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7 to 3-313: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자가 되자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자가 되자
1958.01.26 (일), 한국 전본부교회

3-297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자가 되자
빌립보서1:1-11

[기 도]

사랑의 아버님! 아버님의 뜻을 알고 모인 이 아들 딸들의 몸 마음 전체를 용납하여 주시옵고, 복귀의 싸움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늘길을 외면하는 모습들 되지 말고 아버지로부터 명령받은 것을 깊이 간직하여 그대로 움직여 나가는 모습들로 이끌어 주시옵길 바라옵니다.

저희 마음의 깊은 심령에 아버지의 본성을 채워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본성이 그리워질 수 있는 이 시간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찾아 헤매신 6000년의 아버지의 심정을 이 시간 깨달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나를 위해 수고하신 아버지인 것을 알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나를 위해 십자가의 곤고도 참으시며 싸워오신 아버지이신 것을 알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땅 위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우주적인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무리는 없고, 아버지의 아들딸인 것을 찬양하고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자들도 없사옵니다. 보잘것 없는 저희들을 부르셔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시고, 선지자들의 심정과 만물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은사를 허락하신 아버지 앞에 황공한 마음을 갖고 엎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허락하신 바의 은사가 채찍인 것을 알고 있사옵고, 아버지를 흠모하는 마음도 커야 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의 간절한 마음이 크지 못한 것을 용서하여 주옵시고, 아버지의 서러움을 두려워할 줄 아는 아들 딸이 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스스로 자기의 모든 잘못을 자인하고 스스로 자기의 모든 죄악을 회개하여 스스로 자기의 모든 것을 공인하여 아버님만을 소유할 수 있고, 아버님만을 사랑할 수 있으며, 아버님만을 의지할 수 있는 하나의 성의를 갖추게 축복하여 주옵시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 친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고, 사탄이 틈타는 시간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몸 마음이 아버지와 하나되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시간 저희들이 쌓는 제단이 천지의 뭇 생명들을 대신한 성별될 제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땅과 하늘의 원한이 가득차 있는 것을 느끼오니 저희의 마음 몸이 특별히 아버지 앞에 드려지는 제물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말씀을 저희들 앞에 나타내 주시옵고, 이 시간 주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고 하나되게 허락해 주시어서 아버지의 실체를 느끼고, 불신의 무리를 치기 위해 아버지 앞에 실체로 드려진 제물이라는 것을 느끼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모여 있는 아들딸들의 슬픈 마음을 위로해 주시옵고,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298
말 씀
여러분들과 잠깐 동안 생각해 보려는 말씀의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자가 되자’입니다. 본문 가운데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시니라” 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자가 되자’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그 날부터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성전으로 완성한 사람, 하나님과 일치되는 심정과 심장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하나님의 실체 성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4000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신 역사적인 섭리노정을 대신하여 나타나신 하나님의 성전인 동시에, 4000년 동안 섭리하셨던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한 분으로서 실체적인 산 가슴을 갖고 나타나신 분이었다는 것을 오늘 우리들은 느끼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3-299
예수의 심정과 심장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줄 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었고, 하나님의 사정을 느낄 줄 아는 예수의 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뛰는 심장은 하늘을 동맥삼고 인간들을 정맥삼아 하늘이 동하면 예수가 동하고 인간이 정하면 예수가 정하는 일체의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었고, 그것이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었는데,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는 예수 그리스도의 내적 심정을 아는 사람, 하나님의 몸을 대신한 예수님의 외적 심장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어떠했느냐 하면, 30년의 준비기간에 남이 모르는 쓸쓸함을 느낀 심장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그런 쓸쓸함을 느꼈던가.