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 to 2-73: 하늘의 사랑을 세우시려는 예수

하늘의 사랑을 세우시려는 예수
1957.02.24 (일), 한국 전본부교회

2-57
하늘의 사랑을 세우시려는 예수
누가복음 10:21-37

[기 도]

남이 가로막고 있는 것을 박차고 상처를 받은 몸 마음으로 아버지의 무릎 앞에 엎드렸사오니, 이 시간 많은 은사를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되겠나이다.

아버님, 일주일 동안 생활하면서 아버님이 원하시는 그 뜻과 소망과 이상을 위해 얼마나 합당한 생활을 했는지 저희 자신들을 반성해 보게 될 때, 저희 마음 가운데 아버님께 드릴 무엇이 있사옵니까? 저희 몸으로 아버지께 자랑할 무엇이 있사옵니까? 저희들의 생활로써 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린 그 무엇이 있사옵니까? 아버님,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아버지 무릎 앞에 엎드렸사오니 이 마음에 분부하시옵고, 저희의 마음과 몸을 품어 주시옵소서.

끝날에 맡겨주신 사명 앞에 저희들이 천륜의 뜻을 어기는 반역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은 늘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은 갖고 있으되 책임 다하는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만의 생각과 행동은 속될 수밖에 없사오나 이 시간 아버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받아주신다면 골고다의 산정을 넘어 승리의 동산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어려움 가운데 있는 저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마음의 근심을 품고 있는 자들이 있사옵니까? 아버님 이들을 위로하여 주시길 바라옵나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 자신의 생활을 내놓지 못할 사정 속에 얽혀 있는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이 시간 아버님께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모든 것을 들어내놓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에게 승리한 생활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아버님께 남몰래 내놓으면서 오히려 자신을 책망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스스로 마음의 명령에 굴복할 수 있는 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인 이들이 모두 하나의 마음을 닮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나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한 시간만이라도 당신을 모셔놓고 마음 몸이 천적인 사랑에 잠기고 천적인 영광에 잠겨, 당신 앞에 저도 모르게 몸마음 부복하여, “이 몸과 마음을 생축의 제물로 드리오니 받으시옵소서” 라고 기도할 수있는 간절한 심정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날은 거룩한 날, 이 땅 위에 있는 만민이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는 날이옵니다. 또 복주시겠다고 약속한 날이었사오니 아버님, 만민 위에 축복을 내려 주시옵고,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는 모든 교회에 큰 축복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빛과 어두움을 분별하여야 할 최종의 판가리싸움이 저희의 목전에 당도되고 있사오니 빛을 찾아 헤매고 있는 수많은 억조창생들 위에 긍휼의 손길을 허락해 주시옵고, 발걸음마다 또 바라보는 시선 앞에 당신의 능력의 손길을 펴시어서 친히 그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친히 그들을 인도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어두움 가운데 헤매며 탄식과 원한에 사무쳐 살고 있는 뭇 백성들이 아버님 앞에 부복할 수 있는 영광의 그날이 어서 속히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분부하여 세우시려는 뜻의 섭리가 어서 속히 모여드는 자녀들을 통해서 성취되는 영광을 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또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 한 시간 존엄하신 아버지의 무릎 앞에 엎드렸사옵고, 능력의 손길, 창조의 말씀 앞에 엎드렸사오니 저희들의 모든 타락의 성품이 변하여 천적인 생명의 요소에 응할 수 있는 선한 성품이 되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가진 잘못된 여러 가지 의식이나 주의 주장과 모든 관념을 제하여 버리고, 있는 그대로 아버지께 솔직히 나타내 직고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도 사방에 널려 있는 외로운 아들딸들이 뜻을 붙들고 싸움에 임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그곳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실제로 아버님께서 같이해 주시는 것을 증거해 주시옵고, 머무는 곳곳마다 하늘의 놀라운 사실을 나타내 주시옵시고, 머무는 곳곳마다 진리의 생수로서 나타내 주시옵소서.

