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0 to 4-293: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어 인침을 받는 자가 되자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어 인침을 받는 자가 되자
1958.09.14 (일), 한국 전본부교회

4-280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어 인침을 받는 자가 되자
요한복음 10:31-36

[기 도]

아버님 ! 아버지를 모시고 겸손히 경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은 영원한 저나라에서 아버지와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저희들, 마음의 문을 열고 찾아가게 될 때 그 마음의 중심에 아버지의 심정을 느껴서 내 마음의 주체적인 명령에 내 몸이 따라 줄 수 있는 그리운 그날을 찾고 있사오니, 오늘 저희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당신의 음성을 들어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몸을 찾을 수 있고, 아버지께서 나 하나를 찾기 위하여 내 배후에서 환란과 수고의 역사과정을 거쳐온 것을 느껴 스스로 머리 숙일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아버지에 대한 황공한 마음을 스스로 몸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찾아오시는 아버지는 언제나 영광의 아버지로서만 찾아오시는 줄 알았는 데 아버지는 슬픔의 주인공으로, 혹은 고통의 주인공으로 찾아 오시었고, 비운의 표정으로 찾아오시었습니다. 이런 아버지인 것을 몰랐던 연고로 저희가 저희의 슬픔을 아버지께 맡기기를 원했었고, 저희의 어려움을 아버지께 맡기기를 원했었으며, 저희의 비운을 아버지께 떠맡기기를 원했었던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역사노정을 걸어오시면서 슬픔을 가누시고 탄식하며 찾아주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타락의 종족임을 저희가 깨닫고 천만년의 아버지의 수고를 덜어드리려 한다 할진댄, 아버지의 슬픔의 노정을 모르는 아들 딸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이날 저희들을 불러주셨사오나, 모인 저희들 무슨 면목이 있겠사옵니까? 원하옵건대, 아버지의 사정을 풀어드릴 수 있는 무리들이 이 한 마당에 모여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러한 일들이 이 한 청중들의 몸 마음에서 넘쳐 흐르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이 한 시간 아버지, 저희들을 품어주시옵고, 잃어버렸던 아버지의 은사를 다시 회복하여 저희들의 죄를 청산하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 한 시간 맡아 주관해 주시고, 아버지! 당신의 말씀을 전하고자 원하오니 주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고, 이것을 공격하는 무리는 저희들이 아니옵고 사탄임을 아옵니다. 저희의 속된 마음이 악한 사탄과 교류하는 것을 원치 않사오니, 오직 아버지의 뜻만 믿게 해 주시옵소서. 엎드려 아버지 앞에 회개하게 해 주시고, 저희가 천명이 지시하는 길을, 아버지와 다른 마음을 갖고 가는 일이 없게 해 주시옵소서. 만약 그런 마음의 간격이 조금이라도 있다 할진대는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전체가 합심하여 이를 넘어설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은 거룩한 날이오니 뜻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만민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불쌍한 자리에 처해 있는 삼천만 민족에 복을 내려 주시옵고, 이 민족을 위하여 수많은 아들 딸들이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곳곳마다 축복의 손길과 사랑의 손길을 펴 주시옵길 바라옵나이다. 고성지르고 싸우는 민족을 긍휼히 보시어서, 아버지! 서로서로 용납하고 참을 수 있는 관용심을 가지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길 바라옵니다.

