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2 to 3-356: 하나님의 선민인 택한 이스라엘이 되자

하나님의 선민인 택한 이스라엘이 되자
1958.02.09 (일), 한국 전본부교회

3-332
하나님의 선민인 택한 이스라엘이 되자
창세기 32:1-28 사도행전 1:6-11

[기 도]

이 시간, 이 자리에 부복한 이 아들 딸들, 자신들의 마음이 어두움에 있는가, 자신들의 몸이 어두움에 있는가, 스스로 살필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고, 스스로를 중심삼는 마음이나 의심하는 마음을 갖지 말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오로지 저희를 찾아 오시기 위해 수고하셨던 아버지의 심정과 저희의 불쌍한 몸을 품어주시려는 내적인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아들딸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슬픔을 느껴야 한다면 6000년 역사의 슬픔을 느끼게 해주시고, 저희들이 곤고를 당해야 한다면 6000년의 곤고를 대신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가 이 땅위에 사는 동안 아버지를 배반하는 일이 없게 허락해 주시고, 저희의 몸이 사탄의 사슬에 얽매여 슬픔의 조건을 만드는 일이 없게 허락하여 주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당신의 아들 딸들이 모였사옵고, 여기의 주인은 당신이오니, 이 시간 이들의 마음이 자기 멋대로의 마음이 되지 말게 허락해 주시고, 이들의 몸이 제멋대로의 몸이 되지 말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오로지 아버지를 의지하고, 아버지의 긍휼의 심정에 사무치고,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길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봉독한 말씀을 통하여 야곱이 저희의 신앙의 표준이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뜻 하나를 위하여 생애를 바치며 수고해 나오던 야곱의 신앙심을 저희들이 본받을 수 있게 해주시고, 그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바라옵니다. 저희들의 발걸음, 저희들의 마음이 아버지의 뜻을 대신하고, 아버지의 뜻길을 사수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께서 분부하신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아버님의 능력을 나타내게 하옵시고, 부족한 저희들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오니 불꽃같은 눈으로 살펴 주시옵고, 합당치 못한 것이 있더라도 아버지, 용납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어두움 가운데 사로잡혀 있는 이 민족 중에는 갈길을 알지 못하고, 생명의 길을 알지 못하여 헤매고 있는 아들딸들이 많이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이들을 당신이 이끌어 주시어서 끝날에 허락하실 바의 은사를 허락해 주시고, 생명의 말씀을 민족 앞에 증거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불쌍한 이 민족을 통하여 세계 만민이 아버지 앞에 무릎 꿇을 수 있게 하시고, 사탄을 이 땅 위에서 머리 숙이게 하여 사탄 대하여 승리한 감동과 기쁨으로 가득차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로지 아버님께서 주관하여 주셔서 아버지의 귀하신 말씀으로 모든 죄악을 청산하고 생명의 길을 찾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마음과 몸을 온전히 아버님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면서, 주의 이름으로써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3-333
말 씀
여러분과 잠깐 동안 생각해 보려는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의 선민인 택한 이스라엘이 되자’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인 택한 이스라엘이 되자’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창세기에는 야곱이 모진 수고의 노정을 거친 후에도 하늘을 대신하여 시험을 받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그 시험과정에서 자기가 이삭으로부터 축복받은 선민이라는 것을 마음에 품고 있었고. 그 뜻을 막으려는 천사와 끝까지 싸웠습니다. 그래서 승리하였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선민권내에 들어갔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온갖 역경과 싸워 승리하였다고 하여서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 ‘이스라엘’이라는 명사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명사로 남아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역사적인 생명을 대신하였던 명사요, 하늘과 땅을 복귀하기 위한, 아담부터 야곱까지의 2000년 역사를 종결지어 줄 수 있는 승리의 명사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야곱을 세우시어 이스라엘이란 축복을 하시게 될 때에 하나님에게 기쁨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려니와 반면 슬픔도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3-334
야곱을 고생시킨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 수천년 동안 수고하시며 섭리하신 것은 야곱의 조상인 아담이 타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축복을 다시 찾아야 했는데, 잃어버린 하나님의 축복을 다시 찾는 역사과정에는 말할 수 없는 서러운 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축복해 주는 하나님에게는 이런 서러운 심정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란 축복의 말씀을 내려주신 것은, 야곱 일대에만 허락하신 말씀이 아니었고, 전 창조의 이념과 이상을 대신하였던 말씀이었으며, 하나님의 전체 심정이 이 한마디에 어려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반의 집에 가서 수십년 동안 수고하기에 지친 야곱,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땅을 세우기 위해 어려운 생애노정을 거쳐온 야곱은 이삭의 손을 들어 축복해 주신 하늘의 뜻을 실천하는 마당에서 재물을 포함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면서 에돔땅의 에서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찾아간 고향은 자기 일대에 행복을 안겨 주는 본향이 못 되었고, 기쁨의 자리가 못 되었던 것입니다. 정든 고향과 형을 찾아가면서도 염려하고 근심해야 할 사정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야곱 일신만이 겪어야 했던 사정이 아니라 온 인류가 걸어야 할 노정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고향을 찾아드는 그 앞에는 요단강이 가로막혀 있고 얍복강이 가로막혀 있어, 허락한 축복의 땅을 앞에 놓고 밤잠을 자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야 했던 이러한 사정은 선조들이 남겨놓은 사정이요, 천륜의 섭리를 경영하시는 아버지의 사정이었다는 것을, 야곱은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꼈음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야곱 일대에만 겪은 사정이 아니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나온 역사노정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대하여 나타났던 모든 우리의 선지 선열들은 전부 이러한 심정을 품고 아버지의 품에 돌아가기 위해 어둠의 장벽을 앞에 놓고 싸움의 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에 처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삭의 손길을 통해 축복해 주신 하나님,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라고 권고하시던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야곱이 가는 길을 안내해 주고 가는 길을 평탄하게 해주지 못하고, 또 얍복강가에서 밤을 새워 천륜의 뜻을 품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늘앞에 호소하는 야곱에게 권고의 말씀은 해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천사를 보내어 야곱을 치게 하는 이러한 비정한 환경이 벌어지게 하셨던가 !

