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5 to 3-329: 하나님을 모시는 자들이 되자

하나님을 모시는 자들이 되자
1958.02.02 (일), 한국 전본부교회

3-315
하나님을 모시는 자들이 되자
요한복음 14:1-17

[기 도]

사랑의 아버님! 아버지의 존전에 부복한 이 아들 딸들, 아버님이 바라시는 성별된 몸 마음을 갖출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운행하실 때에, 아버지의 같이하심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 몸을 가진 자들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마음으로 몸으로 내 한 자체를 아버지께 바쳐 드릴 수 있는 동시에 아버지의 간곡한 심정이 저희의 마음을 통하여 저희의 몸에까지 전달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이 지금 간절하실진대 저희들도 간절하게 해주시고, 아버지께서 거하실 수 있는 성전을 이룰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찾아주시기 위해 60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지나오시면서 수고의 발걸음을 옮겨오신 아버지를 붙들고 올 수 있는 모습들 되게 해주시고, 모든 헛된 죄악을 벗어버리게 해주시며, 아버지의 가슴에 안길 수 있는 마음, 간절한 심정에 사무칠 수 있는 마음이 될 수 있게 저희의 몸 마음에 충만한 사랑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 사람이 없사옵고, 자기의 자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 자는 이 땅에 없사온데, 아버지, 당신을 알지 못하는 이 땅의 만민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특별히 이 한민족, 삼천만 백성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아버지시여! 당신의 긍휼의 손길이 이 민족에게 있사올진대 이 민족이 가진 것 없고, 자랑할 것 없고, 아버님께 드릴 것 없사오나 어려운 길을 걸어오신 아버지의 사정을 염려하여 몸 둘 곳을 모르고 있사오니, 아버지, 이 나라에 찾아오셔서 이 민족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세계 인류의 마음을 하나되게 하고, 아버지의 뜻을 받들고, 아버지의 제단을 쌓을 수 있는 자랑스런 아버지의 아들딸이 이 민족 가운데서 많이 나오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께서는 무한히 우리를 염려하고 계시고, 아버지를 위해 안타까와하는 자녀, 그와 같은 교단, 그와 같은 민족이 있다면 아버지께서 찾아오셔서 안식하시고 싶은 간곡한 심정이 계실 줄 알고 있사오니, 오늘날 저희 한 몸을 아버지께 바치고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친히 아버지께 저희들에게 임재하여 주시어서 저희의 갈길과 저희의 행할 일과 저희들이 아버지를 위해 싸우며 갈 수 있는 길을 친히 보여 주시는 긍휼의 이 한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 저희들, 아버지의 말씀을 대하고자 원하오니, 아버지, 저희들 자신의 어떤 주의 주장과 관념이 남아 있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아버지의 말씀에 젖어들게 해주시고, 그 말씀이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는 흙과 물이 되게 해주셔서, 아버지의 형상으로 빚어질 수 있는 이 한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온유 겸손의 제물로서 아버지께서 분부하신 말씀을 간곡히 고대할 수 있는 심정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말씀에 의해 아버지의 형상과 아버지의 성상을 닮아날 수 있는 재창조의 역사가 이 시간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죽어도 한뜻을 위하여 같이 죽을 수 있으며, 살아도 한뜻을 위하여 살 수 있고, 말씀을 들어도 한뜻을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이 시간 되시어서 사탄이 즐거워하는 간격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인류를 남겨 두고 십자가의 길을 가야 했던 안타까운 그 사정을 체휼하면서, 역사는 지나갔으나 이제 저희들 마음으로 몸으로 선조들의 심정을 체휼하여 그들의 심정의 대상자로서 책임할 수있게, 아버지, 이 시간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도 수많은 성도들이 때와 시기를 알지 못하고 자기를 주장하면서 당신의 무릎 앞에 엎드렸을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모이는 곳곳마다 사랑의 손길을 내려 주시사 섭리의 은사를 같이 나눌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승리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외로이 지방에 널려 있는 식구들이 이 한시간 무릎을 꿇고 아버지 앞에 호소하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일률적인 은사와 일률적인 사랑의 손길을 그들의 몸 마음에 내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 시간 오로지 산 제물로서 아버지의 품에 품길 수 있는 긍휼의 은사만을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317
말 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을 중심삼고 여러분에게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드리려는 제목은 `하나님을 모시는 자들이 되자’입니다.

