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to 3-23: 언제 아버지 앞에 나는 설 것인가

언제 아버지 앞에 나는 설 것인가
1957.09.08 (일), 한국 전본부교회

3-7
언제 아버지 앞에 나는 설 것인가
요한복음 3:1-21

[기 도]

긍휼의 아버님이시여! 사망의 이 동산 위에 생명의 빛을 갖고 나타나시옵소서. 사랑의 아버님이시여! 황무지와 같은 이 광야에 사랑을 갖고 나타나시옵소서. 영광의 아버지시여! 기갈을 당하여 메마른 심령들 위에 영광의 은사로서 나타나시옵소서. 전능의 아버님, 죽었던 생명들을 모아 아버님의 성단에 무릎 꿇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로 하여금 잠들어 있는 이 민족을 깨우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혼돈 가운데 잠들어 있는 이 인류를 깨우칠 수 있는 아들딸들이 어서 속히 일어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모이는 아들딸들이 생명의 봉화를 높이 들어 민족을 아버지 앞에 이끄는 동시에, 지상의 인류를 아버지 앞에 이끄는 기쁨의 날이 어서 속히 임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아버지의 무릎 앞에 나왔사오니 자신을 반성하여 성별된 몸을 갖고 아버님의 성상 앞에 엎드려 있는지 스스로 살펴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바라옵니다. 아버지의 뜻 앞에 합당하지 못한 허물이 있다면 아버님이시여, 생명의 빛으로써 저희의 마음을 비추어 스스로 뉘우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성령의 힘으로써 저희 몸을 붙들어서 죄악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부활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각자 스스로 아버지 앞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동시에 아버지와 인연을 맺고 아버지의 영원한 유업을 인계받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심정에 사무쳐 있는 모든 사정을 이 시간 저희 자신들이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자리에 모인 각자에게 내적인 사명을 맡겨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일주일을 지내는 가운데 저지른 합당치 못한 모든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아직까지 아버지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마음과 몸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엎드렸다면, 아버지시여, 불꽃같은 눈으로 저희를 감찰해 주시옵소서.

존엄하신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직고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스스로 뉘우쳐 아버지 앞에서 회개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도 지방에 널려서 외롭게 말씀의 봉화를 들고 싸우고 있는 아들딸들 위에 일률적으로 역사하여 주시옵고,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의 손길이 그들의 머리 위에, 그들의 몸 마음에 충만히 나타나시어서 어두운 환경을 개척하기에 부족함이 없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간 아버님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선포된 모든 생명의 말씀이 땅 위에 떨어지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제 어두움 가운데 있던 아들딸들이 나타난 아버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은사를 받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들딸들을 이 민족의 생명의 주인으로 세워주시옵고, 기쁨의 은사 가운데서 본이 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방에 널려서 외로운 제단을 쌓고 있는 아들딸들과 아버지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든 제단 위에 일률적인 은사로 역사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 드리옵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이념권내에서 단결하여 하나의 세계, 하나의 뜻,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움직여지는 기쁨의 날이 어서 속히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처음부터 끝시간까지 온전히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9
말 씀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언제 아버지 앞에 나는 설 것인가’입니다. 이런 제목으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3-9
아버지 앞에 나서야 할 참신앙인의 태도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제아무리 훌륭하고 제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그 자체는 타락의 혈통을 갖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이제까지 범죄의 역사를 거쳐 왔고, 이 세계에서 혹은 우주에서 악과 대결하여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이런 싸움의 노정을 거쳐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망의 한날을 바라보고 나서려할 때, 거기에는 무수한 광야의 조건들이 그 행로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생활에서 혹은 생애노정에서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풀려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양심적이고 선한 사람들이 갈망하여 나온 푯대요 표준이었음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의 나’보다도 `내일의 나’가 더욱 선할 수 있으려면 절대적으로 실존하시는 신을 우리의 생활권내로 끌어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즉, 그 신을 어떤 논리적인 신이나 관념적인 신으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실증적인 신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중차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어차피 타락의 운명을 벗어나서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가야 