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9 to 2-313: 하나님을 위한 승리자가 되자

하나님을 위한 승리자가 되자
1957.06.30 (일), 한국 전본부교회

2-299
하나님을 위한 승리자가 되자
누가복음 19:8-44, 22:39-46, 23:44-49

[기 도]

아담 이후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오신 아버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눈물과 땀과 피의 열매로서 아버님의 실체로서 아버님의 눈물을 대신하고 땀을 대신하고 피를 대신해야 할 사명과 아버님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할 사명을 띠고 오셨던 것을 저희들이 아옵나이다. 그러한 그리스도께서 하늘을 대신하여 눈물의 길을 걸었고, 만민을 대신하여 쉴 사이 없는 수고의 길을 걸었고, 땀 흘리는 공생애 노정을 걸었던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님, 저희들이 그러한 그리스도를 대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있는지 진심으로 반성하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온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피의 제단을 연하여 그 실체로 찾아오셔서 피 흘리며 가시던 그 모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저희들이 될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산정을 향하여 올라가실 때, 멀리서 그를 바라보며 애도하는 연약한 여인들을 보고,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의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시던 간곡한 그리스도의 심정을 오늘 이 시간 저희들의 체휼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정경을 알지 못하는 자는 십자가의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십자가에 나아갈 때의 예수님의 심정을 체휼할 줄 모르는 자는 진리의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이 시간 모인 아들딸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저희들이 가진 것 없고, 아버님께 드릴 것이 없을지라도 겟세마네동산의 외로운 그리스도의 모습을 마음속에 새겨 침범해 들어오는 원수들을 맞아 싸우고 선의 파수꾼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예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외쳤던 그 최후의 호소를 저희들이 오늘날 황무지와 같은 이 세상을 향하여 외치면서 세계적인 골고다산정을 넘어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오니, 그리스도를 멀리하고 자신을 위하여 사는 아들딸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여기 모인 이 수다한 생명들을 아버지께서 책임지시어서 이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가고자 하는 복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옵고, 이 자리에 불길같은 은사를 내려 주시옵소서.

아버님! 여기에 모인 자녀들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까, 또는 사망에 파묻히어 아버님의 심정을 느끼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까? 아버님, 성령의 불길로서 나타나시옵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를 나타내셔서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 부활의 역사가 저희들에게 이 시간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저희들을 불러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다만 저희들이 맡겨주신 사명을 받들어 아버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지 못할까봐 염려되옵나이다.

아버님! 여기에 엎드린 아들딸들,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대신하여 어려움이 있을 때에 자신이 먼저 그 어려움을 책임지고, 슬픈 일이 있을 때도 자신의 먼저 그 슬픔을 책임지고, 자신의 고통을 당하여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이 원하시는 뜻이라면 이를 기꺼이 감수하면서 싸워 나갈 수 있는 모습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여기에 참석한 아들딸들 중 한 생명이라도 사탄에게 끌려가지 말게 하옵시고, 모처럼 살길을 찾아 이곳까지 왔사오니 버리지 마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하옵나이다.

이 시간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되게 하셔서 아버님의 마음에 저희들의 마음 몸이 동(動)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아버님과 하나되어 화동할 수 있고, 아버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로서 재창조될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나이다.

