노정과 고통의 역사적인 인연을 거쳐 아버지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어마어마한 슬픈 장벽과 고개가 저희의 앞에 놓여 있음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 오늘도 내일도 가지 않으면 안 될 저희들의 이 역사의 서글픔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생명의 근원되신 당신의 슬픔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영원하신 아버지의 행복의 동산을 알아 그 동산까지 발걸음을 옮겨 나가는 데 있어서 행진의 일로를 맞춰나갈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어떠한 단계에서 가고 있는지 어떠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지금까지 무책임하게 살던 저희 개체로 하여금 배반자의 역사 노정을 거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전체에 화답하여 하나의 이념 동산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 앞에 경배드릴 수있는 한날이 있기까지 사탄 대하여 싸우고 싸워 나갈 수 있는 아들 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당신의 아들 딸들이 모여서 말씀을 들었사오니 이 말씀을 통하여 자기 인생의 행로를 새로운 각도에서 찾고, 하늘이 법도에 의지하여 목적지를 향하여 달리는 혁신적인 운동이 일어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의 모든 것을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바라며 주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