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3 to 5-162: 같이 살아야 할 인간과 하나님

같이 살아야 할 인간과 하나님
1959.01.11 (일), 한국 전본부교회

5-133
같이 살아야 할 인간과 하나님
요한복음 14:6-12

[기 도(Ⅰ)]

뜻 앞에 세우시어 자녀의 명분을 가르쳐 주시고, 저희들의 본연의 가치를 가르쳐 주신 아버지 앞에 이 시간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제 저희의 마음을 저희의 마음으로 내버려두지 마시옵고, 아버지의 마음과 연결시켜 아버지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저희가 마음으로 느끼는 모든 것이 아버지를 대신한 느낌이 되게 해 주시옵고, 저희가 체휼하는 모든 것이 인성(人性)을 벗어나 천성(天性)을 대신하여 체휼하는 것이 될 수 있는 이 한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아버님과 이별한 저희들이 다시 아버님을 만나야 되겠사오니, 저희의 발걸음이 자신의 모든 것을 잊고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기 위하여 허덕이는 간절한 발걸음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간곡한 심정과 간곡한 충절과 그것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행실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저희의 불충함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충성을 다해야 할 저희들이 지조를 갖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날은 새해 들어 두번째 맞이하는 성일(聖日)이오니, 이 한날에 저희가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출발하게 해주시옵소서. 이 한날, 저희들의 심중 심중이 아버지 앞에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 아버지의 손길에 붙들리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아버님이여! 친히 찾아와 주시어서 저희의 마음이 쓰다듬어 주시옵고, 저희의 몸을 품어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하나의 산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 한 시간부터 아버지 앞에 산 제물로 바쳐지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날은 거룩한 날이오니 이 땅 위의 만민을 축복하여 주시고, 삼천만 민족을 축복하여 주시고, 수많은 교단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특히 이날도 외로운 자리에서 하늘의 한뜻을 품고 눈물겨운 호소를 하고 있을, 지방에 널려 있는 외로운 식구들을 품어 주시옵소서. 하늘의 뜻이 있는 연고로 이들이 외로운 자리에 서 있고, 또한 이들이 하늘의 심정과 사정을 알고 있는 연고로 하늘이 심정과 사정을 대신하여 싸우고 있사오니, 이한 시간도 같은 은사로써 이들을 품어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지방에 널려 싸우던 당신의 아들 딸들이 이 한 주일을 통하여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무장을 하기 위하여 모였사오니, 이 수련회를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의 흔적을 몸으로 마음으로 체휼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만상(萬象) 앞에 나타나 하늘의 자비로써 실천하신 그 성상의 가치를 저희들이 대신 증거할 수 있도록, 하늘의 단장을 갖출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고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 한 시간 부족한 저희들이 남달리 모여서 마음을 모아 아버지를 모셔 놓고 경배드리고자 하오니, 이 자리에 현현하시어서 친히 받아 주시옵고 친히 품어 주시옵소서. 감추었던 생명의 은사로써 저희를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어두운 세력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는 이 민족과 만민을 구해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사오니, 아버지여! 자나깨나 이들을 붙들고 어둠의 세력과 싸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대신하여 생명을 걸어 놓고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전체적인 책임과 사명이 있음을 깨닫고, 이 한 시간 아버지 앞에 맹세하는 저희들이 그 사명을 인계받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며, 모든 것을 맡기오니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5-135
기 도(Ⅱ)
아버님이시여! 땅 위에 살고 있는 만민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뜻을 완결지어야 할 날이 가까와 오고 있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사옵니다. 그날은 아버님의 해원의 날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의 날이요, 인류가 간곡히 고대하던 날임을 저희가 알고 있사옵니다.

그 한 영광의 날을 맞이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마음으로 모시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사옵고, 그 한 두려운 심판날을 맞이하기 전에 저희들이 죄악역사를 피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제 아버지, 저희의 마음을 다시 빚으시어 당신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심성(心性)을 갖추게 해주시옵소서. 저희의 몸을 다시 빚으시어서 당신께서 운행하실 수 있는 형상체(形狀體)가 되게 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이 시간, 마음으로 몸으로 아버지께서 지으시던 본연의 소원을 노래할 수 있는, 당신 것으로 소유될 수 있는 참아들딸이 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영광 가운데 하나되어 아버지의 즐거움이 저희의 즐거움이요, 저희의 즐거움이 아버지의 즐거움인 동시에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의 즐거움이요, 피조 만상의 즐거움으로 나타날 수 있는, 아버님의 소망의 날과 아버님의 영광의 날과 아버님의 기쁨의 날이 어서 속히 이 땅 위에 나타나기를 저희들은 간곡히 바라고 있사옵니다.

이제 마음이 미급한 자가 있사올진대 아버님의 본연의 마음을 따라 달음질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성상을 대신하여 지으신 인간 본연의 형상을 갖지 못한 자가 있사올진대, 몸을 굴복시켜 모든 악의 요소를 제거시킬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동하실 때에 마음으로 몸으로 아버지의 심정에 화하여 동할 수 있는 하늘의 아들 딸들이 심히도 그립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저희의 마음이 당신의 본연의 마음에 동하여 움직이지 못한다 할진대 그 마음을 제거시키시옵고, 본연의 형상을 닮지 못해 아버지의 심정에 동하여 움직일 수 있는 형상체가 되지 못한 몸이 있사올진대, 그 몸을 굴복시키시어서 본연의 형상을 갖출 수 있는 하나의 미의 자체로서 나타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날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 한 생명이라도 사탄의 품에 품기지 말게 하시옵고, 아버님의 사랑의 품에 품으시어서 성별시켜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임재(臨在)하실 수 있는 전(殿)으로서, 아버지께서 친히 움직여낼 수 있는 하나의 몸으로서, 아버지께서 친히 모든 것을 자유롭게 주관하실 수 있는 성도들로서 빚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날은 거룩한 날이오니 불쌍한 삼천만 민족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고, 갈길을 찾아 헤매며 방황하고 있는 당신의 아들 딸들이 많사오니 그들을 품어 주시옵소서. 간 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흑암의 권세에 사로잡혀 생명의 길을 찾지 못하고 허덕이는 당신의 아들 딸들을 어서 속히 붙들어 성별시키옵소서. 하나의 이념으로 통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 딸이 되게 만드시옵고, 축복하여 주시옵고, 끝날 하나의 제단을 갖출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의 몸 마음을 다 드리오니, 아버지, 받아 주관하여 주시옵고 사탄이 틈탈 수 있는 일체의 요소를 제거시키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친히 주관하시고, 친히 명령하시고 화할 수 있고 선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이 한 모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갖고 있는 모든 심정을 다 내놓고 다시 어린애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아버지의 명령에 전체적으로 응할 수 있는 이 한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이날을 기하여 외로운 심정으로 기도하는 곳곳마다 당신의 사랑의 손길을 거두지 마시옵고, 이 한 시간 저희들 전체의 마음 몸을 주관하여 주시고 품어 주시옵소서. 이 한 모임이 아버님의 거룩한 지성소에서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제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5-137
기 도(Ⅲ)
아버지시여! 사랑하는 제자들을 앞에 놓고 머지 않아 땅 위에서의 생애를 종결짓고 아버지의 나라로 갈 것을 얘기해야 했던 예수님의 서글픈 마음을 통찰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시간적으로 보면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는 2천년이라는 간격이 있사오나 심정의 세계에서는 시간을 초월할 수 있는 줄 아오니, 오늘도 예수님의 초초한 모습과 서글픈 심정에 어리어 한마디 한마디 간곡한 훈계하시던 성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직접적인 체휼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이러한 장면은 인간된 저희들로서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옵니다.

