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0 to 3-195: 예수의 섭리적 생애와 그의 승리적 목적

예수의 섭리적 생애와 그의 승리적 목적
1957.10.27 (일), 한국 전본부교회

3-180
예수의 섭리적 생애와 그의 승리적 목적
마태복음 12:18-37

[기 도]

죽어서라도 당신의 유업을 계승하지 않으면 안 될 싸움의 역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저희들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머물러 있는 저희 자체를 아버지 앞에 내놓고, 과연 싸울 수 있는 하늘의 정병, 싸워 승리할 수 있는 하늘의 정병이 되어 있는가 저희들 스스로 반문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우리들이 싸워야 할 원수는 땅 위의 어느 한 사람이 아니고, 6000년이라는 기나긴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하나님에 대해 반기를 들었고 하나님께 참소했던,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이 어마어마한 원수를 아버지 앞에 굴복시켜야 할 책임과 사명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지금까지 너무나 안일한 생활을 원했었고, 너무나 은사에 잠겨 아버님의 사랑만 받고자 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버님,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원수들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모진 풍파와 싸움과 십자가의 역경에서도 그 정신과 마음이 변해서는 안 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이제까지 저희들 망각하고 있었사오나, 이제부터는 변치 않는 마음을 붙들고 억만 사탄들 대해 홀로 싸워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뜻을 받들고 나가는 가운데 싸움에 지친 아들딸이 있사옵니까? 아버지시여!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저하는 자가 있사옵니까? 아버님의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승리의 목적을 향하여 달음질칠 수 있으며, 싸움의 목표를 향해 바로 달려갈 수 있고 돌진할 수 있는 사랑하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최후의 접전을 거쳐 승리로 골고다의 고개를 넘어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사오니, 아버님의 힘과 마음과 각오와 결심을 갖고 이 모든 싸움터를 향해 달음질칠 수 있으며, 한이 맺혀 승리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여진 아들딸들은 소수의 무리이오나 이들이 머무는 그 자리에서 만족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주신 바의 은사 앞에 감사할 줄 알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오늘에 주신 바의 은사가 나 한 자체를 위한 은사가 아니고 온 인류를 위하여 땅 위에 혹은 천상에 있는 모든 천천만 성도들을 대표하여 수천만 사탄들을 굴복시키는 책임과 사명을 맡기기 위하여 대표적으로 주신 은사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마음이 머무는 데가 어디인가를 아버지 앞에 내놓게 해 주시고, 아버지의 뜻을 하나의 목적체로 나타내고, 사탄과 대결하여 승리의 표준을 나타내야 할 사명을 가진 아들딸이, 아버님이여 연약한 자리에 있사옵니까? 힘을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기도하며 하늘의 서러움을 자아내는 자 있사옵니까? 아버님이여! 기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찾고자 애쓰는 자 있사옵니까? 선과 공의의 역사로 나타나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뜻과, 아버지의 은사와 아버지의 섭리를 홀로 책임지고 싸우고도 지침이 없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을 거룩한 날이었사오니 삼천만 민중을 대신하여 모이는 수많은 교단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또, 숨은 제단을 쌓고 아버지의 일이 성사되는 시기를 가르쳐주며 남 모르게 애달픈 눈물을 흘리는 아들딸이 많을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일률적인 은사를 나타내시옵소서.

