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7 to 5-131: 승리의 나라를 회복하자

승리의 나라를 회복하자
1959.01.04 (일), 한국 전본부교회

5-107
승리의 나라를 회복하자
창세기 1:27-28 창세기 2:15-17 사도행전 1:1-9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새해에 이 한날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하옵니다. 이 첫시간에 아버님 앞에 나왔사오니 부끄러움이 없는 참다운 경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어서, 아버님께서 즐거워하실 수 있는 이 시간이 되시옵소서.

저희들이 아버님 앞에 너무나 불충스러웠던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섭리하시는 뜻 앞에 저희의 모든 것을 버리고 아버님이 원하시는 제단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남을 수 있는 모습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아버님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의 몸과 마음을 아버지께 드리고자 하오니 받아 주시옵고, 친히 운행하시어서 아버지께서 분부하실 말씀을 내려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지금까지 저희들이 뜻을 붙들고 싸워나왔던 그 모든 내용들이 이 한 해에 있어서는 승리로 귀결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온 정성을 바치어 아버지께서 기뻐하는 실적을 드러낼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당신의 아들 딸들이 기뻐할 수 있는 은사를 내리시옵고, 택해 세우신 당신의 아들 딸 위에 친히 승리의 표적을 남겨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에도 외로운 식구들이 지방에 널리어서 아버지 앞에 경배하는 곳곳마다 사랑과 은사의 손길을 펴시옵고, 긍휼의 은사를 내리시옵소서.

아버지의 전체의 뜻 앞에 충절을 다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 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땅 위에서 당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곳곳마다 사랑의 손길을 펴시옵고, 긍휼의 은사를 내려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면서, 이 한날 모든 것을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5-108
말 씀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내용은 `승리의 나라를 회복하자’,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자’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의 뜻은 `승리’라는 뜻인 고로 `승리의 나라를 회복하자’ 이러한 뜻의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릴까 합니다.

5-108
잃어버린 사랑을 복귀하기 위한 섭리역사
방금 본 창세기의 말씀 가운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어놓고 축복해 주셨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축복은 이루어진 축복이 아니라 약속의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는 크나큰 소망을 갖고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그 날을 마음으로 흠모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처한 아담 해와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소망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 했습니다. 따먹지 말라는 그 말씀을 믿고 따를 때에 아담 해와는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일남 일녀(一男一女)로서 하나의 가정의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반드시 소망을 가진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영원한 관계를 맺고, 인연을 맺으려면 믿음의 과정을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소망이 이루어지고 믿음이 이루어지는 날 비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도 고린도 전서 13장에 말하기를, “믿음 소망 사랑 이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타락으로 소망을 잃어버렸고,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소망과 믿음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6천년 복귀섭리 역사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아담 대신 혹은 해와 대신, 하나님께서 피조만물 앞에 허락하신 축복을 소망으로 삼아가지고, 그 소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일과 하지 말라 하신 일을 분별하여 실천해야겠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소망과 믿음을 갖고, 나아가 실천생활에서 승리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개인복귀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개인이나 가정과 교회, 온 피조만물까지도 이러한 권내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념을 가지고 피조세계를 창조하셨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런 것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간들은 소망을 찾아 나오고, 믿음을 찾아 나오고, 사랑을 찾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6천년 역사를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면, 구약시대는 소망을 바라보면서 실천해 나온 시대요, 신약시대는 믿음을 찾아 실천해 나온 시대입니다. 따라서 다가올 성약시대는 사랑을 찾아 실천해나가는 때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소망을 찾기 위한 섭리시대였던 구약시대에는 할례를 통해 선민이라는 조건을 세워 나왔고, 신약시대에는 물 세례와 불(성령)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믿음을 세워 나왔습니다. 그 다음 성약시대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인을 맞음으로써,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6천년 역사는 무엇을 하기 위한 역사였는가.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역사였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수고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소망과 믿음의 시기를 지나 사랑의 시대에 처해 있어야 할 때인데, 아직 믿음의 때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망은 무엇을 상징하였느냐?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을 상징했습니다. 또 믿음은 무엇을 상징하였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이 되기 위한 것을 상징하였습니다. 참아들 딸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믿음을 상징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내 개체가 완성한 후에 가정을 찾아 들어가야 거기에는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성립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5-110
사랑 믿음 소망을 가지고 천국을 회복해야 할 우리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6천년 동안 복귀섭리역사를 해 나오시는 데있어서 인간 앞에 소망의 하나님, 믿음의 하나님은 될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 사랑의 하나님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자신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소망의 하나님, 믿음의 하나님을 토대로 하여 사랑의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생활적인 환경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환경을 타개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때가 바로 이 때인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나 하나를 찾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잃어버렸던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에서 원죄 없는 본연의 개체를 갖기 위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최후에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가. 먼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개체 개체끼리 합한 하나의 가정을 찾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사랑할 수 있는 그 가정을 중심삼아 거기서 벌어지는 종족을 찾고 민족과 세계를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의 소망의 때, 혹은 믿음의 때가 다 지나가기 전에 소망과 믿음을 다 찾아 세워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의 한 개체가 6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전체를 결실한 모습, 즉 완전한 아담 해와의 한 모습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새로운 가정을 형성해야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도 하늘나라를 약속하고 이 땅에 오셨으나 그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과거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하늘을 증거하였지만 그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갔습니다. 따라서 그 모든 역사적인 소망과 믿음으로 찾아나오던 천국, 즉 승리의 동산을 찾아야 할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하늘이 기뻐하는 개체를 찾아가지고 하늘이 기뻐하는 가정을 찾아들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을 찾으려면 참부모를 찾아야 되고, 참부부, 참형제를 찾아야 됩니다.

