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8 to 3-275: 하늘이 임재할 수 있는 안식처는 어디인가

하늘이 임재할 수 있는 안식처는 어디인가
1958.01.12 (일), 한국 전본부교회

3-258
하늘이 임재할 수 있는 안식처는 어디인가
마태복음 8:18-22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시간 말씀을 갖고 나섰사오니 주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정하시면 저희들도 정하고, 아버지께서 동하시면 저희들도 동하여 오직 한마음 한뜻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님 당시 불신의 땅을 대하여 염려하시면서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위로하시며 그 안타까와하시던 예수님의 심정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마음이 그저 이 시간에 머물지 말고 아버지의 심정과 연하고 역사적인 예수님의 심정과 연하여서 움직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안타까운 아버지의 심정을 저희 마음에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애달팠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저희들이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어서, 이 한 시간 여기에 모인 사랑하는 형제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어두움의 모든 죄악을 청산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항상 저희 앞에는 아버지의 은사를 가로막으려는 사탄의 역사가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언제 어떠한 입장에서 아버지의 은사가 임하게 되는지를 깨달음으로써 사탄의 침범을 벗어나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의 품에 품길 수 있는 저희가 될 수 있게, 아버지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6000년 동안 섭리해 오시면서 어리석고 부족한 저희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찾아주신 아버지의 긍휼의 손길을 이 시간만이라도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모든 것을 맡기었사오니 첫시간부터 끝시간까지 아버지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3-259
말 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그 지음받은 피조세계에서 영원히 안식하시려는 뜻을 지니시고 만물을 창조하시기 시작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영원히 안식하시기 위해서 만든 터전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넘어가게 되었다는 것도 역시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먼저 지금까지 60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경과하였지만, 이 땅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도 안식할 수 있는 하나의 보금 자리를 남기지 못한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고, 그로 말미암아 겪게 되는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259
아담 해와에 대한 하나님의 뜻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피조만물을 무엇에 근거하여 지으셨던가. 영원하시고 유일하신 말씀을 통하여 만물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가 그 말씀의 목적을 완성하여 하나님이 실체적으로 영원히 임재할 수 있는 몸이 되기를 바라신 것이 아담 해와를 창조 하신 목적이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그들의 마음 가운데 영원한 생명의 주체로 임재하시어 안식의 보금자리를 이루려 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천륜의 크나큰 목적을 세워 아담 해와를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를 지으시고 말씀으로 천국생활의 법도를 세우시고자 하셨고, 그들의 몸을 통해 하나님이 친히 임재할 수 있는 성전을 이루고자 하셨으며,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좌정할 수 있는 지성소를 세우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천륜의 법도가 인간 앞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몸으로 지었던 아담이 타락하니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성전도 인간세계에서 사라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형의 하나님께서 이 땅의 실체의 주인공으로서 영원한 보좌에 임재할 수 있는 마음의 터전도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창조의 이념인 말씀을 대신한 법도와, 만물의 성전을 대신할 수 있는 몸과, 무형세계의 지성소를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이 본연의 뜻과 어긋나게 되어 여기에서부터 하나님의 서러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을 위하여 지음 받은 인간의 마음이 서러워졌고, 그 마음을 대해야 할 몸도 서러워지게 되어 그 마음과 몸이 움직여나갈 수 있는 말씀을 대신한 법도도 인간에게서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하늘의 원칙적인 기준과 내용을 살펴볼 때 타락으로 인하여 죄악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이 땅 위의 수많은 인류 가운데서 하늘이 찾고 있는 말씀의 법도를 어디에 나타날 것인가?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실체성전은 어디에 나타날 것인가? 무한한 무형세계를 대신하여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지성소가 될 성전은 이 땅 위의 어느 곳에 나타날 것인가? 바로 이러한 것들을 역사과정의 수많은 사람들이 해결하려고 나왔었습니다. 우리의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바로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피눈물을 흘리는 과정을 거쳐왔다는 것을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은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늘에서도 제일이요 땅에서도 제일이라 할 수 있는 하나의 말씀을 지닌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실체성전을 갖추어 하나님이 기뻐하고 옹호할 수 있는 존재, 하늘 땅을 대신한 천주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가 나타나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를 대신하고 아버지의 보좌를 대신할 뿐만 아니라 실체적인 이념을 갖추어 피조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힘이 터전이 바로 하나님의 소망이요, 인류의 소망이요, 오늘날 구원받아야 할 모든 신앙자의 소망이라는 것을 오늘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들은 무엇을 잃어버렸던가?