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 to 2-105: 너는 어떠한 부활을 성취하려는가

너는 어떠한 부활을 성취하려는가
1957.03.06 (수), 한국 전본부교회

2-95
너는 어떠한 부활을 성취하려는가
고린도전서 15:35-44

[기 도]

나의 아버님! 태초에 아버님께서는 선의 뜻을 두시고 피조만물을 지으셨사옵고, 본질 본성의 표준으로서 불변의 모습으로 계셨사오나, 인간들이 그러한 아버님의 선의 상대가 되어 드리지 못한 연고로 아버님의 이상을 이루어 드리지 못하였사옵고, 선한 양심의 기준으로부터 먼 거리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며, 또한 이것이 하늘과 피조만물의 탄식이었음도 알고 있사옵나이다.

아버님이여, 저희들에게는 영원하신 선의 기준을 생명을 바쳐서라도 찾지 않으면 안 될 섭리적인 운명의 길이 남아 있사옵고, 이 길을 최후까지 가야할 사명이 남아 있사오니, 크신 능력으로서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재촉하여 주시옵소서.

몸을 통하여 침범해 오는 악의 요소가 선을 지향하는 마음의 길을 막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이 싸움에서 선을 지향하는 저희의 마음이 몸의 제재를 받아 패배하는 모습들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로지 마음을 이끄는 선의 힘과 사랑의 힘에 이끌린 바 되어 아버님을 찾아 불변의 모습으로 화동할 수 있고 분리될 수 없는 영원한 실존체로서 아버님의 형상을 닮아 영원히 아버지를 모시고 살 수 있게끔 붙들어 주시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 죄악과 싸워 오면서 저희들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죄악의 뿌리가 저희들의 뼈살에 박혀 있사옵나이다. 이를 제거하여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사오나 저희들은 너무나 부족하오니, 생명의 권한을 가지신 아버지시여, 능력의 권한을 가지신 아버지시여, 창조의 권한을 가지신 아버지시여, 보잘것없는 저희들의 마음과 몸에 다시 한 번 능력의 손길을 뻗치시어서 사망의 그늘에 사로잡혀 있는 모든 악의 요소를 제거하여 주시옵고, 그 한 중심의 자극을 받아 승리의 마음을 일으킬 수 있는 하늘의 직접적인 생명의 역사를 이 시간 나타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내 자체로부터 부활의 권능을 일으키시옵고 저희들이 처한 환경에서 그 한 중심을 대신하여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미비한 자리에 있다고 해서 탄식하는 저희들 되지 않게 이끌어 주시고, 완전한 자리를 향해 달음질쳐 나가는 노정에 있어서 이 길을 막고 있는 원수 사탄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아버님의 참자녀의 자격을 갖출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억만 사탄들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의 천군천사가 지녔던 무기를 저희들이 대신 지녀 억만 사탄과 싸워 승리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 소수의 무리가 아버지 앞에 자신의 부족함을 직고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엎드렸사오니 저희들에게 합당치 못함이 있사올진대 스스로 뉘우칠 수 있는 회개의 마음을 주시옵고, 깨달을 수 있는 지혜의 마음을 주시옵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올바르게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게 이 한 시간 아버지님의 직접적인 역사가 저희들에게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 한 시간은 아버님 앞에 참예물을 드려야 할 시간이오니 아버지 앞에 아무 것도 드릴 것이 없다 할지라도 본연의 심정만은 온전히 바쳐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죄악에 물든 몸에서 악의 요소를 제거하여 주시옵고, 솔직하게 자신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어 아버지의 명령대로 움직이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에 합당한 몸마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 저녁에도 사방에 널려서 외로운 제단을 쌓고 있는 수많은 아들딸들위에 아버님께서 약속하신 은사를 일률적으로 내려 주시옵소서.

