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9 to 4-179: 예수의 몸을 붙들고 울어줄 수 있는 자가 되자

예수의 몸을 붙들고 울어줄 수 있는 자가 되자
1958.04.13 (일), 한국 전본부교회

4-169
예수의 몸을 붙들고 울어줄 수 있는 자가 되자
마태복음 27:1-56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릴 제목은 ‘예수의 몸을 붙들고 울어줄 수 있는 자가 되자’ 입니다.

여러분들이 믿고 있는 예수, 또 하늘이 만유를 회복하셔야 할 전체의 사명을 맡겨서 천륜의 대언자로 보내셨던 예수는 만물과 인간과 하늘이 다 같이 오시기를 고대하던 소망의 중심이었음을 여러분은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4-169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에게 필요한 예수님
또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왔다 가신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백성에게만 필요했던 분이 아니요, 그후 2천년의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인류가 필요로 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여러분 개체 개체에 있어서도 필요한 분입니다. 그리고 비단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땅 위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평화의 동산을 성취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민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승리의 개가와 더불어 아버지 보좌 앞에 나타나 영광의 송영을 드리기를 모든 만민 만상은 지금도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늘 앞에 필요한 존재요, 땅 위의 인간 앞에 필요한 존재요, 지으심을 받은 모든 피조만물 앞에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 혹은 역사적인 이념을 여러분 한 자체를 중심삼고 승리의 표적으로서 예수님 앞에 나타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오늘날까지의 6천년 투쟁역사 속에서 전인류에게 안겨준 탄식과 슬픔의 모든 내용을 벗겨낼래야 벗겨낼 수 없게 됩니다.

