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2 to 5-51: 하나님이 주관하시려는 복지를 찾아 세우자

하나님이 주관하시려는 복지를 찾아 세우자
1958.12.14 (일), 한국 전본부교회

5-32
하나님이 주관하시려는 복지를 찾아 세우자
창세기 1:24-28

[기 도(Ⅰ)]

잃어버린 참다운 자녀를 찾기 위해 복귀의 서글픈 노정을 헤쳐 나오시는 아버지의 심정과 아버지의 사정과 아버지의 형상을 이 시간 마음으로 몸으로 더듬어 체휼할 수 있는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심정에 사무친 사랑의 마음으로 아담 해와를 사랑하지 못하시고, 6천년 기나긴 세월을 사랑에 굶주려 나오신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아버님의 아들 딸이 되게 해 주시고, 서글픈 아버지의 심정을 붙안고 위로해 드릴 수 있는 간곡한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 마음과 몸을 아버지의 것으로 바쳐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몸과 마음을 저희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영원하신 아버지의 것으로 자랑할 수 있는 승리의 제물이 되게 인도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그리하여 6천년 동안 참다운 사랑의 심정으로 붙안고 사랑하지 못하였던 심정을 해원해 드릴 수 있는 당신의 혈족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땅 위에 수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아버지께서 내 아들 딸이라고 사랑하고 사탄 앞에 내 아들 딸이라고 변명하며 붙안고 사랑할 수 있는 아들 딸이 없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의 만민을 구하기 위하여 싸움의 노정을 걸을 때에도 아버지께서 친히 붙들고 사랑하지 못하셨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나이다.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자녀는 어느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이다. 아버님의 심정에 사무친 예수님이었지만 당신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저희들 알고 있사옵니다. 사랑하지 못한 아버지의 사정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영광이 한날을 세우시고 하늘의 아들 딸을 세우시어서 사무친 심정을 푸시옵고, 붙안고 사랑하며 모든 심정을 토로하시옵소서. 그런 하늘의 아들 딸이 이 땅에 나타나는 것이 아버지의 소원인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저희들은 가진 것 없고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품기어 영원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 딸이 되기를 원하옵나이다.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권능의 손길을 펴 주시어서 저희를 성별시켜 주시옵소서. 악의 요소를 제하여 온전히 아버님의 것이 될 수 있는 저희의 몸과 마음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저희의 마음을 아버지께서 아시옵고 저희의 몸을 아버지께서 아시오니, 이 시간 아버지의 존전에 엎드린 저희의 이 한 몸 마음에 부족한 것이 있다 할진데, 아버님, 능력을 나타내 주시옵고, 능력의 손길,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어서 성별된 모습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버님만이 운행할 수 있으며, 아버님만이 주관할 수 있으며, 아버님만이 권고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많은 사람이 이 땅 위에 살고 있사온대, 그 가운데 보잘것없는 저희를 택하시고 아무것도 아닌 저희를 불러 주신 아버지 앞에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까봐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이 시간 저희를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쳤을 때 홍해가 갈라진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의 지팡이가 되어 주시옵고, 아버지의 손길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하늘의 막대기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 아버지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고, 싸움의 터전을 향하여 행군하지 않으면 안 될 최후의 시간이 이미 되었사오니, 이제 자기를 살피어 내가 어느 곳에 처해 있는가 분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것으로 드려지는 저희가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각자의 입장에서, 처한 곳곳에서 아버지 앞에 제물로 드려지는 아들 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삼천만을 대신하여 저희들이 싸움의 한날을 정하고 기대하고 고대하고 있사오니, 아버지, 그날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새로운 생명의 폭탄이 되어 던져짐으로 인해 죽었던 생명들이 살아나고, 아버지의 안식의 터전을 찾아드릴 수 있는 기쁨의 날이 어서 속히 지구촌 가운데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민족 가운데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의 불충한 몸 마음을 하나로 묶어 아버지 앞에 드리고자 원하오니, 스스로 죄의 모든 요소를 버리고 순결한 몸 마음으로, 아버지의 것만으로 드려질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고, 사탄의 침범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5-34
기 도(Ⅱ)
아버님, 이들의 마음을 주관하여 주시옵고, 엎드린 이 자녀들의 심령 심령이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을지라도, 아버님의 생명의 움직임에 의해 통일된 성품을 갖추어 하나의 제물로서, 이 시간 아버님을 모실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은 뭇생명들이 아버지 앞에 나와 아버지를 찬송하는 날인 줄 아오니 아버지의 이름을 노래하는 곳곳마다 사랑의 손길을 펴 주시옵고, 하늘의 은사를 내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특히 외로운 식구들이 이 한 시간 아버님께 간구하고 있을 줄 아오니, 그들이 호소하는 음성을 들으시고, 그들의 간곡한 심정을 어여삐 여기셔서 그들이 바라는 뜻과 그들이 요구하는 소원을 성취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 딸 앞에 한마디 말씀을 전하고자 원하오니 주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동하면 같이 동하고 정하면 같이 정하여 아버지의 현현하심에 저희들도 같이 화하여, 지으신 본연의 동산의 즐거움과 은사의 심정을 아버지를 모셔놓고 체휼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헛된 자기를 중심삼은 모든 생각이나 주의 주장, 관념과 의식, 하늘을 서럽게 하는 심정을 갖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모든 것을 다 내어 놓고, 무아의 심정과 어린애 같은 마음을 갖고, 아버지께 바쳐 드리고 뜻대로 맡길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5-35