끝날에 성신의 은혜를 물붓듯 부어주마고 약속하셨사오니 어서 나타내시옵소서. 생명의 봉화를 들어 아버지의 대신자로서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자신이 되어 하나의 복귀의 동산을 이루는 데 협조할 수 있게끔, 아버지,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부름받은 아들딸들이 먼저 아버지의 뜻 앞에 감사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시고, 책임을 다함으로써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리겠다는 결의를 하는 이 한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존전에 모든 것을 간구할 때, 아버지의 은사로 인해 다시 탕감받고 아버지가 뜻하시는 전체의 뜻 앞에 하나의 표준과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여 나갈 수 있는 은사의 역사가 이 시간 온 청중에게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이 나아가야 할 싸움의 노정에 장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홀로 이것을 책임지고 아버지의 뜻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아버님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무한한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이것을 극복해 나가시던 승리의 모습을 본받아, 저희들도 최후의 생명을 다 바쳐서라도 승리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의 표준을 세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 모였사오니, 마음과 마음이 화동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은사 앞에 저희들 하나되어 움직여 나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늘에 있는 천천만 천사들의 옹위를 받아 사탄이 틈타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시간을 온전히 아버님께 맡기었사오니 성삼위신이 주관하여 주시옵고, 승리적인 영광을 저희들 앞에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182
말 씀
타락한 이후 오늘까지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없었던들 죄에 속해 있는 인간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을 대하여 감히 `아버지’라 부를 수가 없고, 또 사망의 혈통을 받은 모습으로서 역시 아버지를 대하여 하늘의 은사니 사랑의 은사니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오늘 우리가 생명권에 머물게 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쉬지 않으시고 복귀역사를 거듭해 나오신 은사라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183
예수를 통하여 인간을 품으려 하신 하나님
예수님의 섭리적 생애라 하면 여기에는 전체성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시기까지 하나님의 섭리는 4000년 역사를 경과했고, 예수님이 이땅에 오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새로운 섭리를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지상의 인간들과 자유롭게 대할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천사들을 심부름시켜 섭리해 나오던 구약시대를 지나 땅 위에 직접적으로 역사할 수 있는 실체를 가진 그리스도를 세워 놓으심으로써, 타락한 인간들을 다시 품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출발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 그리스도의 탄생이란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가 왔다 가신 후 지금까지 2000년 역사가 흘러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여러분들은 아버지의 은사권내에 들어옴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실 수 있고 성신의 보호를 입어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이러한 시간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오시기 전 4000년 동안 인간을 직접 대하실 수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천사를 심부름시켜 인간을 찾아오신 아버지의 수고의 섭리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또, 영계와 육계를 갈라놓으시고 섭리하시던 아버지께서 인간 앞에 직접적이고 평면적인 섭리를 세우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간지 2000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 여러분 자체들이 그 은사 앞에 택함을 받으려면, 예수 오기 전 4000년 동안 영적인 면에서 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자신의 생활과 생애와 영생의 목표를 걸어놓고, 여러분 하나를 그의 생활에 동반시켰고, 그의 생애에 동반시켰고, 그의 영생에 동반시켜 이끌어 나가려고 하시는 섭리의 뜻을 대하고 있는 역사적인 과정에 서 있음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뜻을 30여 평생의 생활목적으로 또 전체적인 생애의 목적으로 세워서 이것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2000년 역사를 거쳐 여러분의 선조들을 이끌어 나왔습니다. 또 앞으로도 여러분의 후손을 이끌고 나가야 할 섭리적인 책임이 예수님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 있는 예수님이 섭리의 뜻을 대할 때에, 예수 자신만이 기뻐하는 생활, 예수 자신만이 기뻐할 수 있는 생애, 예수 자신만이 영생을 걸어 놓고 안일의 한날을 맞으실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잘 알고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하늘의 인연을 찾아드리지 못하고 하늘이 요구하는 소망의 한날을 찾지 못한 이 때에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어떠한 입장에 있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아무리 안일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아무리 평화를 찾고자 하고, 아무리 이상적이고 이념적인 세상을 꿈꾸더라도 여러분은 그것을 보장받을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서러움의 섭리로 남아 있고, 이땅의 타락 인간을 위하여 구원섭리를 성취하러 오셨던 만물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서러움의 심정을 품고 섭리의 뜻을 대하고 있는 연고로, 지상의 어떠한 사람도 그 마음의 안일을 찾을 수 없고, 나는 승리의 영광을 갖춘 자라고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의 운명을 짊어지고 사람을 끌고 나가야 하는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이 남아있는 한, 또 여러분을 끌고 