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창조의 이념을 이루어 영광을 누리시려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피조만물은 주인을 잃어버린 입장에 서게 되었으므로 이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아시는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예수님도 쓸쓸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예수님과 같이 피조세계가 말할 수 없이 쓸쓸한 세계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0년 준비기간을 거치신 예수님은 그 다음에 어떤 생활을 하셨던가. 4000년 동안 하나님께서 수고하여 택해 세우신 이스라엘민족 앞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뜻을 받들고 나타나 새로운 복음을 전하게 될 때, 그 가슴은 말할 수 없는 사명감에 벅찼을 것입니다. 30년 동안의 슬픔의 생애를 청산하고 하늘의 서러움과 하늘의 슬픔을 가로막아 잃어버린 에덴의 주인공을 다시 회복시켜야 할 사명을 짊어진 예수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뛰는 심장을 갖고 나타났다는 것을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택함받은 선민 앞에 나타나 하나님 대신 새로운 말씀을 전하게 될 때, 뜻을 따라나오던 이스라엘, 섭리의 뜻을 대신하여 부름받은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이념의 전체를 대신한 분으로 자기들의 소망의 실체로서 자기들의 영광의 자체로 모셔드릴 수 있는 환경을 갖추지 않고, 오히려 그들은 벅찬 가슴을 갖고 나타난 예수님 앞에 반기를 들고 나타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대신하여 세웠던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서러움을 느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워진 이스라엘 선민이 예수님 앞에 뜻을 대하여 나타나지 못하게 될 때,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고 서러워하시던 심정을 다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불신하는 이스라엘민족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은 무한히 슬프셨을 것입니다. 분개심도 컸을 것입니다. 하늘 앞에 호소하고 저주하며 그들을 치라고 명령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심정을 다 떨쳐버리고, 뛰는 가슴을, 뛰는 심장을 억눌러 가면서 옛날에 에덴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한 이후에 하나님이 참으시던 그 심정을 생각하시며 참으셨고, 서러운 심정을 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하는 이스라엘민족을 대하여 소망을 두시던 예수 그리스도였음을 여러분을 알아야되겠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을 대신하여 속죄의 제단을 쌓아 놓아야 할 세례 요한이나 아브라함 이후 40여대 동안 선민의 혈족으로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인도되어 온 요셉 가정도 사라지고, 뜻을 받들어 자기를 잉태하고, 낳은 후에 30년동안 길러오던 마리아와 형제들과 종족들도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고 하셨던 예수의 심정, 하늘의 뜻을 붙들고 외로운 신세로써 싸워나가야 했던 예수의 뛰는 심장을 여러분은 이 시간 느껴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뛰는 심장 속에 하나님의 수고가 컸던 것을 알면 알수록 예수의 안타까움과 그 분개심은 컸을 것이고, 택한 이스라엘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크면 클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은 찢어지는 듯한 원한에 사무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참으시며 말없이 집을 나서던 예수의 심장이 어떠했을 것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느껴야 하겠고, 오늘날 뛰고 있는 여러분의 심장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하는 것을 더듬어 살필 때가 바로 이때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301
예수님의 진정한 친구
때는 지나갔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뛰는 심장의 맥박이 오늘날 여러분의 심장과 혈관, 동맥과 정맥을 통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적인 심장의 맥박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책임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예수님은 2000년 동안 고대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6000년 동안이나 기다려 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발 둘 곳이 없는 사정에 처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함받은 이스라엘민족을 뒤에 두고, 하늘을 신봉한다는 유대교를 뒤에 두고, 30여 생애를 걸고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천신만고 수고를 하며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던 세례 요한도 뒤에 두고, 택함받은 아브라함의 혈족으로 내려오던 요셉 가정도 뒤에 두고, 하늘을 등지고 가정을 등지고 교단을 등지고 돌아서 광야로 나가셨던 예수의 뛰는 심장은 어떠했을 것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돌아서서 가시는 그 발걸음에 원한이 있었다면 하늘을 대신하여 사무친 심정을 가지고 민족을 원망하고, 그 원망에 사무친 심정이 분풀이를 한다면 저주의 불길을 내려 달라고 심판의 호소를 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민족의 갈길을 염려했고, 배반하고 배척하는 사람들을 염려 하고 그들을 다시 품기 위하여 광야를 향해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의 외로운 심정을 여러분은 느껴야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모든 운명을 청산하고, 자기의 사명 전체를 위한 준비와 시대적이고 영원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세상만사를 다 포기하고, 의지할 곳 하나 없는 황무지인 광야를 향해 나섰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더듬어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민족을 뒤에 두고 광야에 나가 40일간 금식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광야에 나가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40일간 외로이 헤매게 된 것을 생각하면 분함이 사무칠 수 있었으나 4000년 동안 참아나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고, 그래도 이 민족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을 느끼신 예수님은 이들에게 제2의 생의 기대를 조성해 주기 위하여 광야에서 먹을 것을 먹지 않고 40일간 하나님 앞에 민족적인 제물을 드렸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금식해 보아서 알겠지만 예수님은 40일 금식기간 중에 먹을 것을 먹지 못한 연고로 몸이 마를대로 말랐다는 것입니다. 40일간 금식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조여들었고 심장은 쇠하여 들어갔지만 40일 금식 고개를 넘은 것은 하나님의 심정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먹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죽어들어가는 예수의 심장소리를 염려하여 울 수 있는 친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힘없는 몸이었지만 천륜의 새로운 이념이 막혀버린 것을 터치기 위한 싸움의 노정에서 끓어오르는 마음을 품고 계셨던 예수님, 하나님의 외로운 심정을 생각하며 사무치는 마음을 품고 계셨던 예수님에게 친구는 나타나지 않고 사탄이 나타나 시험하였습니다. 