말 씀
방금 봉독한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지어 놓으시고 축복하신 말씀입니다. 자기의 형상대로 일남 일녀를 지으시고 이 모든 만물을 주관하고 동시에 이 땅을 주관하면서 후손을 번식하라고 하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을 `하나님이 주관하시려는 복지를 찾아 세우자’입니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5-35
복귀되어야 할 `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아직까지 생각하지 못하던 더 높은 이념을 중심삼고 피조세계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 이념을 중심삼고, 즉, 하나님과 인간이 영원한 사랑권내에서 같이 살기 위하여 피조세계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러한 아버지의 뜻과, 즉, 창조주 하나님이 뜻과 하나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연고로 하나님이 인간 앞에 나타내시려던 이념은 이념대로 남게 되고, 그의 경륜은 경륜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복귀, 혹은 구원이라는 서글픈 조건이 개재하게 되었고, 그런 조건들을 통해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들은 원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타락된 나, 오늘의 이 나는 타락하기 전 본연의 나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해야 할 필연적인 의무요,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아야 할 필연적인 책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있는 인간을 찾아 오시기 위하여 허덕이셨고,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하여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던 발자취를 찾아나가는 것이 우리들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과 선지선열, 그리고 우리의 선조들이 인간을 다시 찾기 위하여 수고의 노정, 애달픈 피의 노정을 걸어온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찾아오시고 우리 인류가 찾아온 그 종착점이 무엇이냐 하면 `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늘이 인정할 수 있는 `나’,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섭리의 종말시대인 이때, 필연적으로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할진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찾아오신 섭리의 노정도, 우리 인류가 6천년 동안 뜻을 찾아서 허덕이던 신앙노정도 다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늘이 요구하고 인류가 요구하는 그 `나’는 어떠한 `나’인가? 이는 하나님이 나타내시지 못했던 창조이념을 갖출 수 있는 심정과 사정과 소망을 가진 `나’요, 오늘날 인간 역사노정에 있어서 인간이 체득하지 못하였던 심정과 혹은 천적인 심정을 갖추어 온 만물을 대하여 노래할 수 있는, 즉 만우주의 주관자의 영광의 가치를 갖춘 `나’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그 사람을 찾아서 그와 인연을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과 인간들이 인연을 맺지 않는다 할진대는 인간들은 구원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구원섭리도 완성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오늘날 역사적인 목적도 어떠한 완성의 기준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인간들이 그 이념적인 표적을 향하여 달려 왔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타락이란 무엇인가? 타락이란 인간이 주인의 입장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만우주의 주관자로서 늠름하게 나설 수 있는 입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실체로 세우기 위해, 만물만상앞에 나서서 호령하게 될 때 만상이 동하고 정할 수 있는 이런 본연의 한 자체로 세우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본연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다시 복귀하기 위하여 본연의 `나’를 찾아 헤매는 것이 복귀역사 노정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5-37
말씀과 사랑과 실체를 복귀하려면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으며, 그 말씀의 실체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연의 자아를 찾아나가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필연적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람을 잃어버렸으니 이것을 찾아 우리는 헤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구원섭리해 오신 하나님도 이것을 찾으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인간, 말씀을 잃어버린 인간, 실체를 잃어버린 인간, 인간은 왜, 무엇을 못하였기 때문에 사랑과 말씀과 실체를 잃어버렸느뇨? 믿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믿지 못한 연고로 이것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 오시려면 인간들이 믿음의 조건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믿음을 조건으로 해서 인간들을 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전제조건으로 하여 인간들을 구원섭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체를 찾고, 말씀을 찾고,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나가는 복귀노정에 있어서도 먼저 무엇을 찾아야 되느냐 하면 믿음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찾아나서는 인간들 앞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소개되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소개되어 있고,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실체가 소개되어 있다는것입니다.

