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61 to 4-277: 회복의 인연을 갖고 오신 예수

회복의 인연을 갖고 오신 예수
1958.08.03 (일), 한국 전본부교회

4-261
회복의 인연을 갖고 오신 예수
사도행전 3:13-24

우리가 주일날 교회에 나오는 것을 습관적으로 또는 상습적으로, 오늘은 일요일이니 아버지 전에 나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이 장소가 그러한 차원에서 생각되어지고 또 이루어질 자리가 아님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즉, 여러분이 이렇게 모이게 된 것은 여러분이 모르는 어떠한 배후의 인연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인연은 내 개체를 중심삼고 볼 때에 전후 좌우와 관계가 된 인연이요, 또 상하와 관계가 된 인연이라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4-261
예수님의 강림배경과 유대민족의 불신의 결과
역사노정에 예수 한분이 나타난 사실은 그저 우연히 되어진 사실이 아니라 정하신 천륜의 뜻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즉, 역사적인 인연과 시대적인 인연과 미래적인 인연을 이루어 놓기 위하여 예수님은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만일 그 당시에 안 사람이 있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록 한 개인에 불과하였으나 예수님이 맺고 계신 인연을 전체에 연결시켜서 끌고나오게 될 때에는 인류의 역사적인 인연이 딸려들어오고, 그 당시의 시대적인 인연과 미래적인 인연까지 딸려들어오게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그 당시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상과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와 하나님 아버지까지도 그와의 인연을 중심삼고 움직여야 하는 중심적인 사명을 가지고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유대백성은 그때까지 하늘이 약속한 하나의 뜻을 찾아나와 가지고 뜻 가운데 선 것으로 자부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뜻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역사적인 교단을 세워나왔지만 그 교단이 하늘편것이 되지 못하는 입장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또 선민권을 자랑하던 이스라엘민족에 대한 끝날의 약속의 축복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민족적인 소망과 교단적인 소망이 있었지만 천주적인 이념의 주체인 예수를 몰라봄으로 말미암아 여지없이 파탄되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류의 역사노정 위에 대비극이 벌어지는 자리에서 예수는 서글픔이 어린 눈물과 희생의 피로써 이에 대응하였던 사실을 그때 사람들은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외치신 말씀은 그의 간곡한 심정에서 우러나와 부르짖은 진리였습니다. 또 그가 걸으신 30여년의 생애는 자기 일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생애가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소망은 자기 한 개체를 위한 소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아야 할 유대백성들은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잊고 하늘의 뜻을 이루려고 했던 예수님만이 알고 계셨던 것인데, 이 서러움이 오늘날 우리들의 서러움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신앙자의 입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이 가신 걸음이 내가 가야 할 걸음이요, 예수님이 염원하는 이념동산이 내가 이루어야 할 이념동산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축복권내에서 지낼 수 있는 하나의 신랑 신부의 이념을 그리워하고 소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이룰 수 있는 어린양잔치를 중심삼아 14만 4천 무리를 품고 이들과 더불어 환희의 노래와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리기를 바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간절한 염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결국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그러한 본래의 소망을 성사하시지 못하고 도리어 갈보리산정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신 것은 하나님의 간절하고도 비통한 심정을 대변한 간곡한 기도였습니다. 그 간곡한 기도는 자기 일신의 해결책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지하여 잠들어 있는 백성(민족)과 사탄과 사랑하는 세 제자를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망을 가슴에 붙안고 무지한 백성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진 예수님, 천륜을 가로막는 유대민족은 심판받아 마땅한 배역의 종족이었지만 재차 하늘을 향하여 용납의 손길을 바라는 기도를 하셔야만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은 어떠했겠는 가. 더 나아가 십자가의 고난의 노정을 감에 있어서 원수와 같은 무리들을 향하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간곡한 호소를 한 그리스도의 기도는 인간 앞에나 섭리노정 앞에, 또는 천성의 심정 앞에 어떠한 인연을 맺기위함이었던가!

