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4 to 4-331: 하나님이 찾으시려는 자유와 해방과 통일

하나님이 찾으시려는 자유와 해방과 통일
1958.10.12 (일), 한국 전본부교회

4-314
하나님이 찾으시려는 자유와 해방과 통일
요한복음 8:31-47

[기 도]

아버님! 이 자리에 부복한 당신의 아들 딸들을 버리지 마시옵고, 몸 마음 전체를 아버지께 드리기에 주저하지 않는 아들 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보시기에 부족하고 불충스러운 점, 합당치 못한 점이 많사오나, 아버님께서 저희를 찾기 위하여 수고해 나오신 역사적인 심정에 의지하여 저희의 몸 마음 다 바치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미비한 부분을, 아버지, 성령의 불길로 사르시어 성별시키시사 아버님께서 취하시기에 합당한 저희들이 되어 몸 마음 전체를 하나로 묶어 바쳐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당신의 아들 딸들이 이 자리까지 따라나온 험한 발자취는 아버님의 눈물자국을 대신한 걸음이었사옵고, 서글픔이 배인, 피 살을 떼어 내는 것과 같은 아버지의 노정을 대신한 걸음이었사오니, 아버님, 저희가 마음으로 각오한 것과 몸을 움직여 행동하는 것을 아시어서 이 시간 저희 들을 당신의 깊은 사랑의 심정으로 친히 품어 주시옵고, 사탄의 참소 조건에 걸리는 생명이 하나도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를 세우시어서 이 민족 앞에, 아버지, 새로운 말씀을 전하시려는 뜻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나, 저희의 불충과 미비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가 원하시는 사명과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여 아버님께 서러움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초조한 마음을 갖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뜻을 대해온 지금까지의 미비한 사실들을 살펴 주시옵고, 그것을 보충할 수 있는 아버지의 생명의 힘과 사랑의 힘을 가하여 주시옵고, 어떠한 사명과 책임이라도 감당해낼 수 있는 직접적인 은사를 저희에게 내려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이 나가는 노정에는 , 그 길을 막기 위하여 억만 사탄들이 준동할 것이오니, 이것을 대비한 저희의 몸 마음의 결심이 온전하여, 저희가 아버지 앞에 생명의 제물이 되고, 끝까지 참고 견디어서 사탄과의 싸움에 실패하지 않게, 아버지, 이끌어 주시옵소서.

처음 가졌던 각오와 결심으로 전진하여 오직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하며 싸워 나갈수 있는 아들 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 자리에 모인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고,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기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어둠의 모든 요소와 조건을 제거하시옵고. 생명의 권한을 갖고 하나의 묶음으로서 아버지를 모시고, 영광의 찬송을 드리며 영광의 은사 앞에 감사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첫시간부터 끝시간까지 사탄이 이 한 모임에 나타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오직 아버지의 영광만이 저희의 마음과 몸을 통하여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오면서. 주의 이름으로 호소하였사옵나이다.

아멘.

4-315
말 씀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이 찾으시려는 자유와 해방과 통일’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시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4-315
하나님이 처해 있는 자리와 그의 소망
‘하나님이 찾으시려는 자유와 해방과 통일’ 이것을 신앙적인 견지에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어서 못하시는 일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능력 많으신 하나님이라 해도 하나님의 심정을 헤치고 들어가 그 마음이 과연 자유한 입장에 있는 가라고 묻게 될 때, 저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본심은 소망에 찬 섭리를 앞에 놓고 해방의 기쁨 가운데 계시는 가 하고 묻게 될 때, 이도 역시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과 모든 만물세계가 하나님의 심정이 동기가 되어서 움직이고 있는 가, 즉 하나님의 마음이 동하면 인간도 동하고 온 만물세계가 함께 동할 수 있는 통일적인 위치에 있는 가 하고 묻는 다면, 그도 역시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단정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자유롭게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 본성이요, 본연의 심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해방된 입장에서 만우주를 주관해야 할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온 피조만상의 슬픔이요, 역사상의 슬픔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온 피조세계를 하나의 통일이념으로 묶어 지배해야 할 하나님이로되 그러한 입장에 계시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하나님의 고통이요, 하나님의 억울함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의 본래의 이상향은 자유의 동산이요, 해방의 동산이요. 통일의 동산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상이 실현되지 못하게 된 어떤 곡절이 있었으니,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인간과 온 피조만물세계에까지 슬픔의 원천이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슬픔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타락이라는 것을 오늘날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타락한 인간을 구하시는 하나님이 이 사회에 바라시는 이념이 있고, 우리가 찾아나가는 이념이 있을진대 그 이념의 기준점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자유, 하나님의 사정을 중심한 해방, 하나님의 이념을 중심한 통일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나아가 우리들의 소원인 동시에 그 이념의 기준점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주의 신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데(고후 3:17), 오늘날 자유의 신이요 해방의 신이요 통일의 신이신 우리 아버지, 그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여러분 자신의 심정에 어떤 시련도 초월할 수 있는 자유의 심정이 어떻게 해야 스며들 것인가, 이 모든 시련의 장벽을 넘어갈 수 있는 해방의 기점은 어떻게 해야 찾아질 것인가, 우리의 이념의 중심이 바라는 , 즉 전체가 통일된 안식의 시간은 언제쯤 찾아질 것인가 하는 것이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도 자유스런 입장에 계시지 못하고 해방의 자리에 계시지 못하고 통일된 위치에 계시지 못한 연고로, 오늘날 이 땅에서 자유를 부르짖고 있으되 그 자유는 우리가 누려야 할 참된 자유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해방을 말하고 있으되 그 해방은 완전한 해방이 아닙니다. 