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2 to 5-83: Humankind Wanders In Search of the Truth

Humankind Wanders In Search of the Truth

Sun Myung Moon
December 21, 1958
Excerpt
Selected Speeches of Rev. Sun Myung Moon, Volume 5
Unofficial Translation

Your mind commands your body to seek true beings. Its command is to find a true body first. Humanity today is wandering about seeking that which is true, without knowing what it is. Because we are living in this world, which is soaked with the bitter resentment caused by the fall, we are fated to be drawn to look for what is true without awareness of it.

Now you must know that you cannot simply enjoy your life, for you are destined to find your original selves. You must know you are placed in a position to grieve over this fate. Yet you are not to feel sad in looking at this world. Even if you feel pain, you must not feel pain from relative things that happen in the world.

If you are to feel sadness and pain, you must feel the sadness and pain of not having been able to find your true selves. You must realize that even though there is so much sadness and pain in the world, there is no greater sadness and pain than that which is caused by being unable to find our true selves.

Whom has God the Creator been trying to find until now? He has been looking to find you. That is, the true “me.” For that reason, you must determine that true “me.” If not, you cannot make a connection with a true family centered on one substance, nor with a society, a nation, or one world centered on true families; and furthermore, you cannot connect with one cosmos made of worlds. Becoming a perfect “me” is the fundamental standard for all the other stages.

God has been feeling immeasurable sorrows in relation to humanity for 6,000 years. In other words, there is nothing more mortifying and regretful than having lost His beloved sons and daughters. Having lost Adam and Eve, the entire universe turned into a world of pitch darkness. Ever since then, God has been feeling infinite bitter pain and sorrow.

What must men do to recover their lost selves? They must think back to God’s Shim Jung (heart) at the time of the loss. Otherwise, there is no way to restore the original “me.” In the same manner that you can recover what you lost only when you go back to the place where you lost it, you must recollect God’s Shim Jung at the time of losing “me” to find yourself. Without this effort, human beings cannot restore their original selves.

That is why Heaven has been looking for us, human beings, for 6,000 years. In other words, God has trodden the 6,000-year historical course to find me, the individual. That 6,000-year historical course has been full of blood and tears, on trodden paths of persecution and death.

Walking such a course, God has fought to look for me, this one individual being, for He cannot forget the heart of pain or the tears of sorrow He shed after losing Adam and Eve in the Garden of Eden 6,000 years ago. Feeling the 6,000 years were like a day, with the Shim Jung of the time of loss, God has come forth fighting to recover humankind. You must understand such a heart of God.

Because the sorrow had to start from God’s heart 6,000 years ago, history until today has remained sorrowful. We were born as the fruit of the sorrow. Therefore, humanity’s sorrow cannot be resolved unless we dissolve the sorrow that penetrated the depths of God’s heart. You must realize this.

The tangled thread will have to be untangled where the tangling occurred. It must be restored to its original state through indemnity. This is the ironclad rule of the providence of salvation. If this is the ironclad rule, we, human beings today must realize that the conclusion of human history, namely the last days will come, when we must look for the lost heart in order to find and establish ourselves.

Then, what is going to happen in the last days? Judgments will be made based on the heart, after having decided upon a standard of the heart.

Looking at yourselves today, you must know that your bodies are stained with the tears of God’s sorrow of 6,000 years and with the blood of God’s pain; moreover, your very bone marrow is pierced through by the bitter resentment over having been invaded with evil. What is more, you must know that God’s sorrow and pain in regard to eliminating this condition of bitter resentment has soaked through our whole beings.

When they were cast out of ancient Eden, the first human ancestors grieved centered on themselves, not knowing God’s heart. Thus, forgetting our own sorrow and pain, now you must first liberate God from sorrow and pain. Unless you do this, you cannot dissolve the historical bitter resentment and go beyond it.

Therefore, you must now feel that you are a crystallization of God’s tears of 6,000 years. You are not only the crystallization of God’s tears, but are the crystallization of God’s bitter pain. Only after you realize these, will you be worthy of being called to sacrifice for God.

참을 찾아서 헤매이는 인류
1958.12.21 (일), 한국 전본부교회

5-52
참을 찾아서 헤매이는 인류
마태복음 7:1-12

[기 도(Ⅰ)]

사랑하는 아버님, 사랑의 이상동산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사랑을 흠모하여야 할 인간들이 사랑의 이상동산을 건설하시려는 아버지의 심정을 배척한 이후, 수천년의 역사노정의 거쳐오면서 서글픈 피눈물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저희인간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잃어버린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워하여야 할 때가 되었사옵고, 아버지의 심정을 더듬어 아버지 편에 서지 않으면 안 될 복귀의 끝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사랑의 아버님, 오늘 저희들을 세우시고 새로이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를 부르셨사오니 새로이 경책하시옵소서. 복귀의 서러움을 제해 놓고 환희와 영광의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경배드릴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의 마음이 저희 마음만으로 머물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몸이 자신만의 몸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느끼는 감정으로부터 저희가 갖고 있는 관념이나 주의 주장까지 모든 것이 내것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로부터 시작된 것은 하나도 없으며 모든 것이 하늘을 근거로 하여 되어진 사실을 저희가 알고 있사오니, 이 시간 아버지 것으로 다 내세울 수 있으며, 아버지 것으로 다 돌려드릴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나이다.

