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1 to 4-227: 그 어딘가를 찾아가야 할 우리

그 어딘가를 찾아가야 할 우리
1958.05.04 (일), 한국 전본부교회

4-211
그 어딘가를 찾아가야 할 우리
베드로전서 1:18-25

[기 도]

아버지, 저희들이 생명을 가졌다고 할진대 그 생명의 원동력이 나 하나에서 제한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말씀의 능력을 가졌다 할진대 그 말씀이 저희 한 개인에 머물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아가 그 말씀과 생명의 힘이 민족을 넘고 세계를 휩쓸어 하늘땅을 움직여낼 수 있는 힘이 되게 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은 편안한 가운데에서 예수를 맞으려 하였고, 편안한 가운데에 있는 예수를 찾으려 했지만 십자가에서 피흘리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예수를 바라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음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아버님을 찾아 나선 저희들, 아버님은 그저 저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영광의 아버님으로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고비도 넘기고 계시는 아버님인 줄 저희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영광의 주를 고대하는 사람은 많사오나 고난의 주를 따라 나가겠다는 참뜻을 지닌 사람은 없사오니, 아버지, 불쌍한 인간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혹시 오늘날 저희들이 영광의 주를 만났을 때가 있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생각하고, 그 고통을 당하신 주님의 몸을 저희들이 맡을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

그리하여 골고다의 길에서 민족 앞에 배척받고 쫓김받아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던 예수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부활의 주를 만나 기뻐하길 바랐는 데 그 부활의 주와는 상관이 없는 입장에 섰던 어리석은 사도들과 같은 모습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부활의 주를 맞아 하늘을 위로할 수 있는 아들 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 그러한 사명을 다하고도 남음이 있는 아들 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오늘 여기에 모인 보잘것없는 무리들에게 아버지께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제물의 고개를 넘어야 할 저희들이지만 아버지께서 저희를 찾아 오시기 위해 먼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고를 해 오셨음을 알게될 때, 저희들은 이 길을 아니갈래야 아니갈 수 없음을 느끼게 되옵니다.

남아진 역사적인 모든 빚을 탕감해야 할 전체적인 사명이 오늘날 저희에게 있음을 아버지께서 아시오니, 저희에게 부족함이 있다 할진대 그것을 제거하고 부과된 바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을 위하여, 혹은 세계를 위하여 혹은 하늘땅을 위하여 먼저 이 민족을 아버지 앞에 세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또 그리하고도 남을 수 있는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6천년의 역사과정에서 남겨진 죄악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있는 저희들, 금후에는 아담 해와의 입장을 거쳐 새로운 선의 선조들로서 넘어가야 할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현실의 모든 것을 밟고 올라서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는 하늘의 역군으로 세워 주시옵길, 사랑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을 위로하신 아버지를 찾았사옵고, 위로받기 위하여 찾았사오나, 이제는 위로하여 주시는 그 아버지를 대신한 주님을 오히려 모실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애썼던 저희의 모든 힘과 능력이 저희의 마음에 그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아버지, 인도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형제들, 모두 아버지 품안에 안겨 아버지의 애달픈 심정을 체휼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모든 것을 체휼한 사람의 심정을 지니고 그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사랑하는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4-213
말 씀
오늘 여러분들과 잠깐 생각해 보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그 어딘가를 찾아가야 할 우리’입니다.