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말씀의 법도를 잃어버렸고, 하나님이 거할 수 있는 자신의 몸을 잃어버렸으며, 영원한 생명적인 보좌의 중심을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의 성전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천주적인 모든 소유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은 지금까지도 무한히 허덕이면서 그 무엇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천륜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것을 하나의 소망으로 삼고 오늘도 내일도 달음질쳐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3-261
天國建設을 위한 말씀과 實體의 復歸
그러면 말씀 시대를 통과한 후에는 어떤 시대가 올 것인가? 실체를 통과해야 할 시대가 옵니다. 그래서 오늘날 20세기 운명도 원칙적인 말씀을 통한 실체권을 이루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래 인간에게 선포하신 천륜과 인륜의 법도를 이룬 실체가 역사의 종말시대에 나타나기를, 오늘날 인간들은 소원하고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말씀과 실체가 하나되면, 인간은 물질적인 동물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내적인 심정을 지닌 존재로서 천륜의 도리를 행해야 할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환경을 넘어서 영원한 이념을 향하게 하는 그 어떤 작용이 그 마음을 재촉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지향하는 그 힘에 상대될 수 있는 기준을 갖추어 나가지 않는다면, 신앙으로 찾아 나가는 하나님의 실존도 어디까지나 관념적인 신으로서 밖에 인정할 수 없으며, 실증적인 신으로서는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이 말씀을 통하고 실체를 통한 후에 내가 사모하던 그 무형의 신의 뜻을 자신을 중심삼고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성취 시켜야 되겠습니다. 만약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천륜의 대섭리의 목적과 부흥할 수 없으며 또는 창조의 이념권이라할 수 있는 이 실존세계에서 존재할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인 운명의 노정이 여러분 앞에 가로놓여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천륜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말씀을 통하고 나아가 그 말씀을 실증시킬 수 있는 하나의 실체를 통하여 생명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 한 곳이 어디인가를 찾아 헤매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께서 이 천지만물 가운데에 있는 우리 인간들을 찾아오신다면 무엇을 가지고 찾아올 것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말씀의 법도를 갖고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땅의 어떠한 개인의 사상보다도 어떠한 말씀보다도 더 위대한, 온 인류가 소망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창조 당시에 세웠던 그 말씀을 여러분의 생애를 지배할 수 있는 말씀으로, 나아가 생애를 구할 수 있는 말씀으로 그 말씀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넘어가야 하나님을 중심한 개인을 기반으로 하여 하나의 가정, 사회, 종족을 형성하여 이 땅 위에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주신 그 말씀을 여러분의 것으로 완전히 소유할 때까지 어떠한 역경과 슬픔의 자리도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아직까지 투쟁의 과정이 남아 있음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현실을 바라보면 형이상학적인 진리의 분야를 대신한 종교가 있고, 형이하학적인 진리를 대신한 자연과학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어디를 향해 가게 될 것인가.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말씀을 잃어버렸고, 말씀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실체를 잃어버렸고, 실체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이념을 잃어버렸으니, 이것을 끝날에 있어 어느 한사람을 중심삼고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문명의 첨단에 선 한 존재가 형이상학적인 모든 이념을 대신한 실체로서 오늘날의 인류역사 종말시대에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나 하나를 두고 볼 때, 우리 인간은 어디를 향해야 될 것인가? 내 몸은 자연과학적인 이념을 통할 수 있고, 내 마음은 형이상학적이고 초자연과학적인 세계를 통할 수 있는 입장으로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선을 행하고 하늘을 위하려 하지만, 반면 우리의 몸은 악을 행하고 세상을 향하려는, 이러한 두 갈래의 엉크러진 사정에 처해 있는 것이 오늘날의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금까지 그것을 통일시킬 수 있는 하늘의 말씀을 소유한 주인공은 어디 있으며, 하늘의 진리의 법도는 어디에 있는가 하고 끊임없이 찾아왔습니다. 진정 우리의 마음의 세계를 넘어 무한한 영적세계까지 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적인 분야까지 통할 수 있는 새로운 말씀이 나타나기를 지금 까지 인간들은 고대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에 오늘날 여러분이 그러한 말씀을 지녔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세계의 어떠한 사람보다도 자신을 갖고 살 것입니다. 역사적인 어떠한 사람이 지니지 못하였던 최고의 이념을 지닌 기쁨에 가득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은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말씀의 법도를 기필코 다시 찾아야 되겠습니다.