통일을 주장하고 있으되 그 통일 역시 온전한 통일이 아닙니다. 인류사회는 씨족으로부터 시작하여 부족, 민족을 거쳐 국가로 통일해 나왔지만, 그런 부분적인 통일은 진정한 통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4-317
참된 자유와 해방과 통일의 기준
하나님의 뜻이 그러한 연고로 하나님에 의하여 지음받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우리가 바라는 완전한 자유, 우리가 바라는 완전한 해방, 우리가 바라는 완전한 통일은 하나님이 자유할 수 있고, 하나님이 해방과 통일의 주인공이 되는 날이 와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유와 해방과 통일이 바로 인간들이 바라는 자유와 해방과 통일의 기준이라는 것을 우리는 논리적인 견지에서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역사노정을 회고해 보면, 중세 봉건사회 이후에 인문주의를 중심삼고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사상을 고취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본래의 자유와 본래의 평등, 본래의 박애, 이 모든 속성은 누구의 속성인가? 그것들은 바로 하나님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중세의 기독교가 하나님의 이념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중과 통할 수 있는 자유의 입장에 세워졌던들. 혹은 해방된 입장에 서 있었거나 통일된 입장에 서 있었던들, 이 땅에 혁명이나 혁신이란 명사는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하나님을 중심하고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해방을 구가할 수 있는 위치, 완전한 통일이 이룩된 그 기준을 취하지 못한 연고로, 자유와 해방과 통일의 움직임이 외적세계로 옮겨졌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문예부흥운동이었다는 것입니다.

그후 자유사상을 내세워 군주국가를 혁명했고 다시 제국주의국가와 맞서면서 자유사상을 고취했으나 다 깨져 나갔습니다. 자유를 찾기 위하여 혁명을 일으켜 나왔으나 제국주의국가 형태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깨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와 사상. 혹은 정치적 이념을 세워가지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으나 이도 역시 점점 깨져 나가고 있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우리 인간들이 완전한 자유의 이념을 찾아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고, 외적인 자유만을 주장함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점점 진정한 자유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즉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더 나아가 개인적으로 자유를 주장했지만 완전한 자유를 찾지 못하고 잃어버리는 역사를 거듭해 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주장하고 있는 자유는 , 인간이 본성적으로 영원히 즐길 수 있는 자유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개인주의로 흘러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늘과 통할 수 있고 하늘의 이념과 상통할 수 있는 완전불변의 자유의 이념을 세우지 못하는 한, 또 그 자유가 천지가 바라는 자유와 부합되지 않게 될 때에는 자유를 찾기 위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오히려 부자유의 정점을 향하여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현시대의 움직임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유를 찾기 위해 나선 우리의 심중을 더듬어서 판단해 볼 때, 과연 우리의 마음에, 이 모든 만상 앞에 화할 수 있는 자유의 심정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유하심의 입장에 선다면, 우리의 그런 자유의 심정은 온 천하 만민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그런 기준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그러한 자유의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유를 주장하되 자기에게 미쳐지는 범위내에서, 자유에 대한 관점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참된 자유에 대해 논의해 본다면, 원칙을 떠난 자유는 참된 자유가 아니고, 책임을 벗어난 자유는 참되 자유가 아니며, 실적을 남겨놓지 않는 자유는 참된 자유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자유행동이든지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되고, 책임을 져야 하며, 그 행동의 실적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조건을 구비하지 못한 자리에서 자유하려고 한다면, 자연히 천륜과는 먼 거리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인식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중세이후에 제국주의가 나왔지만 깨져 나갔고, 오늘날까지 사상적인 형태를 갖추어 나온 모든 것이, 앞으로 참된 자유를 주장하는 사상이 나오면 깨져 나가는 때가 불원하여 오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이 점점 개인에게까지 미쳐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자체를 중심삼고 보아도, 여러분이 자유를 주장하다 보면 사회도 혁신하여야 되겠고, 가정도 혁신하여야 되겠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역사는 이제 내 마음 몸까지도 분리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4-319
인간이 추구해 온 자유와 참된 자유의 본질
