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5 to 4-247: 참고 견디는 자가 되자

참고 견디는 자가 되자
1958.05.18 (일), 한국 전본부교회

4-235
참고 견디는 자가 되자
마태복음 24:1-14

[기 도]

지금 이때는 2천년 전 이스라엘민족이 혼란되었던 그때와 같은 때여서 메시아가 오시지 않으면 안 될 때이옵니다. 이런 때에 저희 들이 처해 있사옵고, 참이 어느 것인지, 거짓이 어느 것인지 분별하기 어려운 때에 저희들이 처하여 있는 줄 아옵니다. 지금까지는 과거의 역사과정에서 수고한 많은 스승이 있었고 또한 많은 지도자들을 모시고 있었사오나, 오늘날 저희들은 의지해야 할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있사옵니다.

오늘날의 인간들이 혼란된 생활환경에 처해 있는 것을 아버지께서는 아실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저희의 생활을 수습하고, 저희의 마음을 수습하고, 저희의 이념을 수습하여 천성 앞에 의지하고 살 수 있는 행복된 시간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한날을 찾는 사람은 많사온데 아직까지 ‘찾았다’ 하는 사람은 없사옵니다.

그 한날을 증거하는 사람은 많사온데 진정으로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적사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이 혼란된 세상에 살고 있는 저희들, 저희의 마음 몸이 펴나가야 할 이념을 저희의 생활에서 몸으로 증거할 수 있으며, 저희의 마음으로 감사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원하시는 아들딸이라고 칭찬받을 수 있으며, 복귀의 사명을 완수한 아들딸이라는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아버님께서 저희의 마음을 감찰해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은 어느누구보다도 저희의 갈길을 더 잘 알고 있사옵나이다. 저희의 마음은 본연의 참된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사오니, 아버님, 저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는 진리와 종교를 허락해 주시어서 구원섭리의 뜻을 이룰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아버님, 불쌍한 이 민족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길을 잃고 헤매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승리의 그날을 향하여 전진 하여 나가는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아버지의 뜻을 저희들이 이루어드릴 수 있게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역경에 부딪친다 할지라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야 할 때가 저희 앞에 다가왔사옵니다. 하오니, 그 역경을 넘어 아버지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 몸을 갖출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홀로라도 역경을 이겨내어 아버지의 심정을 염려하면서, 남 모르는 숨은 제단을 쌓아 놓고 아버지의 마음을 닮기 위해,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많이 나오게 인도하여 주시옵 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여기에는 어떤 교단도, 어떤 모임도, 어떤 교파도 문제가 아닌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께서 알아줄 수 있는 내적인 심정, 아버지 마음을 체휼할 수 있는 간절한 심정을 갖고 나가는 것이 진리의 요체요, 진리의 전부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수많은 교파로 갈리어 전교계가 혼란되어 있사오니, 아버님, 긍휼히 보시옵소서. 여기에서 몰림받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있사옵니까? 그들을 아버지께서 격려하여 주실 줄 믿사옵니다. 저희들이 그들의 심정을 체휼하여 아버님의 뜻을 증거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시고, 외로운 무리들이 모여 아버님의 참아들딸로 설수 있는 기쁨의 한날이 어서 속히 이 땅위에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제 모인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딸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여기에 모이게 하신 것도 당신이었사오니, 아버님, 이들을 책임져 주시옵소서. 이제 변치 않는 저희들의 마음을 거두어 주시옵고, 정성을 다하여 본연의 아버지의 심정을 통하여 느껴지는 충동을 이 시간 각자가 마음 몸에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스스로의 갈길을 찾을 수 있도록 아버지의 직접적인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저희들이 느끼고 그 예수님의 서러움을 저희들이 마음으로 동정할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어린이와 같은 심정을 갖고서, 아버지의 마음에 슬픔이 있다 할진대 그 슬픔을 저희 마음에서 느끼고, 기쁨이 있사올진대 그 기쁨을 저희 마음에서 느껴 아버지의 참아들딸의 모습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이 갖고 있는 모든 주의와 주장과 인습적인 조건들을 전부 다 아버지 앞에 내어놓고, 어린이와 같은 심정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구하는 이 시간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전하는 사람의 마음이나 받는 사람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사탄은 항상 전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의 간격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원하시는 뜻대로 저의 스스로 어린 양의 모습을 갖추어 아버지의 분부하시는 말씀에 의하여 재창조함을 받을 수 있는 이 시간되게 허락하여 주옵시고, 첫시간부터 끝시간까지 오직 아버님만이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모든 말씀 주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4-237
말 씀
오늘 여러분에게 드릴 말씀의 제목은 ‘참고 견디는 자가 되자’ 입니다.