지금까지 많은 인간들이 오랜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예수를 믿어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예수님은 하늘의 뜻을 대신하여 땅을 위하고 만민과 만물을 위하여 사탄 대하여 싸워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하늘과 땅을 대하여 바라셨던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영계에서 안타까운 심정을 품고 싸워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그 싸움이 끝나지 않는 한 하늘의 싸움이 끝나지 않을 것이요, 지상의 싸움도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소망을 성취하지 못하는 한 온 피조만물도 소망의 한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이 믿고 있는 주님, 나아가 모든 믿는 이들이 신랑으로 모셔야 할 주님, 여러분의 참아버지로서 모셔야 할 그 주님을 생각해 보게 될 때에, 그 예수님과 여러분이 하고 있는 생활을 비교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하고 있는 생활이 과거 역사와 모든 종교의 전체의 뜻을 대신한 입장에서 어느 정도 예수님과 하나되었느냐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의 인간을 위해 오셨고 인간을 위해 가셨는 데, 그러한 예수님과 땅 위의 어느 누가 하나되어 있었느냐.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예수님과 영원히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이념권내에 여러분이 처해 있느냐, 이것을 따져 묻게 될 때에 아직까지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사람을 찾지 못하였고. 예수님께서 영원히 주관하고 믿을 수 있는 어떠한 사람도 갖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예수를 중심삼고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어떠한 하나의 기준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실 때에 택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바라신 소망은 무엇이었던가. 4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뜻이 그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길 소망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만민과 만대의 후손들이 즐길 수 있는 행복의 안식처를 건설하기 위해 새로운 복음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새로운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4천년 역사를 대표하여 나타나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이요 배우지 못한 일개 청년이었지만, 그를 통하여 하늘의 모든 이념과 소망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었는 데, 이것을 그때의 인간들이 알았느냐 하면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역사적인 결실체로서. 하늘의 섭리적인 중심체로서 인간 앞에 나타나게 될 때에. 그는 마음과 몸으로 느끼는 느낌이 무엇이기를 바랐던가? 먼저는 하늘을 대할 때 하늘과 통할 수 있는 느낌과. 인간을 대할 때 인간과 통할수 있는 느낌을 갖고 나타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4-171
예수님의 마음과 슬픔
그래서 예수님은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물이 타락의 원한에 사무쳐 있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이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슬픔이 피조만물에 스며 있는 것을 알면 알수록 심각한 마음을 가지시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0여 생애를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자라면서 만민의 메시아로서의 모습을 나타내지 못한채 무언의 생활을 하시면서 하늘의 뜻을 선포하기 위한 준비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늘을 향한 일편단심의 마음과 만인류를 위한 마음을 지녔습니다. 하늘과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해지면 간절해질수록 그의 마음은 어느누구에게도 표현할 수 없는 근심이 더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누구에게 나타낼 수 없는 근심과 걱정이 컸었다는 것을 그때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나아가 요셉가정 식구들 역시 예수님의 그러한 각오와 심정을 하늘의 안타까움으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늘의 심정으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그러한 생활환경 가운데서도 이스라엘민족 앞에 복음의 말씀을 듣게 하여 새로운 혁명의 봉화를 들어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민족을 대표한 유대교를 중심해서 천륜의 방향을 제시해야 했고, 인륜의 도리를 다시 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하늘의 심정을 대신하고 인류의 역사적인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을 갖춘 사람이 없었던 것이, 무엇보다도 그가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완성시킬 수 없었던 중요한 요인의 하나였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4천년의 수고를 거쳐서 이루어 놓은 유대교단, 이 제단은 예수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제단이 되어야 했고 또 예수는 이 제단 앞에 없어서는 안 될 대제사장의 입장이 되어야 했는 데, 그만 예수와 유대교단이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는 구약섭리의 결실제단인 유대교를 중심하여 새로운 신약섭리의 봉화를 들고 나서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받들도록 준비시켜 놓았던 유대교 자체가 예수님과 하나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하게될 때에. 그 예수님의 서글픈 마음은 이루말할 수 없이 컸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사방을 둘러보아도 자신의 사정을 놓고 주고받을 수 있는 하나의 참다운 친구가 없었던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들은 오늘 이 시간 새롭게 느끼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그와 같이 외로운 사정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남과 같이 편안한 자리에 설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에게 슬퍼하는 일이 있게 되면 이 슬픔으로 인하여 후대인류가 단죄받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을 알고 있는 예수는 , 뜻을 성사시키기 위해 택함받은 유대교단이 자신을 반대하는 것을 보면 볼수록 더욱 더 심각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였지만 남과 같이 슬퍼할 수 없는 예수였습니다. 자신이 슬퍼하면 그것이 하늘 앞에 더욱 큰 슬픔을 돌리게 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슬픔이 역사상의 슬픔으로서 남아질 것을 아시고 슬퍼하지 못했던 그 당시의 예수의 심정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고로 역사과정을 거쳐 내려온 인간들 가운데 지금까지 어느 한 사람도 알지 못했던 이 예수의 슬픔을 여러분이 알아주어야 하겠고, 이스라엘민족이 몰아내던 이 외로웠던 예수를 여러분이 대신 위로해 주어야만 예수에 대한 하늘의 슬픔을 풀어줄 수 있고, 역사노정에 스며 있는 예수의 슬픔을 풀어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이 눈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이 귀는 무슨 소리를 듣습니까? 이 마음은 무엇을 향하고 있고, 이 몸은 어디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들이 냉철히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다가왔습니다.

4-173
예수님을 대하는 바른 자세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은 예수님을 지나간 과거의 인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현실의 예수로서 찾아 모시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마을. 저 마을에서 핍박받으며 돌아다닐 때. 이리 가도 원수요, 저리 가도 원수요, 가면 갈수록 험준한 길이었으며,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길러나온 민족 가운데 기쁘게 맞아주는 친구 한 사람을 갖지 못했던 이 예수의 사정을 여러분은 지금 느껴야 할 것입니다.