3-263
天倫의 法度를 회복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말씀을 세워나오는 역사였습니다. 지금까지 하늘의 마음을 대신한 하나의 실체적인 존재를 통하여 하늘의 법도의 말씀을 찾아 세우고자 하였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찾아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오늘날 이 역사종말시대에 있어서 무한한 영적세계를 통할 수 있고 자연과학을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말씀을 찾아세워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게끔 하여야 하나님으로서의 승리적인 뜻을 이 땅위에 세우실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 대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하신 그 말씀을 다시금 찾을 수 있는 한 주체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천륜을 대신하고 만 우주의 소원을 대신하고 온 인류의 소망을 대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과 외적인 실체를 대신할 수 있는 한 존재를 이 땅 위에 보내셨는데, 그분이 바로 오늘날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뜻을 지니고 오신 예수님의 마음 몸은 무엇이었던가. 그 예수님의 마음은 자기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의 마음이었느냐 하면 아버지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자기의 몸이 아니라 아버지의 몸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자기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천리법도요, 만 인간이 지니고 싶은 소망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통한 실체적인 하늘의 성전으로서 또는 실체적인 하나님의 보좌를 대신한 존재로서 이 땅 위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천륜과 인륜을 갖춘 말씀으로써 모든 만민을 회복시켜 말씀의 가치를 지닌 실체적인 존재로 하나님이 인정하게끔 찾아세워야 할 사명을 지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이 4000년 동안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내적인 섭리의 뜻을 지니고 이땅의 속된 사람들을 바라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 속된 몸이 즐길 수 있는 타락의 법도를 통해 움직이고 있는 인간들, 사탄이 우거할 수 있는 타락의 마음과 몸을 지닌 인간들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글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륜의 법도를 중심삼고 질서적인 목적을 성취시켜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한 말씀, 한 걸음, 한 행동은 천륜을 실증 시키기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반면 사탄권내에 처한 인간들은 천륜에 어긋난 법도를 중심삼고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그러한 환경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이 아무렇게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로 하여금 하늘의 조건적인 말씀의 법도에 의하여 살게끔 하여 그 개인으로부터 사회·민족·국가·세계에까지 확대시켜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또한 그 일을 성취하셔야 했는데 그만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만 것입니다. 만일 그때 당시 인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4000년 동안 온 우주가 바라던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질 수 있는 유일의 말씀이요 불변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의 실체적인 존재가 다 되었다면,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자신이 하나님 대신 임재할 수 있는 안식처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지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환경을 찾아 세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3-263
끝날에 처한 성도의 사명
본문의 성경말씀 가운데서도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소망의 말씀으로 받아들 이는 자가 없기 때문에 어느 곳에도 마음놓고 임재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말씀을 중심삼고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아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그러한 존재가 나와야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이 천적인 법도를 세워 천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며 천적인 이념을 의논할 수 있었는데 그러한 존재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깝고 서러운 입장에 처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귀한 말씀을 지니고 왔는데 그 말씀이 머무를 곳이 없으니 탄식하실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심정을 느낄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하여 있는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명을 감당해야 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자신의 몸 마음에 소유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지금까지 아무도 지니지 못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몸 마음에 완전히 소유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입장에서 생각하게 될 때 에덴동산의 타락은 