3-317
인간과 만물과 하나님의 소망의 중심
오늘날 이 땅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비젼과 의견을 갖고 살고 있고, 또 어떠한 주의 주장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마음 몸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늘 땅 앞에 자신있게 나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날 이땅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비젼과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과 그들의 행동이 천륜의 뜻과 천륜의 섭리와 부합되지 않으면 어느 땐가는 기어이 전복되고 마는 것을 우리들은 역사과정을 통해서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인간들이 최후에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자기의 주의 주장과 자기의 어떤 주관적인 행동을 다 포기하고, 자기의 마음과 몸은 하나님을 대신했고 자기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행동한다고 주장하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나오기를, 오늘날까지 역사상에 왔다 갔던 많은 사람들은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늘은 이러한 대신자가 나오기를 바라며 무한한 수고와 인내를 하시며 오랜 동안 섭리해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땅 위의 서러움이 무엇인가 하면, 어떤 주의가 없어서 서러운 것이 아니고 행동하는 사람이 없어서 서러운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주장할 수 있는 주의가 없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행동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서러움이요 슬픔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과 인간 세상에 널려 있는 탄식과 고통과 사무쳐 있는 모든 원한을 제거하는 일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주의 주장과 하나님을 대신하는 한사람이 나타나야 됩니다. 그래서 섭리의 목적도 이 한사람이요, 역사의 목적도 이 한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다시 느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중심삼고 온 천지 만물과 동거하면서 누리려던 창조이념은 우리의 시조인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인해 이땅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6일 동안 지으신 모든 존재는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의 실체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이 말씀을 통해서 실체대상으로 나타난 후에는 무엇을 소원했을 것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동하면 만물들도 동하고 하나님이 정하면 만물들도 정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중보, 하나의 중심을 소원했을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그런 중심이 되었던들 오늘날 이 땅위에 벌어진 혼돈된 역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소망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행동할 수 있는 한 존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인간의 타락 이후 섭리역사의 과정에서 바라신 것이 아니고 창조 당시부터 지금까지 바라신 소망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319
말씀의 실체로 오신 예수님
그러면, 이 소망의 중심은 어떤 존재일 것인가. 그는 말씀을 대신한 존재요, 말씀의 실체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의 실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의 실체가 되는 그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를 이룰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의 주장을 갖고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 인간들 앞에 무엇을 예시시킨 것인가. 이것은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 말씀이 그대로 하나님의 심령에 돌아가 버리고 말았지만, 말씀을 잃어버린 사람도 역시 이땅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시 이 말씀을 인간들에게 주신다는 것을 예시하신 것입니다.

