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1 to 4-185: 부활하신 예수의 심정을 알자

부활하신 예수의 심정을 알자
1958.04.17 (목), 한국 삼청공원

4-181
부활하신 예수의 심정을 알자
마가복음 16:1-20

이 날은 2천년 전에 왔다 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부활의 날입니다. 오늘날까지 이 세계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셨던 그 한날도 알지 못하고 내려온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이 부활의 한날을 알지 못하는 인간을 대하는 하늘의 심정이 얼마나 답답하며 얼마나 서러울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4-181
예수의 하늘 대한 심정과 인간에 대한 소원
그리고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만은 하늘과 온 만민을 대신하여 누구도 모르는 이 한날을 축하하여야 할 것이며,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느끼는 그의 내적·외적 친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이 한 장소는 하늘과 땅과 온 만물이 주시하는 귀한 장소임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13년 전 오늘, 예수께서 나타나 오늘이 당신의 부활의 날임을 밝혀 주던 일이 기억납니다.

예수는 과연 만민을 대하여 어떤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라셨던가? 그리고 하늘은 어떤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가? 예수는 이 땅 위에 신랑으로 오셨지만 땅에 있는 만민이 신부의 입장에서 받아주지 못한 연고로 신랑과 신부는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고 할진대는 ,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말 못하는 심정을 만민 대신 느끼는 신부가 되어 주기를 하늘은 바라고 계시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하나님의 4천년 섭리의 목적을 성사시켜야 되는 책임과 성심 성의를 다하여 4천년 동안 쌓여 내려온 인류의 죄악을 탕감해야 할 큰 책임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역사상의 어느누구보다도 내·외적인 슬픔과 고난의 생애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라신 것은 피조세계의 복귀요, 말씀해 주려는 대상은 그 일을 함께 이루어야 할 세상의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간곡한 심정을 토로하고, 그 뜻을 이루어드릴 것을 호소하셨으나 그 당시 사람들은 받아주지 않았고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대상은 제한된 범위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마음놓고 말씀하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애쓰시던 예수님의 심정을 우리는 동정하고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고난의 3년을 거쳐, 온 만민 앞에 환영을 받아야 할 때가 되었었으나 어느 한 사람도 그분을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하나님의 아들로 받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마땅히 알아주어야 할 요셉의 가정이나 친척들조차도 알아주지 않았고, 알아주어야 할 유대교단과 이스라엘민족, 나아가서는 세계가 알아주지 않고 반대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모두로부터 반대받는 입장에 계실 때에도 오히려 불신의 땅을 바라보며 슬퍼하는 하늘을 위로해 드려야 할 입장에 계셨고, 땅을 대하여도 염려해야 할 입장에 계셨습니다. 또한 불신의 인간들을 대해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복을 빌어 주셨던 예수님이었습니다. 이런 예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예수의 신부가 되기를 원한다 할진대는 이렇게 왔다가신 예수의 심정을 알아야 하고, 지금까지의 선조들의 죄를 홀로 탕감해야 하며, 주님의 심정을 가슴에 품고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슬픔과 예수의 슬픔을 알고 그러한 이념과 심정을 가진 사람이 이 땅에 없다고 한다면 여기에 있는 여러분이 그 이념과 심정을 지니려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예수님이 품으셨던 심정을 소유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몸 둘 곳을 모르고 설움에 복받쳐 울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과 예수와는 비록 2천년이라는 시간적인 간격이 있으나 그는 2천년 전 예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신부가 될 수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안다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의 생애와 자신의 생애를 비교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생애와 예수의 생애에 너무나 현격한 차이가 있다면 여러분은 예수의 친구가 될 수 없고, 그의 신부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4-183
예수의 뜻을 인계받아야 했던 제자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수의 부활 후에 베드로가 지녔던 그 부족하고 황공했던 마음이나마 가져야 할 것이요, 허덕이며 헤매던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심정이나마 닮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를 질 때까지 이러한 친구나 동지 한 사람을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직후 예수의 심정은 어떠했던가? 3일만에 부활한 그의 심정은 하늘 앞에 면목없는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서글픈 심정이었습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하신 아버지와 많은 수고를 한 선지 선열들을 대하게 될 때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한히 슬펐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예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하겠습니다.

하늘의 성도들은 기뻐했으나 예수는 슬펐으며, 하나님께서도 기쁜 일면 슬픈 마음도 가지셨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예수의 심정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새로이 마음에 결심을 해야 하겠습니다.