민주진영을 우리가 생각해 보면, 그 이념은 기독교에서 취하려 하고 있지만 실생활은 과학을 중심삼은 개인주의 사상에 젖어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이념은 자유를 기초로 하고 있지만 기독교 사상과는 근본적으로 대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이념은 자유를 주장하되 온 천주의 자유를 주장하고 있고, 해방을 바라보되 전체의 해방을 이룰 수 있는 해방을 바라보고 있고, 통일을 주장하되 전체가 하늘의 심정을 대신한 통일, 즉 하늘이 기뻐하면 세계도 기뻐할 수 있는 그러한 관점에서의 통일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자유를 주장하는 민주진영의 사람들은 개인주의적인 사상에 중심을 두고 자유를 논의하기 때문에 나중에 이들은 국가도 부정하고, 사회도 부정하고, 단체도 부정하고, 가정이나 부부관계까지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자신의 마음의 중심까지도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최후로 남아지는 것은 무엇일 것인가. 고독이 남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고독이 극치에 달하는 경지에 들어가게 될 때에는 너도 믿지 못하고, 나도 믿지 못하는 불신의 자신들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고독과 불신의 자신이 될 때 우주적인 공포가 휩쓸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자멸을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의 역사는 이런 추세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자유를 부르짖으려면, 과거에 부르짖던 자유나 오늘날 부르짖고 있는 무책임한 자유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이념이 동반된 참된 자유를 부르짖어야 되겠고, 이념적인 동시에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자유를 부르짖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여러분의 생명력과 더불어 변할 수 없는 철칙과 같이, 아니 움직일래야 아니 움직일 수 없는 자유법도적인 무엇을 갖고 움직이는 세계가 되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누리고자 하는 행복의 원천은 어디에 있으며, 자기 스스로 나는 모든 죄악에서 해방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고, 시간성을 초월하여 해방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또 민족을 초월하고, 국가를 초월하고, 종족을 초월하고, 모든 사상을 초월하고, 관념을 초월한 통일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오늘날 역사적인 종말기에 처해 있는 우리들은 마땅히 취해야 되는 이상을 한번도 취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이런 이상을 찾아 헤매지 않는 다 할진대는 아무리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이상세계가 오고, 혹은 자유의 동산이 이루어지고, 해방의 동산이 이루어지고, 통일의 동산이 건설된다 하여도 그것들은 여러분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망도 이렇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망과 우리의 소망이 내 한 자체에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심적 기반을 조성하여 하나님이 나를 대하여 느끼고 소망하는 그 자유와 해방과 통일을 내 한 자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때는 어느 때일 것인가. 이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역사적인 비애와 더불어 심판의 제물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세계인류는 자유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해 나왔습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투쟁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작전법을 쓰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해방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투쟁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하나님은 오늘날 세상의 역사를 엮어나온 민족들이 혈투극을 전개했던 그런 투쟁방법과는 다른방법을 취하여 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4-321
자유의 주인공이 될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 것인가
우리가 인류의 역사노정을 보면, 개인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또는 개인을 살려내기 위해서 어떠한 주권자들과 투쟁해 나왔지만, 하나님이 자유를 성취시켜 나오는 데는 남을 치는 투쟁방법을 취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보면, 개인이 개인을 치고, 민족이 민족을 치고, 국가가 국가를 치는 , 그런 노정을 거쳐 하나의 자유의 이념을 찾아 나왔지만, 하나님은 이와 반대입니다. 개인을 찾기 위해서 개인을 치기 전에 먼저 맞으셨고, 민족을 찾기 위해서 그 민족을 치기 전에 민족을 해방할 수 있는 수난의 노정을 하나님이 먼저 친히 걸으셨으며, 세계를 찾기 위하여 세계를 치기 전에 먼저 수고의 노정을 하나님이 친히 걸어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자유의 주인공이 될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 것인가? 이는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유를 성취시키는 작전법이 이러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하늘과 같이 느낄 수 있는 자유의 이념을 찾고자 할진대는 하늘의 작전법에 따라야 할 것입니다. 즉 가정을 찾기 위해서는 가정을 해방할 수 있는 가치만큼 먼저 자기를 쳐야 하고, 민족과 국가 세계를 찾고자 한다면, 먼저 그 가치만큼 자기를 칠 줄 알아야 하며, 하늘을 위해서도 역시 그에 해당하는 만큼 먼저 자기를 쳐야 하고, 맞으면서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자유의 심정을 가진 사람만이 오늘날 역사의 종말시대에 반드시 남아지지 않을까 하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자유의 주인공, 해방의 주인공, 통일의 주인공이 그 실체의 가치를 갖고 땅 위에 한 개체로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유와 하나님의 해방과 하나님의 통일의 이념이 인간과 관계맺어질 수 없겠기에,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실체를 가진 자유 그 자체, 해방 그 자체, 통일 그 자체로 하늘을 대신해서 오신 분이 오늘날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를 붙들고 하나님의 심정에 사무쳐 있던 자유를 붙든 가치의 심정, 해방을 이룬 가치의 심정, 통일을 이룬 가치의 심정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하나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 모든 것을 제쳐 놓고도 스스로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심정을 갖지 못한다 할진대는 , 하나님이 인간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자유의 경지, 해방의 경지, 통일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찾고 있는 자유와 하나님이 찾고 있는 자유는 방향이 다릅니다. 