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 to 3-65: 본향의 인연을 찾아 들어가자

본향의 인연을 찾아 들어가자
1957.09.22 (일), 한국 전본부교회

3-45
본향의 인연을 찾아 들어가자
요한복음 14:1-7

[기 도]

싸움의 일주일을 이기고 나왔사오니 아버지의 깊으신 사랑의 성상이 저희의 마음 몸 위에 임하시옵소서. 아버지의 품에 안겼사오니, 사랑의 아버님, 충만하신 당신의 생명에 파묻히는 사랑의 기쁨을 이 아들 딸에게 내려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심정을, 아버지의 귀중함을 이 시간 체휼하지 못한다 할진대는, 저희의 옳지 못한 모든 죄악의 인연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긍휼의 아버님이시여, 이제 이 한 시간 오로지 아버님의 사랑 속에 잠겨들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의 섭리 앞에 정성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님의 주관하심에 저희들이 순응하여 그 본연의 뜻을 내 마음이 체휼할 수 있으며, 본연의 심정을 내 마음에 느낄 수 있어서 땅 위에 세워진 저희들의 전체적인 책임을 감당하고 남을 수 있는 사랑하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까지 험한 길을 걸어오게 될 때에, 슬픈 사정이 있을 때에는 저희들 보다 먼저 슬퍼하시던 아버님이셨사옵고, 저희들이 낙망권내에서 스스로 탄식하게 될 때에도 저희의 모든 죄를 대신 반성하시어 사탄이 참소하는 마당에서 대신 싸워 주신 아버지이신 것을 아옵니다. 이 한시간 이 몸마음 다 드려 제물로 아버님께 바치더라도 지금까지 수고하신 아버지의 은사 앞에 보답할 길이 없다는 것을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시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시여! 많은 사람 가운데 보잘것없는 것들을 불러 세우시고, 수많은 민족 가운데 이 민족을 불러 세우신 아버지 앞에 감히 자신을 내세워 자랑할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사옵니다. 이제 저희들 원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서러워하실 때 같이 서러워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는 것이옵고, 아버님이 기뻐하실 때에도 같이 기뻐할 수 있고, 아버님이 바라실 때, 저희의 몸 마음이 뜻을 위해 폭발되는 것이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아들딸들, 아버님 지켜 주시옵소서. 아버님만이 중심이 되시옵고, 아버님만이 저희들의 주인이 되시어서, 저희가 땅 위에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저희들이 서 있는 자리가 외로운 자리요, 저희가 가는 걸음이 험한 길인 것을 아오니, 아버님,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끝날의 싸움에서 쓰러질지라도 `아버지’라 부르는 그 한마디의 음성을 통하여서 위로받으실 수 있고, 저희들은 아버지의 사랑의 권고를 받아 또 싸워 나가야 할, 맹세하고 각오한 당신의 아들딸이오니, 아버님, 부디 저희들의 몸마음을 사탄에게 넘겨 주지 마시옵소서.

부디 아버님의 사랑권내에 품어 주시옵시고, 원하시는 동산을 이루어 만민이 기뻐할 수 있는 그 한날을 이들을 통하여 나타낼 수 있게끔, 아버지, 끝까지 붙들고 이끌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한 시간, 아버님께서 허락하신 뜻이 이 성전에 충만하게 허락하여 주시어서, 이 시간 머무는 이 자리가 6000년의 수고의 결정체임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시고, 6000년의 수고가 어린 피의 제단임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시며, 그리하여 온 인류를 대신하여 저희들이 드리는 이 한 경배가 아버지의 심정과 마음을 열고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경배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의 모든 것을 내놓게 될 때 아버님 뜻 앞에 빛이 될 수 있고, 아버지의 뜻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중심으로서 남아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도 외로운 식구들이 지방에 널려 고난의 싸움을 싸우고 있사오니 지켜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한 시간 드리는 경배 위에 아버지의 긍휼의 은사가 같이 운행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3-47
말 씀
여러분들과 같이 생각하려는 내용은 `본향의 인연을 찾아 들어가자’입니다. `본향의 인연을 찾아 들어가자’,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3-47
타락인간이 본향을 그리워하는 이유
오늘 우리는 타락하지 아니하였던 본연의 동산을 향하여 다시 회복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하여 이미 배웠을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인고로 떨어지지 아니 한 그 본연의 상태, 하나님을 잃어 버린 인간인고로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아니 한 그 자리, 인류의 참부모를 잃어버린 연고로 참부모를 잃어버리지 않은 그 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상의 참부모를 중심삼은 평화의 동산에서 자녀로서 생활할 수 있는 그 자리를 우리는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도 오늘날 우리에게는 새로이 구원섭리라는 명사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조상이 선의 동산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과 영원한 인연을 맺었던들 오늘날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명사는 필요없을 것입니다. 구주를 통해야 할 조건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명사를 세워서 하나님을 찾아가야 할 이러한 조건도 필요없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필요없다고 하면 새시대라는 말도 필요없을 것이며, 회개해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내 한 자체를 세워놓고 분석해 보게 될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소망이 요구되고 있고, 새로운 지도자가 요구되고 있으며, 새로운 생활, 새로운 실천이 요구되고 있는데, 이 모든 사실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입니다.