창조 당시에 하나님께서 하셨던 그 말씀과 인간들이 인연맺어져 있는 연고로 그 말씀을 변치 않는 하나의 목표, 하나의 소망으로 지금까지 바라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말씀을 이루기 위해 말씀의 실체가 오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이 땅 위의 실체는 어디 갔던가. 이 실체를 찾아 헤매는 노정이 하나님이 6000년 수고하신 섭리의 노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닷새 동안에 지은 모든 만물을 말씀의 실체를 갖고 있으되, 엿새날 지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있어도 말씀의 실체를 갖추고 서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말씀의 실체를 찾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운명의 노정이요, 복귀의 노정이며, 역사적인 노정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곧 말씀)요, 생명이니(요 14:6)”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소망하던 하나님의 말씀의 실체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이었는가 하면, 4000년 동안 역사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대하여 말씀하시고 싶었던 간절한 심정을 대신하는 하나의 결실존재로 나타나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하나님 대신 인간과 만물 앞에 발표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위해 말씀의 주인 공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4000년 동안 찾아 오셨던 말씀의 실체로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가슴 속에 있던 말씀이 피조세계를 통해 나타나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나심으로써 하나님 마음 속에 있던 말씀이 예수님의 심정에 다시 옮겨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인간들에게는 무엇보다 반가운 희소식이란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런 역사적인 말씀의 실체로 나타나 입을 열어 말씀을 발표하실 때 무엇을 느꼈을 것인가. 즉, 어떤 심정이었을 것인가.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이 역사적인 섭리의 뜻을 대신한 말씀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당신의 말씀이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던 말씀을 대신한다는 심정을 느꼈으며, 영원을 걸어놓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의 실체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질 때까지 대신 재창조의 역사를 거듭할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날 예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간단하게 30년의 생애를 거쳐가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겠고, 예수님의 말씀이 그 시대의 생애노정을 변명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며, 예수님의 말씀은 4000년 역사를 대표할 수 있고, 그 당시의 세계를 대신할 수 있고, 지금까지 인류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이런 예수님의 말씀의 가치를 알아드린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탄식은 무엇이었던가. 말씀으로 지어진 만물이 말씀의 실체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 탄식이었습니다. 예수님 역시 하나님의 심정을 대표한 재창조의 말씀의 실체로 오셔서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 말씀을 전하셨으나, 그 말씀 앞에 나오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 예수님의 서러 움이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321
말씀과 실체
여러분은 지금도 여러분 개개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간절한 심정으로 호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천륜이 통하고, 또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참진리가 무엇이며, 참다운 말씀이 무엇인가’라고 끊임없이 반문하면서 참진리를 개척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류역사가 바로 진리의 개척노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고 예수님의 심정, 즉 서러움을 대신한 말씀이 이 땅에 나타날 때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재창조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그 말씀을 땅 위의 모든 사람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30여년 간, 그리고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2000년간 수고하신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서러움을 무엇인가. 제1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한 제2의 말씀의 실체인 예수님을 통하여 제3의 말씀의 실체, 말씀의 성전을 찾는 것이 섭리의 목적인데, 이 제3의 말씀의 실체가 없는 것이 하나님의 서러움이라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진리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내가 길이요 진리’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길의 목적은 무엇인가. 4000년 역사의 길의 목적은 예수의 실체였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길의 목적은 인간들이 예수님과 같은 말씀의 실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골고다에서 예수님의 실체는 끝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고 하나님이 찾고자 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뜻을 인계받을 수 있고, 또 하나님이 뜻을 맡길 수 있는 하나의 실체였는데,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된 실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실체는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찾아나오신 전역사의 목적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발걸음을 멈추고 예수를 성전삼아 비로소 뜻을 땅에 인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알았던가.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 운행할 수 있는 성전으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운행하실 일이 있으면 자신을 제외하고는 운행하실 수 없다는 것을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느끼신 예수였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은 자기는 하나님이 4000년 동안 찾아오신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발판이요 이 하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수고해 나온 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대신 실체라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체인 연고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 이상 변할 수 없고,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자기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사람이 아무리 예수님을 밀어내려 해도 밀려나지 않는 예수님이란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이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길이 되지 못한 것을 복귀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아담을 대신해 나타나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토대 위에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재창조의 말씀이라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운행하실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대신 걷는 사람에게 예수님이 운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한 시대의 하나님이 아니라, 역사적인 하나님이고, 시대적인 하나님인 동시에 미래적인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실체 성전이신 연고로 인류가 예수님과 하나될 때에는 하나님의 전체의 섭리가 이뤄지고, 인류가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노정에서는 무엇이 앞서는가.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타락함으로 인해 말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말씀이 앞서는 것입니다. 말씀을 먼저 찾고 난 다음에 실체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체를 갖춘 하나님의 생명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어느 곳에 움직이느냐? 말씀을 먼저 찾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가 된 그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은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은 후에 싹트는 것입니다. 또, 그래야 하나님의 생명의 실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323
예수님의 강림목적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친히 보여주신 것이요, 하나님의 실체를 보여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을 친히 보여주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30여년의 생애를 거친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이 4000년 동안 수고해오시며 인간을 사랑하신 그 사랑의 심정을 닮아 나타나신 생명의 실체였습니다.