저희 한 개체는 내 마음을 주장한다 할지라도 그 마음만을 가지고 만상 앞에 나타날 수 없는 것이요, 내 몸이라 하더라도 자랑스럽게 만민 앞에 나타날 수 없는 자신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엇으로서도 스스로 만 우주 앞에 자랑하여 나설 수 없는 자신인 것을 인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자신이 모든 것을 다 내어 놓고 아버지의 부활의 심정을 받다 아버지의 심정으로 화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심정에 파고 들어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재창조의 명령의 말씀을 환희의 심정으로 받을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어린 모습들이 이 한시간 모였사오니 저희들이 갖고 나온 마음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존전에 엎드리게 될 때에는 예물을 드려야 하는 것이 저희의 본분이었사오나,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하였사오니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드릴 것은 오직 간절한 마음뿐이오니 이 마음을 아버지 것으로 다 받아 주시고,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오니 하나의 산 제물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런 간절한 심정, 흠모의 심정이 여기 모인 전체의 머리 위에 나타나고, 심정 위에 나타나고, 마음 위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여!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의 마음 마음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개체 개체가 다르니만큼 그 사정도 다를 것이며, 느껴지는 감정도 다를 것이며, 피땀 흘린 지난날의 노정도 다를 것이며, 자기들의 주장이 다르므로 그 헤아림도 다를 것이오나, 이 한 시간만이라도 아버지의 심정에 붙들리고, 아버지의 간곡한 마음에 붙들리게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서로 서로를 하나의 묶음에 묶어 주셔서 하나의 목적을 위한 제물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고, 이 청중 가운데 사탄이 틈탈 수 있는 마음의 요소를 가진 자가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허락하신 한 기틀을 지닌 것을 아버지 앞에 감사드리오며, 저희들이 책임하여야 할 사명을 깨닫게 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이민족앞에 말씀을 선포하였사오니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향한 흠모의 심정을 갖고 나타나는 무리가 많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 이 백성 가운데 이 말씀을 붙들고 당신을 향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무리가 많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끝날에 처한 저희들이 하늘의 영광과 뜻을 성사시키기 위해 승리의 제단을 갖출 수 있도록 하시어서 아버지의 승리의 날이 어서 속히 임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의 영광이 결실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이를 위하여 준비하기에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충실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에게 이 때는 마음과 몸을 다 바쳐서 기도하여야 할 이런 시기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전할 바의 말씀을 저희의 마음과 몸에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그 책임적인 심정을 잃지 않는다면, 그 결실이 이 민족 앞에 나타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이루실 뜻을 이 민족을 통하여 이루시옵고, 받으실 영광을 이 민족을 통하여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은 거룩한 날, 만민에게 축복하마 약속하신 날이었사오니, 당신을 향하여 간곡히 무릎을 꿇고 모인 제단 제단마다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의 핏줄을 연하여 아버지 앞에 아들의 이름을 가지고 모인 자녀들이오니, 서로서로 하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서로서로 용납하게 허락해 주시옵고, 서로서로 화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품으신 심정을 저희도 품고 아버지의 뜻을 염려할 수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한국 교계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그들이 생명의 길을 찾고 있사오나 스스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어디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사옵고, 자기의 생명에 대한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러한 교단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갈 바를 알지 못하여 방황하는 그들 앞에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시옵소서. 온 천주 앞에 한날의 승리의 영광을 드러내는 아버지의 아들 딸들로서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이 민족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를 외로운 자리에 몰아내신 이 한 뜻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을 민족 앞에 제물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제물의 도리는 먼저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고, 만물이 기뻐한 후에 기뻐해야 하는 것임을 아옵니다. 그러기에 제물은 자기의 피살을 다 내어 놓은 채 아버지의 뜻을 위해 고이고이 살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여기 모인 아들 딸들은 또한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세우신 천정(天情)을 받들어서 이 한 몸 마음이 제단이 되고, 이 몸 마음이 아버지 앞에 바쳐지는 제물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 한 몸이 아버지의 실체 성전이 되어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으며, 홀로 아버지의 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아들 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도 지방에 널리어서 갖은 핍박과 갖은 어려움 가운데 맡겨진 바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당신의 아들 딸에게도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을 아버지께서 이끌어내셨을진대 그들의 결실도 아버지의 품에서 이루어지게 인도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부족한 정성이나마 아버님 무릎 앞에 엎드려 그냥 그대로 바치오니, 아버지, 부족함이 있사오면 친히 채찍을 들어 쳐 주시옵소서. 그래도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자녀들이 있사옵거든 붙안고 아버지의 사정을, 아버지의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이 한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의 모든 것을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5-55
기 도(Ⅱ)
아버님, 이 한 해도 저물어 가는 이때에 저희들이 지나온 한 해를 회고하면서 새로운 해를 맞이할 수 있는 준비의 심정을 가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새해에도 아버지의 새로운 영광을 바라보면서 지난 일년보다도 더욱 깊고 간절한 심정으로 아버지의 손길에 붙들리고, 아버지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자리로 저희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품에 이끌리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가시는 곳 어디든지 따라갈 수 있는 준비와 각오를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의 생명은 저희의 것이 아님을 아옵니다. 저희의 이념, 사랑까지도 저희의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저희의 마음, 저희의 몸, 심지어 저희의 생명까지도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나로 말미암은 것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이 자기를 중심삼고 자랑하는 것도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인간이 아무리 스스로 높다 하더라도 한계지어진 시간권내를 넘지 못하는 부족한 존재인 것을 저희들이 깨달았사오니, 아버지의 높으신 심정을 본받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넓으신 심정을 본받을 수 있는 애달픈 마음을 주시옵소서. 깊으신 심정을 닮기 위하여 스스로가 자신을 부정하고 하늘을 향하여 엎드릴 수 있는 마음을 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저희의 몸을 제물로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이 제단 앞에 엎드렸사오니 대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적인 어떤 것도 여기에 횡행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인간의 능력을 통한 그 무엇도 엉겨들지 말게 해 주시옵소서.

이 한 시간만은 아버님께서 6천년 동안 인간을 찾아오시던 간곡한 심정과그 심정 위에 넘쳐 흐르는 정적인 내용을 가지고 몸부림치게 하옵시고, 당신의 서글픔을 체휼하여 무한히 흐느껴 울 수 있는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사정을 붙들고 가슴을 칠 수 있는 지극한 심정을 지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잃어버린 인간을 찾기 위하여 수고하신 것이 6천년 역사의 복귀섭리 노정이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배웠사옵니다. 그런 역사노정을 통하여 남기신 피눈물 흘리는 제단의 무리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슬픔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고, 어느 한 때 편안한 행로를 걸어보지 못한 당신의 사정이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이제 저희 마음이 조급한 자리에 처하여도 자기를 위하여 있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무한히 안타까운 자리에 처하여도 자아를 중심삼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말할 수 없이 외롭고, 말할 수 없이 핍박받고, 무한히 몰리고 무한히 억울한 자리에 서더라도 자기를 위한 자리에 서지 않고 아버지를 위한 자리에 설 수 있는 당신의 아들 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은 마음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생명은 생명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이념은 이념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당신의 사랑도 사랑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영원한 생명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생명은 생명으로 움직여야 하며, 사랑은 사랑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그러하오니 생명의 주체이신 아버지께서 생명으로 나타나 주시옵고, 사랑의 주체이신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나타나 주시옵소서.

