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4 to 4-132: 모든 일을 복귀하여야 할 예수의 심정

모든 일을 복귀하여야 할 예수의 심정
1958.03.23 (일), 한국 전본부교회

4-114
모든 일을 복귀하여야 할 예수의 심정
마태복음 17:1-14

[기 도]

아버님, 하늘의 뜻을 기필코 성취시켜야 할 역사적인 운명의 노정이 저희 앞에 가로놓여 있음을 알았사오니 저희에게 능력의 손길을 펴 주시옵소서.

저희의 몸 마음에 오직 아버지의 뜻만이 가득차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땅 위에서 하늘의 어떠한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하늘의 뜻을 인간적인 생각으로만 헤아리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서 행동하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몸이 먼저 움직이는 아들딸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마음과 몸을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정해 놓으신 천리법도와 부활의 이념이 저희들과 관계를 맺게 될 때에는 , 역사과정을 통해 섭리해 나오신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 아버지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복귀의 심정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그리하여 이 땅을 대해 염려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은 부족한 모습들이오니, 아버지께서 붙들어 일깨워 주시어서 아버지의 백성으로 세워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거지와 같은 불쌍한 저희들이오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의 손길을 느껴 노래하고자 하는 저희들이오니, 아버님, 저희에게 명령하시옵고 저희에게 운행하시옵소서 .

오늘 이 시간 전체의 섭리의 뜻 앞에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저희에게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저희의 부족함을 제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의 마음에 아버지의 심정만이 사무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몸이 아버지의 역사적인 모든 심정을 체휼하여 아버지 앞에서 탄식의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어서 아버지를 진정으로 섬기는 저희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랫동안 사탄의 품에 안겨 살던 철부지한 저희들, 사탄과 관계된 모든 환경을 끊겠사오니, 아버님, 이 시간 긍휼히 보시옵소서. 또한 이 시간 저희를 다시 한번 품으시어 생명과 부활의 권능을 나타내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시간 모인 아들 딸 위에 숨겨진 말씀을 나타내 주시옵고, 의심의 모든 조건을 헤치고 아버지의 원하시는 뜻대로 생명의 은사가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오직 아버지께서 친히 운행하시어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4-115
말 씀
오늘 이 시간은 ‘모든 일을 복귀하여야 할 예수의 심정’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6천년 섭리역사는 복귀의 섭리역사입니다. 그리고 복귀섭리역사의 목적은 잃어버린 인간을 찾는 것이요, 잃어버린 피조세계를 다시 찾는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배워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인간을 구원한다는 말도 이 하나의 목적을 성취한다는 것이요, 우주도 이 하나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천국이념을 바라는 것은 본성적으로 천국이념을 바라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내 자신을 두고 볼 때에, 내 자신의 생활에 행·불행이 교차되고 있는 것, 무한하고 영원한 세계도 행복의 천국과 불행의 지옥이 공존해 오고 있는 것도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4-116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움과 예수
그리고 바라는 천국, 원치 앉는 지옥의 공존은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복귀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인 것임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그 가운데 인간을 자기의 형상대로 빚어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이 영원하심과 같이 영원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행복을 느끼면 인간도 그 행복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할 수 있고, 하나님이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 데 오늘날 여러분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있는 지 없는 지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어떨 때에 기뻐하는 지 슬퍼하는 지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늘을 위하여 슬퍼하고 수고한 사람들은 자신을 제물로 삼고,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억울하고 분한 심정을 참아 나왔는 데,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이런 사실을 상상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들을 오랜 역사를 참아나오면서도 버리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그 누가 알 것인가? 하늘을 한 두번 배반한 것이 아니었고,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거쳐 나오면서 억천만번 반역하였던 인간들, 그런 선조들의 후손된 우리들은 하늘을 대하여 면목이 없고 머리를 들래야 들수 없는 입장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심정 앞에 오히려 슬픔을 가하는 놀음을 하고 있는 인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느끼고 사는 사람은 심히 적습니다.