땅을 붙들고 울어야 할 이때, 당신의 사정을 붙들고 울어야 할 이때에 아버지의 심정을 가진 자들이 있다 할진대 이들을 하늘편에서 수습할 줄로 믿사옵니다. 저희들의 모습을 아버지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따라 나간다고 하면서 원수를 따라 나가는 불쌍한 무리들, 원수 아닌 자를 원수로 알고 치기에 급급하고 있는 어리석은 무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의 생명을 누가 지키겠습니까? 이들의 갈길을 누가 밝혀 주겠습니까? 아버지의 말씀을 받아 감당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민족의 운명을 염려하시는 아버님의 뜻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민족의 갈길을 염려하시는 아버지시여! 세계적으로 몰리는 이민족을 불쌍히 보시옵소서. 이 민족을 대표하여 하늘을 우러르며 정성의 제단을 쌓고 있는 수많은 무리를 기억하여 주시고, 끝날 심판의 채찍이 이 민족 앞에 내려지지 않기를 마음 다하여 호소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 아버지 앞에 먼저 호소하고 나아가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저희들이 이 책임을 위하여 살고, 이 책임을 위하여 기도하고, 이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하늘을 향해 호소하고, 아버지를 중심삼고 산다 할진댄 기필코 아버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질 것으로 알고 있사옵나이다. 하오니, 이 무리들을 그런 자리에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한 시간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4-282
말 씀
이 시간은 ‘사랑하는 아들 딸이 되어 인침을 받는 자가 되자’ 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시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4-282
하나님의 소망과 나
어떤 소망의 세계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때 그 소망과 인연된 자리에 있을 수 있다면, 그 소망의 중심 가운데 남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오늘날 인간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심정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망이 있다 할진대는 그 소망 가운데 여러분 자신들이 남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또한 여러분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한 가정을 보더라도 그 가정에는 그 가정을 통솔해 나가는 주인이 있는 데 식구들이 그 주인의 마음에 남아지기를 바라는 것도 같은 마음에서일 것입니다. 국가도 그렇고, 세계도 그렇고, 천지 만물을 찾아나오신 아버지의 섭리의 뜻도 그러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이 섬기는 지도자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어야 될 것이고, 어떤 종교를 믿는 다면 그 종교의 교주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어야 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있다 할진대 그 하나님의 마음에 기억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일시적으로 기억되는 여러분이 아니라 아버지의 소망과 사정을 걸어 놓고 또 아버지의 심정을 걸어 놓고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그런 아들 딸이 있다 할진대, 하늘은 그 아들 딸을 붙들고 모든 사정을 얘기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육천년 수고의 섭리로써 찾아 모아 나오신 전체의 복을 무조건 넘겨주려고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심정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부모의 혈육을 받아 하나의 존재로 태어난 여러분은 결코 무심한 존재가 아닙니다. 역사적인 종교를 지배해 나오는 하늘이 있고, 하늘의 운세를 따라 움직여 나오는 세계가 있고, 세계의 운세를 연하여 소망을 갖고 나가는 국가가 있고, 국가의 법도를 따라 나가는 가정이 있고, 인륜을 따르는 내 개인이 있음을 인정한다 할진대는 , 하늘은 세계를 , 세계는 국가를 , 국가는 사회를 거쳐 가정으로, 가정은 나에게까지 원만한 인연이 맺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가 설정되어 있음을 여러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선 나,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환경적인 인연을 갖고 있는 우리는 지금 누구를 위하여 움직이고 있는 가! 여러분의 가정은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 가! 이 나라와 이 세계는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 가! 이것들은 우리가 깊이 생각하여야 할 중대한 문제들입니다.

인간 시조의 타락 이후 하나님은 인간들을 대하여 슬퍼하셨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슬픔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겠습니까? 즉 어디에 머물기를 고대하여 흐르고 있겠습니까? 또 하나님의 고통은 어떤 역사노정을 거쳐, 어떤 민족을 거쳐, 어떤 혈족을 거쳐 어떤 사람에게 전달돼 왔겠습니까?

하나님의 소망은 또 어떤 역사노정을 거쳐서 어떤 것과 관계 맺기 위하여 움직여 왔겠습니까?

그것은 세계도 아니요, 국가도 아니요, 가정도 아니요, 바로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나 하나에서부터 결정지어져야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하나의 발판을 갖지 못하였다 할진대 하늘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관계가 없고, 내가 내 자신에서 결정지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우지 못했다 할진대 아무리 세계적인 이론이 나타났다 해도 그 이론은 나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 하나를 기점으로 역사적인 서러움이 좌우되고 역사적인 고통과 어려움이 좌우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의 심정으로, 몸으로, 혹은 뼈와 살에 사무치게까지 느껴본 적이 있었습니까? 없다 할진대는 피눈물을 머금고 혈투전을 거쳐 죽음의 길도 불사하던 선조들이 여러분을 참소할 것입니다.