어두운 사망의 그늘에 사로잡혔던 생명들이 환희의 해방을 받아 아버님앞에 참생명을 받을 수 있는 은사를 이 시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 한 시간 아버님 앞에 맡기오니 뜻대로 맡아 주시옵고, 섭리하시고, 또 원하시는 대로 승리를 거두시옵소서. 한 생명이라도 사탄의 품에 넘겨지는 자녀들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바라오며 모든것 맡기었사오니 주관하여 주시옵고.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2-59
말 씀
이 시간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하늘의 사랑을 세우시려는 예수’ 입니다. 이런 제목으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2-59
다시 찾아야 할 하나님의 사랑
타락한 이 땅 위에 영원한 하나의 중심이 서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고자 원하시는 사랑도 세워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창조함을 받은 존재들과 하나님이 영원히 극치의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랑의 세계를 이루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그런 뜻을 알지 못하고 타락함으로 인하여 그러한 세계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온 우주 만상과 인간 앞에 소망의 표준으로 남아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인간들에게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온 피조만물에게까지도 영원한 이상의 조건으로 찾아 세워주어야 할 섭리적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지금까지 이 땅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았지만 하나님의 이런 내적인 사랑을 충족시켜 주고 인간의 전체적인 이상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기준은 아직까지 완전히 세워놓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해 오셨으며, 또 앞으로 인간들에게 소망으로 남아진 천적인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고, 지음받은 모든 만물이 그 사랑을 영원한 이상의 사랑이라고 노래할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수고하셔야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수고의 역사가 6천년이 경과한 오늘에 있어서, 어떤 한 개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은사를 받았다 할진대는 그 사랑의 은사는 그 사람 개체만을 위한 은사가 아닌 것입니다.그것은 모든 만민과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와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랑으로 세워야 할 은사인 것입니다.그래야 내가 기뻐할 때 만민이 함께 기뻐하고 화동할 수 있으며, 천상세계에 있는 천천만 성도가 함께 화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렇게 하나님의 은사가 하늘땅이 기뻐하는 사랑으로 나타나게 될 때, 다시 말하면,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사랑이 찾아진 다음에라야 하나님은 비로소 모든 원한과 서러움을 잊어버리시고 기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뼈저리게 체휼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은 생명이 남아 있는 한, 죽든지 살든지 승리적인 운명의 조건이요, 불변의 사랑의 실체인 하나의 중심존재를 맞이해야 합니다.그러한 중심존재를 맞이해야만 하나님이 즐길 수 있는 한날, 한때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인간들이 이 일을 다 이루지 못한다면 인간의 서러움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또 인간의 서러움이 계속되고 있는 이상 천상에서도 서러움이 계속될 것이요, 천상에 서러움이 남아 있는 이상 하나님의 서러움도 계속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땅을 대표하여 영원불변의 사랑의 실체로 세워지는 그 하나의 중심은 우리 인간과 만물이 다같이 만나야 할 소망의 뿌리인데, 그러한 소망의 뿌리로, 영원불변한 사랑의 기준을 세우기 위한 중심존재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까지 4천년 역사를 거쳐 오는 동안 이 땅에는 하늘의 사랑을 소개하기 위해 수고한 수많은 선지자들이 있었고, 또한 말할 수 없는 수고와 고난과 역경의 신앙길을 통해서 하나님이 찾으시려는 사랑의 기준과 연결시키기 위해 수고한 수많은 성현들이 있었는데, 그러한 그들의 수고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고 하나님의 뜻속에 살기를 원하고 있는 모든 피조물의 중심인 예수 한 분이 오시기를 바라고 행한 수고였던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택하여 세우셨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국가를 대표하는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하늘의 즐거움이 땅위에 미쳐지고, 땅의 소망이 하늘에 미쳐져서 하늘과 땅이 비로소 4천년의 원한을 풀고 같이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2-61
사랑을 中心한 예수의 使命과 所望
예수님은 먼저 당신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해야 했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로 만민 앞에 나타나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4천년만에 비로소 모든 인류 앞에 나타내고, 4천년의 원한을 풀기 위해 사랑의 화신으로 보내심을 받은 예수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그대로 연결시켜 줄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한 하나의 모임과 민족을 찾으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4천년 동안 이루려고 수고하셨던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하나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예수님은 원한의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유대민족이 예수를 하나님을 대신한 메시아로,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으로, 4천년 동안 선조들이 피 흘리며 싸워나온 소망의 실체로 알았던들 그들을 예수를 붙들고 “당신은 우리들의 소망이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이요, 천상의 원한을 풀어 그 기쁨을 우리에게 연결시켜 주실 분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에게까지 연결시켜 주실 선조로소이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을 영원히 헐어버릴 수 있는 사랑의 승리적 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사명 앞에 상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 외에는 나를 아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는 예수님의 애달픔과 안타까움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원한을 풀어 드리기 위하여 오신 예수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시기위해 오신 예수님이며, 만물세계에서부터 천상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게 해 주려고 오신 사랑의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당시의 인간들이 알지 못했고, 예수님의 뜻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을 유대민족이 알아주지 못하고 믿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 서글펐던 그 사정을 알고 믿는 성도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천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여러분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끝날에 예수께서 다시 오시게 될 때, 원하는 것이 무엇일것인가 하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을 믿지 않은 유대백성들의 불신을 책임지고,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의 중심, 나타나야 할 사랑의 화동의 실체라는 것과 예수님이 바라시던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깨달아서 당신의 뜻을 함께 이룰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을 찾을 것입니다.

