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9 to 4-209: 육천년 동안 남겨진 빚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

육천년 동안 남겨진 빚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
1958.04.28 (월), 한국 전본부교회

4-199
육천년 동안 남겨진 빚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
마태복음 18:15-35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이 역사적인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할 때가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날 때에 먼저 부모의 혈육을 받고 그후 땅의 혜택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마음을 중심삼고 보면, 영원하신 하늘이 나와 인연을 맺고 있고 내 생명을 보호해 주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뭇사람들이 행복한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은데 어찌하여 실제로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가. 그 원인은 그 사람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어떤 것과 인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4-199
인간이 불행하게 된 원인
그러면 인간의 불행의 원인은 무엇인가? 인간들은 지금까지 이 불행의 원인을 해명하여 완전히 기뻐하고 행복해 할 수 있는 한 때를 맞기 전에 행복이란 명사를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행복이란 명사를 사용할 수는 있었으나 실제로 행복한 생활을 해 보지 못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과정을 통하여 잘 체험해 온 바입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어찌하여 행복과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었던가. 그것은 우리가 말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부하(負荷)된 빚을 우리가 청산하지 않는 다면 개인과 교단, 국가, 세계에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 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부터 상상할 수 없는 슬픔의 역사, 투쟁의 역사가 전개되어 내려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또 자기 일생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무한한 싸움의 교차로를 거치면서 살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나아가 내 전후, 좌우, 상하를 헤아려 보게 될 때에 하늘 땅 앞에 말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선조가 하늘 땅 앞에 남겨 놓은 짐을 탕감하지 못하고 있고, 죄악의 혈통을 인계받아 살고 있는 서러움의 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늘은 우리를 이상적인 세계로 이끌기 위하여 수고하는 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손을 들어 하늘과 온 만상 앞에 빚진 자인 것을 인정하여야 되겠습니다. 또 온 만상 앞에 진 빚을 갚을 도리가 없다는 것을 자인하여야 되겠습니다. 내 한 자체를 분석하여 보게될 때.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내 가정도 나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삼라만상 앞에 불변의 모습으로서 이것들이 내 것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그날은 언제일 것인가? 이것이 온 인류가 공통적인 이념 아래 해결해야 할 역사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는 빚을 지고 있으되 3대 부모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즉, 혈육의 부모와, 은리의 몸을 구성시켜 준 땅과, 하늘로부터 받은 생명의 인연에 대한 빚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3대 부모의 인연을 벗어나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를 분석해 보면, 우리는 물질적인 면에서 땅 앞에 빚진 사람들이 며, 혈육의 부모 앞에 그리고 하늘 앞에 말할 수 없이 많은 빚을 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은 자기 일신을 중심삼고 과연 하늘 앞에나 땅 앞에, 그리고 부모 앞에 빚진 자인 것을 뼈저리게 느껴 봤습니까? 이것을 생각할 때에 여러분은 땅을 대해 머리 숙여야 할 자신인 것을 인식할 때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또 부모가 끼쳐준 빚을 생각할진대는 그 앞에도 머리 숙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심정을 중심삼고 영원한 이념을 찾게 하기 위한 하늘의 수고의 빚이 내 마음과 접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여러분에게 하늘의 수고에 대해 머리를 숙이고 황공한 마음을 가져본 때가 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길러준 부모들도 물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될 때 ‘나와 나의 후손에게 미쳐진 빚을 다 갚고 나왔습니다’라고 하면서 자신 있게 나타날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환경적인 빚을 짊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깨우치기 위해, 또는 인간이 짊어진 역사적인 모든 빚을 청산해 주기 위해서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4-201
역사적인 빚을 청산하고 하늘을 위로해드리기 위해 오신 예수
오늘날 여러분들이 짊어지고 있는 그 빚은 청산하여야 할 빚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짊어진 그 빚을 청산하고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인간은 미처 생각지도 않고 꿈도 꾸지 않지만 그러한 염려를 가지고 오랜 역사과정을 섭리하여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다 할진대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을 갖고 감사하여야 되겠는 가를 더듬어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생각지 않는 시간에도 하늘은 우리들을 위하여 염려하셨고, 내가 내 일신을 사랑하고 일신의 향락을 위하여 허덕이고 있을 때에도 하늘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한 이후, 하나님은 6천년의 기나긴 세월 속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혈통적으로 짊어진 죄악사와 사회적으로 뻗어나온 죄악사와 또 천상적으로 맺어진 죄악사를 끊게 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쉬지 않고 수고해오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과정의 수많은 선조들이 하늘을 배반하고 거역하였기 때문에, 응당히 하나님은 인간들을 응징하고 처벌하여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인간에게 배척받는 서글픔을 당해왔습니다. 또 그 인간을 어느 한때도 놓지 못했으며 그 인간을 위해 수고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은 어찌하여 인간들을 대하여, 우리 선조들을 대하여 수고하는 역사과정을 거쳤느뇨? 