이것을 찾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망을 상징한 시대는 구약시대요, 믿음을 상징한 시대는 신약시대입니다. 앞으로는 사랑을 상징하는 시대가 오는데 그 시대를 성약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인연이 천상으로부터 지상세계에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오기 전에는 구약시대에 왔다 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소망의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당시의 신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믿음을 세울 수 있는 상대였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성약시대에 있어서는 소망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고 믿음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 사랑할 수 있는 존재를 찾아 세우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6천년간 섭리해 나오신 전체의 뜻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끝날에 여러분 한 자체가 아버지 앞에 사랑의 제물로서 혹은 사랑을 가진 하나의 실체로서 서고자 원할진대, 하나님의 소원을 대신하고 소망을 대신하고, 믿음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이러한 자격자가 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6천년 간 슬퍼했고, 6천년 간 고통을 당했고, 6천년 간 억울함을 당했던 이 모든 내적 심정을 여러분들이 해원시킨 후에 라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슬픔이 생겼고, 하나님의 고통이 생겼고, 하늘의 싸움이 생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슬픔과 고통을 해원해드려야 되겠고, 하나님의 싸움을 대신 싸워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런 후에 `너는 나 대신 싸워 승리한 장한 아들 딸’이라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라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5-112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이스라엘이 되어야 할 끝날의 성도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되는데, 과거 소망시대에 받고 나왔던 그런 사랑은 우리에게 필요없습니다. 또 믿음시대에 받고 나왔던 하나님의 사랑도 필요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원한의 역사를 넘어서 `너만을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축복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하늘 땅에 맺혀진 원한을 해원해 드려야만 예수와 여러분들이 신랑 신부의 인연을 맺을 수 있고 사랑의 조건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복귀섭리의 전반적인 뜻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한 자체가 되었다 할진대 그는 구약시대를 대신한 자요, 신약시대를 대신한 자요, 성약시대를 대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까지 영계에 가 있는 낙원의 영인들과 현재 지상에 살고 있는 기독신자와 또는 앞으로의 재림때의 찾아질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성도들과 합하여 하나의 뜻을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거의 믿음 지향적이고 소망 지향적인 신앙권내에 왔다 간 사람들, 즉 구약시대부터 신약시대까지 거친 수많은 영인들은 끝날에 성약시대의 사람을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들은 이제 하늘 땅의 모든 것을 대하여 싸워 이길 수있는 승리자의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역사적인 하나의 결실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하늘의 전체 섭리를 보게 될 때 지금까지 천상의 낙원에 가 있는 영인(靈人)들은 소망의 이스라엘이요, 현재 지상세계에 있는 기독신자들은 믿음의 이스라엘입니다. 앞으로는 또 새로운 이스라엘의 세계가 와야 되는데, 그 이스라엘은 어떠한 이스라엘이냐 하면 사랑의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이스라엘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를 가진 이스라엘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과거의 소망시대와 믿음시대를 거쳤다는 하나의 조건을 완결지어 아버지 앞에 떳떳이 설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예수 전시대까지의 성도들을 제1이스라엘이라 하고, 예수가 왔다간 이후 지금까지 예수를 믿고 있는 성도들을 제2이스라엘이라 하고, 앞으로 재림시대에 재림주를 모시고 직접적인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제3이스라엘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끝날에 있어 이 제3이스라엘의 입장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역사노정에 처음 나타나는 무리입니다. 또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서 사랑이라는 명사를 걸어 놓고 친히 대할 수 있는, 창세 이후에 처음 나타난 무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무리가 나타나지 않으면 하늘의 소망의 섭리도, 믿음의 섭리도 전부 다 깨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끝날에 처해 있는 오늘날 우리들의 사명이 얼마만큼 중요한가 하는 것을 다시 느끼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이 땅을 바라보게 될 때에 이 땅에는 제2이스라엘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계(靈界)에는 제1이스라엘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하나님이 통솔할 수 있는 제3이스라엘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파 편성으로부터 교회 편성 혹은 가정 편성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이 땅을 대해서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야곱, 모세, 예수때로부터 12형제, 12장로, 12사도와 같은 천적인 수를 찾아 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의 모든 원칙의 수를 찾아 가지고, 이수로 말미암아 천상(天上)이나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의 반열(班列)에 연결시켜 하나로 통합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섭리의 목표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의 천성문은 하늘나라에서만 열릴 것이 아닙니다. 지상에서도 열어서 넓혀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5-114
지파 편성의 의의와 중요성
지금까지 하나의 지역적인 한계권내에 있었던 그 천성문이 예수를 믿고 가는 성도들이 많아짐으로 말미암아 점점 넓혀져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런고로 여러분이 끝날에 복귀의 뜻을 세워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하늘 땅을 대신한 영광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오늘날 모든 피조만물은 하늘 나라의 천성문을 통한 존재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자신들은 어떠한 지파에 속하여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에 기독교의 교파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그 교파는 열 두 사도를 대표하는 어떠한 하나의 지파에 속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이 지상을 통솔하고 움직일 수 있으며, 명령할 수 있는 이러한 지파 편성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 땅을 하늘은 이 시간도 염려하고 있습니다. 모세시대의 12지파는 야곱시대의 12형제를 대신하였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모세때까지의 택한 백성으로 세워진 이 무리는 야곱가정을 중심한 복귀시대의 지파를 대신한 민족복귀형의 무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12지파를 중심삼아 가지고 4백년 동안 번식한 자녀들은 모두 각 지파권내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지파권내에 들어와 있는 백성들은 세계를 대표하여 복귀의 사명을 갖고 오신 예수의 12제자를 중심한 지파권내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모세로 말미암아 예수 때까지 형성된 이스라엘민족은 예수의 12제자를 중심삼은 지파에 편성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귀적인 사명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당시 예수가 와서 죽지 않고 뜻을 이루었다면, 구약시대의 영인(靈人)들이 제2이스라엘이 되고, 예수를 믿어 하늘의 참다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무리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제3이스라엘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뜻이 이루어지지 못한 연고로 제2이스라엘에 대한 뜻은 그대로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2이스라엘에 대한 뜻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연장되어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독교신자들이 예수 당시에 살고 있던 택한 선민이 담당해야 할 사명을 보충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12사도를 중심삼고 이 땅 위에서 이스라엘의 통솔할 수 있는 지파 편성을 하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서러움, 예수의 서러움, 성신의 서러움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의 목적을 성취시켜 드려야 되겠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시켜 드려야 되겠는데, 그럴려면 먼저 무엇을 하여야 될 것인가? 하늘이 이 땅 위에 전세계를 대신하여 세울 수 있는 하나의 지파를 편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파 편성을 하는 데는 야곱의 12아들, 모세의 12장로, 예수의 12사도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야곱과 12아들의 관계는 부자의 관계였습니다. 따라서 모세와 12장로의 관계도 부자의 관계가 되어야 했는데 부자의 관계가 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와 사도들 역시 부자의 관계가 되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복귀섭리 노정에 있어서 하나의 슬픔의 조건이 남아지게 된 근거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야곱과 12아들은 부자의 관계에 서 있었으나 모세와 12장로, 예수와 12제자는 부자관계의 인연이 맺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자기 민족의 아버지로 모시고, 즉 자기의 민족을 하늘나라의 승리한 민족으로 세워줄 수 있는 분으로서, 하늘이 세우신 민족적인 아버지로 알고서 부자관계의 인연을 맺어 가나안 땅을 향해 출발하였던들, 이스라엘민족이 모세를 배반하였을 리 만무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와 12지파가 부자관계의 인연을 맺지 못한 연고로 모세가 슬퍼해도 그 민족은 슬퍼할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사이가 갈라지니 여기서 하나님께서 사랑을 통하여 복귀하려 하시던 전체의 뜻에 금이 가기 시작하여 택함받은 이스라엘 60만 대중은 광야에서 쓰러지게된것입니다.