당신의 유대민족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오신 예수님은 책임을 다할 수 없는 서러운 사정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서러움은 그의 서러움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을 믿겠다는 결심을 품고 나온 역사상 수많은 선지자들의 서러움이요, 뿐만아니라 창조이상의 뜻을 실현하고자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서러움이었다는 것입니다.

영계의 영인들과 선조들의 기쁨, 하나님의 기쁨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께서 기인간 불신으로 인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하나님께 서러움을 더 보태드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유대 민족이 저지른 잘못이었고, 그 한이 아직도 이 땅에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홀로 겟세마네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던 예수님의 외로운 사정은 예수님만의 사정이 아니요, 30여 평생의 서러운 심정을 품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정 역시 예수님만의 사정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사정은 우리의 사정이요, 오늘날 인류가 가야 할 사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기도하고 서러워하신 것은 당신이 망하고 죽는 것 때문이 아니었고, 또 서러운 고개를 넘어야 할 운명 때문에 서러워하신 것도 아닙니다. 천적인 애달픈 사랑의 심정을 품고 역사의 목적지까지 가야 할 자신의 책임을 염려했고, 하나님의 사랑을 땅 위에서 맞아야 할 인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하여 보내심을 받은 자신이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가 되게 하겠느냐 하는 것을 염려했고, 만인류가 서러움의 고개를 넘어야 할 운명을 지니게 된 사실을 놓고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한 서러움, 자신만을 위한 안타까움의 심정을 가진 예수님이 아니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63
끝날에 처한 성도들의 책임
그러면 우리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예수께서 4천년 섭리역사를 담당해 나온 유대교 앞에 홀로 하늘의 사랑을 실현시키는 승리적인 사명을 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은 6천년의 섭리역사를 담당하고 있는 기독교 앞에 나서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해야 되겠습니다. 또, 여러분은 영원히 즐거워하고 화동할 수 있는 세계를 건설하러 오시는 그리스도의 진정한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명을 하지 않으면 주께서 이 땅에 오실래야 오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이 땅위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메시아를 보낼래야 보낼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6천년을 거쳐 나오면서 천륜의 뜻을 배반한 선조들의 피를 이어받은 우리들이 다시 선조들의 죄악의 노정을 되풀이한다면 주님이 어떻게 그런 곳에 다시 오시겠습니까?

