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 to 4-62: 하나님의 슬픔을 체휼하는 자가 되자

하나님의 슬픔을 체휼하는 자가 되자
1958.03.02 (일), 한국 전본부교회

4-48
하나님의 슬픔을 체휼하는 자가 되자
로마서 8:12-27

[기 도]

아버님! 이 시간 저희의 마음을 살피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몸을 헤아리게 허락하여 주시오며, 마음과 몸이 아버지의 심정에 어릴 수 있는 아들 딸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천상의 모든 성도들은 섭리의 뜻을 받들어 나오면서 타락의 자손된 것을 놓고 아버지 앞에 머리를 들지 못하며 민망해 한다는 것을 저희들 알고 있사옵니다. 땅 위의 저희들, 아버지 앞에 머리를 숙이고 아버지의 마음을 지니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저희들이오니, 저희의 마음속에 뻔뻔스러움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몸가짐이 아버지께 불충됨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앞에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사망의 손길에 붙들린 사람임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사옵고, 자신의 죄를 스스로 직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것이 천성을 향하여 간다고 하는 저희들의 모습이오나, 아버지의 뜻 앞에서 자기 몸 둘바를 알지 못하고 몸 가질 바를 알지 못하는 불충스러운 아들 딸들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스스로 죄인인 것을 인정하여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며, 머리를 숙여 아버지의 심정을 그리워할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에게 혹 어두운 죄악의 뿌리가 남아 있다면, 아버님이여! 그것을 제거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모인 사람은 여럿이지만 하나의 마음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몸은 여럿일지라도 모두가 하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시간 분부하시는 아버지의 명령에 의하여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권능을 받아 새로운 행동을 일으킬 수 있는 하늘의 원천적인 힘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 시간 하늘이 보호하여 주시옵고, 사탄이 일체 틈타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갖고 있는 어떠한 이론이나 저희들이 알고 있는 어떠한 지식. 주의. 주장. 관념이 있다면, 아버님, 이 시간 그것을 다 잊어버리고 오직 아버지를 그리워할 수 있는 동심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몸 마음에 지닌 모든것을 제단 앞에 묵묵히 바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을 새로운 말씀으로 다시 빚어 만들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기게 되는 직접적인 재창조의 역사가 여기에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말씀을 전하고자 원하오니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전하는 자와 받는 자의 마음이 간격이 크면 클수록 사탄이 넘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이 시간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을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염려를 풀어드리고 아버지께 기쁨과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아버지의 참다운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인 전체 위에 아버지의 긍휼의 손길이 더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오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4-49
말 씀
오늘 이 시간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슬픔을 체휼하는 자가 되자’라는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땅 위에서 제 아무리 영광을 누리고 행복스럽게 산다 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자신을 깊이 살펴보면 슬픔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은 개인에게 있어서는 물론이요, 가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 이념을 세워 사회와 국가·세계·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한날을 바라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 본체에까지도 슬픔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에 슬픔이 있다면 그 슬픔은 여러분 개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자기의 환경을 넘어 전체의 환경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4-50
슬픔을 중심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오늘의 나는 지극히 미미한 존재이지만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슬픔은 나에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넘고 세계와 천륜과 천성을 넘어 창조주 본체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이 어마어마한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느끼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슬픔은 민족과 세계, 더 나아가서는 하늘 땅을 대신하여 당하는 슬픔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슬프다는 그 사실만을 놓고 보면 지극히 불쌍한 것 같지만 하늘 앞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들이 느껴야 할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신의 슬픔을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허덕여 왔지만 아직까지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늘이 있고, 그 하늘과 나와의 인연이 있고, 또한 역사를 통해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할진대는 내 개체에 머물러 있는 이 슬픔을 역사과정을 대신한 슬픔으로, 또는 역사를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슬픔으로 여겨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슬픈 사람이지만 많은 친구를 갖고 있는 것이요, 그는 외로운 개체이지만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이요, 현실적인 모든 환경을 대신하는 사람이며, 미래의 천륜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의 입장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의 마음 깊이 슬픔이 있다면 그 슬픔은 어느 한계에 머무는 슬픔으로 끝날 것인가? 