오늘날 우리들은 다시 거슬러 올라가 예수의 심정을 헤쳐 놓고 그 심정을 대하여 머리 숙일 수 있어야 되겠고, 주가 걸으신 걸음을 내가 걷고, 주가 가신 발자취를 내가 따르고, 주가 돌아가신 제단에 내가 충성을 다하여 아버지의 원한을 대신 품을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우리들은 천정의 인연을 붙들고 온 인류와 역사적인 인연을 대신한 예수의 심정을 붙들 수 있는 가를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즉, 예수의 역사적인 인연, 시대적인 인연, 미래적인 인연을 대신할 수 있는 예수의 친구가 될 수 있겠느냐를 자신에게 반문해 봐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4-263
자기에 대한 자각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확실히 해명하는 데 있어서 내가 맺고 있는 상대적인 관계를 제해 놓으면 도저히 해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복귀섭리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가 있으면 둘이 있게 되고 하나의 모임이 있으면 전후 좌우 상하로 연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하나의 존재가 역사성과 시대성과 미래성을 통과할 수 있는 하나의 주체성을 갖추게 될 때에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출발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이 점점 더 떨어져 내려갈 때마다 끌어올리고 올려서 때와 장소를 넘어서 섭리를 전개시켜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예수를 얼마나 믿었느냐고 질문 받게 될 때에 즉각적으로 ’10년 믿었어’ ’20년 믿었어’ 또는 ‘몇해 믿었어’라고 대답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인연의 역사를 살펴보게 될 때에 여러분은 6천년의 역사가 가산되어 들어가는 입장에 선 자신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즉. 자기 신앙의 위치를 찾을 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은 인연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시대적인 인연권내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신앙의 중심을 가졌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제부터 여러분이 세운 믿음의 터전을 천추만대의 후손이 본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미래적인 인연의 토대를 여러분의 현실의 신앙권내에서 어떻게 갖추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입장에 선 여러분은 6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자신 있게 나타나 ‘6천년 동안 수고하신 나의 아버지여’라고 부를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 오늘날 27억의 인류를 한품에 품기 위하여 수고의 노정도 개의치 않고 참아나오신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의 내가 부르짖는 믿음의 호소로 억천만대의 후손까지도 울려내겠다는 신념과 각오를 갖고 하늘 앞에 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영원한 섭리의 운행 법도를 따라 움직여 나오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미래를 끌어들여 현실과 과거를 통합하여 하나님 앞에 증거할 수 있는 내가 되었느냐 또는 그러한 나를 대해 증거할 수 있는 다른 하나의 사람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4천년 역사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께서 그러한 사명을 짊어지고 현실적인 노정을 개척하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오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은 관념적인 신앙을 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역사적인 인식을 통하여 알려진 지식적인 관념에서 미처 헤어나지 못하는 신앙을 해서도 아니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거기에 처하여 갈 길이 막혀버렸다 할진대, 여러분은 역사노정을 다시 돌이켜 보고 재분석하여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까지 신앙의 길을 거쳐 나온 수많은 교회, 혹은 자기의 이념을 자랑하던 수많은 종교들이 끝날에 이르러 나아갈 길이 막혀버렸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인연이나 시대적인 인연, 또는 미래적인 소망의 인연을 맺을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4-265
진리와 그 주인공에 대한 사명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떠한 신앙자를 찾고 있는 가. 역사적인 인연과 시대적인 인연과 미래적인 인연을 대신하여 나와 관계를 맺어줄 수 있는 신앙자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은 자신의 가슴으로부터, 몸으로부터, 또는 생활로부터 스며들어오는 어떠한 무엇을 느끼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오관을 통하여 무엇인가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오관의 감각을 통하여 마음의 세계를 격려할 수 있는 어떤 진리는 없을 것인가 하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진리는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환경과 하등의 관계가 없고 새로운 분야에서 출발한 진리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과 백퍼센트 부합시킬 수 있는 인연을 가진 진리인 것입니다. 