타락 이후 오늘까지 오랜 역사가 경과했으면서도 아직까지 인간들이 바라는 그 소망의 본향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마음으로는 그 본향을 그리워하고 있지만 그 본향을 찾아 이루어 즐기지 못하고 있고 그 본향 가운데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상 본향의 동산에서 즐긴 사람이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새로운 사명을 책임졌던 도의 주인공도 지상에서 그 이념을 이루고 간 사람은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날까지 창조주는 물론이려니와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도 본향의 이념을 땅위에서 완성시키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본향의 동산을 그리워하며 산다 할진대는 어차피 이 본향의 동산을 성취시켜 주어야 할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책임과 본향을 이루는 인간의 책임을 연결지어 줄 수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세워 본향으로 가는 다리를 놓아 주기 위한 기도나 혹은 종교의식이라는 조건을 제시해 주는 사명을 선한 사람들에게 맡겨서 하나님은 역사해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살펴보게 될 때, 우리는 어차피 선한 마음의 인연을 따라 살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는데, 여러분이 선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땅, 소망의 본향을 성취하는 그날까지 나가는 노정은 평탄한 노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노정에는 싸움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고, 끊임없이 서로를 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자신을 향한 참소와 탄식의 조건이 영원히 이 땅에서 해결되기를 바라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슬픔이요, 땅 위의 서러움입니다. 서러움과 슬픔을 겪지 말아야 할 인간들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슬픔과 서러움의 환경에 처해있기 때문에, 자녀들이 당하는 슬픔과 서러움을 염려해 주어야 할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창조주인고로, 인간이 서러워하면 하나님도 서러워해야 하고 인간이 슬퍼하면 하나님도 슬퍼해야 하는 입장에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내 한 자체를 세우시어서 우주적인 생을 갖게 한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의 인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의 배후에도 어떤 인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의 이념을 찾아나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귀중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자기 생명의 배후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이념과 관계 맺게해 주는 생명의 인연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활의 인연과 환경의 인연과 이념의 인연을 찾을 때까지 여러분의 마음은 쉬지 않고 그 어떤 인연을 찾기 위해 허덕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인연을 찾아 인간관계만 해결할 것인가, 아닙니다. 인간관계만 해결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인륜을 넘어 천륜에까지 연결지어야 합니다. 그런 생애의 인연인 동시에 생활적인 인연이요, 환경과 혹은 전 세계적인, 혹은 전 천주적인 인연으로서의 그 자리는, 자신을 중심삼고 나타낼 수 있으며, 증거될 수 있는 생활을 느낄 수 있게 될 때에 인간은 비로소 승리의 한날을 맞을 것입니다.

3-49
타락인간이 본향을 그리워하는 이유
오늘 우리는 타락하지 아니하였던 본연의 동산을 향하여 다시 회복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하여 이미 배웠을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인고로 떨어지지 아니 한 그 본연의 상태, 하나님을 잃어 버린 인간인고로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아니 한 그 자리, 인류의 참부모를 잃어버린 연고로 참부모를 잃어버리지 않은 그 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상의 참부모를 중심삼은 평화의 동산에서 자녀로서 생활할 수 있는 그 자리를 우리는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도 오늘날 우리에게는 새로이 구원섭리라는 명사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조상이 선의 동산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과 영원한 인연을 맺었던들 오늘날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명사는 필요없을 것입니다. 구주를 통해야 할 조건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명사를 세워서 하나님을 찾아가야 할 이러한 조건도 필요없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필요없다고 하면 새시대라는 말도 필요없을 것이며, 회개해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내 한 자체를 세워놓고 분석해 보게 될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소망이 요구되고 있고, 새로운 지도자가 요구되고 있으며, 새로운 생활, 새로운 실천이 요구되고 있는데, 이 모든 사실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입니다.