무엇이었던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말씀이 임재할 수 있는 안식처로서의 몸과 마음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바로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여러분이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처해 있는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위에 오셔서 자신의 말씀을 인계할 수 있는 한 존재를 찾지 못하고 가셨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남기고 간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마음을 통하고 몸을 통하여 우러나온 말씀을 남기고 가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에게는 에덴에서의 인간타락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하나님의 서러움과, 2000년 전 무지한 인간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안타깝게 호소하신 예수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려야 할 사명이 제일차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창조의 역사를 일으킨 그 말씀이 이 땅 위에 다시 나타나면, 타락한 인간이지만 아직 그 본심은 남아 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그 말씀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의 본성이 움직이고, 여러분의 몸이 움직여질 수 있는 그러한 말씀을 이 역사적인 종말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의 생애노정에서 반드시 찾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말씀을 찾지 못한다 할진대는 탄식과 비애에 사로잡혀 하나님과의 영원한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하늘을 대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마8:20)”고 하셨던 예수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려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의 그 서러움을 풀어드려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그 당시의 한 젊은 서기관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님을 여러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수천년 역사노정의 어느 시대의 인간에게나 다 해당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타깝게 부르짖으신 예수님의 이 음성이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에게 들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제1이스라엘의 실수를 묵과하시고 제2이스라엘의 기독교인들을 세워 새로운 운동을 제시하시는 그 중심 뜻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셨던 말씀의 성전을 찾아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앞에 전하는 말씀을 대해 `영원한 법도의 말씀으로 주신 말씀’이라고 인식하여 `이것이 나의 생명의 말씀입니다’라고 하면서 그 말씀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창조 당시에 인간을 창조하시던 말씀으로 여길 수 있는 한때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말씀을 갖지 않고, 하나님의 그 말씀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체험의 한때를 갖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3-267
하나님의 안식처가 되어야 할 인간의 마음과 몸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희생하게 하여 마음을 닦고 선을 지향하도록 해 나오신 것입니다. 또 인간의 마음이 참에 가까이 있게 될 때 그 참의 목적을 성취시키는 말씀이 나타나면 쉽게 그 말씀에 끌려가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연히 인간의 몸도 그 마음에 동화 되어 참을 지향하기를 하나님은 바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마음으로 알고 몸으로 알 수 있는 말씀을 인간들에게 나타내려고 하셨던 간곡한 심정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을 통해 하늘을 찾아 나온 과정에 있어서 말씀에 의하여 내 마음과 몸이 완전히 지배당할 수 있는 한때를 지니지 못하였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슬픔과 탄식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단계에 처할 수밖에 없는 자신인 것을 스스로 인식해야 되겠습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몸과 생애를 대신한 천륜의 법도와, 그 법도를 대신한 자신의 실체와, 또 그 실체를 대신한 자신의 마음이 하나된 입장에서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 무엇인가 체험하고 느낀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이 땅 위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수 있는 하나의 핵심을 여러분의 몸 마음에 갖추어 놓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몸 마음에 영원히 뗄 수 없는 하나의 천륜의 법도를 세워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할 수 있는 안식처를 만들어 놓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천륜의 법도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는가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끝날이 되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종결될 것입니다. 철학도 종결될 것이요, 과학도 종결될 것이요, 물질을 중심삼은 세계적인 경제체제도 하나로 종결되어 갈 것입니다. 앞으로 어느 한 때에 가서는 과학의 무한한 발달로 말미암아 과학적인 연구 노력에 의하여 개발된 식량이 나오기도 할 것입니다.