오늘날 소망으로 바라던 이념을 잊어버리고 몽롱한 가운데 처하게 될 때, 즉 흑암의 장벽이 가로막혀 자기 마음의 중심을 헤아려 세울래야 세울 수 없는 입장에 놓여지게 될 때 필요한 진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나타나지 못했던, 미래를 꿰뚫어 가지고 과거를 연결시킬 수 있는 진리를 기필코 찾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들은 자신의 어떠한 수고와 희생과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그러한 진리를 찾아 이 땅에 심어 놓아야 할 세계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음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인연을 맺고온 한 사람이 있다는 이 말은 인류역사노정에 있어서 그야말로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가 주장하던 진리를 추구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이 역사적인 인연, 또는 시대적인 복된 믿음의 인연을 갖추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심정을 통하여 흘러나오는 역사적인 인연에 하나된 자신이 되었습니까? 못되었다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역사적인 노정을 계승하여 오늘날까지 인연맺어 나오던 그 인연을 범한 죄인인 것을 알고 무조건 머리 숙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시대적인 인연을 대신 하여 복음의 말씀을 전하셨고 시대적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실천적인 노정을 걸으셨던 예수님의 30여 생애노정을 유린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을 통하여 소개하였던 그 복음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이런 인연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는 빚 중의 큰 빚을 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인연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기독교의 진리인데, 그 진리 앞에 오늘날 우리들은 빚진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 앞에 예수가 나설 때까지는 4천년이라는 하나님의 수고가 있었고 하나님의 심정과 역사과정의 수많은 선조들의 피가 여기에 얼룩져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이념의 인연을 찾기를 고대하고 그 인연에 의한 자기의 위치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할진대, 전후좌우와 양 어깨에 짊어진 큰 빚의 무게를 여러분은 느껴 본 때가 있습니까? 천륜을 움직여 나가는 인연과 법도는 오늘날 이러한 분야에서 우리를 재촉하고 있으나 우리들은 나 하나를 중심한 개인적인 인연에 머물러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인연에만 머물러 산다면, 그리고 그 인연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여러분 앞에는 천정을 통한 심판이 기다릴 것입니다. 혹은 역사노정에서 순교한 수많은 선열들의 피가 호소할 것입니다. 그런 권내에서도 하늘을 대하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던 예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통할 수 있었고 역사과정에서 수고하신 아버지의 전체의 심정이 예수로 말미암아 위안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예수 한분으로서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전체의 소망을 대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는 이와 같이 역사노정에 있어서 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단 한분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존재였음을 그때 당시의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리하여 몰랐던 역사적인 서러움을 해원하고 영광과 기쁨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 데 그 뜻이 반대로 슬픔의 모습으로, 십자가의 제단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바라보셨던 아버지의 심정을 오늘날 여러분들이 무엇으로 해원해 드릴 것인가. 이것이 문제 중에 제일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왔다 간 이후 영적 복귀역사는 우리의 심령복귀의 노정에 있어서 뒤집혀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4-267
예수의 슬픔과 소원을 맡아야 할 우리
오늘날 천주적인 인연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 상하의 관계는 물론이고 심령도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생명 체의 한 세포도 통일된 심정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사실이 역사과정을 거쳐서 내 마음에 통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역사적인 책임을 지고 우시던 예수.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시던 예수,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시던 예수, 십자가에 돌아가시던 그 예수와 어떠한 부분의 인연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버지여! 