이런 사정에 처하면서도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야만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느끼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탄이 나타나 예수님의 마음과 몸까지 파괴시키기 위해 3대시험을 할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고, 민족을 대신하고, 선조들을 대신하여 새로이 결심하고 나선 예수님의 뛰는 심장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결국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신 예수님은 자신을 배척했던 이스라엘민족이 다시 찾아지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또 자신을 반대하고 몰아 내던 유대교가 다시 찾아지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광야에 나가 하나님과 담판지은 후에 이 죄악의 도성을 복귀시키기 위한 싸움에 불타는 충성심을 갖고 결연히 나섰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예수님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을 대신하여 죽을지라도 자기 일신을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자각하고 자기를 시험하던 사탄 대하여, 자기를 배척하던 이스라엘민족을 향하여 제2의 공세를 펴고 나섰던 예수 그리스도의 뛰는 심장을 여러분이 이 시간 다시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니까 그런 사정을 참을 수 있었고, 그런 고난과 비난도 참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니까 더 참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남보다 더 예민하고, 남보다 더 극한 심정에 사무치셨기 때문에 누구도 갖지 못한 비장한 심정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섰던 예수 그리스도가 잃어버린 도성을 다시 찾기 위해 나섰을 때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슬픔의 생활과 헐벗는 생활과 굶주리는 생활을 다 거쳐나온 입장에 섰을지라도 땅 위에서는 예수님의 사정에 동참하는 동지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나의 친구요, 하나님만이 나의 아버지라는 심정을 가지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3-303
하나님은 나와 같이 계시다
민족이 배반하고 교단이 비난하고, 친척과 혈족이 외면하고, 자신의 모든 것이 없어질지라도 오직 예수님의 안위와, 그의 소망과 그의 심정을 채워주는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과연 하나님은 나와 같이 계시다는 사실, 하나님은 내 것이라는 이 하나의 사실이었습니다. 이 하나의 사실이 4000년 역사를 대신하여 다시 하늘을 염려하고, 하나님의 뜻을 다시 일으키어 이스라엘민족에게 전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만 인류에게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광야에 나가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인 줄 알았습니다. 자신을 길러주고 무한한 소망의 하나님으로서 기쁨으로 찾아오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이런 벅찬 심정을 가지고 나서게 될 때, 옛날 상대적인 관계로 계시면서 언제나 나를 키워주고 나를 품어주고, 나를 위로해 주던 하나님의 어려운 사정에 처하면서 하나님의 어려운 사정과 슬픈 심정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뜻을 `내가 감당하겠나이다’라고 호소하며 그런 심정을 갖고 나서게 될 때 그 날부터는 상대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직접적인 하나님, 자신과 같이 계시는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더불어 새로운 각오로써 원수들 앞에 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40일 금식기간이 끝나고 새로운 싸움의 노정을 출발한 예수님, 민족을 대신하여 4000년의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물리치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예수님은, 예수 일신만으로서 나선 것이 아니고, 4000년 동안 그리던 모습,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 자신의 말씀이 아니었고, 예수님의 행동도 예수님 자신만의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한 것이었고, 예수님이 하신 행동도 하나님의 행동을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이 자기의 마음속에 살아 계시어서 자신의 심장을 움직이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예수님은 다시 이스라엘 동리에 찾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민족이 반대할 때에는 외로운 심정을 갖고 광야에 나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몰려오는 시련과 핍박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부딪쳐 승부를 짓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갖고 나선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여러분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다시 찾아드리기 위해 나선 예수님, 몸이 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후회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에 불타면 불탈수록 더욱 뛰는 심장을 억누를 수 없었던 예수님을 어느 누가 알아드렸던가. 이 세상에는 아무도 예수님의 뛰는 심정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예수님의 사정을 알아 주셨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예수님은 3년 공생애노정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제자들로 사도들을 택해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대하게 될 때에도, 4천년 동안 아담을 잃어버리고 서러워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제자들을 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제자들은 누구였느냐? 하나님의 실체성전이 되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직접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실체성전이 되게 인도하겠다는 마음이 뼈에 사무쳤던 것입니다.