나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애달픈 심정이 남아 있는 한, 그리고 천천만 성도들이 섭리를 대하는 서러움이 남아 있는 한, 오늘날 인류가 소망하는 선의 동산이나 인류가 흠모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취할래야 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를 대하는 하늘이 인간을 붙들고 나가는 것도 수월한 일이 아닌데, 거기에 어떤 있느냐 하면 서러운 심정의 아버지 앞에 인간을 조건으로 하여 사탄이 가로막고 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생활과 생애노정 가운데 혹은 여러분이 바라는 이상 가운데 천리원칙, 또는 하나님의 창조이념에 부합되지 않은 요소가 있을 때에는, 어떠한 하나의 조건도 빼놓지 않고 사탄으로부터 무자비한 참소를 받으면서 여러분 대신 서러워하고 여러분 대신 맞으면서 싸워나오시는 아버지와 주님과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역사에는 하나님의 서러움이 남아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이 남아 있고 지금까지 섭리를 대해온 천천만 성도들이 서러움이 남아 있는데, 그보다 더 큰 하나님의 서러움이 무엇이뇨. 우리를 방위하면서 다시 사탄과 대결해야만 하는 서러움입니다. 이런 입장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을 알아야겠습니다.

3-185
하나님과 인간의 거리를 좁히시려던 예수 그리스도
이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생애를 두고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태어나기 전까지는 인간과 하나님과는 먼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들이 있는 정성을 다하고 있는 노력을 다하여 사탄 세상의 모든 조건을 밟고, 즉 공중권세를 잡은 어두운 사탄의 세력을 뚫고 하나님에까지 찾아 올라오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야만 인간들은 하나님의 은사를 대할 수 있었던 것이 구약시대의 섭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과 수고만 가지고는 도저히 당신을 찾아올수 없다는 것을 아신 하나님은 이땅에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입체적인 입장에서 공중권세를 뚫고 올라가야만 할 입장에 있었던 인간,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며 서러운 눈물을 흘려야만 했었던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평면적인 입장에서 상대적인 가치를 갖고 하나님을 대신하는 한 중심을 대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4000년 섭리역사에 있어서 사탄 대한 일대 승리의 조건이요 자랑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불신함으로써 예수님이 땅 위에 오신 목적을 다 성취하지 못한 연고로 아직까지 우리는 하늘을 향해 기도해야 하고 정성을 다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의 시선을 평면으로 보고 움직일 수 있게 창조되었거늘 어찌하여 마음은 하늘을 향해야 될 입장에 처하였던고. 여러분들이 평면권내에서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성취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예수와 성신이 기뻐할 수 있고, 땅 위에 있는 만민이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한때가 이루어져야만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나 인간의 불신으로 인해 돌아가셨으므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맞아들여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그 섭리적인 생애의 첫출발로서 하늘이 섭리의 뜻을 따라 생활의 일보를 내딛게 되었습니다. 이 생활의 중심은 무엇이었던가. 먼저는 사람들을 끌고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동시에 인간을 참소하는 사탄과 대결하여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양면적인 입장에서 예수는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계에서는 사탄으로부터 참소받고 보이는 육계에서는 모든 불신의 도배들로부터 반대받는 입장에서 예수님 홀로 4000년 동안 섭리하신 하나님의 서러움을 대신하여 서러워하고, 천륜의 슬픔을 대신하여 슬퍼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그분의 시선은 이스라엘민족을 향하였던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에 따라 택함받은 유대교를 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명 완수를 위해 협조해야 할 이스라엘민족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할 유대교단은 예수 앞에 일체 나타나지 않고 전부가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것이 필연적인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님의 진정한 심정을 헤아려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는 영적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사탄의 세력을 막고,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육적으로 날아오는 모든 불신의 화살을 막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싸움만을 할 수가 없습니다. 더 크고 더 먼 하나님의 뜻과 그 소망을 바라보고 거기에 자신의 몸 마음을 맞추어야 할 입장에 있었던 그리스도의 생애의 출발을 여러분이 같은 입장에서 동정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출발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고 어떻게 해야 사탄을 굴복시키며, 어떻게 해야 타락성을 갖고 있는 만민을 다시 복귀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는데, 예수님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3-187
예수께서 순종의 도리를 가르치신 목적
이 땅 위에서 권세를 잡고 있던 사탄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들이 누려왔고, 하나님이 주관해야 할 인간들을 자기들이 주관해 왔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은 사탄의 압박 밑에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먼저 반대하는 사람보다도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반대케 하는 영적인 사탄과 대결해야 했습니다. 이런 싸움에서부터 기독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사탄의 본질과 대결하기 위하여 나타난 예수님은 그의 생활권내에 있어서 먼저 무엇을 표시하고 나타났던가. 사탄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그의 생활권내에서 실천적인 행동을 제시한 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복음인 것입니다.