이 땅 위에 어느 누가 예수님의 마음을 알았사옵니까? 수심에 잠긴 그 모습을 보고 마음깊이 사무쳐 오는 하늘의 슬픔을 체휼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니, 하늘은 이러한 인간들을 놓고 탄식하실 수밖에 없었음을 아옵니다. 하늘의 심정을 알아 `주여!’하고 부르는 제자 하나도 갖지 못한 예수님께서 의심으로 점철된 생애노정을 가셔야 했고, 또한 의심을 받으며 그 서글픈 생애의 종말을 맞아야 했던 슬픔을 이 시간 저희들이 마음으로 동정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간곡한 하늘의 심정을 품고, 하늘의 전체의 위업을 품고 인간을 찾아 오셨사오나 인간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자기들 멋대로 대하였고 배척할 대로 배척하였사옵나이다. 외로운 자리로 몰아넣을 대로 몰아넣었사옵니다. 그러나 슬픔에 잠기고 탄식의 자리를 여지없이 밟아나오시면서도, 예수님은 그러한 인간들을 버리지 못하시고 생명의 동산을 향한 한길을 개척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끌고 겟세마네동산을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시는 예수님의 처참한 가슴 앞에, 믿음직한 제자 하나 없었던 서글픈 사정을 저희들이 알게 해주시옵소서.

끝날에 하늘이 저희들을 찾는다 할진대는, 하늘의 최후의 심정을 고이 받들어 그 마음과 더불어 그 말씀과 더불어, 마음 몸을 통하고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하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저희가 알고 있사옵니다.

지난 날의 슬픔은 저희 선조들의 부족했던 소치(所致)요, 하늘의 심정을 알지 못하였던 데 기인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저희들이 이런 사실들을 생각하면서 천상(天上)을 대할 수 있고, 고아와 같은 입장이었던 예수의 심정을 가지고 `아버지시여!’ 하고 사정할 수 있으며, 그때의 심정을 통할 수 있게 하옵소서. 이들로 마음을 헤쳐 놓고 믿을 수 있는 제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존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여기(요 14:5)에서 도마는 `주의 가시는 길을 모른다’하였고, 요한복음 14장 8절에서 빌립은 `주의 성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하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제자들을 보게 될 때에 예수의 슬픔이 얼마나 컸는가 하는 것을 여기에 있는 무리들이 같이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하나님과 같이 사신 것을 알지 못하였던 제자들, 이런 제자들을 남겨 두고 한 생애를 종결지어야 할 입장에 있던 예수님의 심정, 생애의 전부를 인간을 위하여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생애의 결실을 보지 못하고 처절한 심정에 잠기어 하늘을 염려하시던 예수의 마음을, 저희들이 이 시간 동정할 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여기에 당신의 아들 딸들이 부복하였사오니 이들의 마음을 합해 주시옵소서. 이들이 아무것도 갖지 못했을지라도 아버지께서 남겨 주신 심정, 아버지께서 친히 예수님을 보내시어 나타내고자 하시던 간곡한 그 심정을 체휼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의 전체 심정을 대신할 수 있고 하늘의 뜻을 바라고 하늘의 심정세계를 그리워하는, 피조만상을 대신하여 나타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 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만상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아들 딸들이 나타나기를 오늘날까지 바라고 계시는 아버지의 심정과 예수의 심정을 이 시간 헤아릴 줄 아는 아들 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깊은 사망의 물결에 휩쓸려 잠들어 있는 삼천만 민족을, 아버지! 이끌어 주시고 흑암권세에 대하여 생명의 권한을 갖고 싸워야 할, 당신이 세우신 교단들이 하나되게 해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는 있사오나 그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하늘의 길을 간다고는 하오나 그 길이 어떤 길인지 모르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저희들에게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 이 민족을 대신하여 하늘의 간곡한 심정을 깨닫는 자들 되게 하시옵고, 아버지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서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권고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아버지의 간곡한 사정을 붙들고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라 부르며 통곡할 수 있는 사무친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경배드릴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탄은 저희들의 심정의 세계를 유린하기 위하여 이 시간도 갖은 간교한 수단으로 저희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시옵고, 저희가 마음 마음을 합하여 온전히 하나되어서 산 제물로 아버지 앞에 드려지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당신의 생명의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고, 당신과 생명의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고, 당신의 생명의 말씀과 접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나이다. 이것을 알고 당신의 말씀을 전하고자 원하오니,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간곡한 자리에서 흠모의 심정에 사무쳐 하나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의 창조본연의 이념을 저희의 심정으로 체휼할 수 있으며, 그 심정을 내 것으로 옮겨받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허락하신 말씀에 동하여 다시 빚음받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시간 이후 모든 것을 맡기오니 뜻대로 이루시옵고, 외로운 식구들을 친히 품어 주시옵길 부탁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5-139
말 씀
오늘 여러분들에게 잠깐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같이 살아야 할 우리들과 하나님’ 입니다. `같이 살아야 할 인간과 하나님’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피조만물을 창조하신 동기와 목적이 어디에 있었느냐 하면 같이 사는 데 있었습니다. 같이 살기 위하여 창조하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5-140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창조하시게 된 동기와 목적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에 연하여 있는 모든 존재물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움직일 수 있는 기쁨의 존재들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지으신 존재입니다. 즉, 하나님의 생각 중의 생각의 존재요, 심정 중의 심정의 존재요, 창조이념 중의 이념의 존재요, 창조실체 중의 실체의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소유하는 것이 온 우주를 소유하는 것이 되는 것이요, 인간을 주관하는 것이 또한 피조세계 전체를 주관하는 것이 되는 것이요, 인간과 더불어 기뻐하는 것이 피조세계 전체와 기뻐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창조이상으로부터 창조의 결과에 이르기까지 목적의 전체를 대신한 대표적인 존재로 인간을 세우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지으신 목적은 `같이 사는 것’인데 오늘날 인간과 만물, 모든 존재물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권내에 있지 않으니, 이것은 어떻게 된 곡절이뇨? 타락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타락한 연고로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터전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잃어버린 그날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우리 인간들을 찾아 헤매시는 것은 무엇 때문이뇨? 그것은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전(殿)이 되고, 하나님의 몸이 되고,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 하늘과 땅을 대신한 하나의 실체 존재가 되면, 우리 인간이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 인간을 통하여 만물에게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만물을 연결시키는 중간 매개체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이렇게 되어야 할 우리 인간들이 오늘날까지 그러한 기쁨을 느껴본 적이 없고, 하나님이 지으시려던 본연의 성전을 갖추어 본 적도 없고,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이념을 가져 본 적도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의 인간들의 실상이었습니다.