4-237
타락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
봉독한 성경 말씀 가운데 끝날의 징조에 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끝날에는 신앙을 중심삼고 살아나가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어려운 혼란기를 극복하여 승리자가 되려면 끝까지 참고 견디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들이 알고 먼저 마음으로 느껴 은혜받는 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어느누구나 하나님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영광의 주인으로 계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셔서 만민의 전체의 행동을 파악하고 계실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6천년의 기나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하나님은 아직까지 영광의 한날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을 통치할 수 있는 권능의 행사도 아직까지 해 본 날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에게는 어느누구도 알 수 없는 깊은 염려와 깊은 고난과 깊은 고통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온 천지 만물은 우리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음받았고, 권능의 행사를 위해서 지음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드리고 권능의 상대적인 입장에 서야 할 인간이 그 자리에 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광을 얻지 못하였고 권능의 행사를 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그러한 소망의 한날을 이루기 위해 섭리하여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아는 것입니다.

아담을 지어 놓고 기뻐하시던 하나님께서 타락한 아담을 바라보게 될 때에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슬픔이 하나님의 심정에 찾아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중심삼고 창조의 이념을 세운 뜻이 크면 클수록 아담의 실수로 말미암은 슬픈 심정은 더더욱 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 말할래야 말할 수 없고 사정을 통할래야 통할 수 없어 하나님 홀로 서러운 심정에 사무친 그 내적 심정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슬픔에 더하여 고통과 역경을 겪으시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서셨던 하나님, 즉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을 겪으셔야 했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와 같이 서러운 입장에서도 인간을 대하여 구원섭리를 하시지 않으면 안 될 하나님은 인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이중의 고통의 심정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처해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타락한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신 하나님이지만 그 쫓아낸 인간을 그냥 두지 못하시고 다시 사랑의 손길을 펴신 것은 바로 하나님이 사랑의 심정을 갖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들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천륜의 창조이념을 파탄시킨 아담 해와의 가정을 중심삼고 다시 제 2의 소망을 품고 나오셨던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이 심정을 여러분들이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버린 자식을 다시 미련을 가지고 대해야 할 하나님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 그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과연 하나님이 어떤 입장에 계신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4-239
참고 견디어 나오신 뜻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붙들어 복귀섭리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가인과 아벨을 택하였고, 노아를 택하였고, 또 그밖의 수많은 가정을 택해 세우셔서 복귀섭리를 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역사를 이끌어 나오시는 하나님의 심정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심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심정을 억제하면서 오늘 이 시간 까지 참고 견디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참고 견디어 나오신 그 안타까운 심정을 느껴 하나님을 붙들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오늘날 이 땅 위에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만약 이 땅 위에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눈물짓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 그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즐거움이 있었던 반면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서러움이 온 천지만물을 덮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이때까지 참고 견뎌 나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사람, 또는 하나님의 서글픔을 같이하여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도 창조주의 체면을 잊어버리고, 창조주의 영광이나 권세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와 함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이런 사정에 사무친 하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안타까운 심정을 갖고 배반한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을 세워 다시금 섭리하시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또 고난과 역경 속에 사로잡혀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민족을 버리지 못하시고 모세를 세워 축복의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택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서러운 노정을 거치게 하면서 섭리역사를 전개해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4천년 역사가 경과한 때, 즉 지금부터 2천년 전에 새로운 역사를 전개시켜 4천년의 서러움과 분함을 풀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까지도 잡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했던 이스라엘민족을 버리시지 못하시고 섭리하셔야 하는 하나님의 서러움을 아는 사람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런 교회와 민족이 어디에 있었던가! 