저는 미약하오나 예수의 한 부분의 짐이라도 맡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어느 누구와도 의논하지 못하고 우시던 그 안타까운 심정을 느끼어 같이 울 수 있는 비장한 심정을 가져야 하고 그런 마음으로 예수의 어려운 사정의 한 부분이라도 맡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예수님을 붙들고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는 무리가 교회에 적어도 세 사람은 있어야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교회, 그런 교단은 무너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전한 복음이 이 지구상에 전파되어 수많은 교단을 이루고 있지만 예수의 뜻을 벗어난 기독교를 바라볼 때, 오늘날 우리들은 다시금 반성하여 3년 공생애노정에서 허덕이던 예수의 발자취를 뒤따를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심정과 역사적인 심정을 통하여 그때 당시의 유대교인들을 바라보고 사람 앞에 나타날 때는 늠름하고 자신이 넘쳐 있었으나, 돌아서서는 남 몰래 눈물을 흘리며 우시던 분이었습니다. 형식과 의식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심정의 인연에서 뿐만 아니라 정도에서 벗어나는 인간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 채찍을 들어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들의 심정과 생활의 인연을 통할 수 있는 예수의 마음을 찾아야겠습니다. 또 그런 무리는 어디 있는 가 하고 찾아야 되겠습니다. 또 그러한 마음을 갖지 못했다 할진대. 이것을 다시 누구에게 유업으로 넘겨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 처해 있는 우리라 할진대, 과거에 저끄러진 역사적인 모든 과오를 내가 대신 짊어져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지난 날의 슬픔만 알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을 넘어서 앞으로 소망하는 심정까지 알아 가지고 ‘이 모든 것을 내가 책임지겠사오니 쉬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런 마음에 불타가지고 이루어 놓은 어떤 생애의 일편이나 혹은 생활의 일편도 없다 할진대 회개하여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어떠한 시대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는 가. 현재는 물질을 중심삼고 싸우고 있는 시대인데 앞으로는 사상을 중심한 투쟁시기가 다가옵니다. 즉, 인간의 몸을 대신할 수 있는 물질주의 시대를 넘어서 마음을 대신할 수 있는 사상 주의 시대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몸과 마음이 있고, 마음 위에 영이 있으며, 영 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어야만이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비록 작은 하나의 개체지만 전체의 역사를 대신한 존재요. 미래의 모든 인연을 대신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천주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역사는 무엇을 이루기 위하여 지금까지 흘러내려 오는 가.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 우리의 선지 선열들은 무엇을 바라고 나왔는 가. 타락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먼 곳으로 부터 인연되어 가지고 중심으로 찾아들어오고 있습니다. 즉, 씨족주의 시대로부터 부족, 민족을 거쳐서 국가시대와 국제시대, 세계적인 연맹시대를 거쳐나오고 있는 데, 여기에서 하늘은 하나의 대표적인 사람, 즉 역사적인 인연과 시대적인 인연과 미래적인 인연을 겸한 그 터전 위에 하나님의 심정을 결부시킬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을 찾아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1차대전 당시에는 물질을 중심한 투쟁시기였습니다. 즉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걸어 놓고 물질을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계가 물질만능주의를 부르짖는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4-269
마음을 중심한 생활
그런데 이것이 어떤 시대나 다 통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 생애의 인연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의 마음을 앞에 모시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륜의 철칙입니다. 마음의 명령에 복종치 않는 자는 하늘이 때립니다. 지금까지 하늘은 역사노정에서 인간에게 자신의 마음을 중심으로 선편에 속하여 양심대로 살되 어떤한 물질적인 악의 조건에 걸리지 말고 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양심 기준은 천륜의 심정을 백퍼센트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있는 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고 수많은 장벽이 가로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희망봉, 즉 천국의 관문 앞에 곡절의 문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심판의 관문입니다. 오늘날의 사조는 공포와 불안과 혼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즉, 중심을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지을 때 물질인 몸뚱이를 먼저 지은 후에 영을 불어넣어 지으셔서 영과 육으로 되어 있는 데 영이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가 물질적인 권한을 중심삼고 하나로 움직일 때 무슨 투쟁시기가 나타날 것인가? 사상투쟁시기가 나타날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현상이 2차대전 이후로 농후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중심하는 사상의 시대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면 사상은 어떠한 사상이어야 할 것인가. 