4-213
하나님의 창조이념과 현실
오늘날 여러분들은 개인을 근거로 하여 사회 또는 세계와 인연을 맺어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 한 자체를 생각해 보게 될 때, 마음이 있고 몸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아가 마음이 있고 몸이 있는 동시에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이것만으로써 우리들이 가야 할 노정과 우리들이 찾아야 할 환경이 되어 있느냐 하면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더 높은 이념을 지향하여 찾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야가 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을 중심삼고 볼 때, 마음과 상충되어 있으면서 몸 역시 어떠한 이념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체험하는 바입니다. 또 그 다음에 내 한 자체를 벗어나서 살펴보게 될 때, 이 땅도 역시 그 어떤 크나큰 이념을 향하여 움직여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나아가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사람이 있다 할진대 하늘과 땅과 사람은 셋인 것 같지만 하나의 이념권내에서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우주만상을 창조하실 하나님이 분명히 계실진대, 그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하늘은 나와 상관이 없는 입장에 계시고 자신도 나와의 일체적인 이념을 대하여 하나의 상관적인 입장에 놓여 있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는 이 땅도 역시 하늘의 전체의 이념을 성취시킬 수 있는 땅으로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오늘날 실제 사회상을 보든지 또는 세계사조를 볼때 잘 알 수 있는 바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원래는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하나의 귀일된 노정 위에서 통일적인 행동과 방향을 취해 가지고 움직여야 할 창조주의 이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뜻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오늘날 인간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뭇사람들은 생각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하루 하루를 사는 데 있어서나 스스로가 찾는 데 있어서 마음과 몸은 각각 그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고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또 오늘날 내 생명을 중심삼고 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 이 세계도 역시 그 무엇을 찾아 허덕이고 있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자신의 생활권내에서 잘 체험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보이는 이 땅위의 인간만의 것으로써,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느냐?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있고 만물을 창조하신 주인공이 있는 한, 그 주인공은 인간을 대해서든지 혹은 피조물을 대해서든지 자신이 어떠한 크나큰 하나의 이념을 두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이미 아는 바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 한 자체를 보게 될 때, 여러분 앞에는 어떠한 조건들이 남아 있느냐 하면, 하나님이 찾아나가야 할 이념의 세계, 즉 여러분의 마음과 몸을 중심삼은 이념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를 향하여 나가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인정치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내 자체를 바라볼 때 나는 하늘을 대하고 있고 땅을 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은 천륜의 이념에 의해 이 땅을 대한 전체적인 섭리에 비추어, 자신의 마음이 떳떳이 하늘을 대할 수 있으며 통일적인 하나의 이념을 대할 수 있는 가 하는 것을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신이라고 여러분은 자신 있는 답변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이 바라는 전체적인 이념의 통일세계가 있어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섭리해 오셨다 할진대 이 땅 위에 통일적인 이념을 성취시키는 한 때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그렇다 할진대, 하늘의 이념과 땅의 이념이 하나될 수 있는 그 목표에 대하여 여러분 자신은 어떠한 자리에 있는 가, 여러분 자신은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는 가, 여러분이 오늘 대하고 있는 생명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 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자기도 모르게 하늘을 의지하려 하고 몸은 자기도 모르게 땅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나 같으나 두 갈래 길에서 허덕이고 있는 데, 이것은 인간의 타락에 기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마음을 통하여 천륜이 바라는 이념과 하나되어야 하겠고, 몸을 통하여는 세계가 지향하는 하나의 통일의 이념과 하나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과정에 그러한 사실을 소개하여 줄 어떠한 이념이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세계상을 바라보게 될 때, 그 무엇인지 모르게 통일적인 형태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고, 또 이런 추세에 따라 내 마음 역시 무엇인지 모르게 세계적인 뜻을 품고 하나의 개인으로서, 하나의 형제로서, 하나의 식구로서 동거하려는 크나큰 이념이 내 마음을 통하여서 수시로 감응되고 있는 사실을 우리들은 잘 체험하고 있습니다.