말할 수 없는 사정, 인간들이 알 수 없는 애달픈 곡절의 심정이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향산천을 찾아가는 야곱의 길에는 광야의 길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걸어가는 노정에도 이러한 곡절이 있다는 것을 야곱이 걸은 노정을 통해서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늘은 이러한 환경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사람 하나를 택해 세우는 것도 물론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지만 배후의 사탄을 밀어낼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한 섭리의 뜻인데,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과 사탄만이 아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곡절의 담을 인간을 통해서 헐어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이러한 곡절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헐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야곱에게 무리한 행동을 하늘은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야곱에게는 축복받은 그 날부터 에서가 있는 고향땅에 돌아갈 때까지 기쁨의 한날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주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는 하늘과 땅을 걸어놓고 하나의 제물의 입장에서 이것을 판결지을 때까지는 수심의 생애노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노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을 책임지고 나아갈 때에는, 야곱과 같이 원수의 세계에도 찾아가야 하고 어려운 환경과 홀로 싸우는 싸움의 노정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의 노정에선 야곱이 지쳐서 쓰러졌던들 그에게는 이스라엘이란 명사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이름을 통한 축복의 은사가 야곱과는 관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늘이 이삭의 손길을 통해 내리신 축복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고난과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이것을 극복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불붙는 심정을 갖고 하늘 대해 충성했기에 얍복강가에 나타난 천사와의 씨름에서 용맹스럽게 싸워 승리의 발판을 만들었던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336
야곱이 받은 ‘이스라엘’의 내용
이와 같이 야곱은 하늘이 허락한 말씀을 중심삼고, 생명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모진 싸움의 길을 걸어간 대표적인 하늘의 정병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예고하는가. 우리의 선조인 아담 해와가 소망의 한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끝까지 그 말씀을 지켜나가야 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 한 사실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아담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하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바로 그런 인물로 하늘 앞에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 처하게 된 야곱, 하늘의 시련을 받는 입장에 있었던 야곱은 한시도 마음을 놓지 않았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굳게 믿고 싸움이 끝나기 전에는 팔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싸워 승리한 후에야 이스라엘이란 축복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선민의 승리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야곱이 이런 입장에 처하게 되었던가. 이것은 인간 조상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말씀을 중심삼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이런 입장에서 말씀을 중심삼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사탄의 모든 참소조건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얍복강가에서 철야를 하고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천사가 나타나지 않았더면 야곱은 사탄의 시험을 받아야 할 입장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참소하지 못할 정도로 믿을 수 있고. 그 말씀을 중심삼고 싸울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 드러내기 위해 야곱에게 천사를 보내어 밤새도록 씨름하게 했습니다.

야곱은 한 인간으로서 천사를 문제없이 물리치기 위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에게 부여된 그 뜻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품고 싸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야곱 앞에 사탄은 감히 참소의 조건을 제시할 수 없었고,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승리가 얍복강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늘은 제 2시험의 대상인 에서를 감동시켜 야곱 앞에 굴복시킬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야곱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이스라엘이란 이름과, 야곱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이스라엘의 터전은 야곱 일대만 축복의 대상으로 성립된 것이 아닙니다. 야곱을 통해 개인적인 이스라엘이 시작되고 야곱을 통해서 가정적인 이스라엘이 시작되어 민족·국가·세계적인 이스라엘을 형성하기 위한 이스라엘 이름이요, 이스라엘의 터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을 야곱의 후손들은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느끼고 믿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후손들은 야곱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에게까지 미쳐진 축복을 오로지 자기들 것으로만 믿고 행동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택함을 입었던 이스라엘민족은 오늘날 이 땅 위에 그 종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3-338
민족에 대한 모세의 사랑과 그가 걸은 고난의 노정
야곱이 하란에서 가정을 형성하여 승리해 나왔지만, 또 넘어야 할 고개, 즉 얍복강가에서의 천사와의 싸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야곱의 후손들은 몰랐습니다. 즉 야곱의 후손들은 애급에 들어가 400년간 바로의 품에서 민족적인 시련을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때 모세가 나타나 이스라엘민족을 다시 수습하여 옛날 야곱으로부터 약속받은 가나안땅을 회복해야 하는 책임을 짊어지고 나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야곱 일대에 조성한 승리적 이스라엘의 발판과 같은 민족적인 승리의 발판을 이스라엘민족은 애급에서 갖추어야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민족은 애급에서 지칠대로 지쳐서,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싸워 승리한 발판을 원수의 나라에서 세워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민족은 단결하여 민족적인 하늘의 시험과정을 통과하여야 할 입장에 서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 있던 민족을 다시 수습하기 위하여. 하늘은 모세를 세워 민족을 대표하여 바로궁중에서 40년 동안 준비시켰고, 미디안 목자생활 40년의 노정을 거치게 했던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이 옛날 얍복강가에서 이루었던 그 축복을 애급에 있는 이스라엘민족이 이루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재수습하기 위하여 모세는 야곱과 같은 민족적인 노정을 걷기 위해 광야로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야곱이에서의 축복을 대신 받고 하란광야를 찾아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세도 이스라엘민족을 대신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다시 세워야 할 책임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모세는 동족끼리 하나되지 못하고 싸우는 것을 보고 분개하였으며,또 민족이 이방사람 앞에서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보자 그 이방민족에 대항하여 생명을 걸어놓고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세의 뒤를 따라 애급민족에 대항하여 싸워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오히려 모세를 몰아내는 입장에 섰는데, 이것은 마치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자기의 고향을 떠났던 것과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또, 야곱이 축복받아야 할 가정을 떠나, 사탄가정으로 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세도 축복받아야 할 이스라엘민족을 애급에 남겨놓고 미디안 광야생활 40년 노정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세가 광야를 향해 떠난 사실은 모세 일신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런 노정을 걷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인가? 그것은 야곱이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닦아놓은 승리의 발판이 없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발판을 민족적으로 다시 닦아야 할 책임감을 어느누구보다도 절실히 느낀 모세였던 것입니다. 원수의 품에서 고역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민족을 위하여 어느누구보다도 간절히 기도하던 모세, 하루 한날 한 시간이라도 고역의 노정에 있는 이스라엘민족을 잊어본 적이 없는 모세의 심정을 여러분들은 뼈저리게 느껴야할 것입니다.