수많은 교단이 기다렸고, 수많은 사람, 수많은 제사장들이 메시아를 기다렸으나 정작 그가 나타났을때 어느 한 사람 예수를 맞아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 오늘날 여러분들 자신이 2천년 전 예수 당시에 있었다면 과연 여러분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같은 사람이 안 되었을 것인가. 스스로 반문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예수가 과거 역사상에 오셨던 예수요, 현실적인 예수요, 미래적인 예수라 할진대는 과거 재세시(在世時)의 예수의 심정을 알고 그의 심정을 통할 수 있어야 현재의 예수, 미래의 예수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가 이 땅에 와서 그저 30여 생애의 슬픈 노정을 지나 십자가에 돌아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은 예수가 이 땅에 와서 그저 죽어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 무지한 사람들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2천년 전의 예수가 다시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 2천년 전의 예수가 나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2천년 전의 예수를 찾아 올라가야 합니다. 즉, 여러분은 2천년 전의 예수의 슬픈 사정과 외로웠던 사정을 알고, 그 2천년 전의 예수와 현실의 내가 간격이 없는 자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를 붙들고 울 수 있는 내가 되면, 결코 다시 오시는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를 죽여놓고 그죽은 예수가 2천년 후의 나를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신앙의 태도를 가진 사람은 결코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으로부터 10년. 100년. 2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슬픈 예수를 부등켜 안고 울 수 있는 크리스찬들이 과연 이땅 위에 몇명이나 있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돌아가신 예수를 붙들고 하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던 시대가 지나가고 살아 계신 예수님을 환희의 눈물로서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시대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살아 계신 예수님은 어디에 계신가. 그 예수를 찾아 세워야 할 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중대한 사명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입을 열어 하늘에 계신 예수를 불러 보았습니까? 아무리 불러 봐도 여러분은 그분과 쉽게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만민의 구주요, 그는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구주이기 때문에 나는 그분과 영원한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눈이 과연 예수님을 보았고, 나의 귀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으며, 나의 입이 예수님 대신 말씀을 했는 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예수님과 나와는 아직도 거리가 멀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러한 예수를 붙들어야 할 운명의 역사, 비운의 고개를 뚫고 넘어가야 할 이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역사적인 예수를 현실적인 예수로 자신의 생활권내에서 실증할 수 있는 인연을 맺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6천년 동안 역사하신 하나님의 수고의 뜻도 여러분과 인연을 맺어 안식의 한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를 회상해야 되겠습니다. 2천년 역사과정의 모든 인류를 대한 섭리의 뜻을 개척하기 위하여 복음을 들고 나섰던 예수, 2천년 동안 그 복음의 말씀이 어느 국가, 어느 민족에게 들어가든지 그 말할 수 없는 핍박의 노정을 거치는 것을 보시면서 참아 나오신 이런 역사적인 예수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당시에 택한 이스라엘민족 앞에 배척받던 예수의 서글픈 사정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예수를 과거의 기정사실로 된 예수로 대할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에 살아계신 예수로 대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생활권내에서 예수님의 서글픔을 체휼하고 느낄 수 있어야, 비로소 그를 붙들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4-175
인류를 사랑하셨던 예수의 마음, 인류로 인해 고난받은 예수의 몸
그러면 이러한 예수는 어떠한 분인가. 그를 볼 때 그의 눈은 창세 이후 4천년 역사를 거쳐온 하나님의 성상을 바라보는 눈이요, 인간의 잘못으로 인하여 영계의 지옥에 있는 뭇영인들을 바라보는 눈이요, 낙원에 있는 영인들의 원한을 풀어주어야 할 책임감을 느끼면서 바라보는 눈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슬픔을 대신하여 땅을 바라보게 될 때, 택한 이스라엘민족과 온 세계 인류가 그와 하나된 인연을 갖지 못하고 반대하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예수님의 바라보는 시선은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4천년간 슬퍼하시던 하나님의 슬픔을 대신한 시선이었다는 것입니다.

택한 이스라엘은 하늘의 축복을 받아야 할 선민으로서, 예수와 영원히 동거하여야 할 식구로서 또는 가정으로서의 입장을 취해야 할 이들이 오히려 반대함은 어떻게 된 일인가. 오늘날 여러분은 반대하는 이스라엘을 붙들고 말씀하시지 못했던 예수, 성전을 붙들고 그들의 무지함에 슬퍼하시던 예수의 친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대들의 눈이 예수가 바라는 눈이 되어 있는 가. 예수의 눈은 하나님의 슬픔의 성상을 대신해서 바라보는 눈이었고, 낙원과 지상의 복귀의 해원을 해야 할 사정에 처해 있는 것을 바라보는 눈이었으며, 지옥도 자신에 의해 혜택을 받지 않으면 아니 됨을 바라보시는 눈이 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자신의 귀가 뚫려 있습니까? 예수의 귀는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수많은 영인들의 비애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비탄의 소리와 비명의 소리가 예수 한분을 두고 울부짖는 것을 듣게 될 때에 예수님은 편안한 한날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자리에 처할 수 밖에 없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 이 땅을 바라보게 될 때에 악이 동하여 선을 유린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하늘을 배반하고 나서는 민족의 아우성소리를 들은 예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하늘의 원한을 해원해 드려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반대하고 있는 무리까지도 회개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신 분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입으로 무엇을 말씀하셨던가. 낙원과 지옥의 중간에서 새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낙원의 영인들을 이끌어 천국에 들어가게 하려 했고, 또 지옥에 있는 영인들까지 변호해 주셨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 낙원에 있는 영인들을 천국에 들여보내기 위한 말씀, 즉 낙원급의 영인들을 부활시키기 위한 말씀을 외치셨던 것입니다. 또 지옥의 영인들까지, 즉 사탄까지도 변명해 주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하시는 말씀은 영계의 원한을 해원해 주는 조건으로서의 말씀이었고, 또 땅에 있는 인류, 사탄의 사망권에 얽매여 있는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한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해방의 말씀을 땅에서는 응당히 환영을 해야 했는 데 환영은 커녕 반대하고 말았으니 이것이 어찌된 일이었던가. 그리하여 그들은 하늘과 인연을 맺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의 손과 발은 어떠했습니까? 병든 사람에게 얹어주던 그 손! 죽은 사람을 살려주던 그손! 그리고 굶주린 사람에게 빵을 나눠주던 그 손이었습니다. 또 그의 발은 반대하는 이스라엘민족과 사탄에게 몰림을 당하여 이 마을 저 마을, 이 골짝 저 골짝으로 몰려 다니시면서도 원수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발걸음이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원수를 대하여 복을 빌어주던 손이요. 사지에 못박힘을 당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 발과 그 손이었습니다.