말씀도 그렇거니와 그의 마음도 그렇고 그의 생활도 그렇고 그의 생애도 그렇고 그의 죽음까지도 사탄이 하지 못하는 조건을 찾아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노정을 여러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천리 법도가 엄연히 있는 연고로, 다시 말하면 법도를 중심삼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이 천리 법도에 의해 사탄을 분립하셨던 것입니다.

사탄의 본질은 교만과 혈기입니다. 이런 성질로 세상 사람을 대하는 사탄이었으나 예수님은 온유와 겸손으로 세상 사람들 앞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못나서 온유겸손한 입장에 서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누구보다도 최고로 높을 수 있고 영광을 누릴 수 있었으나, 예수님은 이것을 다 버리고 온유겸손한 입장에 서신 것입니다. 사탄이 이런 예수 그리스도와 대결하여 싸우려 했으나 사탄에게는 하나님 앞에 굴복해야 할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끝까지 온유겸손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본질이 교만과 혈기에 반대되는 온유겸손을 갖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또 엄연히 천리법도가 있는 것을 아는 사탄이기 때문에 끝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온유와 겸손을 들고 나서게 되면 사탄세계도 자연굴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을 아시는 예수님은 사탄이 하지 못한, 사탄이 할 수 없는 온유 겸손의 입장을 취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온유겸손한 입장에 서야 중심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께로 가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무엇을 보여주셨는가 하면, 순종(順從)과 복종(服從) 입니다. 순종은 응할 수 있는 환경에서 명령에 따르는 것이고, 복종은 응할 수 없는 환경에서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신하는 인간들에게 이런 순종과 복종의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 역시 사탄의 본질, 사탄의 모든 생활적인 요소를 가로막기 위한 것입니다.

사탄은 자기를 중심삼고 남이야 어떻게 되는 상관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또 하나의 사탄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뒤를 좇으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인간들이 자기를 믿고 자기에게 순종하여 하늘을 따르도록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뜻을 모르고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하나님 뜻 앞에 불의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도 예수님은 순종의 길을 개척해 나갔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기실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땅에 오신 예수님은 만민과 만물·사탄까지도 주관하고 그들의 희생과 봉사를 받아야 할 입장이었으나 그 반대의 입장에 서셨던 것입니다. 사탄이 당신 앞에 순종하고, 봉사하고, 희생하도록 만들기 위해, 즉 이런 사탄의 모든 세력을 굴복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무한한 희생과 봉사의 제물을 드리는 노정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세계는 사람을 대하든지 혹은 피조물을 대하든지 무한히 이용하고 착취하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그 반대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탄이 하지 못하는 생활을 예수님이 대표적으로 하셨기 때문에, 즉 온유겸손하고 순종하고 복종하며, 희생과 봉사의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사탄도 그러한 면에서는 굴복해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예수님이 가르치신 온유와 겸손, 순종과 복종, 희생과 봉사에 비추어 보고 그의 가르침을 자신의 생활권내에서 실천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아직까지 사탄의 종족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3-189
사탄과 동반하여 갈 수 없는 하늘 길
지금까지 여러분의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자기를 중심삼은 혈기와 교만으로 사는 사람이 아직도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루빨리 그런 입장에서 벗어나야 하겠고, 예수 그리스도가 세워놓은 기준,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한 최후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준인 온유와 겸손, 순종과 복종, 희생과 봉사의 자체로 혈기에 의해 하늘을 핍박하는 자들을 향해 싸워나가겠다는 내적 각오를 다져야 하겠습니다.