하나님은 그러한 개인과 교회와 민족이 나오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길이 좋은 줄 알고 찾아 들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헤치면 헤칠수록 눈물의 고개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영광 가운데 사무쳐 있는 줄 알았고 권세와 능력으로 계시는 하나님이신 줄 알았더니 슬픔의 요소를 지니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심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서러움 대신 서러워하는 하늘의 아들 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주위의 몰림을 받고 주위의 배척을 받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안타까움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이제껏 참고 견뎌 나오신 뜻을 본받아 하나님의 슬픔과 고통을 대신 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참아오셨고 교회를 위해 참아오셨고, 또한 배반한 이스라엘을 위해서 참아나오셨으며 배반한 세계를 위해서 참아오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오늘날 끝날에 남아진 성도들은 눈물을 머금고서라도 본받아야 하겠고,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런 참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늘이 4천년 동안 견뎌나오며 참아온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낼 때 이스라엘민족이 믿어주기를 바랐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민족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 땅을 대한 하나님의 소망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의 바라신 뜻을 이루어야 할 입장, 즉 천륜의 한때를 기약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의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까지 잡아 죽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는 그 아버지는 6천년 동안 슬프고 서러운 노정을 참고 견디어 나오신 아버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6천년 동안 참고 견디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또 이와 같이 6천년간 참아나오신 아버지는 그저 명목상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4-241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참고 견디어 나왔으나 당신이 주관할 수 있는 땅이 아직까지 복귀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온 땅을 탕감복귀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새로운 이념을 찾아나가야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런 입장에 놓여 있는 여러분은 무엇보다 먼저 참고 견디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아니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참다운 종교를 찾아나서야 되겠습니다. 참다운 하늘의 아들 딸을 찾아나서야 하겠습니다. 참고 견디는 신앙자를 찾아 섬겨야 되겠습니다. 참고 견딜 줄 아는 교단을 찾아 헤매야 되겠습니다. 참고 견딜 줄 아는 민족, 국가를 찾아 헤매야 할 사명이 오늘날 하늘을 향하여 나아가는 신앙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모든 종교는 참고 견딘 사람이 창설해 나왔습니다. 이제 앞으로도 역시 참고 견딘 종교가 세계를 인도할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더듬어 보더라도 역시 참고 견디는 사람이 승리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물론 땅에서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이 땅은 하나님을 염려하고 절개를 세워줄 수 있는 인물을 맞기 위해 탄식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종교를 보게 될 때에,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도 역시 기독교가 더 참고 견디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4천년간 견디어 나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게 될 때에, 또 만민이 역사적으로 참고 견디어 나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골고다 산상에서 자신의 몸이 십자가에 못박히더라도 아니 참을래야 아니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양손과 양발이 못박히면서도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하늘이여, 저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라고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참고 견디어 나오신 그 심정을 만민과 사탄 앞에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참을래야 참을 수 없고 견딜래야 견딜수 없는 사탄은 그 심정 앞에 굴복해 들어가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 준 표본적인 참고 견딤의 길이었습니다. 또 이 땅의 인간은 물론 어떠한 물건이라도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참아나왔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영계에도 그 영향이 미쳤고 천사세계에도 그 영향이 미쳤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는 만물은 물론 영계에까지 사무쳐 있는 탄식과 6천년 동안 참아나온 하나님의 사정을 책임져야 할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은 그러한 외적인 근심과 우주적인 책임을 대신 마음에 품고 참고 견딜 수 있는 각오와 결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각오와 결심을 갖지 못한다면 오늘날 여러분은 하늘의 노정에 동반해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먼저 하늘의 복과 하늘의 영광을 바라기 전에 하늘의 피맺힌 심정, 서러운 심정을 풀어드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참으심은 온 우주를 품고도 남음이 있는 데, 오늘날 우리들은 죄악된 환경에서 죄악된 자신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는 우주를 대하여 참고 견디어 나오신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6천년 역사를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오늘날까지 역사를 지배해 나오셨던 하나님의 심정과 뜻을 알아야 되겠고, 하나님을 모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6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시면서 참고 견디어 나오신 그 심정을 지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끝날에 처한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어 들이고 그분을 만민에게 증거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6천년 동안 참아 나오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닮아 하나님을 모시고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아들딸은 누가 될 것인가? 바로 이러한 아들 딸이 나타나기를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배반하고 천사장인 사탄의 유혹에 빠져 타락한 인간을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금 구원하시기 위해 6천년 동안 참아 나오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오늘날 여러분들! 이 민족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 진정으로 하늘의 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민족의 고통을 대신 짊어질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고통과 역경에서도 참고 견딜 수 있는 각오와 결의를 지녀야겠다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사람이 되지 아니하고서는 민족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여러분이 세계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할진대는 먼저 세계의 슬픔과, 세계의 어려움을 그 몸에 짊어지고 참고 견딜 수 있는 각오와 결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각오와 결심이 없다면 세계의 어느 한 부분에도 하늘의 이념을 남길 수 없을 것입니다.