끝날을 맞아 예고하셨던 당신의 뜻을 성취시킬 수 있는 감동의 역사와 감화의 역사, 권능의 역사가 당신의 자녀들이 머무는 곳곳마다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참다운 제단을 찾기 위하여 외로운 가운데 기도의 제단을 쌓고 있는 아들딸들이 많이 있을 줄 아오니, 어서 속히 그들이 당신의 허락하신 뜻을 대할 수 있도록 당신이 명령하여 한 곳으로 모이게 허락하여 주옵시며, 그들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녀들 되게 이끌어 주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한 시간 하늘의 제단에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이는 곳곳마다 아버님의 거룩하신 성령의 역사가 같이하여 주시옵고, 감동의 역사와 회개의 역사를 나타내 주심으로써 끝날에 이 민족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제단들 되게 9이끌어 주시옵소서.

남아진 시간도 아버지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길 빌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2-97
말 씀
오늘 여러분에게 드릴 말씀의 제목은 `너는 어떠한 부활을 성취하려는가’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인하여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사랑과는 먼 거리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타락 전 아담 해와는 타락하게 되면 즐거움으로 대하던 하나님이 변하여 공포의 하나님이 되고, 이상의 하나님이 변하여 심판의 하나님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2-97
이상의 하나님
그리고, 타락의 후손인 우리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을 공포의 하나님으로도 대할 수 있고, 이상의 하나님으로도 대할 수 있는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섭리역사를 거듭하여 나오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섭리에 상응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인간 앞에 이상의 하나님으로 서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권내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심판의 하나님이요, 공포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을 이상의 하나님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서러움을 우리가 대신 체휼하여 하나님과 같은 서러운 입장이 되어 하나님과 동거할 수 있는 인연을 맺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상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실 수 없고, 또 창조이상의 주인공으로도 나타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상의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 나아가는 노정에 있어서, 이 길을 막고 있는 사탄들과의 싸움의 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들에게 있어서 필연적으로 가야할 탕감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즉, 나 자신이 이상을 바라보고 생활하는 데 있어서 온 세계인류를 심판의 공포에서 구해낼 수 있는 싸움의 길을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이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부활도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면 자연법칙과 같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싸워서 공포를 극복하고 어둠의 세력을 분쇄한 터 위에서 부활의 역사(役事)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두움의 고난을 승리한 부활의 영(靈)만이 하나님의 이상을 대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하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통하여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위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소망의 실체로서 진실의 본성을 갖추어 악과 싸워 승리한 부활체와 하나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우리의 마음은 둘이 아닌 하나의 사랑을 느끼면서 창조이상을 복귀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6천년 동안 내려오신 하나님의 섭리는 미완성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싸움의 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의 노정에서 타락한 인간의 힘으로는 사탄의 세력을 파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를 파괴시킬 수 있는 주인공으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30여년의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평안과 기쁨의 날을 맞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즉, 그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사탄과의 싸움에서 피눈물을 흘린 흔적으로 점철돼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생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슬펐던 가정생활을 회고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생애를 바쳐서 어두움의 죄악을 물리치기 위한 싸움을 전개하면서 하늘 앞에 간곡히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99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걸으신 目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30여 평생 수고의 길을 걸으신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타락 이후 사탄의 품에서 잠자고 있는 인간들을 완전히 깨어나게 하여 하나님이 주관하는 자유로운 환경으로 인도하여 타락되지 아니한 참사람, 즉, 본연의 사람으로 복귀시킴으로써 기쁨과 영광의 터를 이루어 놓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애에서 그분의 모든 감관(感官)을 통하여 느낀 느낌, 혹은 받은 충격과 충동은 그 한날에 머무른 것이 아니었고, 한때의 제한된 시간권내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바라본 시선과 움직인 걸음걸이가 당시의 한 시간권내의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 분의 목적과 이상만은 영원한 하나님의 가슴 속에 있는 사랑과 연결시키기 위한 목적과 이상이었으며 그분은 하나님의 슬픈 심정과 하나되기 위해 애달픈 심정을 품고 사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이상에 어린 마음을 체휼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분의 지식이나 느끼는 감각 등,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이상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느껴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이상을 품고 생애노정에서 싸움의 길을 개척한 것은 영과 육을 아울러 부활시키어 소생·장성·완성의 복귀노정을 모두 거쳐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인간의 모습을 찾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탄의 세력을 대하여 홀로 싸웠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우주적인 하나님의 이상을 대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친히 몸에 지니신 전 우주의 주인공으로서, 전체를 부활시켜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표준을 세우기 위해 생애를 바쳐 싸워 나갔으나, 이스라엘민족이 그분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을 영. 육 아울러 부활시키려던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어 놓지 못하고 돌아 가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3일만에 부활하실 때까지의 생애노정은 오늘 우리들의 생애노정에서 벌어질 모습을 보여준 것이며, 우주적인 역사과정에서 어느 한날 우리가 종말의 때를 거쳐야 할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자신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사탄 대하여 싸우시던 것처럼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라시던 이상과 사랑을 우리들 자신이 이어받지 않는다 할진대는 우리는 사탄을 물리칠 수 없을 것이요, 예수님을 통하여 즐기려던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어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께서 영·육으로 부활한 이상의 실체를 갖추어 하나님의 몸이 되어 만민을 대하여 호령할 수 있는 우주적인 부활의 행사를 땅 위에서 수행해야 할 것이었으나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영적인 부활만을 이룬 주인공으로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영적인 부활의 목적을 땅 위에 실현하기 위해서 성신을 통하여 이 일을 성사시키는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우주적인 부활의 기준을 넘기 위하여는 먼저 나와 영원한 관계를 맺기 위하여 땅 위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대행하는 성신과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부활의 이상을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성신과 우리가 하나되어 예수께서 싸우시던 싸움을 대신 싸워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께 부활의 은사를 받았던 그 자리까지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는 2천년 전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셨던 그 길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시 오실 그분은 부활의 영광과 하늘의 권한을 가지고 사탄과 싸워 승리하셔서 천천만 성도들로부터 숭배받는 자리에 나아가셔야 할 분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 부활 이후 성신에게는 지상에서 예수님께서 사탄들과 싸우시던 그 일을 대신하여, 인간과 함께 제 2차적으로 사탄과 싸워야 하는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 서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기독성도들을 통하여 세계적인 기독교형을 이루어 나오는 역사를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사탄과 싸워 승리하시던 것과 같이, 성도들과 성신이 하나되고 성신과 교회가 하나되어 사탄과 싸워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101
성도들의 책임
우리는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바치어 사탄에게 승리했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을 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몸으로 민족을 규합하고 세계를 규합하여 승리하셔야 했던 예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진정한 크리스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한 죄를 탕감하고 살아서 승리를 거둘 수 없습니다.