할 길을 놓고 이제까지 수많은 선지자들과 도인들이 있는 성심과 인내와 지성을 다했지만 그 길은 아직까지 다 가지 못한 채 우주적인 운명의 길로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또 인간이 저지른 죄로 인해 생겨난 담도 한 두 개가 아니고, 가도가도 끝이 없이 가로막혀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헐어버리고 넘어야 될 입장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 있는 인간들이 신앙의 대상, 즉 절대적인 신, 절대적인 실존체의 신을 흠모하고 나섰지만 그들은 그에 대해 여러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막연하게 관념적으로만 신의 실존을 인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논리적인 면으로만 신의 실존을 인식하려면 무리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논리권내에만 머무르는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으로 신을 인식하는 신앙이 우리의 생애를 이끌어 영원한 생명의 실체로 완성시켜 줄 수 있겠느냐할 때, 여기에는 문제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하여야 참 되신 주님과 아버지 앞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아버지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역사적인 소망인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에 처해 있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찾아가고, 신앙의 길을 찾아 나가게 될 때, 우리가 나가는 길을 무엇이 가로막게 되는가? 먼저 자기도 알 수 없이 생겨나는 의심이 앞길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또, 죄악의 시험이 가로막을 것이고, 예기치 않게 엄습하는 사망의 힘이 갈길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의심의 고개를 넘어야 되겠고, 죄악의 고개를 넘어야 되겠으며, 사망의 고개를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영원한 이상과 관계를 맺어주고, 그 맺어진 관계가 자기의 생활을 지배하고 자기 생애의 목적을 지배해 주기를 바라는 욕망을 인간들은 품어 나왔습니다. 또한 이런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그 한 기준을 인간들은 자기도 모르게 고대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과정을 반드시 거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생활권내에서 신의 실존을 체휼하기를 바라고 있고, 신의 실체와 만나기를 흠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의 실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세워놓고 나가려 할 때 여러가지 의심되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의심의 조건에 걸려 나아가지 못하면 안되고 그것을 통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사망의 큰 그늘 아래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것을 느낀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것들을 자기의 마음에 품고만 있으면 참된 신앙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풀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하나님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의심을 솔직히 내놓는 신앙의 대상자로 머무를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자기의 모든 죄악으로 인한 고난, 즉 자기가 스스로 지은 자범죄로부터 혈통적으로 이어받은 유전적인 죄까지 전부를 솔직히 하나님께 고백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것과 싸워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원한 소망의 세계를 향하여 한발 한발 전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생명의 이상을 느낄 수 있는 약속의 천국으로 들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무력한 사망권내에 머물러 있는 것을 우리는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3-11
의심의 해명방법─용기있는 믿음
이제 여러분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찾고자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갖고 나왔던 의심과 죄악과 사망의 내용을 내어버려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던 그 자리, 죄악의 역사와 인연을 맺고 있는 그 타락의 환경에서는 하나님이나 선과 관계를 맺을 수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선하게 될 수 있는 환경은 그런 환경이 아닌 새로운 환경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런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나는 이런 부족한 모습이오니, 아버지시여, 받으십시오’ 하는 간곡한 심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런 심정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자리잡으면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접어들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처해 있는 주위환경으로부터 갖게 된 의심을 내어놓고 `아버지시여 저희 몸 마음에서 이것을 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고, 죄악에 사로잡혀 있는 이러한 자신을 아버지 앞에나 어떠한 신앙의 주체자 앞에 그냥 그대로 내맡길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심정만이라도 마음의 중심에 세우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여러분은 신앙길을 걸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여 찾아오실 때 무슨 조건을 제시하시느냐 하면 신앙을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믿음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의심을 갖게 하는 환경을 타파하고 믿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야 하며, 죄악의 환경을 정리하고 선의 환경을 만들어야 하며, 사망의 환경을 타파하고 생명의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다한 후에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무한대의 영광을 하나님 대신 노래할 수 있고, 하나님의 권한을 친히 나타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한때를 바라보며 인간들의 마음이 움직여 온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무도 부정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머물러 있는 이 죄악의 환경을 무자비하게 청산해 버려야 합니다. 