우리들은 초림 예수께서도 우주적인 사랑의 중심, 우주의 주인으로서 하늘땅을 대신하여 하늘의 사랑을 호흡시킬 수 있는 중심존재로 오셨지만 당시의 인간들이 그의 동역자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이상을 바라보며 나가는 길에서 소망과 믿음이 다 없어지더라도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사랑을 위해 가는 길은 안 나갈래야 안나갈 수 없는 역사적인 운명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 길로 인류를 이끌어 주기 위해 오셨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지만 그 사명을 성신이 인계맡아 땅에서 역사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한 성신의 이끌림을 받아 우리는 어디까지 왔는가?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기 직전의 입장을 거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마리아와 같은 입장에까지 왔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이제 우주를 품어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우리는 예수와 성신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리는 실체적인 사랑의 신부, 예수님 당시에 찾으려 했던 실체적인 사랑의 신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신부의 이름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신부로서의 걸음을 걸어야 하고, 주님의 신부로서의 도리를 지켜야 하며, 주님의 신부로서의 표준을 세워야 할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저 말로만 믿어서는 신부의 표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분이십니다. 또,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도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러한 예수님과 통할 수 있는 사랑를 지니지 않는 이상, 어느 한 순간 예수님을 대할 수 있는 신부의 자리에 나갈지는 모르나 예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고, 하나님의 사랑을 맥박을 이어받아 화동할 수 있는 영원한 실체로는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찾으려 하는 것을 시공의 지배를 받는 현실세계에서 사랑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니고 역사성을 초월하고, 시간성을 초월한 천주적인 사랑의 세계에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가치를 노래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가치를 세워 드리고 생명적인 사랑의 가치를 즐기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예수님이 골고다의 십자가의 길을 거쳐 나가시던 서러운 발걸음과 겟세마네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시던 그 음성이 멎게 될 것입니다. 만약 2천년 전에 그런 참다운 성도들이 있었다면,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소망의 존재로 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역사를 거쳐나온 우리 선조들 가운데는 이러한 예수님의 소망을 이루어 드린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 가신지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섭리해 오신 전체의 목적은,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사람, 갈보리산상에서 서러움을 느끼던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사람, 또 성신을 위로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 그리고 하늘땅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을 찾아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 앞에 나아가 “찾으시고자 하는 것이 이것이 아니옵니까” 하며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재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참다운 성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하나님 속에 사무쳐 있는 한과 예수님과 성신의 원한이 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2-65
마음과 뜻과 성품과 힘을 다한 예수님
그러면,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사는 나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될 것인가?우리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뒤따라 가야 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고 하신 말씀을 실천해야 되겠습니다.

그 말씀에는 우주의 핵심적인 이치와 우주의 이상적인 이념과 우주의 생명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사랑의 이념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 말씀과 같이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오셨던 분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씀과 같이 성품을 다 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 우주적인 대표자는 누구였느냐하면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뜻을 품고 나오는 자기 자신을 인정시켜야 되겠기에 사랑하는 제자와 교법사들 앞에 그러한 자신의 입장을 실토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을 대하여 자기의 지성을 다한 분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한 분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혈혈단신 천륜의 큰 사명을 붙들고 하늘 대하여 충성하던 예수님의 그 충성심, 마음을 다하던 그 마음, 뜻을 대신하던 그 뜻, 또 사랑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던 그 성품을 여러분은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성품은 무엇을 대하여 움직이는가?천륜을 대하여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또 마음은 무엇을 대하여 움직이는가?마음은 역사성을 지닌 인륜을 대하여 움직이는 것이며, 뜻은 생활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륜과 인륜에 합당한 생활을 하셨고, 그러한 생애노정을 거치셨기 때문에 비로소 인간 가운데 처음으로 천륜적인 사랑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역사성을 띤 인륜의 노정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간의 생활권내로 하나님의 사랑을 끌어내리기 위해 수고하셨습니다. 즉, 천륜적인 사랑을 인륜적인 사랑에까지 끌어내리려고 있는 성품을 다했고, 뜻을 다했고, 힘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상징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우리 인류의 성품을 대신한 분, 즉 천성의 중심인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 계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품의 본바탕을 중심삼고 움직여야 하는 것이 인간의 양심이고, 그 양심을 중심삼고 나타나야 하는 것이 인간의 행동입니다. 이것은 천적인 전체의 섭리를 총괄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품이라는 것은 양심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품의 본바탕은 양심의 뿌리이므로 성품의 본바탕이 양심보다 겉으로 드러나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품은 쉬지 않고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구가 얼핏 보면 돌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실제는 태양을 중심삼고 돌고 있고, 또 달이 지구를 돌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천성의 본 바탕과 양심과는 이와 똑 같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은 무형의 하나님을 대신한 말씀이요, 천륜적인 인격과 인륜적인 인격, 혹은 천주적인 인격과 생활적인 인격을 나타내는 천륜의 전체 섭리를 대신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4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수많은 선지자들이 천륜을 세우려고 수고의 노정을 걸어 갔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나타내신 분이었습니다.