타락 이후 오늘까지 오랜 역사가 경과했으면서도 아직까지 인간들이 바라는 그 소망의 본향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마음으로는 그 본향을 그리워하고 있지만 그 본향을 찾아 이루어 즐기지 못하고 있고 그 본향 가운데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상 본향의 동산에서 즐긴 사람이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새로운 사명을 책임졌던 도의 주인공도 지상에서 그 이념을 이루고 간 사람은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날까지 창조주는 물론이려니와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도 본향의 이념을 땅위에서 완성시키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본향의 동산을 그리워하며 산다 할진대는 어차피 이 본향의 동산을 성취시켜 주어야 할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책임과 본향을 이루는 인간의 책임을 연결지어 줄 수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세워 본향으로 가는 다리를 놓아 주기 위한 기도나 혹은 종교의식이라는 조건을 제시해 주는 사명을 선한 사람들에게 맡겨서 하나님은 역사해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살펴보게 될 때, 우리는 어차피 선한 마음의 인연을 따라 살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는데, 여러분이 선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땅, 소망의 본향을 성취하는 그날까지 나가는 노정은 평탄한 노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노정에는 싸움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고, 끊임없이 서로를 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자신을 향한 참소와 탄식의 조건이 영원히 이 땅에서 해결되기를 바라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슬픔이요, 땅 위의 서러움입니다. 서러움과 슬픔을 겪지 말아야 할 인간들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슬픔과 서러움의 환경에 처해있기 때문에, 자녀들이 당하는 슬픔과 서러움을 염려해 주어야 할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창조주인고로, 인간이 서러워하면 하나님도 서러워해야 하고 인간이 슬퍼하면 하나님도 슬퍼해야 하는 입장에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내 한 자체를 세우시어서 우주적인 생을 갖게 한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의 인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의 배후에도 어떤 인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의 이념을 찾아나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귀중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자기 생명의 배후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이념과 관계 맺게해 주는 생명의 인연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활의 인연과 환경의 인연과 이념의 인연을 찾을 때까지 여러분의 마음은 쉬지 않고 그 어떤 인연을 찾기 위해 허덕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인연을 찾아 인간관계만 해결할 것인가, 아닙니다. 인간관계만 해결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인륜을 넘어 천륜에까지 연결지어야 합니다. 그런 생애의 인연인 동시에 생활적인 인연이요, 환경과 혹은 전 세계적인, 혹은 전 천주적인 인연으로서의 그 자리는, 자신을 중심삼고 나타낼 수 있으며, 증거될 수 있는 생활을 느낄 수 있게 될 때에 인간은 비로소 승리의 한날을 맞을 것입니다.

3-51
인간이 가야 할 목적지
그러면, 인간들이 이제 영원한 이념의 노정을 찾아 나가기 위해서는 무슨 길을 통해서 어떤 걸음을 걸어야 되겠느냐? 현재 있는 것이 아닌 비약적인 하나의 조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인지 모르는 조건입니다. 그것을 책임지고 찾아 놓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분이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타락의 후손인 전세계 인류는 오늘날 어떠한 입장에 놓여 있는가. 하나님을 영원한 부모로 모셔야할 입장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통해 생애의 출발을 보았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한 즐거움의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신랑 신부의 인연도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본연의 관계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실패요, 가정적으로도 실패이며, 그다음에는 만민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상속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하였고, 또 하나님과 인간의 최대의 즐거움을 약속해 주는 환경을 상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예수를 믿고 신앙의 길을 따라가야 하는 본래의 목적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타락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현재의 환경권내에서 즐기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벗어나 어느 한날 죄악으로 말미암아 얽히어 있는 모든 원인을 청산해 놓고, 본연의 중심을 찾자는 것입니다. 본연의 중심은 무엇인가. 거기는 부모도 있어야 할 것이고, 부부도 있어야 할것이며, 자기의 가정을 지켜줄 수 있는 환경과 나라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을 찾아 이루는 것이 우리가 신앙하는 목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악한 인간들이지만 선한 마음을 불어넣으면서, 양심을 움직이시어 이와 같은 이념의 기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섭리를 해나오고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알고 나서 여러분은 자기의 모든 성심을 다해 선을 위한 투쟁을 해야 되겠고, 본연의 법도에 어긋나 있는 인간들이요, 세계인 것을 느껴서 이것을 대해 싸울 수 있는 변치 않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부모로부터 양육받아 부모의 생활을 통하여 국가적인 인연권, 혹은 세계적인 인연권내에서 생을 영위하고 있는 인간들의 삶을 살펴보면 인륜을 중심삼은 삶이 아니요, 영원을 중심삼은 삶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타락했던 연고로 결과되어진 이 땅 위의 모든 삶의 형태와 이념은 어차피 심판의 한날을 고비로 하여 청산되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이념이 이루어지지 않은 땅 위에 있어서도 부모의 인연이 없으면 서러워하고, 부부의 인연이 없으면 서러워하며, 자기와 자기의 가정을 보호해 주는 국가가 없으면 서러워할 줄 아는 것이, 인간 서로서로의 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같이 변할 수 있는 인연이라도 환경을 갖추지 못하면 서러워하는데 영원한 이념을 중심삼은 인연을 갖추지 못한 것을 서러워하지 않겠습니까. 