목자로서 광야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는 자기의 사정이 비참했지만 자기의 비참함을 잊어버리고 애급땅에서 원수에게 시달리면서 수고하는 이스라엘민족을 바라보고 동정의 눈물을 흘렸던 모세였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모세의 외로운 사정과 심정이 하늘에 사무쳤고 모세가 하늘을 위하여 염려하고 선민을 위하는 대표적인 형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를 다시 불러 바로의 궁중으로 파송시켰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야곱이 에서를 무서워하여 21년 동안 라반의 집에서 수고하고 난 후 자기의 모든 소유를 가지고 에서가 있는 곳을 찾아가는 노정과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세도 야곱과 같은 어려운 노정을 걸어갔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3대 이적을 보여주면서 말씀을 대신하는 아론과 미리암을 세워 하늘이 가라 하시는 바로 궁중을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모세의 가는 길은 하나님이 후원하는 입장이 아니었고, 잠자리에 든 모세를 죽이려 하시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역시 야곱이 걸어간 것과 같은 노정이었습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할 때 환도뼈가 부러져 나가는 것도 모르고 싸웠던 그 사정을 통하여야 할 모세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모세도 이제 하나님 앞에 그와 같은 입장에 세워졌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런 시험을 무난히 넘은 후에 택함받은 이스라엘민족을 다시 만나 하나님과 민족을 대신하여 민족적인 이스라엘의 제단을 쌓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340
모세에 대한 이스라엘민족의 책임
이제 여기에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선조들인 야곱과 모세만이 이런 노정을 걸어야 했고, 이러한 책임을 짊어졌느냐 하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곱만 이런 책임을 감당할 것이 아니라, 야곱 가정의 모든 식구들도 야곱 이상으로 애달픈 심정을 갖고 하늘 앞에 호소하고 책임을 감당해야 할 입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을 따르고 있던 그 식구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슬픔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야곱보다 식구들이 더 안타까워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을 찾아 나선 모세, 하나님께서 미디안 광야에서 천지는 변할지언정 당신의 약속은 변할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믿고 나선 모세는 굳은 각오와 결심을 갖고 이스라엘민족 앞에 다시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었던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시험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야곱이 에서에게서 받은 반대와 같은 바로 궁중의 반대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서 잘 알고 있겠지만, 야곱이 열번 속임당한 것을 탕감하는 10재앙을 애급에 내려서 바로를 굴복시킴으로써 이스라엘민족은 제2차로 민족적인 제단을 조성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다시 한번 회고해 봐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서러움이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원수로 인해서 느낀 서러움이 아니었습니다. 또 하나님께 슬픔이 있었다 할진대 그것은 원수들이 악하여서 느끼신 슬픔이 아니라, 하나님의 수고의 길을 따랐던 이스라엘민족의 제단이 무너진 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인류의 슬픔이 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60만 대중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한 모세에게는 또 다른 시련들이 가로막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홍해노정과 광야노정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모세가 개인적으로 걷던 시련의 광야노정을 민족적으로 거쳐야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운명으로 이스라엘민족을 몰아넣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민족은 모세가 손을 들면 자기들도 손을 들어야 하고 모세가 앉으면 자기들도 앉아야 하고, 모세가 가면 그들도 가야 했습니다. 즉, 60만 대중이 전부 제 2의 모세가 되어서 모세와 하나님을 대신해야 했었는데, 그들은 이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궁중에서 끌어내어 주실 때는 감사하며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으로 알았고, 철석 같은 약속이 남아 있으니 자신들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해줄 줄 알았던 이스라엘민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민족이 어찌하여 광야에서 쓰러지게 되었던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랑생활을 하고 목자의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선민을 위하여 절개심을 갖고 싸워나오던 모세의 마음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졌던들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민족을 걸어놓고 민족적인 이스라엘의 축복을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소원은 민족을 대표한 모세와 그 민족이 하나되는 것이었는데, 둘이 갈라지니 민족을 대표한 모세도 깨졌고, 민족을 지도하던 모세가 깨짐에 따라 이스라엘민족도 깨졌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광야에 나와서 배가 고프다 할 때는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만나를 내려 먹이시던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아말렉족속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게 하셨던가. 이것은 천륜의 뜻을 반역한 인간이었기에 인간들이 천륜의 뜻을 찾아나가려고 할 때에는 하나님도 반대의 입장에서 쳐야 할 섭리적인 조건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아말렉족속을 통하여 이스라엘민족을 공격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하늘의 안타까운 심정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시험에 통과 못했기 때문에 죽지 않아야 할 모세가 죽었고. 죽지 않아야 할 민족도 망해 버렸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때에 모세에게는 민족에 대한 지도자로서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 자신의 잘못은 없었지만 불신한 민족을 대표하여 시내산에 올라가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입을 것을 입지 못하면서 쓰러져가는 이스라엘을 찾기 위하여 40일 동안 속죄의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민족이 선민의 자격이 있다 할진대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애달파하고 있을 때에 그 산을 둘러 싸고 60만 대중이 잠을 자지 않고 먹지 않고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이여 우리의 지도자 모세를 내려보내 주시옵소서’라고 하면서 기도에 힘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거예요.

