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9 to 2-297: Be Bold and Strong

Be Bold and Strong

Sun Myung Moon
June 23, 1957
Excerpt
Let Us Be Strong And Bold And Restore The Lost Land
Selected Speeches of Rev. Sun Myung Moon, Volume 2
Seoul, Korea
Unofficial Translation

If we say that we are willing to take on such a responsibility and mission, what would God emphasize to us? As God told Joshua, who took over the mission of Moses in the wilderness, “Be bold and strong.” He would stress us to be the same.

Now you have to understand that you are in the wilderness, gazing at the blessed land of Canaan on the worldwide level, with hoping to enter the land. You should maintain your mind and body like Joshua and Caleb.

Then, how should Christians throughout the world live today? They must be pleading to Heaven for someone like Joshua and Caleb to appear on the earth to lead Christianity. In the wilderness period, when chaos and confusion are prevalent because the center was lost, the time has come when someone like Joshua and Caleb must appear to show the direction to follow in order to resolve the problems they face. Christians should clearly understand this. For this end, the denomination that you belong is not important. Do you follow?

In the Book of Revelation, Chapter 11 prophesied two olive trees. What does this mean? It means that someone like Joshua and Caleb will appear, before the start of the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Just as Joshua and Caleb, who in place of Moses, led the Jewish people to the land of Canaan, today someone like Joshua and Caleb, who upholds the gospel of Jesus, will appear and lead the people of God to march into the new blessed land of Canaan on the worldwide level.

Furthermore, just as the Israelites who entered the land of Canaan with Joshua and Caleb destroyed the seven tribes of Canaan, you must be also take responsibility for destroying Satan. You must become heavenly warriors, responsible for completing this course. You must engrave this in your hearts.

No matter where this person, this Joshua or Caleb who speaks the new words of truth, appears in the world, you should become great witnesses and teachers, helping people open their minds and hearts, listen to the words, and dedicate their lives for God. The path Joshua and Caleb walked was full of adventures. Their path was a difficult and pioneering one, as well as one that led to many battles. Wherever they went, they had to face hard tasks to fulfill their missions as pioneers. Sometimes they faced personal tests and trials, and other times they had to deal with challenges caused by the environment. Their course was filled with all kinds of tribulations.

When Moses was about to commence the journey to lead the Israelites into the blessed land of Canaan, Pharaoh attempted to kill him, and many among the Israelites distrusted and opposed him. By the same token, Joshua and Caleb faced similar challenges. Since God knew this so well, He told Joshua and Caleb, “Be strong and bold.” What does the word, “Be strong and bold” mean? This means to transcend all the human conditions (“You must go beyond all the humanistic conditions”).

For the same reason, Jesus was triumphant in overcoming (over) all the humanistic conditions through his three temptations. Accordingly, even 2,000 years later, today, you should also be strong and bold in overcoming all the human conditions.

Joshua was placed in the position of Moses where he must walk the course from the battle at the individual level to the battle of his last moment, victoriously. For this reason, upon entering Canaan, along with the words, “Be strong and bold,” God also advised, “Consider the individuals whom you are dealing with to be your enemies, any tribes and races to be your enemy, and any land to be the land of the enemy.”

Today since you stand in the same position as Joshua, you will also meet your personal enemies wherever you go. Your environment will attack you. Our race and our nation will attack us as well. However, if we who are chosen are united together and committed to be second Joshuas, who fight until the end at the risk of our lives, and if we become saints who can take responsibility for the worldwide Christianity, following Jesus Christ at the risk of our lives, we can win any battles ahead of us. This is the reason why God wants us to be strong and bold.

What should you do with yourselves, then? First, you must evaluate and examine yourselves correctly as you stand in the position of being strong and bold. You should be able to critique yourselves if you have any faults.

강하고 담대하여 잃어버린 복지를 회복하자
1957.06.23 (일), 한국 전본부교회

2-279
강하고 담대하여 잃어버린 복지를 회복하자
여호수아 1:1-9

[기 도]

이스라엘민족을 택하여 세우시기에 수고하신 아버지시여, 그들을 세워 놓으시고 뜻을 성취시켜 달라고 분부하시던 아버님의 간절하신 심정을 회상하면서, 오늘 저희들은 이스라엘민족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하는 기독교인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나이다.