세상은 자유를 찾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 민족이 민족을 공격하고, 주권은 주권대로 서로 대결하여 싸워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가 맞으면서,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에서부터 해결점을 세워서 전체의 범위에까지 확대시켜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유회복운동의 비법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 한 자체를 중심하고 볼 때, 여러분이 여러분의 생명을 포기할 수 있는 입장에 서더라도 그 자리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자유의 마음을 여러분이 소유했다 할진대, 여러분은 최고의 자유를 소유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복귀섭리의 노정에 비추어서 이것을 생각해 보면, 지상에서 해방운동이 있었던 동시에 영계에서도 해방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땅의 인간들을 하나님의 대신자들로 혹은 자녀로 생각하고 직접 대하실 수 없기 때문에, 인간들은 심부름꾼에서부터 올라가 가지고 자녀의 자리를 거쳐 직접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노정을 거쳐왔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를 중심삼고 보면, 천사들을 심부름꾼으로 세우시어서 하나님의 자유의 동산, 해방의 천국을 건설해 나왔습니다. 그러한 종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해방되는 은사권에 들어가려면 생명을 잃으면서도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유의 심정을 가진 사람만이 종의 자리를 넘어서서 아들의 자리를 찾아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섭리를 받들어 나온 역사적인 선조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잃으면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자유의 심정을 가질 수 있었으며, 온갖 시험을 늠름히 넘을 수 있었고, 죽음까지도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심정의 기준이 잡힘으로 인해 종의 자리에서부터 아들의 자리를 , 종의 시대에서부터 자녀의 시대를 바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준이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하늘은 친히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들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했던 것입니다.

4-323
참된 자유와 해방과 통일을 이루려면
예수는 이 땅에 와 가지고 아버지의 인정을 받을 때까지 자신의 죽고 사는 것까지도 하나님을 위하여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리에 섰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독생자의 이념을 완결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만민 앞에 서 가지고 종의 자리에 있었던 인간들을 자녀로 해방시켜 나왔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잘 아는 바일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죽음을 당하는 고난의 노정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내적 심정과 일체된 기준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예수를 믿게 될 때에는 자녀의 자리에 갈 수 있는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마음으로 하나님이 찾으시려는 자유와 해방과 통일을 바라고 있다 할진댄, 여러분 자신에게 그것이 연결되어질 수 있도록 종의 시대에서부터 자녀시대, 자녀시대에서부터 부모를 모시는 가정의 시대까지 자기 스스로 찾아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유의 원칙에 의해야만 결정지어진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어떤 명령이나 어떤 제재나 어떤 강압 밑에서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죽고 사는 문제까지 넘어서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예수를 생각하면서 기쁨과 자유의 심정이 교류될 수 있어야만 하나님의 이념과 우리 자체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복귀섭리역사도 이렇게 해방의 역사를 거듭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종의 시대를 거쳐 예수와 성신을 통해서 자녀로 해방되는 노정을 거쳐 왔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 가정에서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히 뗄래야 뗄 수 없는 생명의 기준을 세우려면, 사망까지도 자유로이 주관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땅도 자유를 찾아 헤매고 하나님도 자유를 찾아 섭리하십니다. 