4-215
인간이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
그러면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이룰 수 없는 망상에서 오는 어떤 관념적인 인식에 지나지 않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심적 경향이라는 것은 반드시 내 한 자체로서는 그것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엇인지 나도 모르는 가운데 천륜의 크나큰 섭리의 뜻이 내 마음과 인연을 맺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이땅 위의 사람들 앞에 미쳐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든지 천륜에 이끌려 아니 나갈래야 아니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의 양심은 서로 차이가 있고 그 느끼는 감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또 몸이 바라는 세계가 있고 마음이 바라는 세계가 따로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하여야 하늘 앞에 접근시킬 수 있겠는 가? 또 무엇을 위주하고 주종의 관계를 맺어야 하겠는 가? 이것이 오늘날 인간으로서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인간 개개인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세계에 어떠한 이념이 이루어지고, 아무리 이 땅 위에 천륜의 뜻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사람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간격의 싸움은 몸이 마음을 위주하여 즉, 몸이 마음을 따라가는 입장에서 순응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습니다. 또 마음과 몸이 하나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된 그 자체가 마음만 위주할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이 하나된 연후에는 몸도 위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럴 수 있는 가치적인 마음과 몸을 자신의 생활권내에 세워 놓아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오늘날 이 땅 위에 섭리의 뜻과 이념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그 섭리의 뜻과 이념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됩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심판의 때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이 심판의 시대를 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이 이념적인 권내에 있어서 하나님이 있고 땅 위에 어떠한 최고의 이념이 있다면 그 하나님과 이땅 위의 최고의 이념과 통일된 하나의 형태를 내 몸 마음이 체험하여야 되겠고, 내 한 자체가 하늘과 땅을 대하여 부끄럽지 않게 설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을 지녀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심판의 날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수많은 인류의 양심을 움직여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향하는 방향과 양심이 지향하는 방향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백 정도로 움직인다면 양심이 그 백 정도의 상대적인 입장에 서느냐 하면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와 습관, 역사관, 혹은 문화적인 모든 조건들로 말미암아 인간의 양심이 좌우되고 있고 영향받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도에 따라 많은 차이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양심도 천륜이 지향하는 그 이념적인 세계와 반드시 일치되는 것은 아닙니다. 양심이 지향하는 그 이념적인 세계가 천륜과 같은 방향을 취한 듯하나 여기에는 현격한 차이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도의 길을 찾아 들어서게 될 때에는 자신의 양심까지도 쳐서 하나님의 뜻 앞에 굴복시키는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될 입장에 처하여 있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4-217
하나님의 이념과 인간의 양심이 일치되지 못하는 이유
그러면 하나님도 이념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고, 오늘날 우리 인간의 양심도 그 이념을 찾아 나가고자 원하지만 이 두 갈래가 일치해서 나아가지 못하는 데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라시는 대로 내 양심이 가기를 원하면서도 가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넘어야 할 두려움의 한 고개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이 두려움의 고개를 뚫고 넘어서지 못한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영원한 이념의 천국과는 인연을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의 마음과의 관계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기 위하여서는 내 마음과 몸이 그런 관계를 맺어야 하겠고, 나아가 내 마음과 몸이 뜻 가운데 서야 하겠으며, 내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앞으로 이 뜻의 이념과 그러한 관계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늘과 여러분의 양심이 하나되고 양심과 몸이 하나되고 몸과 환경이 하나되어 모든 것을 하나로 규합시켜야 되겠고, 나아가 그 중심을 대표하여 서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세계에 있어서든지, 양심세계에 있어서든지, 몸의 입장에 있어서든지, 어느 면에 서더라도 여러분이 자신 있게 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여러분을 찾아야 할 운명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들은 어딘지는 모르지만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고,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것을 찾아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은 천륜을 향하여 나아가려 하고 몸은 나를 중심하고 땅을 향하여 나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은 기나긴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인간들을 희생으로 몰아넣어 땅을 지향하는 이 몸의 지향성을 바꾸어 천륜을 지향시켜 온 세계인류의 몸뚱이를 하나의 통일의 세계로 이끌어 나오고 있습니다. 나아가 양심도 여러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것을 때려 몰아가지고 하나의 방향, 하나의 이념세계를 향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늘날 이 땅 위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과 그 방향을 올바로 세워주기 위한 싸움이 벌어지는 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양심을 중심한 하나의 이념을 찾기 위한 사탄과 하나님과의 싸움이요, 보이는 실체세계에서는 가인편과 아벨편의 분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내외적인 싸움을 거치며 역사는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 정, 의를 가지고 계시는 인격적인 분이시고 또 모든 느낌을 갖고 계신 분임에 틀림없을진대. 