반대하는 이스라엘민족도 사탄의 종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체로서 나타나야 할 하나님의 아들딸인데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반대하는 그들을 보시며 서러워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느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어떠했겠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을 살펴 보게 될 때에,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 사시지 않았고, 먼저는 하나님을 위하여 사셨으며, 다음에는 제자들과 인류를 위해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 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사신 것입니다.

3-305
이스라엘민족의 불신과 제자들의 무지몽매
그리고 예수님의 뛰는 심장은 하나님을 대신했고 이스라엘민족을 대신했던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하나님의 서러움이 예수님의 서러움이요, 이스라엘민족의 서러움이 예수님의 서러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이스라엘민족을 대표한 사도들은 셋이 아닌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민족과 자신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심정에 사무치셨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을 자기의 친자식 이상으로 소중히 여겨 주었고, 사랑해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3년 공생애 노정은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의 심정을 갖고 참사랑의 생활을 하셨던 노정이었습니다. 죄악에 허덕이고 있는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였고, 민족과 사도들의 심정을 대신하였던 예수님인 것을 안 사람이 없었고, 예수님의 사정을 안 사람이 땅 위에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애달픈 하늘의 심정을 품고 싸워 나가려 했던 예수님, 또다시 민족이 반대하고, 따르던 사람들이 떨어지고, 최후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기도해야 했던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가면서 기도하신 예수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애달픈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따르고 있던 세 제자들은 예수님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각자 따로따로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을 통해서 가야 하고, 예수님과 같은 심정으로 호소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또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하는 심정으로 호소했고, 제자들을 염려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음을 몰랐고, 피곤에 지쳐 잠들었던 것입니다.