또 자기의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내어 놓을 수 있고, 지금까지 맺어온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있었던 의심을 다 해명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갖고 있는 모든 죄악의 요소들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지금까지 속해 있던 사망의 권세에서 해탈할 수 있는 신앙의 기준을 가져야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의심을 해명할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러한 길이 인간 세상에 없다면 하나님은 찾아오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 양심을 자극시켜 주는 실존체가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이 소망하는 최대의 소망과 생명과 인륜의 기준을 여러분은 반드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한날, 역사적인 종말시대가 언젠가는 어차피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우주적인 운명의 길을 앞에 놓고 여러분은 어느 정도 생각해 보았습니까? 사실 오늘 여러분은 우주와 이 사회와 세계, 심지어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을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모든 문제를 해명해 줄 수 있는 중심존재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또 인간들이 궁금해 하고 있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분도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요, 그것을 해결해 주실 분도 오직 한분 절대적인 존재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과 관계된 이런 모든 우주적인 의심을 걸머지고 `하나님이여, 나 이제 우주에 대한 모든 의심을 가지고 나왔사오니, 당신과 나 사이에 천륜적인 인연이 있다고 한다면, 나를 버리시지 않을 당신으로 알고 있사오니, 이 모든 의심을 받아 해명해 주시옵소서’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맡겨버릴 수 있는 배짱도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의심되는 문제를 해결할래야 해결할 수 없는 이런 입장에 서게될 때, 이것을 해결하는 것을 신앙의 도리로 알고 그것을 해결해 보기 위해 어려운 싸움을 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홀로 걸어가지만 끝내는 보통으로 걷고 있는 신앙자들 이상의 자리에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선의 길을 막으면서 악의 길을 열어놓는 이런 사탄의 놀음을 물리치고 개인적으로 승리의 목표를 향해 개척해 나가려 할 때는 자기의 의심을 전부 신앙의 주체자 앞에 솔직히 고백해야 됩니다. 고백하는 그자체도 성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는데, 진실로 자기가 부딪친 우주적인 의식의 한계에 대해 도전할 수 있는 성실성을 갖고 하늘 앞에 `아버지여! 하나님이시여’라고 부를 때는 아버지도 그를 대해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런 사람을 대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진실은 천륜이 유린하는 법이 없고, 참은 하나님이 버려둘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에 의심되는 모든 사실을 해결하기 위해서 진실된 마음으로, 충실과 충절과 정성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붙들고 호소할 수 있는 이런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 의문이 해명되지 않으면 우리는 죄의 길을 타개할 도리가 없습니다. 제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다 하더라도 의문이 완전히 해명되지 않으면 또 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3-13
역사적인 의심의 장벽을 헤치신 예수의 말씀
타락의 기원을 회고해 보게 될 때, 아담 해와가 타락하게 된 것은 의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과정에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심이 있다면 이것을 해명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의심이 크면 클수록 그 마음이 크게 구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문을 해명받기 위해 하나님에게 당돌하게 나설 수 있는 용기와 각오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랜 역사를 거쳐 오면서 인간들은 인생관이나 우주관에 있어서는 많은 의문점을 풀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의문점은 완전히 해명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의문되는 것을 해명하기 위해 그 문제에 정면 도전하여 하늘 앞에 충실한 모습으로서, 있는 정성을 다 드리는 사람이 이땅에 나온다 할진대는 그를 하나님께서 세워 주실 것이며, 또한 그의 의문을 풀어 주실 것입니다.

오랜 역사를 경과해 오면서 이러한 천륜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수많은 선지들이 왔다 갔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궁금하게 여겨온 전체적인 내용이 해명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우주적인 의문을 해명해 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오셔야 했던 것이고, 해결되지 않은 인간들의 죄를 해결해 주기 위해 예수님은 오셔야 했던 것이며,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오셔야 했던 것입니다.