이같이 인간들은 땅 위에서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다 주어도 거기에 가중하여 천륜의 영원한 인연을 또 바라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신앙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변할 수 있는 이념적인 조건을 갖고 살 것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불변의 인연을 회복하되, 그 인연은 따로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요 자기가 사는 생활권 내에서 전체가 하나의 인연으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그것이 실증적인 가치를 회복하고 그 시간권내에서 그 환경권내에서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즉 하나님과 일체적인 인연 가운데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생활을 하게 해 주는 신의 실체를 느낀다면 그 가치는 부분적인 가치가 아닙니다. 전체적인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환경을 회복하게 될 때, 개체와 전체의 가치는 자기를 중심삼고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선한 마음을 일으키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 죄악역사는 어차피 한번 변화를 겪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일단 변화된 후 선의 세계가 되면 그 이상 변하지 않는 이념의 문을 인간에게 소개해 주기 위해 하나님은 섭리해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이 일을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당신은 일체를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 그것도 독생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신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은 인류의 참부모가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53
본연의 인연을 회복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
신앙의 이념으로 살아온 유대민족의 정신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를 바랬습니다. 그런 소망을 결실시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강림하신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만왕의 왕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생활적인 입장에서는 어떤 말씀을 하셨느냐 하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부부의 일체이념을 생활권내에 세우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돌아가시면서도 당신과 성신을 통한 부모의 역사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한 인간의 대표자로, 혹은 하나님의 대신자로 오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명을 갖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시야는 어떠한 것이었나. 먼저 여러분은 예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입장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이 타락권내 즉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예수님의 시선과 타락한 인간들의 시선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 하나의 문제에 온 마음을 쏟았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나의 아버님만이 제일이라는 인연을 실현하시 위해 고심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인간을 대하여 내가 신랑이라는 명사를 세우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인류의 신랑의 자격을 갖추기 전에 하늘 앞에 신부의 입장을 완결하는 단계를 거치신 것입니다.

그런 입장을 지나 참부모의 이념을 갖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였으나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예수님을 모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모시고 있는 부모, 자기와 더불어 생활하는 부부, 자기가 활동하는 국가를 갖고 있었고, 자기들이 소망하는 세계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서는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자기들이 갖고 있는 소망을 알리고, 그 이념을 살리고, 그 전체적인 생활, 그 역사적인 생애노정을 살릴 수 있는 하나님적 가치를 지닌 이념의 중심존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했는데, 그들은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류의 모든 소망을 완결시키기 위해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생활을 하셨던가. 예수님은 땅 위의 요셉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요셉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의 아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라신 인연은 땅 위의 인간들의 소망과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변하는 환경에서 슬퍼하는 부모의 인연이나 부부의 인연,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는 환경적인 인연, 더 나아가서는 심판권내에 있는 세계적인 인연을 초월하여 예수님은 선의 중심인 변치 않는 천륜의 부모의 심정을 느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타락한 이후 4000년 역사가 경과하면서 찾아나온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었던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해 나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없던 이 땅에 비로소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분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리하여 변할 수 있는 부모의 혈통을 갖고 태어난 인간들이 변치 않는 영원한 부모의 인연을 찾아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의 중심이 뭐냐 하면 성경입니다. 성경의 중심이 무엇인가. 예수님입니다. 예수의 중심은 무엇인가. 사랑입니다. 사랑의 중심은 신랑 신부입니다. 그리고 신랑 신부의 중심은 무엇인가. 