5-116
지파 편성을 하는 데 갖추어야 할 요건
그 후 이스라엘민족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중심삼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가 올 때까지 가졌던 소원은 한 분의 주를 맞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모세를 민족적인 부모로 모시지 못한 연고로 이스라엘민족은 앞으로 오실 세계적인 부모를 맞이해야 할 한 때를 바라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참아버지격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바라보면서 이스라엘민족은 준비하여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땅 위에 메시아가 탄생한 후 이스라엘민족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서 12사도와 함께 예수와 부자의 인연을 맺었더라면, 예수와는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고, 사도들도 서로 갈라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이 예수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부자관계의 인연을 맺지 못한 것이 오늘날 역사적인 서러움이 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때에 있어서 우리들은 하늘이 소망하고 찾으시는 12지파의 지파장과 같은 그러한 대표자를 다시 세워 오시는 주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부자의 인연을 맺어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는다 할진대는, 역사노정에 찾아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복귀노정을 거쳐온 우리 인간들이 야곱, 모세, 예수때까지 4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뜻을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잃어버린 입장에 서고 말았습니다. 아담 이후 예수까지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뜻을 전부 무너뜨린 것과 같은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민족이 저끄러뜨린 죄상을 다시 책임지고, 예수가 왔다간 이후 2천년 동안 수고한 모든 것까지도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책임을 감당하고 새로운 지파를 편성하여 예수와 부자의 관계로 인연되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선조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전부 유업(遺業)으로 삼고, 그 지파를 역(逆)으로 편성해 들어갈 것을 바라보면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파 편성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스라엘민족이 되려면 아브라함시대에는 할례를 받아야 했고, 예수님 시대에는 세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예수님의 인(印)과 아버지의 인(印)을 맞아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새로운 지파 편성을 하여 나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인을 맞고 아버지의 인을 맞아야 됩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섭리하여 오셨습니다. 소망적인 구약시대와 신앙적인 신약시대를 거친 후에 사랑적인 성약시대로 넘어가려면,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안고 사랑할 수 있다는 입장을 세워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이런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완성된 성별된 자체가 된 후에는 하늘이 이루고자 하셨던 본연의 아담 가정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담의 형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잃어버린 인간들은 형제끼리 합하여서 부모를 복귀하는 역사노정을 거쳐 왔습니다. 아담가정으로부터 노아가정, 야곱가정을 거쳐 찾아 내려오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개체가 아버지의 인정을 받은 후에는 형제를 찾아야 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형제라면 내 형제뿐만이 아닙니다. 그 형제는 아담으로부터 야곱까지 와서 즉, 2천년 하나님의 섭리를 완결지을 수 있는 기준을 조성하여 하늘의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한 부모가 나온 후에야 비로소 12형제를 가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복귀섭리 노정에 있어서 내 개체가 아버지 앞에 인정받은 후에 아담가정의 3수(數)를 거치고, 노아가정의 3수를 거치고 야곱가정의 3수를 거쳐서 그 다음에 야곱가정의 12수를 거쳐 나가야 합니다.