뜻에 대립하여 뜻을 반역하는 입장에 선 것이 사탄이요, 이런 것이 사탄의 생활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뜻에 반발하려고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이 아니라 사탄의 세력이 환경에 꽉 차 있고, 그 환경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사탄의 세력이 자기를 중심삼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한과 슬픔이 사탄세계에 맺혀져 있으나 희생과 봉사를 각오하고서 이 길을 해결하려고 나섰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끝날에는 두 갈래의 길이 남아 있으니, 사탄이 가는 길과 하늘이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가는 길과 하늘이 가는 길은 다릅니다. 하늘이 가는 길은 사탄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즉, 사탄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을 대하여 순종복종하고, 뜻을 온유겸손하게 실천하고, 섭리의 뜻 앞에서 전인류를 대신하여 희생봉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함에 있어서 왕중의 왕이요, 온유겸손함에 있어서 왕중의 왕이요, 순종과 복종함에 있어서 왕중의 왕이며, 희생봉사하는데 있어서 왕중의 왕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땅 위의 수많은 사람들은 온유할 줄 모르고, 순종할 줄 모르며, 희생봉사하는 제물의 길을 걸을 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4000년 역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고, 수많은 성현들이 왔다 갔지만 그들이 하지 못하던 것, 즉 하늘 앞에 최고의 온유의 기준, 최고의 순종의 기준, 최고의 제물의 기준을 세워놓았던 연고로 사탄세계의 모든 것을 밟고 올라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같이 사탄을 굴복시키는 피나는 노정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온유겸손하고 순종굴복하고 희생봉사하는 생활을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이땅을 대하여 오랜 역사를 거쳐오시며 수고하셨던 그 마음과 동일한 심정을 지니고 그러한 생활을 해나왔기 때문에 사탄이 근본적으로 굴복해야 했고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하는 역사적인 출발점이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심정을 알면서도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려 하는 길을 가로막고 도리어 자기에게로 이끌어가는 존재입니다.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고, 스스로 대항하려고 하며, 스스로 인간들을 이용하려 합니다. 이런 사탄이지만 하나님과 예수님께 나아가면 감히 머리를 들래야 들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조건이 예수님의 생활권내에서 세워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면 우리에게서 사탄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이런 역사적인 출발을 이룩한 생애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예수님이 어떻게 세우셨는가.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과 나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기준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영생하면 나도 영생하고 하나님이 불변하시면 나도 불변하고 하나님이 무한 자비하시면 나도 무한 자비하겠다는 마음을 지니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잘 느끼고 하나될 수 있었기에 사탄 대한 싸움의 노정에서 승리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왔다 간 이후 오늘까지 이 사탄세계에는 하나님과 예수와의 내적 심정이 연결되는 그 말씀, 또 하나님과 사탄과의 사이에 어떠한 곡절 어떤 사무친 내용이 있는가 하는 것을 안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3-191
온유와 겸손, 순종과 복종, 희생과 봉사
2000년 전에 예수가 이땅에 와서 사탄을 굴복시키는 방법으로서 `온유겸손하라’, `순종굴복하라’, `희생봉사하라’고 인간들에게 가르쳐 주셨으나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온유겸손하면서 감사할 수 있고, 순종굴복하면서 감사할 수 있고, 희생봉사하면서 감사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갖지 못하고 있는 연고로 자기도 모르게 순종의 마음이 변하여 혈기와 교만, 대립과 반박을 하게 되고, 봉사와 희생이 변하여 이용과 착취를 일삼게 됩니다.