저희는 그 생명의 고갈을 당하고 있사옵고, 사랑의 고갈을 당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이념적인 면에서 궁핍한 자리에 있어서 한날의 생활도 보호할 수 없는 부족한 모습들이옵니다. 하늘 땅을 배반하여 이념을 잃어버린 타락한 원한을 저희들이 가슴에 품고 이날도 슬퍼하여 아버지 앞에 엎드리오니, 불쌍한 이 모습들을 아버지, 품어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모른다 하시면 누가 저희를 맡아 주겠으며,아버지께서 붙들어 주지 않으면 누가 저희들을 붙들어 주겠습니까? 저희 앞에는 지도자도 없고 스승도 없사오니 오로지 아버지만이 저희와 함께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나 슬픈 일을 당할 때마다 아버지께서 저희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수고하시는 것을 대하게 될 때, 아버지 앞에 면목이 없는 저희임을 아뢰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가라’하시는 길을 따라서 저희가 핍박받는 걸음을 걷는 것을 보시고 눈물짓는 아버지, 죄송하옵니다. `오라’하시는 아버지의 부름에 응하여 아버지께서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라 나선 저희들이옵고, 죽음의 길도 각오한 저희들이오니, 아버지, 죽음의 길이 나타나게 될 때 사망선을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물러서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몸이 찢기고 마음이 갈래갈래 찢겨지는 아픔이 닥친다 하더라도 아버님의 한숨이 남아 있고, 아버님의 원이 남아 있고, 아버님의 사랑이 남아 있는 한,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나설 수 있는 하늘의 참다운 용사, 하늘의 참다운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를 민족 앞에, 외로운 자리에 몰아내신 것은 아버지의 크나큰 섭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치고 때리고 역사하여 주셔서 저희로 하여금 사망의 세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생명의 기틀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런 생명의 움직임이 저희를 통하여 외로운 제단에까지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망세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있다 할진대, 그도 역시 감사드릴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나서게 하옵시고, 아버님께서 남기신 이 마지막 노정에서 주저하는 자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남기신 무리들이 그 노정을 보고 돌아서는 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사망의 도성을 향하여 돌아갈 수 있는 노정에 서 있는 저희이오니, 아버지, 능력의 손길을 거두지 마시옵소서. 권능의 말씀을 주시어 최후의 영광을 노래하는 한날까지, 최후의 승리를 쟁취하는 날까지 이끌어 주시옵고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40수 노정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저희들보다 더 수고하신 것을 저희가 알고 있사오며, 이룰 때가 가까와 오고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저희의 마음은 어디로 갈 것이며 저희의 몸은 어디로 갈것입니까. 저희와 같이 거하고 있는 이 민족은 어디로 갈 것이며 이 인류는 어디로 갈 것이뇨. 어디를 가도 사망의 공포가 사무쳐 있사오니 여기에 이 백성들을 책임지고 하늘을 향하여 이끌고 나아갈 수 있는 피끓는 청년 남녀가 필요한 때가 되었사옵니다.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을 권고하여 주시어 이들의 피와 살이 아버지 것이 되게 하옵시고, 사랑의 폭발물, 사랑의 원자탄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사망의 세상을 이겨 모든 것을 아버지의 것으로 돌리게 하시옵소서. 그 승리의 동산을 새로운 재창조의 이념권내에서 품고 남을 수 있는 늠름한 용세(勇勢=용감한 기상:편집자 注)를 갖춘 정병의 모습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간절히 기도드리옵나니 이 민족의 운명을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이 민족을 붙들고 무한히 눈물 흘리고, 무한히 슬퍼하고 무한히 통회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 딸들이 많아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 가운데는 천륜을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울어야 할 택함받은 무리들이 있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저희들의 마음에 민족적인 생명의 감정, 민족적인 사랑의 감정이 폭발되게 하시옵소서. 이 민족을 나의 형제로서, 나의 부모로서, 나의 친구로서 붙들고 당신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아들 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깊은 잠 가운데 빠져서 방황하고 있는 인류를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 인류의 생명을 대신하여 당신 앞에 제단을 쌓고자 수많은 아들 딸들이 모인 곳곳마다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어서 속히 아버지의 일을 놓고 무한히 용납할 수 있는 마음, 무한히 양보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일이라 할진대, 생명을 초월하고 자기의 모든 소유권까지 초월하여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할 인간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서로서로 위하고, 서로서로 높이고, 서로서로 붙들어 줄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잃어버린 하나의 이념의 세계, 하나의 선의 동산을 복귀할 수 있는 아버님의 역사가 이 온 만민 가운데, 머리 숙인 곳곳마다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영계에 있는 천천만 성도, 천군천사 뭇영들을 동원하여 옳지 못한 어둠의 세력을 막아 주시옵고, 제거시켜 주시옵소서. 아버님만이 좌정하시어,홀로 주도적인 영광을 맡아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외로운 식구들을 품어 주시옵고 권고하여 이끌어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5-59
기 도(Ⅲ)
아버님, 저희의 심정을 비어 있는 심정으로 바꾸어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향하여 무한히 용솟음칠 수 있는 저희의 심정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심정 가운데 아버지께서 만물을 창조하시던 그 창조이념을 옮겨 놓아 주시사, 아버님께서 동하시면 저희 마음이 동하고, 아버님께서 정하면 저희의 심정이 정할 수 있는 자신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고요한 마음에 잠기어 그 마음에 어리는 모습을 보고 즐기기를 바라시던 아버님, 고요한 심정을 보고 찾아와 쓰다듬기를 바라시던 아버님, 이제 저희의 마음과 저희의 심정은 아버님에 의하여 움직이고 아버님의 것으로만 쓰여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의 것만으로 화할 수 있으며 아버님의 것만으로 본질세계에 사무칠 수 있는 저희의 몸 마음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땅 위에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그 마음 바탕, 그 심정 아버지속에 숨겨지며 묻혀지기 위하여 허덕이는 무리가 없다는 것을, 아버지,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저희의 마음은 지극히도 본연의 심정이 그립사옵고, 창조본연의 본성이 요구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아버지의 새로운 말씀이 필요한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께서 기뻐하시기 위하여 지었던 인간이 비록 타락하여 악한 세상에 살고 있을 망정 본성의 본연의 세계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본성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본연의 재창조의 말씀을 고대해 나오기를 6천년, 그러한 말씀을 사모하고 찾기를 6천년….

이제 사망의 도성이 심판의 한날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런 때를 당하여 공포의 세계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 인류, 갈 길을 알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는 이 인류, 중심을 잃어버리고 처할 자리를 알지 못하고 머물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인류를 긍휼히 보시어서 당신의 품안으로 돌아올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자녀들은 아버님께서 찾아가실 수 있는 성전이자 본질적인 터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이 운행하시지 않게 되면 이 땅 위의 모든 피조만상은 심판의 한날을 맞이하여 한없는 고통을 당할 것이오니, 아버님이시여, 재창조의 손길을 펴 주시옵소서.

사랑하기 위하여 아담 해와를 지으셨던 본래의 창조원칙이 있지 아니하옵니까? 그 원칙에 의지하여 이 인류를 아버지 앞에 다시 찾아세우기 위하여, 피로함도 개의치 않고, 억울함도 슬픔도 개의치 않고, 분함과 눈물의 길도 개의치 않고, 피의 제단도 개의치 않고 나를 붙들고 있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럴 수밖에 없는 아버님의 역사적인 사정을 알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조급한 심정을 헤아려서 이 시간 고이고이 아버님 것으로만 화하게 하시고 아버지 것 외에는 일체를 제거시켜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즐거워하시면 저희도 즐거워할 수 있고, 아버지께서 동하시면 저희도 동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만상 앞에 하나의 미의 영광을 갖춘 본연의 한모습으로 나타나고, 새로운 음성으로 전파할 수 있는 모습들로 회복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닌 것을 알았사옵고, 내 몸이 내 몸이 아닌것을 알았사오며,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내 것이 아닌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우주가 내 것이 아니고 지으신 모든 물건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모든 것은 아버지에게 연유된 것이요, 아버지의 뜻과 연결된 것으로서 아버지를 위하여 지음받은 것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렇게 지음받은 한 중심을 대하여 만민은 기쁨의 영광을 찾아야 하는 것이 창조의 본성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세우신 한 중심의 영광에 화하여 마음이 동하고 온 우주가 동할 수 있는 그러한 화동의 실체, 본연의 자체로 회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우주적인 슬픔의 역사노정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쁨의 역사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될 때는 왔습니다. 아버지, 저희가 힘이 부족하오니 강한 힘을 주시옵고, 강한 욕망을 갖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새로운 용맹성을 갖추어 목표를 향하여 자신있게 나아갈 수 있는 하늘의 정병의 모습을 갖추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아버님께서는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사옵니다. 원수를 대하고 있는 여호수아 앞에 세워진 하나의 기준은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이었사오니, 오늘날 저희 모습도 강하고 담대하게 가나안 도성을 향하여 총진격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최후의 판가리 싸움이 목전에 당도한 이때, 어둠의 세력을 맞이하여 이 땅 위에서 책임지고 싸울 수 있는 아들 딸이 필요한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 딸이 그와 같은 책임자가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아들 딸들의 마음 마음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자기를 세워 주장하는 자가 있사옵니까. 자기의 어떤 주의나 사상이나 자기의 관념을 통하고, 자기의 인식을 통하여 아버지를 대하는 자가 있사옵니까. 이는 아버지의 절대적인 권한을 알지 못하는 자요, 아버님의 배후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자이옵니다.

아버지, 저희의 심정을 붙들어 주시사 저희가 아버지의 새로운 생명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통하여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신의 부족함과 미숙함을 깨닫게 하시옵고, 미완성한 자체인 것을 직고하여 머리 숙일 수 있는 아들 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본성은 하나의 이념을 향하여 움직이고자 하오니 저희의 몸 마음도 그 뜻을 따라 움직일 수 있게 하옵소서. 이 시간 마음과 몸이 하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하나된 몸 마음이 제물로 바치어질 수 있게하옵소서.

원한과 슬픔으로 6천년간 막혀 있던 사망의 장벽을 헤쳐낼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천천만 성도들이 동할 수 있으며, 삼위신을 중심으로한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이 시간 환희의 송영을 드리게 하옵소서. 만유만상(萬有萬象)의 모든 존재 앞에 복귀와 해원의 날을 기약할 수 있는 이 한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마음이 주동이 되어 움직이는 전체의 세계를 몸으로 규합시켜 아버지의 제단 앞에 묶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말씀을 전하고자 하오니 전하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마음으로 움직이는 말씀이라 할진대 마음으로 마음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몸으로 화하게 하여서 아버지의 실체의 모습 앞에 이끌려 갈 수 있는 이 한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탄이 일절 틈타지 말게 하옵시고,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요소를 성별시켜 주시옵고, 아버님께서 친히 운행하여 주시옵소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지 못한다 할진대 불꽃같은 눈으로 나타나 주시옵고, 저희 몸 마음을 아버지 것으로 주장하시어 당신이 임하시옵소서. 고생의 조건을 통하여 탕감복귀의 사명을 완수하는, 그 역사를 일으킬 수있는 저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5-62
말 씀
오늘 여러분들에게 잠깐 말씀 드리려하는 제목은 `참을 찾아서 헤매이는 인류’입니다. `참을 찾아서 헤매이는 인류’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5-63
인간의 실상과 절대적인 선의 기준의 필요성
오늘날 여러분은 말할 수 없는 조급함과 바쁨을 느끼는 일면 슬픔을 느끼고 있는 자신임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 몸에는 마음이 있고, 또 마음에는 마음이 바라는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내 몸을 어떠한 목적의 본체에로 무한히 흡수하려는 힘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무엇인지 모르지만 나를 어떤 정처없는 방향으로 무한히 이끌어가는 것 같은 생활여건 내에 처하여 있는 여러분 자신인 것을 부정하지 못할 거예요.

