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 to 5-30: 하나님의 소유와 우리의 소유

하나님의 소유와 우리의 소유
1958.11.09 (일), 한국 전본부교회

5-07
하나님의 소유와 우리의 소유
마태복음 6:16-34

[기 도]

아버님! 저희들의 발걸음이 하늘을 향하여 뒤넘이쳐야 할 때는 가까와오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고생이 컸음을 저희들은 알았사옵고, 아버지께서 작정한 뜻이 무엇이라는 것도 알았사오며, 또 아버님께서 저희들에게 행하기를 바라시는 자녀의 책임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하는 것도 알았사옵나이다.

아버님의 뜻을 아는 사람, 아버님의 허락한 동산에 살 사람, 그 한 사람은 아버님을 향하여 무한히 눈물짓지 않으면 안 될 것도 알았사옵니다. 그 한 사람이 아버지를 향하여 나아가게 될 때에 상처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그 한 사람은 아버지와 더불어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또 그 한 사람은 몸에도 그런 흔적을 가져야 됨을 아는 동시에, 마음에도 비통한 심정을 갖고 한없이 통탄해 하고 아버지의 심판의 한 날을 대비하여 호소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또한 저희들, 그러한 아들 딸을 찾으려 하시는 아버지와 영원히 인연맺어야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오늘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선 자라고 자인하는 입장에 서지 말게 인도해 주시고, 말하기도 부끄럽고, 행동하기도 부끄럽고, 얼굴 들기에도 부끄러운 자신들임을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 중에 마음을 열어 천상의 염려를 알고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아버지와 이 민족의 서러움을 대신하여 통곡하지 않을 수 없고, 인류의 서러움을 대신하여 통곡하고, 모든 영인들과 더불어 하늘 땅에 사무쳐 있는 슬픔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친구가될 것임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저희 자체가 그런 자리에 섰는가 하고 생각해 볼 때, 아버님,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염려하신 아버지 앞에, 고난의 길을 걸어오신 아버지 앞에 체면을 세울 수 없으면 송구스러운 마음이라도 가질 줄 아는 모습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택한 무리들을 거느리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 성문을 통과시키기 위한 아버님의 슬픔, 저희 한 자체를 거느려 선의 입장에까지 이끄시려는 아버님의 고충이 얼마나 크셨사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저희들은 아버님의 수고를 잊어버렸고, 아버지의 염려를 잊어버렸고, 아버님의 권고해 오신 발자취를 잊어버렸사오니, 이제 하늘의 정병된 자들의 움직임이 있다 할진대, 그 움직임이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르는 발걸음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마음에 긍지를 갖고 나아가는 움직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만민은 이 길을 가기 싫어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뭇사람들은 이길을 마음으로는 원하고 있으되 행동으로 연결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아버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요, 어떤 지도자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요, 우리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이 엄연한 사실을 책임지려는 사람들이 심히도 적다는 사실을 저희가 알았사오니, 안일한 저희 마음에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이 넘쳐 흐르게 해 주시옵고, 아버지의 서글픈 심정이 넘쳐 흐르게 해 주시옵고, 하늘의 권고의 길을 찾아나설 수 있는 의로운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늘의 복을 바라는 사람은 많사옵고, 아버지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정성드리는 사람은 많사오나, 6천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은 아버지의 참다운 아들딸, 아버지 앞에 제물이 되고자 하는 충성된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때인 줄 아옵니다. 저희들이 혹시나 아버님의 섭리노정을 혼란시키는 불쌍한 무리들이 될까 심히 두렵사오니, 옛날 이스라엘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장담할 수 없는 저희 자신들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자신을 염려하여 아버지 앞에 부끄러운 자녀, 염려되는 자녀가 되지 않기 위해 수고하는 아들 딸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선조의 원한이 저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이때에, 불신의 억만 사탄들이 저희를 유혹하고 있는 이 때에, 아버지 앞에 넉넉히 자랑할 수있는 하나의 가치적인 존재로 찾아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저희들이 아버님 앞에 경배하기 위해서 나왔사오니, 몸 마음 스스로 반성하여 하나될 수 있는 조건, 선의 조건을 세우는 그런 자리에 설 수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날을 위하여 아버지를 염려하면서 기도하는 무리는 누구이옵니까? 눈물짓는 무리는 누구이옵니까? 하늘 땅을 대신 하여 슬퍼하는 무리는 누구이옵니까? 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그들 위에 영광의 날이 어서 속히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이, 아버님, 뭇 사람들이 책임 못한 것까지도 도맡아 책임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남겨진 사명 앞에 진실하고, 남겨진 뜻 앞에 신실하며, 아버지의 뜻 하나를 위하여 모든 것 다 바쳐 싸워나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 딸 되게 허락해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싸우고 있는 저희들의 발자취와 그 머무는 위치가 본연의 이상동산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는가, 스스로 분석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염려의 기준을 돌파하기 위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날 모든 것 하락하신 뜻대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기쁨의 은사를 받을수 있는 심정을 갖춘 자가 있거든 그에게 역사해 주시옵길 바라옵고, 아버지를 대하는 대로 나타나시옵고, 아버지를 위해 정성드리는 대로 축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 아버지께 맡기었사오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사탄이 틈타는 시간 되지 말게 허락해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5-10
말 씀
`하나님의 소유와 우리의 소유’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5-10
주인을 잃어버린 피조물
우리는 지음받은 피조물이 주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물도 그러하고 우리 자신들도 그러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소유되지 못하고 있고, 또 만물과 이 세계를 절대적으로 소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절대자이신 하나님도 지으신 만물이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자신있게 주관하지 못하고 계신 이 서글픈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은 한 주인 앞에 소유되기 위한 노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시대를 지나고 세기를 지나 오늘 이날까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파란곡절의 투쟁역사를 거쳐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 모든 피조만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부인하지 못한다 할진대는 이 피조물을 주관하는 주인, 어떤 절대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절대자의 주관하에서 어느누구도 참소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안정점을 찾지 않는 한, 이 세계는 투쟁의 역사를 모면할 수가 없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은 만물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시지 못하는 그 한사실을 오늘날 신자들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온 정력을 기울여 지으신 만물을 뜻대로 주관하시지 못하고, 뜻대로 활용하시지 못하는 입장에 계십니다. 그래서 본래의 입장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님이 섭리역사가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 신앙자들은 시대 시대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억울한 박해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나오고 있습니다.