나아가 최후의 종말시대에 처해 있는 오늘날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신앙을 회개하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말씀대로 살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부의 말씀을 찾아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말씀을 찾지 않고 오히려 그 말씀을 저버리려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늘의 지성소를 이루기 위해 찾아오는 그 말씀을 피하는 자, 가로막는 자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내용을 아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다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천륜의 법도를 세워야 할 사명을 느끼면 느낄수록 최선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3:12)”라고 하시던 그 안타까운 심정을 해원해 드리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인류역사 종말시대인 오늘날에 있어서 역사적인 서러움이 하늘과 땅에 사무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시간에도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믿는 신자들은 어떻게 믿어나가고 있는가를 염려하시면서 모든 인간들을 굽어보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무한한 천주를 대신한 그 말씀, 영원한 법도를 대신한 그 말씀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땅에서 살아온 그 속된 마음을 가지고, 또는 속된 감정에서 나온 어떠한 말씀 가지고는 안 됩니다.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을 지녀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의 성전을 찾아오는 이 종말시대에 있어서는 내 한 자체가 혹 천륜의 말씀을 배반한 아담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까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죄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한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말씀을 받아들였어야 할 것이 인간의 책임이었는데 그만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말씀을 환영하여야 할 안식처가 바로 여러분의 마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말씀을 중심한 실체를 이루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의 인격적 분야에 결부되는 말씀입니다. 즉 여러분의 말은 하나님의 천륜의 법도를 대신한 말이 되어야 하겠고, 여러분의 행동은 그 법도의 말씀과 하나된 행동이 되어야겠습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씀을 대신한 실체가 나타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임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임재한 그 개체는 영원한 이념을 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 몸과 마음이 실제 생활권내에서 아버지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소망이요, 그러한 뜻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가나안의 이상동산인 것이며 잃어버린 본연의 동산 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3-269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야 할 성도들
그러면 예수님의 서러움은 무엇이었던가. 말씀의 안식처가 없었던 것이 서러움이었습니다. 또 자신의 몸 마음의 뜻을 인계해 줄 수 있는 성도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 서러움이었습니다. 자신의 말씀을 인계시킬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을 하나님 대신의 몸으로 모셔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 예수님의 서러움이었으며, 하나님의 서러움이었고, 온 인류의 서러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예수님은 2000년 역사과정을 통하여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하면서 예수님 자신의 몸을 신부와 같은 여러분에게 맡기고 안식의 한날을 맞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한날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이 날까지 배후에서 염려하여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니고 산다 할진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취해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야 하겠고, 신랑되신 예수님을 대할 수 있는 신부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도 예수님의 상대될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황태자이며 온 만물의 주인이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여러분에게 의탁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실 수 있는 신부의 입장에 서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념을 통하고, 예수님의 생활을 통하고, 예수님의 역사적인 뜻을 통할 수 있는 가치의 존재가 되어야 예수님과 완전히 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이제 말씀을 통하여 실체를 이루어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졌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말씀으로 소유하여야 되겠고, 예수님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여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세계의 온 인류를 위하시던 그 간곡한 심정이 여러분 자신의 마음과 몸에서도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2000년 동안이나 자신의 이념을 대신하고, 신랑인 자신을 모실 수 있는 신부를 찾아오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의 모든 뜻을 대신한 실체로서 자신이 염려한 모든 것을 밟고 올라서 오히려 예수님 자신을 위안시켜 줄 수 있는 참다운 신부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하고 이 시간도 찾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자신의 모든 것을 주기 위하여 30여 생애를 거친 예수님께서 나라와 민족이 반대하고, 종족과 가정이 배척하고, 심지어는 사랑했던 제자들까지도 불신하는 입장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의 길을 걸어가신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까? 그 예수님의 마음을 아십니까? 그 사정을 알았습니까? 또 예수님의 소망을 알았습니까? 어느 분이 압니까?

죽음의 자리에서도 하늘을 대해 변치 않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민족을 대신하여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넘으신 예수님의 그 모든 것을 여러분이 몰랐다면 여러분은 다시금 세계구원의 이념을 갖고 오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민족을 대신하여 골고다의 길을 가셨습니다. 민족적인 환경에 안식해야 할 예수님이었는데 오히려 그들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위한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하늘의 승리를 다짐해야 할 예수님이었는데 민족이 불신하고, 교단으로부터 쫓김당하고, 사회로부터 몰림 당하고, 가정으로부터 배척당하니 어디 갈 곳이 없었습니다. 이 땅을 대한 하늘의 소망을 품고 오셨는데 그것은 다 사라져 버리고 서글픈 사정에 처하게 되어 홀로 민족을 대신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 이후의 2000년 역사가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개척하기 위한 운명이 가로놓여 있는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민족적인 골고다의 길을 넘어서서 세계적인 제2이스라엘을 통해서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넘고자 허덕이고 계신 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여러분이 맞고자 원하는 신랑이신 예수님인 것을 또한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271