예수가 하나님을 위하여 죽음을 개의치 않고 싸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 이상의 어려움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예수를 위하여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종의 입장에 있는 인간들이 하늘을 위하여 죽음을 개의치 않는 자유의 심정으로 산다면, 최후에는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여 죽음의 고비도 자유로이 넘을 수 있는 심정으로써 찾아오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찾아주시고 주관하시지 않아도 어떤 고난도 기쁨으로 넘을 수 있는 자유의 기준을 세우면, 지금까지의 공포나 분노나 슬픔이나 억울함도 이길 수 있으며, 사망권까지도 하나님의 생명권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근본적인 중생의 문제점을 해결지을 수 있는 그런 때가 와야만, 우리가 하나님을 자유롭게 위할 수 있고 하나님도 우리를 자유롭게 위해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가 둘이 아닌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의 자유와 해방의 심정과 통일의 이념이 우리들의 자유와 해방의 심정, 그리고 우리의 통일의 이념으로 화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을 위하여 생명까지 바쳤으되, 예수와 하나님이 통할 수 없는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는 또 우리를 위해 죽음의 길까지도 자유로이 갔으되, 성신과 예수가 하나될 수 없는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늘에 있고 성신은 땅에 있어서 땅이면 땅, 하늘이면 하늘, 이렇게 한 곳에만 있을 수밖에 없는 간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와 성신을 중심삼고 자녀의 입장을 바라보고 나가는 우리와도 간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4-325
자유와 해방과 통일의 기점
예수와 하나님 사이에 벌어진 이 간격을 없애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이 땅에 있는 모든 인류를 자녀와 같이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이 자유자재로 인류를 붙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한 날이 와야만 하나님과 예수 사이에 막혀진 모든 담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를 따라 하나님을 위하여 죽음의 길까지도 자유자재로 넘고자 원할진대 실제로 이것이 관념이나 생각에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어떤 고난도 자유로이 넘을 수 있는 하나의 기준, 죽음의 고통도 잊어버릴 수 있는 해방의 기준이 오늘날 우리들로 말미암아 세워져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비로소 하나님과의 자유로운 인연이 맺어지고, 해방의 인연이 맺어지고, 통일의 인연이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찾아 헤매고 있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신앙해 나가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유와 해방과 통일의 이념권내에서 하나님 대신한 자유의 주인공이 되어야겠고, 하나님 대신 만민을 해방시킬 수 있는 주인공이 되어야겠으며,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련의 고비를 넘어가더라도 이것을 고통으로 느끼지 아니하고, 슬픔으로 느끼지 아니하고, 억울함으로 느끼지 아니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늘을 대하여 사무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죽음의 고개도 넘어가는 자유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 하늘은 자신의 고통이나 시련도 개의치 않고, 모든 권위나 위신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를 붙들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서만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수 있고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이후 오늘날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왔다 갔지만 시련을 넘으면서 고통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사랑하는 자녀를 찾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위신과 고통, 혹은 시련과 슬픔도 넘어설 수 있는 심적인 기준을 갖고 계셨는 데, 그런 하나님의 심정과 동일한 심정을 가진 사람을 이제까지 만나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크나큰 탄식의 조건이 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고 그런 사망권을 넘을 수 있는 자리, 하나님이 우리들을 붙들어 주심으로써 사망권을 넘어설 수 있는 자리에서 연결되어지는 사랑의 힘이야말로, 거기에서 연결되어지는 해방의 은사야말로, 거기서 하나되는 통일의 원칙이야말로, 이 전체 존재세계에 자유의 기준이 될 수 있고, 해방의 기준이 될 수 있고, 통일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지에서 하나님이 찾으려 하는 그 아들은 한 개인이로되 역사상의 모든 슬픔을 청산한 아들, 모든 죽음을 청산한 아들로서 우주 전체의 가치 이상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지상,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런 인연은 어느 날에나 연결될 것인가? 이것이 연결되지 않는 다면 예수님도 자유의 자리, 해방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통일의 이념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직까지 저나라에서 늘 기도해야 할 입장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 신자들에게 이런 하나의 기준이 세워져야만, 하나님의 심정에 사무쳐 있던 자유의 원칙, 하늘의 심정에 사무쳐 있던 이 모든 악과 사망에 대한 해방의 원칙, 하늘의 심정에 사무쳤던 통일의 원칙이 여러분 자체에 변치 않는 기준으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준이 세워졌다 할진대는 , 여러분들이 이 세계를 바라보게 될때에,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면서 바라보시던 그 심정을 대신해서 바라볼 수 있고, 하나님이 수많은 슬픔과 고통과 역경을 참아나오면서 사랑하는 아들을 찾기 위해 나오실 그 간절한 심정을 갖고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하나의 개체가 나와서, 그 개체를 중심삼고 가정이 이루어지고, 사회가 건설되고,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어질 때, 하나님의 자유의 동산을 여러분의 생활권내에 건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망하던 해방의 동산도, 혹은 통일의 세계도 그런 기준에서부터 출발되어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사탄세계가 자유 아닌 자유형의 주권을 세워가지고 나왔습니다. 그것이 자유인 것 같지만 아닙니다. 개인에서 시작하여 종족을 거쳐 민족, 국가를 넘어 세계를 통합해 나오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유를 떠나 있고, 해방의 원칙을 떠나 있고, 통일의 원칙을 떠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4-327
섭리의 추세와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
