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4 to 4-152: 하나님은 몰림받는 인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은 몰림받는 인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
1958.03.30 (일), 한국 전본부교회

4-134
하나님은 몰림받는 인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마태복음 10:16-42

여러분들에게 이 시간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하나님은 몰림받는 인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하나님은 몰림받는 인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4-134
몰림받는 환경에 처한 인간의 실상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 가운데에는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기쁘다고 자랑할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여러분의 마음과 몸 같지만 여러분의 마음된 자리에 또는 몸된 자리에 못 서 있다는 것을 각자가 자인할 것입니다. 즉, 내 마음이 영원한 마음의 입장에서 있지 못하고, 내 몸은 마음이 영원히 거할 수 있는 몸이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자신의 마음을 중심삼고 자신 있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우주 안의 인생행로에 있어서 성공자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에서는 어느 한 사람도 자기 마음대로 다 해보고 살았다고 주장한 사람, 장담하고 나선 사람, 확신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마음과 몸이 무엇인가와 인연을 맺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마음과 몸을 믿어줄 수 있고 알아줄 수 있는 환경을 못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과 사회, 세계, 더 나아가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것도 여러분 것이 못 되어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땅 위에 살았던 모든 인간들은 몰리고 쫓김받던 인간인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옛날 우리의 선조가 사랑의 동산을 이루려 했던 에덴에서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쫓겨난 인류는 지금까지 6천년의 역사가 경과하였지만 그것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지금 이 시간도 몰림받고 있고 쫓기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끼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인륜이라는 법도를 통하여 인간끼리 질서를 세워 나오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것 가지고 안 되니 여기에 종교를 세워 천리법도대로 살 것을 주장하고 있음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세상에 있어서 영원히 변할래야 변할 수 없고, 영원히 갈릴래야 갈릴 수 없는 하나의 완전한 의리를 완성하여 하늘과 땅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의리의 관계를 맺은 사람이 있느냐 할 때에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종교를 세워 놓고 그 도리 앞에 영원히 갈라질 수 없는 자신을 세웠느냐 할 때, 이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는 자신인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천륜 앞에 역시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 어떤 무엇이 가를래야 가를 수 없는 하나된 입장에서 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낄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 세상에서 의리가 떠났고, 인간에게서 도리가 떠났고, 천륜이 떠난 것을 스스로 자인한다 할진대는 , 오늘의 여러분이 마음으로 믿고자 하는 것, 여러분이 몸으로 찾고자 하는 것, 그것들이 천륜을 대신할 수 있으며 도리를 대신할 수 있으며 혹은 인륜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 할때에 역시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를 위하여 있는 가 ! 나는 누구의 것에 귀결시키기 위하여 지금 살고 있는 가. 나는 왜 하나의 사랑과 하나의 생명과 이념을 찾아 허덕이고 있는 가? ‘하고 반문하게 됩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여러분은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여러분 자신들의 처지를 재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심각한 입장에서 이 모든 것을 재발견하게 되었을 때에 자기 마음 속에 스며드는 고통을 피할래야 피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령의 모든 문제, 나아가 인생의 모든 궁극적인 문제, 그리고 인생과 천륜과의 관계를 명확히 알아서 자기 생애의 가치를 실현시키고자 할진대 여러분은 이 혁명적인 일을 위하여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해야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각오와 결심을 하고 실천한다면 하늘의 섭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입니다.