결심을 하되 무엇을 결심할 것인가. 예수가 이렇게 된 원인과 동기는 민족 때문도 하늘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사탄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는 이 사탄을 짓밟고, 잃어버린 사도들을 찾기 위하여 나섰던 것입니다. 한때는 생명을 걸고 맹세까지 했던 사도들이 예수의 시체와 무덤까지도 악한 무리들을 통해 지키게 했던 것을 생각할 때,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라면 그들을 다시 찾아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오직 원수 사탄에 대한 분개심과 원수 사탄의 품에 있는 제자와 민족과 인류를 찾아야 하겠다는 일편단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또한 4천년 동안 배신하는 인간들에 대한 분함을 참고 또 참으면서 섭리해 오신 아버지를 바라보게 될 때에, 불쌍한 인간들을 찾아야 하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품고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의 비장한 결심을 오늘날 여러분들이 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또 남아 있는 사도들에게 다시 한번 사탄 대해 싸워야 한다는 마음의 결심을 고취시킨 예수는 언제까지나 그들과 함께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뜻을 인계받아 오랜 역사노정을 가야 할 제자들, 말할 수 없는 피의 노정과 골고다의 십자가의 고비를 넘어야 할 제자들을 바라보는 예수의 서글픈 심정과 고충은 십자가를 넘을 때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는 40일이 경과하자 사랑하는 제자들을 원수의 땅에 남겨 놓은 채 가야할 슬픈 심정을 품으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땅에 있던 성도들은 과연 어떤 마음을 가졌었느냐? 오신 예수의 슬픔과 가셔야만 하는 예수의 슬픔을 알았어야 했는 데, 그들은 다만 사랑하는 선생과 헤어지는 것만을 슬퍼했으니, 이것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말로 다 형언하지 못할 만큼 비통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느냐 하면, 예수님이 가신 뒤의 일을 내 스스로 인계받아 사탄과 생사를 건 싸움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각오하에 철석같이 변치 않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서까지 마음을 못 놓아 근심하시던 그 심정을 여러분이 직접 체휼하여 대신 풀어드려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 당시의 사도들이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고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면 하나님은 예수 한분만을 부활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전사도가 부활하였을 것이고, 오늘날과 같은 기독교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이런 사도들이 남긴 사명을 여러분 자신이 인계받아 사탄 대하여 분개하던 예수님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십자가를 넘던 예수의 결심을 여러분의 결심으로 하여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를 죽지 않고 살아서 넘음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제2의 사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6천년 동안 하나님을 괴롭히던 사탄을 일조에 무찔러버릴 수 있는 사도들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장한 결심을 갖고 죽음의 길을 걷게 되더라도 사탄과 싸워이겨 그 흔적을 남길 수 있어야 합니다.

4-185
끝날의 성도들의 큰 사명
여기 모인 여러분들! 그 마음 그 세포 하나 하나가 하나님과 화할 수 있는 자체들이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의 그 마음 그 세포가 하나님과 화할수 있어야만 예수가 부활 후에 사도들을 찾아가신 것처럼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이런 사도들이 모이고 모여 예수님을 대신하여 세계인류를 찾아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까지의 사도들은 예수를 죽으러 오셨다고 믿으면서도 그런 비장한 결심을 하고 나왔는 데, 예수는 죽으러 오신 것이 아님을 아는 여러분은 더욱 더 비장한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과거 베드로가 예수 앞에 죽기를 각오하고 따르겠다고 한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하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두번째 맹세를 함으로써 이를 탕감했고, 그것을 조건삼아 하늘은 오늘날까지 역사해 나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예수 한분 앞에서만 맹세하고, 또 베드로와 같이 죽은 후의 예수 앞에서만 맹세를 할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나아가 하늘과 땅과 주님을 놓고 맹세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가 이루지 못한 죽기 전의 그 맹세를 여러분이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천주의 원한이 풀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의 자녀의 입장과 예수님 앞에서의 동생의 입장에서 그 소원을 풀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과거의 사도들은 예수와 사제지간이었으나 오늘의 여러분은 예수와 형제지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의 입장에서 하나님과 예수를 똑똑히 바라보고 그의 억울함을 탕감해 드려야 할 책임이 있음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통을 참으시면서 가셨듯이 여러분도 그러한 고통을 참으면서 역경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될 큰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끝날에 어떤 음성이 들리는 가 항상 귀를 기울여야 되겠고, 하늘 땅의 소원을 알아 그 소원을 이루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럴때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 딸로 설 수 있음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