땅 위에 아무리 잘나고 훌륭하다고 만상 앞에 자기를 내세워 자랑할 수 있는 무엇을 갖춘 성현이나 현철이 있다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이념의 전(殿)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찾아 주실 수 있는 이념의 실체가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참된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권내에 있던 우리 인간, 그러한 운명에 처해 있던 우리 인간은 어디를 거쳐 어디로 가서 어디에 머물고자 하는 6천년의 기나긴 세월을 거쳐왔던가?

오늘도 살기를 바라고 내일도 살기를 바라고, 생에 대한 애착심을 갖고 생의 끝없는 연장을 소망하면서 하나의 이념을 찾아 헤매는 인간들, 이 인간들이 머물고자 하는 소망의 기점은 어디인고?

지어 주신 주인이 계시되 그 주인을 모르고, 심정의 주체가 계시되 그 심정의 주체를 알지 못하고 다른 것을 찾아 헤매고 있는 인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창조의 이념이 없고 창조의 실적이 없으면 모르겠거니와 창조의 실적인 만상이 있고, 창조의 이념이 하나님 속에 남아 있다면 그 이념과 실적을 완성시키고 완결시킬 수있는 존재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존재는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그 존재는 만물도 아니요 하나님도 아니요 바로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들이 알아야 될 때가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우리 인간을 찾아 오셨습니다. 오늘날까지 우리 인간을 한 터로 삼아 하늘 것으로 옮기기 위해서 찾아오고 계십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모든 조건을 완비하여 생활을 통하여 창조이념 전체와 연결될 수 있고, 그 이념권내에서 완성될 수 있고, 완성된 실체로서 하나님 앞에 이념의 실체가 될 수 있을 것이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떠나가시고 만물과의 인연도 끊어져 버렸고 인간과 인간끼리의 인연도 끊어져 버리게 되었으니, 이것이 슬픔 중의 슬픔이요 탄식 중의 탄식인 것입니다.

5-142
타락의 결과
이것은 내 한 개인에 국한된 탄식이 아니라 옆을 바라보면 동포의 탄식이요, 눈을 들어 세계를 바라보면 인류의 탄식이요, 더 나아가 만물을 바라보면 만물의 탄식이요, 머리를 들어 마음을 통하여 하늘 세계를 바라보면 하늘의 탄식입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사실을 여러분들은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마음 몸으로 그 탄식을 붙들고 크게 탄식하면서 울어 본 적이 있습니까? 탄식하는 모든 만상을 붙들고 이 위에 맺혀 있는 탄식, 우리를 지으신 주인의 탄식을 염려하여 더 큰 탄식에 사무쳐 하늘을 붙들고 통곡하고, 만민을 붙들고 통곡하고, 만물을 붙들고 통곡하고 싶은 그런 심정을 한 번이라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마음을 갖지 못한 우리들이지만 하늘이 탄식의 심정으로 우리를 찾아 헤맨다 할진대 여러분들은 그 하늘 앞에 불효자 중의 불효자요 역적 중의 역적이요 배반자 중의 배반자라는 것을 느끼기라도 해야 합니다.

만일 그런 하늘이 안 계시다면 모르지만 계신다면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인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역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이러한 불신의 인간이요 배반의 인간이요 절망의 인간을 다시 빚어 낼 조건을 찾아서 하늘은 오늘 이 시간까지 헤매고 계십니다.

타락한 아담의 위치에 있는 인간을 끌어내 가지고 하늘편에 세워 놓고, 하나님의 이념으로부터 하나님의 소원까지 하나님의 전체의 속성을 완비시키시어 그들과 더불어 의논하면서 살고자 하시는 것이 창조주가 인간을 찾아 헤매는 목적입니다. 이것을 느끼는 자가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께서는 그 이상 고마와할 일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늘은 인간들이 모르는 사이에 개인을 통하여 환경적인 섭리의 발판을 닦았고, 환경을 통하여 세계적인 섭리의 발판을 닦아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복귀노정을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늘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6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우리 선조들과 인연맺기 위하여 투쟁해 오셨고, 우리 민족과 국가와 땅과의 인연을 맺기 위해 투쟁해 나오셨던가? 그 목적은 무엇인고?

하나님의 말씀은 태초에 그 말씀을 배반하였던 우리의 선조들에게만 나타내신 것이 아닙니다. 타락 이후 6천년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어느 시기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은 말씀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지 않은 때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심어 말씀의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슬픔 중의 슬픔인 것입니다.하늘의 말씀을 마음에 심어 말씀의 결실을 맺기를 원하시던 하늘의 소망을 수천만 번 배반한 선조들임을 알게될 때, 타락의 혈통을 남긴 선조들을 대해 적개심을 갖는 참다운 후손들은 나오지 않겠는가? 여러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조들이 하늘의 말씀을 배반하여 하늘 앞에 서러움을 안겨 드리고 죄의 담을 쌓아 놓은 것을 분하게 여겨 그 선조들을 붙들고 항거할 수 있는, 북바치는 심정으로 하늘 땅을 대하여 외치고 나설 수 있는 참다운 아들 딸의 모습은 없겠는가? 하늘은 찾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의 몸에 당신의 말씀을 심어 그 말씀을 통하여 실체를 갖춘 본연의 인간으로 세워 놓고자 하셨는데, 그 마음 속에는 무엇을 옮겨주고자 하셨느냐? 하나님의 마음을 심으려 하셨고, 하나님의 이념을 심으려 하셨으며 또한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사랑을 그 마음 속에 옮겨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러한 창조이념이 우리 선조들의 배반으로 말미암아 온데간데 없어졌고, 하나님의 말씀도 온데간데 없어졌고, 하나님의 실체인 본연의 인간도 없어졌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생명,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도 간 곳이 없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잃어버린 이상의 슬픔은 피조세계에 또 다시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서글픈 사실을 놓고 뼈살에 사무치는 심정을 갖고 흐느껴 울 줄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잃어버리고 타락의 제물이 된 연고로 인간들은 잃어버리기 전의 `본연의 나’를 그리워합니다. 그 `본연의 나’가 그립다는 것입니다. 땅 위의 어떠한 물건이 그리운 것이 아닙니다. 지어진 만상이 있다 해도 그 만상이 나와 관계가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역사와 세계가 있으나 그 또한 내 마음의 세계와 인연을 맺을 수 없고, 참나를 위로해 줄 수도 없으며, 어떤 자극적인 충격을 줄 수도 없는, 나와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느냐?