예수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있었고, 하나님과 사탄과의 끊어버리지 않으면 안 될 곡절과, 사탄을 어떻게 하면 갈라 세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아신 연고로 예수는 그런 길을 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인간들은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은 길을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르짖어야 하고 예수님을 향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심정을 알고 사탄의 음모까지도 알아서 역사적인 사탄의 범죄를 폭로시키고, 현실적으로 사탄의 무리들을 굴복시키며, 하나님의 섭리의 비밀을 밝혀서 이를 청산지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심정을 체휼 할 수 없습니다. 또 순종과 굴복·희생과 봉사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 예수님 앞으로 가까이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현재의 우리로서는 그러한 생활을 완전히 하여 하나님을 찾아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오!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임하시옵소서’, `하나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옵소서’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때가 언제 올 것인고’, `예수와 성신이 어느때에 이땅 만민에게 나타나실 것인가’ 하고 그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슬픔의 상황으로 남아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사탄 사이의 곡절을 모르는 불신의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싶어도 말씀하시지 못했던 예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순종의 제물이 되고, 역사의 제물이 되고, 희생과 봉사의 제물이 되어, 사탄 대해 `너는 왜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따르지 않느냐?’고 호통치면서 영과 육을 합한 실체로서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천적인 비밀을 찾아내지 않으면 예수가 영적으로 승리한 사탄을 실체적으로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직도 너희들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16: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못하거든 하물며 하늘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3:12)”고 하시며 다 말씀하시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여러분들이 풀어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역사적인 심판의 한날이 우리들의 목전에 다다르고 있는 이 때에 있어서, 여러분이 슬픔을 가진다고 할진대는 어떠한 슬픔을 가져야 하느냐.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슬퍼하였던 이상의 슬픔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동산에 올라가 호소하신 순간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슬픈 순간이었습니다. 자기 일신이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하늘 땅이 좌우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탄 세력을 청산할 것을 바라시는 심정으로 일신에 충격을 받으면서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고 울부짖던 예수님의 심정을 여러분이 통감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심정까지 체휼하여 사탄을 그 마음 앞에 나오게 하고,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 위에 재림주가 오시더라도 그분은 또 슬픔의 주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이제 죽음을 각오하고 뜻이라 할진대는 온유 겸손의 선봉자로 서야 하겠고, 뜻이라 할진대는 순종굴복하여 이땅의 어떠한 인간이 반대할지라도 예수님이 홀로 가신 것과 같이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순종과 복종의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이런 각오를 갖고 온 세계가 반대할지라도 아버지 뜻이라 할진대는 봉사와 희생의 제물이 되어 뜻 앞에 바쳐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온유 겸손, 희생 봉사, 순종 굴복의 정도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하나님의 위신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위신이 있는 이상 여러분이 하나님과 예수의 위신을 세워드려야 할 입장에 있으니 삼천만을 대신하여 온유겸손하고, 사탄의 혈기와 교만과 대결할 수 있어야 하며 삼천만을 대신하여 순종하고 복종하여 사탄의 대립 항거와 대결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용하고 착취하려는 사탄 대하여 희생과 봉사의 심정를 가지고 나서야 하겠고,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사탄 대한 울분의 심정을 갖고 사탄 대해 대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성도들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는 오시는 주님을 땅에서 맞을 수 없고 또 주님이 오신다 하더라도 그분과 하등의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크리스챤들이 가져야 할 생활적인 이념이 무엇이겠느냐. 내가 먼저 순종굴복하고, 내가 먼저 온유겸손하고, 내가 먼저 희생하고 봉사하겠다는 정신일 것입니다. 이런 길을 통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고, 아버지의 심정과 예수님의 심정이 해원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를 악물고 교회와 민족을 대신하여 희생봉사하고 하늘 뜻을 위해 순종굴복할 수 있는 성도가 삼천만 민족 가운데 많이 나타나기를 하늘은 고대하고 계십니다.