하늘을 위하여 충성하고, 하늘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 그 한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싸워나오고 있는 수많은 자녀들을, 하늘이 선의 이념을 중심삼고, 승리의 영광을 중심삼고 주관할 수 없는 것 또한 하나님의 서러움입니다. 그리고 참다운 신앙노정을 가고자 하는 참다운 사람들의 서러움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실존적인 소유의 가치를 만 우주 앞에 자랑할 수 있게 되는 그 한 날을 하나님의 섭리가 총결산되는 날이요, 온 피조물의 바램의 초점이요, 예수님과 지금까지 왔다갔던 성현 현철들이 이상하는 기준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과 여러분이 살고 있는 생활환경을 살펴보게 될 때, 여러분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나 여러분 한 자체, 여러분이 속해 있는 가정, 여러분이 속해 있는 사회, 그리고 여러분이 속해 있는 국가와 세계는 누구의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늘의 소유라고도 할 수없고 여러분 것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타락한 인류에게는 슬픔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섭리라는 표어를 세워 놓고,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 것을 다 갖고 나를 위하라고 말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정, 지극히 슬픈 사정을 우리는 느껴야 되겠습니다. 사람을 만물의 주관자의 입장에 세워주어야 할 하나님인데, 갖고 있는 모든 것을 갖고 당신을 따르라고 권고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사정을 우리는 느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道)의 노정을 찾아나가는 사람은, 어느시대, 어느 민족, 어느 세계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갖고 있던 모든 소유물까지도 다 끊어 놓고 따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뼈저리게 알아야 하고, 뼈저리게 느껴야 하고, 뼈저리게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권이 찾아지는 때가 오게 될때 하나님과 하등이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믿는다는 사람들은 구원받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어 택한 제3이스라엘의 이름을 가지고 나서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내 한 자신이 그것을 가질 수 있는 기준과 자격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야야되겠습니다.

하늘이 만물을 주관하지 못하는 입장에 처해 있는 연고로, 이 땅 위에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많이 왔다갔을지라도 이 땅을 완전히 주관하여 자기 것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용자는 나타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역사노정은 어느때까지 계속될 것이뇨? 이 땅이 영원히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이 결정지어지는 그날까지 역사는 곡절의 노정을 거쳐나갈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문화, 혹은 어떤 정치권력과 종교, 그 모두를 자기의 소유인 것같이 자랑해 왔지만 사조의 변화에 따라 어떤 민족이 자랑하던 그 문화는 그 중심이 다른데로 옮겨져 왔고, 어떤 주의 주장을 중심삼던 모든 정치권력도 바뀌어져 왔으며, 종교까지도 바뀌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노정을 고찰해 볼 때 이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즉, 그 어떠한 움직임도 결정적인 소유권을 가진 입장에 서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노정을 돌이켜볼 때 알 수 있습니다.