나아가 이것을 거친 후에는 70수를 거쳐 나가야 하고, 그 다음에는 문도형(門徒型)의 120수를 거쳐 나가야 할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다운 형제를 찾아야 할 때가 바로 이 때입니다. 참다운 형제를 찾은 후에는 참다운 부모를 찾을 수 있습니다. 부모를 찾은 후에 형제를 찾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찾은 후에야 부모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것을 기준으로 생각해 볼 때 거꾸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참다운 부모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형제를 통하지 않고는 부모를 모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5-118
3수와 12수를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
지금 하나님께서 제일 염려하시는 것은 하늘을 대표한 참된 부모가 없는 것이 아니고 참된 형제가 없는 것을 염려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섭리적인 뜻을 책임져야 했던 예수님은 제자들을 참다운 형제의 입장에 세워놓기 위하여 세 제자를 택했고 12제자를 택했습니다. 그런데 세 제자가 하나되지 못하고 12제자가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참된 부모를 복귀할 수 있는 길을 깨쳐버렸다는 이 서러운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은 참다운 자녀의 자리를 거치고 참다운 부모의 문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6천년 섭리의 소망으로 남겨진 하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 개인에 있어서의 가인과 아벨의 싸움에서 승리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늘 앞에 있어서 나는 신부요 예수님은 신랑, 즉 신랑된 예수님은 아벨이요 우리는 가인으로서, 아벨되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될 것인고? 신부 혼자서 찾아가서는 신랑된 예수님을 맞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신부 자신만이 가서는 신랑된 예수님을 못 만난다는 것입니다. 형제와 하나되어 나아가야 만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신랑의 이름을 갖고 오시는데 신랑의 문을 통하고 난 후에는 무엇을 찾을 것인고? 하늘의 잃어버린 가정을 찾을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승리의 길을 개척해 나아가고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받아야 할 우리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내 마음과 몸에 있어서 내 마음의 죄를 굴복시키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생활권내에서 몸을 자유자재로 완전히 주관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신랑된 예수를 아벨삼아 내 몸이 신부의 입장에서 또는 가인적인 입장에서 그와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서 일이 종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이 무어냐 하면, 신랑되신 예수님과 내가 완전히 하나된 후에는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찾기 위해 애쓰던 세 제자를 대신하는 존재들을 찾아야 됩니다. 또 12제자를 대신하는 존재들을 찾아야 합니다.

어찌하여 예수님은 세 제자를 찾았던고? 아담가정의 세 아들을 대신한 제자를 찾아가지고 참된 아담의 입장에 서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이 어디서부터 형성되었느뇨? 야곱으로부터 형성되었습니다. 아담가정의 세 아들을 대신한 사람을 찾은 연후에 야곱 때에 와서 비로소 승리의 조건을 세웠습니다. 나아가 그 세 아들의 기본으로 하여 12제자가 하나되어 이 땅 위에서 승리적인 발판을 세울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 제자와 12제자가 다 배반하고 나니 예수님께서는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님의 신부의 입장에 서려면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참다운 가정을 건설하기를 원하셨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남겨 놓았던 그 몇몇 조건을 찾아 가지고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랑되신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의 3수를 찾는 노정이 오늘날 우리 교회에 있어서는 삼위기대 편성입니다. 따라서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서로 하나가 못된다면 하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삼위기대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아담가정에서 잃어버린 것을 다시 복귀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2천년 지난 야곱 때에 와가지고 열 두 형제를 찾아세워 섭리의 뜻을 세워 나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3수를 기본을 하여 12제자를 찾아 하나가 된 연후에야 비로소 여러분들은 부모를 모실 수 있게 되고, 나아가 하나의 지파를 대신할 수 있는 종족권내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아담가정에서부터 야곱 가정때까지 2천년 역사를 탕감하기 위한 절대적 기준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도 이 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요, 예수님도 이 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5-120
하늘나라의 한 가족이 되려면
그런데 모세는 12지파가 섭리의 뜻 앞에 있어서 무엇을 뜻하는 수이며 70장로가 무얼 뜻하는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3제자를 택해 놓고 또 12제자를 택해 놓고 이 70문도를 세워 놓고 역사적인 인연을 맞추어야 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섭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기반을 갖추어서 반드시 민족의 발판 위에 서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민족적인 발판을 닦아놓는 책임은 예수님께서 감당해야 할 것이 아니라 세례 요한이 감당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민족적인 발판이 깨어지게 되었고, 4천년간 섭리하셨던 모든 것이 깨어진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다시 아담가정으로 되돌아가 복귀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3제자로부터 12제자와 70장로 그리고 120문도를 찾아 세우기 위한 2차적인 노정을 걸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민 이스라엘의 입장에 서야할 유대백성들이 하늘 앞에 전부 다 버림받은 바 되어, 믿지 않고 있던 어부들과 이방의 사람들이 이 축복을 계승하여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다 가신 후 3제자의 지파는 어디 갔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다 가신 후에 12제자의 지파는 어디 갔던가. 없습니다. 70장로와 120문도도 말씀에 대한 조건은 세워 놓았으나 실체(實體)에 대한 조건을 세워 놓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도저히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세계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할 재림이상시대(再臨理想時代)에 있어서 재림주가 이 땅에 와서 뜻을 이루시려면, 예수님께서 세우려 하셨던 그 발판을 세우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귀의 사명을 종결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은 먼저 세 제자를 찾았다는 기준을 맞춰 세울 것입니다. 찾아진 그 세 제자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수 있어야 되겠고, 셋이 하늘의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12수를 찾아야 됩니다. 이것이 최소한도의 하늘의 발판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천국백성을 찾는 것이 아니고, 천국 가정을 찾는 것입니다. 백성이 있으려면 먼저 가정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가정을 찾은 후에야 비로소 부모를 모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꿀잡이입니다.