그러면 완전한 믿음이 무엇이냐?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체의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믿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해야 하고, 하나님의 실체를 소유해야 하며, 하나님이 사랑을 소유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복귀노정에 있어서 필연적인 조건입니다.

이러한 연고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건을 걸어놓고 우리 인간을 찾아 오고 계십니다.

인간들이 실체를 갖추고, 말씀을 갖추고, 사랑을 갖추고, 사랑과 믿음이 화합하여 사랑만 남게 되면,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대할 수 있게 인도해온 것이 복귀의 골자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복귀섭리노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 개체를 두고 보더라도 몸이 있고, 마음이 있고, 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지 못하고 타락한 연고로 몸과 더불어 만물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저지른 죄의 원천적인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 개체가 이것들을 복귀하려면 역사노정의 전체적인 죄악상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복귀의 노정을 걸어야 하겠는가. 오늘날 타락된 이 세상은 몸의 안식처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즉, 몸뚱이만을 중심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이 안식하려면 물질이 필요하므로 지금까지 인류는 물질, 즉 외적인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투쟁해 나왔습니다.

내 몸이 안식하는 동안에 그 다음에는 내 마음이 안식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마음의 안식의 동산은 어디뇨?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그 곳을 찾아 헤맸던 것입니다.

나아가 그 마음의 복지를 찾은 후에는 무엇을 찾아나가야 할 것인고? 여러분은 영원하신 영혼의 복지를 찾아야 되고, 영원하신 내 생명의 복지를 찾아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와 같이 몸이 안식할 수 있는 복지를 찾고, 마음이 안식할 수 있는 복지를 찾고, 영이 안식할 수 있는 복지를 찾은 후에 믿음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결부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발전노정을 가만히 헤아려 보면 역사는 지금까지 물질을 중심삼고 투쟁해 나온 역사였습니다. 세계 제2차대전 전까지는 물질을 중심삼고 투쟁해 나왔습니다. 즉, 경제적인 기반을 찾아서 몸의 안식처를 찾아서 헤매는 놀음을 2차대전 전까지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 2차대전 이후의 역사는 어떠한 역사인가? 정신계 즉, 인간의 본연의 마음을 찾아나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사상과 주의를 중심삼고 벌어지고 있는데, 인간의 마음의 복지를 해결해야 할 사상과 주의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금 막히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5-39
우리가 거쳐야 할 복귀 과정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몸을 잃어버렸고, 마음을 잃어버렸고, 영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을 복귀하고 안식의 조건을 찾아 헤맨 역사가 인류역사인데, 물질을 찾아 헤매던 단계를 지나 지금은 양심을 찾아 헤매야할 단계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세계가 사상과 주의를 중심삼은 2대 진영으로 갈라져 대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나아가 우리는 복귀의 노정을 거쳐 나가야 할 입장에 있는 연고로 물질을 중심한 이념을 넘어서서 마음을 중심한 이념을 찾아 헤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착점이 인류역사 노정에서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의 복지를 찾은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영원한 정적인 복지를 찾아야 됩니다. 최후의 이 땅 위에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승리의 조건이 뭐냐? 그것은 하늘 땅을 초월할 수 있는 정적인 주의, 마음도 움직여낼 수 있고 우주도 움직여낼 수 있는 주의입니다. 이 우주는 다른 어떠한 인연에 의해서도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도 어떠한 정적인 이념의 세계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을 양심을 통해 봄으로알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대도 지나가고, 사상의 시대도 지나갔고, 이제는 양심의 시대가 와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양심의 시대를 넘어 영원한 천적인 사랑을 중심삼은 심정의 시대가 와야 합니다. 이런 시대를 거치는 것이 타락한 인간들의 운명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의 안식처를 찾아야 하고,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영원한 정적인 안식처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길은 인간이 아니 갈래야 아니갈 수 없는 운명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한 자체가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 어떠한 권한을 회복해야 되느냐? 하늘과 땅을 주관하는 권한을 회복해야 됩니다. 이것은 인간이 당연히 행사할 수 있는 본연의 권한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늘 땅을 대표하여 하늘 땅을 주관하고, 하늘 땅을 귀일시켜 하나의 심정의 이념세계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가 인간의 본연의 안식처였는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본연의 안식처를 잃어버렸고, 그로 인해 복귀의 노정이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되는가? 나 한 개체를 중심삼고 가정을 거치고, 사회를 거치고, 국가를 거치고, 세계를 거쳐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단계입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인간의 마음과 본연의 이념의 실제생활에서 조화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념은 이념대로 남아지고 인간의 마음은 딴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념과 마음의 간격이 인간에게 고통으로 남아졌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느냐? 하나님을 배반하고 천륜의 법도를 어긴 사탄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오늘날까지 인간을 지배해 나오는 이념의 복지는 어디까지였던가. 그것은 이 땅덩어리, 보이는 실체세계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본연의 이념의 복지를 남겨 주고 먼저 사탄이 주관하는 이 땅의 만민을 붙안고 사탄과 대결해 나오셨습니다. 이것이 복귀섭리 역사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가 인류 앞에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 세계가 나타날 수 있는 한날이 기독교가 말하는 재림의 날이요, 그 한날이 종교에서 말하는 심판의 날이라는 거예요.

옛날부터 인간들은 서로 싸워 나왔습니다. 그래서 씨족으로부터 부족, 민족, 국가간의 싸움을 거치는 동안 점점 여러 민족이 융합되었고, 현재는 두 세계로 형성되었습니다.