물질을 뚫고, 마음을 뚫고 영을 중심한 사상이어야 할 것입니다. 영을 중심한 사상의 시대를 찾아나가는 것이 복귀노정입니다. 인간들은 이것을 잃어버린 상태에 아직도 머물러 있고, 영과 양심과 몸의 조화를 잃어버린 상태에 아직도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양상이 이 세계에 상징적으로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의 세계는 민주와 공산의 양대 진영으로 대립하여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하나님과 사탄도 대결하는 싸움이요, 인간끼리는 종교를 중심삼고도 투쟁하는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세계를 움직이려는 종족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들의 방편과 수단을 가지고는 세계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상의 판도는 현상황으로 보면 둘이지만 원칙은 둘이 아니라 넷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제3세계의 나라들이 사탄편적인 종교형식을 갖추면서 좌익진영과 손잡고 있듯이 민주진영에서도 새로운 종교형태를 갖추어 세계 사람들과 손잡을 수 있는 어떠한 무엇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기독교를 중심삼은 세계적인 종교운동이 나타나리라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 기독교는 민주진영 안에서 양심적인 권내에 해당되는 분야에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진격전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두 마음이 있어 싸우는 것과 같이 두 세계의 충돌이 있으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 바라는 것은 하나의 기점입니다. 둘이 하나로 합해지는 기점, 그 기점은 인연의 출발이요, 인연의 종합이요, 인연의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적인 인연을 통할 수 있는 내심적 기준을 세워 그것을 생활의 중심으로 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하나의 생활의 무대를 지상에 이루어 가지고 그 가치가 전체 인류의 심정을 통하는 공동적인 가치로 나타날 수 있는 입장이 조성되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세계는 심판의 때를 맞이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긴박한 역사과정에 처하여 있는 오늘날 청년 남녀들은 자신의 결심을 정비해 가지고 하늘을 향하여 새롭게 전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세계의 근세사를 돌이켜보면 문예부흥 이후 불란서의 정치혁명과 1차대전 이후로는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달하였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느냐 하면, 증기와 개소린의 힘을 이용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증기와 석유를 발판으로 산업혁명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후 이 단계를 넘어서 20세기의 전반기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전기문명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물과 석유는 물질이지만 이제는 보이지 않는 전기의 힘을 이용한 전기문명시대가 왔습니다. 그리하여 물질을 움직여 빛을 발하게 한 단계 이후에는 무엇이냐 하면 열의 문명시대, 즉 원자력시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입니다. 이와 같이 역사는 3단계의 산업 혁명과정을 거쳐 나왔던 것입니다.

4-271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 나타난 경제체제나 다른 무엇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자극적인 계기를 만들 수 있는 민족과 백성이 있다 할진대, 그 민족과 백성은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영국이 그런 사명을 짊어지고 나왔는 데 그것을 자기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물질문명이 발전해나가는 데 있어서 그 시대시대를 깨뜨릴 수 있는 조그마한 불꽃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움직임이 세계를 움직여낼 줄을 누가 알았던가. 아무도 몰랐습니다. 오늘날 물질 문명의 최후 단계에 있어서 원자력이 나와 가지고 하나의 불꽃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불꽃을 누가 인계할 것인가 하는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면 물질단계가 지난 후에는 어떤 단계에 들어갈 것인가. 사상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찾아들어가야 할 섭리가 있기 때문에 문예부흥 이후의 자조를 중심삼고 17, 18세기를 계기로 하여 지금까지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겪어 나오고 있습니다. 사상의 교차가 몇번씩이나 거듭된 이후 지금에 와서 이루어진 것이 좌우의 2대 주의입니다.

그런데 끝날인 이 시대에 있어서 이 두 주의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마치 물질문명을 자랑하는 여기에 원자력이 나와 하나의 불꽃을 던진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서로 우월성을 자랑하는 이 시대에 있어서 하나의 불꽃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주의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러한 하나의 불꽃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주의를 찾고자 하는 심각한 마음으로 불타는 청년 남녀가 있다 할진대 잠을 못자고 그 문제를 해결짓고자 할 것입니다.