하나님은 반드시 통일된 어떠한 하나의 창조이념을 갖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념은 하늘을 위한 것도 되고, 나아가 오늘날 이 땅 위의 모든 인류와 만물을 위한 것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필연적인 사실이 되어지지 않는 다면 하나님의 창조의 이념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런 전체적인 이념을 대하여 하나님 자신이 즐거워할 수 있는 동시에 온 피조만물도 다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도록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이 된 연고로 오늘날 인류에게는 그러한 이념의 세계가 아직까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고, 몸이 지향하는 그런 근본적인 이념의 세계도 아직까지 자리를 못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입장에 처해 있는 오늘날 인류를 내적으로는 양심에 가까운 길로, 외적으로는 또 다른 주의를 찾아세워 세계적인 종말시대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이 지향하는 그 무엇, 즉, 마음을 통하여 몰아내고 있는 그것이, 어디인가를 향하게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나를 연하여 이 세계인류가 어떤 이념적인 세계로 아니 갈래야 아니갈 수 없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그러한 자리에 처해 있는 여러분 자신들은 지극히 작은 존재이지만 결코 작은 존재가 아닙니다. 새로운 우주사를 창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먼저는 내 마음이 그러하고, 내몸이 그러하며, 내가 살고 있는 주위환경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내적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지금까지 외로운 길을 개척해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즉 인간의 양심의 어느 한 기점을 통해서 섭리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양심의 기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양심의 기점을 잃어버린 인간을 위하여 도를 세워 가지고 그 기점을 찾게 하기 위한 뜻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선열을 통하여 자신이 고통을 느끼면서도 인간을 그 양심의 기점에 연결시키고자 노력해 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노력이 보이지 않는 무한한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의 심정은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끝날이 오면 올수록 마음의 기준을 완전히 잡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좋은 조건을 많이 구비하고 있다 할지라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게 됩니다. 방향을 바꾸어 잡아야 할 입장에 처하여 있는 오늘날이요 현실세계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도를 세워 자기를 중심한 모든 권한과 지향하는 이념을 끊으라고 하셨습니다.

4-219
하나님께서 ‘버리라’ 하신 뜻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순된 조건을 인간 앞에 제시하였더뇨? 그 원인은 먼저 하나의 기준을 찾아 세워야 할 것이 인간의 마음이었으므로 마음과 몸이 한꺼번에 자리를 잡을래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러한 방향을 취하여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을 통하여 역사를 거쳐오면서 마음을 의지한 이념의 세계가 나와야 하는 데, 그 마음을 의지한 이념은 온 세계 온 인류가 움직여야 할 이념입니다. 따라서 그 이념의 중심이 잡혀질 때까지는 버리는 역사과정을 거치는 데, 이것이 어느 과정을 지나오면 버렸던 그 역사를 다시 찾는 역사로서 바뀌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처음에 고난의 길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으로부터 유린당하며 몰림받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있는 것을 다 버리고 나오다 보니 민족을 이루었고, 이것이 오늘날 국가를 형성 하고, 나아가 세계적인 형태를 갖출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즉 오늘날은 하나님께서 어떤 하나의 중심을 통하여 그 뜻을 세울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세계에 흩어졌던 물질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모든 국가는 세계적인 이념을 통한 동맹국 시대를 거쳐 연합국 형태를 거친 다음, 이것이 3대 블럭을 거쳐서 하나의 통일적인 이념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끝날에 있어서 자기의 마음은 의지하되 세상의 모든 외적 조건은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버리라고 하셨느냐 하면, 그것을 완전히 우리의 것으로, 우리의 소유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언제나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우리 선조들이 버렸던 것을 한꺼 번에 끝날에 처한 이 땅의 인간들이 복귀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선조들이 버렸던 이 땅과 이 땅의 만물까지도 찾아 세워야 할 섭리의 뜻이 아직까지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때는 하나의 주의를 중심삼고 민주주의 국가형태를 구성하여 나오고 있으며, 나아가 이 주의가 세계적인 추세로 나타날 수 있는 때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의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규모의 물질문명과 제도가 결부되어 하나의 통일적인 형태를 갖추어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외적인 모든 조건들이 통일적인 형태를 갖추어 나가는 것과 같이 이 세계를 찾아야 할 우리 자신들도 이런 섭리의 추세에 맞추어 마음과 몸의 통일을 자기 자체에서 이루어 나갈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한 때가 기필코 오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마음과 몸에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늘을 향하여 달리기를 원하는 데 몸은 세상을 향하여 탈선적인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이념을 향하여 즐기면서 가려고 하는 데 몸은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 있어서 여러분은 영원을 표준하여 승리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야 비로소 잃어버린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 될 것이고, 잃어버렸던 여러분의 마음과 몸을 승리의 일신으로 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과 몸으로 찾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입장에서 하나의 창조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늘이 바라는 이념과, 우리의 양심과 몸이 바라는 이념과, 영계가 바라는 이념이 갈래갈래로서 방향을 취하지 않고 하나의 목표와 하나의 방향과 하나의 결과를 향하여 돌아갈 수 있는 때를 언제에나 맞이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들이 찾아야 할 최후의 목표인 것입니다.