이 시간 곳곳에 널려 외로운 제단을 쌓고 기도하고 있는 아들딸들이 있사온데, 그들에게도 일률적인 은사로 역사하옵시고, 사탄이 틈타지 말게 해 주시옵기를 부탁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2-301
말 씀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하나님을 위한 승리자가 되자’입니다. 이러한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기나긴 역사를 거쳐오면서도 지으신 만물들과 더불어 기쁨과 영광을 누려본 날이 없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승리의 날을 맞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승리의 날을 맞지 못한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주인공으로 지음받은 인간들에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리의 날은 하나님만의 노력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이 합해져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과 피조만물이 승리하는 영광의 날을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2-301
하나님의 소망과 예수님
그러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신 목적이 무엇이냐? 그것은 선의 목적을 달성한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온 만물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6천년의 기나긴 싸움의 역사과정을 거쳐나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창세 이후 지금까지 우주적인 승리의 한날을 맞지 못하신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인간을 통하여 소망하시는 그 승리의 날을 맞으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의 인간들이 그날을 찾아드리지 못하면, 이 땅에서 인간을 유린하고 있는 사탄을 처치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천상에서 하나님 앞에 인간을 참소하는 사탄의 세력도 물리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수고도 개의치 아니 하시고, 어떠한 희생도 개의치 아니하시며, 어떠한 싸움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오늘 이 시간까지 여러분 개개인을 세우시기 위하여 방패가 되어 나오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개체 개체를 세우시어, 인간을 타락케 했던 원수 사탄을 분별하여 사탄이 주관하는 악의 역사를 종결시키려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어 드리고, 하늘 앞이나 만물 앞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고, 하늘 앞에 승리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수고하여 오신 섭리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오랜 역사과정을 통하여 이러한 승리의 날을 찾으려 하였으나, 이제까지 찾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승리의 한날을 찾을 수 있는 한분을 보내주셨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오랜 역사과정을 통하여 인간들을 구하시기 위해 섭리해 오신 내적 심정과 만민의 모든 억울한 사정들을 체휼하신 분이었고, 이 땅에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대표자로 오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뜻과 인류가 소원하는 뜻을 성취하기 위해 나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사탄을 대하여, 창조주의 심정을 지니고 피조만물을 대표한 역사적인 책임자로, 또 선봉자로 서서 용감히 싸우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위업을 계승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또 그가 소망하던 뜻을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서러움은 물론이려니와 하나님의 서러움과 전 인류의 서러움이 이 땅 위에 또다시 맺혀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더더욱 느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기 위해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인계받아 하나님과 인간이 기뻐할 수 있는 한날을 맞이하기 위해 싸워나가야 할 책임을 진 우리들은, 이제 어떠한 생애노정을 걸어가야 할 것인가? 오늘날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자기 일신을 위해 살아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위로는 하늘, 아래로는 땅, 즉 모든 만상을 홀로 책임지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한날의 표준으로 하여 묵묵히 싸워나간 생애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머무는 장소나 밤과 낮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또 보이는 세상의 모든 핍박도 개의치 아니하셨고, 나아가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이 가시는 길을 가로막는 사탄을 물리치기 위해 전체적인 책임을 지시고 싸우셨던 용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누구나 그리스도를 선봉자로 모시고 그분의 뜻을 받들어, 그분이 가면 같이 가고 싸우면 같이 싸우며, 즉 동고동락하면서 하나님이 섭리해 오신 뜻과 인간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싸움을 전개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또, 예수님은 4천년 역사를 책임지시고 민족과 세계를 위하여 오셨고, 나아가서 영계의 수많은 생명까지도 책임지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기 일신을 위하여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민족만을 위하여 싸우셨거나 세계만을 위하여 싸우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역사와 우주를 초월한 천륜의 사명을 그 한 일신에 지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싸우셨습니다.

이러한 싸움은 예수님의 30여년의 생애를 거쳐오면서 계속되었고, 돌아가신 후 2천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까지도 계속되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쉴 때가 있지만, 그분은 쉴 사이 없이 오직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의 뜻,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한 날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성신과 함께 싸움을 전개해 나오시는 것을 여러분은 뼈저리게 느껴야 합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실수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도 분한데, 그분은 돌아가신 후에도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오늘날까지 2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영적인 골고다의 십자가노정을 거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을 이제까지 어떻게 믿어왔던가를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며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2-303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가시게 된 동기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그분은 하늘의 독생자요 하늘의 황태자이며, 만민의 구세주요 영광의 메시아로서, 고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입니다. 그러한 메시아를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분을 맞이하는 만민도 그분을 찬양하며 기뻐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민족이 그분을 불신하고 저주했기 때문에 그 기쁨이 서러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책임을 누가 짊어져야 되겠습니까? 뜻을 안 여러분이 책임을 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세계적인 기독교권이 형성된 것은 예수님께서 30여 평생 인류를 위하여 남모르는 수고의 눈물을 흘렸던 그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오늘날까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역사(役事)해 나오신 2천년의 서러움과 한맺힌 역사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눈물 흘리며 가셨던 그 길을 따라가면서 예수님을 서럽게 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과오까지도 책임지고 사탄 대하여 복수하기 위한 싸움을 전개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분이 공생애노정을 준비하는 기간에 단지 명상에만 잠겨 생활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요셉 가정에서 30년 동안 목수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은 수없이 남 모르는 눈물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의 서러운 사정을 형제들도 알지 못했고, 또한 누구보다도 잘 알아야 할 요셉과 마리아까지도 알지 못하였으니, 예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슬픈 심정 속에서 외로운 길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4천년 죄악역사를 종결짓고 하나님의 서러움과 인류의 서러움을 청산하기 위한 책임을 지고서 뜻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불변의 모습으로 사탄 대하여 싸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러한 예수님의 실천적인 생애를 본받으면 승리적인 생활의 기준을 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그와 같은 피눈물을 흘리는 생애의 길을 가게 되었던가? 그것은 4천년의 기나긴 역사과정이 눈물의 노정이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눈물의 역사를 거쳐 나오셨고, 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온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이런 눈물의 길을 거쳐 나왔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도 역시 그런 눈물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며, 자신의 생활이 미래에까지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과 선지선열들이 흘린 역사적인 눈물을 모두 탕감해야 할 책임을 느끼면서 모든 인류에게 소망을 안겨주기 위해 피눈물 나는 고난의 길을 자처해서 걸으셨던 것입니다.