신부의 자격과 기독교인의 사명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의 몸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이 처한 위치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세계적인 골고다의 노정에 처한 십자가의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인계맡은 우리이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예수님의 복음을 들고 나서게될 때, 어느 민족 어느 환경에서든지 골고다의 길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독교 국가를 중심삼은 세계적인 골고다의 투쟁이 있을 터인데 그때가 바로 끝날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6000년 역사의 종말시대에 처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걸어오신 그 심정을 헤아려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 마음을 희생하면서 원수를 사랑하고 용납할 수 있었던 그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원수를 사랑하신 하나의 표준을 세워놓고 가신 예수님을 진실되게 모실 수 있는 참다운 사도들이 이 땅 위에 많이 나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예수님께서 안식할 수 있는 실체적인 터전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개인의 핍박이 있다고 해서 보따리 싸고 가정의 핍박이 있다고 해서 보따리 싸려고는 하지 않았습니까? 또는 민족과 국가의 핍박이 있다고 해서 보따리 싸지는 않았습니까?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온 세계가, 하늘 땅이 반대할 지라도 나는 하늘을 향하여 가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각오를 가진 사람이, 예수님의 신부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이 땅 위에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하늘은 바로 그러한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그러한 심정을 아셨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으며 희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여러분들이 걷고 있는 발자취가 어디인가를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의 발자취가 어디에 처해 있는가 돌이켜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걷고 계신 예수님의 안식처가 바로 여러분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시어 자신의 안식처를 찾아야 하는 동시에 또 어떠한 사명이 있었던가.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신부되어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받들어주는 제자와 같은 사람이 이 땅 위에 있었더라면 그러한 사람과 하나되어 하나님을 위한 신부가 되어야 할 사명이 예수님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신랑된 예수님을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신랑된 예수님을 찾는 것은 그 신랑의 주인되신 아버지를 찾자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절을 보면,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즉 아버지의 택함받은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어린 양이 이름만 가지고는 안 되고 아버지의 이름까지 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14만 4천명에 들어갈 자는 누구인가? 예수님의 인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신부라고 청하여도 아버지께서 축복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이는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지 않은 영원한 인류의 주인 공이라고 축복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14만 4천의 무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영원한 이념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끼며 행복 속에서 살 수 있는 그 한날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하나님의 지성소가 되고 안식처가 되어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몸을 모실 수 있는 동시에 예수님의 마음을 인계받을 수 있는 신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맡아 줄 수 있는 최후의 단계에까지 나아가야 비로소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 안식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성신도 안식하고 우리 인간도 안식하게 되는데, 오늘날 인간들은 이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3-273
참신한 청년신앙인들의 사명
오늘날 신앙자들 중에는 하늘의 은혜를 받고 즐겁다고 하여 자신의 안식처를 찾는 사람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는 아직까지 골고다의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항상 골고다의 길을 넘어선 예수님의 생애를 본받으려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는 상대적인 입장에서 예수님을 안식시켜 드려야 할 천륜의 뜻이 여러분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하늘의 말씀이 내 몸에 임재할 수 있는 동시에 그 말씀의 실체인 예수님과 성신이 임재할 수 있으며, 말씀의 주체인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섭리의 목적이 종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창조의 가치를 대신한 존재로서 하늘 앞에 서야만 비로소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위업을 맡기고 안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마어마한 우주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이 기독교인들의 발걸음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믿고 있는 신앙자들은 그저 앉아 있어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이 땅 위에 새로운 생명의 운동을 일으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러한 길을 향해 나아가는데 있어서 말씀의 지성소, 즉 말씀의 안식처를 유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여러분의 원수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 청년들이 기성교회 목사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하고 나서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목사들이 양떼를 잘못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기성교회 목사 장로를 비판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못 깨닫고 어린 양떼를 유린해 왔으니, 이제는 그들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양떼가 양떼를 찾아가 뭉쳐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깨닫고 오늘날 이런 모임과 이런 운동을 전개시켜 나온 것이 통일이념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생명이 약동하고 있는 청년 남녀가 있습니까? 