부활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들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탄식하여 자신에게 “너 아무개야, 너 자신은 십자가에 달리시면서까지 인류의 부활을 위하여 싸우신 예수님과 또, 2천년 동안 성실히 싸워 나오던 성도들의 세계적인 십자가를 대신할 수 있겠느냐?” 라고 반문하면서 충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끝날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타나게 될 때 하나님께서 “너는 부활의 영광을 위해서 어떠한 생활을 했느냐?” 하고 묻게 되면 이에 대해 거리낌없이 대답해 드릴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의 이상과 관계없는 자신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십자가의 어려운 길을 거치게 된다면 우리들 가운데는 십자가의 길이 두려워 자신의 몸을 살피면서 예수님을 따르던 12제자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세기말적인 역사과정에 있는 우리들은 나 자신이 부활하는데 얼마나 합당한 생활을 했는가를 냉철히 분석해 보아야 하고, 또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하나님의 이상 곧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는가를 반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우리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이 6천년의 원한을 풀기 위해 싸워 나오시던 그 십자가의 길을 늠름히 헤쳐갈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질 수 없다 할진대는, 다시 말해서 스스로 몸을 주관할 수 없고, 자신의 몸이 환경을 주관할 수 없고, 마음을 중심삼고 영원불변의 모습으로서 사탄으로부터 오는 공포를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이 영.육을 합하여 갖추어지지 않았다 할진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30여 평생 십자가의 고개를 넘으시고 돌아가신 후 성신을 보내셔서 2천년간 수고하신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끝날에 이 우주적인 공포의 문을 박차고 나가야 하는 우리들은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하늘 앞에 다음과 같은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대신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내적인 부활을 이루시려던 예수님의 마음의 바탕을 보게 될 때, 그분은 이땅에 태어나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까지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만을 이루기 위해 30여 평생의 노정을 거쳐나왔으나 운명하시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생애를 후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운명하시는 그 순간까지도 죽음을 서러워하거나 자신에 대해서 원망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돌아가시면서도 하나님 앞에 황공한 마음을 지니셨던 분이신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의 생을 포기하고 하늘의 뜻을 위하여 돌아가시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당당코 승리적인 죽음길을 가겠다’하는 태도로 자신을 잊어 버리는 그런 심정을 가졌기 때문에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이 대신져 주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성상을 대신한 성신의 협조를 받아 끝날의 심판의 문을 통과하려 할 때에 알아야 할 중대한 일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며 승리하시던 그 노정을 대신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30여 평생을 통하여 하나님 뜻 앞에 서서 사탄과 싸우면서 어느 한날 하늘 앞에 자신을 주장해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또 자신에게 기쁜 일이 있다해도 홀로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승리한 일이 있어도 자기만의 승리라고 느끼거나 자기만이 그 일을 책임지고 했다는 관념을 갖지 않고 살았던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전체의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이 땅 위에 남아질 것을 염려하여 죽는 순간까지 오직 아버지 뜻을 성취시키겠다는 심정에 사무쳤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 뜻을 성취시키겠다는 심정에 사무쳤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들까지도 구원해야 된다는 책임감을 느끼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2-103
영광의 復活, 부끄러움의 復活, 死亡의 復活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부활의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는 즐거워할 줄 몰랐던 예수님과 같은 심정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 행사하신 수많은 이적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수고의 길을 거쳐 부활의 영광을 입으신 주 앞에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되겠는가?