인류가 이러한 과정을 거쳐나온 것은 인류가 복귀의 운세를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 위에 그런 형태가 갖추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이 이런 두 세계를 각각 대하여 지금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5-41
물질중심시대, 사상중심시대, 양심중심시대, 종교이념중심시대
인간 하나를 놓고 보면 인간은 아직 몸을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몸을 복귀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가 2차대전 이전까지의 투쟁역사입니다. 2차대전 이전은 물질을 중심삼은, 즉 경제를 중심한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2차대전 이전까지는 물질, 경제가 좌우되면 나라의 주권과 세계 전체가 좌우되어 들어갔습니다. 이러한 물질을 중심한 시대가 지나간 후에야, 즉, 2차대전 이후에야 사상의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 발전의 필연적인 흐름이었습니다. 이제 정신을 중심한 주의와 사상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어떠한 사상이 승리할 것인가. 그것은 물질을 지배할 수 있는 사상입니다. 마음이 몸을 주관해야 하듯이 사상과 주의가 물질을 지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세계의 모든 주권국가는 반드시 경제의 기반 위에 성립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국가의 이념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려면 그 이념은 물질을 초월한 이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주진영과 공산진영도 여러 나라들이 각기 주권을 갖고 서로 대결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어느 진영이 승리할 것인가. 그 승리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어느 진영이 먼저 소유하고 있는 물질을 약소국가들에게 줄 줄 아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는 승패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유진영에서 약소국가들에게 경제원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소련은 이것을 약점으로 잡아 경제공세를 취하여 나오고 있습니다. 이집트에 대한 경제원조를 하면서 민주진영의 약점을 이용하려는 작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진영에서는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전세계에 주의 사상을 전파하려면 그 사상이나 주의는 물질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그러한 사상이라도 그것을 전세계에 전파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 다음에 인간이 찾아나가야 할 최후의 길이 무엇이뇨? 양심주의 세계를 지향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인간들로 하여금 주의와 사상의 시대를 지나서 양심을 시대를 지향해 나가게 하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지향해 나가게 하고, 하나님의 정적인 이념의 세계를 지향해 나가게 할 수 있는 무엇이 나와야 됩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오늘날 인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다 할진대는 하나님은 어느 때를 바라보고 작전계획을 세우시고 준비해 나오셨느냐? 