여러분의 슬픔이 자극되어 땅이 서러워하고 민족이 서러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온 세계가 서러워할 수 있고, 하나님이 함께 서러워할 수 있는 그 한날이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개체의 서러움은 여러분을 위한 서러움으로 머물러 있고, 나아가 인류 앞에 방해요소가 되고 세계와 천륜 앞에 방해요소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서러움을 같은 처지와 같은 환경에서 하늘과 땅 앞에 반응시킬 수 있는 서러움으로 이 땅 위에 나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보다 더 큰 서러움을 지니신 하나님의 심정이 세계로부터 국가·민족·가정을 거쳐 내 개체에까지 미쳐져 체휼될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에게 최대의 서러움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내가 서러워할 때 하늘이 같이 서러워해 주지 못하는 입장과, 내가 서러워 할 때 가정 전체가 서러워하지 못하고 땅 위에 온 인류가 같이 서러워하지 못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 무엇보다 큰 슬픔임을 오늘날 우리들은 느끼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서러워할 때, 하늘과 땅 인류 전체가 서러워하는 슬픔을 어떻게 해야 느낄 수 있을 것인가? 나 한 개체를 중심삼고 서러워하면 도저히 그러한 서러움의 입장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서러워한다 할진대는 나를 떠나서 가정을 위하여 서러워할 줄 알아야 되겠고, 가정의 차원을 넘어 민족과 세계, 나아가 하늘을 위하여 서러워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서러움이 세계로부터 국가를 거치고 가정을 거쳐 나에게까지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면서 먼저 인간에게 무엇을 믿게 하셨는 가? 즉 재창조의 역사를 출발하시기 전에 먼저 무엇을 우리에게 체휼케 하셨는 가? 그것은 기쁨이 아닙니다. 먼저는 우리 일신을 대하여 서러워하는 마음이 우러나오게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자기 가정. 사회. 종족. 국가. 세계, 더 나아가서는 천륜을 위하여 서러워하는 마음이 솟아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 인간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진리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면서 나아가도록 되어 있고 회개의 과정을 거쳐 나가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세 이후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중에 맺혀진 이 서러운 곡절은 어느 날에는 풀릴 것인가? 이것이 온 인류와 온 천주, 또는 천륜이 해결하여야 할 숙명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에게 맺혀져 있는 이 서러움의 뿌리를 뽑아버리기 전에는 인간 자체의 근본적인 서러움의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피조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까지 6천년 섭리역사를 경륜해 나왔지만, 그 서러움을 풀어 버리고 온 피조세계 앞에 영광의 본체로 나타나시는 기쁨의 한날을 가져보지 못하셨습니다. 이런 하늘의 서글픈 사정이 있음을 여러분은 느껴야 합니다.

4-52
슬픔의 해탈과 예수님
우리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려 하는 데 주위의 악의 요소와 사회환경, 혹은 생활환경은 몸으로 하여금 마음과 반대의 경로를 취하도록 하여 마음과 몸이 상반된 입장에 처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 일신을 두고 볼 때, 서러운 면도 둘이 있는 것을 체휼할 것입니다. 선을 흠모하며 서러워하는 것과 자기 일신의 욕망을 위하여 서러워하는 서러움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욕망을 위하여 서러워하는 서러움이 있는 동시에 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서러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서러움을 느껴야 하는 타락한 인간이라면, 우리는 어떤 서러움을 느끼며 이 타락의 권을 탈출해 나가야 할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에까지 미칠 수 있는 서러움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모든 서러움의 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편에 서서 하나님의 사정을 통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과 같이 서러워하는 환경을 갖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서러움을 대신할 수 있는 예수님 한분을 인간 가운데 보내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그분을 믿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이 사탄세계의 서러움과 관계맺지 못하도록 하고, 그들을 서러움을 느끼시는 하나님의 상대적인 위치에까지 올려놓기 위해 오셨던 분이 바로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 무엇을 갖고 오셨던가? 사랑을 갖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랑을 세우기 위해서 서러움의 고개를 넘어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서러움의 고개를 넘지 못한 입장에서 예수님은 30여년의 생애노정을 마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남이 모르는 심정을 품고 민족을 위하여 눈물을 흘렸고 유대교와 하늘을 위하여 염려하며 눈물을 지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이 예수의 심정을 알고자 하더라도 그냥 그대로는 알 수 없습니다. 4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 속에 깃들어 있는 모든 죄악의 요소를 헤치고 나간 예수의 심정과 뜻과 그의 사명을 모두 내가 책임졌다는 입장에 서서 예수님을 주(主)로 모실 때, 비로소 예수의 서러움을 느끼는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냥 그대로 믿고 있던 유대교 신자, 혹은 그냥 그대로 선민권을 자랑하고 있던 이스라엘민족은 예수의 서러움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입장에 놓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서러워한 것은 하나님 대신 서러워한 것이요, 기도한 것은 자기 일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 이념을 대신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탄식의 심정을 풀어드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동산을 