모세가 굶주리고 기도하여야 할 사정은 자기 일신 때문이 아니라 민족 때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민족은 꿈도 안 꾸고 있었으니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기도하던 것과 같은 어려운 고비를 당하였는데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 60만 대중을 선도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나와 민족을 이끌었던들, 그들은 어려운 처지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고 편안한 자리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사탄이 민족을 농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노정을 우리의 선조들이 걸었었습니다.

3-342
시험과 시련의 의미
이리하여 다시금 모세를 대신할 수 있는 지도자 여호수아와 갈렙을 세워서 2세들을 이끌고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는 성전이념을 실현해 놓고 성전과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민족은 쓰러지게 된 것입니다. 이와같이 말씀을 중심삼고 하나 못 되는 민족은 때가 오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온 피조만물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는데, 이 피조만물은 말씀을 중심삼고 여섯 기간을 통하여 지음 받았기 때문에 만물복귀의 민족적인 고개를 넘어 세계적인 고개를 넘게 될 때에는 반드시 6수의 과정을 걸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느냐 못 세우느냐 하는 시험, 즉 천사장 대신 아담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오시기 6세기 전에 이스라엘민족은 구약말씀을 잘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하는 시험을 받았습니다. 즉, 하늘은 이스라엘민족이 뜻을 세계적으로 전파해야 할 때에 이르자 민족을 쳤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민족이 바벨론에 잡혀가는 기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하나님을 배반하였던 이 민족이 다시 말씀을 배반하느냐, 배반하지 않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늘을 배반했던 민족이기에 하늘을 대신하여 이 민족이 새로운 6수의 출발고개를 넘게 될 때는, 사탄의 공격과 내리침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을 시켜 이스라엘민족을 점령하게 하는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민족은 어떻게 했어야 했던가? 이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들고, 모세가 광야를 헤매면서도 하나님을 위하고 민족을 사랑하던 그 심정을 품고 원수의 나라인 바벨론에 가서 끝까지 싸우면서 이 말씀을 사수했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민족이 되어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민족이 깨져나갔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중심삼고 제 2차 민족적인 말씀의 기준을 복귀하여야 할 역사적인 노정에 선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선민된 절개를 품고 있었다면 비록 바벨론에 잡혀 갔을지라도 모세와 같은 새로운 지도자가 나와 그들을 이끌고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6세기가 지난 후에 어떠한 형태가 벌어졌던가? 뜻이 있어 야곱이 에서의 직계를 무시하고 모세가 택한 이스라엘민족을 무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가 이 땅 위에 오셔서 뜻이 있어서 에서의 입장에 있었던 이스라엘민족이 에서적인 말씀인 구약을 무시하고 나서게 되었을 때, 환영하여야 할 에서의 입장에 있던 이스라엘민족이 예수를 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사망권을 형성해 놓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이스라엘민족은 어떠한 형인가.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시험하던 천사장형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500년 전에는 신약성경을 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즉, 인본주의 사상을 중심삼은 문예부흥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삼은 봉건사회가 근본적으로 붕괴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황청의 주권이 깨져 나가고, 불란서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아비뇽의 포로기간을 거쳐야 할 운명에 있었는데. 이것은 무엇입니까? 복귀노정에 있어서 이런 이스라엘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제 2이스라엘민족이 예수 당시에 형성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제 2이스라엘민족을 대신한 새로운 사명을 짊어진 기독교가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되자 기독교를 세계적으로 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교황은 하늘 앞에 회개해야 했고, 하나님이 세우신 절개심을 품어야 했으며, 끝날까지 이런 뜻을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러야 했습니다. 그러면 끝날에 이르러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 때에 남아진 기성의 말씀과 기성의 교단은 에서의 입장에 있고, 이스라엘민족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3-344
기독교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소원이 있다면 그 소원이 무엇이겠는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이 세계 인류를 대신하여 찾아진 선민 이스라엘을 복귀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복귀하고자 하시는 하늘의 섭리의 뜻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을 통하여 모세를 통하여 세워졌던 이스라엘민족은 2000년 전에 어디에 갔었던고. 그들은 이 예수 앞에 원수가 되었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과 유대나라를 세계복귀의 발판으로 세우고 이 발판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의 전격전을 폈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노정이었었는데 예수가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모세와 같은 사정에 처하시게 되었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기독교는 광야시대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주인을 잃어버린 이스라엘민족과 마찬가지로 광야노정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택함받은 제2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유대민족은 예수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가나안땅을 복귀해야 했었는데, 이런 책임을 짊어지고 예수 앞에 세워진 택한 이스라엘민족은 어디 갔었던가. 또 유대교는 어디 갔었던가. 이스라엘민족이 없어지고 유대교단이 없어지고 이스라엘의 가정이 없어지고 야곱이나 모세와 같은 개인적인 이스라엘도 없어짐으로써 불쌍한 예수가 되어 죽어갔다는 것입니다.