생사의 결판을 짓는 마당,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던 예수님의 심정은 하늘과 땅이 녹아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님의 심정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3년 동안 친아들딸같이 길러준 사랑하는 세 제자는 예수의 심정을 모르고 졸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불같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세 번씩이나 나와 제자들을 깨우시던 예수님의 딱한 심정을 여러분은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떤 심정을 느꼈을 것인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며 느끼시던 서러움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 앞에 제2민족으로 택함받은 이스라엘민족이 반대하고 유대교가 반대하여 다시 3년 공생애노정을 거쳤지만 자신을 절대로 믿는 한 사람을 찾지 못하게 될 때, 믿지 못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에 느끼신 하나님의 서러움과 예수님이 30년 사생애기간과 3년 공생애기간에 느끼셨던 서러움, 나아가서는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시던 그 애달픈 심정을 느끼고 예수님을 대하는 사람이 없었고, 하나님의 심정을 느낀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3년 공생애 노정에서 희노애락을 같이하던 제자들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걸어가신 일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걸어가신 목적이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인류를 위하는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33년의 생애를 걷고 보니 남아진 것은 홀로였습니다. 그리고 40일금식을 끝마칠 때에도 안타까운 심정과 서러운 사정에 사무쳐 있는 예수님에게 원수 사탄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예수의 심정은 어떠했으며, 뛰는 심장은 어떠했던가. 인간 세상을 대해 모든 것을 믿을 수 없고, 어느 곳에도 의지할 수 없고, 거처를 정할 수 없는 안타까운 사정에처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원수 사탄이 나타나 시험하게 되니 예수의 심정을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유대민족과 인류를 염려하시기에 초조했던 그 예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에게 역사적인 사명을 대신하여 탕감의 노정을 다시 걸어야 할 책임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의 심정을 대표한 예수님의 애달픈 심정을 대신할 수 있고, 대신 싸워 드릴 수 있으며, 예수님의 뛰는 심장을 대신하여 염려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늘은 이런 참아들딸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3-307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심정과 심장
소망의 조건을 전부 다 끊고 나선 광야의 노정에서 예수님은 사탄과 싸워 승리하셨지만, 예수님에게는 실체 제물을 드려야 할 사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으나, 택함받은 이스라엘민족과 교단을 잃어버리시고 혈혈단신 불쌍하게 골고다의 길을 걸어가셨던 예수님의 사정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 이 사정에서 원망해야 할 이스라엘민족이요, 저주하여야 할 12사도였으나, 채찍으로 몰아내고, 고함치고 아우성치는 택한 이스라엘민족을 바라보며 말없이 십자가를 지고 필사적으로 골고다의 길을 걸어가시던 예수의 심정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도 사람이시기에 인정적인 감정이 있다면 억울했을 것입니다. 저주와 원망이 사무치고 통분한 마음이 가슴에 꽉 찼을 것이었지만 하나님이 이 민족을, 이 세상을 다시 구원하시려는 뜻이 남아 있는 것을 아시고 예수는 저주의 입을 막고 서러운 심정을 돌이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늘을 대신하여 이 민족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심판하면, 후대의 인간들을 구원하는 구원섭리가 다 파괴될 것을 느끼셨기 때문에 구원의 한 기준을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자신의 억울함을 억울함으로써 나타내고, 하나님 대신한 자체로서 저주와 원망의 입장에 섰다면 이 세상은 희망이 다 끊어졌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그 시간으로 마지막이 되었을 것이예요.