4-221
인간의 자기 규명과 자아회복 운동
오늘날 이 목표를 향하여야 할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될때, 나라는 존재는 어디서 나왔으며, 어디서부터 출발하여 어디를 향하고 있고 어디까지 가야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기필코 해결하여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념은 어디서부터 출발하여 어디를 향하여서 어디까지 갈 것인가? 또 오늘날 내 마음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갈 것인가? 내 몸도 그렇고 이 땅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원인과 결과를 알 수 없는 입장에서 그 역사적인 문제를 무엇 가지고 원인이요 결과라고 할것인가? 원인과 결과는 하나인 것입니다. 내 몸과 마음이 귀결되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 놓을 수 있는 그 한날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내 몸과 마음을 통하여서 세계로 통할 수 있는 때가 와야 합니다. 하늘은 인간을 통하여 이 세계와 모든 천지운세가 화동하여 돌아갈 수 있는 한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그러한 뜻에 여러분 자신을 세워 놓고 보면, 여러분의 마음과 몸은 하나님의 뜻과 세계의 이념 앞에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그 이념으로부터 결과에 연할 수 있는 역사적인 모든 조건들을 해결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고, 인간은 그 뜻을 이루어야 할 책임이 있으므로 종교를 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은 자신이 생활하는 모든 형태가 진리를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야 세계의 이념과 자신의 이념이 하나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늘이 내가 있기 전부터 있었고, 땅도 내가 있기 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또 내가 있기 전의 역사적인 모든 사실을 어떻게 알 것인가? 오늘날 인간들은 이것을 모르는 것으로 돌려 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모르는 입장에서 어떻게 우리가 완전히 하늘과 땅을 대신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본질적인 이념 앞에 설 수 있겠는 가?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나의 위치를 밝히려면 우주적인 원인과 역사적인 원인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을 찾아 자아의 회복운동을 제시하는 세계적인 운동의 때가 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어떠한 주의나 이념을 중심삼고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제시하고 자아회복운동을 이끌어갈 수 있는 하나의 주의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 원인을 모르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는 , 그 원인의 결과가 이루어져도 여러분은 그것을 요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그러한 생애를 걸어나가야 할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 우리는 자신을 회복하는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자신들이 되어 있는 가? 오늘날 내 생명은 우연한 자체로서, 돌발적인 존재로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내 한 개채는 우주적인 필연성, 혹은 세계적인 필연성, 미래적인 필연성을 소개하기 위해서 생겨났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 나라의 백성도 그 나라의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전통 앞에 서야 되고, 그 시대 앞에 하나의 법도적인 조건을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세계적인 미래의 전체 이념 앞에 새로운 무엇을 남겨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살고있는 현실입니다. 그러할진대, 오늘날 우주적인 세계 이념을 찾아나가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따라서 우리들은 나를 회복하기 위한 지극히 작은 일부터 거쳐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앞에는 , 앞에서 말한 세계적인 문제가 놓여 있으니, 먼저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자기를 해결하는 동시에 이제는 결과적인 세계가 눈 앞에 와 있으니, 그것과 내 자신이 관련을 맺어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기점 즉,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마음과 통하는 이념을 찾아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하나의 목적을 지향시켜 주는 자극적인 충격으로 남게 될 때에, 인간은 과거의 역사적인 슬픔과 시대적인 서러움을 잊어버리고 환경적인 공포를 넘어서서 손을 들고 하늘 땅과 온 만상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223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이념의 근본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인간들을 인도하려고 했던 세계가 바로 도의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많은 도인들이 그 원인. 