죽고 싶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기성 신학자들은 죽어야 되는 줄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족과 교단 앞에 몰리고 가정에서 몰리고 12제자한테 배반당하고 최후로 3제자한테까지 배반당하고 나니 갈데는 죽을 곳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30여 생애를 불쌍히 사시는 것이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신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황태자요, 홀로 창조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천상천하의 주인공으로 보내셨거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독자 예수가 땅에 와서 고난당한 것은 예수가 잘못하여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민족과 교단이 몰라서 그랬고 사회와 가정이 몰라서 고난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를 죽인 역사적인 범죄를 저지른 우리들에게 예수가 찾던 이스라엘은 어디 있을 것인가 ! 마음으로도 호소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또 예수가 찾던 이스라엘 교단은 어디 있을 것인가 ! 마음으로라도 기도하여 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이스라엘민족과 교단을 찾으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 와서 택한 제 1이스라엘이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믿는 기독교인들을 잃어버린 제 1이스라엘을 대신하는 제 2이스라엘로 세워 세계에 널려 놓고 다시금 재수습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에 널려서 예수를 믿고 있는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무슨 사명이 있는가. 예수를 배반하여 십자가에 죽임으로 말미암아 제일 먼저 택해 세운 이스라엘을 잃어버렸으니 이것을 대신하는 제 2이스라엘을 건설해야 할 노정이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에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 신자들은 어느 입장에 처해 있느냐 하면, 예수의 12사도와 같은 인물을 중심삼고 또는 예수의 3제자와 같은 인물을 중심삼고 하나의 교파로 단결하여야 할 때인데, 이런 조직을 잃어버린 기독교이니 큰일났습니다. 모세 앞의 60만 대중은 12지파장과 70장로를 중심삼은 반열형태의 조직 속에서 각각 자기 위치가 정해짐으로 말미암아 광야노정을 거쳐 나갈 수 있었는데, 오늘날 제 2이스라엘이 되어야 할 사명을 짊어진 세계 기독교인들은 반열이 없어요.

예수 앞에 12반열을 대신하여 나타났던 12사도와 3제자가 책임 못하여 예수가 돌아가셨으므로, 전세계 기독교는 세계의 대표적인 교파를 중심삼고 12교파의 형태를 갖추어 결속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지금 무슨 생활을 하고 있느냐? 예수님이 하늘의 뜻을 이 땅에서 못다 이루었으므로 야곱과 모세가 목자생활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예수도 저 나라에 가셔서 목자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서 쉬시지 못하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 이것이 목자생활입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하셨던 것인가. 예수님은 지금까지 2000년 역사노정에서 예수를 믿고 간 사람들, 즉 이스라엘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영계에서 잃어버린 제 2이스라엘형을 만들어 놓은 것이 낙원입니다. 예수를 죽이려던 제 1이스라엘을 잃어버렸으므로 탕감복귀원칙에 의해서 예수 앞에 찾아나왔던 성도들을 모아서 예수가 부활한 후 영적으로 제 1이스라엘을 복귀한 형이 오늘날 낙원세계입니다.

3-346
지상천국 주인공의 자격
낙원세계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낙원세계에 간 영인들도 제 1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아가지고 예수를 환영하는 발판을 지상에 세워놓아야 할 조건이 남아 있기 때문에 천상에 있는 모든 영인들은 지상에 재림하여 현재 살아있는 크리스찬들을 제 2이스라엘의 축복을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놓고 이들과 하나되어 제 1이스라엘이 예수를 반대하였던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 활동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끝날은 어떤 때입니까? 구약말씀을 믿고 있던 유대민족을 이방민족들이 치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약 말씀을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치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사상을 중심삼은 유물사상이 기독교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약 말씀을 믿는 기독교가 얻어 맞는 가운데서도 말씀을 붙들고 나설 수 있는 하나의 교파가 나와야 하는데 그 교파는 개혁교파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노정에 있어서 성막을 받들던 시대가 지나고 성전을 받들어야 할 때가 되었을 때 민족이 결속하여 싸워야 할 시련이 남아 있다는 것을 유대민족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받들던 시대에서 실체 성전을 완성해야 할 시대로 바뀔 때에도 우주적인 싸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 싸움이 세계적으로 벌어졌습니다.

