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4 to 3-178: 하나님의 슬픔을 아는 자가 되자

하나님의 슬픔을 아는 자가 되자
1957.10.25 (금), 한국 전본부교회

3-164
하나님의 슬픔을 아는 자가 되자
창세기 6:5-13

[기 도]

사랑의 아버님! 저희들이 6000년 역사를 회고해 보게 될 때, 아버지께서 어느 한때 편히 쉬시고 즐거워하신 적이 없었고, 오히려 비탄과 슬픔에 잠겨오신 것을 아옵니다. 또한 노아 당시의 일을 돌이켜 볼 때, 그때의 시대와 오늘의 시대가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 서러움의 눈물 자국을 만들고 있음을 저희들이 느끼게 되옵니다.

무지한 백성 가운데 믿음의 혈족을 찾기 위한 아버지의 발걸음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슬픔에 사무칠 수밖에 없었던 그 사정을 오늘 여기에 모인 아들딸들이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초초한 노아 한 사람을 광활한 사탄세계 앞에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심정도 서러웠을 뿐만 아니라, 노아의 심정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외로왔었다는 것을 오늘 이 시간 저희들이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의 뜻 앞에 택함을 받았던 선지자들은 어느때를 막론하고 당시의 인간들 앞에 희생의 제물로 나타났고, 하나님의 무한한 서러움의 상징체로 나타났던 것은 비단 노아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역사과정의 수많은 선지 선열들을 통해서도 나타났던 것을 저희는 잘 알고 있사옵니다. 또한 노아 이후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던 수많은 선지 선열들도 노아의 그 길을 재차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최후의 심판을 맞이해야 할 저희 자체들, 스스로를 천륜 앞에 내세워야 되겠습니다. 내 자신이 노아와 같은 심정을 지녔는가, 또는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애달파했던 그 심정을 지니고 있는가를 반성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아버지의 아들딸로서의 면목을 세울 수 있게끔 역사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 최후의 심판이 두려워서 피하는 자들 되게 말게 아버지께서 인도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무한하신 긍휼의 심정을 체휼하면서 아버지의 슬픔을 위로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하여 어떠한 불의의 세력과도 싸울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 시간 여기에 모인 아들딸을 긍휼히 보시옵고, 옛날 노아에게 훈계하셨던 그 말씀과 같은 말씀을 이들에게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 각자가 지닌 바의 모든 결심이 그저 일시적인 결심으로만 그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생애노정에서 어려운 환난을 타개하고 남을 수있는 지혜와 능력을 갖고, 또한 억만 사탄이 주위에서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가진 아버지의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부탁하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시간 전하는 말씀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말씀을 받는 자의 마음이나 전하는 자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고 하나가 되게 역사하여 주시어서, 아버님의 은사에 잠기어 하늘이 움직이면 저희들도 움직이고, 하늘이 정(靜)하면 저희들도 정하여,하늘의 뜻과 심정을 저희들이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의 심정 가운데 느껴지는 그 뜻을 영원하신 아버지 앞에 세워야 할 뜻으로 받들고 나아갈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한 시간 저희의 한 몸을 오로지 아버지 앞에 제물로 바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오니, 남은 이 시간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3-166
The Word
This time the `self doeja know the sorrow of God ‘in the title will tell you for a moment.

