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8: 타락의 고개를 넘어 본연의 동산에 들어가자

타락의 고개를 넘어 본연의 동산에 들어가자
1957.07.28 (일), 한국 전본부교회

2-328
타락의 고개를 넘어 본연의 동산에 들어가자
창세기 1:28, 3:6-24

창세기 1장 28절과 3장 6절 이하 마지막 절까지를 보면, 먼저 하나님께서 인간을 축복하셨던 사실을 다음에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으로 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귀절은 아담 해와의 타락 직전부터 타락한 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기까지의 기록입니다.

이 일은 아담 해와에게서 일어난 것이지마는, 그들이 인류의 조상이요 만물의 주관자였기 때문에 그들만 심판의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피조세계의 모든 존재에게도 그 영향이 미쳐졌던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기쁨은 슬픔으로 변하였고, 인간의 소망은 낙망으로 변하였으며, 하늘땅이 서러움과 원한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망으로 떨어지게 되었던 그 당시 아담 해와의 심경이 분명히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온 만물을 앞에 놓고 아담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에 기뻤던 그 심경과 타락 후 만물을 잃어버리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추방당할 때의 그 심경과는 양 극단의 차이였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아담 해와는 온 만물과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으며 상하.전후.좌우를 살펴봐도 중심을 잡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끝날에 처한 우리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처참한 인연을 벗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아담이 저지른 죄악은 역대 선조들을 통하여 시대와 국가 또는 민족을 초월하여 법칙적인 형태를 취하면서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내 한 자체가, 다시 온 우주적인 가치를 가지고 천성의 뜻을 나타내어 그 가치가 천성의 가치와 동일하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는 어떠한 역사적인 어려움을 거쳐서라도 내 한 자체가 우주 가운데에 찾아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한 인간의 이상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본연이 동산은 나를 통하여 나타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에덴동산의 서러움은 한낱 에덴동산에의 서러움에 그친 것이 아니요, 타락한 아담 해와를 대하던 하나님의 서러움과 낙망은 오늘날의 억조창생에까지 이어져 있음을 여러분들이 깨닫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나 자신인 것입니다. 나는 어느 한 가정 혹은 종족에만 국한된 존재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거기에만 국한된 나 자신이 아닙니다. 나는 소망의 이상을 걸어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추와 같은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소망은 우주적이요, 역사적인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소망이 이루어지게 되면 모든 인류는 나와 관계를 맺고자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사실을 생각할 때, 나를 세워 이들의 소망을 이루어야 하고 또 이들과 함께 내 본성의 미를 하나님 앞에 나타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가치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하는 것이 인간들이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찾기 위해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아담 해와의 타락 직전의 입장과 타락 직후의 입장을 여러분들이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를 대하여 친히`내 아들딸아!’하고 부르는 것이 소망이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타락이란 무엇인가? 타락이란 하나님과 인간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부자의 관계를 갈라놓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담 해와가 맨처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것이었는데, 사탄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사실이 역사적인 서러움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불신하여 배반하였던 것이 우주적인 한(恨)의 씨로 뿌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는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끝날에는 부자의 관계가 틀어지는 일이 나타날 것입니다. 인간 조상에게 하나님을 배신했던 불신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그 혈통을 받고 난 인간들에게도 끝날에는 자식이 부모에게 대항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시대가 올 때에, 배반할래야 배반할 수 없는 참부모를 이 땅에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머무르는 현재의 환경은 믿음의 인연으로 맺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신의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가 이러하고 부부의 관계가 이러하고, 또 일가친척의 관계가 불신의 풍조가 되어, 인간들이 지향하고 있는 의지까지도 근본적으로 파탄시켜 버리는 거부현상이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면 여러분은 그때가 끝날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목도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그러한 입장에 서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사탄의 말을 들어서 타락하였으니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동시에 생각지도 않은 사탄의 말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이 땅에도 이러한 두 갈래의 말이 생기게 되었는데, 하나는 참것에 속하고 다른 하나는 거짓것에 속하여 언제 어느때나 여러분의 생활에 직접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바라는 참아버지,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통하여 나온 말씀을 지켜 그 말씀을 여러분의 생명의 표준, 이념의 표준, 싸움의 표준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땅 위에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중심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습니다. 어떠한 주의나 계통에 의한 개인의 이념을 중심한 말씀은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영원한 표준으로 삼아 변할 줄 모르는 모습으로, 생명을 걸고 투쟁하는 무리는 점점 없어져 갑니다. 사탄처럼 자기를 중심한 말을 하는 자가 자꾸만 늘어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꼬인 존재를 뱀이라고 하는데 이 뱀은 혀가 둘인 것이니 한 혀를 가지고 두 말을 하는 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륜을 대신한 말씀을 품은 자는, 아니면 아니고, 그러면 그렇다는 말씀을 중심을 세워서 그 말씀을 사수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좌도 우도 아닌 입장에 서면 안 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입장은 이쪽에 가서 혼란만 일으키고 저쪽에 가서 혼란을 일으키는 입장보다 더 나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담 해와는 타락하여 자신의 몸을 잃었고, 믿음을 잃었고, 말씀을 잃었고, 동시에 실체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믿음과 말씀을 다시 찾았으며 남은 것은 오직 실체를 복귀하는 것뿐이니, 이 실체를 복귀시키는 때가 왈(曰) 우리가 소망하고 있는 `재림의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된 실체적인 기준에까지 오르기 위하여 우리가 넘어야 할 고개가 있는데, 문제는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운행하실 수 있는 실체가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는 상대적 입장에서 명령하셨고, 상대적인 입장에서 믿음의 조건을 보고 그를 대하셨지만, 앞으로는 실체를 찾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적인 입장이 아니라 내 마음과 몸이 일체됨으로써 내 한 실체를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실체를 찾기 위해서는 창조의 법칙을 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되고, 마음과 몸이 하나되고, 몸과 상대되는 모든 것이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 상대기준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참 상대기준을 통하여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이 지향하는 이념을 찾아야 하고, 마음이 명령하면 몸이 따르게 되는 마음과 몸의 일치점을 찾아야 하고, 또 몸과 마음이 함께 지향하는 어떤 목적을 땅 위에 남겨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귀과정에 있는 여러분들은 이제까지 모순되었던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되어 하나님께서 믿을 수 있고, 또 하늘의 중심을 대할 수 있었던 타락 전의 아담 해와의 입장에 있다면, 내 마음은 몸과 하나될 수 있고 몸은 마음과 하나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게 되면 만물과도 하나되는 생활환경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의 여러분에게는 어떤 사명이 있는가? 우주적인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실체복귀를 위하여 준비하여 온 역사적인 천적인 가치를 인계받아 실천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의 실천 여하에 따라 여러분에게는 상대적인 이 땅에서 지도적인 권한이 부여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며, 그 부여되는 권한여하에 따라서 천적인 인격이 형성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는 성막으로부터 출발하여 성전을 거쳐 실체에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인격자로 오셨기 때문에 그를 중심하여 하나님은 섭리역사를 이루어 나오셨고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라 신앙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그리스도를 닮게 되면 죄악역사는 뒤집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심판의 결전장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복귀섭리를 책임진 자신임을 생각하고 자신을 온 우주 앞에 세워 보십시오, 천 가지 물건이 있으면 천 가지의 주인으로서, 만가지 물건이 있으면 만가지 주인으로서 자격이 자신에게 있는가가 문제인 것입니다.