하나님은 사상의 시대를 지나 양심의 시대를 바라보고 나오셨습니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작전과 계획이 실천단계로 들어가는 때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앞에는 2대 진영, 즉, 민주진영과 공산진영 앞에 종교의 형태를 갖춘 아랍권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옛날의 사라센제국을 모방한 회회교 문명권을 형성하고, 하나의 이념의 내세우며 하나의 블럭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나타내느냐. 인류를 종교이념의 세계로 귀일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목적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런 복귀섭리의 목적의 최후에는 이러한 작전이 필연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이 싸워가지고 공산진영이 깨어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공산진영의 여러 나라들이 자유진영 쪽보다도 아랍권으로 흡수될 가망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이 땅에 하나의 목적, 하나의 이념을 중심한 통합세계가 건설되어야 할진대, 이 시대에 있어서 민주진영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한 이념을 갖춘 종교, 하나님의 실체인 인간을 사랑하는 종교, 모든 주의 주장을 대신할 수 있는 종교가 필연적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런 종교가 나오는 끝날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오늘날 인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어느 날에나 민주진영에서 아랍진영, 즉, 회회교권을 제압시킬 수 있는, 통일의 이념을 갖춘 종교가 나타날 것인가.

5-43
이상향을 그리워 하는 인간의 마음과 문명권 발전사
통일 이념, 이것은 새로운 시대에 있어서는 반드시 나와야 될 역사적인 기준이요, 우주적인 기준이요, 천주적인 기준입니다. 그런 기준 위에서 종교의 통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오늘날 여러분들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라는 이름이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통일이념을 중심삼고 계속 발전하면서 그 이념을 주장하고, 이런 세계의 움직임 앞에 선두에 서서 싸워나가는 어떤 몰림받는 무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상의 시대, 주의의 시대에 있어서 우리가 찾아 세워야 할 것이 무엇이뇨? 인간들은 마음으로 본향을 그리워 해왔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하여 즐길 수 있는 사랑의 동산을 꿈꾸어 갈망해 왔습니다.

우리가 역사발전 과정을 살펴 보면, 인류 최초의 문명인 이집트문명은 나일강을 중심한 하천문명입니다. 즉 이집트문명은 나일강을 모태로 해서 발상된 문명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집트문명은 또 어떻게 해서 발전되었는가. 그들에게는 `강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 것인가’하고 궁금해 했습니다. 항상 강 건너 저편에 가보기를 소망했는데 이런 것들이 이집트문명을 발전시키는 정신적인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천문명시대가 지나간 이후에 지중해문명이 건설되었습니다. 피안을 바라보는 간절한 마음, 소망의 심정이 동기가 되어 인류사회가 발전돼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피안을 향한 간절한 심정이 문명의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이스 로마시대에는 지중해를 중심삼은 문명권이 형성되었습니다. 지중해를 바라보며 지중해 너머, 즉 피안에 대한 관심을 가진 민족이 지중해를 지배하였던 것입니다. 16세기에 들어와서는 지중해문명이 쇠퇴하고 대서양문명권을 형성되었습니다. 그후 대서양을 건너가 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대서양을 횡단하여 미국을 도달하였고 이제는 미국과 아시아를 잇는 새로운 태평양문명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때가 거의 다 되었다는 거예요.

