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7 to 4-197: 하나님이 바라는 참된 아들이 되자

하나님이 바라는 참된 아들이 되자
1958.04.20 (일), 한국 전본부교회

4-187
하나님이 바라는 참된 아들이 되자
로마서 5:12-21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이 바라는 참된 아들이 되자’라는 제목으로 여러분에게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참을 찾으려 할 때에는 참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야 될 것이며, 하늘과 땅이 즐길 수 있는 진리를 찾고자 원할진대는 여러분의 몸이 스스로 참된 몸이 될 수 있는 참의 상대기준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생각하여 보게 될 때에 참되신 하나님과 참된 진리와 참된 인간은 각각 그 존재방식이 다르지만 내적 기준에 있어서는 같은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진리는 같은 방향을 향해 영원히 실존한다는 것입니다.

4-187
신앙자들의 고통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바라보며 누구든지 이 세상이 참된 세상이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 자신을 반성해 보며 참된 자신이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있으며,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걸어 나가면서 참된 하나님을 찾고자 원하되 참된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을 또한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자들의 고통인 것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참된 진리는 어떤 것이며, 참된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제시할 수 있는 사상, 여러분이 찾고자 원하는 그런 사상이 어느때나 나타날 것인가. 이것을 확실히 알지 못한 채 미궁에 처해 있는 여러분인 것을 깨닫게 될 때에 오늘날 여러분은 무엇을 원해야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을 중심삼고 무엇을 헤아려 주장하기 이전에 그것이 자신의 참된 개체를 대신할 수 있는 가를 먼저 살펴봐야 될 것이요, 여러분 자신이 먼저 참된 입장에 처해 있는 가 살펴봐야 될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참된 자체로 설수 있는 가를 살펴보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은 참된 세계에 살기를 원하나 참된 세계에 들어갈 수 없고, 참된 사람이 되기 원하나 참된 사람이 될 수 없으며, 참된 하나님을 찾고자 원하나 참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자리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인간의 슬픔이요, 무엇보다도 큰 인간의 비애인 것을 여러분은 느껴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러한 중요한 사실을 여러분이 느끼지 못한다 할진대는 , 여러분은 참된 사람과 참된 진리와 참된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타락된 세상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속된 세상이요, 죄악된 세상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죄악된 세상을 갈라 헤치고 영원히 즐길 수 있는 선의 세계, 영원히 화할 수 있는 하나의 참된 사람, 영원히 믿을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을 찾기 위하여 이 날 이 시간까지 허덕이며 나오고 있습니다. 이세상의 끝날이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이 세상을 박차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서야 할 시간이 가까와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나 자체를 헤아려 볼 때, 한쪽에서는 악이 지배하려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선이 지배하려고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아직 악의 지배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느끼는 반면 선이 나를 인도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양심이 맑아지면 맑아질수록 예민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의 주관권내의 자아를 박차고 선의 이념으로서 자신을 주관하려는 그 세계를 찾아나서고자 할 때에는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이 고충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 본문 말씀을 보아도 타락한 아담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전인류는 죄의 혈통을 물려받은 타락의 후손이 되고 말았습니다. 2천년 전도 그렇고 4천년 전도 그렇고 6천년 전도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창세 이후, 아담 해와가 타락한 이후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은 사탄이 주권을 잡고 있는 환경하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도 역시 그렇고 사회나 국가, 세계가 모두 그런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합니다.