이런 것을 느낀다 할진대 여러분은 자신에게 다시 돌아들어와 자신의 몸을 다시 감정해 보아야 하겠고, 자신의 마음을 다시 감정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어떠한 이념적인 무형의 세계가 있다 할진대, 그 영적인 세계의 영(靈)을 중심삼고 내 자신을 재감정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영과 나와는 둘이 아닌, 즉 어떠한 관념이라든가 사상이라든가 이념권내에서 일체적인 관계를 이루어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을 찾아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할진대는 여러분의 심정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여러분이 행복과 그 무엇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그 소망이 성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먼저 여러분에게 단언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통하여 배우신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 선한 인간이 한날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선하지 못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고 우리 종교인도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나 자신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선의 기준은 우리의 생명과 그밖의 전체가 추구하는 이념의 기준이요 소망의 기준입니다. 더 나아가 마음과 마음 속에 움직이고 있는 영원한 사랑의 중심이며, 정적(情的)인 이념의 초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내 마음을 이끌어 어떠한 절대적인 안식처를 추구하도록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내 몸을 제재하고, 내 마음의 방향을 제재하고 내가 목적하고 있는 이념을 제재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것을 나 하나를 중심삼고 볼 때, 즉 몸을 중심삼고 보든가, 마음을 중심삼고 보든가, 혹은 영(靈)을 중심삼고 보든가 간에 그것이 하나 하나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자유롭게 대할 수 있으며 자유롭게 화할 수 있어서 개인의 생활적인 감정이 전체의 감정으로 연결될수 있는 그런 환경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 할진대 여러분의 마음과 몸 혹은 영적인 움직임의 전체의 가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으로 말미암아 원한이 오늘날 이런 슬픔의 자리를 빚어냈고, 타락으로 말미암은 슬픔이 인류를 이런 역경 가운데로 몰아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고 있는 역사노정은 타락으로 기인된 행로를 그대로 걷고 있고, 또 그러한 입장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허덕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 서서 비판하여 보십시오. 그대의 몸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그대의 마음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그대의 영적인 모습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그 무엇인지 모르는 절대적인 이념의 본체요, 생명의 본체요, 사랑의 본체인 그 무엇을 필연적으로 찾아야 할 인간인데 내 한 자체는 지금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나의 모습이 절대적인 선의 방향과 각도에 비해 어떠한 방향과 각도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우로 가고자 하는데 좌로 가는 것은 웬 일이뇨. 내 마음은 더 높은 이념을 가지고자 하는데 한계적인 우주관을 갖고 있는 것은 웬 일이뇨? 이러한 입장에서 벗어나 본연의 자체를 찾기 위해 복귀의 행로를 걷고 있는 오늘날 인류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모습을 다시 한번 냉정한 입장에서 관찰해 보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무엇을 찾기 위하여 허덕이고 있는 자신의 강팍한 모습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의 마음과 영이 실체로 화하여 하나의 영광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창세 이후 이러한 모습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인지 모르게 찾아가야 할 길, 운명의 길을 걸어야 할 내 한 자체임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내 한 자체에는 몸이 있고 마음이 있고 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몸과 마음과 영이 통합한 하나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 땅 위에 어떠한 창조적인 주인이 있다면, 그 주인 앞에 끌리어 안길 수 있고, 그 한자체가 남을 품어줄 수 있는 모습, 이것이 창조주가 찾고 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 인간이 찾고 있는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5-65
참된 인간이 되려면
그러면 내 마음은 몸에게 참된 것을 찾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먼저 참된 몸을 찾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인류는 무엇인지 모르게 참것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타락으로 인한 원한 가운데 사무쳐 있는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연고로 무엇인지 모르게 참것을 찾아야 할 이런 운세에 휩쓸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찾아야 할 본연의 나를 놓고 기뻐하지 못하는 자신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슬픔에 처해 있는 자신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세계를 보고 슬퍼할 것이 아닙니다. 고통을 느끼더라도 어떠한 상대적인 세계에서 벌어지는 고통을 느껴서는 안 됩니다. 슬픔과 고통을 느낀다 할진대 참된 나를 찾지 못한 슬픔 참된 나를 찾지 못한 고통을 느껴야 합니다. 세상에 슬픔과 고통이 많이 있다 할지라도 참된 나를 찾지 못한 슬픔과 고통보다 더한 고통과 슬픔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누구를 찾아내려오고 계시는가. 여러분 자체, 즉 `나’를 찾아오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내가 완전히 결정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할 때 완전히 하나의 실체를 중심삼은 참된 가정, 참된 가정을 중심삼은 사회, 국가, 더 나아가 국가를 단위로 한 세계, 세계를 단위로 한 천주(天宙)와는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히 내가 되는 것이 모든 단계의 제일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6천년 동안 인간을 대해 무한히 슬퍼해 나오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아들 딸을 잃어버린 이 한 사실을 분하다면 그 이상 분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담 해와 하나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온 천주가 흑암의 세계로 화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한히 고통과 슬픔을 느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인간들이 잃어버린 자신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잃어버릴 당시의 하나님의 심정을 회상하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연의 나를 찾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그 장소에 다시 가야 찾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서는 나를 잃어버릴 때의 하나님의 심정을 회상해야 합니다. 그런 운동을 제시하지 않고는 인간들은 본래의 자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우리 인간을 대하여 6천년 동안 찾아오고 계십니다. 즉 내한 개체를 찾기 위해서 6천년 역사노정을 거쳐왔다는 것입니다. 그 6천년의 역사노정은 피눈물의 길이요, 그 6천년의 역사노정은 핍박의 길이요, 그 6천년의 역사노정은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노정을 거쳐오면서도 하나님은 나 하나를 찾기 위하여, 6천년 전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고 흘리셨던 그 슬픔의 눈물, 고통의 심정을 잃어버리지 않으신 채 싸워 나오셨습니다. 6천년을 하루같이 잃어버린 그때의 심정으로 인간을 찾아 싸워 나오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슬픔이 6천년 전 하나님의 심정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의 역사는 슬픔의 역사로 남아졌고 우리에게는 슬픔의 열매가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중에 사무친 그 슬픔을 풀기 전에는 오늘날 인류의 슬픔은 해소시킬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맺혀진 곡절은 맺혀진 자리에 가서 탕감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섭리의 철칙입니다. 이것이 철칙이라 할진대 오늘날의 우리 인간에게는 내 한 자체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잃어버렸던 그 심정을 찾아 헤매야 할 역사적인 종말시대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끝날에는 어떻게 되는가? 하나의 심정의 표준을 정해 놓고 그 심정을 기준으로 심판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자체를 두고 볼 때, 여러분 한 몸에는 6천년 동안 하나님의 슬픔의 눈물자국이 얼룩져 있으며, 하나님의 고통의 핏자국이 얼룩져 있는 것을 알아야 하겠으며, 골수에까지도 악에 대한 원한이 사무쳐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이런 원한의 조건을 제거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슬픔과 고통이 내 한 몸에 사무쳐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5-67
인간 타락의 파장(波長)과 인간이 가야 할 길
옛날 에덴에서 쫓겨나던 인간은 하나님의 심정을 모르고 자기를 중심삼고 슬퍼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내 몸의 슬픔과 고통을 잊어버리고 먼저 하나님을 슬픔과 고통에서 해방시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가 되지 않고서는 역사적인 원한을 해원하고 넘어갈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한 자체가 6천년 동안 흘리신 하나님의 눈물의 결정체인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내 한 일신은 하나님의 눈물의 결정체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고통의 결정체인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한 자리에서만이 나의 존재가치가 회생되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으로 인하여 생긴 슬픔과 고통을 해원해야 할 끝날에 처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야 되겠습니다. 6천년 동안 슬퍼해 오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슬퍼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6천년 동안 고통받은 그 하나님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 하나님을 대신하여 맞아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인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하는 인간인 연고로 하늘은 심판이라는 명사를 걸어 놓고 인간을 대해 눈물흘리시며 섭리해 나오신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인가. 내 몸을 붙들고 울 것이 아니요, 내 한 자신의 고통 때문에 울 것이 아닙니다. 나를 구하기 위하여 내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지니신 하나님의 고통을 알아야 합니다. 내슬픔보다 더 큰 하나님의 슬픔이 있는 것을 알고 내 몸의 어려움보다 더 큰하나님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일체를 부정하고, 배후에서 역사를 움직여 나오신 하나님의 심정에 사무쳐 있는 모든 고통을 해원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몸을 찾아 헤매야 할 운명이 있는 것이 오늘날 인류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타락한 인간이 자신을 깨뜨리고 나가는 데는 무엇으로 해야 하는가. 내 마음을 움직여낼 수 있고, 내 몸을 움직여낼 수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움직여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이뇨? 이것은 온전한 사랑의 심정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영(靈)이 마음을 붙들고 사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 마음이 몸을 붙들고 사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 몸이 만물을 붙들고 사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러한 사람이 우리 인간이 찾아야 할 목적지요 종착점인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있으되 마음이 몸을 붙들고 사랑하고 있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없었고, 영이 마음을 붙들고 사랑하고 있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과 마음과 몸을 붙들고 사랑하고 계시지만 그것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내 영을 붙들고 사랑하고, 내 영은 내 마음을, 내 마음은 내몸을, 내 몸은 만물을 붙들고 사랑하면 심정이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에서는 만물을 사랑하는 심정은 몸을 통하고, 몸을 사랑하는 심정은 마음을 통하고, 마음을 사랑하는 심정은 영을 통하고, 영을 사랑하는 심정은 하나님과 통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찾아나가는 종착점입니다.