그런 것을 아시는 예수였기 때문에, 내가 죽음의 고개를 넘고서라도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아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저주하고 원망해야 할 민족을 대하여, 복수해야할 원수들을 대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2)”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제2구원섭리의 뜻을 인계받아 출발한 안타깝고 심각한 순간이었음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을 제2구원의 실천자로 세우실 수 있었고, 인간들에게 부활의 은사를 내리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에 처한 예수는 원수들이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과거 역사를 회고하면서 하나님의 심정을 염려하셨고, 미래의 후대 자손들을 염려하시며 자기의 피살이 찢어지는 것을 잊어버리고, 하늘의 역사적인 서러움의 심정을 대신 짊어지고,역사적인 하나님의 원한과 역사적인 구원을 위한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하늘이여! 탕감하시옵소서!’라고 호소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과 예수 그리스도의 멎어져 가는 심장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만민을 위하여 애석하게도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서 하나의 위안의 장소도 찾지 못하고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면서 외로운 고아와 같이, 몰리는 방랑아와 같이 외로운 길을 걸었던 생활이 종국에는 갈보리 산상에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서게 된 이 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였을 것인가! 하나님의 서러움은 하늘 땅을 뒤집어 엎을 듯 하였을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세 시간 동안 천지가 어두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도 4000년 동안 믿고 나오신 아들 예수, 4000년 동안 잃어버린 아담을 찾기 위해 후아담으로 세웠던 예수였으나 죽음의 골고다의 길에서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바라보시며 기막힌 심정을 품으셨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서럽고 안타까운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아시는 예수는, 하나님의 서러움이 내 서러움보다 크고 하나님의 분함이 나보다 크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아픔이 나의 아픔보다도 크다는 것과, 반대하는 민족이지만 다시 찾아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예수는 도리어 `내 죽음은 경하나이다’ 하며 순종의 제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에서도 이런 순종과 효성의 심정에 벅차 있었던 예수님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돌아가셨지만 예수의 죽음을 위로하는 사람, 예수의 시체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셔 드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를 제멋대로 취급하던 로마병정들은 나중에는 창을 들고 예수의 심장을 찔렀는데, 이렇게 찔림받던 예수의 심장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피가 다 뽑아진 심장이로되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겠다는 잔인한 원수들 앞에 선 예수의 심장을 여러분들이 생각해봐야 되겠습니다.

3-309
끝날의 성도에 대한 하나님과 예수님의 소원
그러면 하나님의 원한과 서글픔이 무엇이었던가! 땅 위에 산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대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증거해 나오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자기의 심장과 같이 느끼고 예수님의 뜻을 대신 인계받을 자는 누구였던가? 하나님은 그런 사람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죽은지 3일만에 무덤을 헤치고 부활하여 택한 제1이스라엘은 잃어버리고, 제2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한 복음 운동을 전개하여 찾은 사람들이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있는 기독교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 기독신자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이스라엘민족의 실수를 복귀하기 위한 제2이스라엘이요, 제2의 선민입니다.