5-12
인간들이 지켜야 할 도의 기준
하나님이 완전히 주관할 수 없는 때에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 것이 타락의 발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완전히 주관할 수 있는 때를 맞이하여 행동했던들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 이후 지금까지 주관적인 권한을 갖고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민족을 움직이려 했고, 국가를 움직이려 했고, 세계를 움직이려 했으되, 그 시대를 총책임진 사람으로서 머물지 못했던 것입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씨족과 부족과 민족과 국가와 더 나아가서 하늘 땅까지 하나님이 주관하는 때가 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늘땅, 영계가 있다면 그 영계까지 주관하시게 되는 필연적인 움직임이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관하는 전체의 이념이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우리 인간들을 대하여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물질을 버리고, 자기가 갖고 있는 생명을 버리고, 자기가 갖고 있는 이념을 버리고, 이 땅 위에서 즐거워할 수 있는 정까지도 버리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인간을 대해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도의 기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런 요구의 조건을 우리에게 내세우셨던가? 그것은 절대자의 소유의 권한이 나타나는 한때가 기필코 오므로 그때에 우리를 하나님 앞에 넉넉히 설 수 있는 자격자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따르고 선의 뜻을 찾아나가는 사람들이 지켜나가야 하는 필수적인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기쁨을 주기 전에 고통을 당하게 하셨고, 무엇을 자랑하게 하기 전에 핍박을 받게 하셨으며, 스스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을 피하여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도의 기준을 인간들 앞에 제시한 것은 어느 한때를 계기로 하여 인간들을 하나님의 완전한 소유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경 본문 말씀에 보면, `너희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그 나라, 하나님의 의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그 의는 어디 있을 것인가, 또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 있을 것인가. 즉, 하나님이 소유할 수 있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 것인가. 선의 나라일 것입니다. 그 나라는 종교를 초월하고, 일개 국가의 관념을 초월하고, 인간의 차별을 초월하고, 주권을 초월하고, 어떤 문화나 사상을 초월하는 선의 나라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선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상적인 나라라고 주장했던 나라요, 자기가 살고 싶은 곳이라고 주장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천국은 자기의 것을 마음놓고 주장할 수 있는, 소유의 관념을 세울 수 있는 곳입니다. 이와 같은 곳이 우리가 바라는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면 기독교, 어떤 교파면 교파가 자기들만을 중심삼은 소유관념, 또는 교파적인 소유관념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때리는 시기는 기필코 옵니다. 어떤 일개 국가의 주의만을 중심삼고 전체를 끌어당겨 규합시키고자 하는 그런 주의를 칠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철칙입니다.

하나님은 사탄까지도 용납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탄을 치지 못하고 용납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사탄의 간청을 들어주시고 사탄의 참소조건을 들어주시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사탄이 비록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고 따르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싫어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존경하고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을 대하여 `하나님이여! 내 수중에 있는 이 세계는 당신께 드리겠사옵니다. 그러하오니 아담을 제쳐 놓고 아담의 자리에 대신 나를 세워 주시옵소서.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나도 인간 이상 하나님을 모시겠습니다’ 라고 간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러한 입장에만 세워 주신다면 인간 이상 하나님을 모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난처한 입장에 계십니다.

5-14
하나님의 소유와 사탄의 소유
그러면 하늘이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보내고 예수를 보내서 하시고자 한것은 무엇이었던가. 사탄이 아는 이상 하나님의 사정을 알고, 사탄이 하나님을 위하는 이상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워 사탄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완성하는 것이 재림역사의 목적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사탄된 동기가 어디 있는가. 천륜을 파탄시킨 동기가 어디 있는가. 아담 해와보다 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하는 이상 아담 해와를 사랑하려 하고,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상 하나님을 더 사랑하려 했던들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에 조건이 걸렸던 것입니다. 악은 무엇인가. 자기보다 더 남을 위하지 못하고, 선을 섬기지 못한 것이 악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이 조건에 다 걸려 있습니다.

그러면 선한 나라는 어떠한 나라인가. 하나님이 소유할 수 있는 나라는 어떠한 나라인가. 또 하나님께 소유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하나님께 소유될 수 있는 만물은 어떤 것인가. 그 귀결점은 무엇일 것인가. 자기를 중심한 것은 어떤 것도 하나님이 소유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입장에 선 존재, 하나님께 흡수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를 하나님은 소유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법은 자기를 위하라는 법입니다. 그래서 사탄세계의 사람들은 가정, 사회, 국가, 세계, 하늘 땅의 모든 존재가 모두 자기 개인만을 위해서 존재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한 하나님의 법도와 다른 점입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 관념까지도 남의 것으로 느끼고 남을 위하여, 혹은 전체의 것으로 느끼고 전체를 위하여 쓸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고로 인간 세계에서 어떤 타락의 현상이 벌어졌는가 하면, 만물과 세계와 하나님까지 자기를 중심한 생활 속으로 끌려들이려 하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생긴 타락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선의 역사는 무엇인가. 내 개인으로 혁명을 일으켜 가지고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남을 위하여 새로운 방향의 노정을 개척해 나가는 역사입니다. 이것은 곧 종교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느 시대 어느 세기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사명을 갖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던 사람 중에는 자기를 위하여 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사탄세계에서 자기를 중심하고 자기를 위하라고 하던 영웅호걸은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역사가 지나면 다 비판받는 것입니다.