이런 말씀의 중심존재인 예수가 이땅에 와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던가. 하나님께서 4000년 동안 수고하신 것은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말씀을 대신 세우기 위해서였고, 말씀의 실체인 제2 아담인 예수를 세우기 위해 수고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과 실체를 갖춘 후에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들과 사랑의 인연을 맺으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하고도 참된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될 수 있었으나 인간들은 하나님과 영원한 사랑의 인연을 맺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반드시 말씀을 중심삼고 나타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실체인 예수님은 나타났었으나, 말씀만 남아지고 실체 예수님은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말씀만 중심삼고 살아야 하는 서러운 세계에 우리가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인간들이 최후에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말씀만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체를 모셔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 대신 모실 수 있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인간들은 실체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되는 사람을 찾아세워 그를 통해서 이 땅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실체를 찾기 위해 역사는 흘러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발표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끝날에 열매 맺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재창조과정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최후에 하신 말씀의 중심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랑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불변의 말씀의 소유자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예수가 다만 이 땅에 왔다 가는 것이 아니었고, 예수가 이 땅 위에 말씀을 전파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신부의 자격을 갖추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고, 또 하나님의 생명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의 동산을 성취해야 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실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를 사랑하고 예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듯 예수님을 중심삼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품고 오셨던 예수였던 연고로 후대의 믿는 성도들을 위해 당신의 신부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의 신랑이요, 인간들은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을 향해 간절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향해 인간들이 간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존재를 찾아야 할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말씀을 잃어버렸고, 실체도 잃어버렸습니다. 또 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말씀과 실체를 찾아야 할 인간들이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말씀만 받을 수 있는 은사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말씀에 의지하여 타락하지 아니하였던 아담의 형상을 다시 빚어 만들 수 있는 권내에 처해 있는 것이 복입니다.

3-325
말씀을 소유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
말씀의 실체로 오실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칙이기 때문에 재림주님은 구름타고 오실 수 없는 것입니다. 천리원칙은 뒤바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 오늘까지 인간들은 말씀의 실체를 소망하고 나왔는데 이것이 재림이상이요, 2000년 기독교역사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붙들려고 할 때 예수님은 붙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붙들 수 없습니다. 말씀밖에 남길 수 없는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그러셨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이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제 2그리스도의 화신체가 되어서 예수의 마음과 예수가 느낀 책임감과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과 기독교인들은 그런 심정을 대신하여 말씀을 찾고, 그 말씀에 의해 실체를 찾을 수 있는데도 좋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죽든지 살든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법도를 어겨 타락의 혈통을 받은 이후 오늘날까지 죄악속에 살았는데, 이제 새 말씀에 의해 기쁨에 넘쳐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온 인류가 영원한 생의 가치를 느끼며 살 수 있는 그 세계를 향해 이제 이 말씀을 붙들고 주장하며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일을 해야 할 때에 여러분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길을 나중에 가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역사적인 운명의 순간에 살고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4000년 섭리역사의 전체적인 심정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사랑의 심정을 갖고 하나님의 뜻을 생활의 중심으로 하여 살고,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었던 연고로 십자가에 돌아가셨어도 부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하나님의 생명도 영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실체가 하나되신 분인 동시에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생명을 대신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떤 사망과 고난도 예수님을 영원히 죽일 수 없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부활의 권한을 이미 갖고 계셨던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주의가 있고, 따라갈 수 있는 행동이 있다 할진대는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이요,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증거적인 행동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고, 예수를 대신할 수 있는 말씀의 소유자가 되었는가 스스로 반문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지상과 천상에서 인정될 수 있는 말씀의 소유자가 되었는가 반문해 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연고로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진 말씀’으로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신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 이것이 이루어진 말씀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 이것이 세계 인류의 중대한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을 찾아나가는 성도들이 총단결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 즉 기독교의 문제요, 범종교의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분열과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세계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이 세계가 분열의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분열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인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이 분쟁과 분열이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분열과 분쟁으로 혼돈되어가는 이 세계를 수습하고 모든 주의와 사상을 통합할 수 있는 완성의 말씀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참진리가 무엇인지 찾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의 역사과정을 보면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종교가 있었지만 한 귀일점을 향해, 통일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통일의 목표는 어떤 말씀을 통해 달성될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통일될 것입니다. 인류역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세워놓은 그 토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세계 역사가 전개되어 나온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로 통일시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통일할 수 있는 새말씀이 온갖 지혜를 갖추어 나타날 것입니다.