오랜 역사를 거쳐 오면서 수고해 오신 아버지를 저희들이 모실 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오랜 세월 저희들은 염려하시며 사탄 대하여 싸워 오신 아버지의 사정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미래의 소망을 두고 택한 아들딸들을 품어 영광의 자리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염려하고 계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저희가 있게 된 것은 저희 자체의 뜻이 아니옵고, 저희가 누리고 있는 생의 영광도 저희로 말미암아 갖게 된 것이 아니었사오며, 오늘 저희가 아버지 앞에서 기뻐할 수 있음도 저희의 수고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오라, 모두가 수천년 역사를 거쳐 수고해 오신 아버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는 은사로 말미암은 것임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저희에게 자신을 세워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무엇이 있사옵니까? 저희 중에 진리를 갖고 우주를 대하여 호령할 수 있다고 느끼는 자가 있습니까? 그러한 일들이 오늘 저희들에게 맡겨진 책임이 아님을 알게 하옵소서.

저희들이 아버님의 은사의 능력을 대신하는 동시에 세계의 인류를 대신하여 천륜의 전체적인 뜻을 나타낼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인간을 세워 영광 받으시기를 소망하시는 아버님이심을 알고, 그 뜻을 이뤄드리려는 무리가 이 땅에 있습니까? 그러한 무리는 당신께서 만민을 축복할 수 있는 발판이 되며, 온 우주를 축복하실 수 있는 영광의 터전이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모두 깨닫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의 나를 내 한 자체 속에서 찾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역사를 대신하고 전체 우주를 대신하고 미래의 세계를 대신하여 천륜의 뜻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며, 그런 아들딸이 된 것을 자랑할 수 있는 기쁨의 영광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오늘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자신을 아버지 앞에 솔직히 나타냈사옵니까? 스스로 아버지의 허락하신 제단 앞에 엎드렸사옵니까? 또, 자신들을 희생하여 역사적인 죄악을 탕감할 수 있는 생축의 제물이 되어 있사옵니까? 현실의 죄악을 책임진 새로운 제물이 되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넘어가신 그리스도의 인격을 본받는 자녀들이 되어 있사옵니까? 미래의 영광을 위하여 아버님 대신 사탄과 싸워 승리한 영광의 실적을 저희들은 갖고 있사옵니까?

아버님! 이러한 아들딸들이 되어 당신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한 뜻을 위하여 아버지를 따를 수 있는 충직한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 한날을 허락하셨사오니,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고 허락하신 뜻 앞에 모인 저희들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아버님, 불쌍한 이 민족을 대신하여 수많은 교단을 축복해 주시고, 중심을 잃어버리고 있는 민족과 제단 위에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의 불길이 어디에서 타오르는지 모르는 불쌍한 민족과 교단 위에 아버지 긍휼의 은사를 허락해 주시옵고, 이 인류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새로운 축복이 어서 속히 이 땅과 민족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새로운 불길이 교단을 통하여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인간의 이성만 중시하는 경향을 제거시켜 주시옵고, 인본주의만 강조하는 모든 사상을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천륜을 세우는 신본주의를 받드는 인격자들이 되게 해주시고, 하늘뜻을 경건히 받들 수 있고 아버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제사장의 직분을 맡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 이 민족을 대신하여 일어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바라옵나이다. 또, 저희들이 수많은 교회를 대신하여 나타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난 일주일을 지내는 동안 저지른 모든 과오를 청산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분부하시는 새로운 말씀과 허락하시는 새로운 은사에 잠기고 당부하시는 아버님의 그 뜻과 내리시는 깊은 사랑에 잠겨 우주만상 앞에 아버지를 자랑할 수 있고, 아버님께 영광의 경배를 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주관하여 주시옵길 빌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2-281
말 씀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강하고 담대하여 잃어버린 복지를 회복하자’입니다.