2-305
역사적인 고난의 노정을 완주해야 할 끝날의 성도
오늘날 우리가 우주적인 소망의 한날, 승리의 한날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사탄과의 싸움의 노정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우리의 책임도 큰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 싸움의 노정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더 큰 눈물의 골짜기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아무런 미비함도 없이, 또 하나님 아들 이상의 아무런 소망도 갖지 않고 사셨는데, 제자들까지 동반하지 않은 가운데 홀로 겟세마네동산에 올라 하나님 앞에 눈물의 호소를 드리게 되었다니, 이게 웬말입니까? 여러분은 그러한 피눈물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심정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승리를 재촉하려는 오늘날 여러분은 진실로 예수님이 가셨던 우주적인 눈물의 고개를 예수님과 함께 넘어갈 수 있는 준비가 되었는가를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이후 인류역사는 눈물로 이어져 내려으므로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눈물의 노정을 걸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하나님의 섭리노정에서 뿐만 아니고 한 민족이나 국가를 위해 가는 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그 민족을 붙안고 눈물 흘리는 자를 우리는 선지자(先知者)라고 합니다. 한 국가도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선지자들이 이룩한 눈물어린 파란곡절의 승리의 역사를 거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이 역사적인 눈물의 고개를 넘지 않고서는 절대로 승리의 날을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30여년 동안 눈물의 고개를 넘어 골고다의 길, 개척의 길을 가시면서 피눈물을 흘렸듯이, 오늘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예수 그리스도의 원한을 해원해 드려야 할 책임을 진 사람들이라면 여러분의 마음속에서도 남 모르는 피눈물이 용솟음치고 있어야 할것입니다.