참부모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길을 찾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무리 지혜가 많고 자신을 세워서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다 하더라도 타락한 부모의 혈통을 받아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변하지 않는 참부모의 혈통을 받지 못한 죽은 인간인 것입니다. 죽은 인간은 변하지 않는 참부모와 인연을 맺어야만 천륜의 영원한 인연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되찾기 위해 영계가 동원되어 싸우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영원한 인연을 기독교 인들은 소망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천상에 부모의 인연이 결정되고, 천상에 부부의 인연이 결정되고, 천상에 국가적인 인연이 결정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위에 옮겨질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의 이념을 실현시키는 데에는 인간을 태어나게 하는 부모의 인연과 생활을 위한 부부의 인연과 활동을 위한 국가의 인연과 우주적인 인연이 맺어져야 합니다. 이런 우주적인 창조의 이념이 인간들의 생활환경에 찾아 세워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왔다 가신 이후 2000년 동안 하신 일이 무엇인가. 이것을 개척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개척의 선봉자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나선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14: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이 어떤 길이냐 하면, 부모의 인연, 부부의 인연, 국가의 인연을 연결짓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천륜의 심정을 통하신 분이요, 천국의 심정을 통하신 분이요, 섭리역사를 주관하시는 창조자의 심정을 통하신 선의 중심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라’고 하셨는데 이 길은 무슨 길을 가리키신 것인가? `사랑의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십자가의 진리’입니다. 그리고 생명은 전체적인 생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3-55
참아들딸을 찾으시려는 하나님의 노력
오늘 땅 위에 살고 있는 여러분은 생활하다가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서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생활권내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들은 소망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과는 통할래야 통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이 서러움입니다. 이것을 누가 해결해 주어야 하는데, 이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내적인 기준을 가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안타까움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은 인간끼리 서로 보고 듣고 자기의 심정을 나타낼 수 있으나 창조주 하나님의 심정은 6000년 싸움의 역사를 경과해 오셨지만, 어느 민족에게도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민족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해 하늘이 지금까지 수고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6000년을 경과해 왔지만 아직까지 하늘과 나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인연은 세워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준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를 보내셨고 예수님까지 보내시면서 섭리해 오셨음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참아들딸을 찾으려고 하셨던 하나님의 수고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상의 중심으로서 이상의 생활이념을 성취시켜야 할 입장에서 계시지만 타락권내에 있는 인간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선지 선열들을 보내시어 섭리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하늘의 어려움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전인류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하려고 오시는 하나님의 대신자를 구주로 모실 수 있는 그 하나의 기준이 이 땅 위에 세워지기를 하나님도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들이 본연의 인륜의 기준과 하늘이 요구하시는 천륜의 기준에 서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경배할 수 있는 그 한 날을 찾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마음속에 간직한 것, 예수님이 서러워하신 것은 무엇이었던고. 오늘날 이 땅 위의 인간들은 부모가 없어서, 혹은 부부나 나라가 없어서 서러워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서러워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서러움을 해원해 드리지 못하고, 또 참부모를 중심으로 참된 하늘나라를 세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수시로 변하는 입장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영원히 변치 않는 천륜의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 애쓰셨음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님이 제시하신 진리와 생명과 사랑의 길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사시면서 불변한 원칙의 중심을 세우는 사명을 띠고 오셨지만, 땅 위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을 잃으셨기 때문에 돌아가셔서 이 일을 성취시켜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영과 육이 합한 세계의 중심으로 오셨던 예수님이셨는데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영적으로 인간들을 대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서러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섭리의 완성이 아니므로 다시 이 땅에 강림하셔야 할 조건이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느낀 또 다른 서러움이 무엇이었던가. 만일 인간들이 타락하지만 않았다면 마음 몸으로 친히 선한 부모를 모시고 살수 있었을 텐데 타락함으로 인하여 400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참부모를 모시고 살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참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아버지의 입장에 서셨던 예수님이란 것을 당시의 인간들이 몰라보았던 것입니다.

오신 예수님을 몰라주는 것이 하나님의 서러움이요, 자녀의 입장인 인류와 부자의 인연을 갖지 못하는 것이 하늘의 애달픔이요 서러움인 것입니다.