2-281
人間 墮落의 結果와 復歸攝理의 目的
본연의 인간에게는 복지(福地)를 그리워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산 그 자체가 복지이며, 인간이 영원히 즐길 수 있는 미의 동산인 동시에 영원히 향락을 즐길 수 있는 동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천륜의 법도를 어겼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원한이 남아졌고 그들이 응당 살아야 할 복지는 소망의 복지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도 다 아는 바입니다.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셨다면 창조의 이상이 있었을 것이며, 그 이상이 현실적으로 실현되었다면 창조주는 물론이거니와 모든 피조물도 기쁨의 동산에서 즐거움을 노래할 수 있었을 것이요, 또 인간은 자신들의 기쁨을 감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인간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앞에 미의 상징인 만물들도 오늘날까지 원한에 사무친 채 기나긴 역사노정을 거쳐나왔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성취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이상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반드시 성취시키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창조의 이상이나 복귀섭리역사의 목적도 기쁨의 세계를 소개할 수 있는 뜻으로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이 땅에 살고 있는 만민도 생의 가치를 느낄 수 없고, 온 우주도 존재가치를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창조목적을 기필코 성취하기 위하여 오랜 역사노정을 거쳐 오면서 인간으로 하여금 이 목적이 귀일되도록 섭리해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6천년 기나긴 섭리의 역사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바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게 되자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지으신 것을 후회하고 탄식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탄식은 여러분의 조상으로 말미암아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뼈저리게 느끼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탄식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온 피조물도 기뻐할래야 기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창조의 중심이 슬퍼하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을 세우시고 만민을 통하여 그 뜻이 성취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면 홀로 슬퍼하시며 탄식하고 계시는 당신의 그 슬픔과 탄식을 제거해 드릴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의 귀일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탄식을 해원해 드릴 수 있는 한 사람, 다시 말하면, 6천년의 기나긴 세월 동안 하나님을 탄식하시게 했던 인간조상으로부터 비롯된 인류의 죄악역사를 가로막고, 이 죄악역사를 청산하여 하나님의 탄식을 제거해 드릴 수 있는 한 사람, 즉 역사를 대표한 본연의 한 사람을 찾는 것이 복귀섭리의 목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설 때 속죄의 은사를 받기 원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필요하겠지요. 혹은 가정과 민족과 세계를 걸어놓고 속죄의 은사를 요구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슬픔과 탄식을 해원하여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단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마음속 깊이 사무쳐 있는, 창조 이후 인간이 잘못하여 품으시게 된 원한을 풀어드리기 위한 호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들로 하여금 소망의 동산 복지의 동산을 흠모하게 하고, 그 동산에 들어가 피조만물을 대신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인가? 그는 인간들이 하나님께 저지른 모든 범죄를 탕감하기 위해 회개의 제물이 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런 사람은 이제까지 인간이 저지른 모든 역사적인 범죄를 탕감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일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6천년 동안이나 거듭 수고해 오시도록 했던 역사적인 선조들의 죄까지 책임지고 “아버지시여, 말 못하셨던 당신의 소망과 탄식 전체를 나에게 맡기시옵소서. 제가 아버지의 소망을 이루어드리고 당신의 탄식을 해원해 드리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본래 당신의 기쁨과 이상과 영광의 실체였던 인간조상 아담을 대신할 수 있는 한 존재가 땅 위에 나타나기를 바라고 계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죄악의 역사를 벗어나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악과 탄식의 요소를 청산하고 하나님을 향해 “이것으로써 당신이 품어 오셨던 모든 원한을 푸시옵소서. 오늘 이후에는 기뻐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아들딸, 역사상에 없었던 생축의 제물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들이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복귀섭리역사를 해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283
中心人物들을 세우신 目的과 그들의 실수
이제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를 회고해 보게 될 때,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한 이후 1천년 6백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거쳐서 노아 한분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노아를 세우심으로써 노아와 그 가정을 구원하려 하셨으며, 나아가서는 노아로 하여금 인류를 대표한 제사장의 입장에 세우시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노아가 1천 6백년 동안 자기를 세우기 위하여 수고하신 하나님의 수고를 알고 하나님의 서러움을 느꼈던들, 그리고 노아가정의 여덟 식구가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느꼈던들 그들에게는 함의 실수로 인한 원한이 없었을 것입니다.

개인의 탄식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죄를 회개하는 동시에 우주적인 죄악사를 청산해야 되겠고, 사탄에 의해 하나님의 가슴속 깊이 박혀진 탄식의 못을 빼낸 후 “아버님이시여! 안심하시옵소서. 오늘날까지 복귀섭리를 해 오신 하나님이시여, 원한을 푸시옵소서. 할렐루야! 아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승리자가 땅 위에 나타나기를 모세 이후 오늘날까지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노아의 가족은 심판에서 구속을 받았으므로 감사하는 생활을 했어야 하는데, 습관적인 생활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천륜을 대하고 나선 우리도 마찬가지로 이런 실수를 범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습관적인 생활을 반복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신과 가족을 구해 주신 하나님을 언제나 새롭게 대하는 노아가 되고, 온 인류가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는 한날을 바라면서 아버지의 심정을 직시하고 나선 노아가 되었던들, 또 하나님 앞에 절대의 믿음을 세우는 노아의 가정이 되었던들, 제 2의 타락을 성립시키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가정의 실수 이후 4백년만에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으나 아브라함 역시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삭을 통한 제물의 조건을 거쳐 야곱대에야 비로소 축복을 이루기 위한 야곱의 21년 노정이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21년간 남모르는 서러운 심정을 품고 하란땅에서 양을 치며 머슴살이를 한 야곱의 사정을 헤아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야곱을 부르신 목적은 야곱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셨던 뜻을 성취시키는 것이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혀진 탄식과 원한을 해원시키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택함받은 인간들이 몰랐던 것입니다.