끝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은 이제 실체성전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체성전을 이룬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지상천국을 건설해야 됩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말씀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신·구약 말씀이 나와서 인간을 선한 방향으로 인도했고, 이제 새로운 말씀이 나와서 그 말씀과 하나된 사람들을 실체적으로 복귀시킬 것입니다. 봉건주의시대는 신만을 위주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이 일어났는데 그 종교개혁으로 인해서 신만 위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결합할 수 있는 신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왔는데 이제 실체성전을 복귀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면, 신약을 중심삼은 이런 때에서 앞으로 세계적인 성약의 이념이 나타날 때 여러분들이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주인공이 되어야 되고 예수 대신 존재가 되어야 됩니다. 지상천국 주인공이 되려면 실체성전이 된 후에는 환경적인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존재가 되려면 이념적인 혁명과정을 넘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과정은 어떠한 형으로 될 것인가. 역사는 뿌린 대로 또는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니, 오늘날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도 기성관념에 속해 있는 신앙자들과 기성주의의 말씀을 가진 자들은 전부 하늘을 배반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냐 하면 천사장과 같은 입장에 있는 자들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천사장이 아담 해와를 유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 이 시대에 있어서 천사장과 같은 영적인 교단들이 나타나, 하나님 뜻을 대하여 반대한 수 있는 때가 불가피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원칙을 통하여 복귀섭리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선민된 이스라엘민족이 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결심하여 야 되겠습니다. 각오를 하여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될 것인가? 여러분은 야곱의 후계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20여 생애를 거쳐가지고 얍복강가에서 믿고 싸워 나가던 야곱의 대신자가 되어야 되겠고. 광야노정에서 이스라엘민족을 붙들고 애원하며 걸어가던 모세를 혹은 세계인류를 대표한 이스라엘 나라에 대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염려하며 기도하던 예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3-348
말세에 처한 기독교인들의 입장
그러면 이제 이 세계에 널려 있는 제 2이스라엘아! 네 갈곳이 어디냐?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하늘 앞에 호소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도탄 중에서 애급의 바로궁중을 미워하면서 우리의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로 누가 인도할 것인가 하며 지도자를 찾아 헤매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자기가 처하여야 할 반열과 족속이 어디 있는가 하고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성교회는 깨집니다. 그리하여야만 12반열로 나누어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단속해 보십시오. 반열을 구성하여 세계적인 복귀운명을 거쳐야 할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에 국가의 운세를 움직이는 기독교일지라도 사회와 가정 그리고 개인에게 있어서 그 위신을 잃어버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이 애급에 있을 때는 반열편성을 하지 않다가 광야를 출발해야 할 때가 되었을 때에야 반열편성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기독교도 세계적인 가나안복귀를 위한 재림이상이 가까와 왔으므로 반열편성을 개시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 날 예수가 땅에서 베드로·요한· 야고보를 중심한 12제자를 통하여 반열을 편성하여 신앙자는 누구든지 그 지파에 속할 수 있도록 해놓고 돌아가셨다면 오늘날 세계의 기독교는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수습하여야 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일 밑바닥에서 배척받은 하나의 모임을 세워서 증거할 수 있는 때가 올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인지도 몰라요.

그러면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 있어서 신령역사하는 사람, 뭐 나장로니 박장로니 해서 새로운 교파가 나왔습니다. 그러한 파가 지금 교회를 깨치고 있습니다. 반열을 조직해야 되겠으니 이런 역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제 문제점으로 남아지는 것이 무엇이냐? 기성주의적인 관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원수입니다. 기성주의적인 관념. 즉 나는 에서와 같은 맏아들이니 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된다는 이런 시시한 사상을 버려야 됩니다. 까딱 잘못하면 에서의 관념에 서게 되고 예수를 죽인 유대백성이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넘어야 할 역사의 종국에 이르렀는데 이제 이 관문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이 때에 있어서 누가 원수일 것인가.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제일 가까웠던 천사장인 원수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담을 복귀하기 위한 제2아담으로 오신 예수 앞에는 영계의 천사장형에 해당되었던 당시의 유대교 제사장이 제일 원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천사장형을 제2차로 인계받아 가지고 예수를 공격했으니 지옥가야 됩니다.

오늘날 끝날에도 역시 세계에 널려 있는 교직자들이 재림하는 주 앞에 천사장이 되어 하늘을 빙자하여 하늘을 치는 이런 형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입장에 서더라도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역사적인 운세는 넘어갈 것입니다. 이런 길을 누가 걸을 것인가. 이러한 제단 앞에 새로운 말을 하고 새 종말을 고할 수 있는 하나의 선지자적인 사명자들이 나와야 돼요. 그러나 그들은 기성교단 앞에 배척을 받아야 할 것이요, 그래서 새로운 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동시에 무슨 시대가 오느냐? 영적인 세계의 공격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얍복강가에서 야곱을 괴롭히고, 또 모세와 예수를 공격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도 이 땅위에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는 동시에 하늘까지도 공격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3-350
사탄의 참소를 벗어날 수 있는 믿음
예수님이 운명할 당시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 :46)”라고 하게 되었던 것은, 만 우주 복귀의 주인공을 대신하여 나타났던 예수라 할진대는 우주를 대표하여 아담이 하늘을 배반한 것을 탕감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은 당신을 모른다할 때에도 ‘모른다’ 하는 하나님을 ‘안다’고 했기 때문에 그 ‘안다’ 하는 조건이 영적부활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에게도 이러한 역사적 고비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계적인 종말의 운세가 오늘날 여러분의 생활권내에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느낀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그것이 여러분에게 모세와 민족이 결속해야 했던 그 때를 예고하는 것이요, 모세가 바로와 싸우던 그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서러움은 어디서 초래하였습니까? 그 지도자들이 잘못되어서 하나님이 서러우신 것이 아니라 뒤를 따른 사람들이 잘못해서 하나님을 서럽게 만들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남이 모르는 길, 남이 아니 가는 이 길을 걸어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힘을 합하고 단결하여 하나님이 운행할 수 있는 하나의 반열이 되어, 먹으나 굶으나 개체를 잊어버리면서라도 천륜의 뜻을 대하여 허덕이던 모세의 발자취를 사수하는 후계자가 되어야 될 것이고, 야곱의 발자취의 후계자가 되어야 될 것이며, 예수가 가던 발자취를 따라가는 후계자로서 사명을 완수하여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끝날의 성도들이 택함받은 이스라엘권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입니다.