2-67
예수님의 人格과 제물되신 생활
예수님은 역사 가운데에서 어느 누구도 나타내지 못했던 하나님의 성품을 처음으로 나타내신 숫것의 첫 열매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시기 전 수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 인륜도덕을 세우기 위하여 양심을 기준으로 하여 생활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늘이 원하는 최고의 양심의 표준을 세우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4천년만에 처음으로 하나님앞에 숫제물을 드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 가운데 나타난 뜻은 하나님이 이상하시는 뜻과 일치하여 이루려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혈통적으로 보게 될 때에 역사상 왔다 간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고,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 하늘을 향해 도의 길을 가려고 하는 우리들이 그러한 사실을 헤아리어 전체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한 순간의 생활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본질성이 나타나 있으며, 그것이 비록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큰 것을 대신할 수 있는 불변의 결정체와 같은 형태를 갖추고 살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30여 생애를 회고해 보게 될 때, 예수님은 전체의 생애를 바쳐서 무엇을 하고 가셨던가?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찾아 세워야 할 성품에 있어서나 마음에 있어서나 뜻에 있어서나 행함에 있어서 역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전무후무한 숫것으로서 바쳐진 제물로 왔다 갔던 분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 예수님의 뜻을 따라가고 있는 우리들, 예수님의 마음을 닮기 위해 나선 우리들, 예수님의 성품을 찾아 나가는 우리 자신들은 뜻을 위해 며칠이나 뛰어 보았는가?얼마나 아버지께 내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했는가. 여러분은 이것을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본심대로 살고 싶고, 하늘로부터 받은 천심(天心)의 성품을 자신의 성품으로 만들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품과 마음을 통하여 나타나는 이 뜻을 세워 천륜의 뜻을 대신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서러움은 여기에 얽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뜻을 간직했다 할진대, 그 뜻은 마음을 위한 뜻이어야 될 것이며 성품을 위한 뜻이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먹는다고 한다면 천륜의 뜻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이어야 되겠고, 성품이 있다고 한다면 그 성품을 토대로 하여 하나님의 전체 성상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하며 우주의 사랑을 지킬 수 있는 인격을 형성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또한 30여 평생 하나님을 중심삼은 정성의 생활에서 쉴 새가 없었던 예수님의 생활, 역사와 우주를 대표하여 숫제물의 실체로 살아가신 그 예수님의 생활을 본받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30여 평생을 이렇게 살아가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었던가?그는 우주적인 사랑의 표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마음과 뜻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본성의 인륜의 법도를 세워 천륜을 향하여 나가려 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예수께서 하늘나라에서도 모든 만민을 대표하여 전체적인 선의 기준과 의의 기준을 세워 사탄과 대결하여 싸워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땅에 와서 성품과 뜻과 힘을 다하는 생활을 통하여 몸 마음이 선의 실체로 완성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예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가서야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의 상대의 입장에 설 수 있고, 예수님의 힘이 우리에게 연결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들은 성품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아버지께 바쳐지는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69
숫제물로 바쳐져야 할 기독교 신자
예수님이 4천년 역사와 만민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즐겨 받을 수 있는 산제물로, 생축의 제물로, 숫것으로 바쳐진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예수님께 숫것의 제물로 바쳐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생활과 생애에서 인륜과 천륜의 도리를 다해야 하며,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에 왔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늘의 아픔을 대신 느낄 수 있고 예수님이 느끼시던 천적인 사랑의 심정을 체휼하면서 준비한 교단으로부터 배척받아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야 했던 예수님의 사정을 알아드리는 신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의 원한을 풀 수 있는 동시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원한을 비로소 풀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이 땅에, 패역하고 배반하는 백성들을 찾아 오셔서 자신의 이상을 의논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반한 선조들을 가진 우리는 하늘을 배반해 온 노정을 거슬러올라가서 “아버지의 뜻이 이런 것이 아니옵니까?이 몸을 받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역사를 대표하고 나설 수 있는 숫것의 제물, 어느 누가 만지지도 않고 보지도 않았던 숫것의 제물로 드려질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성품을 다한다 하더라도 현재 여러분의 성품은 사탄 세상의 용납을 받던 성품이요, 마음을 다한다 하더라도 사탄과 속삭이던 마음이요, 뜻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에 처한 여러분은 반드시 사탄적인 성품과 마음을 변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인생관과 우주관도 바꾸어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이제까지 알고 있던 신앙관을 가지고는 사탄을 이길 수 없고, 사탄의 참소조건에 걸려 있는 무대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숫것의 제물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인 것이며, 이것은 예수께서 당신의 성품과 마음과 뜻을 이 땅의 인간들에게 소개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성을 대표하고 만물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귀하게 볼 수 있고, 하나님이 참되다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기뻐하고 사랑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없는, 사탄의 소유가 될 수 없는 성품을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성품을 느꼈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천적인 인격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런 마음을 느꼈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내적 사정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인격과 내적 사정을 헤아리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역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찾아야 할 놀라운 역사적인 우주의 초점, 넘어야 할 우주적인 관문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숫것으로 드려지기를 바라는 예수의 소망이 남아 있는데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소망을 어떻게 찾아 이룰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이 소망을 찾으려면 여러분의 과거의 부족함을 깨달아야 하고, 그 부족함을 하나님께 통회해야 할 것입니다. 회개하더라도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려야 할 것이며, 30여 평생 흘렸던 예수님의 눈물을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또, 여러분은 예수께서 30여 평생 자나 깨나 먹으나 굶으나 일편단심 그 한뜻을 세우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던 그 소망의 성품을 본받아야 하고, 죽음의 길을 가야 되었던 예수님의 비참한 심정을 느껴야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땅 위의 믿지 않는 인간들을 위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시는 생활을 하셨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저 나라에 가셔서까지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내적 심정을 통할 수 있고, 내적인 천성의 이념을 알 수 있고, 내적인 예수의 생활적인 모습을 알아 가지고 눈물을 흘려 하늘땅에 채워도 부족함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눈물이 어리고 뼈살이 녹아지는 애달픈 심정을 이어받고, 성품을 통하고 마음과 뜻을 통한 예수님의 그 모든 사랑과 인격을 나를 통하여 표현할 수 있게 될 때 거기에서부터 여러분들은 천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예수와 하나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느끼는 여러분이라면 죽음의 구렁에서 나를 살려주신 예수님앞에 감사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 몸에 채우고 온 땅과 하늘에 채워도 부족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느 정도의 서러움을 느끼셨던가?여러분은 이것을 잘 모를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실 때 하나님이 느끼셨던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은 그 서러움을 풀어드리기 위하여, 또 인간을 찾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오셨지만, 자신을 보내신 그 뜻을 이루어드릴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실 때 느끼시던 그 서러움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원한을 해원해야 될 인간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도 서러워 할 줄 모르는 인간이 되었으며, 신랑인 예수님을 잃어버리고도 서러워 할 줄 모르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또한 자신에게는 하나님의 서러움을 위로해 드려야 될 책임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러한 입장에 머물러 있다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섭리 앞에 나서서 아무리 아버지를 불러도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헛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대하여 `나의 아버지’라고 하신 것과 같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댄 하늘땅이 감동할 것입니다.