4-189
신앙자들의 고통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바라보며 누구든지 이 세상이 참된 세상이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 자신을 반성해 보며 참된 자신이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있으며,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걸어 나가면서 참된 하나님을 찾고자 원하되 참된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을 또한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자들의 고통인 것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참된 진리는 어떤 것이며, 참된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제시할 수 있는 사상, 여러분이 찾고자 원하는 그런 사상이 어느때나 나타날 것인가. 이것을 확실히 알지 못한 채 미궁에 처해 있는 여러분인 것을 깨닫게 될 때에 오늘날 여러분은 무엇을 원해야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을 중심삼고 무엇을 헤아려 주장하기 이전에 그것이 자신의 참된 개체를 대신할 수 있는 가를 먼저 살펴봐야 될 것이요, 여러분 자신이 먼저 참된 입장에 처해 있는 가 살펴봐야 될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참된 자체로 설수 있는 가를 살펴보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은 참된 세계에 살기를 원하나 참된 세계에 들어갈 수 없고, 참된 사람이 되기 원하나 참된 사람이 될 수 없으며, 참된 하나님을 찾고자 원하나 참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자리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인간의 슬픔이요, 무엇보다도 큰 인간의 비애인 것을 여러분은 느껴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러한 중요한 사실을 여러분이 느끼지 못한다 할진대는 , 여러분은 참된 사람과 참된 진리와 참된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타락된 세상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속된 세상이요, 죄악된 세상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죄악된 세상을 갈라 헤치고 영원히 즐길 수 있는 선의 세계, 영원히 화할 수 있는 하나의 참된 사람, 영원히 믿을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을 찾기 위하여 이 날 이 시간까지 허덕이며 나오고 있습니다. 이세상의 끝날이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이 세상을 박차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서야 할 시간이 가까와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나 자체를 헤아려 볼 때, 한쪽에서는 악이 지배하려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선이 지배하려고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아직 악의 지배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느끼는 반면 선이 나를 인도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양심이 맑아지면 맑아질수록 예민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의 주관권내의 자아를 박차고 선의 이념으로서 자신을 주관하려는 그 세계를 찾아나서고자 할 때에는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이 고충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 본문 말씀을 보아도 타락한 아담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전인류는 죄의 혈통을 물려받은 타락의 후손이 되고 말았습니다. 2천년 전도 그렇고 4천년 전도 그렇고 6천년 전도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창세 이후, 아담 해와가 타락한 이후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은 사탄이 주권을 잡고 있는 환경하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도 역시 그렇고 사회나 국가, 세계가 모두 그런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합니다.

4-191
하나님이 찾아 오신 한 사람
지금까지 악은 외적으로 나타나는 권한을 갖고 세계를 지배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마음이 있는 것과 같이 세계의 역사에도 마음이 있습니다. 역사의 방향이 악을 향하여 나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억제하여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결심을 갖고 나아갈 방향을 취하듯이 역사도 역사 자체로써 지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때와 시기, 세기를 역사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이 간섭하고 지배해 나오는 과정을 거쳐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한 시대를 중심삼고 살펴볼 때, 어떤 한 시대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때나 그런 하늘의 뜻과 땅의 뜻이 만나게 될 때에는 하늘과 땅의 대표되는 한 주인공이 나왔습니다. 나아가 어떠한 역사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의 뜻에 연결될 수 있는 때가 되면, 그 주인공으로 말미암아 시대적인 혁명을 일으키게 되고, 또한 그것이 세계적인 혁명 단계를 거쳐 우주적인 혁명 단계로 역사는 발전하여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이 인류역사를 돌이켜 보면 악이 땅을 지배해 나온 것을 알게 됩니다. 창세기의 말씀과 같이 천지만물을 엿새 동안에 지었는 데 아직까지 그 지음받은 만물들은 안식의 한날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안식의 날은 지금까지 모든 인간들 앞에 소원으로 남아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날로서 남아질 수 있는 안식의 날, 이 안식의 날을 인간들이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피조세계 즉, 온 실체세계는 안식의 한 날을 찾기 위한 싸움의 역사노정을 거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일 창조의 이념을 파괴한 인간이 6천년 역사 속에서 유린을 당하는 고비를 넘어 하늘의 실체적인 선의 역사를 흠모해 나오는 이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역사인 것입니다. 이 6수는 사탄에게 빼앗겼으나 어느 한 부분은 하나님이 간섭할 수 있는 조건이 남아 있기 때문에 비록 한 시대가 부패하고 모든 것이 썩어들어갈지라도 시대 시대를 거쳐 나오면서 이것을 어느 한때에 치고 새로운 섭리역사를 제시하는 혁명을 일으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섭리의 뜻을 대하고 선을 지향해 나왔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던가. 