3-57
성도의 할 일
오늘날 타락의 보응이 무엇인가. 영원한 창조주가 아버지이신데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이 타락의 보응이요 원한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잘 알고 계셨으므로 인간들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사랑의 손길로 인도해 주시고자 했지만 인간들이 그 심정을 몰라주었고, 사랑의 말씀을 했으나 인간들이 외면했으며,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렸으나 인간들이 예수님의 사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땅 위에 사는 여러분은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되고, 나라에 충성해야 하고, 즉 인륜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인간들이 걸어야 할 인륜과 천륜을 통합시키는 사명자로 오셨던 분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준 자가 누구였던가. 오늘날 예수님을 배반하는 사람이 많고 그의 심정을 망각하는데, 2000년 전의 사람들은 더욱 예수님을 몰라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진정한 크리스찬인가 하는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성취하고 회복시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드리는 것이요, 6000년 동안 서러워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여 하나님을 서러움에 사무치게 했던 2000년 전의 사람들을 대신하여 회개해야 되겠고, 또 현실적인 무지함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고 따른 자가 누구였던가. 예수님의 열두 사도? 아닙니다. 그 열두 사도 가운데 세 제자도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따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소개했고, 그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셨던 예수님이었지만 인간들과 사랑의 인연을 맺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천륜의사랑의 말씀을 전하였고 사랑에 불타는 마음을 가지신 예수님이었지만, 붙잡고 `내 아들아! 내 아버지!’ 하며 부자의 정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가셨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자들은 졸고 있었지만 겟세마네동산에서 밤을 새워가며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그 심정과 사정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말씀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2000년 전에 예수님은 사랑할래야 사랑할 데가 없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심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예수님과 부자의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통해 부부의 인연을 맺을 수 없고, 충신, 열녀의 입장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끝날에 처한 기독교인들이 찾아나가야 할 것, 이제 싸워 이겨 성취해야 할 하나의 중심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붙들고 6000년의 역사적인 서러움에 사무친 심정을 위로하고 해원해 드리는 것입니다. 서러운 아버지의 가슴을 붙들고 아버지를 부르게 될 때에 그 한마디의 말로써 갈라졌던 천지가 다시 인연 맺어질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존재가 되지 않는다 할진대는 하나님의 서러움은 여러분으로부터 떠나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조건에서 여러분은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이 일을 성취시켜 드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여러분이 예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본심대로, 가르쳐주신 대로,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대로 걸어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59
예수님의 소원과 우리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을 지니고 사는 사람으로서 부모에 대한 효도의 정을 나타낼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고, 부부의 인연도 갖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원한이 해원되지 않은 것을 아셨기에 안락한 환경도 다 버렸습니다. 세상의 사사로운 모든 관계를 다 끊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도의 세계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가지는 피지 못할 사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 저것을 가려서 갈 수 없는 천륜적인 조건이 있었던 연고로 예수님은 가정에서 배척을 받아도 묵묵했고, 사회에서 배척을 받아도 묵묵했으며, 사탄의 참소를 받아도 말을 하시지 못했습니다. 6000년 동안 이 땅 위의 인간을 대하여 바라왔던 하나의 신부를 찾으시지 못했고, 하나의 아들딸을 찾지 못했던 예수님이 누구를 대하여 원망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들이 예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중심존재로서 예수님의 전체의 이념, 즉 생활적인 이념, 부부의 이념, 부모의 이념을 인계받을 수 있는 참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사랑의 이념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사람을 소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들이 나타나면 하나님의 사정을 내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까지 하나님의 섭리는 전부 가려놓고, 말할래야 말할 수 없는 입장에서 되어진 것입니다. 또, 예수님도 가르쳐줄래야 가르쳐줄 수 없는 입장에 서셨던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본연의 이상을 대신하여 땅 위에 선의 이념을 이루어나가는 참사람이 나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는 상징적인 섭리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상징적인 섭리를 형상적으로 풀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창세 이후 지금까지 땅 위에는 하나님이 마음을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 예수님이 오셨다 가신 이후 지금까지 자기의 모든 이념을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안 나왔던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의 전체적인 이념을 이룰 수 있는 실체적인 환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역사를 대신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의 상대자가 되어야 하는가. 만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상대자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선까지 통하기 전에는 여러분이 영원한 인연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랑을 통한 부모의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고, 부부의 인연, 또 국가적인 인연도 맺을래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여러분이 본연의 길을 찾아 나가고자 할 때 이 땅의 모든 조건이 여러분을 걸고 늘어질 때가 옵니다. 