이런 인간들에게 어떻게 하여 하나님의 실존하심과 역사적인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케 하고 섭리의 노정을 알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타락 이후 인간을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택해 세우셨고, 모세를 택해 세우셨던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4천년이라는 역사과정을 거친 다음에 비로소 예수님 한분을 세우셨는 데, 예수님은 이날까지 복귀섭리의 뜻을 붙들고 수고해 오신 아버지의 내적·외적 사정과 아버지의 내적·외적 심정을 인간들에게 알려주실 수 있는 한분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주관할 수 있는 분이었고 하나님만이 그와 더불어 의논할 수 있었으며, 또 하나님의 내적 사랑과 심정을 가장 잘 아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타락이란 어떤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인가? 하나님의 사정을 몰라준 것이 타락이었고, 하나님의 실정을 몰라준 것이 타락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일 개인을 찾아 헤매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개인을 찾아 4천년 동안 수고하여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4천년만에 비로소 자기의 사정을 통하고 자기의 심정을 논의할 수 있는 한분, 예수님을 찾아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인류에게 자신의 사정을 알게 하고 자신의 심정을 알게 해야 할 간곡한 소원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간곡한 소원을 이루어 드려야 할 사명이 이스라엘민족에게 있었는 데. 그들이 예수님을 배척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비극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역사적인 흥망성쇠가 교차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정과 통할 수 있는 길을 걸어 나가야 되겠고, 하나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길을 걸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이 즐거워하면 인간도 즐거워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면 인간도 기뻐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의 참사람으로서, 하늘의 혈통으로 창조 본성의 모습을 갖추어 이 땅 위에 만민을 대표하여 나타나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정을 대신하여 나타나셨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인간들이 예수님과 하나되었더라면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을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친구도 될 수 있었는 데,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이 한 사실이 역사는 흘러왔지만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못한 입장에 놓여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118
예수의 심정을 알지 못한 유대민족
그러면 예수님의 죽음보다도 더 슬퍼한 하나님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던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예수를 보내신 것은 예수님을 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영적인 구원섭리를 완성시키는 것이 예수님을 보낸 목적이 아니라, 이 땅위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정과 심정을 알고 예수와 더불어 함께 기뻐할 수 있는 한날을 이루시고자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게 되었고 하나님은 자신의 뜻이 좌절되는 비운을 맞았으며,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더욱 큰 슬픔에 잠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사정과 심정이 각각 다릅니다.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사람이면 만 사람의 생활환경이 다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천가지 만가지의 목적지를 향해 갈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늘이 규정한 법도를 따라 천성이라는 한곳을 향하여 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정과 심정을 다 포기하고, 오직 천성의 사정과 심정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의 주의와 하나의 심정과 하나의 사정을 갖고 인간들 앞에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각자 자신들의 천만가지 사정을 갖고 그를 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들은 다 망했고, 그로부터 떨어져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4천년을 수고하여 보낸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자 다시 성신을 보내셨습니다. 이리하여 삼위신이 일체되어 하늘의 뜻과 하나된 사람들을 찾기 위해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2천년 전에 왔다 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한 개인이로되, 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하늘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이것을 그 시대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예수는 한 개인이었지 만, 4천년 역사를 대신한 결실체요, 전세계 인류를 부활시킬 수 있는 생축의 제물이요, 천추만대까지 이어질 복의 기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지상에서 누가 알았느냐 이거예요. 하늘의 심정을 소개 하기 위해 인간 앞에 예수를 보내셨으나 이런 사정을 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사정을 알아주어야 할 인간들이었고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주어야 할 인간들이었는 데도 인간들은 그와는 반대였습니다. 오히려 “예수여 ! 나의 사정을 받아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나의 사정을 알아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섭리노정을 가로막았던 통탄스러운 행위였음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당시의 인간들이 하나님의 사정과 심정을 대신한 예수의 사정과 심정을 통했다면. 즉 예수의 심정이 이스라엘민족의 심정이 되었던들 예수는 죽지 않았다는 거예요. 또 예수께서 최후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막14 : 36)”라고 하신 기도가 필요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심정 가운데 4천년의 서러움이 있었다는 것을 어느 누가 알았습니까? 만민의 애달픈 심정을 풀어 주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애달픈 심정을 어느 한때 알아준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주님은 우리를 친구라 하셨나이다’ 라고 뻔뻔스럽게 기도하고 있는 데, 단순히 그러한 기도만 해서는 아니 됩니다. 실제로 전체복귀섭리 역사를 대신했던 예수님의 심정과 사정을 알고 기도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으로부터 ‘그대의 마음이 내 마음이요, 그대의 몸이 내몸이요. 그대의 사정이 내 사정이요, 그대의 심정이 내 심정이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의 심정을 안 사람이 당시에 있었더라면 이스라엘민족이 반대하고, 교단이 반대하고, 문도와 사도가 다 외면하는 자리에 서 있었을지라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이해하는 한 사람을 통하여 그 모든 것을 푸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땅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을 위로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4-120
예수님의 여러가지 서러움
예수님은 할말을 다하지 못하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기 일신의 목적만을 위해 사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30여년 동안 목수의 일을 비롯하여 어려운 일을 하시면서 뜻을 위하여 묵묵히 제물의 노정을 거치셨습니다. 그리하여 때를 맞아 3년 공생애의 노정을 출발한 그날부터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그 시간까지 어느 한 시간도 자기 개인의 생애만을 위하여 생활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사정을 소개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소개하여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음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마음을 당시의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셨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는 만물을 바라볼 때에 만물로부터 어떠한 느낌을 받았느냐 하면, ‘인간의 타락으로 맺힌 한을 해원시켜 주시옵소서’ 라고 탄식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품을 떠남으로 인해 만물도 하나님의 품을 떠나 4천년 동안 탄식권내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만물은 예수님 한분을 간절히 고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만물들이 자신을 대하여 ‘오! 주여. 우리들을 해원해 주시옵소서’라고 탄식어린 호소를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4천년 동안에 수많은 영인들이 영계에서 신음 하면서 자신들을 해방해 줄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고, 그 소원을 성취해 줄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도 아셨습니다. 더 나아가 지옥같은 지상세계에 살고 있었던 당시의 인류들, 사망의 철망에 갇히어 아우성을 치면서 비참한 환경에서 해방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뭇생명들을 바라보게 될 때, 예수님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불타는 심정를 가지고 사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예수는 지상의 만민과 영계의 지옥에서 신음하고 있는 영인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셨고, 하나님의 역사적인 사정과 심정을 헤아리면서 눈물을 흘리셨던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을 바라볼지라도 그 한 사람을 개인으로만 여기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를 대신하고 온 천주의 이념을 대신하여 인간을 바라보았고, 한 인간에 대한 소망이 크면 큰만큼 간절한 마음도 컸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느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대의 아우성소리를 듣고 서러워하셨는 데, 그 서러움은 자기 일신을 위한 서러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4천년 동안 하나님을 대하여 사탄이 반대하던 것을 회상시켜주는 장면이라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장면을 통해 하나님의 서러움을 느끼실수 있었습니다. 민족이 아우성치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그 모든 사정을 통해 하나님의 서러움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루 말할 수 없는 딱한 사정과 딱한 심정을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이 위안받아야 되겠다는 것, 즉, 자기 일신으로 말미암아 4천년 동안 애쓰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여야 할 입장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통하여 증거된 예수는 믿기 쉽지만 예수님을 직접 대하는 입장에서는 믿기 어렵습니다. 후대에 높이 평가된 예수는 신뢰하기 쉽지만, 십자가에 달리고 이스라엘의 반역자로 몰리는 예수님을 믿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바라보시던 하나님의 슬픔은 어디에 맺혀 있었던가? 몰리던 그 장면에, 쫓기던 그 장면에, 못 박히던 그 장면에 맺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당시의 인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을 원했지 그 말씀을 세우기를 원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심중의 뜻을 실제의 생활 노정에서 실천하고자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때나 지금이나 하늘은 서러워하여야 할 입장에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예수의 이름으로 몰림을 받아 보면 예수의 사정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을 대신한 고난을 당해 보면 억울한 아버지의 심정을 알게 될 것입니다.