여러분을 붙들고 `너 에게 어떠한 사명이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모르는 사이에 여러분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너는 누구뇨, 너는 어디로 가느뇨, 너는 어떤 일을 할 것이뇨’하고 권고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잃어버렸던가.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인간이 탄식하게 된 원인이라는 거예요. 그리하여 인류역사도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가운데 탄식의 역사노정을 거쳐 나왔다는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하나님의 사랑은 실체 지상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영원한 천국이념의 발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영원한 세계의 이념적인 기반인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연고로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떠나갔습니다. 그리하여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점점 무너져 내려오고 있는 거예요.

5-69
여러분은잘 역사 전개의 원형(原型)이 된 인간타락의 모형과 경로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타락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 타락의 역사적 경로를 생각해 볼 때 어떠한 길을 거쳤는가? 맨처음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음에 아담이 그랬고, 그 다음으로 그들의 자녀가 그랬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의 경로인 연고로 인류역사도 사랑을 잃어버리는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으로 사랑을 논의하고 나선 자가 누구였던가? 에덴동산의 해와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누구였던가? 아담이었습니다. 그 다음이 가인 아벨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늘 앞에 처음 나타났던 인류의 종족이 걸어온 타락 역사의 원형(原型)이라는 것입니다. 이 타락 역사형이 인류역사 시초에 벌어졌기 때문에 인간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역사를 거쳐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만우주를 통솔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입니다. 주관적(主觀的)인 중심이요, 통솔적(統率的)인 중심이요, 관용적(寬用的)인 중심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이념인 것입니다. 이 이념이 역사의 터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역사노정을 살펴보면, 원시시대에는 모계(母系)를 중심한 씨족사회였습니다. 이것은 맨먼저 해와, 즉 어머니가 사랑을 논의하였던 연고입니다. 이것이 부족사회를 거치면서 부계(父系)중심한 역사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이것이 오늘날 민주주의시대에 들어와서는 형제를 중심한 형제주의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내려온 역사는 끝날을 맞이 하였습니다. 오늘날 인간들에게서는 부모에 대한 사랑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민주국가가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형제의 입장에서 부부의 이념을 갖추어 나아가는 어떠한 것까지도 깨어지는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하늘이 인간과 연락할 수 있는 사랑의 사다리가 끊어져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인류는 부모의 사랑을 잃은 고아, 참다운 부부의 사랑을 잃은 고아, 참다운 형제의 사랑을 잃은 고아와 같은 입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선진국가에서는 먼저 이런 것이 종적(縱的)으로 벌어졌는데, 현재는 이런 것들이 세계적으로, 횡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타락이 어떻게 이루어졌던가.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사탄과 상대적이고 횡적인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타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역사적인 종말시대인 오늘날은 민주주의를 중심해서 평등주의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면 타락으로 아담가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느뇨.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아벨은 해와의 대신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선진국가에서는 평등주의를 부르짖는 동시에 여성이 남자보다 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때는 횡적인 면을 거쳐 종적인 면을 세워야 할 시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완전히 종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므로 깨지고 있는 세계적인 양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찾아나가야 할 길은 하늘이 제시하는 새 이념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요, 사랑의 길입니다. 이런 새 이념과 생명을 소개해 주는 사랑의 길을 찾아 나가는 역사노정에 서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자신이 잃어버린 그 부모는 어떠한 부모뇨. 잃어버린 그부부는 어떠한 부부뇨. 잃어버린 자녀, 그 자녀는 어떠한 자녀인가. 그들은 타락하지 않은 부모요, 타락하지 않은 부부요, 타락하지 않은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타락의 종족이 되었던 그 에덴의 슬픔을 박차버리고, 에덴의 기쁨을 획득할 수 있는 하나의 무리가 이 땅 위에 나타나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가 나타나지 않는다 할진대, 하나님의 6천년 복귀섭리는 근본적으로 파멸의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5-71
타락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탕감역사
타락한 인간을 구원해 온 인류 역사는 탕감원칙에 의한 역사였습니다. 어머니에게 아버지, 아버지에게 자녀로 이렇게 주관권(主管權)이 옮겨져온 역사였습니다.

이제 역사적인 대전환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천지의 운세가 회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의 필연적인 운명노정에 처해 있는 인류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현재에 와서는 남녀 평등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대우받을 때가 왔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이것은 에덴에서 거꿀잡이로 어머니인 해와가 아담을 지배하던 것을 탕감복귀하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흘러온 역사는 정상적인 역사가 아니었고, 평면적인 역사가 아니었고, 상대적인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분별적이고, 일편적이고, 일방향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타락하여 떨어진 인간을 돌려 가지고 하나는 왼쪽, 또 하나는 오른쪽으로 갈라놓는 섭리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좌 우의 분립 형태는 남자와 여자사이에서도 벌어지며, 남자 남자끼리, 국가 국가끼리, 세계 세계끼리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좌(左)라는 것은 그릇된 것을 상징하는 것이요, 우(右)라는 것은 옳은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천성을 갖고 살 수 있었는데 타락한 연고로 천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양심의 직고에 의해 선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하늘 앞에 굳건히 서야 되겠고, 만우주를 주관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할 입장에 처하여 있습니다. 그러면 만물의 주인공으로 결정될 수 있는 하나의 본질은 무엇이뇨. 생명력도 아니요, 이념도 아니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고린도 전서 13장 13절에 보면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즉 사랑의 길이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걸어가야 할 인간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그러한 말을 해주고 가신 것입니다. 예수는 내적인 영(靈)과 외적인 육(肉)을 합하여 자녀의 입장을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사랑의 기준을 세우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백성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그 기준은 세워지지 못했습니다.