5-144
다시 찾아야 할 `본연의 나’
인간에게 있어 제일 귀한 것은 `본연의 나’, 즉 하나님의 전체의 속성을 갖추어야 할 본연의 나입니다. 그런데 그 자체를 잃어버렸으니, 즉 제일 귀한 것을 잃어버린 인간인 고로 그것이 찾아지기 전에는 인간 그 자신 속에서 기쁨이나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타락한 인류는 동서남북 사방에 흩어져 그 `본연의 나’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무엇을 찾아야 될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내가 못 되어 있고, 몸은 있으되 하나님의 전(殿)이 못 되어 있고, 마음은 있으되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마음이 못 되어 있고, 심정은 있으되 하나님의 심정과는 하등의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심정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이념과 사랑을 찾고 논의하되 그것들이 하늘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입장에 떨어져 버렸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슬픔이요, 하나님의 슬픔이요, 피조만물의 슬픔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늘을 찾아나선 우리들, 하나님의 선과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나선 우리들, 하나님의 한을 해원하려 나선 우리들은 어느 누가 치고 천대하여도, 그들에게 맞으면서라도 하늘을 향하여 하늘이 원하시는 뜻을 찾아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인간을 치는 데도 개인으로부터 종족을 거쳐 민족을 거쳐 세계까지 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인간을 치는 목적은 인간을 망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과 접하고 있는 악의 분자를 제거시키기 위함입니다. 이 악의 분자 때문에 인간을 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사탄이라는 비원리의 주인공이 우리를 유린해 나왔고, 우리의 가정과 사회, 우리의 창조이념의 세계를 유린해 왔습니다. 이 사탄과 사탄으로 말미암아 죄가 오늘날까지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여 왔고 세계를 지배하는 하나의 중심이 되어 왔으니, 이제 우리 인간들이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생각하고 창조 본연의 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사탄이 내 육신을 지배하고 세계의 모든 피조물을 움직여 왔으니, 그 보다 강한 조건이 우리들의 마음에서 폭발되어 나오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과 창조본연의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도리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들은 사탄에게 얻어 맞으면서 나오다 보니 오늘날 종말 세대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때는 하나님의 6천년의 소원이 접해 들어오는 때요, 사탄이 깨지는 때요, 인류의 소원이 접해들어가는 때입니다.

이 끝날은 사탄에게는 무한한 슬픔의 날이요, 본연의 인간에게는 무한 기쁨의 날이요,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 앞에는 무한히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우리는 이 끝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나서는 끝날의 성도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6천년 동안 무엇을 해 나오셨던고? 우리에게 무엇을 주입시키기 위해 기나긴 세월을 수고해 오셨던고? 우리를 하나의 발판, 하나의 터로 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주입시키기 위해서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주신 말씀을 인간이 잃어버린 연고로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6천년이 걸리더라도 이 땅 위의 인류 앞에 참다운 말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실존성을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이념과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는 그러한 말씀을 인류 앞에 나타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인류 앞에 그런 말씀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그 말씀을 찾아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6천년을 수고해 나오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몸을 헤쳐서 분석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속성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을 뿌리기 위해 6천년 동안 수고하셨는데, 그 피 땀의 결정체인 말씀이 여러분 마음 가운데 들어가 있느냐? 하늘은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5-146
복귀의 순서
하나님께서는 어차피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와 하나되어 우리의 생활환경과 이 세계에 이념의 동산을 창설하셔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하늘이 여러분을 찾아 오실 때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것으로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 사탄세계의 어떠한 말보다 강력한 하늘이 뿌리신 말씀의 소유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실 때에도 말씀을 통해서 지으셨고, 우리를 찾아 오시는 데도 말씀을 통해 찾아나오십니다. 그런고로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할진대는, 하나님이 말씀을 뿌렸으니 여러분에게는 그 말씀을 거두어서 아버지 것으로 찾아드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면 끝날은 무엇이냐? 말씀을 거두어서 하나의 실체를 갖추어야 하는 때입니다. 실체! 말씀을 통하여 실체가 빚어집니다.이같이 말씀을 통해 빚어진 실체를 찾아 헤매신 것이 하나님의 역사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위에 오셨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에게 실체를 먼저 보여 주지 않고 말씀을 먼저 보여 주셨는데, 이것은 거꿀잡이로 찾아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순서대로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실체를 소망하시되 먼저 타락한 인간들의 가슴 가슴에 그 말씀의 씨를 뿌린 후 그 말씀을 근거로 하여 하나의 생명체를 이룬 실체를 갖추게 하는 거예요. 이러한 실체가 나오면 성경에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지으시고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한 성경말씀과 같이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실체가 된 후에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어서 생령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령은 또 무엇인고? 생령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존재, 하나님과 일체를 이룬 세계에 들어가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영원불변의 하나님의 실체대상이라는 것을 체휼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들이 그런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생령체로서 완성되어 당신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셔서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의 마음의 터 위에 뿌려 놓으신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할 것인고?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아담 해와의 형상을 다시 빚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4천년 역사가 끝날 때 하나님께서 인간 앞에 4천년 동안의 말씀을 대신하여 말씀의 실체로 보내신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실체로 나타난 예수는 이 땅에서 무엇을 했어야 했는가? 예수님에게는 구약시대에 뿌려진 말씀을 받은 인간들을 주장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구약 율법을 믿고 있던 그 시대 사람들은 마음의 터전 위에 말씀의 대신 존재를 세워야 했고, 예수의 몸을 붙들어야 했고, 예수의 마음을 붙들어야 했고, 예수의 이념을 붙들어야 했고, 예수의 생명과 예수의 사랑을 붙들어야 했습니다.