4-136
앞으로의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면 이제 앞으로의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즉 다가오는 종말시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종말시대는 말씀을 통하여 보더라도 인간 세상에 의리가 없는 시대가 됩니다. 도리를 벗어난 시대가 될 것이에요. 천륜을 벗어난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끼리에도 물론 그렇게 되지만 하늘이 인간을 대해 그러한 입장으로 몰아내는 한때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종말시대에 그것을 맞아가지고 천륜을 붙들고 설 사람은 누구인가? 하늘의 도리를 붙들고 설 사람은 누구이며, 인륜을 대신하여 의리를 붙들고 설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여러분이 이것을 반문하여 보고 스스로 자신이 없다는 것을 느낄진대는 천륜 앞에 죄인임을 직고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천륜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죄인이요, 혹은 도리와 인륜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자신인 것을 깨닫게 될 때, 여러분은 거기에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바로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여러분 자신임을 자인하지 않는 다 할진대는 , 여러분은 앞날의 심판의 고개를 넘어설 수가 없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갖고 있는 생명까지도 이 땅에서 몰아낼지 모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지금까지 갖고 있는 주의 주장까지도 시험할 때가 올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천륜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인간의 종말시대에 있어서도 개인은 물론 세계도 역시 천륜을 배반하는 자리에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면 하나님도 역시 인간을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역사적인 노정을 거쳐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옛날에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몰림받아 쫓겨났을 때, 그 한 사람만이 쫓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쫓겨나게 되어 인류는 6천년 동안 쫓김받아 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인류를 복귀해야 할 때가 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전인류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의리로부터 쫓김받을 것이요, 도리로부터 쫓김받을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넘어서야 되겠습니다. 또한 그럴 때에 여러분이 이 땅 위에 참다운 의리와 참다운 도리와 참다운 천륜을 세울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것들이 개인에서 쫓기고 가정에서 쫓기고 국가에서 쫓기고 세계에서 쫓기어, 이 땅 위의 모든 규율이 혼란상태를 이룰 것입니다. 나아가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쫓김받고, 천륜과 온천주로부터 쫓김받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성경말씀에도 써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인간들이 믿음과 의리의 노정을 찾아나서도 인간은 그것을 영원히 지닐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도리의 길을 찾아나서도 이것을 영원한 것으로서 가질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륜의 길을 찾아 나섰다 할지라도 이도 역시 영원한 존재로서 하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서로 믿어야 할 하나의 상대를 찾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자신을 믿어줄 수 있으며 내 자신이 믿어줄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있어야 되는 데. 끝날에 가서는 그가 나를 오히려 치는 입장에 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거쳐 와 가지고 이제는 어떠한 시대가 되었느냐 하면, 사랑하는 부모도, 자녀도, 형제도, 친구도, 사회도, 교회도, 국가도, 세계도 믿을 수 없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세계의 종말시대에 있어서 인간이 취해야 할 것은 개인적인 이념이 아니고 우주적인 이념인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그것을 취하지 못하게 하고 개인으로부터 사회, 국가, 세계까지 몰아내는 가? 이와 같이 개인적으로 믿을 수 없고, 가정적으로 믿을 수 없고, 사회적으로 믿을 수 없고, 국가적으로 믿을 수 없는 입장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이것이 지금 인류가 염려해야 할 크나큰 문제인 것이며, 바로 이러한 입장에 오늘날 우리는 처해 있습니다.

4-138
시대변천과 몰아내는 섭리가 있게 되는 이유
그러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이러한 섭리를 해 나오시는 가. 여러분들이 믿는 그 믿음이 영원성을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설 수 없고, 여러분이 믿고 나가는 도리가 영원성을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설 수 없고, 여러분이 믿고 나가는 인륜도 역시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크게 혁명 하여야 할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 애급문명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애급문명의 사명이 다 끝난 후에는 그것을 때리는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반대파가 나와가지고 때리는 역사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이것이 그리이스 문명을 거쳐서 어떤 새로운 문명의 형태를 갖추게 될 때에 또 새로운 것이 나와 가지고 그 문명을 때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로마를 거치게 되는 데 로마에 들어온 기독교를 때리는 역사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이것을 인수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기독교 봉건사회를 건설한 것입니다. 그런데 후에 기독교 봉건사회도 스스로 영원한 생명력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때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혁명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고 인문주의 사상을 통한 과학 문명이 대두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새로운 신앙혁명의 봉화를 들었던 무리들이 어디로 쫓겨났느냐 하면 지금의 남북미대륙으로 쫓겨갔습니다. 쫓아낸 사람들이 잘 되는 줄 알았지만 쫓김받는 그들이 쫓아낸 사람들의 모든 복을 인계해 갔다는 것을 오늘날 인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책임을 못하면 하나님께서 미국이나 민주주의권내에 있는 국가들을 다시 한번 때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바의 사명이 세계적인 사명을 대신할 수 없는 시기가 올 때는 결코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하늘이 채찍을 가하여 몰아내게 될 때는 새로운 무엇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체에서 새로운 무엇이 나오지 않는 다면 외부로부터 그 뜻을 나타내게 하기 위한 형태가 나타나는 데. 바로 그러한 사명을 갖고 나온 것이 오늘날 공산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산주의 자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사명을 다하면 반드시 둘 아니면 셋으로 갈라진다는 거예요. 거기에서 하나의 우주통일의 이념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늘은 그것을 끊임없이 몰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몰림받는 역사과정을 거쳐온 인간들은 그 결과만을 보고 알 따름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탄식의 덩어리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기독교를 중심삼은 하나님의 섭리역사노정을 회고하여 보게 될 때 반드시 그랬습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을 세우려 할 때에도 개인적으로 그가 살고 있는 가정에서 그를 몰아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했습니다.