4-284
인간이 먼저 느끼고 찾아야 할 것
우리는 이런 역사적인 신앙인들이 남겼던 전통과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인연을 망각해버리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은 온 세계 천륜, 인륜을 총합한 우주 앞에 배은망덕한 자가 될 것입니다. 이제 이것을 깨달아야 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개개인이 내면적인 신앙을 함에 있어서 천륜 앞에 먼저 느껴야 할 것은 무엇이며, 먼저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쁨이 아닙니다. 행복이 아닙니다. 결코 영광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늘로 하여금 슬픔을 느끼게 한 연고로, 먼저 찾아나서야 할 것은 이 땅을 지배해 나온 천적인 슬픔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도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세계를 막론하고 하늘의 눈물을 거두게 하기 위하여 고통의 십자가를 넘는 자요, 억울한 탄식의 자리에서 하늘 앞에 호소의 제단을 쌓고 있는 무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은 어찌하여 사랑하는 아들딸을 이런 십자가의 길로 내모는 가? 그것은 하늘의 인연이 이 세계와 국가를 거쳐, 민족을 거쳐, 사회를 거쳐 가정을 거쳐 나에게까지 인연되어지고 세계의 인연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늘의 사정을 대신한 하늘편 아들 딸이라는 위신을 세워주기 위하여 6천년 역사의 슬픔을 한 순간의 생애에서 느끼도록 하셔야 했던 하늘의 심정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지어 놓고 거기서 영원히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셨는 데, 그 에덴의 복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 복을 잃어버린 하나님은 행복한 하나님이 아니라 슬픔을 떠맡은 하나님이 되었고, 나라와 만민들로부터 홀로 맞고 맞으면서 민족을 찾아나오고, 온 우주의 복을 찾아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인간들을 대한 비극적인 사정으로 엉클어진 역사노정을 거쳐오신 것이 하늘의 탄식의 노정이라 할진대, 그 탄식과 사정이 여러분과 깊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책임이며 하늘의 책임인 연고로 인간이 하늘을 찾아나가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의 슬픔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고통과 슬픔과 억울함을 갖고 억만 사탄을 대해 싸워 이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런 역사적인 심정을 체휼하지 못한다면 원수와 싸울래야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땅에는 많은 재산을 갖고 있다가 그것을 잃어버리게 될 때 통분해 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혹은 자녀를 가졌다가 그 자녀를 잃어버리게 될 때 통분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땅에 어떤 귀한 것을 가졌다가 잃어버리고 슬퍼하는 사람은 많으나 나를 잃어버리고 하늘을 잃어버리고서 슬퍼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온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내 자신을 잃어버리고, 우주와 비할 수 없는 영광의 실체인 하늘을 잃어버리고 슬퍼하는 사람은 심히도 적습니다.

오늘날 도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모으던 재산을 잃어버린 것이 슬픔이 아니고 나를 잃어버린 것이 슬픔이요 하늘을 잃어버린 것이 슬픔입니다. 하늘을 찾아가는 도의 길은 슬픔을 찾아나가는 노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네 등에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슬퍼하는 것으로 하늘의 슬픔을 대신할 수 있고 우리의 고통과 분함이 하늘의 고통과 분함을 대신할 수 있어야만이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걸어나오신 걸음 걸음이 그러하기에 역사적인 섭리와 인연을 갖고 있는 여러분이 역사적 섭리의 주인공이신 아버지와의 인연을 맺으려면 그러한 슬픔, 그러한 고통, 그러한 억울함을 감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륜의 길이기에 역사노정의 각 시대 시대에 슬픔이 깃들었지만 계획하신 뜻을 이루어야겠기에 즉, 만물을 찾고, 백성을 찾고, 자녀를 찾고, 그리고 하나님 자신을 찾아야 되겠기에 하늘은 이런 길을 거쳐오신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지를 잃어버리신 하나님은 하나님 노릇을 다 못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능력과 위신과 권한을 잃어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회복하기 위한 복귀운동이 오늘날 선을 지향하여 나가는 인륜의 지도이념의 기준이요, 도를 찾아나가는 도인들의 심적 기준인 것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우주를 기필코 찾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4-286