4-243
하나님은 더 참고 견디는 무리를 중심삼고 섭리하신다
하나님은 사탄세계와 지옥세계까지 품을 수 있고 또 거기에서도 참고 견딜 수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지옥에 있는 사탄들까지도 그 앞에는 머리를 숙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최후의 승리자, 최후의 아버지의 아들 딸이 되고자 원한다 할진대는 , 여러분은 하나님의 참으심을 여러분의 참음으로, 하나님의 견디심을 여러분의 견딤으로 여러분의 마음 몸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도 참음의 도리와 견딤의 도리를 가르쳤기 때문에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대백성들이 땅 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민족은 하나님의 뜻을 배반한 민족인데 어찌하여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버리시지 못합니까? 물론 유대백성들이 곁길로 갔지만 하나님의 택한 선민으로서 하나님을 위하여 변치 않는 다는 마음을 갖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반대되는 입장에 처해 있으나 어느 한때 하나님을 찾아들어가게 될 때에는 어느 민족보다도 하나님의 참으시는 일, 견디시는 일을 맡을 수 있는 민족이기 때문에 섭리의 길을 배반하였지만 버리시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서 어떤 역경이 부딪쳐 올지라도 하늘을 위하여 섭리역사를 붙들고 나서는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가령 자기들이 가진 결심과 각오가 하늘을 위하는 마음에 근거되어 있는 한, 한때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사탄의 심부름꾼 노릇을 했다 할지라도, 끝까지 참을 수 있는 절개를 갖고 나간다면 사탄은 결국 굴복하고 마는 것입니다.

사탄은 참을래야 참을 수 없고 견딜래야 견딜 수 없습니다. 사탄이 참을 수 있고 견딜 수 있다면 하나님을 배반하여 6천년 역사를 거슬러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민족이 어떤 역경에 부딪쳐도 자기의 민족이 하늘의 선민이라는 것을 주장한다면, 그 민족은 세계에서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유대백성이 세계의 경제권을 쥐고 있고, 그외 여러 분야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일리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과정도 역시 그렇습니다. 과거 어느 시대나 역경에 부딪치어 혼란과 혼돈 속에 처하였을 때, 참고 견디는 마음을 영원한 이념에 결부시켜 나온 사람들이 새로운 역사를 전개해 나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민족도 그렇고 역사도 그렇고 종교도 그랬습니다.