4천년 동안 예언자를 보내어 약속하셨던 실체, 구약의 말씀을 통하여 증거하였던 그 말씀의 실체가 이 땅 위에 메시아로 나타나신 예수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말씀을 통하여 예언되고, 하나님의 무한한 고생을 통하여 보내진 예수, 전체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 존재로, 우리 인간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끔, 귀로 들을 수 있게끔, 손으로 만질 수 있게끔, 붙들 수 있게끔 보내진 그 예수는 어디로 갔는고! 그 예수는 어디갔는고! 예수는 이 땅 위의 인간을 위하여 오셨으되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내리신 말씀의 완성실체로, 구약시대 인간들 앞에 무형의 신으로 말씀하셔야 했던 하나님의 서글픈 심정을 대신한 실체로 오셨고, 실체를 갖춘 실체 하나님격으로 나타나셔서 인간 앞에 실체의 말씀을 주어 말씀의 목적인 인간과 하나되기 위하여 예수는 오셨는데, 인간들은 실체 예수가 필요없다 하여 보내진 예수를 마음대로 유린하고, 마음대로 처단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실체를 잃어버린 인간이 되었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늘의 말씀 즉, 구약의 말씀을 거두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거두는 동시에 이스라엘민족이 예수를 믿어 몽땅 그 마음 속에 들어오게 하셔야 했습니다. 1600년 전부터 모세를 통하여 세워진 율법이 하나님 말씀인데 예수는 뭐야? 이 말씀에 굴복 안하는 자는 반역자다’하여 예수를 죽였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5-148
예수의 강림목적과 유대민족의 불신
말씀은 실체 앞에 굴복하고, 실체는 하나님 앞에 굴복해 들어가야 되는데, 그 실체인 예수를 인간이 죽여버린 것입니다. 실체인 예수는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 4천년 동안의 역사적인 모든 원한의 조건을 청산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원한의 조건은 무엇이냐? 4천년 동안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한 것입니다. 이 원한은 이스라엘민족이 예수 한분을 믿고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풀려지는 것인데, 이스라엘민족은 4천년의 원한의 말씀을 내세워 그 실체를 잡아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민족이 범한 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민족은 세계를 유리고객하면서 종의 종이 되어 세계인으로부터 밟힘을 당했고 천대에 천대를 받아야 했습니다. 영광 중의 영광의 나라를 건설하여야 할 민족이 고통과 십자가의 길을 헤매면서 영광의 나라를 바라면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예수를 죽인 죄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같은 것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참말씀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땅 위에 실체적인 말씀을 세워 놓으셔야 했던 예수가 구약말씀같은 약속의 말씀을 남겨 놓으신 것이 신약말씀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신약말씀에서 실체를 찾아 허덕여 왔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을 봐도 말씀의 중심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3)”고 하시며 말씀을 못 다하고 가셨습니다. 인간이 완성한 실체, 땅 위에서 완전한 기반을 잡은 실체로서 살 수 있는 생활적인 말씀은 어디 있는고!없습니다. 성경 가운데도 없습니다. 없다는 거예요. 이 말씀을 못 다하고 가신 예수인 연고로 다시 오셔야 된다는 명제가 남아졌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기도해 보세용. 기도해 보면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오늘날 말세는 어떠한 때인가? 말씀의 실체, 말씀의 주인공을 상봉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말씀의 실체를 상봉하려면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참다운 인간 앞에 나타내려 하신 그 말씀,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을 통할 수 있는 말씀을 지니고, 그 말씀과 일체(一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오시는 주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완전한 말씀을 전하기 위해 오셨으나 완전한 말씀을 나타내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성신을 통하여 그 완전한 말씀을 나타낼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천년 동안 수고하신 성신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끝날에 예수가 나타내시려던 말씀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하여 실체로 나타나실 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분을 알아서 그분을 신랑으로 모시고 우리는 신부로서 신랑 신부의 상대적인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예수께서 실체를 갖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들을 실체적인 성전으로 완결시키기 위한 말씀을 못하셨으니 우리가 그 말씀을 대신한 가치적 존재로, 제2의 실체성전으로 나설 수 있어야만 우리의 몸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존재가 살 곳이 지상천국입니다.

성경을 붙들고 울어 본 사람이 있습니까? 구약의 완성실체로 오셨던 예수를 죽였던 연고로 성경에는 그 예수가 완성하여 실체로서 나타내실 모든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못합니다.

무형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인간을 대하던 것을 실체로 대하기 위하여 예수를 보내셨는데, 예수께서 돌아가신 연고로 구약형의 말씀밖에 남기지 못하셨는데 이것이 신약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의 말씀을 믿을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실체를 믿어야 됩니다. 실체! 지금은 실체신앙시대예요.

5-150
실체신앙 시대, 부활신앙 시대
베드로는 12사도 중에서 예수의 말씀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입장에 있었으나, 예수를 자신의 마음에 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에는 못 나갔습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의 실체를 붙들 수없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를 붙들려 했으나 붙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이렇게 실체를 붙들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럴 수밖에 없게 된 것이 우리 인간의 제2차적인 비극입니다.

1차의 비극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잃어버린 것이요, 2차는 예수를 잃어버린 것, 말씀의 완성실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다시 오셔야 됩니다. 이것이 알고 보면 한없이 울어야 할 일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슬프다면 이 이상 슬픈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늘은 해원의 날을 바라시고 4천년 동안 눈물의 고개, 슬픔의 고개, 복통할 수밖에 없는 고개를 거쳐 나오셨습니다. 이러한 고개를 넘으시면서 소망의 실체로 예수 한분을 이 땅에 세우셨는데 그만 이스라엘민족은 그 예수를 죽음의 자리로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이스라엘민족 앞에 하나님의 생명을 대신하고 약속한 이념을 대신한 메시아로 보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민족으로 하여금 메시아의 뒤를 따르고 메시아를 모실 수 있는 준비를 하라 하셨는데, 메시아로 오신 예수를 붙들고 울어야 할 민족이요, 통곡하여야 할 이스라엘은 어디 갔는고? 아담을 잃어버린 그날부터 4천년 동안 하나님을 모시던 이스라엘민족은 어디 갔는고? 사탄의 제물이 된 것입니다. 이 이스라엘민족은 하늘의 역적이 되었습니다. 역적!

오늘날 믿는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러 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강림목적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십자가의 도리를 믿을 것이 아니라 부활의 도리를 믿어야 됩니다. 십자가는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의 몸을 유린한 죄의 조건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임을 알아야 돼요. 이 십자가를 넘어서 부활하신 후 40일을 지난 뒤 이루어진 성신강림과 더불어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것이 기독교의 정통적인 신앙입니다. 이것이 바른 기독교의 신앙이예요.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죽으러 왔다고 합니다. 만약 죽으러 올 것 같으면 4천년 동안 이스라엘민족이 안 믿으면 들이치고, 애급에서 고역당하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끌어내었겠습니까? 또 바빌론에 포로가 되었을 때에도 선지자를 세워 간곡히 권고하였겠습니까? 4천년 동안의 역사가 예수를 잡아 죽이기 위한 역사입니까?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이 세계에 널려 있습니다. 이들이 하늘을 저버리고 하늘을 배반한 이스라엘민족과 같은 제2이스라엘민족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 심각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한 실체로서 하늘나라의 말씀을 해주셔야 했습니다. 그 말씀은 사탄이 시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믿고 나서는 사람에게는 사탄이 시험을 못합니다.

오늘날 땅 위의 예수를 믿는 성도들 가운데 시험받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누구나 시험받아야 해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사탄이 억천만 번 시험을 하고자 해도 시험할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사탄에게 침범받으면서 남겨놓고 가신 말씀을 가지고 믿고 나가고 있으니 그 성도들에게 사탄이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체를 갖추어서 사탄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시대는 어느 때에나 올 것인고? 그때가 재림의 날입니다.

내 몸에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말씀의 씨앗을 심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둬들여야 하겠고, 내 몸에 말씀을 통한 실체를 심어서 하나님의 실체로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쁨에 겨워 품으시고 사랑하실 수 있는, 영과 육이 하나된 완성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존재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최후의 신랑 신부가 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끝날인 오늘날에는 성신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들 가운데서 이 성신이 백퍼센트 역사할 수 있게 재촉할 수 있는 성도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성신이 오늘날 우리를 위해 역사하는 그 이념의 기준은 무엇인가? 성신을 앞에 세워 놓고 물어봐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끝날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입니다.

5-152
하나님은 존엄하셔서 우리와 관계맺을 수 없는 분이냐?
예수님이 왔다 가신 이후로 성경은 모두 66권이 되었습니다. 신약은 4복음서 이외에도 여러권이 있지만 예수님이 지상에 왔다 간 이후 최후에 수록된 묵시록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었는데 그것은 영계에서 보여 준 것입니다.