여기에는 세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죽음의 길을 마다 않고 걸으심으로써 전인류의 죄를 대속하셨던 것과 같이 있는 충성을 다하고 있는 성심을 다했으면서도, `나는 부족하여 감히 주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천만번 죽어도 마땅합니다’라고 하는 사람, 다시 말하면 이 땅에 남아진 죄를 담당하여 지치고 쓸어지면서도 싸우고, 눈물을 흘리고 자기 있는 지성을 다하여 죽도록 충성을 다했으면서도 하나님 앞에서는 `나 자신은 감히 당신 앞에 설 수 없는 부족한 모습입니다. ‘라고 하는 겸손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바라보실 때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는 황공한 마음과 몸마음이 움직이지 못하는 초초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처분만을 바라며 하늘의 영광을 원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슬픈 마음을 기쁜 마음으로 돌이켜 주시고, 부족함이 있어도 부족타 않으시고 오히려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늘 앞에 충성을 다 바치고 죽음에까지 나가는 산 제물이 되어 하늘 앞에 당당코 나설 수 있는 책임을 다했다 할지라도 자신의 부족함을 자인하면서 염려의 마음을 가지고 하늘 앞에 머리 숙일 때에 하나님께서는 염려하는 그 마음 위에 영광을 내려줄 것이요, 슬픈 그 마음에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자라야 영광의 부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는 하늘을 위해 있는 정성을 다했고 하늘을 위해 갈 길을 다 갔으니 이만하면 아버지의 신성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자신을 갖고 하나님 앞에 나타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원래 인간이 하늘을 찾아가는 길에서는 가면 갈수록 부족함을 느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미비함과 불완전을 느끼는 데서만이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한때 하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고, 하늘을 위해 힘써 일함으로써 하늘 앞에 인정을 받았던 적이 있다고 해서 아버지 앞에 나타나, `나는 예수가 가시던 길을 이러이러하게 따라나와 아버지앞에 왔소이다’라고 하면서 얼굴을 들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형의 사람이 걸은 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길과 다르기 때문에 저 나라에 가서는 십자가의 문을 완전히 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세째로, 하늘 앞에도 설 수 없고, 사람 앞에도 설 수 없으며, 또 저 나라의 천천만성도들과 천군천사들 앞에도 설 수 없는 하늘의 원수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 예수님의 뜻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사후에 부활을 받을 것입니다.