성취하기 위한 심정을 갖추어 기도하였는 데도 불구하고 그 당시 사람들 중에는 그 기도의 음성을 알아들을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복음(신약)의 중심을 어느누구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품고 왔던 서러움을 인간 앞에 옮겨줌으로써 인간이 예수의 서러움을 품고 하나님 대신 서러워할 줄 아는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이었는 데, 이 전체적인 뜻이 인간들에게 옮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천상에 가셔서도 서러워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오셨던 목적이 성취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서러움은 아직까지도 섭리역사노정에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체휼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운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체휼한 서러운 심정을 갖고 하늘을 염려할 줄 아는 참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자기 일신을 중심삼고 서러워하는 서러움은 가졌지만, 천상의 인연을 대신하고 우리들이 소생할 수 있으며 복귀의 노정을 개척할 수 있는 서러움은 아직까지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세상적인 자기 개체의 모든 서러움을 다 포기하고 천상의 서러움과 하나님의 서러움을 느끼면서 눈물짓는 시간을 갖는 다면 여러분에게서부터 새로운 소망의 출발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을 붙들고 남 모르는 눈물을 지으며 만민을 대신하여 그 서러움을 해원할 수 있는 하나의 참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중심삼고 땅의 운세가 움직인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대신하여 서러워하지 못하는 민족은 망하게 됩니다.

하늘을 대신하여 서러워하지 못하는 교회. 가정. 사회. 국가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도 상하가 일치하여 위정자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천륜의 제단을 붙들고 눈물지으며 서러워하는 민족이 되었던들 오늘날과 같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새로이 각성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4-54
참다운 눈물
기독교는 눈물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게 될 때, 눈물없이는 민족과 국가 그리고 세계와 하늘을 바라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야 할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있으며 나아가 하늘을 대하여 뻔뻔스럽고 천륜을 대하여 경거망동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진정한 친구간의 정분도 눈물을 조건으로 하여 맺어지거늘, 타락한 인간들이 천륜의 심정을 체휼하는 이 마당에 있어서 어찌 눈물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죄인된 자기 자신을 깨닫는 자리에서는 무한한 눈물을 흘리는 한때가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서는 자기의 몸 둘 곳을 모를 것이며 천만번 벌을 받아 마땅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앞에 머리를 들지 못하고 앉아 있어도 자기 위치를 잡지 못할 정도의 민망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진정으로 탄식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 개인의 가는 길이 막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뜻을 붙들고 염려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가정이 가는 길도 막힌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타락한 인간들은 서러운 마음이 더하면 더할수록 서로 분열돼 나가고 있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서러워하면 악인들의 습성인 분열이 이루어지고, 선을 위하여 서러워하면 분열된 것이 합해지는 것입니다. 즉 갈라진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천륜과의 통일의 합일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찌하여 비참한 운명의 노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이상동산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무한한 슬픔을 안겨드렸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께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을 안겨 드렸기 때문에 그러한 노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곡절이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시대는 어떠한 때인가? 오늘날 이 시대는 끝날이기 때문에 개인을 위해 눈물 흘릴 때는 지나갔고, 가정을 위하여 눈물 흘릴 때도 지나갔습니다. 또한 나라를 위하여 눈물 흘릴 때도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세계를 위하여 눈물을 흘릴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세계를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륜과 영계를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되겠고, 하늘을 위하여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애달픔을 나의 애달픔으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만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아버지의 아들로, 온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자격자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세계적인 서러움의 고개를 넘어서기 위해서 지금까지 개인이 희생되고, 교회와 사회가 희생되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때는 세계를 위해 우리가 희생되는 과정을 거쳐야 할 때입니다. 앞으로는 세계적인 희생의 노정을 거칠 것입니다. 그 한날,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내적 서러움을 알지 못한 것을 일대에 청산하기 위한,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끝날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는 가? 어떠한 입장에 처해 있는 가?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도 개인을 넘어 천륜의 심정을 대신하는 생애노정을 거쳐 가셨습니다. 