만물의 소망이 무엇이냐 하면 다른 어느 것도 아니며, 오직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영광의 날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실체대상이 되려면 어디에 가든지 어떤 환경에 머무르든지 이 일을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것도 내 일이고 저것도 내 일이구나! 어느 하나 나와 관계없는 일이 없구나! 아버지여 제가 살아서 이 일을 하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이루게 하소서!” 이렇게 호소하면서 무슨 일이라도 책임을 진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만물들은 나와 관계를 맺고 나와 함께 살면서 즐기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또 지금까지 슬픔이 있게 한 사탄이 하나님께 인간들을 참소하는 데 대하여, 적개심을 품고 싸워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버지! 사랑하시는 아버지, 제가 아버지 대신 싸우겠습니다. 아버지의 원수를 제가 갚아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것을 제가 찾아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이념을 찾기 위해 저희 자신을 아버지의 뜻대로 쓰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실체성전 복귀의 뜻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들은 처해 있는 생활환경 가운데서 천국을 이루기 위하여 항상 천륜에 합당한 자신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선악을 분리하는 성별(聖別)의 생활로 자신에 혁신을 일으켜, 영원불변의 투사로서 하늘의 정병으로서의 승리의 모습을 갖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딸이 된 것을 자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끝날 심판의 고개를 넘어가 복귀된 에덴의 이상동산에 들어가 진리체로서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