인간이 짊어진 그 짐과 빚을 인간으로 하여금 탕감복귀하게 하지 못한다 할진대는 6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의 수고는 허사가 되는 것이요, 인간이 찾아나온 도의 이념도 다 헛수고로 돌아가겠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을 안 댔으면 모르되 손을 댄 이상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인간들이 이 땅 위에서 져온 역사적인 빚을 탕감하고 청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시고야 말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에게 역사적인 빚을 탕감하고 청산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하여 하나님은 오늘도 내일도 수고하실 것이며, 그리고 지금까지 수천년 역사를 참아나오시면서 택한 민족을 세워 놓고 어떠한 하나의 다리를 놓아 가지고 역사적인 죄와 빚을 청산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러한 한 민족을 찾아헤매고 계십니다. 더 나아가서는 한 교회를 찾아헤매는 동시에 한 개인을 찾아헤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인 것을 여러분들은 마음으로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기쁨과 영광에 취하여 만 우주를 지배하여야 할 하나님의 입장이 이런 곡절의 입장으로 변한 것은 누구때문인가?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오늘날 인류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게 될 때에, 여러분은 그 하나님을 붙들고 위로해야 되는 데 개인차원의 위로 가지고는 하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없습니다. 역사적인 서러움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마음과 전인류적인 차원에서 체휼할 수 있는 몸 마음을 갖지 않고서는 , 하나님 속에 사무쳐 있는 역사적인 슬픔과 현실적인 슬픔을 청산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은 어차피 이런 사명을 갖춘 한 사람을 교회와 민족을 대신하여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개인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그리하여 4천년 수고하여 찾아세운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한 개인이로되 그의 배후에 역사적인 인연이 어리어 있고, 그 당시의 시대적인 인연이 그의 배후에 있으며, 미래적인 인연이 그의 배후에 어리어 있었는 데. 그 사실을 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기 마음의 행복과 자기 일신의 향락을 위하여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 한 개체의 영광을 위한 소망을 가지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다 떠나, 4천년 동안 인류가 져온 역사적인 전체의 빚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하는 걱정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서러움을 자아내고 있는 사탄과 그 사탄의 인간 대한 참소 조건을 가로막아 가지고 인간을 하늘 앞에 승리적인 하나의 모습으로 찾아세우고자 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생애를 걸어 놓고 역사적인 그 모든 빚을 청산해 주기 위하여 나섰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4-203
예수님과 유대민족의 차이점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하신 말씀은 그 당시의 말씀이로되 4천년 역사에 왔다 갔던 모든 사람들, 즉, 영계에 있는 수천만의 영인들까지도 들어야 할 말씀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전하신 말씀은 그때 당시는 물론이거니와 그 이후 영원을 걸어 놓고 천추만대 후손까지라도 들어야 할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신념을 갖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하고 있는 예수 앞에 그의 심정을 통하여 친구되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갈길을 찾아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갈길을 찾지 못하고, 하늘 품에 안겨야 할 택한 선민들이 하늘 품을 배척함으로 말미암아 말할 수 없는 서러움의 심정에 부딪쳤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눈물짓는 것은 4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서러움의 눈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4천년 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자들이 고대하던 소망의 실체였기 때문에 그가 눈물을 흘리면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선지자들도 눈물짓지 않을 수 없는 , 이런 입장에 서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땅 위에 와서 공생애노정을 거쳐 간 그 예수 앞에 우리의 선조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오늘날 그 후손인 우리들에게 그 책임을 다하여야 할 역사적인 사명이 남아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우주관은 4천년 역사를 통할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세계관과 더 나아가서 미래에까지 연결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따르고 있던 그 당시의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관을 갖고 자기를 중심삼은 세계관을 갖고 살려고 했습니다. 이 한 사실을 비교해 볼 때. 예수님과 그 당시의 사람들과는 생활에 있어서나 생애에 있어서나 생각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는 온 인류의 죄와 짊어진 빚을 탕감해 주기 위해 수고하셨지만, 그 모든 죄악의 빚을 탕감받아야 할 사람들과 밀접한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스라엘민족을 대하여 4천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의 그 고통의 심정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 비통한 자리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고충이 우리와 예수님 사이에 있어서 해결되었느냐 하면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진정 예수의 심정이자 우리들의 심정으로서 귀결될 수 있는 한 시간을 찾고 있는 것이 오늘날까지 수고해 나온 하나님의 소원이요, 예수님의 소원이요, 오늘날 우리들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자신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도 역사적인 비애가 깃들어 있음을 느껴야 합니다. 또, 여러분은 시대성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여러분 자체에는 시대적인 슬픔이 잠재하여 있고,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해원의 책임이 여러분 자체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눈물을 흘린 것도, 인간이 짊어진 빚을 탕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눈물의 길, 배반의 길까지도 죽음을 무릅쓰고 헤쳐 나가지 않으면 아니 되었습니다. 