3-166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슬픔
슬픔은 지금까지 수천년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우리 인간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은 인간만이 슬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연하여 있는 만물도 슬퍼하고 있으며, 또 창조이상을 세워 인간을 지으셨던 창조주 하나님께서도 슬퍼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위로는 하늘 쳐다보고, 아래로는 만물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이땅의 인류를 살펴보게 될 때, 어느 누가 하나님을 대신하고 인간을 대신하고 만물을 대신하여 슬픔의 고난 속에서 나는 해방되었다고 부르짖고 나섰던가. 그런 사람은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이 거두워지지 않는 한, 땅 위의 인간의 슬픔도 거두워질 수 없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의 슬픔이 거두워지지 않는 한, 인간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피조만물도 슬픔을 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슬픔을 안겨 준 장본인은 누구였습니까? 그 장본인은 하나님도 아니고 만물도 아니고 바로 인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중심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했던 인간, 만물을 대해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 했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 서러움을 자아내게 했고, 만물에게까지 슬픔을 안겨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여러분 한 자체가 하늘 땅 앞에 홀로 선 자신인 것을 깨닫고, 여러분 마음 가운데 흐르고 있는 그 서러운 심정을 제거하는 투쟁의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하는 필연적인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한 자체의 서러움은 여러분 자체의 서러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서러움은 하늘의 서러움으로, 만민의 서러움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가정·사회·국가·세계에까지 그 서러움의 파동이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이와 같이 어마어마한 입장에 처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와 같이 슬픈 입장에 처해 있는 오늘의 나는 어떠한 심정으로 하늘의 서러움을 대신하기를 원하고 있는가, 어떠한 심정을 갖고 이 땅 위의 만민의 서러움을 대신하길 원하고 있는가, 또는 만물의 서러움을 대신하기를 원하고 있는가를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최후의 심판의 한 고개를 넘어가야 할 우리 타락한 인간들이 안고 있는 문제중의 하나입니다. 세계적인 골고다의 역경을 맞이한 이때에 우리는 그 짐과 보따리를 자기 일신에게 청산하고, `나는 자유의 몸이요, 희망의 몸이요, 행복의 몸이요, 천지만물을 사랑하는 몸’이라고 자부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서러움을 제거하고 만물의 서러움까지 청산했다 할 수 있는 기준을 넘어서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하나의 기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할진대는, 오늘 여러분이 이 한 시간에 기뻐하는 어떠한 기쁨이 있다 할지라도 그 기쁨은 일순간에 끝나버리고, 즐거워할 수 있는 어떠한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 은사는 일순간에 끝나버리고 곧 슬픔에 잠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서러움을 벗어버려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슬픔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인간 혼자서는 벗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우리에게 새로운 힘과 새로운 은사와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시며 그 슬픔을 제거하기 위한 싸움을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해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인간의 서러움이 하늘땅의 서러움으로 화하게 되었고, 타락한 인간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과 만물과 하나되어 나아갈 수 있는 사랑의 길을 가로막게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자신의 슬픔으로 인하여 자포자기하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장보다도 지금까지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인류를 대하여 슬퍼하였던 아버지의 슬픔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 아버지의 슬픔을 자신의 실제 생활에서 느끼는 사람이 되면, 자체에 미쳐지는 서러움을 그저 여러분 자신의 서러움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환경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러한 입장을 거뜬히 넘어서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끝날의 심판의 고개를 넘어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자격자로 나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3-168
하나님의 이중의 슬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서러움을 갖고 계시는가,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지극히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이상을 성취하기 위한 중심 책임자로 지었던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그들을 통해 세우고자 했던 창조 본연의 세계를 이루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생긴 서러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그러한 하나님의 슬픔을 체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과 이념을 중심삼고 사랑의 동산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되어 있는 그 창조의 이상이 좌절되었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수천년 역사 속에서 