이것을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흘리신 만큼의 눈물을 하나님을 위해 흘려드리지 못한, 하나님 앞에 눈물의 빚을 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그냥 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가슴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서러움이 폭발되어 이 민족과 이 나라를 위하고 세계와 천주를 위한 눈물의 제단을 쌓아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일신의 서러움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여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와 같이 `하나님이여! 나를 통해서 당신의 서러움을 푸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위로하고, 예수님을 위로해야 할 입장인데 그러한 기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만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에게 그러한 입장을 넘어서야 할 책임이 남아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4-56
슬픔의 하나님을 대하려면
이제 여러분은 자신의 모든 서러움을 하늘 앞에 던져버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늘 앞에 바치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눈물 흘리시고, 세계를 위하여 눈물지으시는 아버지이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와 같이 자신을 붙들고 눈물지으시는 아버지인 줄을 여러분이 알아야만 그 아버지가 여러분의 아버지가 될 수 있고, 예수님이 여러분의 주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입장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어떠한 환경에서 눈물짓고 계시는 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원래 인간이 타락하지 아니하였다면 죄악의 혈통에서 나지 않았을 것이요, 먹고 살되 탄식하는 만물을 먹지 않을 것입니다. 또 죽되 하늘 땅의 서러움의 보따리를 짊어지고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탄식의 조건을 짊어지게 되었고, 또한 그것을 인간 스스로 벗어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누명을 쓰고 돌아가셨지만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땅 위해서 하나님을 붙들고 서러워하는 사람, 사적으로 서러워하는 것이 어니라 공적으로 서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를 죄악에서 건져주시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이 땅 위에서 죄악에 물든 물건을 먹고 죄악에 물든 물건을 입고 있는 인간들을 보시고 슬퍼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여러분이 사탄의 침범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을 서러워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민족이 가나안땅에서 3년 동안 만물을 성별한 일이 있으며, 성경에는 마음의 할례, 몸의 할례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극히 작은 만물 하나라도 온전히 당신의 것으로 취할 수 있는 환경이 이 땅 위에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품고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아들 딸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사탄을 좌우에 세워 놓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애달픈 사정이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은 합당치 않은 음식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 음식을 먹기가 싫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또 합당치 않은 옷이 있다면 그 옷도 입기가 싫어지는 것입니다. 합당치 못한 곳에 살게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마음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배후에서 염려하고 계시는 데 인간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안타까운 사정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체휼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이 되어 가지고 로마서 8장에 비유되어 있는 것과 같이 온 만물이 탄식하는 탄식권을 벗어난 환경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물건을 마음놓고 먹을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물질을 지니고 있다면 그 물질은 세계적인 서러움을 대신 탕감해야 할 물질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나에게 속한 물질 뿐만 아니라 타락한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다 그러한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에게 있는 물질이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몸도 여러분 것이 아닙니다. 생명과 물질의 근원이 어디입니까? 바로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을 통한 후에라야만 자기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몸 마음 다 하늘의 뜻을 위하여 희생하며 나아갈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4-58
공의의 길, 도의 길
지금까지 공의의 길을 가기 위하여 몸부림쳤던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저버리고 오직 전체를 위하는 마음으로 일생을 보냈습니다. 즉 그들은 자기에 속한 것이 하늘과 인류 앞에 어떠한 탄식의 조건이 된다 할진대 그것을 과감히 제거해 나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불의와 죄악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수고해 나가는 그 길이 바로 도의 길이라는 것을 오늘 여러분은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셨지만 그를 믿고 섬긴 사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하나의 몸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교를 중심삼은 이스라엘민족이 제일 먼저 예수님을 믿고 받들었어야 했는 데 그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세계가 예수님 앞에 굽혀야 되고 만물이 다 예수님 앞에 굽혀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자기를 중심삼고 자랑할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역사를 대신하여 혹은 시간성을 넘어서 어떠한 무엇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까? 