현세계의 상황과 자녀가 해야 할 일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늘이 인정하는 나 개인을 찾고 하늘이 인정하는 가정, 하늘이 인정하는 사회, 하늘이 인정하는 국가, 하늘이 인정하는 세계, 하늘이 인정하는 우주를 찾아서 하나님의 뜻을 해원 성사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한을 갖고 만물을 통치해야 하고. 하나님을 모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생애노정을 걸어 놓고 찾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하나님을 대할 수 없다 할진대, 아무리 하나님이 이 세계에 나타나도, 국가에 찾아와도, 아무리 하나님이 사회에 나타나도, 가정을 찾아와도 여러분 자신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살펴보면, 어떤 시대에서든지 모든 주의나 이념이 천운을 향하여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많은 이념이 규합되었고, 이제는 하나의 이념, 세계적인 이념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주의든지 둘이 부딪쳐 싸우면 반드시 하나는 깨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을 중심삼았던 평면적인 싸움이 아니라 하늘을 중심한 입체적인 싸움의 시기에 영계가 우리를 습격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세계 도처에서 말세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정신병자가 많이 나타나고 있고, 신경 계통의 공포증 현상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아담이 타락 직후에 공포심을 가졌던 것과 같이 이 세계는 천륜을 배반한 피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로 가득찬 세계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념을 잃어버린 세계가 됩니다. 이러한 때에는 나의 어떤 고집을 세운다 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이리 몰리고 저리 휩쓸려 그야말로 모든 것이 혼돈하여 중심을 갖지 못하는 우주의 종말시대에 처한 여러분은 이런 역사적인 전환점을 앞에 놓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쓰러져가는 이 세상과 이 민족을 바라보고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늘이 나를 세워 민족 앞에 자랑할 수 있고, 나를 세워 이 우주 앞에 자랑할 수 있게 되려면,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맺어야 하고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이념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앞을 바라보아도 막혀 있고, 뒤를 돌아보아도 알 수 없고, 옆을 바라보아도 원수들이 있습니다. 좌우건 중앙이건 온통 내한 자체를 파괴시키려는 사탄들로 꽉 차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자신을 지키고, 하늘을 지키고, 천륜을 지키고, 그리고 좌우의 사탄들을 막아낼 수 있는 자신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 우주와 천지 만물의 주인공이 하늘이라 할진대 그 하늘의 어떤 이념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세워 그 이념을 이루어 나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하늘을 찾아 나선 사람에게는 그 과정에서는 행복이 없습니다. 만족도 없습니다. 과정에서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진실로 하늘을 찾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먼저 슬픔이 찾아드는 것이 원칙이요,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즉, 종으로 횡으로 그리고 좌우로 슬픔과 고통과 억울함을 당한 연후에야만 기쁨이 찾아든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기독교에서는 6천년 역사를 다 쓸어버리는 그날을 심판의 날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슬픔과 고통을 갖고, 억울함을 갖고 오시어서 우리에게 그것을 믿게 해주시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가. 여러분을 망하게 하기 위함이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을 하늘의 아들딸로 삼기 위함인 것입니다. 아들딸이라면 피와 살이 통합니다. 그리고 사상이 통해야 하고, 이념이 통해야 합니다. 그런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움직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4-288
하나님의 두가지 서러움
그런데 하늘과 우리와의 부자의 관계를 누가 파괴시켰던가. 이 관계는 하늘의 힘만으로도 회복할 수 없고 우리의 힘만으로도 회복할 수 없는 서글픈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이상 분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고로 우리는 자녀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를 잃어버린 슬픔, 영원히 모시고 살아야 할 그 부모를 모실래야 모실 수 없고, 만날래야 만날 수 없고, 따라갈래야 따라갈 수도 없는 사정에 얼크러진 그 슬픔, 그 고통, 그 억울함을 느낄 줄 아는 아들 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운의 노정을 거쳐 오시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맺어 나의 아들 딸이라고 기뻐할 수 있는 자녀를 찾고자 하셨는 데, 우리는 전혀 하나님의 슬픔을 몰랐었습니다. 자식을 자식이라 할 수 없고 아들을 아들이라 할 수 없는 타락의 혈통을 이어받아 사탄 주관권내에 있는 연고로, 이념적으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혈육의 관계를 갖고 있는 아들이로되 실제 생활에서는 천만가지 원수의 조건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두 가지의 서러움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아들을 잃어버린 것이 하나의 서러움이요, 다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이 또 하나의 서러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런 서글픔을 자아낸 우리는 죄인 중의 죄인이요. 