4-122
하나님에 대한 예수의 효심
예수가 겟세마네동산에서 홀로 기도할 때 세 제자마저 하룻밤을 같이 세우지 못하고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도 예수님은 왜 그들을 책망하지 못했습니까? 그것은 4천년 동안 당신을 배반하는 인간들이 많았지만 책망 하지 못하시고 심판하지 못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제자들이 체휼하지 못한 예수의 심정을 체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채찍을 맞아가면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를 향해 나아갈 때 예수님은 하늘을 원망할 수도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복귀의 섭리를 해나오기 위하여 자기가 십자가를 지는 것 이상의 어려운 고비를 넘어 오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원망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딴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십자가에 못박힘을 당할 때, 즉 양손, 양발에 못을 박히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이고, 옆구리가 창에 찔리고 생명이 끊어지는 입장에 있게될 때에도 예수님은 불신하는 인간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그러한 사정에 처한 것은 자신을 통하여 만민에게 하나님의 사정과 심정이 전달되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뜻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뼈저리는 심정을 품고 하늘을 대하여 머리를 숙이고 황공한 마음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인류 앞에 메시아가 될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무엇을 느끼셨던가? 예수님은 4천년 동안 하나님의 안타까운 서러움의 심정과 사정을 체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예수의 마음은 비로소 통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또한 그와 같이 하나님과 예수님이 심정적으로 하나된 그 마음은 어느누구도 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역사적인 섭리의 유업을 밟고 올라섬으로 말미암아 영계에 있던 영인들이 소생급 섭리에서 장성급 섭리의 부활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요, 이것은 민족 사적인 혁명이 아니라 우주사적인 혁명이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구약을 믿으며 행의적인 신앙을 하던 지상인들도 신약을 통하여 신의적인 신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대 변혁이었습니다.