5-15
예수님이 주장하신 주의
예수가 이 땅 위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하나님이 소유할 수 있는 나라, 하나님이 소유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이 소유할 수 있는 만물을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또 그가 주장한 주의는 무슨 주의였던가. 예수님의 주의는 `나를 희생하고 민족과 세계와 우주를 위해 봉사하자’는 주의였습니다. 우주를 위하여 많이 봉사하고 많이 희생한 사람은 그 우주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악의 세계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말없이 충성하고 말없이 봉사하는 무리는 어떠한 국가나 어떠한 사회나 어떠한 곳에 가더라도 주인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나 개인과 가정, 사회,국가, 세계, 천주를 소유하실 수있는 권한을 찾아드려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이런 소유권은 하나님 자신이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세워서 해결해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중대한 의무가 남아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섭리를 대표하여 왔던 수많은 성현 현철들은 이 의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목베임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면서도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는 30여 평생 요셉의 집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하늘의 전권대사와 같은 존재라고 주장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긴 역사를 거쳐오시면서 그런 주장을 한번도 못하셨음을 아시는 예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최후의 기도를 하는 마당에서도, 자기 뜻을 중심삼고 `아버지여! 이루어 주시옵소서’ 라는 기도를 못하시고, `아버지여! 내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세주로서 땅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크면 클수록 자기에 대한 존재의식과 소유관념이 강할 것이지만, 내가 내자신만을 위하여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자기는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소유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줄 아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갈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정을 자기의 심정으로 대신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피조만물 앞에 하늘의 뜻을 따라가고, 하늘의 심정을 따라가야 할 인간 앞에 구주로서의 자격을 갖출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5-17
천국백성의 자격
그러면 천국의 백성들은 어떠한 사람들이겠는가? 자기를 들어 만민 앞에 봉사의 깃발을 들고 나선 무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어느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그 민족을 위하여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 자기의 생명까지 바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곧 천국 백성입니다. 이러한 백성을 규합해 가지고 천국 이념을 성취하여야 할 하나님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나의 소유적인 가치를 이 땅에서부터 결정짓고자 하시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할진대, 여러분은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 6:3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모순된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러한 말씀을 하셨는가? 그것은 6천년 동안 안 먹고, 안 마시고, 안 입더라도 회복하여야 할 천적인 소유의 이념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굶주리고 불쌍한 민족이 있다 하더라도 그 민족 이상 불쌍한 입장에 계시며, 어떤 억울한 민족이 있다 하더라도 그 민족 이상 억울한 입장에 처해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 보다도 우리 자신들을 더 염려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아야 할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염려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예수님은 그러한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예수님의 그 말씀대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자기의 굶주림을 걸어놓고 `땅위에서 나와 같이 굶주림을 당하는 선한 무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라고 염려하면서 하늘 앞에 호소해야 할 것입니다. 선한 입장에 있지 못한 자신이 굶주림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선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굶주려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이 우리에게 지워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입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소유할수 있는 그 나라와 그 백성을 만들기 위하여 수고해 주기를 바라셔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다 할진대 어떠한 사람을 택할 것인가? 또 어떠한 사람을 택하여 자기의 자녀로 삼을 것인가? 자기의 굶주림을 넘고 자기의 어려움을 넘어서 손을 들어 남을 위해 축복할 수 있는 그 한 사람을 찾을 것이고, 자기의 분함과 슬픔을 넘어 하나님의 분함과 슬픔을 염려하여 울 줄 아는 사람을 찾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기 일신의 운명이 촌각에 달려 있는 십자가상에서도 원수들을 바라보며 `하늘이여! 영존하신 하늘이여! 저들 앞에 영원한 천벌을 내리소서’ 하지 못하시고, 도리어 손을 들어 그들에 대해 복을 비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이 천국 백성의 심정이요, 곧 하나님의 심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여,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생활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를 살펴보게 될 때, 하늘 나라에 남아질 수 있는 백성은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소유라고 영원히 주장할수 있는 민족은 어디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는 땅은 어디 있으며, 그러한 물건, 그러한 사람은 어디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천국 가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아! 천국은 내 것이야’ 라고 자신있게 주장하는 것을 왕왕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어쩌면 저렇게 하나님 이상 소유적인 면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 자신조차도 아직까지 천국은 내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도 천국은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에 서지 못하시는데….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는 입장에 계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지금까지 수고하고 계십니다.