3-193
영광의 주와 동참할 수 있는 자
예수님이 이렇게 싸워서 승리하시고 사탄을 분별시키기 것처럼 오늘 우리도 사탄과 싸워 승리하여 아버지 품에 안길 수 있는 자녀들이 되어야만 예수님이 이땅에 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끝날이 오늘, 이땅에는 예수님이 내적으로 사탄과 대결하여 싸우시던 생활적인 이념을 계승한 온유겸손한 사람, 손종굴복하는 사람, 희생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어, 전체적인 사명은 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탕감복귀섭리를 위해 세계 만민을 대신하여 각각 그 사명을 분담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한 분야를 혼자서 책임지지 못하면 여럿이 단결해서라도 그 책임을 완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섭리적인 운명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4000년 역사를 대신하여 제물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세우신 것과 같이 이 시대에 있어서 우리는 예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순종 굴복의 친구가 되고, 온유 겸손의 친구가 되고, 희생 봉사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한사람이 나오기를 하늘은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남이 무어라고 하든, 어떤 사탄의 비난이나 방해, 고난이 있더라도 그것들을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겟세마네동산을 거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산정까지 나가시던 서러운 심정이 따르겠지만, 그런 자리에서도 예수님이 온유겸손하고 기꺼이 희생의 제물이 되신 것 같이 여러분은 온유겸손하고 순종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위신을 세워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입장을 자랑하거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항상 하나님의 입장을 내세우신 것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천리 법도를 지켜 자신을 자랑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온유겸손하고 순종하고 복종하고 희생하고 봉사한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그런 분이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고 이 타락세계를 구하려면 빨리빨리 순종굴복하고 빨리빨리 온유겸손하라는 것입니다. 어서어서 희생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무리가 세계적으로 늘어나면 사탄이 주관하고 원수들이 다스리던 이땅이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온유겸손하고, 희생봉사하며, 남에게 무엇을 주더라도 무한히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늘에 사무친 원한의 심정을 지니고 사탄과 싸우시던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올 때, 심판의 권세를 가지고 영광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실 때는 동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195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해 드리는 말씀의 주인공
예수는 이땅에 오셔서 애달프고 원통한 생활을 하셨으면서도 그 생애를 걸어놓고 바라시던 소망이 종결되는 한날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심정을 내어 줄 수 있고, 자기의 모든 복을 위탁할 수 있으며, 자기의 모든 뜻을 맡길 수 있는 한날을 바라셔서 오늘날까지 2000년 역사를 수고해 나오고 계심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땅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갖고 싶은 가정을 가져보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고 싶었던 그 말씀이 무엇이었던고. 그것은 하나님의 오묘(비밀)요, 사탄의 오묘(비밀)요, 인간의 오묘(비밀)를 밝히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은 혼자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원칙, 자율적인 운행법도를 통해 주관하시듯이 말씀을 하는 데에도 자연스런 환경이 먼저 조성되어야 합니다. 이런 자연스런 환경이 이루어진 한날을 예수님은 갖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들에게 자유스런 환경에서 마음놓고 말씀하실 수 있는 한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이 동하고 예수님이 동하고, 내가 동하고, 사탄도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여러분을 따르게 할 수 있는 승리자가 되어 하나님도 기뻐하고, 예수님도 기뻐하고, 우리도 기뻐할 수 있는 한날을 이땅에서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주인공으로 오셨고, 인격의 주인공으로 오셨고, 사랑의 주인공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는 축복을 받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이 말씀을 성취해 드리지 못한 원한을 남겼으므로, 예수님은 이것을 해소하려 오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인격적인 기준을 회복하고 만물을 주관하고 있는 사탄을 물리쳐서 하나님의 주관권을 회복시킬 수 있는 말씀의 주인공, 진리의 