인류의 이러한 의문과 사망과 죄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4000년 역사과정에 오셨던 어느누구 보다도 하나님을 위해 진실된 생활을 하신 분입니다. 자기를 초월하여 우주적인 의심을 해명하기 위해 노력하셨고, 자기 일신의 영광을 초월하여 우주의 영광을 위하여 수고하셨으며, 자기의 모든 것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무한히 희생하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런 일관된 마음과 생활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역사를 대표하여 하늘 앞에 제일의 선봉자로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역사적인 의심의 장벽을 헤치고 나서서 자신있게 `나를 믿으라’고 외치셨던 것입니다.

`나를 믿으라’고 하신 예수님의 이 한 말씀이 어찌하여 신앙의 기준이 될 수 있었는가, 또 어찌하여 `나를 믿으라’는 신앙의 기준을 예수님은 세우시게 되었는가? 너무나 많은 의문을 해명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는 예수님이셨기에 이를 단축시켜서 어떤 때가 되면 자연히 알수 있는 길을 소개해 주시려고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 위의 인간세상의 일만이 아니라 하늘세계에 대해서도 아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 하거든 하물며 하늘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3:12)라고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의 말을 가지고는 의문의 고개를 넘을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하늘의 말씀을 통해야 모든 의문이 해명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때는 언제인가? 그때는 인류가 찾아나온 최후의 때, 기독교가 말하는 최후의 심판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때를 기준하여 모든 복귀섭리를 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모든 의심과 사망과 죄의 조건과 요소를 제거시키는 새로운 말씀이 이 땅에 나타나게 될 때 그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이 이런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늘을 위해 충성을 다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귀한 예물을 받으려 할 때에는 그것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전체적인 의문을 해명하는 가치의 말씀이 나타나게 될 때, 여러분은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자신들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15
하나님과 인연맺는 길
그러면 무엇으로서 이 말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정성과 충성입니다. 예수님이 4000년 역사를 대표하여 하늘 대해 충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6000년 역사를 대신하여 하늘과 예수 앞에 충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전체적인 해명이 되는 시대에 도저히 나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해명의 말씀은 어떤 말씀일 것인가? 이것은 여러분이 들어 보지 못한 새로운 말씀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또 이 말씀은 어떠한 말씀일 것인가? 이 말씀은 개인적인 의문을 해명해 줄 수 있는 말씀인 동시에 세계에 관한 의문과 우주에 관한 의문을 해명해 줄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또 어떠한 체계를 갖춘 말씀일 것인가? 이것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대충 말씀드린다면, 6000년 동안 흘러온 의문의 역사를 해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갖춘 말씀일 것입니다.