구약시대는 백성을 찾는 때요, 신약시대는 자녀를 찾는 때요, 성약시대는 부모를 찾는 때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부터 가정을 찾는 시대였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소개하셨으며, 사랑의 도리를 세워 놓았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복귀시대를 거쳐서 새로운 이상시대(理想時代)로 넘어가야 할 우리는 어떠한 입장에 처해 있느냐?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서 장자(長子)의 사명을 감당하시고 하늘 앞에 서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오셨으나 이 책임을 완성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2천년 동안 연장되었으니,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이것을 대신 탕감복귀해 드려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끝날의 성도인 우리들은 이러한 중대한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하늘나라의 한 가족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늘이 최소한도로 찾고 있는 것, 즉 노아가정에서 잃어버렸던 그 수를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 3수를 보충했다 해서 하늘앞에 설 수 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담가정의 3아들을 대신할 수 있는 수가 야곱 때에 와서 비로소 종결되었기 때문에 지금 이때는 그 3형제의 조건만 세워서는 안 되며, 기필코 12수의 조건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늘가정으로 복귀한 기준을 땅 위에 세워 가지고 아버지 앞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각각 이런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는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3형제를 만들어야 앞으로의 새 시대에 부모의 입장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끝날은 어떠한 때냐? 부모가 나오는 때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나오되 우주적인 부모가 나오고, 민족적인 부모가 나오고, 가정적인 부모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우주적인 부모를 본받고, 혹은 교단적인 부모를 본받은 후에야 비로소 가정적인 부모를 찾아나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5-122
하늘 백성이 될 수 있는 조건
6천년 복귀섭리 역사노정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인류를 대하여 참부모의 입장, 우주적인 부모의 입장에서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예수와 성신은 지금까지 택한 제2이스라엘을 대해 민족적인 부모의 입장에서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민족적인 사명을 대표하고 교단적인 사명을 대표했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입장에 서나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예수를 중심삼아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가정적인 대제사장이 되어야 하고 가정의 참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끝날 이 땅 위에 찾아 세우시지 않으면 안 될 섭리의 중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단적인 부모의 입장에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세계적인 부모의 입장까지 나아가기 위해 재림이라는 명사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대제사장의 책임을 지고 오실 분이 누구냐 하면, 그분은 세계적인 부모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이 땅을 바라보게 될 때에 우주적인 참다운 부모가 없고, 교단적인 참다운 부모가 없고, 가정적인 참다운 부모가 없습니다.

그러면 참다운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각자가 교단적인, 대제사장의 입장에 있는 교단적인 부모를 모신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적인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또 그 교단적인 부모는 천주적(天宙的)인 부모를 모시지 않고는 완전히 교단적인 부모의 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섭리역사가 종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하나님의 뜻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체 복귀의 사명을 종결지어야 할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먼저 우주적인 부모를 찾아 모셔 놓고 교단적인 부모를 찾아 모셔야 되겠습니다. 이 일을 하여야만 가정적인 부모의 자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국가를 보더라도 거기에는 대표자가 있고, 종족에는 종족의 대표자가 있고, 가정에는 가정의 대표자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런 전체 세계와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주적인 부모, 교단적인 부모, 가정적인 부모를 모시고 나아가야만 하늘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전세계 인류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우주적인 부모를 찾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 신자들은 교단적인 부모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우주적인 부모가 나타나는 날이 바로 재림의 날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교단적인 부모를 상봉시킬 수 있는 섭리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하늘은 6천년 동안 섭리의 뜻을 세워 나오셨으나, 교단을 중심삼고 대제사장의 책임을 지고 와야 할 재림주의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될때, 신랑 신부라는 약속권내의 섭리는 이루었으되 신랑 신부가 교단을 중심삼고 생활할 수 있는 참부모의 자리에는 아직까지 나가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부모의 위치가 결정되기 전에는 참다운 자녀들로 이루는 참다운 가정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우주적인 부모의 위치가 결정되기 전에는 교단적인 부모의 위치가 결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에게 부모는 있으되 그 부모는 참부모가 아닙니다. 그 부모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은 부모가 아니예요.