실체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예수의 마음이 하나의 화신체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기에서 예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땅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같은 심정을 갖고 같은 사정에 처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인간들을 중심삼고 직접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이 천주적인 사명을 갖고 실체의 인간으로 오셨던 예수님을 다시 한번 인식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시던 그런 심정을 지니고 기도를 하여야 되겠습니다. 골고다 이상의 희생을 당해 마땅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은 자신들이 수고한 것이 조금 있으면 ‘오 하나님이여 ! 이 수고를 받아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했고, 자신들의 사정과 애달픔이 조금만 있어도 ‘하나님이여 ! 나의 사정을 맡고 나를 위로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의 심정과 인간들의 심정은 그 느끼는 방향이 상극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런 입장에 서 있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기들 12제자만으로 만족하실 줄 알았고, 자기들이 예수의 소원의 전부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민족은 엉뚱하게도 자기 민족만으로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는 거예요. 또 유대교단은 자기 교단만으로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중심으로 뜻을 이루어서 그것이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어 영원한 세계에까지 나아가겠다는 복귀의 이념을 갖고 계셨는 데, 예수님 앞에 나타났던 12제자들은 자기들만으로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질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적인 비운과 슬픔이 이것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124
제자들의 불신과 무지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자기 일신을 넘어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 나아가 무한한 영계까지 복귀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개인을 찾아 헤매신 것은 민족을 찾기 위함이었고, 민족을 찾아 헤매신 것은 세계를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찾기 위하여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은 온 천상천하를 하나님이 치리하시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수고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천주적인 계획을 실현하여야 할 자신 앞에 나타나는 그러한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깊은 심정과 뜻을 말해줄래야 말해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딱한 형편에 처한 예수님이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 : 12)”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계 만상을 복귀하여야 되는 하나님의 섭리를 대신한다는 천주적인 사명감에 불타서 하늘을 대하여 충성의 도리를 다하려고 했는 데 당시의 인간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몰랐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나는 예수를 수십년 믿었어, 나는 목사야. 나는 장로야. 나를 하나님이 몰라 줄 리가 없어’ 이렇게 주장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머리 숙여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4천년 동안 선민권을 자랑하던 이스라엘민족이 망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3년 공생애 과정에서 예수와 희노애락을 같이하던 12사도마저 예수를 불신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무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이러한 모순의 역사가 벌어졌던가? 예수님의 관념이나 소망이 제자들의 관념이나 소망과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불신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님 당시에 만물의 아우성소리를 듣고 어둠 속에 있던 인간들이 하늘을 대하여 ‘저들을 해방시켜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던 서글픈 심정을 느끼어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습니까? 또는 저 영계에서 수천억의 영인들이 탄식하고 있는 아우성소리를 들어 봤습니까? 예수님은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역사의 종말에 심판의 유황불이 내려 퍼부을 그 심판의 채찍을 아시고 눈물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딱한 사정에 처하여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면서도 자기를 변명하지 못했던 예수의 그 사정을 느껴 보았습니까?