영계에 있는 수천억의 영인들이 지상을 위하여 협조하는 것이나, 해방의 자리, 영광의 자리에서 즐거운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어찌하여 그러한 입장에 서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 지금까지 천국을 이뤄놓고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입장에 계신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땅 위의 성도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천륜의 원칙과 배반되는 입장에 서서 그러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5-19
성도들이 고생의 길을 가야하는 이유
하늘을 향하여 나가면 나갈수록, 하늘의 원한을 해원하면 할수록, 빚져있는 자신을 깊이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이 땅을 대하여 그 나라와 백성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래서 찾아오시며 수고하신 역사적인 그 빚이 6천년 동안 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한 자체가 만족과 기쁨을 가졌다고 해서 천국을 소유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하늘의 아들 딸이라면 하나님 대신 염려하고 하나님 대신 보호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땅이 남아 있고 세계가 남아 있어서, 즉 그것들이 하나님께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되어 있지 못하는 한, 자신할 수 없는 자기라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하늘의 왕자로서 주도적인 행사를 할 수 있는 심적기준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지만, 그것을 한번도 행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제자의 발을 씻어 주는가 하면,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일생노정은 자기를 위하여 생활한 날이 하루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생애를 회고해 보면 오로지 남을 위하는 생활이었습니다. 남을 위하여 허덕이고, 남을 위하여 눈물흘리고, 남을 위하여 욕을 먹고, 남을 위하여 찢기며, 남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는 서러움의 생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서러움을 풀어주지 못하는 하나님이라 할진대는, 그런 하나님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날에 하나님을 이서러움의 쇠사슬에서 해방시켜 드림으로써 하나님이 온 하늘 땅이 내 것이라고 주장하며 손을 들어 만민을 대하여 `다같이 즐기자!’ 고 할 수있는 그 날이 되기 전에는,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곡절이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의 진리는 사랑을 강조하였고, 희생과 봉사를 강조하였고, 핍박과 천대 받는 생활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을 위하여 눈물을 많이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슬픔을 대신 슬퍼하려는 마음을 가진 만큼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고생을 대신 짊어진 만큼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하나님 대신 사탄의 참소를 받은 만큼 하나님의 소유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행한 만큼 충성한 만큼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며, 그것은 좋은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다 싫다고 접어둔 슬픔이나 고통을 붙들고 충성을 하게 될 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길이 기독교인들이 가야 할 원칙의 길입니다.

한국의 기독교에 불을 붙이게 된 것은 바로 초창기의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노정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천국 백성인데 왜 죽어’ 하며 부정하는 무리가 나타났던들, 하나님의 섭리의 뜻은 한국에 전파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왜 죽어, 왜 욕을 먹고 천대를 받아야 하느냐’고 부정하였다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믿을 수 있는 구원의 노정은 인류 역사상에 나타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국가에서 그 국민들을 지도하는 방편으로서 애국자를 들어서 충성하는 법을 가르친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것은 자기의 가정을 버리고, 자기의 일신의 욕망과 명예를 버리고, 일국의 뜻을 대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나라가 당하는 고통을 자기가 대신 맡고, 그 슬픔을 대신 맡아 가지고 자기가 먼저 슬퍼하고, 그 나라의 주인을 대신하여 모든 것을 책임지고자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이것이 하늘의 법을 지키는 자세인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혼란된 이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잘 났다고 자기의 주장을 세우고 자기의 가진 권한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참다운 크리스챤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참다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 소유할 수 있는 참다운 백성을 만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이제 우리는 친구를 맞아야 되겠고, 하나의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하겠고 하나의 교단을 이루어 하나의 종족을 편성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소유의 결정을 받은 그 하나의 성도는 한국 강토의 어디에 있는가? 그 하나의 교단은 한국 강토 어디에 있으며, 그 하나의 민족은 세계의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내게 있는 온 기운을 쏟아 지칠 때까지 부르짖어야 하며, 내 발을 움직여 쓰러질 때까지 찾아야 할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5-21
민족과 세계를 구원해야 할 청년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나를 단장하기 전에 이 삼천만 민족을 단장하려는 마음, 나를 생각하기 전에 이 땅 위의 만민을 생각하려는 마음이 우러나와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풀 한포기까지도 붙들고 울어줄수 있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심중에서 폭발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을 갖지 못하고서는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 딸이 못 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인간은 하나님의 눈물의 열매요, 하나님의 고통의 열매이고, 또한 하나님의 피의 제단 위에 오르는 제물인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생각지 않고 뻔뻔하게 자기를 주장하고 나서기 때문입니다. 만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 민족의 갈 길을 개척할 자는 누구인가? 진정 이 민족을 위하여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백성이 나와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 분열된 교단을 누가 바로잡을 것인가? 교단을 붙들기 위해 불타오르는 열정을 가진 청년 남녀들이 위선자들과 대결하기 위하여 땅을 치며 호소하여 피흘리는 혈투전을 각오하고 나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세계를 구원할 사람은 누구인가? 여러분 청년 남녀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서구의 물질문명이 많이 발달하였습니다. 이것은 대륙 이집트를 시발로 하여 앗시리아 문명, 바빌로니아 문명을 거쳐 희랍 문명을 거치고 로마문명을 거쳐서 지금까지 서구문명을 형성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역사를 알아 보면 예수님 당시에 이미 3천년 이상의 문명을 자랑하고 있던 애급나라는 무엇을 중심삼고 그러한 문명을 건설했던가?

애급 사람들은 태양신을 숭배하였고 오시리스(Osiris)라고 하는 신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앙과 사상으로 그들의 정신을 무장하여 단결된 힘을 발휘하여 그러한 강대국가와 문명을 건설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정책적인 이념으로 삼아 예식을 강화시켰으며, 그 이상적인 표준을 향하여 민족을 이끌어 가지고 애급 문명을 탄생케 했던 것입니다.