어차피 싸움은 붙었으니 판결짓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훌륭한 주의가 나오게 될 때에 물질을 지배했고 마음이 완전할 때에 그 몸을 지배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사상적인 주의가 나와 가지고 세계적인 경제력을 휩쓸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도 2차대전까지는 경제적으로 자꾸 번영하더니, 이제는 주의를 찾아야 할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얻어맞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면 생각하면 고맙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버리는 데는 멋있게 버리라는 것입니다. 원조니 뭐니 하지 말고 버릴 줄 아는 국가답게 과감히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의 시대에 있어서 우리들이 제시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나아가 여기 민주주의에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가. 사상의 불꽃을 튀겨낼수 있는 이 힘이 어디서 나올 것인가, 또 그 힘이 우리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할진대 폭발할 수 있는 그 불꽃은 어디서 타오를 것인가 하는 이것들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여러분의 마음으로써 해결이 안 됩니다. 이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영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불꽃을 일으킬 수 있는 혁명을 일으키는 사람이라면 그는 과거에 하늘 뜻을 위해 수고한 어떤 도인보다 또는 오늘의 주의 주장, 혹은 어떠한 세계적인 이념보다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을 중심한 경제체제의 불꽃을 던져 가지고 세계의 경제를 흡수하자는 것입니다. 또 영적인 사상과 주의 형태의 불꽃을 던져 가지고 세계를 움직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는 두 갈래의 길로 나타나 있습니다. 즉 공산주의는 버려야 할 물질을 버리지 않고 찾아 들어가서 자멸해 가고 있는 데 반면 민주주의는 고마운 것이 하나님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두 세계가 분기되는 기로에 서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은 복귀노정에 서 있기 때문에 몸은 마음에게 굴복하고 마음은 영에게 굴복하고 영은 하나님에게 굴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천륜이 세워 준 절대적인 인연의 법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어기고 존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양심에서 호소하는 것을 ‘네 이놈’하면서 굴복시킬 수 있는 용기를 가졌습니까? 지금은 마음에 굴복하지 않지만 죽는 날에는 굴복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4-273
한민족은 마음의 불꽃을 일으켜야 할 민족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물질을 박찰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는 가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까지는 주의의 시대였기 때문에 양심적으로 살면 된다고 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 생활하는 사람이 오히려 타락되어 떨어지고 있습니다. 또 ‘종교고 무엇이고 간에 그저 양심적으로 살면 되고, 천당이고 무엇이고 다 쓸데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원칙적인 노정은 그렇게 되어있지 않습니다. 주의 사상을 거쳐서 마음이 마음으로서의 권세를 갖고 몸을 칠 때에, 그 때 마음의 권세는 어디에 나타날 것인가. 마음의 주관, 권한이 쓰러지는 날에는 어떠한 세상적인 주의 가지고 마음의 권세를 다시금 나타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자들은 대부분 고집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오직 영에만 굴복하겠다는 이념적인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가 뭐라 해도 말을 안 듣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을 붙들고 내 마음이 그런 사람을 주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느냐 하면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못 가진 마음을 혁명시킬 수 있는 불꽃은 어디서 나타날 것인가. 여러분은 시야를 높이어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어 종교와 교권을 넘어 항의할 수 있는 배포가 있습니까? 귀로 들어오는 천만번의 설교보다도 마음을 울려주는 한마디의 말에 머리 숙일 줄 아는 사람이 참다운 종교인입니다. 오늘날 구원이 천당에 있는 줄로 알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비쳐줄 수 있어야 참된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주의가 정착지를 못 찾고 있듯이 우리의 마음도 정착지를 못찾고 떠돌고 있는 데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만일 이런 마음을 갖고 편안한 잠을 자는 사람은 말단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은 여러분 자신들의 생명과 선조들의 생명을 구해야 할 각성시대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내 한 자체는 이렇게 자유롭게 움직이고 살 자체가 아닙니다. 우주적인 인연권내에서 나의 실존가치를 세우기를 이 모든 존재세계는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실체적으로 느껴야 합니다. 마음으로 느끼고 머리로 느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정적으로 느낄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오늘날 인간들을 바라보고 ‘너무 불쌍합니다. 아버지여! 그러나 아버지께서 양심을 가진 인간 앞에 물질을 줘야 할 책임과 참다운 마음을 가진 자의 몸을 주관하여야 할 뜻을 아옵고, 참다운 영 자체가 아버지의 주관을 받아야 할 것을 저희가 아옵니다’라고 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태산같은 황금과 보물을 갖다 주더라도, 그것이 마음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할진대는 그것을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와 같이 크나큰 물질적인 고통을 훌쩍 넘어설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 몸의 가치는 우주보다도 더 크니 이 우주보다도 더 큰 몸뚱이를 내 마음이 굴복시킬 때 내 마음은 우주적인 가치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적인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부터 일어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불교를 바라보면, 불교도 역시 마음을 찾는 데 주력하는 종교입니다.

“마음 하나 밝히면 만법에 통하느니라(明一心通萬法), 이것이 불교 교리의 총결론인 것입니다.