오늘날 기독교의 운명을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하여야 할 끝날 이 시대에 있어서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도 좋습니다. 알고 모르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 단 한가지, 이 몸이 찢기고 밟히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사정을 대신할 수 있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할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만약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기 위하여 죽는 사람이 있다면 전우주가 같이 눈물을 흘려 줄 것입니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눈물의 인연을 맺고 또 그 눈물의 심정을 체휼했다 할진댄 죽음의 길도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예수가 이러한 슬픔의 심정을 대신하여 이 땅 위에 왔다가 쓰러지게 되었을때 온 하늘 땅은 어두워졌습니다. 하늘 땅은 예수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예수의 심정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자기들의 아들딸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먼저 천성에 있는 . 지금까지 수고한 역사적인 선조들을 위해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잘 살기를 바라기 전에 이 땅 위의 인류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내가 춤추기 전에 먼저 탄식권내에 있는 만민을 바라보고 염려할 수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뻐도 기쁨의 표정을 취하지 못하고 즐거워도 즐거운 행위를 취하지 못했던 예수의 사정을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을 여러분이 가져야 되겠습니다. 인류역사 종말시대에 처한 오늘날, 이 땅 위에 그러한 한 사람이 나타나 하나님과 예수의 슬픔을 막아내고 이 우주의 서러움을 막아내야 할 것입니다.

4-126
예수님의 소망
이제 여러분은 몰리고 천대받아도 ‘좋습니다!’ 해야 합니다.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요 19 : 30)”하시고 말없이 운명하시던 그 모습이 우리 주님의 모습이었고 우리 신랑의 모습이었습니다. 앞으로는 무슨 간판, 무슨 교파가 다 필요없게 됩니다. 개개인이 달라도 관계없고 민족이 달라도 관계없는 참다운 이상세계가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소망은 온 천주의 이념을 대신한 소망이요, 예수의 사명은 온 우주만물을 복귀해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옛날 사도들이 이런 예수의 뜻을 몰라드렸던 것을 이제 여러분이 알아드려야 되겠습니다.