실제로 앞으로의 시대에는 그런 구체적인 내용을 갖춘 말씀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타날 그 말씀을 우리 개인에게 적용시켜보면, 그 말씀은 우리의 생활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날 것이고, 또 그 말씀을 통해서 영원한 세계를 목적하고 있는 절대자의 치리(治理)의 권한과 우리의 생활은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이런 구체적인 내용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일체화된 그 말씀과 일체가 되면 그 일체된 자리에는 어떤 의심이나 사망이나 죄악의 침범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우리의 신앙을 완성시켜 줄 수 있는 절대적인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로 하여금 절대적인 선을 지향하게 할 수 있는 말씀이어야 하며, 영원한 생명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이 추구해 온 진리탐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 인간 들의 탐구대상은 우주였습니다. 즉 `이 우주는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인간들은 고심해 왔습니다. 그다음에는 인간을 중심삼고 탐구해 왔습니다. 즉 `사람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이성을 중심삼고 이제까지 진리를 탐구해 왔는데, 인간의 그 이성은 완전한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성 그 자체만으로서는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이성은 인간들로 하여금 절대적인 가치를 증진시키게 할 수 없고, 영원한 인간의 생활이념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절대자 즉, 종교적으로 말하면 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은 인간들이 지은 죄의 용서를 빌기 위한 인륜적인 신이었습니다. 논리를 초월한 신으로서 인간 개개인과 관계를 맺는 신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사고에 의한 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관은 완전한 신관이 아닙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한걸음 비약하여 바른 신앙인들은 절대적인 신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적인 신을 인정하면서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신이 그 신과 어떤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논리적인 입장에 머물러 있을 뿐 어떻게 해야 비약적인 신의 실존을 느낄 수 있고, 그 신의 실존이 나와 생활적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이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념은 우주론을 대신하고, 인간의 이성의 가치를 대신하고,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대신하며, 절대자의 이념, 즉 신의 이념에까지 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이념이 우리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인간의 표현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인간들의 인격 수양으로서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3-17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신앙의 기준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천륜의 새 이념권내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자신의 생애기간 중에 천주적인 이념을 찾아야 합니다. 신의 이념에 통과되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하고, 최고의 양심의 기준과 최고의 선의 기준에 서신 예수님은 신의 전체적인 성품을 대신한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동적으로 믿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경지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우리 자신들은 예수님과 같이 되지 않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들이 지금 무엇을 한다 하더라도 그 머물러 있는 환경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억압하는 힘으로 강하게 밀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또 내 양심이 최고의 선, 즉, 절대자의 실존을 향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마음은 순조롭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타락의 보응으로 인해 이 세계가 죄악의 세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심, 본성의 힘을 억누르고 있는 내 마음의 힘보다 더 강한 어둠의 세력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이 어둠의 세력을 기독교에서는 사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어둠의 세력을 어떻게 타파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둠의 세력과 우리 몸에 있는 악의 요건들은, 우리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하고 죄악의 행동을 하게 하여 우리를 사망의 세계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로막아 밀어낼 수 있는 환경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환경을 찾아 세우고자 하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나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나’라는 것은 예수님만이 성취한 `나’였지만, 그러한 개인을 만들어 인간세계에 확장시키는 운동을 누가 할 것인가.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인간의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주위 환경에 널려 있는 어둠의 세력을 생활 가운데서 물리치신 것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나서게 될 때에, 순간적으로 사탄이 우리의 일과 우리가 움직이는 곳에 나타나지만, 결국 하늘이 나타나셔서 사탄을 물리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예수께서는 믿음의 조건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의 조건을 세우려면 어느 기준까지 믿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이 상상하여 믿을 수 있는 정도만큼 적당히 믿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미치는 정도까지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오늘날 이 세상에서 믿고 있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크고 높으신 신의 실존체를 위하여 믿어야 한다면 그 크고 높으신 신의 가치에 비교될 수 있는 신앙의 기준을 여러분이 세워야 됩니다.

그러면 현재 인간들은 어느 정도까지 믿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믿음의 정도는 예수께서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라고 말씀 하신 것과 같이 아주 낮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인간들의 믿음의 정도에 대해 낙망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앙을 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인 신앙의 기준을 세울 수 있겠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는 성경 속의 하나님으로만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가운데도 신앙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무한한 창조의 이념이 있는 한 그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한 신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믿고 계신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무한대의 신앙을 추구하여 나가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런 신앙을 소유한다면 성경 가운데 있는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성경 가운데 있는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어야 예수께서 이땅에 오셔서 하지 못하셨던 말씀까지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시지 못한 부분을 여러분이 찾아야만 우주적인 의심의 고개를 넘어갈 수 있고, 우주적인 사망과 고난 그리고 우주적인 죄악 역사를 거쳐나온 선조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신앙의 주체되시는 주님을 믿고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그 믿음의 조건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걸어놓고 예수님과 관계와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과 믿음의 관계를 맺은 그 터 위에서 하나님의 실존까지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이와 같은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무한한 신앙의 노정을 탐구해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일반 기독교인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무한한 신앙의 이념에 사로잡혀서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진정한 신앙인을 하늘은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19
참신앙인은 악한 환경에 영향받지 않는다
이제 여러분은 자신이 걷고 있는 신앙노정에서 생명의 조건을 통과할수 있어야 하고, 천륜의 비밀을 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길을 찾아 세워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들을 통하고 난 다음에는 의심의 고개를 넘고, 죄악의 고개를 넘고, 사망의 고개를 넘고, 악을 중심한 모든 욕망의 고개를 다 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고개들을 다 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우리가 모셔야 됩니다. 믿음의 주체이시고, 선의 주체이시며, 생명의 주체이신 그분을 우리의 마음에 모셔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고 하신 말씀과 같은 일체의 경지입니다.