그렇지 못한 약자의 인간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늘날 이 땅도 주인을 잃어버린 땅이 되었고 사람도 주인을 잃어버린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이러한 입장에서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그 서글픔의 노정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위한 보따리를 챙겨서는 안 됩니다. 혹시 여러분이 우주를 주관하겠다는 마음을 지녔다면 그러한 마음을 버리고 나설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살기를 원할진대 산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승리하고자 할진대는 죽음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갈 때 여러분은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 스며오는 슬픔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슬픔의 고개를 넘어서서 온 몸 마음을 아버지께 바쳐드려야 하고 다음에는 온 만물을 찾아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갖고 있는 물질이나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드리고 하늘 대신 사탄 대하여 싸울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몸 마음이 아버지 것으로 온전히 바쳐질 때 사탄이 참소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개인을 찾아오시지만 그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과 사회, 나아가서 세계까지 찾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이 길이 아직까지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섭리역사노정은 나를 찾아 땅까지 내려왔습니다.

이제는 나를 중심삼고 다시 하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데, 그 길이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세상적인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부정하면서 잃어버린 본연의 것을 하나님 앞에 다시 찾아세울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했지만 이런 길이 한계점에 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서러움은 하나님을 찾기 위한 서러움이었는 데 모든 종교의 종말시대에는 어떠한 서러움이 남아 있는 가? 하나님을 모시고 땅끝까지 나아가기 위한 서러움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서러움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각오와 소명의식을 가지고 나서야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느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서러움입니다. 예수님의 서러운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서러움 속에서 허덕이며 여러분 한 사람을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실체적으로 느끼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도 인간을 위하고 인간의 자손만대를 염려하여 영원한 천국이 이 땅에 건설되기를 바라며 수고하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은 그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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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하나님
역사적인 서러움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느 곳에 머물든지 하나님을 눈물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아들딸이 되기 위하여 싸우게 될 때 그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 자리에 찾아오셔서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서러움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의 일신에 있는 동시에 이나라, 이 세계, 이 만물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청산짓고 하나님의 기쁨을 복귀해 드리는 운동을 전개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있어서 생명의 중심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서러움을 체휼하는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영계의 영인들을 동원하여 증거케 할 수 있는 기준이 나에게 서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영계도 그런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영계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땅 위에 그러한 사람이 있어 호소하면 영인들을 동원하여 천국이념의 실현을 위한 지상의 일에 협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계의 영인들이 이 땅에 오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 땅이 탄식의 울타리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나 자신이 머물러 있는 환경이 탄식의 조건을 벗어날 수 있고, 자신의 몸을 통하여도 탄식의 조건을 벗어날 수 있고 또 사탄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공포를 느끼지 않는 안식권내에 들어섰다면 하나님은 나를 협조해 주시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슬픔을 체휼하는 심정에는 사탄도 침범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위하여 슬퍼하고 염려하며 눈물짓는 사람을 붙잡기 위해서는 사탄도 그와 같은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의 세력도 근본적으로 붕괴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수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서러움을 체휼하여 하늘 땅 전체를 책임지고, `이 몸을 제물로 삼으시어서 사탄을 폭파시키는 폭탄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서글픈 마음을 풀 수 있게 하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심정을 갖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의 길을 가심으로써 새로운 생명의 부활을 일으킬 수 있는 폭탄이 되어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와 같은 역사를 일으켜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체휼하여 이 세계를 위해 자신의 몸 마음을 바치겠다는 각오와 심정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아들 딸, 하나의 가정, 하나의 국가, 하나의 세계를 찾아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여러분이 체휼하며 하루를 산다 할진대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해 무한히 서러워할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를 즉시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으면 그러한 사람 앞에 머리를 숙여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 앞에 머리 숙일 수 있는 참다운 아들 딸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야 천륜의 창조의 위업을 계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아들 딸이 이 땅 위에 있는 가?