하란에서 21년노정을 끝내고 돌아옴으로써 야곱은 일대복귀기준(一代復歸基準)을 세웠고, 그 기준에서 하나님의 내적(內的) 심정을 해원할 수 있는 승리적인 발판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실수한 조건으로 말미암아 야곱의 후손들이 4백년간 애급에서 고역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285
모세와 예수님의 使命과 유대민족의 不信
우리는 하나님께서 섭리의 뜻을 세우시고 2천년 동안 갖은 수고를 하심으로써 찾아진 한분이 야곱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야곱 이후 4백 년의 역사노정을 거쳐 하나님은 야곱이 세운 일대복귀의 기준에서 민족복귀의 중심인물로 모세를 세우셨습니다. 이리하여 오랜 세월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전체섭리의 결실체로서 모세가 찾아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가 책임을 완수하면 인간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 속에 맺힌 원한까지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조건적인 입장에서 민족의 대표로 세워졌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전 역사를 섭리하셔서 얻은 결실체로서 민족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이렇게 택함받은 모세는 역사적인 원한을 탕감해야 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고, 하나님의 모든 서러움을 풀어 드려야 하고, 민족적인 서러움도 책임져야 할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바로 궁중생활 40년, 미디안 광야 40년, 도합 80년 동안 성심을 다하여, 선조들로부터 이어받은 이스라엘 선민권을 잃지 않고 지조를 세워 나왔습니다.

모세는 바로와 상대하여 싸우던 그 당시에도 하늘이 바라시는 뜻만을 대할 수 있는 지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또, 모세는 민족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자격을 갖추었고 사탄편과 대결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으나,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이스라엘민족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로를 수차 강팍하게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를 대하는 이스라엘민족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느냐? 그들은 모세를 하나님께서 수천년 동안 수고하시며, 또한 그의 선조들이 수천년 동안 노력을 하면서 모든 것을 다 주고 모든 것을 다 희생시켜 찾아 세워진 하나의 중심인물로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희생시킨 댓가로 찾아진 모세인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광야에서 60만 대중이 쓰러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민족이 국가와 세계를 대표하여 세워진 모세 개인의 가치를 민족 전체의 가치로서, 혹은 인류 전체와 동등한 가치로서 느끼고 그와 하나되었더라면 그 민족은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 이후 수천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선지자들이 이 땅에 오신 목적, 또 세계를 대표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수고와 탄식을 대신하기 위함이요, 인간과 만물의 탄식을 대신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예수님이 만민을 대표하여 나타난 조건적인 분임을 알았습니까? 예수님이 4천년 동안 탄식해 오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탄에 대해 승리의 조건을 세워놓을 분이라는 것을 누가 알았던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탄식과 인간의 탄식, 그리고 만물의 탄식을 해원시켜 줄 수 있는 그 한 분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분과 일체의 관계를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에게서 소망도 하나님의 영광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갖고 오셨던 분이 예수님이었는데,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셔서 택해 놓은 이스라엘민족, 유대교단은 어떠했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을 위한다는 그들이, 오신 메시아, 하늘과 땅에 맺혀있는 탄식을 해원할 한 중심을 불신하고 그분 앞에 죄악의 반기를 들었던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의 서러운 역사와 이 서러운 역사를 해원해야 할 천륜의 내용을 아는 백성들이 있었던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게 되었을 때, 오른쪽 강도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할 것이 아니라 좌우를 지켜보던 성도들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그러한 책임을 감당한 제자가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책임을 감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은 인간의 탄식을 해원시켜 줄 수 있는 한 존재를 이 땅 위에 보내시기 위해 수고하셨고, 인간은 그러한 분이 나타나기를 바라나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역사인 동시에 인류역사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이런 사명적인 섭리관에서 보게 될 때, 모세는 애급에서부터 이스라엘민족을 이끌고 가나안땅에 들어가 가나안 7족을 멸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었고, 예수님은 모세가 세운 그 민족복귀의 기대 위에 세계복귀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막이나 광야와 같은 이 땅, 바로궁중과 같은 이 사탄세계에도 그러한 예수님의 뜻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이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능권을 가지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7족을 멸하고 천국을 건설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것을 못하고 광야에 머무르게 되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직접적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머무르게 된다는 사실을 기독교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광야노정에 있었던 이스라엘 60만 대중이 모세와 분리되었던 원한의 조건은 무엇이었던가? 오늘날 여러분들이 이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민족 중에 원수의 품에서 살던 애급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무리가 나타나 모세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천륜의 길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처음 모세를 앞세우고 이스라엘 60만 대중이 아말렉과 싸울 때에는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민족이 이기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민족이 지게 되어 일체의 관계를 이루었으나 나중에 달라졌던 것입니다.