2-71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
그러므로 여러분은 역사를 넘어서 예수와 성신의 심정을 체휼함과 동시에 6천년 전 안타까우셨던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체휼하여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된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 예수께서 소망하던 사랑을 하늘땅에 이루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 개인적인 가치관과 편벽된 인생관을 가지고 하늘을 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내가 되면 아버지를 부르지 않아도 아버지가 찾아오실 것이며, 주를 부르지 않아도 주께서 찾아오셔서 나를 포옹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면 마음 몸 전체가 그 사랑에 취하여 즐거워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아버지의 사랑과 심정을 통하고 나서야 강철이 지남철에 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랑을 중심한 인연에 의해 사랑의 실체로 이 땅의 만민 앞에 나타나신 예수께서 이루시려던 천국이념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셋만 있었다면 예수님 당시 인류의 완전부활의 역사는 출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라고 하셨던 말씀을 붙들고, 4천년 동안 예수님을 세우기 위해 수고하셨던 하나님을 대신하고, 예수와 성신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셋이라도 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라갔던들 사탄은 자연굴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세 제자를 불러 세우셨고, 어려운 때나 기쁠 때나 이들을 데리고 다니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삼위신의 역사를 대신한 이런 천륜적인 종교를 인간세상에 세우시기 위한 뜻이 있었던 것을 무지한 제자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지혜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지혜와 지식을 갖추어 천적인 내용을 밝히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예수님의 깊은 뜻을 몰랐던 사도들과 같은 입장에 서지 말아야겠습니다.