을 추궁하였으나, 아직까지 해명된 그 어떤 중심을 이 땅의 인간 앞에 제시하지 못한 채 역사는 흘러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 그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흘러온 역사, 인류의 선조들이 가진 그 역사가 바로 오늘날 여러분이 물려받은 역사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이 문제를 해결치 못하면, 지금까지의 인간의 원한의 역사가 후대까지 서러움의 역사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내 한 자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나 일 개인은 세계이념과 하나님이 원하는 이념의 세계를 가로막을 수 있는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미래를 향하는 발걸음을 내딛기 전에 과거로 되돌아 올라가 과거의 어떠한 조건들이 천륜 앞에 상충을 일으켰고, 하늘의 이념과 모순된 어떠한 역사과정을 거쳐왔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지난 역사과정의 슬픈 조건을 놓고 하늘 앞에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허덕이며 싸우고 있는 신자는 이 땅 위에 몇명이나 되는 가. 자기 자신의 과거를 망각하고 미래의 이념을 찾아 헤매는 사람은 많습니다. 저끄러진 모든 악의 근거를 찾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참된 도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정상에 올라서 그 이상의 원인적인 조건을 추구하는 역사적인 사람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미래의 세계를 소개하는 이념이 변하지 않는 이상 미래의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흘러가고 있는 세계의 종말에 대한 공포를 모면할 수 없고, 혼돈된 세계사조를 피할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미래의 새 이념에만 취하여 사는 사람들은 완전한 이상주의자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의 종말의 한 단계를 넘어서야 이상세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심판날이 무엇이냐 하면 모든 것이 스톱되는 날이에요. 그런데 지금까지 인간들은 자기가 가지고 나오던 주의와 사상과 이념을 갖고 모든 것을 통과시켜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 통과의 조건을 해결할 수 있는 제일의 방법은 무엇이냐? 인간과 하나님과 천륜이 이 땅의 피조만물과 그 원인적인 상충을 해소할 수 있는 어떤 조건이 없다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주의, 무슨 사상 하는 것들이 모두 다 자취를 감춰버리고, 미래를 운위하는 사조도 한 때 자취를 감추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 모두 자취를 감추지 않으려면 원인과 결과를 통일시킬 수 있는 조건을 찾아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 한 개체에서 그 근본 원인과 결과를 통일시킬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내 한 자체가 6천년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증거적인 실체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오늘의 현실세계를 일소해버릴 수 있어야, 즉 일체를 부정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까지 갖고자 원하는 모든 욕망까지도 전부 다 일소해버릴 수 있는 나, 모든 것을 통합해 가지고 행할 수 있는 그러한 나 자신이 되었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원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는 심판의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들을 복귀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피조물에 얽혀 있는 모든 곡절의 원인을 해결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시여! 이 땅 위에 긍휼의 뜻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시여 ! 세계 인류가 평화를 누리게 하시옵소서’라고 하여도 여러분에게 평화스러운 마음이 없으면 여러분이 아무리 기도해도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은 이제 성경을 파고들어가 아담 해와의 타락의 원인도 해명할 뿐더러 만물을 창조하던 하나님의 내적 심정까지 해명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2천년 전의 예수, 6천년 전의 하나님의 심정과 동반할 수 있는 입체적인 관계를 가지게 될 때에, 여러분 자체는 비록 오늘의 현실에 있지만 2천년 전 예수님의 심정과 6천년 전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6천년을 지나왔지만 오늘날 여러분은 그러한 심정을 지녀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과 아담 해와의 곡절의 심정을 찾아들어가 그 심정을 안 후에 하나님을 대하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그 권내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그 6천년 역사는 오늘의 나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는 내가 끌려 들어갔는 지 6천년 역사가 끌려 내려왔는 지 모를 정도의 혼연일체 된 자리입니다. 이런 경지에서 오늘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지을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체험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세계인 것입니다.