2-287
모세와 예수님이 당한 고난의 시험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나가는 사람은 먼저 보이지 않는 사탄과의 싸움이 있고, 다음에 보이는 사탄과의 싸움이 있게 됩니다. 그다음에는 물질의 곤궁을 통한 싸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도 떡으로 시험하는 개인적인 시험이 있었고, 성전을 중심한 환경적인 시험이 있었으며, 또 산꼭대기에 세워져 세계를 걸어놓은 상징적인 시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싸움이 있어야 하는 원칙 밑에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나가던 모세는 어떠한 마음을 지녔었느냐? 그도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 원수와 싸울 수 있는 마음, 그리고 광야에 나와서는 아말렉족속과 싸울 수 있는 마음, 굶주림과 싸울 수 있는 마음, 죽음을 각오하고 당당하게 나설 용기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바로궁중생활 40년, 미디안광야 40년, 도합 80년간을 사탄과 싸웠고, 자기 일신과 싸웠고, 굶주림과 싸웠습니다. 그러한 싸움에서 승리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이러한 길을 간 자는 모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에 있어서도 사탄과의 대결을 상징하는 사탄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하나의 제물로 하여 굶주림과 싸운 40일 금식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물질의 조건을 넘어서기 위하여 `돌로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런 과정을 거쳐야 되느냐 하면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아들딸의 위신을 잃어버렸고, 만물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들을 다시 찾기 위한 조건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성도들이 나아가는 노정에도 개인이나 민족, 국가, 세계를 막론하고 악의 세계를 대표하는 사탄의 시험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딸의 영광 대신에 십자가의 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만물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당하는 굶주림의 고난을 거쳐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궁중에 있던 이스라엘민족은 모세와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단결하여 사탄적인 시험을 격퇴시켰으나, 그들이 이스라엘민족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광야에 나와 아말렉족속과 싸우는 마당에 굶주림이 함께 부딪쳐 올 때는 모세를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모세를 원망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느냐? 무엇 때문에 원망하게 되었느냐? 그들이 광야에서 태어나 그곳에 머무르면서 하나님의 뜻을 대했더라면 모세를 원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4백년간, 애급에서 생활해 나오던 그 습관, 그들의 생활적인 환경이 광야에서 걸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를 믿고 출발한 이스라엘민족이었으나 그들은 출발하기 전의 생활환경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해 망하게 된 것입니다. 또 그것이 모세의 나아갈 길을 깨뜨려 버렸고 모세와 이스라엘민족을 분리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 가나안 복귀의 전체적인 이념을 받들어 나가는 제 2의 선민, 즉 세계적인 이스라엘을 대표할 수 있는 전 세계의 크리스찬들은 제 1의 이스라엘민족이 겪은 고역시대와 같은 시대에 처하여서도 하나님의 선민다운 지조를 가져야 합니다. 동시에, 홀로 민족을 대신하여 나타났던 지도자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고 40년 광야시대에서 굶주림을 당하자 모두 원망하고 불신하여 망했던 이스라엘민족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앞길을 망친 자는 누구였던가?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고 역사성을 대신하고 전체의 가치를 대신하여 택함받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생활을 해야 하고 거기에 신앙의 기준을 세워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즉, 모세의 뜻을 받들어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그를 광야에서 쓸어지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그분을 믿지 않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의 뜻을 여호수아와 갈렙이 인계받아 2세들을 데리고 가나안에 들어간 것과 같이, 이제 제2의 여호수아와 갈렙이 예수님의 뜻을 인계받아 제2의 사도들을 데리고 세계적인 가나안복지에 들어가 지상천국을 건설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소망이요, 재림이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뜻을 위해 부름받고 택함을 받은 우리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섭리적인 뜻을 알아 민족적인 범죄를 다시는 저지르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걸어가던 범죄의 행로를 다시 걸어가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2-289
다시 오시는 주님과 기독교인의 사명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끝날에 오시는 주님은 6천년간 하나님을 탄식하게 했던 조건들을 없애고 수많은 성도들의 신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오신다는 것을 아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민족이 처음 모세를 맞을 때에는 자기들의 소유를 모두 버려야 모세를 따를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출발했듯이, 광야에 나와서도 자기들의 모든 것을 저버리고 모세만을 믿고 따랐다면, 그들과 모세와는 갈라지게 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상의 동산을 바라보며 재림의 한날을 맞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우리들이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것은 오실 주님은 6천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고 선조들이 수고한 결실로 찾아지는 분이라는 것을 명심하는 일입니다.