이제는 인간들이 이 땅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바라던 소망도 이루었기 때문에 우주로 진출하려 하고 있습니다. 즉, 새로운 피안을 찾아 나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우주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그리고 `달나라에 가겠다’는 소망대로 실제 인간들이 달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발전 노정에서 새로운 이상향을 소망하고 실체적으로 개척하게 했던 인간의 심적인 동향과 이상향을 그리는 인간의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이 우주를 정복한 후에는 끝날 것인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주를 넘어서 마음의 동산, 세계 만민의 마음을 주관할 수 있는 동산, 마음의 세계를 찾고, 그 다음 마음세계를 넘어서 신이 실존한다면 그 신의 이념세계에서 완전히 신과 일체를 이루고, 신의 이념에 취하여 다른 아무것도 요구되지 않게 돼야 이상향을 그리는 마음의 움직임이 끝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류가 과학문명을 노래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16세기 후반기부터였습니다. 과학문명의 역사는 겨우 4백년 밖에 안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6천년의 인류역사를 생각해 볼 때, 인류는 6천년 내내 마음으로 이상향, 즉 천국을 지향해 나왔고, 하나님을 찾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아 천륜에 의해서 하나님과 인연맺기를 바라고 나왔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여러분은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인간의 마음이나 양심을 부정하는 책자는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땅에 마음을 부정하는 세계, 마음을 부정하는 주의는 없습니다. 인간이 영원한 이념의 세계, 인간의 감정과 통할 수 있는 체휼의 세계를 흠모하고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주의는 없는 것입니다.

수많은 교회와 수많은 종교가 이 마음의 세계를 이념으로 하여 가르쳐 왔는데, 헛것을 가르쳐 온 것인가. 천만의 말씀입니다. 수천 수만권의 책자를 보아도 그 이념을 부정하는 책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종교의 이념이 옳은데도 그 이념이 이루어지지 않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것은 인간이 타락된 연고입니다.

이제 인간들은 마음의 세계, 영원한 영적인 세계를 돌파하여 행군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끝날에 처한 인간들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종교와 도를 통해 가지고 주의 주장의 세계를 넘어서 한 때를 바라보고 나오십니다.

5-45
심정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새말씀의 필요성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이 물질적인 혁명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물질적인 혁명,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양심의 혁명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면 양심의 혁명을 제시하며 나설 수 있는 하나의 주의는 어디 있을 것인가? 더 나아가서 심정적인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주의는 없겠는가. 이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주의가 나오기 전에는 이 세계는 통일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주의가 나온다면 그 주의는 물질을 기반으로 해야 하고, 말씀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잃어버렸고, 사랑을 잃어버렸고, 말씀을 잃어버렸고, 실체를 잃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복귀하기 위해서 인간들은 먼저 물질주의시대를 거쳤고, 이념과 사상의 시대를 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정적인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게 하는 것은 정(情)입니다. 사람들은 지정의(知情意)라고들 하지요. 그러나 정이 먼저라는 거예요. 이 인간 본연의 정을 폭발시켜 가지고 본연의 정의 세계에서 정적인 감흥으로 피조만물을 노래할 수 있는 위대한 예술가가 나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적인 위대한 과학자와 종교가 나와야 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무엇을 찾아 헤맸느뇨? 인간들은 주의도 만족해 하지 않았고 믿음도 만족해 하지 않았습니다. 참다운 말씀, 진리를 찾아 해맸다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찾아서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내 마음이 새로운 이념을 중심하고 생명이 약동할 수 있는 봄동산을 맞이하자는 것입니다. 인간들로 하여금 생명이 약동하게 하는 진리라야 참다운 진리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기독교를 통하여 진리의 말씀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들에게 실체를 복귀하기 위한 말씀을 주셨으나, 그 말씀의 사명이 종결되지 못한 채 역사는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말씀의 사명을 완결시키고 마음의 혁명과 정(情)의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셨는데, 인간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모시지 않은 연고로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것들이 인류 앞에 다시 일으켜야 할 것으로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기독교 신자들 뿐만 아니라 그 외 수많은 종교인들도 그러한 참된 말씀을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타락인간들을 복귀할 수 있는 몸과 마음, 정, 모든 것을 통할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이 나온다 할진대 세계는 자연히 통일될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는 복귀섭리가 필연적으로 있어야 하는데, 타락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을 그대로 되찾는 내적 혁명이 있어야 합니다. 이 내적 혁명을 수행해야 할 사람들이 끝날의 기독교인들이요, 종교인들이요, 양심가들입니다. 사실 양심가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아무리 고생을 했더라도 말세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성경 66권의 말씀은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는 인간의 본연의 마음을 불러 일으키고 본연의 심정을 유발시키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두 가지 내용을 갖춘 새로운 말씀을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만일 이러한 말씀을 찾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6천년 섭리역사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러한 현상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실패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문화와 사상이 규합되어 나오는 역사의 추세를 감안해 볼 때, 이제 마지막 날에 꼭 필요한 것은, 본연의 마음을 움직이고 본연의 심정을 움직여 낼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시고 싶은 말씀을 다 하시지 못하셨습니다. 또, 인간들을 사랑하고 싶으셨지만 다 사랑하시지 못하셨습니다. 이것이 인류에게는 큰 슬픔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도 슬픈 일이었습니다.