제1이스라엘인 유대민족이 예수의 심정을 위로해드리지 못했던 것을 여러분들이 위로해드려야 이 민족이 제 2의 이스라엘민족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오셔서 영원히 믿을 수 있는 개인을 찾았으나 그러한 개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성신을 보내 그 성신을 중심삼고 제 2차적으로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을 오늘날 기독교를 통해서 다시금 찾아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의 이름만으로 구원을 얻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념은 만민에게 통할 수 있으되 실체는 하나밖에 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념을 믿었다고 하는 신앙자는 많되 실체를 믿었다고 하는 신앙자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의 마음이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그대의 마음이며, 그대의 서러움이 내 서러움이라고 할 수 있는 신앙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날까지 맺혀진 하늘의 원한의 심정, 뼈골이 녹아지는 듯한 서러운 심정을 느껴봤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어디를 가든 하늘을 대하여 서는 자기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졸도한 정도의 심정을 갖고 이 땅 위에서 3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한날을 중심으로 하여 심판의 관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심판의 길을 누가 보장하여 줄 것인가? 예수님이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장 못해요. 옛날 이스라엘의 가는 길도 예수님이 보장하지 못했고 하나님이 보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택한 선민이 망했던 것과 같이 끝날의 크리스찬들이 가는 길도 예수님이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보장하지 못해요.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보장받을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사정과 심정이 통하고 예수가 온 인류를 품으시려던 그 외로운 심정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믿는 정도에서 구원이 이루어지고 자기가 요구하는 전체의 천국이 건설되는 줄 알고 있는 데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생각입니다. 영계에 가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뭐 자기가 제일이라고 뽐내는 사람들이 영계에 가보니 불쌍한 자리에 처해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찌된 곡절인가. 오늘날 여러분이 올바른 길을 가는 것 같지만 영원한 생명의 종점을 향하여 나아가는 노정에서는 출발지에서 머리카락의 두께만큼만 틀려도 끝에 가서는 수천만리의 거리가 생겨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논리적 지식도 아니요, 어떠한 주의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심정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내 심정이요, 내 심정이 하나님의 심정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 끌어 당기는 심정의 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최후의 심정적인 중점과 내 심정적인 중점이 통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알파요 오메가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우리 일생을 걸어놓고 예수의 소원을 풀어드릴 때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개인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들로부터 배척받았고, 가정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가정으로부터 배척받았으며, 사회와 교회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와 교회로부터 배척받았고, 국가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배척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이 배척받고 몰림받으면서도 개인과 가정· 교회· 국가를 넘어 오늘날 세계의 무대에까지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싸워 나오고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지금까지 선교초기에는 어떤 국가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고, 어느 민족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이 배척받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4-128
우리가 알고 체휼하고 복귀해야 할 것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이 성경책을 옆에 끼고 편안히 앉아서 찬송가나 부르고 기도하면 천당갈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자리에 머물면서 하늘의 은사를 대할 수 있는 것도 하늘이 2천년 동안 배척받고 유린당하면서 돌고 돌아 여러분을 찾아오신 수고의 덕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세우기 위하여 역사상의 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배척을 당하면서도 개척해 나온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을 맞이한 오늘 기독교신자들에게는 희생을 당하더라도 세계를 구원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비록 지나간 역사과정은 일일이 다 모른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 가져야 할 것은 온 우주 단상을 복귀하기 위해서 오셨던 예수의 심정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심정을 알아 가지고 세계를 붙안고 싸우겠다는 이런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했던 만물이 원수들로부터 농락을 당해도 참으신 것은 하나님에게 원수라도 사랑으로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길이길이 참으시면서 6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과정을 거쳐오신 것입니다. 6일만에 창조했던 그 기간을 다 거쳐나올 때까지는 하나님이 참고 품어나오신다는 것입니다.