그래서 이 민족 앞에, 인류 앞에 이 하나의 소망과 구원의 뜻이 남아 있으므로 십자가상에서 기도하시던 이 한 뜻을 해원하기 위하여 예수도 하나님도 섭리해 나오고 계신데, 이 소망이 누구에게 머무를 것인고! 오늘날 제2이스라엘인 여러분에게 머물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4000년 역사를 대신하여 나타나야 할 이스라엘이 깨진 것을 오늘날 우리들은 복귀한 이스라엘로, 예수를 반대하던 이스라엘을 예수를 환영하는 이스라엘로 복귀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 오신 예수를 배척했던 이스라엘은 깨졌으나 오늘날 제2이스라엘인 우리들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억울함을 해원해 드릴 수 있어야만 다시 오는 주님을 우리는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도 이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끝날의 성도들에게 바라는 최대의 요구가 무엇이겠는가! 다시 오시는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 것인가! 예수님이 애달픈 심정을 품고 나오던 그 뛰는 심장의 내정을 체휼하는 아들 딸입니다. 그러한 아들딸들이 이 땅 위에 나와야만 죽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한을 풀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원한까지 풀어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인간들은 기쁨의 한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부활의 한 날을 찾았으되, 부활한 후에도 예수는 배척하였던 제자들을 만났지만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부활한 후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만나 붙들려 할 때에도 붙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기쁨의 한 날이요, 기쁨의 한 순간이었으나 역사적인 슬픔을 이어온 그 사정을 알지 못하는 그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대신하여 예수 앞에 기쁨의 한 조건을 세울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아, 부활한 후에 예수를 붙들던 마리아의 심정을 넘어서서 예수의 내적 심정을 통찰하고 그의 심장까지 알아서, 하나의 주인공의 자격을 갖추고 하늘과 땅을 어깨에 짊어진 승리자의 자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인간 세상의 사탄이라도 밟고 하늘 앞에 나설 수 있는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아벨의 피가 역사를 대신하여 호소한다 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해야할 예수께서 피의 호소의 제물을 드렸는 데 그 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의 피를 흘린 것으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이 피를 거두어 가지고 다시 하나님의 산 사람의 피로서 우리 몸 마음에 지녀 그 피를 움직여 낼 수 있는 천적인 심정과 심장을 소유한 자격자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자기를 배척하던 그들을 대하여 다시 한 번 용서의 마음을 품으셨던 심정을 알아야 하며, 서로 철석같이 믿고 죽든지 살든지 하나가 되어 같은 죽음과 삶의 길을 가겠다고 각오하고 나섰던 제자들이 배척하고 나설 때, 거기에서 예수님께서 다시 아량으로 그들을 대하여 자기가 대신 죽음의 고비를 당할지라도 그들을 저주하지 않고 용서하였던 그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배척하였던 제자들을 다 뒤에 두고 부활하여 기쁜 마음을 갖고 홀로 승천하여야 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반대했던 사도들을 찾았던 예수의 심정을 여러분들이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3-311
역사적인 해원의 출발점
그러면 오늘날 역사적인 해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인가. 예수님의 슬픈 심정을 위로하며 기쁜 심정이 되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땅 위에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붙들고 슬퍼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땅 위에 택한 제2이스라엘적 입장에 있는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 택한 이스라엘을 다시 수습하여 하나님의 제단을 쌓고 산 제물을 드려야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애달픈 사정이 역사적이 원한으로 맺혀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제2이스라엘을 동원하여 이들의 보호자가 되고, 이들의 싸움의 대표자가 되고, 이들을 대신하여 사탄 대해 싸우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정을 체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심정을 체휼하는 성도들이 되어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인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또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나섰던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사수하여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으시던 것과 같은 사탄의 시험이나 가이사의 심판이나 로마 병정의 창질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책임을 완수하는 하나의 동지가 있어야 하는 동시에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하나의 가정과 종족과, 사회, 하나의 국가, 하나의 세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들이 다 어디 갔던고!

오늘날 우리들은 단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교단을 밟고 올라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단결해야 될 때는 왔습니다. 말씀을 통과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소유할 때가 왔다는 거예요. 구약의 말씀을 토대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소유하여야 할 것이었는데, 예수님이 실체 통과의 문이었는데도 이 문을 몰랐기 때문에 이스라엘민족이 였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나아가 신·구약 말씀으로 통과할 시대가 지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실체 통과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에덴의 원한이 무엇이었던고!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 물론 원한의 조건이 되었지만 실체를 잃어버린 것이 더 큰 원한이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말씀을 딛고 올라가 실체 통과의 문을 개방시킬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문이 없으니 오늘날 우리들이 이 문의 돌이 되어 이 문을 만들어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만을 중요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 즉 수억의 사람이 읽고 있는 성경말씀보다도 이 말씀을 통과한 한 아들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은 어떤 사람인가. 말씀을 머리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심장과 몸으로 아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머리로 아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말씀을 가슴으로 알고 몸으로 알아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기 혼자서도 사탄 대해서 싸울 수 있는 실체제물을 요구하는 때가 오고 있다는 거예요.

예수가 30여 생애를 거치신 것은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풀기 위해 구약의 말씀을 박차버리더라도 인간 한 자체가 말씀을 대신할 수 있고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되어, 어느누구도 갈라 놓을 수 없는 이 하나의 문을 이 땅 위에 만들어 놓기 위해 수고한 생애였고, 또 이런 자격을 갖춘 한사람을 찾기 위한 싸움의 노정이었습니다.

이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는 돌아가셔야 할 운명에 놓이게 되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원한의 말씀을 남겨 놓으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원한을 누가 해원해 줄 것인고. 하나님의 한을 풀기 위해 예수가 몸부림치시며 수고하셨지만 이 일을 성취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6000년 역사의 종말에 처한 오늘, 그 섭리를 인계받아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하나님과 예수의 한을 풀어 드리는 이 땅 위의 신부는 누구일 것인가. 그 신부는 신·구약을 알기만 하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신학자도 아니예요.