수고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지 못한 창조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사탄과 싸우면서 느끼셨던 그 슬픈 심정을 체휼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아담을 잃어버렸던 그때의 서러움,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했을 때의 하나님의 그 슬픈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하나님이 인간을 어느 정도까지 사랑하시는가를 체휼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고 슬퍼하셨던 그 심정을 도저히 체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먼저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창조이상을 이루지 못한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창조이상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이 온 피조세계에 맺혀 있습니다.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섭리역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이후 노아·아브라함·모세·예수 때까지 왔다 갔던 모든 선지 선열들은 이 땅 위에서 무엇을 인간들에게 증거하였으며 무엇을 소개하였는가.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슬픔을 무지한 인간들 앞에 전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창조이상을 이루지 못한 슬픔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그 창조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 선열들을 보내시고, 그들로 하여금 사탄 대하여 싸우게 하신 후 그것을 바라보고 서러워할 수밖에 없었던, 이중의 서러움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즉, 하나님을 배반하는 무지한 백성들에게 지금까지 어떠한 사람도 환영하지 않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그 슬픈 심정을 소개해 주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 선열들은 애달픈 수고의 노정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슬픈 심정이 내적으로 체휼되면 체휼될수록 땅을 위하여 하나님 대신 서러워해야 할 사명을 느끼게 되었고, 하나님과 같은 애달픈 심정을 갖고 사탄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대신하여 가치를 인정받는 존재로 나타나야 할 그들이었는데, 오히려 무지한 인간들에게 멸시와 배척을 당하고 천대를 받으면서 무가치하게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하나님께서는 이중의 서러움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자신의 창조이상을 이루지 못한 것도 슬픔인데, 그 창조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땅 위의 무지한 인간들을 일깨우고, 사탄과 싸워야 할 운명에 처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을 바라보시는 것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중의 슬픔을 지니고 계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노아 때를 돌이켜 보면, 1600년 동안 하나님은 말할 수 없이 애달픈 심정이 복받쳤지만 참으심의 길을 걸어나오셨습니다. 어느 한시간 한순간도 잊어버릴 수 없는 인간 대한 서러움이 북받쳤지만, 그것을 다 참고 자신의 슬픔을 대신 만민 앞에 또는 만물 앞에 온전히 나타내기 위하여 노아를 택해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노아를 그 당시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입장에 세우셨던가. 1600년동안 인간들이 하나님을 서러움에 사무치도록 했던 것을 노아 한 사람을 세우시어 그가 인간을 대표하여 그 천적인 서러움과 슬픔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환경에 세워 놓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170
서러우신 하나님을 위로했던 역대의 선지 선열
노아는 120년 동안이나 자기를 불신하고 반대하며 조소하는 인간들 앞에 묵묵히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또 120년 후에 이 땅을 심판하겠다는 하늘의 예고를 받게 되었을 때도 그는 하늘 대한 믿음의 도리를 다했던 것입니다. 그를 보고 당시의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이었던 연고로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당시의 사회가 패역하면 할수록 더욱 그 사회를 위해 염려하며 슬퍼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안일을 취하기 위해 허덕이고 있을 때에 노아만은 홀로 공의의 법도를 찾기 위해 몸부림쳤으며, 천륜을 염려하였으며, 남이 원치 않는 환경에서 슬퍼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노아, 즉, 그 당시 인간들을 위해 염려하고 슬퍼하는 마음을 지닌 노아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비단 노아뿐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야 하는 책임을 진 모든 선지 선열들이 택함을 받게 되었던 원인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은 모두 그 당시의 패역한 땅과 패역한 인간을 홀로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개인과 가정·사회·국가·세계를 염려하는 마음을 지니고 남 모르는 가운데, `하늘이 있사옵나이까? 있다 할진대 이 죄악의 땅을 건져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하늘 대한 애달픈 심정으로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늘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면 노아, 어떠한 선지자면 선지자를 세우실 때의 그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픔에 사무쳤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은 선지자들이 땅 위의 인간들에게 불신과 배반을 당하는 가운데서 혈혈단신 슬픈 심정을 지니고 `오! 아버지여!’ 하고 부르짖는 기도소리가 울려퍼졌다 할진대 그 기도소리는 인간들에게 기쁨의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를 듣게 되는 하나님께서는 그 간곡한 호소에 움직여 나오셨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수많은 선지 선열들은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위로하기 위하여 어떠한 수난길도 개의치 않고 걸어갔던 것입니다.