엿새만에 지은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6천년 동안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시면서 사람 하나를 찾아 사랑할 수 있는 그날까지 수고해 나오고 계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인간이 나타나 역사적 원한을 해소해 줄수 있는 그 한 시간을 바라서 오늘날까지 참아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그러한 심정과 뜻을 받아 감당할 수 있는 한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지 벌써 2천년이 경과하였지만 6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천상에서 지금까지 싸우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이 땅 위에 다시 와 가지고 인간을 대표하여 하나님과 인연을 맺게 되는 그날이 왈 재림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멀지않은 날에 모든 만상이 심판권을 벗어날 수 없는 원한에 사로잡히게 될 때, 인류의 아우성소리가 여러분들에게 들릴 것입니다. ‘오! 나를 구해 주시옵소서. 복귀의 원한을 우리들에게서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라는 기도의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만물뿐만 아니라 땅 위에 있는 24억의 인류가 그 아우성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영계의 수천억의 영인들이 ‘오! 땅 위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들의 역사적인 원한을 해원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기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6천년 동안 인간을 찾아 나오며 수고하신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무엇을 복귀해야 될 것인가? 탄식권내에 있는 만물을 복귀해야 되겠고, 인류 전체를 복귀해야 되겠고, 지옥에 있는 영인들까지도 복귀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복귀해야될 것인가?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기쁨의 심정으로 복귀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6천년 동안 상처받은 아버지의 서러운 심정을 누가 찢어 놓았습니까? 갈래갈래 찢긴 아버지의 심정을 누가 아물게 하여 하늘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아들 딸이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바로 여러분이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에 6천년 동안 상처를 냈던 인류이며 6천년 동안 하나님의 심정을 유린하던 인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인류가 이 천성을 대하여 그 모든 원한의 심정을 해원하여 주기를 이 시간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한 하늘편 사람들은 땅을 대해 또는 모든 만물을 대해 말할 수 없이 서러운 심정, 갈래갈래 찢기는 슬픈 심정을 갖고, 하늘의 뜻을 붙들고 굶주리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사셨습니다.

4-130
죽기를 각오하고 나가는 하늘의 용사가 되라
옛날 야곱이 이스라엘의 기반을 이루기 위하여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인 라반의 집에 가던 도중.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자던 때와 라반의 집에서 목자의 생활을 하던 때가 있었는 데, 그때 야곱은 어떤 마음을 가졌던가. 야곱은 하나님이 혈족을 사랑하던 것과 같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2천년 동안 혈족을 사랑하고 염려하던 심정을 상속 받아 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맺히고 맺혀온 하늘의 한의 심정을 풀어드리기 위하여 애썼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서러운 마음을 야곱에게 인계시키기 위한 고난의 기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시련의 노정이 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민족이 4천년 동안 닦아 놓은 복의 터전이 후대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옮겨졌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하나님의 심정을 갖고 나섰을 때 반대받는 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반대는 결국 조금 지나면 지나가지만 반대하는 자의 복이 여러분에게 옮겨집니다. 예수가 이 땅에 왔을 때에도 거짓 것이 참된 것을 해치려 하다가 다 깨지고 갈라져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참을 쳐서 승리한 예는 역사노정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마음과 몸에 자신감과 여러분의 행동에 신념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아플 때 여러분을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참다운 사랑을 느끼는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사탄의 권세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삼키지 못하고 소화시키지 못합니다. 소화시키려 하다가 소화시키지 못하는 날에는 도리어 넘어갑니다. 세계에 제아무리 크다 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하늘 뜻을 중심삼은 이념과 신념으로 실천하여 사탄의 권세를 소화시키고 삼킬 수 있는 어떤 교파가 나오지 못하고 멈춰지는 날에는 세계가 사탄에게 넘어간 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가 주장하던 주의였습니다. 사탄이 예수를 삼킬 수 없는 그러한 조건이 땅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예수는 부활하였던 것입니다. 이제는 천주의 이념까지 흡수할 수 있는 아들 딸들이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모든 일을 복귀하여야 할 예수의 심정을 안 후에는 이 땅에 있는 나무 뿌리 하나까지라도 사탄에게 양보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 몸뚱이와 내 생명이 아버지의 것이요, 내가 갖고 있는 모든 물질까지도 다 아버지의 것이요, 이 나라 이 세계 이 하늘 땅이 다 아버지의 것입니다. 따라서 타락으로 잃어버린 모든 것을 여러분이 아버지께 찾아드릴 수 있는 하늘의 용자들이 되어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서 천년 동안 왕노릇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통일교인들은 지금까지 어떠한 신앙자가 갖지 못한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뜻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역사적인 모든 섭리의 뜻을 알았다 할진대는 , 역사상 어느누구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했다 하는 조건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할 수 없는 환경에서 했다 하는 조건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남 못하는 일을 하여 후대 사람들이 어떤 조건으로 말미암아 하늘 뜻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 주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에게 들렸던 지팡이가 홍해를 쳤던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생애를 깊이 느끼어 지팡이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오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피눈물이 쏟아지는 수난과 역경 속에서도 참고 견디신 것은 하늘의 뜻을 염려했음이요, 여러분을 위해서였고, 천추만대에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반대하는 민족을 바라 볼 때의 그의 심정은 갈래갈래 찢어지는 듯한 비통한 심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예수가 2천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염려하여 나오던 모든 것을 우리들이 맡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염려를 점점 줄여 나감으로써 세계를 주관하려던 예수의 뜻을 다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예수 자신이 자기를 생각할 수 있는 한날을 우리들이 찾아 이루어드려야만 비로소 하나님께서 자신을 생각하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각할 수 있는 때를 갖게 된다는 것이에요. 인간을 위하여서 사시는 것보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몸소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한날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소원이 있다는 것을 오늘날 인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남이 싫어하고 아니라고 부정하는 길을 찾아 나왔고, 높은 울타리담을 쳐놓고 방해하는 것을 넘어온 여러분들! 이제 여러분은 가진 것이 없어도 좋습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이 알아주느냐 알아주지 않느냐가 문제 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에게는 예수와 하나님을 안식시켜 드릴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식시켜 드리고 ‘아버지여 ! ‘라고 부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을 참소하는 사탄을 가로막고 싸워 원죄없는 인간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 가지고 ‘아버지 이제 쉬시옵소서 ‘해야 되겠습니다.