또 죽어 부활한 후에까지도 땅 위의 인간을 위하여 역사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 위에 생명을 갖고 태어난 이상, 인간의 역사적 서러움의 심정까지도 해원시켜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 무엇을 남기고 가려 하셨던가. 사탄에게 유린당하던 선한 사람들의 눈물자국을 자기 일신에 체휼하여 이 원한의 심정을 걸어 놓고 또는 하늘과 땅과 사탄 앞에 있어서 그 모든 역사적 서러움을 청산할 책임을 짊어질 각오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 딸을 남기고자 하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 딸이 나오지 않으면 하나님은 영원히 불쌍한 자리에 계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던 제자와 오늘날까지의 2천년 동안 순교의 길, 피의 골고다의 길을 걸을 사람들도 역시 불쌍한 입장에 처해질 것을 아셨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4-205
미래를 책임질 사람의 바른 생활태도
그러면 미래를 책임질 사람은 누구일 것인가? 오늘날 여러분 개체입니다. 하나님은 책임을 못 진다는 거예요. 만약에 하나님이 책임질 수 있다면 6천년이란 긴 세월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책임과 사명은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하여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간을 대표하여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영과 육을 중심삼고 4천년 역사의 빚을 전부 청산해야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이후 모든 인류는 사탄 앞에 참소받아야 할 그 어떠한 빚도 없어야 할 것이었는 데 예수님이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인류는 다시금 그 모든 빚을 그대로 유업으로 이어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돌이켜 볼 때에, 예수님은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머리를 들지 못하고 속죄의 제단을 쌓아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서는 아무리 자기 일신을 위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여도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만족을 하고자 하여도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과 이 땅 위의 만인류들은 다 같이 기뻐할 수 있는 그 한날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내 손길은 피곤해질 수 없는 손길임을 알아야 되겠고 내 손길의 배후에는 역사적으로 피 흘린 과정이 어리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내 몸은 생생한 몸 같으되 이 몸은 찢기고 찢겨진 흠점 투성이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나에게 어떠한 기쁨이 있다고 해서 그저 기뻐할 것이 아니라 그 기쁨은 역사적인 희생의 댓가로 말미암아 생성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하늘이 흘린 눈물이 이 땅을 채우고. 하늘이 흘린 피의 희생이 이 땅의 골짜기를 메울 만한 희생의 과정이 나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실체적으로 느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에 어리어 있는 슬픔도 풀어드리지 못한다 할진대는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중에 사무쳐 있는 슬픔을 장차 누가 책임질 것인가. 도의 길을 찾아나가면 나갈수록 인간은 하늘을 대해 황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기 자체적으로 빚진 것을 갚아야 할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에 주는 데 있어서는 개인을 위하여 주어야되겠고, 나아가 하늘을 위하여 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노정이 여러분에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은 더욱더 멀리 뻗어 나가고 싶은 마음의 방향성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을 억제하여 자기 개인을 위하여 움직이며 살려고 하는 사람, 내 가정을 중심삼고 나아가는 사람은 용납받지 못합니다. 자기 민족을 위주한 주의를 중심삼고 나아가는 사람 역시 맞는 다는 것입니다. 국가 역시 그렇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이 나아갈 방향은 하늘의 이념을 중심한 개인이 되어 가정과 국가, 세계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제 내 개인을 넘어 종족과 민족, 국가,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되겠고, 더 나아가서는 맺혀진 6천년 역사를 위하여 살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은 이런 개인과 가정, 민족, 국가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은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온 하늘 땅을 통치하여야 할 주인공이지, 어느 한 지역을 주관하여야 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대하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하나님이 지향하는 세계에 대하여 생각이라도 해야 됩니다. 또한 그럴 때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주의와 사상은 변천되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땅 위에서 하나의 이념형태를 거친 후에는 이 우주의 근원자이신 하나님과 합할 수 있는 천주주의적인 형태를 이루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필연적인 역사적 귀일점으로 남아져야 됩니다.

4-207
예수님이 찾으실 사람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 :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이념은 물론이거니와 창조 이전의 이념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개인을 위하여 주고자 할 때 어떠한 한 개인이 막으면 그 개인을 끊어 버렸습니다. 가정을 위하여 잘 주고자 할 때 어떤 가정이 막으면 그 가정을 끊어 버렸고, 사회를 위하여 주고자 나설 때 사회가 막으면 그 사회도 끊어 버렸고, 나라를 위하여 주고자 할 때 나라가 막으면 그 나라를 끊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하늘 땅을 위하여 주고자 하는 시대가 올때에 이것을 막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끊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하늘의 전체의 뜻을 탕감하고 하늘의 이념세계를 소망하고 나섰다 할진대는 , 하늘이 우리들을 6천년 동안이나 길러나오시고 사랑을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러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늘은 바로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여야 되겠습니다.