하늘은 한 개인을 하늘 앞에 세우고, 또는 지금까지 닦아왔던 터 가운데 하나의 새것을 세우기 위하여서는 그 터전을 몰림받는 운명에 처하게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몰림받는 환경에서 조금도 섭섭하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핍박과 어려움이 올지라도 그 핍박과 어려움보다 더 강한 심정을 지녔고, 하늘을 대신하여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의리의 법도를 세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을 대신하는 도리의 법도를 찾았고, 천륜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버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이리하여 아브라함에 의해 하나님의 제2차적인 섭리를 출발시킬 수 있고 새로운 형태의 이념을 세울 수 있는 개인적인 기준이 잡혔는 데, 그 토대 위에 또 무슨 일이 벌어졌는 가. 야곱이 가정적인 복귀의 사명을 인계맡아야 할 뜻이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가정에서부터 이삭, 야곱에 이르기까지 모두 쫓김을 받았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라반이 사는 하란땅으로 쫓아냈습니다.

그러면 가족과 친척으로부터 쫓김받고 거부당하는 입장에 선 야곱이 어떻게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가? 하늘 앞에 축복받은 그 축복을 잊지 않고 세상이야 변하든 어떻게 되든 나는 변할 수 없다는 하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늘이 믿어주지 않아도 나는 나의 가정이 모두 믿도록 하겠다, 또 축복의 유업을 찾아 이루어 가지고 하늘이 섭리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하는 믿음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아브라함의 가정을 통하여 세우려 했던 그 천륜의 뜻을 계승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21년만에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4-140
중심인물들의 신앙노정과 인류의 당면 문제
또 그 다음에는 가정 단위의 기준이 잡혀졌던 이 토대 위에서 민족형으로서의 범위로 다시 나아가야 할 사명을 짊어진 모세가 그 민족 앞에서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민족 앞에 몰림받는 운명에 처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늘이 몰아내고 민족이 몰아내고 또는 어떠한 사람이 몰아낸다 할지라도 하늘을 대신한 신의의 심정, 그 바라는 소망, 천륜을 대신한 그 간절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가 어떠한 환경이 자기 일신을 몰아치더라도 천성을 대하여 불변의 마음으로 미디안 광야 40년 목자생활을 거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민족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잡혀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민족의 기준이 잡혔으니 세계기준을 세워야 할 때가 옵니다. 그 사명을 짊어지고 오신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역시 이런 민족 기준 앞에 나타나게 될 때에 민족이 갖고 있는 사상과 민족이 갖고 있는 신앙과는 배치된 입장에서 몰림받아야 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를 민족이 몰아냈습니다. 민족이 몰아냈을 뿐만아니라 또한 세계인류가 몰아냈습니다. 그리하여 기독교는 이 몰림받는 운명의 노정을 거쳐 오늘날 전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입장까지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기독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기독교도 역시 끝날에 하늘의 이상세계가 오는 것이 틀림없기에 그때가 되면 하나님이 몰아낸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몰아내는 데 어디로 몰아낼 것인가? 예수를 중심삼고 세계무대로 몰아냈으니, 이제는 온 세계무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과 땅의 세계로 몰아낼 때가 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평면적인 세계의 이념을 가지고서는 설 수 없는 때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제아무리 과학문명을 자랑하여도 과학문명이 인류의 행복을 소개해 줄 수 없고, 아무리 논리적인 체계를 갖춘 철학이 있다 할지라도 그 철학이 인류의 모든 생명문제, 이념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든 분야를 연구하고 나니 오히려 그것이 자기를 친다는 것이며, 나아가 그것이 지금 인류를 구해주지 못하는 입장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힘을 가진 원자력을 연구하여 인류의 평화를 건설하리라고 기대하였지만 결국은 이것으로 말미암아 세계는 손들어야 할 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어떤 학자가 자기가 사랑하는 학문을 중심삼고 일생을 바쳤다 할지라도, 그 학문이 영원한 생명문제와 영원한 이념 문제를 천륜을 대신한 입장에서 보장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이때는 배우고 있던 그 학문이 나를 쫓아내는 때입니다. 철학이면 철학, 과학이면 과학이 인류를 쫓아내고, 종교면 종교가 우리를 쫓아낸 다는 것입니다. 또 더 나아가서는 주의와 사상이 한번 더 쫓아내야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인간들이 허덕이면서 믿고 있는 이 사실들이 불안한 자리에 처해 있는 것을 여러분은 인식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학자들은 자기들이 주장하는 학설을 중심삼고 싸우고 있으며, 종교가는 종교를 중심삼고 싸우고 있습니다. 