끝날이 되면 될수록 여러분이 좋다고 하는 것만으로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어차피 바꿔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심판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영원한 부모의 인연, 부부의 인연, 실천적인 국가의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끝날 하늘의 이념을 찾아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부모가 그를 반대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이념을 찾아 나서게 되면 여러분의 부모가 끊는 놀음이 벌어집니다. 부부가 끊는 놀음이 벌어지고, 국가와 세계가 끊는 놀음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이 걸은 노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모로부터, 형제로부터, 혹은 교회와 국가·세계로부터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목자의 심정으로 천륜의 변치 않는 법도와 이념을 붙들고 돌아가셨기에 그 이념은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중심삼은 승리의 환경이 조성되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몰아내었던 인류였기 때문에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 예수님을 찾아가는 인간들은 부모가 반대하는 환경을 거쳐가야 하고, 부부가 반대하는 환경을 거쳐가야 하며, 국가가 반대하는 환경을 거쳐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각오를 가진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변치 않는 천륜의 부모와의 인연과 본연의 부부의 인연을 통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신부의 인연에 의해 일체적인 생활이념을 세우고, 하나님을 모셔 놓고 땅을 대해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할 수 있는 충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연후에야 예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비로소 인간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3-61
좋아하는 것에 의해 심판받는 끝날
복귀의 과정에서 있게 되는 고비를 넘기 위해 과거에는 천사들을 통해서 섭리했고, 그후에는 독생자를 통해 섭리했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아버지를 통하여서 주관받는 때가 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만으로서는 안됩니다. 또 성신의 사랑만으로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과 성신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인연맺을 수 있는 기준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땅 위의 어떤 사랑의 조건에 얽매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또, 땅 위의 어떠한 영광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도 안 됩니다. 소망의 한날이 다가오는 이때 우리는 아버지가 심판하시는 공포의 한날이 찾아온다는 것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어차피 인간이 가야 할 본연의 그 길을 가기 위해 나선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가야 됩니다. 먼저는 물질을 버려야 되고, 다음에는 부모와 자녀 즉, 가정을 잃어버려야 하며, 그리고 국가와 세계까지 잃어버리는 길을 가야 합니다.

왜냐 하면 십자가의 승리의 고개를 넘으실 때 부모도 잃어버리고, 친척도 잃어버리고, 교회도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우주 주관의 이념도 잃어버렸으나 오직 하나의 중심은 변치 않으셨던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중심은 뭐냐 하면, 영원히 변치 않는 부모와 부부와 가정과 나라와 세계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변치 않는 영원한 인연을 위해 일시적인 땅 위의 가치와 인연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끝날에는 자기가 좋다하는 그것에 의해 심판받을 때가 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학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잘못하면 학위가 여러분의 목을 달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혹 권세를 원하십니까? 그 권세가 여러분의 목을 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받은 사람들은 그 은혜에 의해 넘어질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왈 대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좋다고 하던 조건, 자기가 생명시하던 그 하나의 조건이 여러분을 심판대에 넘겨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려운 자리, 힘든 자리에서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짐으로써 부활받아 제2의 자신을 탄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들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8:34)”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치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때는 끝날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자기 집안식구가 원수입니다. 나아가 자기의 육신·국가·사회 등 복귀되지 않은 모든 것은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런 딱한 사정을 놓고 `아버지시여, 이런 사정을 누가 알겠나이까?’라고 호소할 수 있는 마음, 천륜의 심정을 가진 사람은 참생명을 얻을 것이요, 승리의 부활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동산에서의 최후 담판기도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2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런 믿음의 부활의 조건이 되었던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 천륜을 대신하여 싸워오셨던 예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에 맺힌 그 인연이 여러분을 통해 귀결될 수 있고, 그 슬픔을 풀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이 자랑할 수 있는 개인이 된 후에, 하늘이 자랑할 수 있는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고, 효자가 되고, 국가·세계를 이루게 될 때, 그때는 종교가 필요없게 됩니다. 신앙이라는 명사가 필요없고 구주라는 명사가 필요없게 됩니다. 둘이 아닌 하나의 일체적인 인연권내에서 하나님은 비로소 인간을 대하여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환경에 들어서기 위해서 여러분은 예수님의 뒤를 그냥 그대로 따라 가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생활이념을 그대로 계승해야 되고, 불변의 부활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 기준은 인간 중심이 아닙니다. 천륜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그래서 천륜적인 부모의 자리, 천륜적인 부부의 자리, 천륜적인 효자의 자리를 거쳐, 천륜적인 효자의 법도를 여러분이 세우고, 열녀의 법도를 세우고, 충신의 법도를 세워야 합니다.