이래가지고 ‘주님이여 ! 오시옵소서. 아버지여, 오시옵소서’ 해야 그분이 오신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을 대하여 하나님이 즐거워할 수 있는 한날은 시험의 조건을 넘어서야 되기 때문입니다. 공포의 환경을 가지고는 안 돼요.

창조이념을 놓고 즐길 수 있는 환경에 도처하는 , 그러한 동산에서 인간을 중심삼고 동거하기 위한 것이 창조의 목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그러한 자리까지 이루어 놓아야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전체 섭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고, 또한 만민이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온 천주가 그를 중심삼고 완전한 해원을 향해 움직여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단단히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4-132
기 도
사랑의 아버님 ! 예수님이 땅 위에 오신 것이 나 하나를 찾기 위하여 오신 줄 알았더니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사옵고, 내 가정을 위하여 오신 줄 알았더니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사옵고, 택한 이스라엘만을 위하여 오신 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었사옵니다. 어떤 교파를 위해서 오신 분도 아니었사옵니다.

예수님은 온 피조세계의 소망이신 동시에 그 모든 가치를 대신하여 오셨다는 것을 저희가 알았사오니, 아버지! 그와 같이 전체를 복귀하여야 할 사명을 지닌 예수님 앞에 오늘날 저희들은 어떠한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까? 내 가정을 붙들고 죽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 민족, 내 나라, 내 세계를 붙들고 죽겠다는 사람이 되지 않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살아도 천지를 대표하고, 내가 죽어도 천지를 대표하여 죽는 , 즉 천주의 생사의 문제를 걸어 놓고 살 수 있는 모습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이 피조만물 가운데 예수님께서 복귀해야 할 뜻이 이루어지지 않아 탄식의 아우성소리가 남지 않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혹 그러한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 할진대 저희들로 말미암아 그것을 제거하게 하시어 예수님과 아버님까지 안심시켜 드리고 그 심정까지 통과하여 아버지와 영원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참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역사적인 모든 원한을 해원하고 해원의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아버님 협력하여 주시옵고, 같이 나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 만사를 잊고 하늘을 찬양해 드릴 수 있는 참효자 효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오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