정치가는 정치가끼리 싸우고 있고 가정은 가정을 중심삼고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을 수있는 하늘의 발판을 갖출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앞으로 나갈래야 나갈 수가 없고 돌아서려니 흑암의 권세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입장 즉, 이렇게도 못하고 저렇게도 못할 입장으로 온 세계 인류는 쫓겨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망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 평면적인 세계의 이념을 밟고 올라 서 가지고 이 세계인류를 무한한 영계에까지 인연맺어 주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오늘날 인류는 알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섭리를 하시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의 종말시대인 끝날에 온 세계는 공포권내에 처해 있습니다. 아무리 세계의 선진국가권에 처해 있는 국가라 할지라도 그들도 마음을 못 놓고 자기의 주권을 믿지 못하는 그러한 공포권내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권내에 처해 있는 모든 종교도 또 사회적인 모든 것이 우리들을 행복의 입장에 세워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하는 곳곳마다 짜증이며, 믿을래야 믿을 수 없고, 의리가 파괴되고, 도리와 법도가 없어지고 천륜의 이념이 설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2천년 전에 이 땅 위에 오셔서 선언하셨습니다. ‘나중에는 너희 부모가 원수요, 너희 자녀가 원수요, 너희 사랑하는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그것은 왜 그러냐? 그것은 인간이 지금까지 믿고 바라며 나오던 모든 것들을 다 끊어야 새로운 하늘의 섭리와 관계맺을 수있기 때문입니다.

4-142
‘나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라’하신 의미와 하나님의 뜻
그와 같이 모든 것과 관계를 끊어야 할 때를 피하도록 하기 위하여서 하나님은 인간 앞에 복된 소식을 전해 주었는 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전한 신약복음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나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라’는 엄청난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 시대에 용납될수 없는 말씀이었지만 예수는 천륜의 길을 가야 할 인간이 다 한번은 버림받아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어차피 2천년 후에 다시 한번 버림받아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2천년 전에 버림을 받은 사람은 거기에서 천적인 이념의 가치를 얻게 되어 2천년 후의 시대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시금 제 2차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이 역사의 현실과는 모순된 선언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 자신들은 어느 누가 분리할래야 분리할 수 없는 친구, 역사를 대신한 의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를 가졌습니까? 또 그러한 부부, 그러한 부모, 그러한 자녀를 가졌습니까? 영원히 서로 믿어야 할 인간이요 서로 의지하여야 할 인간인데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서로 영원히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이런 발판이 점점 무너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우리의 문제는 무엇일 것인가? 인간세계에 있어서 이 모든 인간의 의리와 도리와 천륜의 법도를 깨뜨리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일 것인가? 이와 같이 보이는 듯하나 그 배후에는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선한 마음이 잠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것을 예시시켜서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나아가 ‘너희가 땅에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으리라’고 역설적인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인류가 왜 이 말씀을 믿어야 할 것인가? 만일에 진리라 할진대 이 말씀은 어느 한때에 가치를 발휘할 때가 올 것입니다. 오늘날이 바로 그러한 때이기 때문에 이 성경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부모가 자식을 배반하고. 자식이 부모를 배반하고, 부부끼리 배반하고, 형제끼리 배반하고, 친구끼리 배반하는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세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이냐?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을 믿고 자식이 부모를 믿을 수 있는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부부끼리, 형제끼리, 자녀끼리 서로 믿을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친구, 사회 , 국가, 세계 역시 영원히 믿을 수 있어서 인간이 편안한 자리에서 모든 것을 잊고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을 이루고자 한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은 그런 소망과는 거리가 먼 세계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세계를 심판할 수 있는 자리에 두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해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요, 믿을수 없는 땅이요, 믿을 수 없는 세상의 주의라는 것을 뼈에 사무치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으로 하여금 이 땅 위의 어떠한 무엇을 중심삼고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땅 위에서 남을 많이 믿은 사람은 많은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땅 위에서 많은 소망을 품었던 사람은 도리어 큰 낙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이런 실정에 놓여 있습니다.