그분이 만약 이 땅에 오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그분께 다 바쳐드리고, 그분만을 역사의 대신존재로, 죄악의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존재로, 그분만을 하나님의 대신 존재로, 그분만을 인류를 대표한 존재로 모실 줄 아는 마음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그러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수천년간 수고하여 세우신 모세가 광야에서 쓰러짐으로 말미암아 원한이 남게 된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오시는 주님을 위해 수고할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은 가나안복지를 바라보고 나가던 모세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로 세워졌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사명을 역사적인 입장에서 인계받고 있다는 것을 각자는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60만 대중을 이끌고 가나안땅에 들어감으로써 수천년간 땅에 맺힌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드릴 수 있는 제물적인 조건을 갖추고 나선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결심과 각오를 갖지 않는다면, 광야에서 유리하고 있는 이 민족을 수습하여 가나안복지에 들어갈 수 없고, 성전이상(聖殿理想)을 완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원한을 알았으므로 기도하는 목적이 달라져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모세와 불신하는 이스라엘 60만 대중을 광야에서 쓸어버리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세워 2세들을 데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향하게 하신 그 심정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떠한 단계에 도달했는가? 선조들이 고난받으며 걸어온 6천년 역사를 발판으로 하여 심판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할 입장에 도달했고, 이스라엘민족을 향하여 요단강을 건너가자고 호령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사명을 대신해야 할 위치에 와 있는 것입니다.

2-291
강하고 담대하라
그러면, 우리들이 그러한 책임과 사명을 맡겠다고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강조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모세의 사명을 인계맡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던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강하고 담대하라’고 강조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 가나안복지를 바라보고 거기에 들어가기를 소망하면서 광야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여러분의 몸 마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적인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존재가 나타나 이 땅 위의 기독교를 이끌어가기를 하늘 앞에 호소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잃어버리고 혼돈과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 광야시대에서 이를 수습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존재가 나타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확실히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기의 교파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서는 두 감람나무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세계적인 가나안복귀의 노정을 출발하기에 앞서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모세를 대신하여 나타난 여호수아와 갈렙이 유대민족을 인도하여 가나안땅으로 들어간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세계적인 가나안복지 새로운 소망의 가나안복지를 향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따라 가나안에 들어간 무리들이 가나안 7족을 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는 사탄을 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의 용장들이 되어야 하고, 그런 노정을 걸어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말씀을 주장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 땅의 어느 곳에 나타난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마음문을 열어놓고 그 말씀을 듣고 하늘을 위할 수 있게 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는 길은 모험의 길이었습니다. 그들이 걸은 길은 어려운 개척의 길이었고 싸움의 길이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할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때로는 개인적으로, 또는 환경적으로 부딪쳐 오는 시련과 싸워야 했던 노정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민족을 이끌고 가나안복지를 향해 출발하려 할 때 바로왕이 모세를 죽이려 했고 이스라엘민족 가운데서도 모세를 불신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도 그러한 일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3대시험을 통해서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서는 데 승리하셨습니다. 따라서, 2천년이 지난 오늘날의 여러분도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서는 길에 있어서 강하고 담대해야 하겠습니다.

여호수아는 개인의 싸움의 노정으로부터 최후의 순간까지 승리의 노정을 걸어가야 할 모세 대신 입장에 세워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과 더불어 “대하는 개인을 원수로 알고, 대하는 민족을 원수로 알고, 대하는 땅을 원수의 땅으로 알라”는 충고의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호수아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우리라 한다면 우리에게도 가는 곳곳마다 개인적인 원수가 있을 것입니다. 환경도 우리를 때릴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도 우리를 칠 것입니다. 그러나, 택함받은 우리들이 단결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끝까지 싸우는 제 2의 여호수아들이 된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세계 기독교를 책임질 수 있는 성도들이 된다면, 우리는 우리 앞에 전개되는 어떠한 싸움의 길도 넘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들이 강하고 담대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놓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강하고 담대해야 할 입장에 있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로 볼 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자신을 놓고 잘못한 점이 있으면 스스로 비판할 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30년 혹은 40년 생애를 거친 자신이라고만 생각하지 맙시다. 살아있는 현재의 자신으로서만 알아서도 안 되겠습니다.