빚진 자 중의 빚진 자라는 것을 느껴야 될 것입니다. 하늘 대하여 6천년의 역사적인 수고를 끼쳐온, 회개하고 수고해야 될 빚쟁이 중의 빚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들을 자녀라 할 수 없는 , 누가 거부해서 그 마음에서 사라지게 할 수 없는 , 심정으로 맺어진 부자의 관계,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은 인연은 하나님 자신도 거부할 수 없는 정적인 심정으로 흐르고 있는 데, 그런 심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들 딸이라 마음놓고 부를 수 없고 대할 수 없는 것이 비극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슬픔은 하나님의 슬픔에 비하면 슬픈 게 아닙니다. 돈이 많다고 기뻐하지 마십시오. 자기가 원했던 모든 행복스런 외적 조건을 구비했다고 해서 그 마음이 기쁜 것이 아닙니다. 물질을 가진 만큼 거기에 비례한 탕감의 조건이 나를 더욱 침체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지상 타락세계에 있어서 ‘모든 것을 청산하고 나섰으므로 하늘의 아들 딸이 될 수 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이 흘려온 눈물자국 앞에 엎드려 아우성치는 인류의 서러움과 하나님의 눈물어린 심정과 탄식에 사무쳐 아우성치고 있는 만물의 슬픔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또 아버님의 슬픔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고통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억울함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이념을 갖고 하나님 대신 땅을 주관할 수 있어야만 아버지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이 땅이 타락세계인 연고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하나님도 천적인 창조의 원칙이 있고 우주적 천법의 기준이 있으므로, 그 원칙을 벗어나서 인간을 직접 찾아오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제물을 걸어 놓고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인간과 만물이 연결되었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제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하나님도 천적인 창조원칙이 있고 우주적 천법의 기준이 있으므로, 그 원칙을 벗어나서 인간을 직접 찾아오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제물을 걸어 놓고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인간과 만물이 연결되었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제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과 만물, 예수님과 인류가 인연맺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지극히 슬픈 자리로 올라감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축복의 기준이 이루어져서 예수님과 인류가 인연맺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맺어져야 할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입니다. 그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맞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만민으로부터 백성으로, 백성으로부터 아들로, 아들로부터 하나님까지 인연을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과 이념, 그리고 영광을 찾아 복귀해 나오시는 하나님의 법도입니다.

4-290
하늘이 인정하는 아들딸이 되고 완전한 복귀를 이루려면
그러면 그 인연은 어디에서 맺어져야 할 것인가. 영계에서가 아니라 지상에서 맺어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신랑이요 땅은 신부라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어길래야 어길 수 없는 인연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이 그것을 느끼는 심정은 변치 않습니다. 천년 전 사람이나 만년 이후의 사람이나 그 심정을 초월할 수는 없는 연고로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 놓고 신랑은 신부의 이름을 세워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아들 딸까지 인연을 맺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을 찾고 백성을 찾고 자녀의 실체를 찾아 세우고 부모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과 인간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만물을 제물로 드리고. 백성과 아들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아들을 죽여 제물로 드리고,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십자가를 짊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이념의 과정을 두고 볼 때, 오늘 우리에게는 역사적인 이념의 과정을 한꺼번에 탕감복귀해야 할 사명이 있는 연고로 이제는 아버지를 세워 나를 찾아야 할 끝날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백성들의 대신자인 제사장을 세워서 제물을 드리고, 조상을 숭배하고 율법을 행하면 나름대로 구원을 얻을 수 있었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었지만. 