복귀노정에 있는 인간들에게 몸과 마음의 세계, 정(情)의 세계, 그리고 하나님의 심정을 소개하는 말씀을 해 주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예수님의 슬픔이었던 것입니다.

5-47
하나님과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그 말씀을 찾는데 있어서, 하나님은 우주를 초월해서 존재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피조만물도 하나님과의 관계와 인연을 벗어나가지고는 완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집을 짓는 데도 모든 재료를 연결시키고 서로 연관성을 갖게 해서 지어야 집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제 성경 66권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을 찾아야 되었고, 예수님의 마음과 심정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마음과 심정을 알아야만 내 마음과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 예수님의 마음과 심정이 완전히 나타나 있지는 않습니다. 성경에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과연 `천국이 내 마음에 있다’고 할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어디에….

오늘날 그런 것들을 찾아야 할 우리들, 여기에서 생각해 볼 때, 좋은 성경귀절을 외는 사람은 많습니다. 훌륭한 명문구들을.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과 심정을 알려면, 만민의 구주요 만인간의 참아버지로 오셨던 예수님께서 왜 이 땅 위에서 슬퍼하셨는가,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엇을 제일 슬퍼하셨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알야야 예수님의 마음과 심정을 알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일 억울하고 분하고 고통스러워했던 것이 무엇이냐, 그 곡절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예수님을 대해 `당신의 심정과 마음이 이러이러하지 않습니까? 내가 그 심정과 마음을 아옵니다’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참다운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하나를 찾기 위하여 지금까지 슬퍼하시고, 고통당하신 그 역사적인 내용이 이러이러했다, 시대적인 내용일 이러이러하다, 나아가 미래에 대한 소망이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전세계의 인류가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슬픔의 길을 걸으시고, 고통의 길을 걸으시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후에야 부활의 기쁜 한날을 맞이하셨는데, 하늘 대해서는 기뻐할 수 있었으나 땅의 인간들을 대해서는 기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부활의 한날을 맞은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하나님을 대해서는 `아버지시여!’하고 하며 기뻐하실 수 있었으면서 인간들을 대해서는 기뻐하실 수 없었던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심정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정을 붙들고 하나님의 마음을 붙들고 눈물흘리며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땅위의 인간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붙들고 기뻐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간들을 대해서 기뻐하시지 못한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권내에서 하늘이 즐기시는 그 자리에 인간이 참석하여 즐길 수 있었던들 2천년이라는 서러운 역사과정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곡절의 심정을 가지고 부활하신 예수, 그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을 막달라 마리아가 뵙고 `오 주여’ 하며 붙잡으려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를 붙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웬 말입니까? 인간이 아무리 예수를 붙들려고 해도 예수의 슬픔과 고통을 알지 못하고 예수의 마음과 심정을 알지 못하고는 예수님과 하나될 수 없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이나 주의를 버리고 나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한 무리들이 어떤 무리들이었습니까?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물질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이념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라도 예수님의 심정을 알려고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심정은 자신을 위하려고 한 심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려고 한 심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정을 마음에 간직하고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5-49
하나님과 예수님이 기뻐하시려면