하늘을 대신한 예수는 이런 원칙을 알았기 때문에 살고자 하는 자가 죽는다고 했고 죽고자 하는 자가 산다고 했습니다. 즉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죽음의 자리도 넘어서야 합니다. 하늘이 인간을 배척하더라도 이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 하늘을 믿고 나설 수 있어야만 사탄이 떨어지고, 사탄의 모든 참소조건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하늘은 잃어버린 제 1이스라엘형을 영적으로 세워놓고, 세상에 널려 있는 세계 교인들을 제2이스라엘로 세워놓고, 이들을 합하여 하나되게 한 자리에서 제 3이스라엘의 건설을 경영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제 3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어야 되겠고. 야곱대신 제 3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어야 되겠으며, 민족대표자였던 모세와 같은 제 3이스라엘의 대표자가 되어야 되겠고, 세계 대표자인 예수와 같은 제 3이스라엘의 대표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또 여러분 자신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 역사과정을 돌아보면서 지난날 아버지 하나님을 대하여 참소하던 사탄을 밟고 넘어서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개인과 민족, 국가, 세계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반대하는 역적입니다. 그런데 사탄도 하나님이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탄을 대해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하나님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이 있기 때문에 6000년 동안 오랜 세월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도 하나님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아담을 통하여 만우주를 주관하여야 할 이런 뜻을 나를 세워서 우주를 주관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절대 복종하겠습니다.’ 이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긍정시키기 위한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섭리의 뜻을 끝까지 반대해서 긍정시키기 위한 입장에 서겠다는 것입니다.

충신을 빙자하는 간신들도 왕을 싫어하는 법이 없어요. 그런데 충신을 제거시켜 놓고 자기 말을 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 선 사탄의 권내에 온 세계가 들어있기 때문에 이 하나만 인정하면 세계가 하나님 앞에 돌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못하느냐? 천리 법도를 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법도의 하나님이라 질서를 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온갖 수고를 하시면서도 세계를 주관하는 사탄을 긍정해 주지 않고 세계를 주관하는 사탄 앞에 사람을 세워놓고 참소하는 사탄을 막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만일에 사탄의 참소를 막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하나님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못한다는 것입니다. 천리 원칙이 회복되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천사장이 아담 해와에게 주관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들고 나오는 주인이 있게 되면 모든 사탄이 근본적으로 굴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과 같이 영계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그러한 한날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한날을 세우는 때가 재림시대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반대하는 사탄의 입장에 서서는 안 되고, 6000년 수고하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됩니다. 오늘날 끝날의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무한한 세계의 처음 출발인 아담시대에서부터 오늘날까지의 복귀과정에서 수고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고, 하나님의 뒤를 따라 가야 합니다. 이러한 운명에 처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꿈도 안 꾸고 있으니 큰일났습니다.

3-352
사탄의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
‘하나님이여 ! 나를 통하여 영광받으시고 쉬십시오’ 할수 있는 하늘나라의 택한 이스라엘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대신했던 야곱이요, 모세요, 예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과 싸우시던 싸움을 대신 인계받아 사탄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이 되어야만, 여기서부터 결정적인 이스라엘의 주권이 하늘 앞에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하나님을 참소하던 전쟁의 목적을 종결지어 놓아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항의를 세울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전쟁은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제 3이스라엘 건설을 위하여 출발하여야 할 때가 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모세시대에 애급땅에 있었던 이스라엘민족에게는 자기들의 고향인 가나안 복지를 공격하여야 할 싸움이 남아졌었고, 예수 시대에는 이스라엘민족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가나안 복지를 건설해야 한 싸움이 남아졌었으며, 오늘날 제 3이스라엘을 건설하여야 할 우리에게 있어서는 단결하여 제 3이스라엘을 성취하기 위한 격전이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습니까? 이스라엘민족을 재편성하게 될 때, 하늘 대하여 하나님 앞에 세워질 이스라엘의 선민으로서 자진하여 하나의 3인조의 조원이 되고 소대장이 되고, 중대, 대대. 연대, 사단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하늘 정병의 지휘관들이 누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하여야 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역사적인 종말에는 모든 것이 하나의 세계로 통일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상통일을 요구하고 있고, 지상세계가 통일이념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하늘 이념을 통할 수 있는 통일의 때가 옵니다.

이제까지의 역사과정에서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둘이 싸우면 그 가운데 조금 선한 것이 이겼습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지상세계가 하나의 이념권내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지상보다도 조금 선한 것이 이깁니다. 이것이 영계의 지상공격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름모를 신경증이니 하여 신경계통의 병이 많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약으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천지쌍화탕을 먹어야 됩니다.

하늘을 화동시킬 수 있고 땅을 화동시킬 수 있는 이런 이념을 위하여 영계가 지상을 습격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지상인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대신할 때이기 때문에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싸움이 있을 것입니다. 둘이 싸운 후 하나로 된 그 세계가 하늘이 중심이 되어 합하는 바로 심판의 때입니다. 이와 같이 영계가 지상을 습격하는 이런 마당에서 지상을 대표할 수 있는 총지휘관의 사명을 갖고 올 분이 재림주라는 것입니다.

제 3이스라엘 건설노정의 출발에 선 여러분 !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영계의 법도를 알아야만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명령계통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야 됩니다. 그 나라의 군대는 자기편 군대에서 쓰고 있는 암호를 알아야 전쟁할 때에 자기편으로부터 공격당하지 않습니다.

이 때는 하늘나라의 암호가 들리는 시대인 것입니다. 지금은 암호 통신시대입니다. 섭리적인 암호. 역사적인 암호, 시대적인 암호. 또 인간적인 암호, 사명적인 암호의 통신시대인데. 이러한 암호를 통하여 연락될 수있고, 작전계획을 수행할 수 있으며, 지상통일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반대하는 박장노니, 나장노니, 통일교회니, 혹은 소위 이단패니 하는 것, 좋습니다. 현대는 과학도 우주시대를 논의하는 이러한 시대입니다. 인공태양을 만든다는 이러한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도달했는데, 아직까지 켸켸묵은 종교관념을 갖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하나의 포괄적인 통일주의가 나와야만 되겠습니다.