인류역사는 재창조 역사이기 때문에 복귀과정이 다시 전개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고 지상인간을 상대해야 할 성신이 땅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성신은 지상에 있는 영적(신앙적)인 자녀를 품어 가지고 무엇을 하셔야 하는가. 에덴의 이념을 다시 성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성신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신과 자녀의 명분을 가지고 신랑되신 구주(救主)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구주를 찾아 헤매는 데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영육을 합하여 찾지 못하고 이념적인 면만 가지고 찾고 있습니다. 오늘날 도의 길, 신앙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육을 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인들은 마음의 세계, 영의 세계를 찾아 헤매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자녀격인 성도들은 영육을 합한 형태를 갖추어서 영적인 어머니인 성신을 중심삼고 복귀를 소망하여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아버지를 주관하던 어머니는 거꾸로 주관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자녀를 주관해야합니다.

그 에덴의 소망은 영과 육을 합하여 이루어야 합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하여 영과 육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영과 육이 일치된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종적인 입장에만 설 것이 아니라, 횡적인 입장에도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방성을 취하지 않고 일방적인 면만을 분들고 나오다 보니 인간은 몸과 마음이 갈라졌고 마음과 영이 갈라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소원성취의 날은 언제인가? 예수님이 땅에 오셔서 성신을 세우고 가셨는데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재림의 약속을 남기고 갔기 때문에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다시 와야 합니다. 그 재림의 이상은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몸적인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찾아진 그 어머니는 타락한 어머니를 지배하여 몸적인 아버지 자리를 복귀하여야 합니다. 여기에서 예수의 소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5-73
참부모를 찾아야 할 타락인간
이 소원의 성취는 영육이 합할 수 있는 하나의 이념세계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게 돼야만 비로소 영육을 갖춘 하나의 부모가 천지간에 나타납니다. 섭리의 법도를 두고 볼 때, 일방적인 역사관이 상대성을 갖춘 역사관으로 성립되는 그날이 인류역사노정에 필연적으로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인류가 일방적인 면만을 취하면 슬픔의 세계에서 고민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복귀의 운명길을 걷고 있는 우리 인류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고?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내 참 몸뚱이를 찾아야 하며, 이 몸뚱이의 부모를 찾아야 됩니다. 몸의 부모를 찾기 전에는 마음의 부모, 영의 부모가 나타날 도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지의 창조가 외적인 것으로부터 이루어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글을 쓸 때에도 왼쪽부터 써 나가는 것입니다. 바른쪽부터 써 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것은 창조이념의 존재방식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는 신음소리는 언제 끝날 것이뇨. 하나님을 대신해서 내 몸을 사랑해 줄 수 있는 부모를 찾는 그 한 날을 맞이하지 않고는 인류의 고통은 이 지구상에서 제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잘났다 하여도 여러분은 육적인 참부모를 잃어버린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나오지 않은 이상 참자녀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니 아직까지 이 세상은 죄악된 세상이요, 지옥의 세상이요, 고통의 세계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을 하나님께서도 거꿀잡이로 찾아오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靈)을 통해서 우리의 영을 찾고 몸을 찾아오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참부요, 즉 영적인 참부모요 마음적인 참부모로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영과 마음을 합한 부모의 입장에 서 계시는데 육적인 부모를 찾아 상봉하는 한날을 인류 앞에 예고하셨습니다. 그날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어린양 잔치날입니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모계시대(母系時代)를 거친 다음 부계시대(父系時代)를 거쳤고, 이제 형제시대에 들어왔습니다.

인간은 새로운 주의 주장과 제도를 들고 나오지만 거기에서 이상적인 상대, 이상적인 형제, 이상적인 자녀, 이상적인 부모가 나올 수 없다면 그 주의 주장과 제도는 깨져 나갈 것입니다. 어디까지 밀려나갈 것이뇨. 만물보다 못한 자리로 밀려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심판의 한날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인간은 참부모를 찾아 헤메야 합니다. 실체(육신)를 가진 참부모는 새로운 이념과 비젼을 가지고 인간을 찾아 오셔야 합니다. 인간이 그 참부모를 모시고 사는 세계가 바로 이상세계입니다. 그러한 세계를 이루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겠다는 말씀을 남겨 놓으신 것입니다. 또 그리하여 재림이라는 명사가 성립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단계에 처하여 여러분 자신을 이제 온 피조세계 앞에 세워놓고 공격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사탄을 대신하여 여러분 자신의 몸뚱이를 자신이 공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뚱이를 사탄 대신하여 자신이 치고 나아가야 되는 것이 도의 길입니다. 자신의 몸뚱이를 쳐야 한다는 거예요.

부모의 길, 사랑의 길은 나 혼자 찾아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왜? 내 개체는 역사적인 타락행로를 거쳐서 이 죄악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고, 시대적인 타락의 운세권내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길은 혼자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역사적인 문제들이 얽혀 있습니다. 거기에는 내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의 문제가 있고, 사회, 국가 세계 더나아가서 영계의 문제가 있습니다.