세상에서 바라는 기준 위에서, 하나님과 대치되는 자리에서 통일과 자유와 해방의 형태를 갖추면 갖출수록 내적으로는 불안과 불평과 공포에 휩쓸리게 됩니다. 외적으로는 이루어져가는 것 같지만 내적으로는 붕괴돼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통일의 형태를 갖추어 나오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적으로는 갈래갈래 갈라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내적으로 붕괴되어 들어가는 것을 무엇으로 보충할 것인가? 이것을 보충하는 역사를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만일 이러한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오늘날 인간들은 절망한 나머지 모두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러 결국 사망권에서 숨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미국같은 나라의 사람들, 그들에겐 부모도 없습니다. 자식도 없습니다. 친척도 없습니다. 이런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나라도 포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들이 믿고 나온 종교까지도 순전히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다가 소득이 없게 될 때는 전부 포기해 버리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는 일 개인을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고 세계 전체를 위하여 생겨났기 때문에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생존하는 사람은 세계적인 이념을 위해 존재하는 세계 앞에서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산 것에 비례한 고충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개인주의 사상이 만연된 사회, 자기를 중심삼고 생활하는 사회는 나중에는 고립과 불신과 공포의 사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끝내는 자포자기하여 자멸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러한 운명의 역사적인 종결시대에 우리는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실정을 바라보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은 자유와 해방과 통일의 이념을 가져야 할텐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이것을 성취시킬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개인적인 사상으로부터 시작하여 주장하여 나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세계를 잃어버리고, 이 세계에서 이탈되는 입장을 피치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것을 총합시켜서, 본연의 개인에서 본연의 가정으로, 또 본연의 사회로, 본연의 국가로, 본연의 세계로 회복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이 인간 앞에 나타나지 않는 다 할진대는 , 하나님에게도 우리 인간에게도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오늘날 세기말적인 이 시대에 자유와 해방과 통일의 이념을 인간과 더불어 성취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외적세계는 분열형태를 갖추었지만 심중의 근원적인 하나의 힘을 세상에 내세워 사망의 요인이 침범할 수 없는 절대적인 자유의 원칙, 절대적인 해방의 원칙, 절대적인 통일의 원칙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그리고 그런 기준을 갖춘 하나의 사람, 그런 사람들이 모인 가정, 그런 사람들이 모인 종족, 그런 사람들로 말미암은 국가와 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섭리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예수는 만왕의 왕으로 오신 분이요, 우리의 생명의 주인공이요, 천주의 주인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주체요, 이념의 주체요, 사랑의 주체로 오신 분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주체인 예수와 나와 영원한 관계를 맺고, 맺어진 그 관계가 다시 하나님과 영원히 관계맺을 수 있는 그 단계까지 나가기 전에는 하나님과 예수와 우리들 사이의 간격을 메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 어떠한 불신의 사회, 혹은 고독의 사회, 공포의 사회가 찾아들어와 휩쓸게 될 때에도 이것을 내 죽음에 대비시켜서 늠름히 넘어갈 수 있는 , 사망까지도 자유자재로 넘을 수 있는 생명력이 여러분 자신에게 있다 할진댄, 어떤 심판세계. 파괴의 세계가 벌어진다 해도 여러분의 생명력은 파괴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기준이 남아 있는 한, 여러분은 사망의 공포권내에서의 심판의 제물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4-329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하신 원인은 무엇인가
이런 기준이 이념적으로만 세워질 것이 아니고 영과 육이 실체적으로 하나되어 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 기준을 소유하느냐 못하느냐에 의해 여러분이 앞으로 남아질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됩니다. 그런 기준을 소유해야만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것을 투입하여 생명을 걸고 우리를 찾아오는 마당에서 내가 생명을 걸어 놓고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자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나를 찾아세워 놓고 비로소 자유로운 생활형태를 건설할 수 있고, 하나님이 나를 찾아세워 놓고 자유와 해방의 이념, 통일의 이념을 찾아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격자가 된다 할진댄 하나님이 영존하는 한 우리와 사망의 권세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 개체로 돌아와 여러분 자신에게 반문해 보게 될 때, 여러분의 마음에 참다운 생명을 중심삼고 즐길 수 있는 자유의 심정과 자유의 생명과 자유의 이념이 있습니까? 문제는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 그런 생명, 그런 이념을 갖고 있는 한 어떠한 죽음의 길도, 어떠한 사망과 고통이 따르는 길도 자유롭게 소화시켜 넘어 서 가지고 생명의 요소를 복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유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해방의 동산에서, 하나님의 통일의 동산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겠습니다.