어느누구든지 애달픈 심정을 갖고 이처럼 하늘을 대하여 호소하고 기도 하는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더욱 북받쳐오르는 서글픈 심정을 갖고 그를 대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대하게 될 때, 당신의 모든 욕구와 이념을 전부 찾겠다는 그런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랑하는 선지자, 혹은 사랑하는 아들딸을 대하여 언제나 마음놓고 명령할 수 없는 입장이었고, 시간과 장소를 넘어서서 의논할 수 없는 사정이었습니다. 이처럼 어떠한 상징적인 조건을 세워놓고 나서야 인간을 대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그 서러움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제물을 통하여, 신약시대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서러움을 제거시키는 역사를 해 나오신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으로서 하나님의 뜻이 모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여러분과 마음껏 주고받고, 그리하여 여러분을 품에 품고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영원토록 함께 살고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을 내 아들딸이라 부르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원한과 슬픈 심정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을 오늘날까지 참아나오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여러분들은 자신의 서러움을 사람에게, 또는 가정 앞에, 혹은 종족 앞에 토로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어려울 때, `나는 슬프다, 혹은 나는 외롭다’라고 자신의 사정을 토로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수천년의 역사과정을 거쳐오는 가운데서도 서러워도 서럽다는 말 한마디 하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애달픈 입장에 하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의 선지 선열들이 자신의 서러움을 소개하기 전에, 그들을 대신하여 땅 위의 모든 인간의 서러움을 먼저 나타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제 여러분이 하늘 앞에 서고자 원할진대는, 먼저 자신의 과거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생활권내에서 60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통해 서러워해 나오신 하나님 앞에 위로가 될 수 있는 어떠한 조그마한 일이라도 하였는가를 회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3-172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려야 할 인간
그리하여 미래를 바라보고, 자신이 속해 있는 가정을 위해서 혹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염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또 세상이 흔들리어 사망권내에 휩쓸리게 된다 할지라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하늘을 향하여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된다면 여러분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하여 창조이상을 이루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고 계시며, 또 이루지 못한 그 이상을 다시 이루기 위해 이땅을 대신하여 염려하고 수고하는 한 사람을 찾아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그와 같이 서러운 입장에 계신 하나님을 위로하고 그 슬픔을 제거해 드리는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슬픔을 안겨드린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그 슬픔을 추방해야 할 자도 인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천주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려야 할 자가 바로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서러움을 풀어드리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중대시해야 할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택해 세운 인간들의 생애노정에서 어느 한때, 어느 한순간도 서러워하지 않으신 때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서러움을 풀어주기 위하여 있는 성심을 다하여 중심적인 사명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느 한 순간에도 당신의 마음이 흡족할 정도로 위로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해 세운 인간과 마음이 통하고 사정이 통하는 입장에 있었지만, 그 소망하시는 것을 그들이 당대에 이루어 드리지 못하여 안타까움을 품어 오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서러움의 역사가 4000년이 경과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이 땅 위에 4000년 역사를 대신할 수 있고, 그 4000년 역사 속에 왔다 갔던 모든 선지자들을 대신할 수 있으며, 온 천주를 대신할 수 있는 한분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대신하고 만물을 대신하고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한 존재를 보내셨으니, 그분이 누구시냐 하면, 바로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오신 날은 만물이 기뻐할 수 있는 날이었고, 만민이 기뻐할 수 있는 날이었으며,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날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 위에 무엇을 갖고 오셨던가. 그는 역사과정의 전인류의 서러움을 대신하고 모든 만물의 서러움을 대신한 존재, 즉, 말할 수 없는 서러움을 품고 이 땅 위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슴 속에 4000년 동안 사무쳤던 서러움을 전인류와 만물을 대신하여 해소시켜 드려야 할 책임을 갖고 이땅에 나타나셨던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한 그 타락의 역사를 돌이키기 위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인간의 생명과 전우주의 생명을 가로막고 있는 사탄과 싸웠던 것입니다. 즉 어떠한 사탄적인 혈통과도 관계를 맺지 않은 입장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하나의 이념, 하나의 소망과 기쁨을 추구해 나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30여 평생 그와 같은 노정을 걸으셨으나 어느 한 사람도 믿어 주고 같이 동조해 주지 않았습니다. 4000년 동안 맺히신 하나님의 슬픔을 풀어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30여 평생 피땀 흘리는 충성을 다하였으나, 예수님의 그러한 사정을 진실로 알아주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유대교단으로부터 혹은 이스라엘백성으로부터 몰리고 몰려 나중에는 머물 곳이 없고 설 곳이 없어 이 고을 저 고을, 이 산골 저 산골로 헤맬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서러운 사정을 오늘 여러분은 느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서러움은 어떠한 서러움이었던가. 하나님의 뜻 앞에서 맡은 바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서러움이었고, 무지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일깨워주지 못하는 서러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시 자신을 반대하고 불신하는 유대교를 대하여 슬퍼하였고, 이스라엘 민족을 대하여 슬퍼하였던 것입니다.