4-144
인간의 당면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예수님의 행적
하나님이 이런 섭리를 하시는 것은 이 모든 것을 파멸시키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세계를 자기들 뜻대로 만들려 하고 있고 기존의 주의 주장과 제도를 고집하고 있는 데, 이것들을 그대로 놔둔다면 인간의 영은 부활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적인 범위에서 이것들은 하나 하나 잘려나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세계적인 단위에서부터 내 개인 단위에 이르기까지 믿을 수 없는 입장에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되면 인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행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이런 평면적인 입장에서 마음을 돌이켜 가지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고, 나아가 어떤 외부적인 불신의 조건들로부터 자극을 받는 다 할지라도 그 자극에 비례하여 하나님을 찾아올 수 있는 한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사회의 부패를 바라보게 될 때에 이것은 무엇으로 해결될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참다운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역사과정을 통하여 수고해 나오고 계십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에 개인과 인류 앞에 몰리고 하늘 앞에 몰린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인간이 영원히 동거동락할 수 있는 하나님의 외아들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세계에서 가장 몰리는 입장에 서셨던가? 또 하나님이 모른다 하는 입장에 서셨던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 :46)'”라고 하면서 하늘을 향하여 호소하셨던가? 이것은 인간이 천륜을 배반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 개인적으로 아담이 배반한 것을 탕감복귀하여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개인적으로 버림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버림받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 :39)”라고 하였습니다. 자신 앞에 어떠한 죽음과 고생이 닥쳐오더라도 그것을 소화시키고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이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원수들도 그를 지배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배척하고 민족이 배척하여 죽음의 자리까지 나아가서도 변치않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부활의 문이 열리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리스도가 배척받음으로 말미암아 섭리의 뜻 앞에 부름받은 제자들이 배척받았고, 제자들이 배척받음으로 기독교단이 로마제국으로부터 국가적인 배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그들을 쫓아냈지만 나중에는 도리어 그들에게 굴복했습니다. 또한 중세기에 교황청이 부패하여 루터가 개혁운동을 제시하자 그를 쫓아냈지만 루터의 개혁 사상은 그들보다 더 많이 세계에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민주주의를 중심삼은 이 세계도 공산주의의 침략이 있는 동시에 하늘이 공세를 취하는 때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세계 앞에 또는 교회 앞에 쫓김받는 어떠한 무엇이 나와야 할 것을 우리는 역사과정을 통하여 한번 생각하여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은 역사적으로 시달려 왔지만 오늘날 끝날에 와서는 형태는 외적 세계형으로 벌어졌으나 내적으로 하나님이 세계를 붙들 수 있는 때가 다가옵니다. 외적으로는 통일이념의 세계형을 갖추는 반면 내적으로는 오늘날 이 땅을 향하여 영계가 접근하여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 하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헤아려보더라도 여러분은 2천년 기독교 섭리사에 비교될 수 있는 그러한 반대를 받아야 합니다. 외적으로는 사회상의 모든 조건들이 여러분을 반대하여야 할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그 모든 조건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 것인가. 죽어도 천륜을 위해서 죽고, 살아도 천륜을 위해서 살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한 각오를 가져야만이 그 모든 조건을 밟고 올라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에도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 17 :33)”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하늘이 여러분을 배척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끝까지 아버지를 붙들고 섬길 수 있는 각오를 지녀야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부활의 은사권내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4-146
하나님의 소망과 한민족이 걸어온 길
그러므로 이제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인륜을 통하여 의리를 찾아 세워야 되겠고, 신앙과 종교를 통하여서는 도리를 찾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영원한 소망을 성취할 수 있는 천륜을 찾아 세워야 할 입장에 서 있다 할진대는 , 의리를 통할 수 있고 인륜의 도리를 통할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의탁해 놓고도 안심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 천륜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륜을 세우려면 본연의 도리가 필요하고 본연의 도리를 세우려면 천륜이 필요한데, 그 천륜은 무엇을 중심하고 나타날 것인가? 이는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나타날 것입니다. 본연의 도리는 무엇을 중심삼고 나타날 것인가? 이는 생명의 권한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인륜을 대신한 의리는 무엇을 갖고 나타나야 하느냐 하면 영원한 신의를 중심삼은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천륜을 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진정 마음으로 하나님 대신 믿을 수 있는 하나의 친구를 가져야 됩니다. 