자유의 길을 찾아나선 우리를 시험도 해보고 고난도 당하게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무친 심정, 솟구쳐 오르는 자유의 그 심정을 어느 누가 막을 것인가. 아무도 못 막습니다. 모든 것은 다 깨뜨릴 수 있어도 그것만은 깨뜨릴 수 없습니다. 솟구쳐 오르는 그 심정은 사망권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생명의 연결이 여러분의 생활을 중심삼고 이루어질 때에. 영원한 하나님의 자유와 하나님의 해방과 하나님의 통일이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비로소 이룩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런 기준이 세워지지 않는 한, 상대적인 이념으로서 바라는 자유, 바라고 있는 해방, 바라고 있는 통일이 아무리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여러분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하신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소망하고 있는 그 자유, 그 해방. 그 통일을 하나님과 같이 지닐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이룩할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기준이 결정되어 있어야만 그런 이념의 세계가 여러분 앞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심적 기준을 여러분이 갖지 못한다면 아무리 외적 세계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즉 아무리 외적으로 자유와 해방과 통일의 세계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것은 완전한 통일의 세계가 아니요, 완전한 해방의 세계가 아니며, 완전한 자유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마음에 생명력이 약동하고, 이념의 힘이 약동하고, 사랑의 힘이 약동하고 있는 데, 약동되는 그 힘의 확고한 기준이, 6천년 동안 고생하신 하나님을 대한 정성의 기준이 여러분 자신에서 세워지지 않는 한, 6천년 동안 하늘을 대해 싸워나오던 어둠의 권한, 사망의 권한이 여러분의 생애를 뒤덮을 때 여러분은 남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대하는 경지에서 자신의 생명력, 자신의 이념, 자신의 사랑의 힘을 갖추어 가지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구가하는 자유야말로 완전한 자유요, 그런 원칙에 입각한 해방이야말로 완전한 해방이요, 그런 원칙에 입각한 통일이야말로 완전한 통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의 기준을 갖추지 않는 다 할진대는 세계가 혼란과 혼돈, 공포에 휩쓸리면, 여러분은 그것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그것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생명력이요, 이상의 힘이요, 사랑의 힘입니다. 이것을 넘을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못하면, 아무리 수고한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있다 할지라도, 섭리역사를 통하여 찾으려 하셨던 그 자유도 해방도 통일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4-331
기 도
아버님! 자유의 동산을 잃어버린 인간, 해방의 동산을 잃어버린 인간, 통일의 동산을 잃어버린 인간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외적 세계에서 해결되는 줄로만 알았는 데, 외적으로는 일정한 기준을 갖추어 나오면서도 내적으로는 분열되어 온 역사적인 슬픔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제 문제가 되는 내적인 자유의 세계, 내적인 해방의 세계, 내적인 통일의 세계를 쟁취할 수 있는 하나님을 대한 생명의 힘이, 사랑의 힘이, 이념의 힘이 저희에게 넘치어서 사망까지도 비웃어 고통과 슬픔과 억울함을 다 딛고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심정의 기준이 저희의 마음에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심정의 세계에서는 전체 성도의 자유함을 느낄 수 있고 전체의 환경도 느껴질 수 있고 전체의 생명까지도 움직여낼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오늘의 역사적인 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에, 내적으로는 분열을 조장하면서 외적으로는 그럴듯하게 통일의 형태를 갖추어 물질을 중심삼고 움직여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나 내적으로 보면 그와 반대로 정신의 궁핍을 피하기 위하여, 생명의 궁핍을 피하기 위하여, 사랑의 궁핍을 피하기 위하여 역사가 흘러 나왔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은 생명의 시간을 보충해야 할, 이념의 시간을 보충해야 할, 아버님의 사랑을 보충해야 할 시기에 당도했사오니, 내가 사망선을 넘어서면서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마음의 충정을 구해야 되겠사옵고, 나를 대하여 염려하고 싸우신 아버지인 것을 내가 알아야 되겠사오니 그 수고함이 오늘날 저희들의 천만배의 죽음 이상의 가치로써 나를 