예수 그리스도 30여년 동안 하나님을 위하여 숨은 슬픔을 품고 남모르는 배척을 받았습니다. 40일 동안 먹지도 않고 사탄과 싸운 예수님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고 맹세하고도 배반한 제자들을 다시 품기 위해 나섰습니다. 사람 같으면 꿈에도 만나고 싶지 않을 것이로되 예수님은 부활 후에 제자들을 다시 찾아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이거늘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를 대신해야 할 세계에 널려 있는 제2이스라엘의 기독신자는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인가? 교단을 조성해 나오던 사두개교인과 바리새교인들이 전부 다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말았는데, 오늘날 여러분은 그런 교단을 밟고 올라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3-313
하나님의 한을 풀어드리는 참아들딸이 되자
여러분은 아버지의 말씀을 대신하여 그런 교단을 밟고 올라선 실체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심장과 심장이 연한 예수의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와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된 산 제물의 실체가 이 민족을 대신한 교단 위에 나타나야 할 때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민족과 인류는 잠자고 있습니다.

세계가 하나의 심장의 움직임에 의해 하나의 형태를 갖추어 나왔고, 하늘의 심정과 예수의 피살을 통하여 역사가 흘러나왔는데 오늘날 이제 열매 맺을 수 있는 하나의 실체가 여러분 자신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안타까운 심정과 뛰는 심장을 소유하는 상대자가 되어야만 제3이스라엘로 남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그런 심정을 품고 제물되셨고 제2이스라엘을 만들었기에 오늘날 우리들이 이런 각오를 가져야만 제3이스라엘의 선조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또 왈, 지상천국 즉, 에덴동산의 본연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활의 은사의 실체를 갖추어 역사적인 모든 고통을 거치고, 시대적인 원한을 벗어나 가지고 하늘을 찾아 나설 수 있어야 하나님의 아들 딸로 찾아 세워질 수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30여년의 생애가 하나님의 4000년 역사의 심정을 대신하여 제물의 실체로 나타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6000년 동안 복귀섭리하신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대신하여 하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과거 6000년 역사를 회고하여 서러워하고, 불신했던 이스라엘을 보고 서러워하고, 미래에 제3이스라엘의 안식의 동산을 세워야 할 사명을 품고 염려하여, 누가 가든 아니 가든 `나 홀로 이 책임을 지겠나이다’ 하고 하늘 앞에 맹세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발자취를 사수할 수 있는, 후계자의 책임을 완수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이제 신·구약의 말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신·구약 말씀보다도 예수의 심정이 무엇이고, 예수의 심장이 어떠한가 하는 것을 알아 가지고, 즉, 예수의 내적인 심정을 알고 외적인 심장의 동함을 알아서 하늘이 동하면 여러분도 동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또 하늘의 동과 정에 같이 움직이고, 천륜을 대신하여 아버지 앞에 승리의 제물로 여러분을 바쳐드려야만 예수는 이 땅 위에서 한을 푸실 것이요, 하나님도 이 땅 위에서 한을 푸실 수 있고, 만민 만상 모두가 하나님 앞에 그를 따라 승리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우연히 이런 입장에 섰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역사적인 운명을 대신하여 필연적인 노정을 제단을 인계받았다고 생각하십시오. 여러분 자신들이 이제 예수가 골고다의 산정에서 쌓고 넘어가던 서러움의 장벽을 밟고 올라서서 겟세마네동산으로부터 골고다의 산정까지 올라가 열두 사도를 한데 묶은 산 제물로서 승리의 제단을 쌓아, 사탄을 굴복시켜 `아버지여 홀로 영광 받으시소!’ 할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들이 되어야만 주 앞에 신부의 자격을 갖춘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