성신이 이 땅에서 하시는 일을 끝나게 하려면 예수가 돌아가시고 나서 성신을 보내실 때의 말씀의 본의를 완전히 알고, 보내신 실체의 사정을 알아 그 실체 이상의 자리까지도 넘어갈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나와야 됩니다. 이렇게 성신의 역사는 땅에서 거두어지고 땅 위에 성신의 대신존재를 세워서 성신의 역사를 계승시키려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뜻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에게 옮겨졌었고, 예수의 일이 성신에게 옮겨졌었습니다. 이제 성신의 일을 오늘날 믿는 성도들에게 옮겨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삼위신이 쉴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까지 나가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말씀을 찾을 수가 없고, 우리 몸에 말씀을 심었다 해도 그 말씀의 목적을 이룬 자체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부활 후 신부가 되어야 할 입장에 있었던 막달라 마리아가 붙들려 할 때에 오지 말라고 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오냐 오냐’하고 예수가 손을 벌려 품어 줄 수 있는 신부의 단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원한을 다 탕감하고, 살아서 완성의 말씀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선 신부가 되어야만 사탄이 참소할 수 없습니다. 또 그래야만 섭리가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왔다가 이후 2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기다리고 싶었던 것이 하나님의 본래의 마음이 아니요, 예수의 마음 역시 그렇기를 바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2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기다리게 되었던고? 수많은 곡절을 다 넘고나서 `하나님의 6천년 역사의 내용이 이러이러한 것이오’라고 할 수 있는 실체, 즉 하나님을 대신한 완성실체로서 사탄이 반박할 수 없는 말씀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나오지 못한 연고로 2천년 동안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2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동안 섭리가 연장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예수님의 슬픔입니다.

이제 끝날에 있어서 우리가 예수의 말씀을 통하고 예수님의 실체를 붙들고 나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하고,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말씀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 예수의 몸을 붙들고 난 후에 예수의 마음과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옮겨 받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할 수 있는 실체를 갖추고, 예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심적기반을 갖춘 연후에야 비로소 인류 앞에 약속한 하나님의 사랑이 부여됩니다. 이것이 복귀입니다.

타락하지 않고 말씀을 완성한 실체로 섰던들, 아담에게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아담은 하나님의 실체, 말씀의 화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즉 아담의 몸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아담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아담의 심정은 하나님의 심정으로, 아담이 느끼는 감정도 하나님의 감정으로 나타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목적이었습니다. 여러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존엄하셔서 우리와 관계맺을 수 없는 분이냐? 아닙니다. 성경은 똑똑히 말했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고….

우리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 예수의 껍대기만 믿을 것인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를 말씀의 실체요, 하나님의 심정의 실체요, 하나님의 마음의 실체로 믿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이념,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몸에 옮겨받아 가지고 하늘이 동하면 같이 동하고 하늘이 정하면 같이 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읍니다. 이렇게 생활적인 면에서 하늘과 통하고 정할 수 있는, 하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은 인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창조목적이었습니다.

5-154
관념적인 신앙을 버려야 할 때
오늘날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처럼 `오! 하나님!’하는 그런 관념적인 신앙을 가질 때는 지났습니다. 그런 하나님은 오늘날 발전하는 이 사회에 하등의 가치를 부여해 주지 못합니다. 그런 하나님은 필요없어요.

이제 끝날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찾아나온 참다운 하나님의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그들은 하나님을 생활의 중심으로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을 인간이 찾는 그때에야 하나님은 한숨을 내쉬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한숨을 내쉬시고 의논할 수 있는 인간은 억천만 사탄이 있다 할지라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사람, 하나님의 사정을 붙안고 사랑하는 자를 빼앗아 갈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없습니다. 없어요.

예수가 이 땅에 왔다 갔으되 하나님께서 예수를 붙들고, `너는 내 영원한 아들이요, 사탄을 근본적으로 굴복시킨 내 참다운 아들이다’라고 하시면서한 번도 사랑해 보지 못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붙들고 사랑하지 못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께서 영육을 통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고 가셨던들, 낙원에 가서 기도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원한은 무엇이뇨?

신랑 신부의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할 수 있는 개체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영육을 합한 실체로서 사탄이 도저히 참소할 수 없는 승리의 말씀을 하나님 대신 나타낼 수 있는 입장에 섰던들, 그때 당시에 예수께서 그런 말씀을 세워 놓고 가셨던들,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사탄은 꼼짝도 못하고 굴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실체로서 종결지어야 할 창조이념을 종결짓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영계에 가셔서 영적인 일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성신을 통하여 영적으로 활동하고 계시되 육의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고로 예수는 육을 찾아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정입니다.

예수의 육을 친 사탄에게는 오늘날 이 땅 위에 인류의 육을 붙들고 대항할 수 있는 조건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그 조건을 당당히 반대하고 나서야 하겠습니다.

성신도 우리를 찾는 데 있어서는 우리의 육신이 없으면 안 됩니다. 몸이 없으면 안 돼요. 몸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성전으로 지으신 연고로 예수도 성전을 통해야 되고, 성신도 성전을 통해야만 구원섭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인가? 선을 번식하는 것입니다. 선의 아들 딸을 번식하는 거라구요.

영육의 실체를 통하지 않고 번식하는 존재가 땅 위에 어디 있어요? 그런 창조물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예수를 땅 위에 세우시어 타락 이후 4천년간 쌓여온 역사적인 서러움을 탕감하려 하셨습니다. 그런 고로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사시킬 대신 존재요,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창조본연의 제2의 아담적인 존재로 오신 분이요,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과 소원을 갖고 오신 분이요, 하나님의 이념과 생명력과 사랑을 가지고 나타나신 분이었습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의 슬픔은 무엇인가? 말씀을 마음대로 할 수있는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요, 그 다음에는 생명을 번식시킬 수 있는 실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하늘의 혈통을 가진 민족은 어디 갔느뇨! 그래서 생명의 중심으로 계시는 하나님께서 말씀의 상대체를 찾고 계시고,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생명체를 갖춘 하나님의 혈족을 찾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이념을 찾으십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사랑을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자 창조이상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처음 들으시는 분들은 이 내용을 잘 모르실지 모르겠습니다.

5-156
새 시대를 이끌어 갈 참종교 출현의 필요성
그러면 끝날은 어떤 시대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이 땅에 없으므로 인류는 동서남북으로 분열되어 수많은 곡절의 노정을 거치면서 말씀의 실체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물질을 빼앗으려는 전쟁시대를 거쳐, 사상전쟁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이제 이 사상전쟁시대를 거치면 양심전쟁시대가 올 것인데 앞으로 올 그때를 왈 종교전쟁시대라 할것입니다.