그들은 반드시 제물되어 나왔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창조한 후 축복하시기를 , 온 피조만물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님 대신 만물을 주관하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인간세계에는 그와 같은 천적인 축복의 이념이 부여되어 있는 데, 이 이념을 실체적으로 이룬 사람은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은 이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지배적이고 주관적인 이념을 찾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하늘은 고대로부터 중세를 거쳐 현대까지 시대 시대마다 섭리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인간들에게 이러한 섭리의 뜻을 책임지우고 내세우게 될 때에는 중심인물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가 처해 있는 시대 전체를 지배하여 하늘의 이념권내에 결부시키기 위하여 어떤 한 사람을 세워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이 땅을 대해서 시대와 세기 혹은 역사 과정을 통해서 무엇을 찾고자 하시는 가.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 전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 세기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을 하나님은 찾아 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늘 땅을 대신하여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하늘의 사람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체 인류가 끝날에 처해 있다 할진대는 그 끝날은 어떤 때인가. 역사적인 하나님의 섭리로 볼 때, 시대성을 대신하고, 세계와 우주의 섭리를 대신하고, 앞으로의 세계와 천주적인 섭리권을 향하여 인간의 이념이 움직여 나가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악의 통치의 그늘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하늘이 요구하는 것이 있다 할진대,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여러분 개체개체를 대하여 물을 것입니다. 끝날에 처한 여러분 한 자체가 역사과정 혹은 어느 시대적인 대표자의 입장을 갖출 수 있느냐, 혹은 세계적인 어떠한 사명을 대신해서 하늘 앞에 나타날 수 있느냐, 나아가서는 오늘날 이 세계를 대표한 참된 하나의 사람으로서 나타날 수 있겠느냐, 더 나아가서는 영계와 육계를 합한 하늘과 땅 앞에 있어서 속죄자로서의 자격자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찾으실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지금 이 시대를 끝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이념을 통해서 보게 될 때 심판의 한날, 즉 말세가 우리의 목전에 당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말세란 무엇이냐? 세계적인 종말기에 있어서 그 모든 사명을 짊어지고 하늘을 향해 부르짖고 나선 하나의 사람이 개인에서부터 세계인류 나아가 하늘과 땅까지 합하는 그날이 바로 심판날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193
하나님의 통분과 슬픔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죄악세계에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이념을 개척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마음속에 남아질 수 있을 것인가! 내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주장할 수 있어서 아담에게 해주신 축복을 완성한 사람, 즉 제2 아담격으로 하나님 앞에 화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나타나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하나님과 심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끝날에 세계를 대신해 가지고 하나님의 법도를 지니고 타락의 침범을 받지 않았으며, 죄악역사와 인연이 없는 참된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결국 이 세계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들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늘의 사랑을 소유한 참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인데, 참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이 땅 위에 태어날 때에 난 목적과 살아야 할 목적과 하여야 할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무엇을 하여야 하며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인가를 모르고 있으니, 하나님이 있다 할진대 그 하나님은 통분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시대 어느 한 시간도 쉬지 않고 하늘과 땅을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시며 고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는 인간들이기에 자신들의 죄상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느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그것마저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또한 뻔뻔스럽게 하늘을 대하고 있는 인간들을 볼 때에, 이들을 단번에 심판하고 싶으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의 씨가 될 수 있는 그 한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이렇게 지연되어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역사과정에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켜 가면서도 그것을 조건으로 참다운 한 사람을 찾기 위하여 나오고 있는 데, 인간들은 뻔뻔스러운 마음으로 하늘을 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지으신 인간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복귀섭리를 해나오시면서 하나님은 자신이 계획했던 뜻을 기필코 성취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선에서부터 번식되어져야 할 것이 악으로부터 번식되어졌으므로 이것을 거꿀잡이의 역사로 좁혀들어가 하나의 선의 기점을 만들어, 하나의 결실점으로 연결시키는 섭리를 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슬픔은 무엇인가.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던 그 창조 이념을 대신하고 그 이념을 소유할 뿐만 아니라 그 이념의 주도적인 권한을 갖고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는 참된 사람이 없는 것이 슬픔입니다. 신령한 기도를 하는 사람은 끝날을 맞이한 하나님의 소원이 잃어버렸던 선의 주인공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라는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는 완전한 선이 없었습니다. 도의 생활이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선을 자처하는 듯 행동을 한 사람은 있었지만 완전한 선과는 관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오늘날까지의 역사과정은 악이 악과 서로 싸우고 있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내적 싸움도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도의 생활이나 신앙생활은 영원한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선을 소개해 주기 위한 생활이 아니고, 악을 대하여 선을 제물삼은 즉, 탕감의 생활입니다.