2-293
人間의 存在意義와 使命
그러면,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세계적인 싸움을 거치며 수고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수고에 의해 찾아진 자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길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한 제물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있기까지에는 여러분을 찾아 세우시기 위해 고난의 길, 험하고 어려운 싸움의 길을 거쳐나오시며 말씀하시지 못한 하나님의 원한과 탄식이 있었다는 것과 수천 수만의 선조들의 피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해 주기 위해 수고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한다 할진대 “6천년 전의 아버지의 마음과 6천년 후인 오늘의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아버님의 모습을 대신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죽든 살든 제물이 되겠다는 마음의 다짐이 있어야 되겠고,“이미 제물로 바친 저희들이오니, 아버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수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우리의 선조들은 피의 제단을 쌓아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제물로 돌아가셨으며, 예수님 이후 2천년 동안 기독성도들도 피의 제단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러한 제단의 터 위에 올려진 자신들임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류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 앞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6천년 역사를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과 원한을 알고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은 여러분 자신들이 판단하고 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나님의 구원섭리역사를 종결짓기 위해 수많은 선조들이 세워온 전통을 받들어야 되겠으며,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조건을 파멸시키려고 하는 원수 사탄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를 물리치기 위해 티끌만한 세포의 한 분자까지라도 동원시키겠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부른다면 하나님은 옛날 모세만을 대하던 하나님이 아니요, 이스라엘만을 대하던 하나님이 아니며, 오늘날 우리와도 함께하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이요, 역사과정에서 선조들을 대하시던 하나님이요, 오늘날 나를 대해 주어야 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겟세마네동산에서 최후의 용단을 내려 하나의 제물로 바쳐지려 했을 때 함께해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만민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희생정신이 후대 인간들에게 하나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옴으로써 기독교의 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4천년 역사를 대신한 예수님께서 남기신 진리의 말씀을 믿고 있는 성도들은 장차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사탄의 철망 속에 사로잡혀 있는 인류를 구해 줄 수 있는 하늘 용사의 모습을 갖춘 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깨달아, 옛날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여 광야에서 사탄의 밥이 되었던 전철을 되 밟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모세가 하나님 앞에 다시 설 때까지 광야에서 40년 동안 정성드렸던 그 지조를 신앙의 뿌리로 삼아야 되겠으며,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80일 동안을 하나님을 붙들고 호소했던 그 끈질기고 강인한 모세의 성품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또 여러분은 제 2 이스라엘 선민권을 대표하여 세계 가나안복귀의 이상을 성취시켜야 할 재림의 종족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것을 생각하여 “아버지! 6천년 섭리과정에 나타났던 전체의 싸움이 내 일신에 나타난다 할지라도 나는 넘겠나이다”라고 맹세하고 나설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6천년 동안 하늘 뜻을 세우기 위하여 죽음의 고비고비를 넘어 온 선지 선열들의 대신자가 되어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사탄족속을 향해, “나는 폭탄이다, 너희들의 가슴을 폭발시키고 말 것이다!”라고 외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던 말씀을 우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민족이 그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가나안땅에 들어가서도 12사도를 중심하여 재탕감의 역사를 거쳤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여호수아적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천국이념을 건설하기 위해 이 땅을 찾아오시는 주님도 여러분과 더불어 수난의 길을 가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295
하나님의 福地에 對한 所望
여러분이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6천년 섭리역사를 대신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원수들과 일대 판가리싸움을 하여 승리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서야 비로소 천지가 화동할 수 있는 한날을 맞게 되고, 수천년래의 선조들이 하늘 대하여 피의 호소를 하던 그 원한이 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창조주의 기쁨이 나타나고, 영원 불변의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천천만 성도들이 즐기고, 땅 위에 있는 만민들이 즐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탄 앞에 세워 자랑하고, 여러분의 선조들도 여러분을 세워 자랑하고, 여러분도 형제가 되어 서로서로 자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그는 당신의 아들이니 그를 사랑해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여러분 가운데서 나타나야 됩니다. 참된 진리에 의하여 그러한 한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인간의 기쁨도, 영계의 기쁨도, 하나님의 기쁨도, 천지의 기쁨도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그날을 위하여 6천년 원한의 죄악사를 청산하고 “하늘이여, 저를 보고 기뻐하시옵소서, 저를 보고 원한을 푸시옵소서, 저를 보고 6천년의 탄식을 잊으시고 창세 이후 처음으로 웃을 수 있는 한날을 맞으소서”, 또 “영계에 가 있는 선조들이여, 하늘이 기뻐하니 우리와 함께 화답하소서”라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존재가 되어야만 허락하신 세계적인 가나안복지를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타락에 의한 6천년 원한을 사탄권내에 떠넘기고 인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할 수 있는 우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러한 자가 되어야만 세계적인 가나안복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있고, 70문도를 대신할 수 있어 하나님이 찾고자 원하는 아들 딸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어 하나님이 찾고자 원하는 아들 딸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가정이 되고,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민족이 되며,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국가로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영원한 행복의 동산, 이상의 복지가 건설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6천년 섭리역사를 종결지어야 할 때이므로 최후의 용단을 내려 뜻을 향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소돔. 고모라가 멸망하게 될 때, 롯의 처는 옛날 고향에서의 가정생활이 그립고, 이웃에 살던 친구들이 그립고, 그곳의 환경과 습관이 그리워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던 것입니다.