오늘날 연결되어 들어오는 물질은 역사적인 죄악의 담을 쌓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 물질 앞에 머리 숙여서는 안되겠습니다. 마음이 원치 않을 때는 무자비하게 자를 수 있는 그런 무리를 하늘은 요구하고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이 불쌍한 가운데 있지만 이런 원칙에서 헤아려보게 될 때에 한가지 소망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대체로 물질에 궁한 백성입니다. 여기에 살길이 있다 할진대는 이제는 마음을 합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붙안고 마음의 굶주림을 호소하며 허덕이는 무리가 나오기를 하늘은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굶주리고 허덕인 이 마음과 합하여 영적인 불꽃이 일어나야 될 때가 왔기 때문에, 이 나라 이 민족은 경제적으로 또 마음적으로 궁핍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염려하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찾아 영적인 불꽃을 일으킬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거기에 귀결될 것입니다. 과거 혼란시대에 있어서 피가 튀고 살이 찢어지는 골고다의 죽음의 고개를 웃음으로 넘을 수 있었던 초대 기독교 신자들이 새로운 불꽃을 던져 가지고 세계적인 혁명을 일으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도 그러한 영적인 최후의 불꽃을 던져 새로운 역사를 일으켜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지금까지 믿고 있던 주의와 신앙의 내용까지 전부 밀어내고 마음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 즉 새로운 불꽃을 일으켜야 할 사명이 최후에 남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울부짖는 최후의 소리가 있다 할진대, 그것은 ‘이 메마른 마음과 몸의 동산에 하늘이 던질 수 있는 영원한 불꽃을 주시옵소서’라는 소리일 것입니다. 그 불꽃이 이 민족을 구하는 날에는 세계 전체가 그 불꽃을 일으킨 사람에게 머리 숙일 날이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인연권이 나타나면 지금까지 역사시대에서 보지 못하던 모순된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때에는 미지의 수수께끼와 같은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해명은 내 마음으로는 안 됩니다. 어느 누가 내 생명을 끌어간다 해도 아니라 할 수 있는 어떠한 새로운 충격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평면적인 작용이 아니라 입체적인 작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275
복귀의 법도
그러면 하나님은 이런 역사과정을 내적으로 어떻게 거쳐왔는 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오기 전까지는 먼저 물질을 통하여 대속하는 시대를 거쳐 나왔습니다. 몸뚱이를 잃어버린 인간이 아버지 앞에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물질을 아버지 앞에 내놓는 시대를 거쳐야 합니다. 즉, 제물시대를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물시대의 열매로서 예수가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를 중심삼고 영적인 불꽃을 이루어 놓았기 때문에, 그 후 예수를 중심삼은 신령적인 주의 형태로써 역사가 이루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금일에는 수많은 형태로 나타났다가 다시 두 갈래로 규합되고 있고 나아가 이제 세계는 기독교를 중심삼고 통합운동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하던 천정을 느끼게 하고 양심과 몸이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을 제시해야 할 섭리가 오늘날 기독교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작은 규모의 흥망이 거듭되다가 나중에는 점점 크게 벌어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크게 올라간 하나와 크게 내려간 하나, 즉 이 양극의 흐름을 합류시키기 위하여 역사적인 전환점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후적인 기점과 미래적인 기점을 중앙에 귀일시켜야할 때가 ‘이념복귀 완성시대요, 역사복귀 완성시대요, 복귀섭리 종결시대’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개인에 있어서 외적인 세계관과 내적인 섭리관을 자기에게 결부시켜야 할 때입니다. 인간은 원칙적인 인연의 세계에서 탈선한 존재이기 때문에 기필코 한번 청산해야 합니다.