그런 때를 지난 후에는 어떤 시대가 와야 할 것인가. 심정과 사랑의 경쟁시대가 와야 됩니다. 사탄의 사랑이 크냐, 하나님의 사랑이 크냐 하는 시대가 와야 합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류가 걸어가야 할 운명의 노정입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필연적인 노정임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지금의 때는 무엇을 해야 할 때인가? 사상계 대신 정신계를 형성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마음주의가 나와야 합니다. 만일에 마음주의가 나오면 여러분의 마음은 그 이념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주의가 나와서 기반을 잡으면 천정(天情)이 동하고, 인정이 동해 들어갑니다. 이와 같이 그 이념권내에서 아니 살래야 아니 살 수 없는 그러한 주의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물질적인, 즉 최하의 차원에서부터 싸워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년의 종적인 역사는 물질로부터 정신계, 정신계로부터 마음세계로 쭉 찾아올라가는 역사입니다.

반면 사탄의 권한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역사를 거쳐 나오고 있습니다. 최고라고 주장하던 상류계급에서부터 중류계급, 하류계급으로 내려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사탄권하에 있는 연고로 다 사라져 버립니다.

역사발전과정도 물질 중심한 전쟁, 즉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사상전쟁시대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 또한 다 지나갑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전쟁시대가 오고 마음주의시대가 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 있어서 상류계급도 세계를 지배해 보았고, 중류계급도 세계를 지배해 보았습니다. 이제는 하류계급이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또 역사발전과정을 보면, 인류는 물질을 중심삼고 싸워나오던 시대를 거쳐 왔습니다. 지금은 정신을 중심삼고 싸우는 시대입니다. 앞으로는 양심을 중심삼고 싸우는 시대가 옵니다. 이 양심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싸우는 때가 곧 옵니다. 그래서 앞으로 하늘을 중심한 마음, 그 천적인 마음을 중심삼은 진리, 마음을 통하고 정을 통하고 온 천지와 정을 나누고, `하나님과 나는 하나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진리를 가진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그런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지 안 되는지 두고 보십시오.

종교인들은 옛날부터 물질을 찾아나가지 않고 물질을 포기해 왔습니다. 이들이 가장 어리석은 것 같지만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종교는 역사적인 전쟁의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예수를 믿고 간 사람들은 투쟁역사를 거친 사람들이 간 지옥을 모면할 수 있는 제일 안전한 기반을 닦아 놓은 종교를 믿은 것입니다.

오늘날 자기를 주장하고 돌아다니는 청년남녀들이 `어! 종교!’ 하고 우습게 알지만 그런 때는 지나갑니다. 두고 보십시오. 그런 켸켸묵은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 앞으로 공산당에게 들이 맞습니다. `아이구! 내가 몰랐구나!’ 할 때가 옵니다. 천지운세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제 남아진 최후의 주의는 어떤 주의요? `양심적인 인사(人士)는 다 동원하라’ 하는 표어를 부르짖고 나오는 주의입니다. 이런 주의는 인류가 소망하는 말씀을 대신하고, 말씀을 통하여 실체를 대신하고, 실체를 통하여 정을 대신할 수 있는 주의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양심적인 인사는 동원하라’ 할 때가 올 것을 여러분이 모르고 있었다면 바라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양심적인 도의 생활을 한 사람들이 한번 세계를 흔들어 본 적이 있었나요? 예수께서도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도의 생활을 한 사람들이 세계를 흔들어 본적이 아직 없었습니다.

5-158
하늘의 정병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마음의 세계에서만이 온 우주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에는 장벽이 많아요. 정신세계에는 주의가 사방성(四方性)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나의 통일적인 중심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그것은 정신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노정을 공통적으로 움직여 나가는 마음바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것을 생각해 봤어요? 정신도 분별된 위치에 설 수는 있지만 변치않는 하나의 기준이 마음주의입니다.

우리는 참종교를 찾아헤매 나왔습니다. 6천년 동안 헤매 나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헤쳐 놓고, 역사발전노정의 움직임과 걸어온 섭리노정의 서글픈 곡절을 알고, `이제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본연의 마음이 그립습니다’ 라고 하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늘은 그러한 존재를 찾아 헤매이셨습니다. 오늘도 헤매고 계십니다. 내일도 찾아 헤매실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연고로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민족을 거느리시며 그들에게 선을 지향시키고 양심을 바로잡아 종교라는 명사를 의지하여 그 종교의 도리를 발판으로 세계를 움직여 나오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이념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평면의 직선상을 걷고 있습니다. 역사야 곡절을 거치든 말든, 사상 주의야 어떤 곡절 어떤 투쟁노정을 거치든 말든, 어떤 희생과 어려움에 부딪친다 해도 심적 세계의 이념으로 세워진 종교는 평행선상을 지켜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언제까지나 평행선상만 걸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양심적인 기준을 찾아나가는 거기에도 악이 대립하고 있고 사탄이 반박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 고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하늘의 마음이 일체되는 그 기점 위에 인정(人情)과 천정(天情)이 일체되고, 우리의 이념과 천적인 이념이 일체되는 그 기점 위에 우리의 생명과 하늘의 생명이 하나되고, 우리의 사랑과 천적인 사랑이 하나로 엉키는 그 기점 위에서 하늘과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하늘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되고, 생명이 하나되고, 이념이 하나되고, 사랑이 하나된 인연을 무엇으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타락한 인간 끼리끼리 맺은 정(情)은 인연도 끊지 못하여 울고불고 야단인데 천정에 엉키어 하나되는 그 인연을 누가 끊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아무리 죄악의 힘이 강하고 땅의 권세가 강하다 할지라도 이 마음 근본에서 맺어진 정적인 흐름의 한 기준을 꺾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찾을 때까지 역사는 허덕일 것이며 인류는 도탄 중에서 신음할 것이어늘, 이것을 방지할 용자(勇者)는 땅 위에 없을 것인가? 청년남녀가 있다 할진대는 이러한 책임을 짊어지기 위하여, 이러한 사명의 노정을 개척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하나의 폭탄으로, 하나의 원자탄으로 삼아 가지고 사탄 도성을 터쳐내겠다는 불붙는 폭발의 심정을 가진 용자가 있기를 나는 고대합니다.

오늘도 가야 되고 내일도 가야 되는 탄식과 원한의 길, 때를 넘기면 천추만대 후손들까지도 가야 할 서글픈 노정을 누가 책임지고 막아 줄 것인가? 있다 할진대 하늘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것을 알았으니 우리 때에 이런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먹을 것 먹지 못하고 입을 것 입지 못하고 온갖 어려움과 폭풍이 몰아쳐 온다 해도 `이것을 내가 책임지고 원수들 대해 싸우겠다’할 수 있는 참아들딸, 이러한 용맹성을 갖춘 하늘의 정병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하늘은 바라고 계십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세계가 요구하는 사람이요, 민족이 요구하는 사람이요, 교단이 요구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이 살아 봐야 70∼80년 사는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6천년 동안 허덕이신 것을 알고, 그 하나님의 심정을 안다면, 이 땅 위의 일들이 자기의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탄식할수는 없을 것입니다.