찾아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심적인 변화가 일어나야만이, 정신력이나 영의 궁핍을 보충할 수 있는 생명의 힘이 생겨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오늘날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의 마음 마음에 이제 물질적인 기근과 기갈만이 아니라, 물질적인 추궁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기갈과 정신적인 추궁을 당하고 있사오니, 이것을 채워줄 수 있는 성령의 불길, 아버님의 생명, 아버님의 사랑의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것이 폭발되는 곳에서만이 얻을 수 있는 내적인 모든 생명, 추구하던 자유의 이념까지도 소화할 수 있는 아버님의 자유의 심정, 아버님의 해방의 심정, 아버님의 통일의 심정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아버님은 오늘날 저희를 찾기 위해서 하나에서부터 전체까지 모든 것을 그런 자리로 몰아내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또한 저희는 오늘날 같은 아버님의 이름을 가지고 세계로부터 국가로부터 민족으로부터 나 개인까지 그러한 자리로 몰아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내적으로 최후의 그때를 항하여 흘러가고 있는 오늘날, 아버님의 전체의 힘을 영원히 잃지 않는 , 세계와 모순된 나를 연결시킬 수 있는 기준이 없사오니 이것을 찾아 연결시킬 수 있는 보다 큰 심정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실존성. 아버님의 생명, 아버님의 이념, 아버님의 사랑, 내적으로 움직여나온 자유와 해방과 통일이 모두 나 하나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야만 머나먼 하나님도 내 것이요. 머나먼 하늘나라도 내 나라요, 머나먼 이념과 통할 수 있는 심정도 내 심정이라 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마음에 그런 심정을 가진 사람에 한해서 천국을 소유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천국의 이념을 성취시킬 수 있는 자격자인 연고로 아버님도 우리를 대하여 ‘네 마음에 내가 있다’하였고, 예수도 우리를 대하여 ‘네 마음에 내가 있다’ 하였나이다. 이와 같이 천국도 우리 마음에 있다고 믿는 심적 기준에서만이 모든 해결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제 원컨대. 저희들에 있어서 내 몸보다도 귀하게 느낄 수 있는 아버님의 심정, 내 자유보다도 귀하게 느낄 수 있는 아버님의 심정, 오늘의 내 생애보다도 더 귀하게 느낄 수 있는 아버님의 심정을 알고, 이세계 전체의 죽음 이상으로 아버님의 슬픔을 안타깝게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심정을 회복하고, 그걸 이해할 수 있는 내 한 개체를 갖추어 아버지 앞에 나설 수 있는 아들 딸 되게 허락해 주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찾고 헤매신 수고의 역사노정 앞에, 이제 저희들의 심정에 아버님의 심정이 폭발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의 생명력, 아버님의 이념,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생명을 기반으로 한 자유, 이념을 기반으로 한 자유, 사랑을 기반으로 한 자유, 그리고 또 그것들을 기반으로 한 해방과 통일이 이루어진 그 전체를 소유하여 ‘아버님이여! 이제 위로받으시옵소서! 당신의 마음이 이것인 줄 알았사옵니다’라고 하면서 역사과정에서 수고하신 아버지의 소원을 해원해 드릴 수 있는 심정적인 기반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을 모시고 영광받을 수 있는 생명과 이념과 해방을 노래할 수 있는 입장에서, 복귀의 서러움과 복귀의 고통과 한탄을 해원하는 자유의 회복운동을 섭리하신 아버지의 마음까지도 전부 다 해원하여, 세계의 전체 인류가 아버지를 모시고 자유를 노래할 수 있고, 해방을 노래할 수 있으며, 통일을 노래할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에게 자유의 심정이 있다 할진대는 , 해방의 심정이 있다 할진대는 , 억만 사탄, 억만 원수가 있다 해도 그들이 우리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또한 이념에 구애받지 아니하는 것을 알았사옵고, 이런 자유와 해방의 자리에서 아버님과 저희들의 심정이 하나로 통일된 기준에서 움직이는 날에는 하늘 땅은 자동적으로 통일된 기준에 화하여 움직일 것을 알았사오니, 그러한 기준을 저희들의 마음에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생명과 이 소망을 위해서 저희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아버지 심정과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세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고, 아버님을 심중에 모실 때까지 원수들의 농락에 빠지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원수의 핍박을 넘어 아버님의 심정이 저희 마음에 깃들 때까지 변치 않는 아들 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공포를 넘어설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 올렸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