오늘날 암호를 통할 수 있는 단파장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비밀을 통할 수 있는 단파장치의 소유자가 있다면 그는 승리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가 지상을 습격해 내려올 때는 전쟁방법이 달라집니다. 일어나기는 일어나는데 한계를 모릅니다. 이러한 양상의 싸움이 지상에 벌어질 것인데, 그 때 양심있는 사람들은 거기에 동원되어 들어갈 것입니다.

3-354
제 3이스라엘의 선조가 되는 길
이제 여러분들은 끝날의 이 한날을 예비하여 양심적인 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며 오늘날까지 역사가 흘러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타락의 운명에 놓여 있는 우리들은 최후의 귀일적인 이념세계를 찾아들어가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어깨에 타가지고 ‘하나님 나를 맡으시옵소서’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하늘의 참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도 이런 아들딸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낙원세계에 있는 모든 것을 해원하고 천국생활을 소개시켜 주어야 하는 사명이 예수 혹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끝날의 여러분에게 있다는것을 명심하십시오. 예수님 대신 모든 작전계획을 맡고 하나님 대신 싸워드릴 수 있는 대표자가 나와서 책임을 완수해야만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릴 수 있고, 예수님을 해방시켜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우주적인 사명을 앞에 놓고 여러분들은 승리적인 이스라엘의 노정을 찾아나가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내가 속하여 있을 수 있는 반열을 찾아야 되고, 나의 지도자를 찾아야 될 것입니다. 또한 내가 머물러 있는 위치가 하늘 앞에 어떠한 위치인 것을 알아야 하고, 변치 않는 모세 아브라함 야곱 예수의 대신 존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 대하여 호령하게 될 때도 ‘네, 그대는 만 우주의 창조이념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자격자인 하나님의 아들딸이니이다’라는 찬양과 더불어 사탄으로부터 경배받을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되어야만 지상천국동산에서 세계적인 성전이념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여러분들은 일대 격전에 부딪치게 됩니다. 여러분들을 각 교파들이 공격합니다. 여러분을 영적으로 시험도 합니다. 모세를 하나님이 치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에게도 이러한 노정이 있고, 모세를 민족이 배반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앞에도 그러한 노정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 상에서 하늘로부터 버림을 받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앞에도 그런 것이 있을 것이고, 예수가 민족으로부터 배반을 받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앞에도 그러한 노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거기에서 낙심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쉬운 뜻이 아니라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세계적인 환란을 등에 짊어지고 지극히 처절한 반대를 받으면서도 싸움노정에서 쓰러지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세계와 하늘 땅이 하나의 귀일점을 발견할 때까지 여러분은 계속 투쟁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분은 이스라엘민족이 애급을 떠나 광야에 나와서 먹을 것이 없고, 마실 물이 없다고 한탄하던 것과 같이 한탄하지 마십시오. 누가 몰라준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나를 알아주는 모세와 같은 지도자 하나만 붙들었으면 제일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나를 알아주는 하나님만을 붙들고 나를 알아주는 예수님만을 붙들고 이것이 제일이라고 믿고 모두가 배척하더라도 그 분만을 붙들고 가면 그 분이 이루실 것을 내가 인계받을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래야만 여러분이 제 3이스라엘의 선민된 자격을 갖추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이 될 수 있는 동시에, 역사적인 영광의 모습, 온 천주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영광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영광의 아들딸로서 세계를 대표하여 하늘 앞에 나타나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쉬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천사가 축복하던 그러한 축복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예수에게 손을 들어 축복하시려던 그 축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즉, 끝날이 찾아진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손을 들어 예수를 대신한 나의 아들딸, 영원한 제3이스라엘의 주인공들로서의 나의 아들딸이 되라고 축복하실 것이며 영원히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실체적인 기쁨과 영광과 미의 존재가 되라고 비로소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진입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어야만 제 3이스라엘의 선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3-356
기 도
영계에서는 제 2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반열이 편성되어 있는데,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제 2이스라엘의 반열을 이루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 잠들어 있는 민족을 깨우치고, 잠들어 있는 세계의 기독교인들을 깨우쳐서, 땅 위에서 제 2이스라엘의 축복을 대신할 수 있는 반열을 조성하여 가지고 그리하여 영계가 하나되고 오늘날 제 3이스라엘을 세계적으로 건설할 수 있는 선민권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그리하여 반열로 조직된 종족을 통하여, 민족을 통하여, 국가를 통하여 세계형까지 거쳐 나가야 할 천적인 사명을 저희들이 인계받고, 모세가 싸우던 노정을 저희들이 인계받게 허락해 주시옵고, 예수님이 싸우시던 노정을 저희들이 인계받아, 사탄의 비난과 참소를 물리치고 나아가 아버님을 모실 수 있게 허락해 주시며 아버지의 영광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전한 말씀을 받고 하나님이 택한 선민 이스라엘의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기쁨의 아들딸로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이들이 세계 가나안 복귀노정을 성취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시며, 이제 사탄과의 싸움의 노정에서 저희들이 하나로 결속하여 승리하게 하시고, 하나의 중심적인 예수의 뜻 앞에 반역하는 무리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중심을 고생시키는 무리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세를 비난했던 민족이었지만 이스라엘의 건설을 위해 하늘이 필요로 했었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제 저희들 하늘을 염려하시게 하지 않고 제 3이스라엘을 성취하고도 남음이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