그러면 끝날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들이 살아 있는 이 때에 우주적인 부모를 모셔야 되겠고, 교단적인 부모를 모셔야 되겠고, 그 다음에는 가정적인 부모까지 모셔야 되겠습니다. 즉 3대의 부모를 모셔야 되겠습니다.

가정은 백성을 대표할 수 있는 형(型)이요, 교단은 자녀를 대신할 수 있는 형이요, 우주적인 부모는 참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형입니다.

오늘날 땅 위에 인간들이 살고 있으되 하늘이 허락한 참다운 부모의 사랑권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부모와 피와 살이 상통(相通)하는 이러한 인연이 나면서부터 영원한 세계까지 연결되지 않은 이것이 서러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적인 부모로부터 교단적인 부모와 우주적인 부모와 하나님의 사랑이 엉크러져야만 비로소 6천년 전체의 사랑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고 설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필히 가야 할 노정인 것입니다.

5-124
우리가 서 있는 자리와 해야 할 일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들은 아직까지 가정적인 참다운 부모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적인 참다운 부모의 자리를 찾아 나가야 되겠는데, 그 부모를 찾는데는 그냥 찾을 수 없습니다. 왜? 떨어져 내려갔으니 다시 찾아 올라가기 위해서는 형제의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참다운 부모를 찾아나가고 혹은 내 자신이 참다운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역사적인 해원(解寃)의 조건을 들어서 탕감했다는 기준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은 여러분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부모를 모셔야 될 입장에 있으니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형제의 기반을 닦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삼위기대의 의의입니다.

편성된 삼위기대(三位基臺)의 형제들이 하늘의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중심을 갖추어 가지고 3형제가 하나되고 12형제가 하나될 때 비로소 하늘나라의 가정으로서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가정은 부모를 확대시켜 교단이면 교단,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를 대표하는 그러한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그 위에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준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교단적인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세계적인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준비를 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야곱 때에도 가정적인 기준을 세워 놓았지만 그 후손들이 믿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기준이 다 깨어졌습니다. 모세 때에도 민족적인 가정의 기준, 민족적인 부모의 기준을 닦아 내려왔으나 믿지 못하여 다 깨져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땅 위에 오셔서 세계적인 가정의 기준을 닦아 놓으려 하셨으나 인간들이 믿지 못한 연고로 그 뜻이 다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간은 소망을 갖고 있고 믿음을 갖고 있으되, 사랑은 갖고 있지 못합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소망을 잃어버렸고, 믿음을 잃어버렸고,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찾아나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우리는 새로운 소망을 가져야 되겠고, 새로운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새로운 소망과 새로운 믿음이 화하여 하나될 수 있는 형제들을 갖추어 놓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야곱 이후 소망으로 찾고 예수님 이후 믿음으로 찾던, 그 모든 전체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기준을 여러분 실체(實體)를 통하여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실체적인 조건을 다 구비하였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러한 우리 한 자체들을 보고 소망의 존재요 믿음의 존재라고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은 하나님을 소망으로 바라보고 나왔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소망과 믿음의 결실을 갖춘 실체가 나오게 될 때 그를 대해서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소망을 가질 수 있고 우리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만, 하나님의 사랑이 세계와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탕감복귀원칙에 따라 여러분들의 중심에 부모의 사랑이 성립되어야만 부부의 사랑이 성립됩니다. 나아가 부모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이 성립되어야만 형제의 사랑이 성립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하나입니다. 부부의 사랑은 부모를 중심삼아 번식하기 위한 것이요, 형제의 사랑은 이 부부를 대표하여 번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출발하여 점점 확대시키기 위한 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입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이 이것을 찾아들어가는 데는 최소 단위인 형제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형제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이상세계를 건설할 수 없는 것입니다.

5-126
참부모를 모시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러면 참다운 부모를 모시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참다운 부부가 되어 참다운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위에 참부모를 모실 수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믿고 따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믿고 따라는 그 마음 만큼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믿고 따를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래가지고 예수가 찾고자 했던 가정의 형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럴 때에 만민은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만들어 주기 위해 삼위기대를 편성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앞으로 무엇을 한다고할 때 혼자 해서는 안 됩니다. 전도를 하더라도 혼자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삼위기대를 이루어서 자기들이 부모의 입장에 섰을 때에도 형제끼리 하게 해서는 안 되고 그들과 합해야 됩니다. 부모와 형제가 합해야만 가정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한 민족형을 갖추려면 이러한 가정이 12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10수 이상 넘어야만 민족적인 조건을 대신 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120명의 문도를 세웠던고? 아담부터 노아까지 10대요, 노아부터 야곱까지 12대입니다. 이 2천년 전부를 대신한 종적인 결실체가 야곱의 12아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종적인 12수를 중심삼았습니다.