5-22
종교를 중심한 역사 발전과정에 담겨진 교훈
이리하여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을 세웠고, 그로써 지배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게 되었던 바, 이 때에 그들이 자기의 민족을 넘어서 이방 나라에 좋은 점이 있다 할 때는 그 좋은 점을 흡수해야 했습니다. 자기 나라의 어떠한 것이라도 희생시켜서 바꾸어 받아들였다면 그 나라는 멸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국가는 멸망하였지만 그들의 문명은 역사를 따라 발전해 왔습니다. 오리엔트 지방에서는 앗시리아 문명과 바벨론 문명이 일어났었는데,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유대교를 중심삼고 헤브라이즘이 형성되어 신을 중심한 문명이 발전해 나왔습니다.

그리이스 지방에서는 외적인 신의 이념을 중심한 희랍 문명이 발전해 나오다가 예술의 숭배하는 여러가지 사조와 내적으로 조화를 이룹니다. 이것이 지식의 왕국 희랍을 거쳐 희랍인들이 창설한 독특한 종교적 이념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문명권을 형성하였는데 혼란된 사상권의 시기를 지나는 과정에서 기독교 사상과 융합되었고, 그후 로마로 건너가 기독교 문명을 창설하였던 것입니다.

중세 시대에 기독교는 이 종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그 이념 아래 있는 사람들은 상하를 막론하고 흡수하여 융합시켜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세속적으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도 치시게 되었습니다.

만일에 로마 교황청이 부패하지 않고, 자기들이 있음은 세계를 위함이요, 자기들이 있음은 인류를 위해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자기들이 좋으면 자기들이 좋기 전에 남이 좋을 수 있게, 즉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사는 사상을 제창하였다면 교황청은 붕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 교황청이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그냥 두면 안되겠기에 하나님께서는 외적으로는 문예부흥을 일으켜 치셨고, 내적으로는 종교개혁을 일으켜 구교를 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후 퓨리턴을 중심삼고 미 대륙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기독교 이념을 중심한 국가를 건설하게 된 것입니다. 즉, 로마의 정치이념, 기독교의 종교이념, 희랍의 지성주의가 융합되어 오늘날 전 민주주의를 지배하는 범미주의(汎美主義)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이 오늘의 민주주의를 통합하여 천륜과 연할 수 있는 그때까지, 국가적인 사명을 대신하고 소유적인 권한을 대행할 수 있는 책임을 감당하려면 어떠한 사상을 가져야 할 것인가? 먼저 자기 제일주의 사상을 버려야 됩니다. 이것이 미국 국민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긴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이 가지고 있던 경제, 문화, 과학, 종교, 정치체제 이런 모든 것이 자기 국민만을 위하여 있다고 주장하게 되면 이는 맞게 됩니다. 그래서 문예부흥운동이 일어나서 각성시켰으며, 오늘날에는 공산주의가 나와서 각성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사상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들이치는 움직임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들은 선각자의 마음을 가지고 천적인 움직임을 알아내야 하겠습니다.

이 미국에 일침을 가할 수 있는 종교 이념은 어디서 나올 것인가. 뜻이 있는 사람들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자의 소유권한을 찾아드리지 못했기에 치고 얼려서라도 그 자리까지 끌고 나가기 위해 있게 되는 역사발전의 과정적인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예부흥운동은 무엇인가. 그것은 헬레니즘의 복고운동 즉, 그리이스 정신에 입각하여 인간 본성을 회복하고 자아의식을 강조하는 운동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미국을 위주로 민주주의 권내에 있는 모든 기독교는 초대 기독교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드러난 말씀만 믿을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 내포되어 있는 사상을 찾아 그것을 중심삼고 재무장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현기독교는 중세의 구교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고 말 것입니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요구되고, 하나님의 민족, 하나님의 나라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그것을 위하여 나온 것입니다.

5-24
하나님이 소유하고 싶어하시는 것
이제는 말씀절대시대를 지나 실체절대시대를 건설해야 할 때가 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 통과시대를 지나서 실체 통과시대의 역사적 종말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가 왈 심판시대인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선지선열들이 간 걸음을 우리들의 생활을 움직이고 있으며, 그들의 정신은 우리의 사조(思潮)를 배후에서 조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탈되는 사람들은 천법에 의하여 대수술을 받아야할 때가 기필코 올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땅을 찾으시고, 땅의 사람을 찾아 하늘의 것으로 하신 후에는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생명을 자기 것으로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념과 사랑을 만우주와 인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을 자랑한 사람이 있습니까? 있으면 나와 보세요. 또 영광의 하늘 나라를 이루고자 생명까지 바치려고 했던 사람이 있습니까? 있으면 나와 보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참아들이 되고자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복귀과정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권내에서 천국의 맛을 보았을지는 모르나 사탄을 제거시킨 가운데 진정으로 영원한 평화의 조국, 천국의 맛을 체휼한 사람은 없습니다. 진정한 천국의 맛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사람은 사탄과 싸워야 한다는 자극을 받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천국의 맛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한번 받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다시는 떠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한 사람이 이 땅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유가 결정되어야 할 한계선은 어디까지인가? 그것은 한포기의 풀에서부터, 한 평의 땅에서부터, 하나의 사람에서부터, 최말단에서 출발하여 천국까지 더 나아가 하나님의 심정세계까지입니다.