핍박이 있어도 하나님이 당하신 6천년 동안의 핍박에 비하겠습니까? 서러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당하신 6천년의 서러움에 비하겠습니까?몰리고 쫓김을 받더라도 하나님의 6천년의 서러움에 비하겠습니까? 우리는 밟히면서도 변명할 줄 모르고 몰리면서도 변명할 줄 모르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억울함을 당하고 천대를 받아도 변명할 줄 모르고, 하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기 위하여 `아버지여! 인간의 조상이 이러한 곡절을 일으킨 장본인이었사온대 우리 조상을 대신하여 오늘 저를 천대받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수고하신 고난의 노정과 역사노정을 이 시간 하늘의 심정과 더불어 체휼할 수 있는 역사적인 제물로 새워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아버님이여! 제가 아버지의 눈물을 대신하겠사오니, 아버지, 눈물을 거두시옵소서. 제가 아버지의 슬픔을 대신하겠사오니, 아버지, 슬픔을 거두시옵소서. 저의 억울함과 분함으로 아버지의 억울함과 분함을 대신하겠사오니, 이제 억울함과 분함을 거두시옵소서. 사탄 대한 싸움과 역사 이후 지금까지 아버님의 마음에 걸려 있는 구름을 모두 거두시옵소서. 저를 제물삼아 탕감하시옵소서. 제가 있사오니 아버지 위안받으시옵소서’할 수 있는 하늘의 용자, 청년남녀가 나타나기를 하늘은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5-160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승리하실 수 있었던 이유
하늘을 위하여 나선 길이 죽음의 길, 몰림받는 길, 눈물의 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가야 하겠습니다. 그 길은 우리가 울기 전에 하늘이 먼저 우리를 위해 우셨던 길이요, 우리가 슬퍼하고 통곡하기 전에 하늘이 먼저 슬퍼하고 통곡하신 길입니다. 이와같이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6천년 동안 수고해 나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노정은 마음의 주인공을 찾아 헤매는 노정입니다. 이제 이 역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마음의 중심을 찾지 못한 자, 마음의 주인을 찾을 수 있는 심적 기준을 갖지 못한 자는 천적인 사랑은 꿈도 꾸지 말아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믿고 있는 기독교 신자들을 바라보면 이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천정을 통하여 나가는 길이 골수의 길입니다. 인정을 통해 나가는 길은 외적으로 흐르는 길입니다. 이러한 자세로 하늘을 대표하여 선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경거망동인 것입니다. 이러한 무리가 지구상에서 일소되는 날이 끝날 심판의 날임을 여러분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핍박받는 통일교회를 찾아왔습니다. 왜 이곳을 찾아왔습니까? 여러분은 생명을 굶주린 자들이요, 마음의 조갈증을 느끼는 자들이요, 이념의 결핍증을 느끼는 자들이요, 생명의 기갈을 느끼는 자들입니다. 그런 고로 몰리고 몰리어 상한 몸을 끌고 여기를 찾아왔는데 이곳에는 또 상한 몸에 가해지는 채찍이 있으니 여러분,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상한 몸을 끌고 온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늘의 어려움에 비할 바 못됩니다. 이것을 예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십자가의 죽음의 고개에서도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보내셨으나 민족을 잃어버리게 된 하나님은 얼마나 서글프실 것인가 하는 것을 느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서글픈 심정을 알고, 민족을 위해 4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을 염려하는 마음에 사무쳤기에 자신 일신을 사탄에게 내주면서 원수를 대하여 복을 빌 수 있는 늠름한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기독교 신자가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어진 사명을 나누어 짊어져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우리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이것을 알았으니 힘이 다하는 날까지 이 목표를 향하여 달리겠습니다. 달리다 힘이 없어 쓰러지면 또 힘을 주시옵소서’ 하고 나서야 합니다. 기도하면 또 힘을 주십니다. 오늘도 내일도 아니 10년, 20년, 40년을 달릴 각오를 하고 나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런 각오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헤매야 되겠습니다.

이 땅에 성전을 건설하기 위해 오신 예수를 배반한 이스라엘민족은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한 고로, 성전의 실체인 예수를 잃어버리고 2천년 동안 광야를 유리고객하는 민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60만 대중앞에 하늘을 대표하여 모세를 민족의 지도자가 아니라고 배반하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이 모세를 저버린 것이 예수를 배반할 수 있는 역사적인 조건이 된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곡절의 역사의 자리에 되돌아와 가지고, 끝날에 처한 오늘날의 온 세계 인류는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 2천년 과정을 거쳐, 세계적인 가나안복귀를 위한 40년 노정을 중심삼고 1차, 2차 세계 대전을 거쳤고, 이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위험 속에 살고 있는데, 섭리의 중심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 채 허덕이고 있습니다.

어떠한 학설이나 어떠한 논리를 근거로 하여 실천해 보아도 해결책을 찾지 못해 허덕이고 있고, 자기들이 주장하는 실증적인 영원한 기준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내용과 심적인 기준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도 허덕이고, 윤리도 허덕이고, 철학도 허덕이고, 어떤 주의도 모두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자들까지도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 때가 세계의 종말시대, 처참함 광야시대입니다. 중심존재들이 중심을 찾지 못하고 천륜을 배반할 수 있는 때요, 가지고 있던 중심까지도 잃어버릴 수 있는 때입니다.

5-162
끝날의 성도들이 가져야 할 신앙자세
오늘날 이 시대에 우리는 세계 가나안복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쓰러진 이스라엘민족이 되지 말고 제2의 이스라엘의 이념을 갖추어, 모세를 배반한 민족을 박차고 가나안 땅을 탈환하겠다고 외치고 나서던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인물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성경은 끝날의 두감람나무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때가 끝날에 올 것입니다. 그때 세계 기독교인들은 광야에서 유리고객하던 60만 대중과 같이 허덕이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2의 선민적인 이념을 새롭게 인식하여 새로운 이념을 갖추어 가지고 지금까지의 모든 잘못된 이스라엘의 생활습관을 박차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중심삼고 나아가자, 행진하자!’고 할 수 있는 무리가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런 고로 끝날에 처해 있는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은 새로운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새로운 가나안 복지에 갈 수 있는 사상관념으로 무장해야 할 절박한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념동산을 가로막고 있는 원수들을 대해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심정적인 무장을 한 용사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막연하게 황야를 떠돌고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여호수아와 갈렙의 뒤를 따라 새로운 가나안 복지를 찾아 나선 2세들처럼, 모세가 바로궁중에서 포악한 마수를 박차고 나올때 이상의 결심을 갖고, 과거의 민족이 갖고 쓰러졌던 모든 역사적인 관념을 일소해 버려야 합니다. `그런 관념을 일소해 버리고 나아가자’고 부르짖는 음성이 땅 위에 들려오면 신자들은 귀를 기울이고 똑똑히 들어야 될 것입니다.

이제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 성도들은 하늘을 향하여 역사적인 기도를 올려야 되겠습니다. 어떤 기도냐? 모세가 시내산에서 석판을 받기 위해 드린 기도 이상의 기도,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상에서 드린 이삭번제 때 이상의 기도, 예수가 겟세마네동산에서 생사를 걸어 놓고 드린 기도 이상의 기도,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를 향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찾아 일보 일보 걸으며 마음으로 드리던 기도 이상의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하고자 하는 심정에 사무쳐 하늘 땅을 붙들고 눈물짓는 무리는 어디 있을 것인가? 찾아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