노아부터 야곱까지의 12대와 노아부터 아담까지의 10대를 대표하는 수를 갖추기 위하여 12수에 10을 승하니 120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복귀하기 위한 전체수를 대표한 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날 여러분을 대해 전도하라는 말을 많이 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땅 위에 사는 동안 120명을 전도하고 가야 됩니다. 그것을 못하겠으면 12사람이라도 전도해야 됩니다. 12사람을 전도하되 그 12사람만이면 안됩니다. 120명 전도는 못했지만 횡적으로 120명을 만들 수 있게끔 해야 됩니다. 즉, 120명이 횡적으로 화(和)할 수 있게라도 해야만 복귀의 사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에게는 승리의 나라를 건설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승리한 나라 가운데는 승리한 하늘 땅을 대신할 수 있는 참부모가 있어야 되겠고, 그 다음에는 교단을 비롯하여 세계적인 모든 종교를 대표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참부모도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 가정을 대표할 수있는 참부모도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횡적으로 보게 되면 교회는 사회성을 띠고 있고, 국가는 세계성을 상징해 나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종적으로나 횡적으로 인연을 맺지 않는다 할진대는, 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한 가정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가는 이 길이 천국 가는 길이니 여러분은 기필코 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가정을 맡을 사람은 가정적인 책임을 해야 됩니다. 혹은 교회를 책임진 사람은 교회적인 책임을 다해야 되겠고, 더 큰 사명을 맡은 사람은 더 큰 사명의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모양과 움직임이 같습니다. 즉 사명적인 분야가 다를 뿐이지 그 생활형(生活型)도 같고 생활방식도 같아요. 범위가 크냐 작으냐 여기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은 가정의 입장에서 세계를 대신할 수있는 탕감의 조건을 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민족을 대신할 수 있고, 교회, 교단들을 대신하여 이것을 세워 나가야만 비로소 우주적인 참부모의 이념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또한 오늘날 복귀의 이념을 성취시키는 데 있어서 땅 위에 사는 우리들의 책임이 얼마만큼 귀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모세노정이 예수님의 노정이요, 예수님의 노정이 우리들의 노정입니다. 모세가 12지파와 70장로를 중심삼고 60만 대중을 거느려 나왔고, 예수님께서도 12사도와 70장로, 120문도를 중심삼고 역사하셨는데, 이스라엘민족이 함께 움직여 나왔더라면 예수님께서는 세계적인 발판을 잡아 가지고 출발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민족이 받들어 드리지 못한 연고로 예수님께서는 뜻을 이루지 못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재탕감시대(再蕩減時代)에 있는 우리들은 어떠한 사명을 해야 되는가 하면, 서로 단결하여 셋이 12명을 이루고, 12명이 120명을 이루고, 120명이 60만, 그 이상까지 움직여낼 수 있는 때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만들어 놓아야만 하나님의 전체적인 섭리를 중심삼아 하늘의 전권적(全權的)인 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민족을 지나 국가적인 단계에까지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앞으로 소망의 한때를 바라보며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소망의 한날을 위하여 준비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5-128
핍박을 받으면서 복귀의 조건을 찾아나오는 이유
이 시대에 있어서 우리들은 가정적인 사명도 해야 되겠고,민족적인 사명도 해야 되겠고, 세계적인 사명도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핍박을 많이 받고 있는 원인이 여기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핍박을 받으면서도 가정적으로 혹은 교단적으로 국가적인 사명을 완수했다는 조건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6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섭리해 오신 그 터 위에 우리를 세워 놓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뜻 앞에 서는 날에는 예수 이후 지금까지 영계(靈界)에 있는 수많은 영인(靈人)들은 제1 이스라엘의 입장에 서고, 예수님께서 땅 위에 왔다 가신 이후 믿은 성도들은 제 2 이스라엘의 입장에 서고, 오늘날 완성적인 조건 위에 선 사람들은 제3 이스라엘의 입장에 서는 것이 신랑이 걸어가야 할 노정의 목적지인 연고로 우리는 반대의 경로를 따라서 가야 되겠습니다.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제3 이스라엘이 연고로 사랑의 목적을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런 고로 영계에 있는 제1 이스라엘은 지상에 있는 제2 이스라엘인 기독교인들을 통해야 되겠고, 제2 이스라엘이 기독교인들은 제3 이스라엘을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3 이스라엘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은 중매적인 기준을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자기 개체에 있어서도 그렇고, 가정적인 분야나 교단적인 분야에 있어서도 그렇고, 세계적인 분야에 있어서도 여러분은 이러한 입장을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체의 뜻을 앞에 놓고 자신이 어느 단계에 처해 있는지는 오늘날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 선생님 하는 것은 고맙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하는 것은 고맙지만 복귀의 조건을 찾아나오지 않는 한 선생님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참부모를 찾아나가는 노정에 있어서 참다운 형제끼리는 어떠한 것을 찾아 세워야 되느냐. 지금까지 6천년간 타락의 혈통을 거쳐 나오면서 어느 시대에 어느 누가 형제를 사랑했던 것 이상의 사랑을 이 땅 위에 세워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세우지 않는 한, 하늘이 `오! 너희는 내가 인정할 수 있는 형제다’ 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같이 참다운 형제의 노정을 거친 후에야 여러분은 가정적인 부모가 될 수 있는 혜택권내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민족적인 부모, 우주적인 부모를 위해서 가정적인 부모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 아무리 잘났어도 이러한 탕감노정을 조건으로 하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세우지 못하면 승리한 이스라엘의 부모가 될 수 없고, 승리한 이스라엘의 형제가 될 수 없고, 승리한 이스라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를 편성해 가지고 하늘 앞에 인정받은 후 가정 편성을 하고, 그 다음에는 가정이 합하여 민족을 편성하기 위해서 반열(班列)을 편성해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땅 위에서 찾고 있는 12지파를 대신하였던 세계의 모든 기독교가 이스라엘의 이름은 갖고 있으되, 이스라엘적인 반열이 없는 연고로 하나님께서 섭리하실 수 있는 발판이 못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섭리하실 수 있는 발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늘날 흩어진 이스라엘 반열을 다시 편성하여 복귀할 수 있는 세계적인 발판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책임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전도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형제를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가 많아지면 종족이 되고, 종족이 많아지면 민족이 되고, 민족이 많아지면 국가가 되고, 국가가 많아지면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다운 형제를 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도 나 혼자서는 안 되니 너와 내가 합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은 형제와 하나되어야 가정적인 부모를 모실 수 있고, 교단은 교단끼리 형제와 같이 하나되어야만 교단적인 부모를 모실 수 있습니다. 또 세계는 세계, 국가는 국가, 서로 형제와 같이 사랑하여 하나되어야만 우주적인 부모를 모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5-130
잃어버린 반열을 찾아 세워야 할 우리
이제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을 책임하여야 할 시대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잃어버린 반열을 우리들의 손으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우리가 하늘 앞에 서려면 가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도 가정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낙원에 가 계십니다.

