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0: 버림받은 예수

버림받은 예수
1958.06.22 (일), 한국 전본부교회

4-250
버림받은 예수
베드로전서 2:1-10

이 성경 말씀에 예수님을 돌로 비유했습니다. 또, 버림받은 돌이 집 모퉁이의 요긴한 돌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이런 사정은 가정과 교단과 이스라엘민족, 심지어 사랑하는 세 제자까지도 몰라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이스라엘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원수들에게서 빼내어 길러 나오셨고, 이 민족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은 이 하나님의 뜻을 이념적으로나 역사적인 입장에서는 바라보았으나 그 뜻을 생활면에서는 이루어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소망의 한 존재를 찾으시기 위해서 각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체휼시키기 위한 수고의 노정을 거쳐 나오셨습니다. 즉 4천년 동안의 수고를 통하여 생활권에까지 찾아 나왔으나 이것을 안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며, 마음으로는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으나 정작 나타난 메시아를 환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안나는 일생을 통하여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을 해가며 메시아를 고대하였으나 정작 나타난 메시아를 증거는 하고 모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도 역시 하늘의 뜻과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서러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섭리하신 4천년의 결실체로 오셨습니다. 그 당시의 예수님의 부모나 친척들이 예수님을 자기 민족을 구원해 줄 메시아인 줄 알았더라면 그 예수를 마굿간에서 탄생케 하지 않았을 것이며, 유대민족이 메시아로 알았더라면 목수의 아들로서 30년 사생애 기간과 3년 공생애 노정에 있어서 이 고을 저 고을로 쫓김을 당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도 슬퍼하셨으며 예수 자신도 슬퍼했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예수를 반역자로 몰았으므로 하나님의 뜻과 유대민족이 고대했던 소망과는 아무런 인연을 맺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도 인연을 맺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예수와의 간격을 메꾸지 못하게 되니 예수는 다시 이 민족의 과거 역사와 그 시대의 현실과 미래의 영원한 시간을 놓고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여, 즉 그를 이 나라의 구세주요 메시아로서 받들지 못하였으므로 피조세계의 만물이나 이 땅의 인간들은 그 어느누구도 하나님과 하등의 직접적인 관계도 맺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서 나무를 깎을 때, 민족의 죄와 허물을 깎아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일을 하셨으며, 언행심사에 있어서도 선을 중심한 천적 이념을 세우기 위한 준비의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런 사정과 심중을 안 사람이 당시에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말하고 싶어도 어느 누구에게 터놓고 말할 수 없는 사정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가정에서도 그의 뜻을 알아주지 못하고 반대하여 마침내 집을 버리고 떠나게 된 예수님은 이때 교단을 찾아들었으나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지 못한 교회로부터 또한 버림을 받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민족의 반역자로 몰리게까지 되었으나 그보다 더 큰 골고다의 길이 남아 있음을 아신 예수는 여기에서 하늘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자체가 되어야겠다고 굳게 각오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주와 인연을 맺은 사람만이 우주적인 가치와 세계적인 가치성을 부여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는 가정, 교회, 민족, 지상세계, 천상세계의 영인과 지옥에 있는 영인들까지 자신과 인연이 맺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던 연고로 가정과 교회에서 버림을 받았으나 그것에 의해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유대백성들은 예수가 민족의 반역자로 몰려 십자가에 달림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는 데, 12제자를 비롯한 남은 무리의 불꽃이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과 같이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확대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끝날의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인간에게는 지(知), 정(情), 의(意)의 3요소가 있고, 지와 의를 발판으로 하여 정적(情的)인 천정(天情)을 이루어야 할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적인 흐름이 있고 우리 한민족에 대해서 천적인 섭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 한민족은 어느 누구보다도 하늘에 대한 간절함과 충효의 마음이 강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정과 진리를 아는 데는 어떤 지도자가 필요치 않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릴 때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하신 이 사실, 이 한 마디의 말씀으로 인하여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은 싹트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죽은 후 피와 살이 통할 수 있는 수명의 부녀자들의 모임을 계기로 하여 온 우주를 움직여냈다는 이 한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이 민족이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속 깊은 핵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이 민족은 모든 것을 다 빼앗겨도 하나님의 심정만은 빼앗기지 않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민족이 하늘 땅을 위한 피뿌림의 제단이 되고 하늘과 땅의 만민 만상을 보고 울수 있다 할진대 여기에는 살길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노의 채찍을 들어 치시면서도 눈물짓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은 심판의 조건에 걸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과거에 버렸던 예수를 다시 찾아. 그 예수 앞에 친구가 되어야만 다시 오시는 예수님 앞에 신부로 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