영적세계를 체험한다는 것은 왈 4차원의 세계를 통한다는 말이에요. 또한 그럴 때에 몇천년 전에 왔다 갔던 선지선열들도 오늘의 나와 인연을 맺어 대화도 할 수 있고 의논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실제 생활적인 시간권내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고 또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4-225
하나님의 심정을 밝히는 용사의 길
그러면 오늘날 세계인류는 불교나 유교 혹은 기독교 등 제종교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고 있는 각 종교 그것으로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종교를 믿게 했던 동기의 주인공, 또는 그 동기의 주인공으로 나타난 진리의 말씀만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그 말씀을 밟고 올라서 그 내적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즉, 현상 속에 숨겨져 있는 내적 심정이 무엇인가를 해부하여야 한다는 거예요. 성경 말씀을 그저 절대적 구원의 표준으로만 세워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것만으로서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것을 뚫고 넘어갈 수 있는 용사들이 어디 있는 가 하고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어떤 보수적인 사상에 지배받을 것이 아니고 어떤 도주(道主)의 지배를 받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뚫고 올라가 어떤 도주를 내세우신 하나님과 직접적인 담판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도 자체의 모순된 문제를 해결지어 놓고 하나님의 내적 심정의 기준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러한 기준을 세우고 나설 수 있는 무리는 없겠는 가 하고,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무리가 있다고 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외면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것을 전부 들춰 놓고 재감정할 때가 왔습니다. 어떤 신학서적, 불경, 어떤 경서는 물론하고 전부 나열시켜 재분석하고, 거기에 실제 체험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 즉, 예수의 내적 심정이나 하나님의 내적 심정이 어떤 것인가를 찾아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섭리가 이렇게 된 곡절의 원인을 해명할 수 있는 신앙의 용자들이 나오기를 하나님은 소망해 왔음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해결돼야만 이 원리를 중심삼고 전체적인 원리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이요, 끝날에 이것이 다시 제 2의 원리로 세워지고 제2의 이념으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한 것이 지상을 대한 하나님의 섭리의 뜻임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입증시키기 위해 이제 여러분은 아니 갈래야 아니 갈수 없는 사선을 넘어야 합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세상에 있는 아무리 가까운 친구도 아무리 가까운 부모도 다 뒤에 두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어느 누구와도 동반할 수 없는 외로운 자리에 서 있고 무한한 공포가 엄습하는 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달려야 할 과정에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무한히 달리는 이런 역사과정에 있어서 하나의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어느 한 때 이 우주의 보이지 않는 세계에로 추방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런 때가 반드시 오는 데 그런 것을 가리켜 종교에서 쓰는 용어를 빌려 말한다면 ‘지옥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께서, 그렇게 자신 있고 늠름했던 예수님께서 왜 미래와 현실을 자랑하지 못했던가. 완전한 원리적인 해결점, 역사적인 해결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과 미래를 자랑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 기독교인은 통분한 심정을 갖고 현실을 자랑할 수 있는 예수를 나타내어야 되겠고, 미래를 자랑할 수 있는 예수를 나타내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미래를 자랑할 수 있는 예수를 맞을 때가 와야 할 텐데 어찌하여 오지 않는 가. 역사적인 곡절의 조건들이 예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싸우던 목표는 역사노정을 청산키 위한 싸움이었지 이 현실만을 해결키 위한 싸움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기독교의 싸움은 미래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고, 역사적인 조건을 해결키 위한 싸움권내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현실 기독교의 입장입니다.

4-227
예수님의 미래를 자랑할 수 있는 성도
예수님께서는 30여 생애의 수고의 노정을 통해서 선지선열들의 저끄러뜨린 모든 역사적인 조건을 다시금 딴 길로서 개척하여야 할 방향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이 딴 길로 방향을 취하려는 데서 오해가 생겨났습니다. 그 딴 길을 이 땅 위에 만들어 놓지 못했으므로 영계에서 다시 그 딴 길을 찾아 현실적인 형태의 세계에로 연결시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영계에 가셔서 현실과 미래적인 이념을 찾아 오늘날 땅을 위한 곡절의 내용을 다시금 제 2차의 노정을 통해 섭리해 나온 역사가 2천년이 지났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서는 배척받았으나 영계에서는 환영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그와 같이 영계에서 환영받는 , 즉 그저 역사적인 예수로서 환영받는 그런 예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시대적이고 미래적인 예수는 언제 이 땅 위에 올 것인가? 그 분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찾는 재림주이심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미래적인 예수를 찾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역사적인 과정을 먼저 찾아가야 됩니다. 또한 역사적인 원인을 통하여 예수가 영계에서 환영받던 제2환경 시대를 통하여서 현실적인 과정까지 체휼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예수가 바라던 소망의 한날을 기하여 가지고 그때 자랑하고 싶은 현실과 자랑하고 싶은 미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날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