지금까지 6천년 섭리의 뜻은 가정을 통과하기 위한 뜻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느누구도 가정의 문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명사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 가정의 문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도 재림해야 된다는 이런 명제를 남기게 되었고, 영계에 가서도 낙원이라는 중간단계에 머물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을 통과한 후에 민족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민족권내에 가정이 들어가고 국가권내에 민족이 들어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정을 합해가지고 민족을 편성하고, 민족을 편성하여 국가를 형성하고 국가를 편성하여 세계를 형성해야 할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이 내가 사는 목적이 내 가정을 위하여 산다는 관념을 가지면 하늘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가정을 중심삼고 살되 민족을 위하여 살고, 세계를 위해 산다는 관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가정을 대표하여 사는 분이 있다 할진대 그 가정은 민족을 대표하여 살아야 하고, 민족을 대표하여 사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은 세계를 대표하여 살아야 하고, 세계를 대표하여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은 하늘 땅을 대표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를 우리들이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가정편성으로부터, 민족편성, 세계편성까지 하여 승리한 새로운 동산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금년 새해에는 선생님의 계획대로 여러분들이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들끼리는 부모의 사랑을 본받아 가정을 찾고, 가정들끼리 합하여 민족을 구원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왔다 가신 예수님의 심정을 본받아 형제끼리 서로 사랑함으로써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한 심적 기준(心的基準)이 되어 있지 않는 한 절대로 승리의 아들 딸은 될 수 없습니다. 승리의 아들 딸이 되지 못하면 승리의 가정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승리의 가정을 찾지 못하면 새로운 나라를 찾고자 하는 전체적인 복귀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특히 오늘 이 말씀을 부디 명심하기 바랍니다.

5-131
기 도
아버님이시여! 당신께서는 지극히 천하고 낮은 자리에 떨어진 우리 인간들의 참부모로서, 주인공으로서 계시기 위하여 역사적인 섭리를 해 오셨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은 민족적인 혹은 교단적인 부모로 서기 위함이었음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서 저희들은 우주적이요, 민족적이요, 가정적인 부모를 이루어야 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오늘날 저희 자신들이 가정적인 참다운 부모의 입장에 서지 못한다면, 민족적인 참다운 부모의 자리를 완결지을 수 없고, 민족적인 참다운 부모의 자리를 완결짓지 못하면 우주적인 참다운 부모의 자리도 완결지을 수 없다는, 이 어마어마한 사실이 저희 한 자체에서부터 좌우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그 복귀의 한을 탕감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바라시는 소망의 조건을 다 구비하여 아버지 앞에 나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참다운 형제의 자리를 통과하고 참다운 부모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이 참다운 부모가 된 후에는 참다운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을 통하여 민족의 자리까지, 민족을 통하여 우주적인 부모의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는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 각자가 가정을 중심삼고 사는 것이 가정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을 위한 것임을 알고, 민족을 위하여 산다는 마음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민족을 위하여 책임을 진 어떤 가정이 있다 할진대 그 가정은 민족만을 위하여 살 것이 아니라 하늘 땅을 위해서 산다는 마음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마음에 사무쳐 살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만 아버지의 크나큰 한을 풀어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저희들이 이날부터 당신의 뜻을 실천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형제끼리 하나되어 아버지의 영광의 뜻을 넓혀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