나아가 하나님 대신 믿을 수 있는 하나의 형제, 부모, 부부를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가정을 넘어 사회, 국가, 세계적인 무대로까지 뻗어나가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신 소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개인의 입장에서 몰아내 가지고 믿을수 없는 입장에 세워 놓고 인간세계의 어떠한 소망도 다 끊어 놓은 가운데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하늘을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믿는 사람이 합하여 즉, 형제 형제끼리, 친구 친구끼리 하나님 대신 서로 믿어줄 수 있는 관계를 맺기를 하나님께서는 바라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늘이 바라는 최고의 희망인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천륜을 대신한 사랑을 중심삼고 인륜의 도리를 세워 오늘날 기독교를 통하여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의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곧 예수를 중심삼은 하나의 가정, 하나의 친구, 하나의 부모를 세워 놓자는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도리와 천륜을 따라나선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즐거워하기 전에 하늘의 이념을 중심삼은 가정의 이념을 느껴야 되겠고, 내 자녀를 사랑하는 대신 하늘을 위하는 이들을 내 자녀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을 지녀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친구지간에도 그러해야 되겠고, 교회, 국가, 세계도 그러한 이념 밑에서 관계가 맺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섭리가 이러하고 역사적인 노정도 이러한 길을 거쳐나온 입장에서 오늘날 우리가 대한민국을 다시 바라보게 될 때, 이 민족은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지배하였는 데, 지배했던 그 불교를 이 민족은 쫓아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조시대에 와서는 유교가 지배했는 데 이 민족은 이제 또 유교를 쫓아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노정을 헤아려 보게 될때에 오늘날 기독교의 입장에 있는 이 민족이 여기에서 기독교를 쫓아내면 어디로 갈 것인가. 이 민족을 염려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는 끝날이 되었기 때문에, 즉 이 민족이 세계의 운명과 공통적인 보조를 취하여야 할 때가 왔기 때문에 전세계 기독교가 새로운 이념의 시대를 거치기 위해서는 이 민족을 한번 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민족이 세계인류 앞에 불쌍한 민족으로 나타나야 할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할진대는 이 민족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쫓김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 민족은 지금까지 이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고, 한세기에도 몇번씩 쫓김받는 역사과정을 거쳤던 것입니다. 믿을래야 믿을수 없는 비참한 노정을 거쳐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안식의 터전 속에서 마음놓고 살지 못한 민족으로 지금까지 흘러와 가지고 이제는 양대 사조에 휩싸여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있습니다.

조그만 한반도지만 종교적으로 볼 때, 불교가 지배했었고, 유교가 지배했었고, 지금은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3대 종교가 지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양대 사상이 여기서 혼선을 빚어가지고 이 민족은 혼란에 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 민족을 천륜이 망하게 하기 위한 뜻이 아닌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이 이러했기 때문에 이 민족도 최후의 종말시대에 와서는 민족끼리 서로서로 신의가 다 깨질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또 그러한 때에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역사를 이렇게 지배해 나왔듯이 이 민족에게도 기독교를 대신하여 배척받을 수 있는 하나의 모임이 나오기를 나는 아버지를 대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4-148
승리한 아벨이 되려면
오늘날 세계적인 운세 앞에 농락을 받는 이 민족을 세계주의가 삼키지 못하면 이 민족이 이 세계를 삼켜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삼켜야 될 것인가. 이 세계의 인간들이 지니고 있던 것, 즉, 지금까지 이 땅 위의 주의를 삼켜야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민족이 천성을 대신한 천륜을 소화할 수 있는 아량을 가지게 된다면 이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러한 사회에 처해 있는 여러분들 낙망하지 마십시오 !믿지 못할 사회의 실정을 바라보고 하늘을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의 하나님 아버지시여 ! ‘라고 부르며 나아갈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까? 그러한 마음이 있으면 산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로마에서 무참한 학살을 당하였지만 나중에는 도리어 로마를 삼켜버렸습니다. 기세 당당한 로마가 기독교를 여지없이 삼켜버릴 줄 알았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하나의 입체적인 힘을 가진 기독교였기 때문에 로마를 삼켰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지 자신의 반대세력을 다 삼켜 소화시키지 못하는 한 그 자체보다 더 강력한 힘 앞에는 삼킴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 민족을 대신하여 크나큰 사명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들의 입을 통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또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여러분 자신들이 장담하고 나섰습니다. 분명코 그렇다 할진대 여러분은 세계로부터 배신받는 입장에 섰지만 하늘만은 여러분을 저버릴 수 없는 위치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어느 국가에 들어가든지 그러한 신념을 갖고 그 민족을 위해 피를 뿌리는 노정을 거쳤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도 그러한 신념을 갖고 자신의 생활권내에서 서로서로 믿을 수 있고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하나님이 변하기 전에는 우리가 변할 수 없다는 이런 신념을 가진 모임을 찾아헤매야 할 때입니다. 그러한 모임이 어디 있는 가, 그러한 교회가 어디 있는 가 하고 찾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임, 그러한 교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그러한 교회, 그러한 모임을 이룰 수 있는 한 개인을 찾아 세우기 위해 수고해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땅은 사탄세계요, 하늘의 권한이 미치지 못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하늘은 개인으로부터 빼앗아 나오는 섭리를 전개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원리에서 배운 가인과 아벨의 역사였습니다. 