세상의 원칙은 주고받는 이치입니다. 따라서 세계를 위해 주는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생애노정의 종말을 고할 그때 즉, 운명시에 여러분은 어떠한 말을 남기고 갈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이단의 괴수로 몰려서 십자가에 못박히어 죽으면서도 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 (요 19 :30)”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세계를 위하여 얼마만큼 염려하셨던가 하면 죽음을 각오하고 사탄과 싸워나가면서 세계인류를 염려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자신들도 이 땅 위에서 생명을 거두는 날 `아버지여, 다 이루었나이다´라고 기도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는 이 땅 위에서 어떠한 사람을 찾을 것인가. 자기의 사명을 인계받아 가지고 제 2차적으로 ‘아버지여! 예수여!’ 라고 부르며 ‘다 이루었나이다’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을 헤쳐 놓고 오늘날의 이 민족을 위하여 염려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일의 이 민족을 위하여 염려하고 나설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고, 오늘의 이 세계를 위하여 염려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일의 이 세계를 위하여 염려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는 한 단계 앞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먼저 하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땅의 인간들이 모르는 하나의 세계적인 이념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그런 마음을 갖고 현실을 박차고 나설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이 나와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현실적인 하늘의 서러움을 탕감하고 역사적으로 모순된 모든 것을 밟고 올라설 수 있어야 역사적으로 얽힌 모든 것에 대한 탕감적인 조건을 세워 청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 보면, 끝날의 성도를 대해 하늘에 있는 예수가 부러워하고 천천만 성도와 하나님까지도 부러워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땅도, 역사 과정의 모든 인간들도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이런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이 때가 세계를 대하여 섭리하는 때인가, 개인을 대하여 섭리하는 때인가, 민족을 대하여 섭리하는 때인가를 분별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내 개인을 위하여 살아야 할 때인가. 아니면 다른 어떠한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할 때인가를 분별하여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세계를 넘어서 앞으로 천주적인 천국이념을 대해서 살 수 있는 그런 때에 있어서 하나님을 부르면 하나님이 온 세계의 축복을 여러분에게 내려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여야 할 비약적인 이러한 고개를 남겨 놓았는 데도 불구하고 역사와 지금까지의 습관적인 환경에 지배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넘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누구일 것인가. 이제 우리들이 가는 걸음에 있어서는 십자가의 길도 좋습니다. 고난의 길도 좋습니다. 어떠한 길도 넘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길, 최후의 골고다의 길을 죽지 않고 넘어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붙잡으려 했지만 거부당하던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만일 그때 당시 예수를 붙들고 길을 안내할 수 있는 한사람, 또는 그의 제자가 이 땅 위에 있었던들, 오늘날 우리들이 잘 모르는 이 성경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지의 신앙세계에서 허덕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거예요.

4-209
남겨진 빚을 청산하기 위한 제물이 되라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수고한 것은 자신이 구원받기 위한 것이었지 하나님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완전 탕감하여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까지 역사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역사적인 모든 빚을 탕감하여 놓고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인가. 자신의 죄를 놓고 아버지가 염려하지 않도록 하며 스스로 하늘의 선권에 속하여 수고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선의 뜻을 위하여 수고하는 그러한 새로운 시대의 선봉자들이 어느 한 민족 가운데 많이 나오면 많이 나올수록 그 민족은 하늘의 전권적인 이념을 차지하여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구원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갔지만 구원의 뜻을 다 이루어 하나님을 위로하고 즐거워하는 일은 못해 봤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처한 오늘날의 우리가 이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에 그러한 일을 이루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끝날의 성도들이 그러한 심적기준까지 찾아세우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수고하신 예수님 대신 수고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되어야 비로소 역사적으로 빚진 모든 것을 탕감한 자격자로서 하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와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 :12)”고 하셨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역사적인 전환기인 오늘날에 있어서 이러한 크나큰 빚을 탕감하고 하나님과 함께 환희와 기쁨에 넘쳐 손을 붙들고 개인을 축복할 수 있고, 교단과 민족과 세계 인류를 축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을 축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오기를 하늘은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은 이와 같이 크나큰 하늘의 인연을 오늘날 지극히 작은 여러분 자체가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하늘과 땅 앞에 남겨진 빚을 청산하는 하나의 제물로서 나설 수 있는 자신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역사적인 모든 빚을 탕감했다는 조건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