그러면 끝날에는 이것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끝날에는 민족 가운데서 중심민족이, 종교 가운데서 중심종교가, 역사 가운데서 중심역사가 나온 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 22 : 13)”고 했습니다. 그러나 끝날에는 종교 중에서도 더 참고 견딘 종교, 기독교 가운데서도 더 참고 견디는 교파가 승리할 것입니다. 또 민족 중에서도 더 참고 견디는 민족이 승리할 것입니다. 하늘은 이와 같이 더 참고 견디는 무리를 찾아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이스라엘민족을 택해 열과 정성을 다해 이끌어오신 섭리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 위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는 기독교인들이 역사를 거쳐오면서 믿고 모신 것과 같은 훌륭한 입장, 존경받는 입장에 서시지 못했었습니다. 배반자요, 이단자요, 민족의 반역자란 명패를 받고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4-245
유대민족의 실수와 한민족의 사명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새로운 섭리의 이념을 세우려 할 때 참고 견뎌야 하는 그러한 환경에 예수를 내세우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가. 그것은 인류역사가 타락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타락역사를 종결짓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과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는 예수와 그때 당시의 예수와는 말할 수 없는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그때 당시 유대교단이 오늘날 기독교 신도들이 믿는 만큼 예수를 믿었다면 예수는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죽여 놓고 찾으며 후회하는 민족이 타락한 민족입니다. 당시 천륜의 한때를 기다리며 참고 있는 예수를 반대한 이스라엘민족은 지옥에 들어갔습니다. 유대교인들은 자신들이 진리형을 대신하고 있다고 장담하고 나섰지만 역사과정을 거치고 보니 비진리형처럼 보였던 예수가 진리를 대신하였고, 오히려 유대교가 비진리형의 입장에 처하였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의 움직임은 역사과정에서 모순된 것처럼 흘러 나왔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인들은 예수를 중심삼고 이념적인 사실은 알았으나, 실증적인 사실과는 거리가 먼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 국가의 운명에 있어서 어떠한 비운이 찾아 온다 할지 라도 그것에 대해 서러워하지 않고 천륜의 섭리를 알아 그 가운데에서 단결하여 참고 견디는 민족이 된다면 그 민족은 망하지 않고 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간 이스라엘민족을 통해 세웠던 유대교가 하늘의 내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제물이 되어야 했는 데, 오히려 유대교단이 부패하고 형식주의적인 관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것을 통탄하고 슬퍼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끝날이 온다고 예고하셨습니다. 온 만민이 대심판의 한날을 피치 못하리라고 예고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분석해 볼때, 무엇을 근거로 하여 그러한 역사적인 섭리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는 가. 하나님께서 참고 견디어 나아가는 입장에서는 사탄과 상반적인 입장에 처하기 때문에 사탄세계가 하늘편으로 전환될 때에는 반드시 참고 견디는 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신의 자식은 망하는 법이 없고 열녀·효자·효녀의 아들딸은 무너지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민족은 역사적으로 남아져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민족은 4천년이나 되는 기나긴 역사를 갖고 있지만 이 민족에는 고유한 민족성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민족에 대한 섭리를 생각해 볼 때, 이 민족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민족에게도 한때가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민족은 같은 민족 앞에 또는 세계 앞에 고난받는 입장에 서 있는 데, 이것은 오히려 이 민족에게 행복의 터전이 될는 지 모릅니다. 이러한 입장에 이 민족은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은 마음을 크게 가져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 땅 위에 와서 희생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지금도 역시 남의 나라의 원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그 사람들 머리 위에 손을 들어 축복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이 민족을 대한 하나님의 내적인 모든 사정이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는 다고 낙망하지 말고, 앞으로든 뒤로든 어떤 방향을 통해서든지 축복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된다고 하면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이 민족을 통하여 새로운 섭리역사가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민족도 그렇거니와 기독교 사회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민족은 세계 앞에 혹은 우주 앞에 몰림받을 수 있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실제 앞으로 이 민족은 24억 인류 앞에 몰림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실 때 오른편 강도는 하늘을 위하려 했지만, 왼편 강도는 하늘을 불신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세계는 양대세계로 갈라져 있습니다. 즉, 오른편 강도와 같은 입장으로 형성된 우익세계와 왼편 강도와 같은 입장으로 형성된 좌익세계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래서 왼편 강도형인 좌익세계는 하나님을 모른다 하는 세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세계에서 증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참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여 증거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는 하늘을 찾아가는 종교적 형태를 갖춘 국가가 나와가지고 참사랑을 증거해야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 자신의 이념이 안 나왔지만 이제는 예수님의 이념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어떠한 새로운 무엇이 반드시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 전인류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 것인가? 예수가 주장하던 진리가 아니라 주장하지 못하던, 주장하던 그 진리의 배후의 심정을 넘어설 수 있는 무엇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날에는 반드시 그것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세계적인 이념시대입니다. 그러한 때가 기필코 와야 될 것입니다. 성경에 고착되어 그것만을 사수하는 인류, 또는 자기들의 고유한 사상만을 주장하는 민족은 맞는 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아버지여! 저희들로 하여금 세계민족 앞에 몰리는 무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님을 붙들고 죽는 무리가 될지언정 아버님을 버리는 무리가 되지 말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247
끝까지 참고 견디는 하늘의 정병이 되자
이제 우리 교회 식구들은 몰리는 무리가 되었다고 남을 욕하지 맙시다. 남의 결점을 들어 비방하고 자기의 이익을 취하려고 한 민족은 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과 몸에 진리를 갖지 못했다고 탄식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다고 탄식하지 말고, 권세와 세력이 없다고 탄식하지 말고, ‘아버지, 나의 모든 것을 빼앗길지라도 예수의 길을 사수할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저희가 최후의 승리의 방편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부모도 잃어버렸습니다. 친척도 잃어버렸습니다. 자기의 교파도, 자기가 주관해야 할 민족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더 큰 하늘의 심정을 부둥켜 안고 하나님의 참으심을 본받아 죽음의 자리에서도 견디셨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순교자의 영들이 저나라에 갔지만 자기만이 구원받기 위해 죽은 사람은 좋은 곳에 못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같은 죄인은 천만번 죽어 마땅하다고 한 사람은 천당의 높은 자리에 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세계가 복받게 될 때 세계만을 위하여 일한 사람은 세계를 넘어 천주세계에 있어서는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마음을 갖고 새로운 출발을 전개하여 조그만 이 삼천리 강산을 중심하여 세계를 뒤흔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공론이 아니고 망상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탄에 대한 분한 마음, 불신의 민족에 대한 분한 마음을 품을 수도 있었으나 하나님이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분한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사정에 처할때, 즉 분한 마음이 일 때, 그것을 넘어 오히려 기도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쓰러졌던 선조들이 일으키려던 교단을 다시 일으키는 식구들이 되어 이 민족을 움직이고, 나아가 세계적인 기독교를 혁신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명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특히 젊은 남녀들, 여러분은 죽을 때 어디서 죽을 것이며, 어느 분야에서 하늘 앞에 조건을 세워 놓고 죽을 것인가. 또 여러분은 지금까지 누구를 위하여 살았는 가. 그 이념에 있어서, 그 양심에 있어서, 그 생활에 있어서 누구를 의지하고 살았는 가. 만약 여러분이 지금까지 자신만을 위하여 살았다면, 스스로 반성하고 채찍질해야 되겠습니다.