먼저 악한 것이 나와 선한 것을 치게 되지만 나중에는 선한 것이 악한 것을 누르고 승리해 나오는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즉 선한 것은 먼저 얻어맞는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었는 가. 개인으로부터 얻어맞은 분입니다. 나아가 제자들로부터 얻어맞았고, 교회로부터 얻어맞고, 국가로부터 얻어맞고, 세계로부터 얻어맞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것에 굴하지 아니 했습니다. 어떤 개인에게 굴하지 아니 했고 교회 앞에 굴하지 아니 했으며, 민족과 국가 세계 앞에 굴하지 아니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역사적이고 내적인 파란곡절을 거치고 난 후에도 하늘 대해 불변의 충성심을 지녔기에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민족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에도 이 민족이 살 수 있는 길은 인류를 대하여 진리를 중심삼고 억천만년 갈라질 수 없는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서로 믿을 수 없는 환경에 살고 있다 할지라도 의리를 중심삼고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천륜을 대신한 교회를 붙들고 충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바로 그러한 뜻을 나타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4-150
몰리는 입장에 서는 것과 복의 인계
그러면 오늘날 만일에 그러한 뜻이 나타나 있고 천륜을 대신할 수 있는 그러한 곳이 있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그곳을 간절히 소망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그러한 천륜의 도리를 중심삼은 뜻이 나타난다 할진대는 그 뜻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각오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늘의 사랑의 실체로 모든 인류의 신랑으로 서기까지 세상의 모든 사랑을 다 잊어버리고 하늘의 사랑에 취해 사신 것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뜻이 한민족에게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뜻이 이 민족 위에 나타난다면 여러분 자신들은 개인적으로 몰리게 되고 나아가서 세계 앞에 몰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몰림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으리라고 나는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이 몰리는 입장에 서는 것은 나를 망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개인에 연하여 있는 복을 나에게 인계하여 주기 위함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에 연하여 있는 세계적인 복을, 사회가 가진 세계적인 사회의 복을, 교회가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교회의 복을, 국가가 가진 세계적인 국가의 복을, 더 나아가서는 천주에 간직되어 있는 천륜의 복을 인계해 주기 위하여 그러한 서글픈 자리에 놓인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끝날에 천륜의 법도까지 밟고 올라서 하나님의 뜻 앞에 서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할진대는 생사를 넘어설 수 있는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원수에게 복을 빌었던가. 하늘편에서 원수인 사탄에게 복을 빌어주면 원수인 사탄일지라도 하늘편에 무엇을 내주어야 됩니다. 응당 모셔야 할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천리를 배반하고 자기 주권을 내세워 가지고 하나님을 대신하겠다는 자가 사탄이었지만 인간이 원수를 사랑한다는 마음만 있으면 사탄들은 근본적으로 파멸되어버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대해 오히려 복을 빌어 주었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개인적으로 배척받고, 사회적으로 배척받고, 국가적으로 배척받고, 세계적으로 배척받았지만 그들을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외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어찌하여 그러한 말씀을 하셨던가? 사탄권내에 있는 원수까지 빼앗아 오자니 그러한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때릴 때,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하늘을 대신하여 손을 들어 복을 빌어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까지도 하늘이 임재할 수 있는 안식의 터전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정신이 그와 같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오늘의 기독교 신자들은 일대일의 억울함을 참지 못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혼자서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가정의 십자가와 핍박을 참지 못하면 가정보다 작은 천국에 갈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사회의 핍박을 넘고 국가와 세계의 핍박을 넘어설 수 있어야만 보다 차원 높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당시 인류에게 또는 후대에 믿는 성도들에게 소개해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은 어느 단계에 고착되어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들은 새로운 우주의 창설자이기 때문에 낡은 것을 가지고서는 안됩니다. 여기에는 새로운 것을 가져야만 된다는 것이에요. 우리들은 이런 신념을 가지고 한 마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데 있어서 내가 말하는 것이 내 개인을 위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먹고 마시는 것도 내 자신을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24억 인류를 위해서 먹는 다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뜻을 지닌 무리가 많다면, 그들이 세계를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넘어 우주적인 통일의 이념을 가지고 섭리해 나오시기 때문에 바로 그러한 이념을 가진 민족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민족을 세계에서 제일 가는 민족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4-152
하늘과 관계 맺을 수 있는 기점