4-195
자신을 내세우고 자랑하지 않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 30여 평생 고난의 길을 통해 그의 내적인 이념은 세울 수 있었으나, 생활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완전한 선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사탄세계에 처하여 악과 대립하여 탕감적인 희생으로써 선을 소개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참된 사람이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악과 대립하여 싸우기 위해 지금까지 낙원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제 여러분은 내가 무엇을 했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행한 선은 악을 탕감하기 위한 조건은 될 수 있지만 영원한 선의 세계의 발판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어떠한 권한이나 지위를 가졌다 하여도 그것을 자랑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늘의 황태자요, 만우주의 주인공이요, 만왕의 왕으로 오셨지만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악을 대한 싸움이 끝날 때까지는 자신을 자랑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참으신 것은 어느 한날 하늘의 법도를 완전히 세우기 위한 것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악이 주관하는 세계에 처해 있었지만 선을 중심한 이념의 세계가 앞으로 나타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의 세계가 이 악한 세계 깊숙한 곳 버림받은 무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고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마 11:5)”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양심적인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하늘이 서글퍼하시는 것을 누구보다도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가 피의 제단을 거치면서 버림받은 역사과정을 거쳐나온 것은 끝날의 한날을 위해서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나 예수가 인간과 교단을 대하여 명령해 본 때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의 주의나 주장을 자랑하는 사람, 또는 교단을 붙들고 자기 것인양 자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깨집니다. 지금까지 십자가를 통하여 세워 놓은 기독교를 하나님이나 예수가 완전히 지배해 본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천신만고의 고난길을 헤치시면서 모든 인간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그 한날을 바라고 수고해 나오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반드시 깨집니다. 천륜이란 순서적인 원리원칙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었다 할진대 먼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주관하고 나서야 인간이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순서를 무시하고 인간이 먼저 주관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깨져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이 필연적인 것이라면 싸움의 노정을 거쳐 그 목적지를 찾은 후에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제2의 선의 이념을 창조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오늘날 다시 필요하다는 거예요. 오늘날 인간들은 이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암암리에 고대하면서 신앙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뜻이 이루어지는 날이 바로 신앙적인 부활의 날이요, 혹은 세계적인 재림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나오심도 인간을 주관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늘날까지 사탄의 참소를 받아가며 싸우심도 하나님이 권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원리원칙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앞에 세워 가지고 사탄이 이루는 것을 다시 정리하는 역사를 해 나오고 계십니다. 사탄이 먼저 지배했던 것을 정리하는 것은 사탄이 참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사탄까지도 세워 가지고 심부름시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그러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최후의 승리자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계를 지배하여야 할 지도자로 오셨지만 맨 밑창에 서서 모든 사람을 다 앞에 세워 나아가려고 하셨습니다. 보기에는 낙오자 같았으나 실제로는 무한한 지혜의 소유자이셨습니다. 사탄이 먼저 행한 것을 시정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사탄을 앞에 세워 제일선에서 싸우게 하고 하나님은 후방에서 싸움을 정리하여 나오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사탄은 선두의 한 면만 갖출 수 있지 양면을 모두 갖출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발판을 세우기 위해 죽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 앞에 거부당하던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그런 신자 말고, 부활하신 예수를 모시고 길을 안내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그 당시에 있었던들 오늘날 우리들은 미지의 이 성경만 붙들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지의 신앙세계에서 허덕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4-197
역사적인 빚을 탕감하고 하늘의 원한을 풀어 드리는 참사람
여러분이 지금까지 수고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 구원받기 위한 수고였지 인류의 모든 죄를 완전히 탕감하여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수고는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수고를 한 사람은 지금까지 사탄세계의 역사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모든 빚을 탕감하고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드리고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자신의 죄의 인연을 아버지 앞에 염려의 대상으로 남기지 않고, 자신의 모든 움직임이 하늘권내에서 오직 선의 뜻을 위하여 수고하였다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의 선봉자들일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많이 가진 민족은 하나님의 전권적인 이념을 차지하여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갔지만 그 구원의 뜻을 이루어 놓고 하나님을 위로하고 즐거워해 보지는 못했습니다. 끝날의 우리는 그러한 생활을 이 몸을 쓰고 있는 동안에 이루어야만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끝날의 성도들을 대하여 고대하는 것이 무엇인가. 천적인 내적 기준까지 찾아 들어가 6천년 동안 우리를 위로해 주신 하나님을 오히려 위로해 드리는 사람, 2천년 동안 인류를 위해 수고하신 예수 대신 수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하늘의 모든 빚을 탕감한 자격자로서 하늘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위에 오셔서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역사적인 전환기에 있어서 그러한 크나큰 전체적인 빚을 탕감하여 환희와 영광의 자리에서 세계인류를 축복할 수 있고, 이 민족을 축복할 수 있고, 이 교단을 축복할 수 있고, 개개인을 축복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을 축복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들이 나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은 그러한 크나큰 인연을 오늘날 지극히 작은 자신이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하늘과 땅 앞에 하나의 제물로서 나설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역사적인 모든 빚을 탕감했다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