영원한 이념을 중심삼고 움직일 수 있는 무리는 그 이념적인 주체가 없어지지 않는 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야곱도 하나님의 뜻 하나를 붙들고 21년간 라반의 천대와 멸시를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뜻 하나를 품고, 아버지의 축복의 뜻을 잊지 않고 21년을 하루같이 생활하였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그러했습니다. 모세 역시 택한 백성을 염려하면서 바로 궁중에서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참고 견디었고, 또 예수님 역시 그러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해 있는 오늘날 우리들이 사탄세계에 품겨 있었던 인류, 하나님의 서러움의 조건을 지니고 있는 불쌍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싸움을 전개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싸움에서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희생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무덤은 하나님이 세워줄 것이며, 그의 죽은 뒤의 발자취는 하나님이 드러내 줄 것입니다. 이제 막다른 길에 봉착한 여러분은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 17 :33)”는 성경말씀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탄의 조건을 걸어 놓고 예수를 배반했던 무리는 모두 망했습니다. 우리 민족도 왜정하에 있었을 때, 자기의 불리한 입장을 피하기 위해 신사참배하며 교단을 팔아먹던 사람들은 다 망했습니다. 눈물이 없는 교단과 민족과 세계는 전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민족에게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 어느 민족보다 빨리 옮겨지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숨은 섭리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이 예수의 사정을 알고 하나님의 입장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하나님의 이념의 시대가 오게 될 때, 이 땅 위에서 제2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인계받는 하늘이 허락한 생명의 아들 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는 민족에 대한 책임이 있고 수많은 교단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밥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잠을 잘 때, 이 민족을 위하여 또는 하늘 땅을 대하여 무한한 근심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만일 이 세계를 대하여, 하늘 땅을 대하여 염려하는 아들 딸이 있다 할진대, 그런 사람은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섭리적인 역사과정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우리는 흐르는 눈물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거기에서 머물지 말고 그것을 거울삼아 오늘의 참아야 할 환경, 견디어야 할 환경에서 패배자가 되지 말고,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하늘의 아들 딸로 세움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