형제를 위하여 눈물 흘리고, 세계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뿐만 아니라 하늘을 위해서 막을래야 막을 수 없이 흐르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는 하늘의 사도가 있다 할진대는, 여기에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서러움에 북받쳐 우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서러워 우실 때에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친구가 이 땅에 한 사람도 없었기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인 연고로 타락한 아담의 서러움을 해소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또한 타락으로 인한 죄를 청산하기 위한 제2의 아담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까지도 해소시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는 소생의 역사요, 장성의 역사이기 때문에 부분적인 책임을 하는 것으로서 뜻 앞에 설 수 있었지만, 완성시기를 맞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런 부분적인 사명을 하는 것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완성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왔다 갔던 사람들이 분발했던 것보다도 천배 이상 분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붙들고 놓지 못하시고 서러워하신 애달픈 심정을 붙안고서 추우나 더우나, 자나 깨나 어떠한 환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이땅을 붙들고 누구보다도 많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이 민족이 통일의 법도를 찾아 세우려면 위의 사람은 아래로, 아랫사람은 위로, 이렇게 상하로 눈물이 교환되어 하나님 앞에까지 상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민족은 망하라 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서러운 사정과 땅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아 아버지의 마음과 통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눈물 흘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끝날에는 슬픔의 눈물이든 기쁨의 눈물이든 인간들은 눈물을 흘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천년 전 예수님께 고난의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동산을 지나야 하는 어두움의 장벽이 가로놓여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와 같은 십자가의 장벽이 가로놓인 세기말적인 종말의 때를 맞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남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리셨으니 예수님을 잃어버린 사도들이나 그 민족이나 세계의 만민들도 모두 눈물의 길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2-307
하나님의 뜻과 세계를 위해 흘려야 할 눈물
이와 같이 끝날의 인간들에게는 어차피 넘어야 할 눈물의 고개가 놓이게 되는데, 그때에 우리는 하늘을 위하여 울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위하여 울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때에 사탄이 어떤 사람을 노리는가 하면 천륜의 뜻을 가로막고 개인의 야욕을 충족시키려는 사람을 노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여러분이 역사적인 눈물을 흘려야 할 자리에서 자신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게 되면 사탄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천륜의 뜻을 붙들고 눈물 흘리게 되면 하늘편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이 동하게 할 수 있었고, 또 피조만물이 예수님을 모시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흘리신 눈물이 자신이나 자신의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세계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영원하신 소망의 뜻을 품고 흘리신 눈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눈물은 하나님의 소망과 통하고, 만민의 소망과 통하고, 만물의 소망과 통할 수 있는 자리에서 온 피조만물을 위하여 흘린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눈물 흘리며 살다가 돌아가셨으니, 그분을 모셔야 할 우리들도 그분이 눈물 흘리셨던 우주적인 슬픔을 체휼하여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만물까지도 함께 서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민족을 위해, 세계를 위해, 하늘을 위해 눈물을 흘리셨는데 오늘의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여러분도 뜻 앞에 서려면 예수님과 같이 개인을 중심삼은 눈물의 길을 거치고, 가정과 민족과 세계를 중심삼은 눈물의 길을 거친 연후에, 천상의 영인들의 원한까지 붙안고 눈물 흘리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하늘이 원하는 소망의 동산에 서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자기를 중심삼고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하늘 앞에 호소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의 그물에 걸려들고 맙니다. 진심으로 여러분이 하늘나라의 가정권내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개인을 넘어 가정을 책임지고 예수님 대신 눈물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또, 하늘나라의 종족권내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예수님 대신 종족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되고, 민족권내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을 대신하여 민족을 위하여 눈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땅과 천상까지 책임지고 가신 예수님의 면목을 세워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항상 염려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신 후 2천년 동안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가 하면 인간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기독교인들이 가는 길은 눈물의 길이었고, 눈물 없이 섭리역사는 이루어져 나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사도시대를 거쳐 70문도들이 로마에서 오랫동안 눈물의 제단을 쌓아 개인에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점점 넓혀 오늘날 세계적인 기독교의 판도를 이루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독교사 가운데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우는 자는 있었으나, 진심으로 예수님을 대신하여 세계를 위해 눈물 흘렸던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종말의 때이므로 세계적인 눈물의 골고다를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을 위하여 울 때도, 가정을 위해 울 때도, 국가를 위해 울 때도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천년 동안 역사해 오시면서 우리들이 세계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붙안고 눈물 흘리는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그러한 내용을 깨달아 하나님을 위하여 눈물 흘리는 성도들이 없었으니, 우리들이 이 일을 책임져 하늘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은 다시 한번 눈물을 흘리시게 되고, 하나님께서도 또다시 눈물을 흘리시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수님께서 승리자로 서시기 위하여 인류역사를 책임지시고 사탄과 싸우면서 눈물 흘리셨던 것처럼, “저희도 눈물의 선봉자로서 하나님과 인연을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할 때가 되었습니다.

세계의 사조(思潮)를 보더라도 지금까지 기독주의(基督主義)를 지향할 수 있도록 국가주의(國家主義)를 폐하여, 오시는 그 슬픔의 주인공을 영접할 수 있는 세계적인 판도를 넓혀 나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제는 인류가 세계적으로 예수님을 맞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인류는 세계적인 골고다의 언덕을 넘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때를 당한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울더라도 `하늘을 위하여 우느냐, 땅을 위하여 우느냐, 아니면 자신을 위하여 우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데, 여기서 누구를 위하여 우느냐에 따라 여러분들이 나아가는 길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 고해(苦海)와 같은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펴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전체의 뜻을 망각한 채 자신의 뜻을 중심삼고 서러워하고 우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자는 뜻을 향해 가는 길에서 자연히 추방당하고 말 것입니다.

뜻을 따라가는 우리들은 자신의 사정으로 눈물 흘려서는 안 되며, 또 뜻을 위하겠다는 민족·국가·세계가 있다면 그들도 자체만을 위해서 눈물 흘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오직 전 세계인류를 위해서 눈물 흘려야 합니다.