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하늘 앞에 감히 얼굴을 들 수 없는 죄인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듣는 귀, 보는 눈, 말하는 입, 그 느끼는 감정은 모두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인가? 천륜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천륜의 뜻을 벗어나게 되면 언젠가는 반드시 심판의 한날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알았으니 먼저 여러분 자신을 스스로 심판하고 다음에는 주위환경을 심판하고 나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심판하는 것인데 먼저 자기의 생명을 심판하고 나아가 자기의 사망까지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활의 한날을 거치고 난 후에야 비로소 하늘이 인정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 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62
참자녀의 사명
이제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식구들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잘못으로 알고 눈물지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민족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책임지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민족은 망하더라도 그 사람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여 눈물짓고 하늘의 심정을 대표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세계는 망하더라도 그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늘을 위하여 눈물짓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가 비록 슬퍼하는 자리에 있을지라도 그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복된 은사 속에서 사는 것임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하여 눈물짓는 생활을 하게 될 때,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감지하고 하나님의 대신자의 사명을 다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심정에 사무쳐 사는 사람에게는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신앙이라는 명사도 필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천륜의 슬픔을 체휼하고 만물의 탄식을 밟고 올라서서 하나님의 사정을 직접적으로 통할 수 있는 참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겉으로는 망할 것 같지만 절대로 망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천대받고 쫓김받더라도 그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후계자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남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누구를 대해서 원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들을 위해 흘린 눈물을 통하여 탕감의 혜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남보다 먼저 하나님의 서러움을 체휼하며 눈물 흘릴 수 있는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이 여러분을 위해 먼저 눈물을 흘리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 여러분은 그 모든 사람들이 식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이 땅 위에 손에 손을 잡고 하나님의 뜻, 천륜의 염려하면서 눈물짓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몸 둘 바를 몰라 머리 숙이는 하나의 양떼가 있다 할진대 그들 앞에는 하늘도 머리를 숙인다는 것입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의 제물이기 때문에 만민이 그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옛날 아브라함이 드렸던 제물은 작은 것이었지만 그 제물 앞에 아브라함이 머리를 숙였을 뿐만 아니라 온 하늘땅이 머리를 숙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의 생애노정에서 어느 환경을 대신하여 제물의 입장에 서게 될 때, 항상 여러분은 어떠한 제물의 조건을 세울 것인가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개인을 위한 제물의 조건을 세울 것입니까? 아니면 가정적인 조건, 사회적인 조건, 국가적인 조건, 세계적인 조건을 세울 것입니까? 여러분이 드린 제물의 조건에 따라서 천적인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려운 환경을 개척하고 나선 우리들의 소원은 무엇인가? 하늘의 서러운 심정을 체휼하는 참아들딸이 되어 아버지 앞에 경배할 수 있는 것, 이 하나밖에 소망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여, 저에게 하늘땅에 사무친 서러움을 느끼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만민을 대신한 제물이 되게 하시옵소서’ 라고 항상 기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눈물을 짓고 서러워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심정과 사정을 통할 수 있고 그 서러움을 풀어드리기 위한 싸움의 기치를 들고 나설 수 있는 통일의 식구들이 되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생활과정에서 하늘의 서러움을 느껴 이날까지 남겨진 우주적인 서러움을 풀고 또한 탄식의 조건에 사무친 만물까지 복귀해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러한 뜻을 이루어 나가는 개척자로 나섰다는 것을 알고 오늘 이 시간부터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