무한대의 소망을 가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에 모셔 놓고 태연자약할 수 있는 그 모습이 얼마나 멋진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모습이 되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계의 사실은 책에 기록한다고 하면 몇 만권의 책으로도 다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인간들에게 보여 주고 가르쳐 준 영계는 일부분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영계를 소개한 책으로는 전체의 영계를 해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인간이 가야할 신앙노정의 전체을 담고 있는 말씀인가, 전체의 가치를 회복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갖추고 있는가 할 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말 하면 욕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신앙의 조건으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한 것이고, 하나님은 인간들이 예수님을 최대의 가치를 지니신 분으로 믿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역사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나가면 나갈수록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활을 주관하실 수 있고, 하나님의 주관을 받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대상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가치와 연결될 수 있으며, 하나님과 심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진리도 우리의 생활 가운데 나타낼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진리와 상대되는 요소를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모든 주의 사상을 통합시키고 모든 민족을 통합시킬 수 있는 생활환경을 건설해야 됩니다. 그런 생활환경권내에 들어가야 선의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선의 생명을 소유할 수 있으며, 선의 절대적인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그런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은 어느 특정민족의 하나님이 아니고 만유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아 생전에 그렇게 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직계의 아들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남이 아니라는 길을 이미 나섰습니다. 남이 아니라는 길을 이미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신앙의 표준을 우주적인 창조주의 인격에 두고 신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표준을 달성하는 날에는 악의 요소가 여러분에게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것은 악과 같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악에 영향을 받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환경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면 그 환경에 지배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참신앙자가 되지 않으면 천륜을 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찌하여 스스로를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셨는가.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인간들이 도저히 믿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신 것은 그들에게 이것을 믿으면 순간적으로 비약할 수 있는 혜택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무한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진심으로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게 되면 비약적으로 신앙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중심을 향한 여러분의 신앙의 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 영계도 여러분을 통해 더 크게 역사할 수 있는 것이고, 여러분이 무한한 신앙심을 소유한다면 여러분의 그 인격을 통해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초감각적인 세계의 사실과 우주의 사실을 일시에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런 놀라운 것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가고 가고 또 가야 하는 것이 무한한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신앙자의 자세라 할진대, 어떤 한계권내에 머물게 하는 신앙을 부르짖고 있는 무리들을 물리치기 위해 끝날에는 우주적인 큰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3-21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참아들딸이 되려면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을 살펴보면, 새로운 시대를 소개하기 위하여 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거의 다 몰림받았습니다. 그들을 몰아낸 사람은 우리의 선조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도 유대교인들은 예수님을 싫어하고 반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몰랐습니다. 자기들이 믿고 있는 것이 제일인 줄 알고, 우주를 대신하고 천주를 대신한 구원섭리를 자기 나름대로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선조들은 천륜의 길을 거역하고, 천륜의 역사를 깨뜨리는 잘못을 수없이 범해 왔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끝날에 있어서 누가 백퍼센트의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인가. 