나를 부르시고 택해 주신 교회와 뜻 앞에 일생을 바쳐 하늘의 면목을 세워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예수님의 소망이었던 천국이 땅 위에 나타날 수 있으며, 땅 위에서 원수 사탄을 자연굴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과 동고동락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할 수 있는 아들딸이 나타나 사탄으로부터도 경배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삼위신은 역사해 왔고,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수고의 노정을 걸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와 천군천사, 땅 위에 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늘 대한 성품을 중심삼고 사탄을 자연굴복시켜 하늘의 영광을 노래하게 하며, 복귀섭리를 위해 땅 위에 이들을 모두 동원시킬 수 있는 한 인격의 실체가 땅 위에 나타나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했던 예수님의 소망과 사랑을 이 땅에 실현시킬 수 있고, 아니 즐거울래야 아니 즐거울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2-73
기 도
가증스러운 입장에서 편벽되게 살고 있는 데도 자기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불쌍한 자신들임을 이 시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우리가 어느 한 때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을 아버님께 숫것으로 드린 때가 있었나이까? 인류와 민족과 국가와 세계와 천주를 대표하여 그럴 때가 없었을진대, 스스로 이것을 회개하고 아버지 앞에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통감하는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우리는 알았사오니 우리의 모든 생활을 숫것으로 드려야 하겠사옵고, 우리에게 있는 모든 힘을 숫것으로 드려야 되겠고, 우리의 몸 마음을 숫것으로 드려야 되겠으며, 우리의 성품을 숫것으로 드려야 되겠습니다.

숫것 아니면 취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정을 알면서도 저희는 쓰다 남은 것을 하늘 앞에 바쳤고, 생활을 아무렇게나 해 왔사오니 부족한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은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수고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심정적인 면에서 모든 것을 숫것으로 아버지 앞에 드리겠사오니 축복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여! 이 날부터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생사를 개의치 않고 하늘을 사모하시던 예수님의 심정을 체휼하는 이들이 되게 허락해주시옵소서.

새로운 사랑을 중심삼은 하늘의 성품과 뜻을 본받는 저희들이 되어 사랑을 중심삼은 이스라엘이 되게 해 주시고, 사랑을 중심삼은 하늘생활을 영위하여 하늘을 모실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하늘이 즐길 수 있는 동시에 예수와 성신이 즐길 수 있으며, 천천만 성도들이 즐기고, 온 땅위의 피조만물까지 영원히 즐길 수 있는 이상세계를 건설해야 될 성도, 또 사탄을 굴복시켜 아버지 앞에 자랑스럽게 설 수 있는 참된 승리의 신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되지 말게 깨우쳐 주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 회개하여 눈물을 흘리더라도 세계적으로 흘리게 해 주시고, 마음을 다하더라도 우주적으로, 뜻을 다하더라도 우주적으로, 성품을 다하더라도 천주적이 되고도 남음이 있게 인도해 주시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또한 저희들,숫것으로 드리는 생활을 하여 개인의 것을 모아 전체의 것으로서 종족과 민족과 국가, 인류를 대신하여 바칠 수 있는 영광을 얻게 허락해 주시고, 새로운 몸 마음을 단장하여 아버님께 나갈 수있게 이끌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