오늘날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물질이나 명예, 이 모든 것을 영원히 가질 줄 알고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지금까지의 철학이나 정치, 경제등 이 모든 것은 일대 변혁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2천년전 예수가 말하던 것이 공론이 아니라 할진대는 오늘날의 이 모든 것은 새시대의 것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이 우주적인 이념을 대신하여 하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전체적인 섭리의 뜻을 대신하지 못한다 할진대는 다시 오시는 예수님 앞에 신부로 설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은 여러분 개인의 욕망을 채우고 이 민족만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 세계, 더 나아가서는 천주를 위해서 울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예수님도 하나님도 오늘날까지 섭리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개인을 희생시켜가지고 그 개인을 제물삼아 가정을 찾고, 가정을 희생시켜가지고 그 가정을 제물삼아 민족을 찾고, 민족을 희생시켜가지고 그 민족을 제물삼아 세계를 찾아 세우기 위해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의 것은 이제 비료가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러분들은 새로운 역사 창설의 선봉자가 못 되겠거든 그 뜻을 이루어 나가는 데 힘을 북돋아 줄 수있는 비료라도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그러한 비료가 되려면 생명 앞에 흡수당할 수 있는 구성 요소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무한히 흡수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늘의 비료로서 생명을 북돋을 수 있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뜻 앞에 자기 일신의 억울함과 분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불쌍한 처지에 놓여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개인과 가정을 부르시지만 우리가 살 수 있는 준비를 다 갖취 놓고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 땅의 통일의 이념된 발판을 갖춘 그 끝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생명들이 억울함과 희생의 피를 흘려가면서 이 뜻을 이루기 위해 참고 나왔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이 뜻을 인계맡아 소망의 그곳까지 나아가 하나님과 관계맺어나갈 수 있는 신념이 있습니까? 그러한 신앙관이 서 있습니까?

그러면 오늘날 믿는 다는 사람에게는 이제 하늘의 모든, 이념을 통하여 몰아내게 되는 데 그 몰아내는 방향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자는 이제 역사적인 반역자요 천륜의 섭리 앞에 반역자인 것입니다. 그런 자는 세계에서 배척받아 마땅하고, 이 땅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저나라로 데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공중잔치에 들린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적 견지에서 개인이 몰리면 사회가 용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국가에서 몰리면 세계가 용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서 지금까지 세계가 나왔는 데, 이제 앞날의 세계에서 몰림받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거기에서 하늘의 협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우리는 어디를 향하여 나갈 것인가. 일대 비약을 통해서 새로운 탈출의 이념을 향하여 나아가야 할 우리가 준비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세계에서 추방당하더라도 하늘과 영계와 관계맺을수 있는 하나의 기점은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는 가. 이런 뜻이 오늘날 우리 앞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기독교에 심판의 한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소망의 한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운명의 노정이 이와 같았으니 이제 여러분의 나아가는 노정에도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민족적으로 혹은 세계적으로 어떠한 핍박이 있더라도 참고 나설 수 있어야 되겠으며, 아무리 그 핍박이 크다 할지라도 그것을 넘어서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세계적으로 몰아낼 사람이 없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살아보아야 7, 80년밖에 못 사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을 하는 사람들이 하늘을 붙들고 있는 한 전 세계 적으로 몰아내 봐야 영원히 몰아낼 사람이 이 땅 위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예수님은 아셨기 때문에 2천년 동안 싸움의 생활에 있어서 굽히지 아니하고 수고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생활하는 여러분들, 자기의 억울함과 자기의 분함이 있다고 이미 관계 맺은 신의를 저버리고 돌아서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은 하늘의 뜻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오늘날 세계사적 견지에서 인류 앞에 또는 악한세상 앞에 몰림을 받아 이 땅에 발 붙일 곳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길을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 추방당할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중심한 최후의 승리를 쟁취할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지상의 원수들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계의 원수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 스스로 타개하여야 할 중대한 과업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가 부딪치는 세계가 기필코 올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 앞에는 영적 세계의 침공시기가 가까와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지상에서 우리들이 이해하지 못할 기이한 현상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기에 자신의 영력을 갖추어야 되겠는 데,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밀려나갈 것입니다. 밀려나가는 사람은 자연히 심판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심판시기인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