하나님의 심정에는 곡절의 코오스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해명하여 `하나님이시여! 이제 알았나이다. 당신이 섭리하신 궁극적인 뜻이 무엇이고, 어떤 심정을 품으시고 섭리하셨는지 알았나이다.’ 라고 하시며 하나님을 붙들고 자기의 위신과 체면도 잊어버리고 눈물 흘리며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예수님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적인 세계의 이념이 외적인 세계의 이념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에 인간이 쌍수를 들어 주를 믿고, 사랑으로 말씀을 실천하고, 신앙으로 실체를 회복하더라도 맨 나중에 남는 것이 뭐냐하면, 하나님이 마음과 예수님이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하나되고,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하나되는 일입니다. 이것이 신앙인들의 최후의 과제요 정적인 과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는 최후에 남아지는 종교입니다. 하늘나라의 사람들은 주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입니다. 내 몸과 마음, 내 모든 전부를 주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타락한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를 중심삼고 살려고 허덕이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마음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어야만 인간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과 만물을 품에 품으시고 사랑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 딸이 될 수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한번도 영과 육이 완성되었다는 조건을 갖춘 사람을 붙안고 사랑해 보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랑해 보지 못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아직도 낙원에서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우리는 우리의 영과 육, 온 전체를 품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만을 갈망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은 문제가 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러한 권내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분을 세워 만물을 주관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세계가 하나님의 복귀하시려는 주관세계요 안식의 동산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개체의 문제로 돌아가, 복귀의 운명에 놓여진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새로운 이념을 찾아 헤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때가 왔습니다. 앞으로는 진정한 인생관 문제, 우주관 문제가 대두될 것입니다. 보이는 실체세계에 대한 인식과 관념을 토대로 한 우주관은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느껴지는 느낌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개척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천주적인 이념, 마음의 세계를 통합할 수 있는 어떠한 주의가 나온다면 그 주의는 마지막 주의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뿐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과학문명이 극도로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학문명을 지배할 수 있도록 정신문명의 수준을 향상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세계를 주관할 수 있고, 나아가 영의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그 어떠한 주의를 필히 찾아야 합니다. 이런 주의를 찾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결부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를 통한 사랑이나 그 사랑을 붙들면 온 우주가 내 속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한 우주적인 감정을 느끼고 우주의 모든 만상을 대표하여 하늘 앞에 노래할 수 있고, 하늘과 더불어 기쁘게 살 수 있는 아들 딸이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주관권을 갖춘 아들 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아들 딸이 되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창조이상동산에서 살 수 있는 아들 딸로 인정되고, 하나님께서 품고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 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5-51
기 도
아버님, 역사의 흐름을 인간들은 알지 못하오나 아버지께서 친히 섭리의 뜻을 경영하여 나오신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나온 당신의 아들 딸들, 이제 자기가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는가 스스로 비판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몸뚱이를 찾기 위하여, 몸뚱이의 안식을 찾기 위하여 살고 있는 자가 있습니까? 마음의 안식만을 위하여 살고 있는 자가 있습니까? 이것을 넘고 넘어 아버지의 사랑에 의하여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야 할 필연적인 복귀의 노정인 것을 알았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야 이것을 잃어버린 연고로 믿음과 실체와 말씀과 사랑을 찾아 헤매온 인류 역사 앞에 늠름히 일어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고, 천적인 심정과 천적인 사랑과 천적인 소원을 가지고 이 땅의 모든 만물 앞에 어엿이 나설 수 있는 아들 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영원하신 생명으로 저희의 몸 마음을 영원히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오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