그러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오늘날 교회의 목사 장로 앞에 천륜을 입증하여 그들의 인격을 비판하고 천적인 가치 앞에 심판해 낼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오늘날 기독교는 다시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에 어긋난 것은, 천상의 어떠한 존재든지, 지상의 어떠한 존재든지 용납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기성(旣成) 종교관념을 초월해야 합니다. 기성적인 회의적인 신앙관념을 밟고 올라서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신앙관념의 입장은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될 수 없고 예수님의 실체를 모실 수 있는 안식처가 못 되니 그것을 무자비하게 밟고 넘어설 수 있는 용단성을 지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어떠한 조건을 갖고 자신의 야욕을 찾아 세우려는 욕망을 지녔던 본문의 그 청년 서기관과 같은 모습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여유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마8:20)”고 하신 예수님과 같은 입장이 하늘이 가는 길이요, 천륜이 움직이는 길이라 할진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저버리고 그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걸음을 걸을 줄 아는 사람이라야 천륜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유업을 인계맡을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역사과정의 모든 선조들을 돌이켜 보면, 노아는 120년 동안 고생했고, 야곱은 21년 동안 고생했으며, 모세도 120년 동안 유린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33년 전생애노정을 유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벌써 안식하고 즐기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하늘의 강도요 절도입니다. 하늘이 먼저 쉬기 전에 우리가 먼저 쉰다는 것은 절도요 강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여유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고 하신 그 심정을 동정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하늘이 또한 여러분은 동정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민족을 위하여 밤을 세워 기도하고 하나님만이 나의 안식처라고 부르짖던 그 심정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피가 끊어오르고 살과 뼈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형용할래야 형용할 수 없는 하늘의 애달픔을 품고 민족과 세계를 붙들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시던 그 심정을 가슴 깊이 느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3-275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처
여러분 중에 이런 심정을 품고 이단자의 괴수라고 몰림받고 망할 것이라고 조소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러한 사람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바로 자신의 안식처로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타락한 인류 앞에는 말씀의 주체를 찾고 실체의 신부를 찾아 영원하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로 서야 할 이러한 운명의 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의 법도를 찾아 세우는데 있어서 그 말씀을 중심삼고 내 몸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한하신 하나님의 빛을 반사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창조이념에 기준하여 바라보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이 태양을 상징했다면 우리의 몸은 땅을 상징하였으며,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의 법도를 상징했다는 것입니다. 즉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 것이요, 땅은 인간의 몸을 상징한 것이요, 태양은 인간의 마음을 상징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힘이 태양을 형성하고, 그 태양을 중심삼고 지구가 돌아가고, 또 그 지구의 움직임에 따라 모든 만물이 성장하여 하나의 질서적인 법도를 거쳐 상충이 없는 그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동하면 여러분도 동하고, 하나님이 정하면 여러분도 정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여러분을 떼어놓고 움직일 수 없는 심정적 관계를 유지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여러분이 영원하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과 이념을 찾아 세워 그 말씀의 법도를 통과할 수 있는 안식의 한 자체로 서게 될 때, 비로소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대신적 존재로서 또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하여 면목을 세우지 못하고 있고, 땅을 대하여 면목을 세우지 못하고 있으며, 만물을 대하여 면목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을 아직까지 감당하지 못한 여러 분으로서는 감히 입을 열어 무엇이라고 떠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와 같은 우주적인 사명이 자신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는 노정에 있어서 어느 누가 방해를 하여도 그것이 단순한 방해가 아님을 아셨습니다. 자신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원수도 지나고 보면 결국은 자기를 위하는 입장에 서는 것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실 수 있었으며, 끝내는 그 원수에게까지도 복을 빌어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자신의 나아가는 길 앞에 원수가 나타나는 것은 여러분이 올바른 길로 가야할 터인데 곁길로 가니 그를 내세워 자신을 깨우치려는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원수를 위해서 복을 빌어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넘어서 여러분의 몸과 마음에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인이 임재할 수 있는 안식의 동산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사탄과의 모든 싸움에 승리하여 사탄까지도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축복해 줄 수 있으며 하나님 앞에 송영드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 사탄을 하나님 앞에 끌고 가 이 사탄이 6000년간 인간을 유린한 원수라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재판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우주를 통치하는 주관자로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6000년 동안 인간이 사탄 앞에 끌려가 참소를 당하고 고소를 당했으니 이제는 여러분이 사탄을 하나님 앞에 끌고 가서 고소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마음, 하나님의 법도를 통할 수 있는 내 몸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기에는 어떠한 잘못도 마찰도 생길 수 없습니다. 오직 여기에는 하나님을 중심한 이념통일, 행동통일, 생활통일만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임재하시어 영원한 안식처를 찾고, 인간과 더불어 영원히 즐기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