3-327
예수님의 심정
예수님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십니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하신 말씀을 보면 우리는 얼마나 예수님이 외로우셨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유와 상징으로 예수님의 비장한 마음을 나타내신 것인데, 이 말씀의 뜻을 알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제는 안식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안식하고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안식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이 천지 만물을 맡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약속의 말씀에 의지하여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약속의 말씀에 의지하여 합할 수 있고, 약속하신 주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기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언제나 있을 것이나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들을 붙안고 사랑하던 말씀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말씀이 실제로 나타나면 그 말씀을 모두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 말씀을 어기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진정으로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끝날에 나타난다면 그말씀을 들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소유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원칙을 세우는 것이 아니고, 그의 생명과 이념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진리를 표방하는 많은 종교의 교리, 주의가 있지만 그대로 실천해서 우리의 마음과 몸이 편하고 영원히 그 말씀에 젖어들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주의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 몸을 움직여 왔을진대, 하나님의 참말씀이 나오면 모든 주의 주장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것인가. 그때까지는 약속의 말씀으로 약속의 실체를 찾고, 약속의 사랑을 찾고, 약속의 생명을 찾게 되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이 약속의 말씀 위에 사실의 말씀을 가하여 사실의 실체를 찾고, 사실적인 사랑을 찾고, 사실적인 생명을 찾게 하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도 낙원에 가셔서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오셔서 하셔야 할 사명을 완결하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예수님이 가실 곳은 낙원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하나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말씀의 주인공, 창조이념을 대신한 생명의 실체가 나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전에는 예수님은 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쉴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연고로 이제 우리는 무엇을 탄식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나도 모르게 우리의 마음 몸에서 예수의 말씀이 나오지 못하는 것을 탄식해야 하고, 자기도 모르게 예수가 자기 몸을 움직여 행동한 것이 자기의 행동이 되지 못한 것을 탄식해야 하며, 자기도 모르게 불쌍한 마음이 들어 눈물 흘리지 못한 것을 탄식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안식시켜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같이 한몸을 이룬 하나의 세포가 되어야 합니다. 원래는 유대교단과 이스라엘민족, 당시의 세계 인류가 예수님의 지체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늘 땅까지도 하나되었어야 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불쌍한 분이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 오른편 보좌에 앉아 계시는 줄 알고 있지만 예수님은 불쌍한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의 이상세계를 건설하는 천주적인 사명을 갖고 오셨지만, 세계를 지도해서 땅끝까지 움직이고 천상까지 통할 수 있는 소망의 말씀을 갖고 오셨지만, 땅 위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믿어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서는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하시지 못하셨고, 행동하고 싶은 것을 다 행동하시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안타까웠던 예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이 고을 저 고을로 다니시면서 말씀을 전하신 예수님이었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한사람을 놓고 하나님이 서러워하셨고, 천사들이 서러워했으며, 만 우주가 서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역사적인 범죄를 저지른 조상의 후손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 땅 어디에 서 있는지, 이 민족 이 세계가 어디로 갈 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걸 바라보는 오늘날 우리들은 2000년 전 예수님이 오셔서 망해 들어가는 이스라엘민족을 보고 서러워하셨던 것과 같이 서러워할 줄 알아야되겠습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의 최후의 소원인 말씀의 실체가 되고 천륜의 심정을 통하여 전체의 역사적인 실체를 대신할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6000년 동안 섭리하셨던 하나님이시여! 나를 보시고 이곳에 주님을 보내 주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어디로 재림하게 하실 것인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땅을 대한 염려의 조건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329