2-309
피·땀·눈물 흘리는 生活의 價値
인간과 중단되어진 천륜의 뜻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다시 연결시켜져야 할 이때에 있어서 여러분 자신들이 사탄과 싸워 승리의 눈물을 흘려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그날을 찾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세계적인 승리의 한날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뜻을 이루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가셨듯이 여러분들도 우주적인 승리의 한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주의 역사도 눈물의 길, 고통의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고, 어느 한 개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도 피땀 흘리는 길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 모두는 어려움을 참고 고통을 넘으면서 사탄과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하늘을 위하여 얼마나 애써서 싸웠습니까? 여러분은 개인을 위하여 혹은 가정을 위하여 눈물 흘리고 땀 흘린 적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가정 뿐만이 아니고 민족·세계를 넘어 책임지고 눈물 흘리고 땀 흘리셨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예수님처럼 여러분 한개인을 넘고 가정·국가를 넘어서서 세계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땀 흘리는 길을 가야 합니다.

눈물과 땀 흘리는 싸움의 노정을 거치는 이것이 승리할 수 있는 첫번째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눈물의 길을 거치고 땀 흘리는 길을 거치면서 고난과 싸워 나가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은 겟세마네동산에서 눈물 흘리며 땀 흘리는 기도를 하셨는데, 여러분은 그와 같은 예수님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이와 같이 눈물 흘리고 땀 흘리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단결된 민족은 지금까지 망한 역사가 없었습니다.

영계에서 천국권내에 들어간 영광의 영인들은 어떠한 무리입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가신 길을 본받아 이 땅에서 쉬지 않고 눈물을 흘리고 땀 흘리면서 싸움의 노정을 개척해 간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우주적인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승리의 조건을 세워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이 땅에 왔다 갔던 역사상의 어떠한 사람보다도 더 많은 눈물과 땀을 흘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가정을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가정을 위하여 땀 흘려야 합니다. 또 여러분이 민족을 사랑한다면 민족을 위하여 땀 흘려야 하며, 세계를 사랑한다면 세계를 위해 땀 흘려야 합니다.