죄악을 물리치기 위한 싸움에 나선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바탕 위에 투철한 책임감을 가지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실천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입장에 서지 않으면 무한한 사랑의 이념을 갖고 신랑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앞에 대상의 자격으로 설 수 없는 것이며, 또 무한히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죄가 무엇이냐 하면,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인물을 믿지 못하는 것이 죄요, 그분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우주적인 하나님의 이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확고한 믿음을 갖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런 믿음을 갖고 나가려 할 때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그와 상반 되는 의심이 생길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에 악의 세력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 악의 세력은 여러분의 마음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 악의 세력에 삼켜지는 신앙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런 것들을 소화하며 넘어갈 수 있는 아량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이런 입장에 서셨던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그분은 십자가를 지는 자리라고 피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도저히 비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우리는 새로운 신앙노정을 찾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진실되게 새로운 신앙노정을 걸어가면 거기에는 우리는 실증적인 사실, 하나님과 인연된 사실, 하나님과 관계된 사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기에서 통일을 염원하시는 창조주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죽음을 각오하고 새로운 신앙길을 따라 나선 여러분, 여러분들이 절대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의 소망을 향해 나가면 그런 신앙노정의 통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적인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런 믿음을 갖고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이런 믿음을 갖고 실천하는 참사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지 않고는 도저히 아버지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아버지 앞에 참아들딸로 설 수 없고, 충신의 모습으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절대적인 아버지 앞에 참아들딸로 서기 위하여 새로운 신앙으로 이 모든 의심의 세계, 이 모든 사망의 세계, 이 모든 죄악의 세계, 이 모든 공포의 세계를 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늘이 요구하는 신앙의 내용을 안다면 그것을 입증시킬 수 있는 기준을 세워 하늘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도저히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갖고 나설 때 여러분은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영원한 선과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고, 고통으로부터 영원한 해방을 받을 수 있어, 영원한 천국권내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3-23
기 도
한때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에 이 세계를 맡겨 보았지만 그것이 다 무너졌사옵니다. 그 후에는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이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해 보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그것을 통해서도 뜻은 성취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도 의지해야 되겠고 인간도 의지해야 된다는 것과, 하늘과 인간이 합동해서 이루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는 것을 아니 느낄래야 아니 느낄 수 없습니다.

아버님이시여, 저희들을 저희들만으로 놓아두지 마옵소서. 인류가 역사적인 노정을 걸어오면서 실패한 환경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앙만으로서도 안 되고 나 자신만으로서도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 자신을 초월할 수 있고, 나의 생명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우주적인 이념과 진리를 갖게 해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저희들 또한 자리를 가지는 동시에 하늘이 저희들에게 임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아오니, 절대적인 신앙노정을 통하여 온전히 아는 입장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입장에까지 나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서 나를 찾으라 하셨습니다. 내적인 면에서 사정을 통할 수 있는 것이 심정이요, 내적인 면에서 사정을 통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말씀일진대, 말씀을 통할수 있게 해 주시고, 그 말씀을 통하여 진리와 심정을 알게 해주시고, 심정적인 이념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알 수 있는 자리까지, 아버님, 저희를 인연맺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오늘 저희들이 지극히 좁은 환경에 머물러 있지 말게 허락해 주시옵고, 조그마한 일에 치우침으로써 자신의 전체적인 가치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모습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보다 크신 아버지의 은사를 흠모하면서 보다 크신 아버지의 천적인 인격을 바라보게 허락해 주시옵고, 그 인격이 아직까지 이 땅에 어떤 모습으로서 나타나지 않았고, 또한 하늘이 저희들을 통해 그런 인격이 나타나지기를 바라고 계시다 할진대는 좀더 큰 신앙의 표준을 가지고 그 이념에 합당한 성심과 충정을 갖고 아버지 앞에 움직여 나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고, 그 책임을 완수할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때에 허락하시려는 최후의 은사를 내려 주시옵고, 영광의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제물적인 생활을 통하여 영원하신 아버지의 전체의 신앙이념을 오늘의 생활의 이념으로 받아들여 실천해 나감으로써 온 만민을 대해 자랑할 수 있는 승리의 모습이 되게 인도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말씀을 이들의 마음 가운데 생명의 원천으로 심어 주시옵고, 그 말씀이 이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