3-174
예수가 전하려던 하나님의 사정
이와 같은 슬픈 사정에 처해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핍박하고 불신하는 유대교와 이스라엘민족을 당장에 심판하여 멸하고 싶었지만, 멸하시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애달픈 서러움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만민의 구세주로 오시어 서러워하신 것은 전인류의 서러움을 대신하였고, 모든 피조물의 서러움을 대신하였기 때문임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의 외로운 가슴을 헤치고 그의 서러움이 어떠한가를 느끼려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남 모르는 애달픈 입장에 처해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과 한날의 친구는 못 될지언정, 한 시간의 친구라도 되겠다는 마음을 지녀야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그러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없다면, 여러분은 천륜을 대신하여 나설 수 없고,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슬픔을 위로할 수 없게 될 것이며, 오히려 하늘 앞에 반기를 드는 반역자의 입장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애달픈 심정을 갖고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무한히 애썼지만, 결국에는 십자가에 달리게 되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시던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느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만민을 대신하여 온 우주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여 사탄을 굴복시켜야 할 사명이 있었지만, 불신하는 무리에게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려 결국에는 골고다산상에서 십자가까지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자신을 중심하고 약속되었던 모든 뜻이 파괴되어버리고 자신의 일생이 결국은 십자가의 형틀에 귀결된다는 것을 느낀 예수님이었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끝까지 하늘을 배반하지 않고 하늘 대한 충성의 도리를 다하셨습니다. 모든 인간들이 예수님을 불신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것에 상관하지 않고 천륜을 향한 그 길을 일생의 목표로 삼아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일생이 우리 인간에게 역사적으로 소망의 길이 되었음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 직전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6:46)”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예수님의 입장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안타깝고 서글펐던 심정을 여러분은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4000년 동안 서러움을 참으신 하나님이시지만, 사랑하는 아들딸이 어떠한 탕감조건을 세우기 전에는 직접 주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탕감 조건을 세울 때까지 참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서 어떻게 사셨던가. 오늘날 여러분과 같이 마음대로 말을 하고 마음대로 행동했느냐 하면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안일한 입장에 서시지 못했습니다. 어디에서 자든 무엇을 먹든 상하좌우 어디로 움직이든지 간에 항상 뼛골에 사무치는 하나님의 서러움 심정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곳에서 말씀을 하든지 간에 불신하는 무리로부터 자신의 뼈가 녹아지고 피와 살이 사그라지는 듯한 서러움을 느끼면서 당시 바리새교인과 유대교인·이스라엘민족 앞에 소리높이 외쳤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로부터 당한 여러가지 서러움에 사무치는 원한의 심정을 놓고 무지한 백성과 불신의 무리를 대하여 의논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사정이 예수님에게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늘로부터 어떠한 사명을 받고 이땅에 오게 되었는지를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소망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서러운 마음이 북받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슬픔이 하늘 땅을 덮고도 남을 수 있지만 자신의 사정으로 인한 슬픔은 지닐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그와 같이 자신의 사정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 인류의 슬픔과 역사적인 하나님의 슬픔을 염려하며 위로하려 했던 예수님의 30평생의 삶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 자신이 예수님의 그 슬픈 사정을 얼마나 염려해 보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러한 슬픔의 자리까지 얼마만큼 나아가 보았는가를 반성해 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3-176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므로 가중된 하나님의 슬픔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창조이념을 잃어버리게 되어 말할 수 없는 서글픈 심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여 당신의 슬픈 심정을 위로받는 소망의 한날을 맞으려 하셨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비참한 사정을 또다시 보시게 되었습니다. 4000년 동안 수고하여 예수님 한분을 세워 당신의 슬픔을 풀고 또한 이 땅 위에 천국을 건설하시고자 했는데, 그러한 모든 뜻이 일시에 좌절될 때, 그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때의 하나님의 슬픈 심정은 옛날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느끼던 그이상의 슬픔이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는 하늘땅이 모두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느끼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4000년 동안 피 땀 눈물로 쌓은 정성의 탑이 일시에 무너지게 됨으로써 다시금 재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타락 당시의 슬픔이 가중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며 탄식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떠한 입장에 처해 있습니까? 