새로운 이념의 세계와 인연을 맺고 그 세계와 절충을 하여야만 이념적인 사랑의 세계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의 길은 역경 속에서 싸우며 찾아나오는 길입니다. 또한 이것이 6천년간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노정이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5-75
하나님이 반겨줄 수 있는 인간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입니까? 6천년을 대표하는 제물입니다. 따라서 6천년을 대표하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6천년 동안 인간으로 하여금 제물을 바치게 한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사랑권에서 쫓겨날 때 어떠했던가. 그들은 쫓겨나는 자신을 두고 슬퍼하였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눈물의 기원(起源)이 되었고 고통과 질고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는 그런 아담 해와 만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쫓아내면서 쫓겨나는 그들의 슬픔보다 더 큰 슬픔의 심정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사는 인간들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권에서 쫓겨난 종족이요, 그 후손이 되었습니다. 그런 인간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슬퍼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쫓겨나 있는 인간을 보고 오늘도 슬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을 중심삼고 하늘을 배반하여 쫓겨났던 인간은 어떻게 해야 복귀되는가? 내 슬픔이야 있거나 말거나, 내 억울함이나 내 사망이야 있거나 없거나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슬픔과 하나님의 고통과 억울함을 붙들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회개는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통곡하라는 거예요. 즉 울음으로 출발한 역사의 기원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내 자신의 슬픔을 가지고 울어서는 안 됩니다. 사망선에 떨어진 인간을 6천년 동안 품어 주시고 인간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울어 주고 고통으로 슬퍼해 오신 하나님을 붙들고 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오냐 네가 바로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말씀과 더불어 하나님이 반겨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나온다면 하나님께서 인간때문에 슬퍼하시고 억울함을 당하시고 고통당하셨던 모든 것을 탕감하고 해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가 누구입니까? 인류의 참아버지입니다. 4천년만에 하나님 대신 참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땅 위에 오신 분입니다. 4천년 동안 불쌍하게 허덕인 인류와 상봉하여 하나님 대신 그들을 붙안고 사랑하기 위하여 오셨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인간은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죽이고 보니 자기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죽이고 나서야 자기의 참아버지인 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 그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으로 이끌어 주실 참아버지이셨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예수를 죽였을 망정 그가 진실로 자기 아버지인 줄을 알게 되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당, 살인 강도라 할지라도, 목석같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가슴을 치고 통곡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서글픔을 모를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4천년 동안 고생한 부모의 서글픈 심정을 모르는 인간들로 하여금 통곡하게 하는 하나의 자극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만난 자는 통곡하여야 됩니다. 통곡하더라도 예수가 하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참부모로 오셨는데, 그 예수를 죽인 것을 놓고 먼저는 하나님을 위하여 통곡하고 , 오셨던 참부모를 위하여 통곡하고, 나아가 땅의 인류를 위하여 통곡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끝날에 처한 성도들은 어떠한 통곡을 해야 할 것인가. 나를 위하여 통곡할 때는 지나갔습니다. 가정을 위하여,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통곡할 때도 지났습니다. 이제 세계를 위하여, 하늘을 위하여, 성부, 성자, 성신을 위하여 통곡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한 전체의 세계를 주관하는 이념권내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를 죽인 인간들이지만 예수가 참부모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참부모를 잃어버린 서러움과 원통함을 느껴 다시 살아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한 본성이 인간에게 있었던 연고로 하나님께서는 그 소원을 이루어 주기 위하여 재림주를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그 재림주님을 맞이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도 같이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즉 역사적인 눈물을 대신 흘리고, 시대를 대표하여 대신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우리는 살고 있는 동안에 이러한 눈물을 흘려야 하겠습니다. 인간들은 오늘날까지 슬픔의 눈물은 흘렸지만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한날을 인간들은 고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바로 재림의 날이고, 잃어버린 참부모를 찾는 날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5-77
형극의 길을 거쳐서 오시는 참부모
여러분이 고대하고 있는 참부모님은 다만 몇십년간 준비하여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간은 인간의 한 생애가 아닙니다. 6천년이었습니다. 오시는 데는 편안히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편안히 잠을 자고 쉬지 있을 그 시간에도 하늘은 여러분을 찾으시기 위해 애쓰셨다는 것입니다. 거지의 모양으로, 비참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해가지고 인간 최하의 자리에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잠자는 시간에도 하늘은 눈물의 길, 슬픔의 길, 폭풍우에 휩쓸리는 길, 잠시도 쉴 수 없는 길을 걸어 나오셨습니다. 이런 길이 예수님이 걸으신 길이었고, 또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걸은 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편안히 먹고 자고 편안히 쉬는 자리에도 하늘의 슬픈 음성이 울리고 있고, 하늘의 억울한 고통과 통곡소리가 울리고 있다는 서글픈 사실을 여러분이 느껴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참부모 앞에 사랑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마음을 붙안고 잠을 자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송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죄인 중의 죄인이요, 천지가 용납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내가 보는 것, 듣는 것, 보고 느끼는 모든 사실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고, 나 개인은 이런 배반자의 결실체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나를 찾아 헤매고 있는 하나님의 사정을 여러분은 몰랐다는 것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그런 사정을 알고 형제의 손을 붙들고 통곡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길가를 헤매는 거지를 보고 붙안고 통곡할 줄 알아야 하겠고, 어려운 노동자를 보아도 `어째 하여 나의 형제가 저렇게 되었는고’ 하며 탄식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눈을 들어 그들을 바라볼 때 그들을 찾아 세우고, 그들을 통해 나를 찾아 세워야 할 천륜의 역사노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 만나는 사람마다 눈물을 갖고 대할 수 있는, 그런 감정에 사무친 인간들이 땅 위에 나타나기를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고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민족의 굶주림을 보고도 배불리 먹고 누워 있는 자 심판받을 것입니다. 민족은 헐벗고 있는데 배를 두드리며 춤을 추는 놀음을 하는 자들은 심판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타락한 인류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내가 굶주릴지라도 형제의 굶주림을 안타깝게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못 먹고 못 입을지라도 형제를 위하여 세계 인류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세계인류를 위하여 우시던 것을 나로 인하여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된다는 거에요. 하늘은 이러한 성도를 찾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6천년 역사노정에서 어느 한 때 어느 한 사람이 그런 심정을 가지고 하늘을 향하여 아버지라 불러 주었던가. 누가 하늘을 부모라 불러 주었고, 누가 인류를 참형제라 불러 주었던가? 그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단을 인도하는 교직자들, 신앙의 노정을 걷고 있다는 교직자들, 그들의 마음은 어디에서 방황합니까? 하늘이 6천년 역사를 두고 애타게 찾아왔고, 하늘의 어려움과 슬픔과 소원을 대신했던 사람들도 이런 길을 갔거늘, 여러분의 몸은 어디로,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이것을 해명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해결지어야 할, 타락의 원한에 사무쳐 있는 인류인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5-79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자리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인물은 자기를 주장하고 나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사에 남아질 인물이라 할진대 그는 민족을 붙들고 나선 사람이요, 사회적인 인물이라 할진대 사회를 붙들고 나선 사람이요, 세계적인 인물이라 할진대 세계를 붙들고 나선 사람이요, 하늘적인 인물이라 할진대 하늘을 붙들고 나선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죄인 중에서도 부모를 죽인 용납받을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어느 누가 욕을 해도, 핍박을 해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몰림뱅이가 되어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슬픔과 역사적인 분함을 느껴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할 여러분입니다.

그러면서도 욕하는 형제를 붙들고 눈물지을 수 있는 곳이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상에서 자기를 치는 자를 오히려 염려하고 그를 위해 눈물 흘리시며 기도해 주시던 예수님의 심정, 이런 심정을 품고 가는 길이 참인간이 가는 전형적인 길이요, 골수에 사무쳐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제물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모두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은 이러한 역사적인 제물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물은 어떠한 존재이뇨.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만민이 기뻐한 후에 비로소 머리를 드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전에 머리를 들었고, 만민이 기뻐하시기 전에 머리를 들었다면 깨어집니다. 기독교가 만민을 위하여 봉사해야 할 사명을 지고 있는데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면, 만민을 위해 제물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면 개혁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왕의 왕이요 하늘의 황태자이신 예수께서도 기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물로 오셨었던 연고입니다. 영계(靈界)에 가서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지상의 성도는 기뻐하여도 제물이신 예수는 기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만민이 기뻐한 후여야 비로소 예수가 기뻐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 날이 재림의 날입니다. 이것이 제물이 가는 길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민족이 받는 모든 핍박을 바라보게 될 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반만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우리 민족은 갖은 고생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슬픔이 있어도 어디 가서 호소할 줄 모르고, 분함과 억울함이 있어도 호소할 줄 모르는 가운데 이 민족은 걸어나왔습니다. 그러면, 민족을 붙들고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아와 같은 이 민족이지만 우리끼리 손을 붙들고 통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민족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형제의 잘못이야 있든 없든, 하늘이 허락한 같은 핏줄기와 뼈살을 가지고 태어난 형제이니, 자기 개인의 사정을 넘어서서 부모의 역사적인 혈통과 심정에 결합하기 위해 울 줄 아는 아량있는 사람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 청년들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청년들의 피끓는 정열이 있다 할진대 그 정열을 어디다 기울일 것인고? 일신의 출세와 욕망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일개인의 한계권내에서 종결될 것입니다. 인간의 본래 이념은 무한대의 선을 넘고 넘어서 하나님을 붙들고 기뻐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 본래의 이념을 위하여 그 정열을 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민족이 거쳐온 역사노정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할진대 그 섭리의 종국에 하나님은 어떠한 무리를 요구하실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울 줄 아는 모습일 것입니다. 하나의 뜻에 엉키어 울고, 하나의 심정에 엉키어 울고, 하나의 행동에 엉키어 울면서 먼저 제물이 되겠다는 무리들입니다. 하늘은 그러한 무리들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천년 전 예수는 인간을 대하여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표면적으로 생각할 때, 이런 모순되고 엉터리같은 말이 어디 있습니까? 이해할 수 없는 말같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잃어버리고 타락의 행로를 거쳐나온 인류가 역사의 종점에서는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다 깨져 나갈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것을 막아 주기 위하여 그러한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만일 그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역사가 벌어졌던들 2천년 동안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5-81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역사
이제 하늘을 중심하지 않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깨뜨려야 할 시대가 왔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깨뜨리고 그 대신 하늘을 중심한 부모의 사랑, 자녀의 사랑, 부부의 사랑을 가르쳐 주려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에서는 신랑 신부의 명사를 걸어 놓고, 아버지라는 명사를 걸어놓고 자녀라는 명사를 걸어 놓고 섭리해 온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사랑을 잃어버린 존재들입니다. 이러한 인간들 앞에 사랑의 주인공으로서 지상에 다시 천적인 사랑을 복귀하려고 왔던 예수였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영계로 가셨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영적인 사랑의 기준을 세워 놓고 육적인 사랑을 복귀해 나가는 노정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에게는 상하가 있고 전후가 있고, 좌우가 있습니다. 그 상(上)을 대신함이 부모요, 하(下)를 대신함이 자녀요, 전후를 대신함이 부부요, 좌우를 대신함이 형제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원칙입니다. 아시겠어요?