앞으로는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피와 살이 얼크러지고 손이 얼크러져서 영원히 거부할래야 거부할 수 없는 그런 기준으로 인연된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6천년의 섭리의 역사가 거듭되는 서러운 노정에서 마음만이 아니라 몸뚱이까지 ‘이것이 내 아들이다’라고 하늘이 인정할 수 있는 하나의 아들 딸들이 태어나야만, 생겨나야만이 하나님이 땅을 위하여 흘리신 눈물에 대해 깨닫게 되고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깨우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역사 이래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 눈물 흘리는 하나님의 사정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의 백성과 아들을 위하여 눈물 흘리는 하나님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온 만민, 온 하늘 땅을 대신하여 그 심정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 것인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시간성을 초월하여 영원하듯이 천만리 거리를 초월한, 한계성이 없는 그런 천적인 심정을 알아서 오늘날 역사적인 아버지를 붙들고 ‘아버지의 서러운 마음이 내 마음이요,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이 나의 심정이오니, 저에게 십자가의 짐을 지워 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통의 십자가를 또다시 지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있는 하늘의 사정을 아십니까? 오늘날 우리는 이 민족을 대한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허덕였던 선조들의 땅을 대한 모든 역사적인 심정, 백성을 대한 심정, 아들을 대한 심정, 나아가서 하나님을 대한 심정까지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고통 가운데 있었던 바울은 탄식하며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 8:35)”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도 하나님 앞에서는 신부격이라는 것이에요. 우리에게 신랑이 되시는 예수님에게까지도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신랑 신부의 격위는 외적입니다. 완전한 복귀는 만물복귀에서부터 시작하여 자녀복귀까지 완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랑 신부의 관계를 거쳐 성신을 만나고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머물 것이 아니라 ‘아버지여!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아들딸 대신 축복해 주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타락의 원한을 느끼지 아니 했던 축복, 인류의 참조상 될 수 있는 , 타락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참부모의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한이 무엇이겠습니까? 백성을 붙들고 우셨고 땅을 대해 우셨었으나 하나님이 바라시는 승리한 아들을 붙잡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 못한 것이 하늘의 원한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늘로부터 ‘너는 승리한 아들’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 하늘의 원한이요 슬픔입니다.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기에 그토록 헤매이신 하늘을 붙들고 울어본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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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인칠 수 있는 아들 딸
자녀를 가진 부모가 아무리 일국의 수상이라 할지라도 잃었던 자식을 찾게 되는 그 마당에 있어서는 , 일국의 수상으로서의 염치나 체면이 문제가 아닙니다. 체면을 무시하고 위신을 무시하고, 그 아들이 거지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손을 붙들고 몸을 붙들고 통곡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이에서 그러한 장면이 창세이후 지상에서 한번도 벌어지지 않았던 것이 하나님의 서글픔이요, 온 만물의 서글픔이요, 인간의 슬픔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물시대에는 제물을 드려서 올라갔고, 민족을 세울 때는 지도자의 말을 믿고 그 지도자를 따라서 올라갔습니다. 그때는 지도자의 말을 따르는 그것이 곧 제물이었습니다. 그 다음엔 독생자 예수를 믿어서 올라갔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참부모님을 믿어야 됩니다. 참아버지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길을 찾아나가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6천년 역사의 이념이 있었다 할진대 이제 앞으로는 그 이념의 이론적인 결실이 이 땅위에 나타나야 되는 데, 땅을 붙들고 울 줄 아는 하나의 책임자, 백성을 붙들고 울 줄 아는 하나의 책임자, 예수의 사정을 붙들고 울 줄 아는 하나의 책임자는 어느 때에 이 땅 위에 나타날 것인가.