그런데 그 소유의 형태는 상대적이거나 관념적인 형태이면 안 됩니다. 주체적이고 주관적인 형태이여야 합니다. 그러한 세계가 건설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안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인간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연고로 하나님께서는 제7일을 안식의 날로 정하고 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6천년 역사가 지난 오늘날까지 안식의 날을 자랑하시며 쉬어 보시지 못한 하나님이심을 여러분은 알았습니까? 알아봤어요?

예수님도 복음의 말씀을 강조했고, 안식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2천년 섭리역사의 곡절 속에 싸움의 역사를 붙들고 왔지만 승리의 영광의 한날을 맞아 아버지께 자랑하고 만민과 더불어 안식하고자 하신 때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예수께서 안식하실 수 없는 입장에 계시니 우리들도 안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이 오기 전에 전쟁이 있을 것이며, 안식이 오기 전에 고통이 있을 것이며, 안식이 오기 전에 죽음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각오하고 넘어 설 때 비로소 우리는 안식의 맛이라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이후에 안식의 일면을 느꼈던 것은 그러한 길을 거치고 난 후였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무엇을 소유해야 할 것인가? 안식의 동산, 행복의 동산, 선의 동산, 사랑의 동산, 이상의 동산을 소유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소유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사탄에게 맞고 하늘에게도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탄과 하늘에게 맞았습니다. 유대교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몰아낸 동시에 로마인들도 몰아냈습니다. 그다음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간절히 기도하신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도 버리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국을 소유할 사람, 천국에 소유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나가는 노정에서 하나님 때문에 가장 불쌍한 입장에 놓이는 사람입니다. 세계 인류 가운데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는 민족은 어떤 민족이냐? 가장 불쌍한 민족입니다. 그런 민족일수록 하나님에게 가까운 것입니다.

5-26
하나님이 소유할 수 있는 사람과 민족 그리고 그의 책임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대환란이 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삼고 소유하려는 마음이 강한 자, 자기를 중심삼고 편안하기를 바라서 행동을 하는 자는 들이침을 당할 것입니다. 이것이 대환란입니다. 그래도 인간들로 하여금 이러한 것을 거치도록 하여 각성해서 대심판을 통과하게 하시려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 우리는 아버지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만일에 이러한 일이 없다 할 때, 참을 위하여 살고 참을 위하여 죽고자 하는 사람들은 불쌍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무덤에서 남아지는 그 무리가 안식의 동산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볼 때 성경 66권 가운데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라도 예수님이 죽으면서 증거한 그 진리를 붙들고 실천한 사람은 예수님의 소유가 될 것이고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자기를 중심삼고 내가 무슨 책임자니, 내가 어쨌는데 나를 몰라주느니 하며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보따리를 싸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 무리는 어차피 한 때에 가서 청산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정의에 불타는 마음, 새로운 이념의 동산을 건설하고자 하는 간절함을 가졌다 할진대, 여러분의 일거수 일투족은 하나님의 소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소유의 권한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은 자신을 넘어 세계를 대신하여 싸워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손길이나 여러분의 발걸음, 여러분의 몸이 그렇게 움직여야 합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의 재창조 이념을 성취하여야 할 천주시대입니다. 이러한 때에 새로운 안식의 동산을 건설하기 위한 하늘의 용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탄이 간섭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밀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것을 가져다 하나님을 모시고 위로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하늘을 위하여 걸어갔던 예수님 이상, 6천년 동안 뜻을 위해 갔던 어떠한 사람 이상 어려운 길을 늠름히 걸어 갈 수 있는 심정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계를 소유하기 전에, 하나님의 이상을 소유하기 전에, 하나님의 고통과 슬픔을 소유하고 하나님이 가신 역경까지 소유하고 나서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천국도 지옥도 주관할 수 있습니다. 지옥도 주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지옥을 주관할 수 있었느냐? 만일 선한 면에서만 하나님의 뜻을 책임지고 선한 면에서만 하나님을 위해서 죽었다 할 때는, 천국은 주관할 수 있지만 지옥은 주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악한 자리에서도 자기의 절개를 지켜 천적인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지옥까지도 주관할 수 있는 기준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지옥의 고난을 밟고 올라서서 사탄을 대하여 늠름하게 승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을 증거할 줄 알고, 하나님의 의를 염려할 줄 알고,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당당하게 나타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비로소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그 때에 가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늘 앞에 나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최후의 심판 무대까지, 최후의 결정점까지 달려가야겠습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은 그 곳을 향하여 개인으로 민족으로 세계로 달려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넘게 하기 위하여 개인을 넘어 민족 세계가 전부 들이침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같은 이념으로 감사하며 넘어서는 무리가 새로운 하늘의 백성이 되어 새로운 가정, 새로운 사회, 새로운 국가를 형성하여 천국을 건설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위하여 염려하고 우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에게는 금식도 시켜 보았습니다. 그건 왜냐? 자기를 중심삼고 허덕이는 그 자리를 떠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금식도 시키고 시련도 겪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를 피하면 들이맞는 것입니다. `고맙습니다’하며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사탄도 하나님의 일을 했다는 기준에 세우시기 위하여 6천년 동안 참고 나오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악을 중심삼고 움직이던 모든 사람들을 선으로 굴복시키는 그날이 대심판의 날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서 하나님께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대심판을 넘어설 것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5-28
제일 먼저 하나님 것이 되어야 할 인간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은 자기중심적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 고하셨는데 이것은 고마운 말씀입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느낌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은 잃어버린 줄 알았던 세계가, 만우주가 더 멋지게 하나님과 더불어 여러분 앞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 있다’는 말씀은 공언(空言)이 아닙니다. 그래야만이 하나님의 것이자 내 것이요 하나님이자 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랑할만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가 없으면 안 될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만물을 지으셨는데, 인간에게 준 만물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초점의 대상으로 세웠기 때문에 인간 없이는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보면 전부 도는 이치입니다. 힘의 작용이 직선으로 뻗어나가면 영원한 소모입니다.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제일 원칙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그것은 직선으로 나가는 힘을 돌리기 위하여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이치는 도는 이치이며, 그와 동시에 움직이는 이치입니다.