첫번째 형에 해당하는 사람은 영광의 부활을 받을 것이요, 둘째번에 해당하는 사람은 부끄러움의 부활을 받을 것이요, 세째번에 해당하는 사람은 사망의 부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이러한 세 가지 형의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떠한 부활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을 분석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에게 청산해야 할 조건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여러분은 그것을 과감히 청산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부족하여 감히 아버지 앞에 설 수 없다는 마음, 가면 갈수록 더욱 더 부족함을 느끼는 심정에 사무쳐서 머리를 숙이고 희생의 노정을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의 동산에서 하나님의 창조 만물을 유업으로 받아 영생복락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맨 첫번째 형의 사람이 주 앞에 서게 될 때에, 그 마음이 수심에 잠긴 것 같으나 결국은 영광과 소망에 찬 마음이 될 것이요, 소망과 영광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대하는 두번째 형의 사람은 결국은 수심에 잠기게 될 것이요, 또 세번째 형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여 슬퍼할 수도 없고 하늘의 인연을 소망할 수도 없는 영원히 하늘과 관계없는 사망의 부활을 받게 될 것입니다.

2-105
영광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는 신앙자의 태도
그러면, 자신이 어떠한 부활의 형에 속해 있는가를 안 연후에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기쁨의 얼굴 혹은 탄식의 얼굴 등에서 어떠한 모습을 취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첫번째 형의 모습이 되어 2천년 동안 소망하고 그려오던 주님을 모시게 되더라도 황공스러운 마음을 품고 감사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혹은, 두번째 형이 되어 주를 만난 후 서러워진 입장에 서서 주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세번째 형의 사람이 되어 꿈에서도 예수님과 하나님을 도저히 흠모할 수 없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형의 사람은 소망이 있다 하더라도 그 소망은 자신에게서 시작하여 자신에게서 끝날 것이며, 그가 아무리 그 이상의 부활을 바라 지옥에서 고생한다 하더라도 그 이상은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있는 우리들, 즉, 부활의 뜻을 성취시켜야 하는 우리들은 저 나라에 가서 주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수 있다 하더라도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황공한 마음에 사무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그러한 마음을 품고 또 주님의 긍휼과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을 바라는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원수들과 싸워 승리하여야 합니다. 만일 이 일을 땅 위에서 완결시키지 못하게 되면 저 나라에 가서라도 그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완전히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제물이 되면서도 부족함을 느끼고, 희생하면서도 부족함을 느끼며 죽음의 자리에서도 자신을 책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하늘 앞에 아무런 자랑도 하지 않는 본성의 사람이 되어야 영원하신 하늘의 부활의 이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아버지에게서 은사를 받게 될 때에, 아버지를 대신하여 자신을 세우려 하다가 혹시 하늘 앞에 서러움과 부끄러움을 돌려드리지나 않을까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받은 바 은사가 크면 클수록 그에 비례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더욱 크게 느끼는 사람, 또 자신이 받은 은사가 귀중하다고 느낄수록 그에 비례하여 더욱 아버지 앞에서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사탄도 그를 시험할래야 시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의 영광을 위해 하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몸마음으로 하늘의 이상을 충만하게 체휼하여 아버지 앞에 감사할 수 있는 그날을 찾지 않는다 할진대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부활의 이상을 완결하여 하나님의 이상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날이 가면 갈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부활의 역사, 재창조의 역사를 하신다는 것을 뼈에 사무치게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가 재림하실 때에 어느 누구도 갈 수 없는 영광의 자리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깨달아 이 시간부터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가지고 어두운 세상에 참된 빛을 증거하기 위하여 제물된 입장에 서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을 드러내는 생활을 해 주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