또 예수의 몸은 어떠했습니까? 그의 몸은 어디를 가든지 안식의 한날을 갖지 못하던 몸이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천륜과 부합되지 않고, 들리는 모든 것이 천륜과 부합되지 않는 환경이어서 어디를 가든지 그는 몰림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머리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안식의 한날도 갖지 못했던 예수의 일신, 어디를 가든지 환영을 받지 못했던 예수의 일신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할 말이 많았어도 다하지 못했습니다. 땅의 말을 해도 모르는 그들 앞에 하늘의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는 민족 앞에 반역자의 낙인이 찍혔습니다. 교단 전체가, 당시의 정권이 그를 반가와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는 모든 대중과 하나될 수 있는 작전을 전개했던 것입니다. 하늘은 이렇게 양면의 작전을 전개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선에 있어서는 양보하는 듯했지만 결국은 사탄까지도 자신을 위하여 일을 해주었다는 결과를 가져오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세상역사는 먼저 친 사람이 8할 이상 패배했습니다. 1차대 전, 2차대전에서도 먼저 친 편이 패배했습니다. 이런 원칙을 알게 될 때 오늘날 2대 진영 중에 어느것이 사탄편이냐 할 때, 대번에 알 수 있다는 거예요. 무엇을 위해서 하는 가 하는 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전체를 위해서 하지 않고 나를 위해 하거나. 나를 위하여 전체를 희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사탄편이라는 것입니다.

4-177
제 1선을 책임지신 예수님, 제 2선을 책임지신 성신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위하고 보면 내가 제물된 것 같지만 나를 위하여 제물되어 주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인간이 하늘을 위해 주면, 하늘은 온 우주의 이념을 인간에게 전부 넘겨 주겠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는 위하고 보면 내 모든 생명까지도 빼앗고 나중에는 갖다 준 이념까지도 빼앗아 영원한 지옥에 이끌어 간다는 거예요. 그러나 먼저 사탄의 참소를 받아가며 싸워 나오면 하늘편의 소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당가는 무리가 생겨났습니다. 사탄은 나가면 나갈수록 돌아설 수 없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사탄은 여기에서 양보해 주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입장에 처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전면적으로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1차적인 섭리에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2차적인 뜻을 세워가지고 희생과 봉사적인 제단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몰리고 쫓기면서도 낙원을 건설해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끝날은 그것들이 사탄의 일선이자 하나님의 일선이 되어 너도 나도 알래야 알 수 없는 혼선을 일으켜 가지고 혼란된 세계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여기에서 제 1차적인 하나님의 일선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권한을 갖고 사탄을 쳐부실 수 있어야 거기에 새로운 일선으로서 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책임을 못 다하고 가심으로 말미암아 성신을 보냈습니다. 성신은 무엇이냐? 제 2선을 책임지고 오신 분입니다. 십자가의 진리를 책임지고 오신 분이 성신입니다. 그러면 제 1선은 누가 책임지고 있느냐? 사탄과 대결하여 예수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와 성신을 따라가 가지고 이것이 서로 하나로 결속되어 들어가게 될 때에는 예수와 성신도 역시 새로운 일선을 갖추어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성신 대신 새로운 제 2선을 갖추어 가지고 사탄을 막아낼 수 있는 권한을 갖취야 하나님의 참다운 정병의 자격자가 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사탄을 이길 수 있고 그 정체를 밝혀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예수도 성신도 못해 줍니다.