주인공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온 만민, 믿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믿지 않는 사람까지도 사랑하여 사탄의 속박에서 신음하는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는 무한한 사랑을 품고 오신 분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신부의 이념을 찾고 있는 우리가 그 신부의 이념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하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14:6)”라고 하신 말씀, 곧 길로 될 수 있고 진리도 될 수 있고 생명도 될 수 있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또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사탄이 갖지 못한 말씀, 사탄이 갖지 못한 인격, 사탄이 갖지 못한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땅 위의 인간들에게 나타내지 못한 애달프고 간절한 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몰리고 있는 통일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나는 가끔 말하고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의 길을 따르고 있는 여러분은 불쌍하고, 서글픈 사람의 뒤를 따르고 있는 여러분은 서글플 것이다. 그러나 그 불쌍함과 서글픔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이러한 입장이 될 때 여기에 하늘이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을 통해, `제가 그리스도의 심정을 알고, 그리스도의 생애목적을 알았사오니, 이 목적을 대신하여 제가 사탄 대하여 싸우겠나이다. 그리스도가 영·육 합하여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 싸우셨는데 제가 이제 그 싸움을 책임지고, 이 악당들을 무찌르고 사탄을 굴복시키겠나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늘은 이러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제 심판의 날이 가까왔으므로 우리는 환난과 슬픔의 고개를 넘고, 죽음의 제물이 되어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새로운 인격을 대신하여 새로운 생활이념을 찾아세워 드릴 수 있는 천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움직이기 시작해야만 참된 생활을 할 수 있고, 생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며, 새로운 영생의 이상생활을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도 아니요, 예수가 하시는 것도 아니며, 여러분 자신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겉의 말씀만 성경에 나타내었지만 이제 내적인 말씀을 갖고 다시 오셔서 사탄의 비밀을 폭로하시고, 사탄을 영원히 무저갱에 가두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다시 오시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진리의 주인공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진리의 말씀이란 하나님도 수긍하고 독실한 성도도 수긍하며 사탄까지도 수긍할 수 있는 말씀이어야 하며, 그 말씀 앞에서는 정상적이고 본연의 마음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움직일 수 있고 끌릴 수 있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진리의 말씀을 지니신 예수님이 제물이 되면서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황공한 심정을 느꼈던 것 같이 예수님 앞에 황공함을 느끼는 신부가 되어 아버지 앞에 제물로 바쳐질 수 있는 인격을 갖추어야 인격심판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심판의 고개를 넘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에게 축복하셨던 만물주관권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인생의 출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의 자격을 갖추어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새로운 생활이 출발하는 것, 이것이 왈 역사적이 소망이요, 천년왕국의 기반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원리를 배워서 알지만, 천사장의 사랑 이상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승리의 자격자가 되어 `할렐루야, 아멘!’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사탄의 사망권에서 해방되어 자유와 평등과 행복과 사랑과 선과 미를 중심삼고 살되, 나를 중심삼지 않고, 하나님과 주님과 천륜을 중심삼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요, 주님의 사랑이 나의 사랑이요, 주님의 미가 나의 미가 되는 일체로 만상 앞에 나타나게 될 때, 여러분이 예수님을 흠모하듯이 만물도 여러분을 흠모할 것입니다. 이런 자격을 가진 신부가 되는 것이 끝날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이 신부의 자격을 완성하고 땅에서 영·육 합하여 예수를 대신하고, 그의 원한을 성취시켜 사탄 대해 자랑할 수 있는 한 모습이 되어 전체를 주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의 한날이 승리의 한날로서 영원히 하늘 땅 앞에 세워질 수 있고, 인간 앞에 세워질 수 있으며, 하나님 앞에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