오늘날 여러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서러움을 안겨 준 아담 해와의 후손인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의 슬픔을 풀어드리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죽여 하나님의 서러움을 가중시킨 자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당신에게 서러움을 안겨준 배반자인 사실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그 후손들을 붙들고 섭리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모든 피조만물의 하나가 되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 한날이 어서 속히 오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금 어떠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까? 오늘날 여러분이 바라보고 있는 현실은 어떠합니까? 세계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까? 뜻이 있는 사람이라 할진대는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고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서러워할 때입니다. 이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하고, 하나님의 슬픈 가슴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는 온 땅에 대신하여 어둡고 둔탁한 자신의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의 현실은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으며, 패륜과 모순과 투쟁이 가득찬 상황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지극히 서러운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갈구하면서, 남이 욕을 하든 핍박을 하든 그것에 개의치 않고, 오직 소망의 한날을 이루기 위하여, 즉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허덕이다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그 한길을 찾아 나서야 하겠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수고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불신의 무리로부터 당하는 여러가지 슬픈 사연이 있더라도 그런 사정을 여러분보다 더욱 서러운 입장에 계신 하나님께 아뢰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대한 슬픔이 측량할 길 없지만 그것을 지금까지 인간 앞에 전체적으로 나타내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서러움을 붙안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섭리를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자신의 서러움을 붙안고 사탄과 싸워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기도를 하더라도 자기 일신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직 아버지의 서러움을 해원해 드리는 자신이 되고 또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맺힌 역사적인 원한과 우주적인 서러움을 모두 맡겠다고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사탄과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저 허덕이다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도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아버지의 서러움을 해원해 드리고자 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에게 천륜의 무한한 생명의 원동력을 불어넣어 그를 통하여 당신의 서러움을 풀고 그와 영원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십니다. 또한 그를 통하여 가정적인 서러움, 사회적인 서러움, 국가적인 서러움, 나아가 세계적인 서러움까지 해원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 시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3-178
인간 대한 하나님의 바라심
그러면, 여러분에게 하늘의 사무친 어떠한 서러움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개인을 위한 서러움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위한 서러움을 품고 있다면, 여러분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보다 여러분의 가정·사회·국가·세계, 나아가 하나님을 위한 서러움을 품고, 그러한 모든 서러움을 풀어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옛날 노아 할아버지를 회상해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께서 120년 후에 내가 이땅을 홍수로써 심판하리라고 예고하셨을 때, 그 예고의 한말씀을 120년 동안 어느 한순간도 망각치 않고 믿어나왔습니다. 한마디의 명령에 120년 동안이나 순종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한 사람은 비단 노아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한 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우르를 떠나라 하게 될 때에 축복하셨던 그 축복의 말씀을 아브라함은 광야에 나가서도 어느 한날 잊어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약속한 그 축복의 말씀을 믿고 매일같이 사탄과 싸운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 역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으로부터 받은 축복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망각치 않고 생활했기 때문에 하란에서 21년의 고역생활을 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 역시 그러한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에게 약속하면서 내려주신 단 한마디의 명령을 받들고, 그 약속의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30여 평생을 사탄과 싸워나갔던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부름받았던 모든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단 한마디의 말씀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일생을 믿음으로 지켜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역사적인 서러움이 여러분을 통과하고 있는 이 시대에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먼저 하나님의 서러움을 체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또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님과 인간을 대해 서러워했던 심정과 지금까지 6000년 동안 이땅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서러워했던 심정을 체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박차고 나아가 역사적인 모든 서러움을 풀고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기를 하나님은 이 시간도 간절히 바라고 계시다는 사실을 오늘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