제3 이스라엘의 책임
오늘날 한민족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없고, 남들로부터 욕을 먹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지만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하고, 우리의 몸은 하늘의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하나님의 6000년이라는 긴역사를 거쳐 오시며 찾으신 것은 여러분 한 개체가 아닙니다. 한민족 전체, 인류 전체를 찾으시기 위해 수고해 오셨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서러워하셨던 아버지의 심정을 대신하고, 예수님의 슬픔과 선조들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받들어야 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받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교회를 찾아 가셨습니다. 즉, 교회를 발판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반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정을 찾아나섰던 것인데 가정에서도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제자들을 찾아 나섰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의 터, 세계의 갈길이 민족이 받들지 않아 끊어졌고, 민족의 갈길이 교단이 받들지 않아 끊어졌으며, 교단의 갈길이 가정이 받들지 않아 끊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모두가 끊어졌던 예수의 서러움을 누가 아느냐 이겁니다. 하나님께서 4000년 동안 수고하셔서 아브라함의 직계 혈통으로 세웠던 요셉 가정은 어디 갔던가. 요셉과 마리아는 어디갔던가.

이스라엘 백성을 터로하는 안식의 기대가 무너지고, 유대교를 터로하는 안식의 기대가 무너지고, 가정을 터로하는 안식의 기대가 무너지자 예수님은 갈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12제자까지도 배척하였고, 심지어는 12제자 가운데서 뽑힌 3제자까지도 배반하니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예수님과 같이 몰리고, 쫓기고, 버림받고, 배척당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서러운 사정과 예수님의 슬픈 심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민족으로부터 꺾임을 당하고, 교단으로부터 쫓김을 당하고, 가정으로부터 몰림을 당하고, 부모로부터 버림당하고, 제자들 앞에 배척당하는 자리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선조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민족 앞에 불쌍한 무리요, 외로운 무리이지만, 민족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와 같이하는 것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세계를 위해 싸우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대표하고, 뜻을 위해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렵다고 낙망하지 말고 여러분이 듣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진대 그 말씀이 같이하는 곳에 하나님의 사랑이 움직일 것이고, 생명이 싹틀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말씀의 증거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사랑을 갖고, 인간 세상을 사랑해야 되겠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로해 드려야 되겠으며, 제2 이스라엘의 사명을 완수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제3 이스라엘의 선조들로 남아지려면 제2 이스라엘의 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제2 이스라엘을 불러서 가게 하셨던 길, 예수님의 제자들이 넘어가던 십자가의 길, 성도들이 걸었던 말씀의 고개를 안 넘어갈 수 없는 공동 운명길에 처해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다 발표하시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하나의 심정을 발판으로 하여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어떤 험한 길이 우리 앞에 가로놓이더라도 감사하면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즉, 우리들은 하늘의 용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3 이스라엘의 선조가 되어야 할 끝날에 처한 여러분들은 최후의 말씀은 하늘의 사랑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의 사랑에 의거한 말씀─.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있고, 여러분은 따로 있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보이는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내적 심정이 여러분의 내적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즉 본심의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번식시킬 수 있는 제2 창조주의 사명을 해야 되겠고, 즉 말씀의 번식체가 되어야 하겠고, 생명의 번식체가 되어야 하겠으며, 실체의 번식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만 하나님을 영원히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이 제3 이스라엘의 기준입니다. 이래야만 말씀을 심어줄 수 있고, 실체를 심어줄 수 있으며, 생명을 심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실 줄 알고, 말씀을 보고 느낄 줄 아는 말씀의 실체, 생명의 실체, 6000년의 심정을 대신한 실체가 되어 제2 이스라엘을 재창조시킬 수 있는 사명을 완수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완전히 통한 아들 딸이 될 수 있고, 그런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어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한 영광 가운데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