우리도 남이 가지 않는 숨은 제단을 쌓고 세계 인류를 대표하여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을 본받아, 세계 인류를 위해 땀 흘리고 눈물 흘릴 줄 아는 제 2의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의 뜻을 위해 생명을 걸고 눈물 흘리면서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땀 흘리면서 기도한 시간이 있습니까? 비록 우리가 눈물의 과정을 거치고 땀 흘리는 길을 갔더라도 우리 앞에는 최후로 피 흘리는 죽음의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3년 공생애 노정을 거치신 후에 만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죽음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 오셨던 예수님께서도 이처럼 영적인 승리의 날을 갖기 위해서 생명을 아버지께 바치며 피 흘리는 노정을 거쳐가셨거늘, 오늘날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주적인 사명을 담당하겠다고 나선 우리들일진대 예수님의 가신 그 길을 본받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2-311
十字架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희생정신
여러분들에게 생명이 남아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소망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나아가려는 뜻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들은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그의 생명이 자신을 위한 생명인줄 알았다면 십자가의 죽음을 넘어 부활을 성취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 아버지의 것인 줄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는 고난과 시련을 참고 나가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 십자가의 길은 결코 예수님 일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도 여러분의 생명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니며, 이 세계도 인간의 것이 아니며, 우주도 인간의 것이 아니며, 만물도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상과 이념을 중심에 세우고 있습니까? 아버지를 위하여 호소하는 주의와 이념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죽어도 아버지를 위해 죽고, 살아도 아버지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를 가지고 하늘을 위해 살아간다 할진대는 죽더라도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면 살더라도 영광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운명의 죽음길을 넘어야 하는 우리는 왜 이런 길을 가야만 되느냐를 각자가 판단해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물 흘리는 길, 땀 흘리는 길을 걸으신 후 최후에는 당신의 일신까지 하늘 앞에 바치셨습니다. 하늘을 위해서는 자신을 인정하시지 않고 전부를 바치면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이 이처럼 피 흘리는 생축의 제물이 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을 온전히 바칠 때에 하나님께서 완전히 받으실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사탄세계에 대해 승리해야 할 여러분이라 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하늘 앞에 바치려 하지나 않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드려야 할 지극히 거룩한 제물이 되어야 한다면, 거기에 나를 중심삼은 그 어떤 요소가 있다 할진대는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나의 아들딸아!” 부를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그것을 원한다면 여러분은 하늘의 진리, 하늘의 생명, 하늘의 사랑을 세워야 하고 만물과 여러분 자신을 하늘 것으로 찾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다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자신의 뜻을 아버지 뜻으로 귀결시켜 하늘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소망을 성취할 수 없으며,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들은 타락했기 때문에 수천년 동안 땀 흘리는 수고의 길을 거쳐 나왔고, 피눈물의 고개를 거치고 죽음의 길을 거치면서 하나님 앞에 산 제물이 되기 위해서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우리들도 그와 같이 민족을 위하여 제물된 길을 가야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뒤를 따르는 자들도 그 길을 따라갈 것이며, 원수 사탄까지도 굴복시켜 친구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6천년 동안 수고하여 왔던 인간이 이제는 승리적인 영광을 갖추어서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책임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을 반대하여 온 사탄이 여러분까지도 반대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탄의 반대가 돌변하여 사탄이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 앞에 제물 드리게 되는 그날이 바로 끝날, 대 심판의 날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탄이 하나님 앞에 승복(承服)할 수 있는 조건, 즉 천륜을 중심삼고 출발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 놓고 사탄에 대하여 명령하게 될 때에는, 사탄도 그 명령에 순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여러분은 하늘 땅에 있어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313
하나님과 영원한 父子의 관계를 맺는 길
우리가 이처럼 승리자가 되어 하늘 앞에 나타날 때 우리들은 비로소 영원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이상의 동산에서 사탄과 인연이 없는 가운데 하나님 중심한 영원 불변의 참모습이 되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탄도 이 최후의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온 힘을 기울여 침범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도 지성을 다해야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딸들인 여러분들도 혼신의 힘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는 사탄은 맹목적으로 여러분에게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사탄의 주관을 받고 있는 인간들과 함께, 있는 힘을 다하여 대항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늘을 위하여 눈물 흘리듯이 사탄도 사탄의 뜻을 위해 눈물 흘리고, 우리가 하늘을 위하여 땀 흘리듯이, 사탄도 자신을 위하여 땀 흘리며 우리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듯이, 사탄도 자신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두 세력이 대결하는 데 있어서 우리들이 승리하려면 나를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철저하게 아버지를 위해 살아야 되며 자신의 뜻을 무(無)로 하여 아버지 앞에 전체를 바쳐 아버지의 가치를 세워드리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영원히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사탄을 무찌르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부터 더욱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2-313
기 도
아버님! 저희들이 이제 하나님을 위한 승리자가 되기 위한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이 길을 눈물의 길이요, 피와 땀의 길이요, 또 이 길은 자신의 피와 살을 모든 원소로 분립하여 만민 앞에 나눠주는 제물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이 길을 벗어나게 될 때에 저희들은 아버님이 소망하시는 우주적인 승리의 동산에서 살 수 없다는 것도 알았사옵나이다.

아버지! 저희의 생명이 저희 것이 아니옵고, 저희 사랑이 저희 것이 아니옵고, 저희의 자녀도 저희 것이 아니옵고, 저희의 모든 물질도 저희 것이 아닌 것을 아옵나이다.

저희들이 저희의 욕심으로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소유하려 한다면 저희들에게 소유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오니, 저희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제물된 입장에 서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6천년의 원한을 탕감하고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오니 아버님, 오늘 여기에 모인 아들딸들, 이 길을 가기 위해 눈물의 길도, 땀 흘리는 길도, 죽음의 길도 개의치 않고 오로지 아버지를 대신해서 세계적이요 천주적인 사명을 다하여 복귀된 입장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원수 사탄을 주관하고 기쁨의 눈물로서 아버지 앞에 만물만상을 돌려드릴 수 있는 자녀들의 모습으로 세워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저희들로 하여금 승리를 위한 눈물의 길, 땀의 길, 피의 길을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승리의 길을 개척해야 할 사명이 오늘 저희들에게 부여되었사오니, 저희들이 이 역사적인 승리의 사명을 다하여 십자가의 제물로 바쳐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나는 아버지의 제물입니다”라고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탄을 위하여도 눈물 흘리게 되면 사탄까지도 “옳소이다, 과연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음을 아옵니다. 하오니, 저희가 그러한 무리가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