인간은 이 길을 찾아나가야 하는데 그 중에서 전후 관계에 있는 부부 관계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신랑 신부를 제일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신부를 찾는데 어떠한 심정으로 찾으려 하는가? 하나님을 대신한 신부, 자녀를 대신한 신부, 형제를 대신한 신부를 찾으려 하십니다. 알겠어요? 신랑 신부를 보내시어 땅 위에 하나의 기준을 세우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뜻은 신부를 중심삼고 상(上)으로는 하나님, 하(下)로는 자녀, 좌우로는 형제가 있어 그 전체가 사위기대의 형태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대표한 상대존재인 신부를 찾아나온 역사가 2천년 섭리노정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남자된 자는 여성을 존중해야 하고 여자된 자는 남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여자는 남자를 대할 수 있고, 남자는 여자를 대할 수 있습니다. 남자는 아버지의 분체(分體)요, 여자는 어머니의 분체입니다. 분신(分身)이라는 거예요.

그러기에 오늘 복귀과정에 있어서 남녀간에 서로를 대할 때 그 얼굴을 보고 따라가는 사람은 깨어질 것입니다. 상대를 하나님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일성(一性)이라 생각하고 남자면 여자, 여자면 남자를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호 존중심을 가지고 개개인의 상대적인 성품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 본연의 인간들이 걸어야 할 노정인 것입니다. 자식을 대할 때에도 그들이 아무리 자기의 아들이라도 그를 아버지의 분신으로, 딸은 어머니의 분신으로 생각하고, 그 성(性)을 존중할 줄 아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상을 전개하여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총합시켜 만물의 주인공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던 그 이념을 마음에 품고서 자식을 붙안고 사랑할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면서 타락세계에 서 있는 그 자식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슬퍼하시던 그 감정에 `오냐 너는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인류가 고대하고, 만물이 고대하던 본연의 사람이 되라’고 하며 눈물 흘릴 줄 아는 참다운 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는 만물을 대하고 우주를 대할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는 자기가 찾는 신부는 하나님의 대신이요, 인류의 대신이요, 천추 만대 후손의 대신 존재라는 감정을 가지고 신부를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랑된 예수의 심정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신부를 찾는 날에는 하늘과 딸을 품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부모를 대해서도 마찬가지요, 자녀를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모를 대신하고 자녀를 대신할 수 있는 일체이상(一體理想)의 감정을 가지고 실체형(實體型)을 갖춘 신랑 신부로서 상봉하는 날이 와야 합니다. 그날이 와야 천지, 즉 피조세계의 비극적인 모든 것, 또는 하늘과 땅에 막혔던 모든 것이 전후 좌우 상하로 화동(和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날이 우리 인류가 바라는 날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5-83
인간과 하나님이 일체(一體)로 화(和)할 수 있는 이상 동산
그러면 오늘날 인간들이 찾아 나아가야 할 곳이 어디냐 하면 이 한 곳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한 곳을 찾아 나가려면 부모를 대해서 그런 마음, 형제를 대해서 그런 마음, 자기의 상대를 대해서도 그런 마음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하나로써 세계를 대신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랑의 심정을 갖추어 가지고 하늘 땅 앞에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4천년을 역사하여 예수와 성신을 세운 것처럼, 실체신랑의 입장에서 실체신부를 상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맺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요, 이러한 실체적인 상대를 찾는 것이 인간이 걸어가는 목적점(目的點)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몸에 하나님이 들어와 일체(一體)로 화(和)할 수 있는 이상동산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인간이 찾아 나아가는 최후의 목적점이요, 인간이 찾아야 할 필연적인 운명의 표준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5-83
기 도
아버님, 참을 찾아 헤매고 있는 인류 앞에 내 한 개체는 하나님의 대신이요, 부부의 대신이요, 부모의 대신이요, 자녀의 대신이요, 형제의 대신임을 알았사옵니다. 또한 이러한 위대한 근본적인 존재의 위치를 결정지을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를 내 한 개체를 통하여, 우주에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될 필연적인 역사노정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습니다.

이제 저희 한 개체에 있어서 남자는 참된 누나를, 참된 누이동생을 찾고 있고, 참된 어머니를 찾고 있고, 참된 상대를 찾고 있으며, 또한 여자에게도 참된 상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렇게 같은 이념을 찾아 헤메고 있는 인류요, 같은 입장에 놓여 있는 인류요, 원수될래야 될 수 없는 인류요, 창조이념으로 얼크러져야 할 인류임을 아옵니다.

그런데 인류의 타락으로 부모의 사랑이 깨어졌고, 부부의 사랑이 깨어졌고, 형제의 사랑이 깨어졌습니다. 따라서 오늘 저희들이 이를 찾아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형제와 형제끼리 사랑의 감정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6천년의 서러움을 대신하여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찾아야만 하늘 땅을 대신할 수 있는 원칙적인 기준이 복귀된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저희 하나의 모습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사방성(四方性)을 갖추어 어느 한면도 결핍되어서는 안 될 존재인 연고로 저희에게 형제가 없으면 슬픈 것이요, 친구가 없으면 슬픈 것이요, 부모가 없으면 슬픈 것이요, 자녀가 없으면 슬픈 것임을 아옵니다. 이것은 인간이 사방성을 갖추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천리원칙이요, 그것이 영원한 본심으로서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삶의 제 1기준이 되는 연고로 현생활에서 이러한 현상에 처하게 될 때 슬퍼하게 된다는 것을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인류를 하나님 대신 품을 수 있는 마음, 성자 대신 품을 수 있는 마음, 성신 대신 품을 수 있는 심정을 갖게 해주시고, 하늘의 자녀로 품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러한 마음을 갖고 하늘을 생각하고 땅을 생각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혹은 슬퍼하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 한날을 맞아 영원한 만물세계 앞에 하나의 중심으로 복귀될 수 있는 기쁨의 날이 어서 속히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오늘 참을 찾아 헤매는 노정의 종착점에서 사랑할 수 있는 형제를 가지지 못한 자는 심판받을 것이요, 사랑하는 자녀를 가지지 못한 자를 핍박받을 것이요, 사랑하는 부모를 가지지 못한 자, 사랑하는 신랑 신부를 맞지 못한 자는 심판받는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절대적인 철칙에 의하여 내 몸에서부터 몸의 부모, 몸의 형제, 몸의 부부, 내 마음에서 마음의 부모, 마음의 형제, 마음의 부부, 영원한 이념세계에서 영(靈)을 중심삼고 영의 부모, 영의 형제, 영의 부부로 갖추어진, 즉 3대 부모, 3대 형제, 3대 부부의 삼위형(三位型)을 평면적인 내 개체에서 이룰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실체적인 결실체로 증거되어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축복받을 수 있는 한날을 맞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오늘날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 될 수없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내 육신(肉身)의 참부모를, 마음의 참부모를, 영(靈)의 참부모를 찾아 헤매야 되겠사온데 영의 부모는 아버님이요, 마음의 부모는 다시 오시는 주님이요, 육의 부모는 나를 낳은 부모이오니 이에 상대되는 내자녀, 형제, 상대를 찾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