3-63
사탄을 분별하는 생활
역사이래 이런 효자, 충신, 열녀가 얼마나 있었던가.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어야만 사탄세계에 매여있는 모든 조건을 풀고 본연의 동산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된 연후 이 땅의 모든 인류와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되기 위해서 하나의 천정을 대한 일체적인 이념을 찾아서 실체적으로 실천한 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모든 인류가 하나되게 하는 사명을 갖고 오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이제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늘 앞에 사랑받는 효자·효녀가 되어 부모님을 모셔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형제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가정, 국가, 세계가 하나될 수 있게 만들어 사탄을 분별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명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이제부터 싸워야 하겠습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부활의 영광권내에 들어가더라도 여러분의 뒤를 따라 다닌다는 것입니다. 이 따르는 사탄을 여러분은 쫓아버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땅 위에서 주인공을 찾아야 되고, 부모를 찾아야 되고, 부부를 찾아야 되고, 자녀를 찾아야 되며, 하늘의 이념을 실천할 수 있는 하늘나라를 세우고 하늘의 세계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사탄이 여러분의 뒤를 언제나 따라다닐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신앙상태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불변의 이념권내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책임감을 가지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어느정도 진리의 기준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고 진리의 해방권내에 있고, 진리를 따랐다고 해서 자기가 진리의 실체가 되었느냐? 전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 지금까지 2000년 동안 영계에서 하늘뜻을 위해 싸워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하늘을 위해 싸울 수 있는 환경을 가져야 되고, 2000년 역사가 서러운 역사였던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러움을 이기며 나가는 새로운 진리와 일치된 신앙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인연맺어진 것과 아버지의 변치 않는 심정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고, 보이지 않는 사탄을 대비하여 나설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6000년의 인류역사는 하나님의 슬퍼하신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죽더라도 변치 않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각오가 없다면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곧 그만두게 됩니다. 2000년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면 좋을 줄만 알았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것을 보고 다 도망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념을 가지고 변치 않는 마음으로 생사의 경지를 왕래했고, 사탄 앞에서도 변치않는 마음을 중심을 갖고 있었던 예수님과 같이 책임감을 가지고, 잃었던 사랑과 생명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과 하나되어 사탄 앞에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는 인간이 모두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슬픔과 괴로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낙망하지 않으면서 참된 인연을 회복시키기 위해 원죄와 사탄의 역사를 일소시키고 변하는 환경을 변치 않는 환경으로 개척하면서 모두가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된 가운데 사탄과 대결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늘의 새로운 이념을 확산시킬 수 있는 하늘의 식구가 되었습니까. 한 가정의 식구라면 부모를 모셔야 하고 부모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부모를 받든 후에야 형제들이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이 즐길 수 있는 환경도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일신의 기쁨이 부모와 이웃의 기쁨이요, 국가·세계·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를 부모 형제와 같이 대하면서 살게 되어야 하늘 뜻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제시해 주신 생명과 진리와 사랑의 길을 다같이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변치 않는 마음을 갖고 사셨듯이 변치 않는 마음을 갖고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승리하고 아버지 앞에 나가야 합니다. 나아가 아버지가 여러분을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게 되어야만 본연의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에 대해 본연의 부자의 인연을 느낄 수 있고, 인간끼리 또 만물에 대한 본연의 인연과 사랑을 체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65
기 도
가정에서나 국가에서나 그 이념적인 노정에서나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인연을 찾기 위해 허덕이고 있는 자신들임을 이 시간 이 자리에 모인 아들딸들로 하여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몸의 인연을 탕감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고, 마음의 인연을 탕감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또 이제까지 자신들은 땅 위의 인연에 의해 몸과 마음이 움직여 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아버지시여, 이제 저희 자신들이 재창조의 원천으로 폭발되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늘의 힘과 사랑과 생명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리하여 모든 원수들의 참소와 사망의 조건을 타개해버리고 아버지의 사랑과 하나됨으로써, 영원한 진리의 실체가 되고, 만우주 앞에 자랑하는 자리에 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아들딸들, 부디 변치 않는 마음으로 영원한 영광 가운데서 아버지와 동거할 수 있는 아들딸·효자·효녀·열녀·충신들이 될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