여러분들이 화학을 공부하려면 물질을 연구 분석하고 운동하고 작용하는 모든 현상을 관찰하게 되는데, 그 이치를 벗어난 존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이 360도를 돌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도 돌고 사회도 돌고 내 마음도 돌고 있습니다.

온 우주의 중심인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돌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돌면 그도 돌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는 한 이 우주도 돌 것입니다. 하나님이 돌면 우리가 돌고 만물이 돌게 될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심정이 우리의 심정으로 화(化)하는 것을 느낄 것이며, 하나님이 심정을 체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자신의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모르는 경지를 강하게 느꼈을 뿐 아니라 삼층천(三層天)이라든가 무형실존체의 존재 가치를 느낄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신앙자의 위력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경지에서 주장할 수 있는 그 한때를 바라고 지금까지 참아나오고 계십니다. 기독교 신자들도 그러한 한때를 바라고 지금까지 참아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찾아오는 그 한때를 맞이할 수 있는 심적 기준이 되어 있는가? 그러려면 여러분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내 주관도 하나님 것이요, 내 생명도 하나님 것이어야 합니다. 나아가 가정도 사회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다 아버지의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취하시더라도 사탄이 주관하여 더럽혀진 것은 취하실 수 없습니다. 사탄의 요소(죄악)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번 때려서 죄악의 요소를 제거하고 난 다음에야 취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서러움이 어린 복귀역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을 드리게 될 때는 칼을 들어 쪼개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러한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갈라지는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갈라져서 전쟁을 할 것입니다. 한국은 남북한으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세계에 한국과 비슷한 국가가 6개국 이상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치를 벗어나서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아가지고 자신의 생명을 아버지께 드린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척척 받으실 수 없습니다. 그냥 받으신다면 사탄의 무한한 참소에 걸리게 되므로 채찍을 들이 치시고야 받으십니다. 그래야 사탄이 참소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셨던 노아도 그러했고, 아브라함도 그러했고, 모세도 예수님도 그러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도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 길을 피하여서 도망쳐서 돌아가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정상적인 문으로 들어가려는 무리가 아닙니다. 정문이 아니라 담을 타고 넘으려는 절도나 강도와 같은 무리라는 것입니다.

5-30
하나님의 마음과 사정을 알아야 할 우리
그러면 절도나 강도는 어떤 사람이냐?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행사하고 이용하겠다는 자가 절도요 강도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복귀의 고비를 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은 `내 생명을 아버지께 바치겠습니다’ 하고 아무리 기도드려도 `오냐 내 생명이 참 그리웠다’하면 받으실 수 없는 아버지의 서글픈 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사정을 알기 전에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드린다 해도 절대 받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을 인간들에게 말씀해 주시고 또한 풀어야 했던 예수님께서 그러지 못하고 가신 연고로 재림이라는 서글픈 사실이 남아졌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끝날에 처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러한 `아버지의 서글픈 사정, 곡절의 그 마음을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열번으로 탕감받아야 할 것을 한번으로 받을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찾아 나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끝날 기독교 성도들이 갈 길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자리를 찾아서 넘어가야 할, 즉 환란의 길을 먼저 넘어 승리하여야 할 세계적인 운명의 길에 처해 있는 우리들인 것입니다.

끝날에는 대심판, 7년 대환란이 온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맞기를 싫어하고 피하는 자는 천국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를 즐겨하며 `어서 오게 해주시옵소서. 한 시간에 부딪치고 부딪쳐, 내 생명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7년 대환란을 넘게해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나타나기를 하나님께서는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자가 되면 6천년 역사의 소유는 문제없고, 천국과 하나님이 심정까지 소유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언제든지 말씀드리고 요구하면 하나님께서 응해주시는 이러한 소유적인 존재, 즉 하나님의 절대 대신의 가치적 존재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아버지는 우리를 자랑하시고, 우리는 수고하신 아버지를 대하여 공손히 경배하며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한 날이 벌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