애급을 떠나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민족도 광야에 나와 고생이 되자 옛날의 애급을 그리워하다가 가나안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중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광야에 나와 머무를 곳도, 먹을 것도 없게 되자 `애급에 있었더라면 떡도 먹고 가끔 고기도 먹었을 텐데….’ 하며 모세를 원망하고 그에게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였던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민족 가운데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면서 불평을 했던 자들은 누구였느냐 하면 애급에 있을 때 부유했던 자들이었고, 남을 지배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그러한 이스라엘민족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이것을 교훈삼아 여러분은 이 순간 무엇을 바라보아야 되겠느냐?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입니까, 여러분이 사귀고 있는 친구들입니까? 여러분의 집과 친구는 여러분이 바라보아야 할 것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머물러야 할 집이 있다면 그것은 황무지와 같은 광야일 것이며, 여러분의 친구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광야에서 유리하고 있는 형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늘길을 가는 데 있어서 개인으로부터 가정.사회.민족.국가까지 갈라 세워 세상 것은 다 버리고 하늘 것으로 모든 것을 대치시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즉 세상의 나를 버리고 하늘의 나를 찾아야 하고, 세상의 가정을 버리고 하늘의 가정을 찾아야 하며, 세상의 종족을 버리고 하늘의 종족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의 민족을 버리고 하늘의 민족을 찾아야 하고, 세상의 국가를 버리고 하늘의 국가를 찾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여러분은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고 있는 정성을 다하여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라면 개인을 찾는 마당에 개인이 쓸어져도 감사하고, 민족.국가를 찾는 마당에 민족.국가가 쓸어져도 감사할 수 있는 지조를 가진 하늘의 아들딸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각오로 개인을 대하여 싸울 수 있고, 가정·국가·세계를 대하여서도 싸울 수 있으며, 이 땅 위의 사탄 대하여 `물러가라’ 할 수 있는 용맹심을 갖추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하늘을 향한 지조를 가지고 생애노정의 끝날까지 나아가는 자가 있다면 그는 죽더라도 부활하여 그 복지에 나타나 영광을 누릴 것이요, 만일에 죽지 않으면 제 2 이스라엘로서 허락하신 복지동산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297
기 도
사랑의 아버님! 오늘 모인 이 모습들, 아벨이 부르짖던 애원의 호소를 들을 줄 아는 심정적인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또, 아벨의 피를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산상에서 피의 제물로 바쳐질 때 만민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다하지 못하신 원한에 사무친 그 심정을 저희의 피를 통하여 저희의 마음을 통하여 저희의 지각을 통하여 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발걸음이 그들만의 발걸음 인줄 알았는데, 이제야 그 발걸음은 오늘날 저희들도 걸어야 할 발걸음인 줄 깨달았사옵니다. 땅 위에는 많은 사람이 있사옵는데, 보잘것없는 저희들에게 찾아오시어 6천년의 한을 풀어주기를 바라시는 당신의 사정을 아는 아들딸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는 잘난 사람도 많사옵고, 훌륭한 사람도 많사옵고, 능력이 있는 사람도 많사옵는데, 부족한 저희를 찾아오시어 하늘의 사정을 알아달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서글픈 사정을 체휼할 수 있는 아들딸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은 옛날에 여호수아가 강하고 담대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을 대신하여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사옵고, 세계를 대신하여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사오며, 땅을 대신하여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사오니, 아버님, 부족한 저희들과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적인 모든 고난을 저희 일신에서 탕감하고 넘어갈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죽고 또 죽더라도 가나안복지를 찾아 들어가고야 말겠다고 하던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강하고 담대한 무리들이 세계 기독교인 가운데 어서 속히 많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자리에 참석한 아들딸들, 천륜에 의거한 심정으로 부활의 생명의 약동감, 하나님의 생명의 약동감을 느끼고 아버지와 함께 화동할 수 있는 영광의 한날을 어서 속히 맞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말씀을 저희의 생명의 씨앗으로, 저희의 생명의 중심으로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제단과 지성소 앞에 나아가 분향하는 대제사장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