인간은 영이 있고, 마음이 있고, 몸이 있습니다. 또한 주위에는 생활환경이 있고 만물이 있으며 땅이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땅이 생겼고 그 다음 만물이 생겼고 그 만물을 우리 인간이 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몸이 자라고 마음이 자라고 영을 성장시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적인 법도입니다. 어떤 혁명을 일으킨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법도를 탈선하여 산 사람은 아직까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탈선하지 않은 직선상의 인연적인 조건을 세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세계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욕망이 있습니까? 모두 그런 욕망이 있을 것입니다. 이 땅을 내 땅 만들려고 하는 것, 온 만물을 내 만물 만들려고 하는 것, 그것은 욕심이 아닙니다. 원칙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면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아버지 집이 부자라면 그것들이 자동적으로 내 것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또 존재계 전체를 분석해 보면, 물질 배후에는 사람, 사람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런 기준에 들어가야 세계적인 이념과 세계적인 물질을 찾을 수 있는 데, 먼저 세계적인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도 세계적인 사람을 찾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인연을 찾은 연후 천주적인 인연을 맺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한단계씩 높아지는 것이 하늘의 섭리입니다. 따라서 이런 복귀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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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마음의 불꽃과 나
그러면 오늘날 알고 보니 주의와 섭리와 역사가 이렇게 된 이 마당에 있어서,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공산주의는 물질주의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반드시 깨집니다. 민주진영은 하늘을 찾아 올라가야 하는 데 누구를 중심삼고 올라갈 것인가? 이것이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사명분야 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제까지의 주의 사상에서 기대하던 이상의 참다운 사랑과 그 가치를 나타낼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물질을 넘어서고 영을 넘어서 하나님 앞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지금은 마음을 넘어서 가지고 영적시대로 들어가는 때이기 때문에, 오늘날 길거리에 광인이 많이 나옵니다. 양심이 예민하고 양심대로 살겠다는 사람에게 영계가 습격해 들어와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 양심 위에는 악한 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내 몸이 사탄주관권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양심이 한 단계 올라서면 그 위에는 악령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내 몸을 지배하는 악령을 무찌르고 그 대신 선령을 나타내야 할 것이 최후의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적인 사람들 중에서 정신이상자가 많이 나옵니다. 공포증 같은 것이 많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공포증이 생기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내 양심을 중심삼고 그 공포증과 싸워나갈 수 있는 열정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중심이 잡혀진 사람은 세계의 어떠한 혁명도 그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하늘 땅을 움직여낼 수 있는 하늘적 혁명이 아니고는 그를 움직여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이 가진 결심은 영원한 결심인 것입니다. 어떠한 원자폭탄이나 또는 여하한 것이라도 돌고 있는 그 궤도와 법도를 변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치 않는 양심을 중심삼고 하나의 원칙을 세워 가지고 천리원칙의 이념과도 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가치를 내 실체의 마음과 몸의 이념권내에 있게 해서 하늘과 일직선상의 관계를 맺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 모든 것을 생활적인 무대에 백퍼센트 실천할 수 있는 가치를 만물세계와 인간세계 앞에 제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 할진대는 , 여러분은 바로 그것을 찾은 사람이요,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이념의 목적을 거쳐 나가야 할 사명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는 무엇인가. 세계를 대하여 부르짖는 어떠한 주의가 있어도 나와 인연이 되지 앉으면 관계가 없고 세계를 대하여 벌어지는 어떠한 심적인 혁명의 불꽃도 나와 인연이 되지 않으면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러한 관계를 맺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나의 가치를 우주적인 가치로서 알고 이 세상에 비할 수 없는 몇천만배의 가치로 알게 될 때에 이 지구의 모든 원한을 풀수 있게 됩니다. 나아가 여러분은 또한 만민을 품어 그들의 모든 심적 기준을 맞춰줄 수 있어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16 : 26)”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주시대에 들어와 있다 해도 마음의 세계에는 그 어느것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이념을 땅의 이념으로 삼고 노래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 인간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러한 심적인 인연의 섭리를 거쳐 나타날 때에 여러분 한 개체는 하나님도 어쩔 수 없고 사탄은 더욱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이 어떻다 해도 돌 아니라 무쇠라도 소화시킬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주의, 어떠한 사상도 여러분을 삼켜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러한 큰 인연적인 개인의 선의 가치를 알아야 되겠고, 또 그 큰 인연적인 가치에 귀결될 수 있는 다리를 놓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와의 다리를 놓아 가지고 과거에 남겨진 단위 중에서 소수의 부분을 통해 가지고 전체의 가치를 세워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결정적인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자신의 개인의 인연에서 나아가 대우주적인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현실에 맞혀 떨어뜨려야, 즉, 제로(0)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내가 하나님적인 하나의 존재로 서게 되고, 온 우주의 하나님도 하나의 존재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큰 하나님과 작은 하나님이 서로 천적인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그 세계가 우리들이 소망하는 인연완성세계요, 지상천국세계인 것을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