갈래갈래, 단계단계 끊겨진 역사를 오늘 하나의 실체가 나타나 연결시키고, 우주의 총합적인 역사의 이념을 대신한 실체가 나타나서 아버지와 신랑 신부의 심금을 울리고, 만 백성과 인연 맺을 수 있는 심정을 가진 책임자가 나타나 땅을 붙안고 울 수 있는 마음을 일으켜서 그 마음을 유지시킬 수 있게 되기를 인간들은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한 존재를 우리는 하늘 대신 모시고, 예수 대신 모시고, 만민 대신 모시고, 땅 대신 모셔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땅을 붙들고 울고 땅을 사랑하고, 백성을 붙들고 울고 백성을 사랑하고, 그 다음엔 하나님을 붙들고 울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이 기쁨의 심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여러분을 보고 아버지는 물론이요, 삼위신이나 천천만 성도나 사탄세계의 사람들까지 ‘옳소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고, 6천년 동안 탄식하며 소망하던 참부모의 자식으로서 역사적인 심정을 대신하여 하늘의 사무친 슬픔을 해원하는 데 누구보다 대표적으로 나서서 싸움으로써, 사탄을 복수한 아들로 세워져야 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자녀라고 증거함을 받아야만 인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14만 4천무리……. 말은 좋습니다. 하늘의 인침받은 아들 딸……, 말은 좋습니다. 해원복귀의 조건 조건을 조성 하고, 천륜의 섭리를 대행하는 하늘의 아들 딸이 그들의 말대로인가! 알고 보니 하늘이 인칠 수 있는 아들 딸은 하늘 대신 땅을 대하여 울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만 되게 돼 있습니다.

백성을 붙들고 울 수 있고 고통을 당하고 억울함을 당할 때에도 천륜을 대신해서, 하늘을 대신해서 참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역사적으로 사무쳤던 하나님의 슬픔, 인간들이 잘못했던 모든 것을 다 회복하고 모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아들 딸이라야만 인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디서부터 인침을 받아야 되는 가! 반드시 하나님과 더불어서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에서부터 인침을 받고, 하나님의 사정에서부터 인침을 받고, 오늘날 내 가정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인침을 받아야 합니다. 아버지를 붙들고 울 수 있는 역사적인 심정의 귀일점을 찾는 그때에야만 하늘의 인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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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아버님! 가고 가는 길이 험하다 하오리까? 저희들의 마음을 아버님의 그 심정의 애달픔에 비할 수 없사옵고, 저희의 억울함을 첩첩이 가로놓인 사탄권을 걸으신 아버님의 그 발자국에 비할 수 없음을 알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험한 길을 가면서도 하늘 뜻을 책임지기 위한 사명감이 저희의 마음에 용솟음치게 허락하여 주시고, 슬퍼하면서도 아버님의 슬픈 역사의 친구가 되어 당신의 노정에 동반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역사적인 고통을 같이 느끼어 고통받는 심정의 친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분한 심정에 동반하여 친구가 될 수 있고, 아버지의 내적 슬픔의 친구가 되는 동시에 외적 슬픔의 친구가 되어 영원한 아버지의 기쁨의 대상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모든 것이 문제되기 전에 복을 받기 위해 헤매는 내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저희의 마음 속에 있는 슬픔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이라 할진대 행복의 길을 찾을 도리가 없다는 것도 알았사옵고, 고통의 길을 걸어야 하는 인간이 그 고통의 길을 피하려 한다면 그들은 결코 고통의 길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분함과 억울함을 이겨낼 인내를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 그 인내가 아니고서는 어떠한 고통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슬픔의 고개를 넘고야만이. 고통의 고개를 넘고야만이, 분한 심정의 고개를 넘고야만이 그날의 복이 결정되는 천륜의 원칙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이제 아버지의 심정을 붙들고, 땅을 붙들고, 만물을 붙들고 눈물 흘리며, ‘아버님의 슬픔이 내 슬픔이요, 아버님의 고통이 내 고통이요, 아버님의 고난이 내 고난이오니 그 모든 고통을 제게 맡기시옵고, 아버님은 행복한 자리에 서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고통과 정과 다른 모든 것이 동할 수 있는 부자의 관계의 인연이 있는 줄로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시간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천태만상의 사람 중에 승리한 아들들을 내세워서 만우주를 복귀하고 싶어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았사오니, 그 심정을 내 한 몸에 지니어 나타낼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어떤 제물로 희생되는 것도, 또는 어떤 죽음의 길도 감사하며 아버님의 길을 지켜 나갈 수 있는 아들 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어서 배반하는 자들 되지 않고 기필코 아버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저희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오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