그렇게 되면 이런 자격자는 하나님의 마음의 친구가 될 수 있고, 타락하기 전 아담의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천사장과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하나의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되겠습니다. 각자 각자가 서 있는 위치에서 맡은 바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종교면 종교, 과학이면 과학, 이런 입장에서 참된 하나님의 아들로 설 수 있는 사람을 하늘은 부르고 있습니다.

끝날에는 남을 대해서 이러고 저러고 못합니다. 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이런 생사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적인 인사들이 모여가 지고 성벽을 쌓아 ‘하늘을 대신하여 싸우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민족을 이룬다면. 그 민족은 하나님의 전체적인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같은 나라를 보고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큰 문명국가가 있다고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천륜의 원칙을 알아 그 원칙적인 권내에서 얼마만큼 천상과 지상 앞에 인연을 맺고 있는 민족이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아무리 외적인 조건이 좋다 하더라도 이것을 한번 청산할 때가 옵니다. 하나님은 지극한 공분의 심정을 지닌 분이지만 그 공분의 심정만 지닌 하나님이 아닙니다. 공분의 심정 깊이에는 사탄이 헤아릴 수 없는 어떤 의의 발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굴복할 수 있음도 공분의 심정과 의의 발판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굴복한다는 것이에요,

4-179
우리의 책임
인간의 마음도 역시 그렇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속된 죄악세상에 있어서 무한히 휩쓸리고 무한히 혼돈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여러분은 마음 깊이 역사의 발판과 하나되고 미래의 발판과 하나되어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하나의 원칙을 세워나가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또한 자신의 내적 기준과 생활의 기준이 어떤 비애의 사실에 부딪쳤을 때 그것을 극복하고 나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천적인 역사와 하나되고, 오늘날 현실적인 섭리의 뜻과 미래적인 섭리의 계획과 하나되어야 하겠고, 또한 그것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요리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만 여러분은 비로소 하나님의 심정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돌아가신 주님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다가 만나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 마음에 휩쓸려 들어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오늘날까지의 역사적인 비애의 모든 심정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애달프게 섭리해오신 서러움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어야 거기에서부터 비로소 새로운 하늘의 역사는 전개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심정을 갖고 인간을 대하시는 데 인간은 한 방면 즉, 자기를 중심한 각도내에서 헤아리고는 마치 그것이 하늘의 전체. 즉 360도인 양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가리는 때가 바로 심판날입니다. 또 예수가 메시아가 된 것도 역사과정의 모든 곡절의 노정을 거치면서도 하늘과의 일직선 상에서 불변의 충절로써 하늘을 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늘의 사랑은 어떻게 이 땅 위에 나타날 것인가. 하나의 정적인 이념과 우리 마음이 영원히 하나되어 탈선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360도를 영원히 돌 수 있어야 되겠고, 둘이 아닌 하나의 이념권내에서 하나될 수 있어야만 하나님이 안심하고 안식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럴 때에 거기에서부터 제 2차적인 섭리의 뜻이 이 땅 위에 나타날 수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이 죄의 세계를 밟고 올라서서 하나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 즉 정적인 제 2창조의 세계를 건설해야 할 책임을 져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외적인 세상의 욕망을 저버리고 내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천 사람, 만 사람을 대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즉, 어떠한 사람에게서도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진정 그러한 여러분이 되려면, 이때에 여러분들은 슬픔을 당하더라도 제일 큰 슬픔을 넘어설 수 있어야겠고, 분함을 당하더라도 하늘 땅 이상의 큰 분함을 극복해 내야 되겠습니다. 또 사탄 대한 공분의 심정이 폭발될 때에 언젠가는 그 사탄을 붕괴시키겠다는 마음을 품고 하나의 사람이나 하나의 동지라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 참아야 할 것입니다. 또 그런 마음을 갖고 하늘 앞에 기도하게 될 때에. 하늘이 죄의 역사를 초월하여 새로운 이념적인 입장에서 나와 인연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