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1 to 2-161: 주는 나의 선한 목자

주는 나의 선한 목자
1957.03.31 (일), 한국 전본부교회

2-151
주는 나의 선한 목자
마태복음 25:29-46

[기 도]

분부하시는 말씀에 의하여 억조창생이 소생의 빛을 나타내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보내시는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싸움터를 향하여 진군하고 있는 당신의 정병들 위에 영원한 승리의 방패가 높이 들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험하고 어지러운 이 땅, 죄악과 사망의 물결이 흐르고 있는 이 땅, 참다운 하늘의 심정을 품고 있는 자들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나갈 수 없는 참혹한 이 땅에 살고 있는 저희들, 일주일을 지내면서 받은 상처를 무릅쓰고 아버님 앞에 나왔사오니 긍휼의 아버님이여! 권고의 손길을 저희들에게 펴 주시옵고,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들은 당신이 찾으시던 아들딸이옵니다. 하오니, 이 한 시간 친히 당신의 마음에 사무쳤던 사정을 이들에게 털어놓으시고, 또 명령해 주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보잘것없는 것들은 아버님이 분부하시는 말씀에 의하여 자신의 전부를 들어내놓고 이 한 시간이라도 속죄의 제물로 당신 앞에 드려지기를 원하고 있사오니 나의 아버님, 이 시간 버리지 마시옵고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들을 친히 지켜 주시옵고, 이끌어 주시옵고, 세워 주시옵고, 성별시켜 주시옵소서.

어두운 이 세상에서 하늘을 향해 나가기 위해 애쓰다가 죽어간 성도들을 대신하여 생명의 빛을 발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고, 죄악의 무덤을 헤치고 나설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은 거룩한 날, 만민을 축복하기 위해 세워주신 날이옵니다. 이 시간에도 외로운 이 민족, 불쌍한 이 민족 중에는 갈길이 없음을 자탄하면서 아버님 앞에 엎드린 무리들이 많은 것을 알게 될 때, 아버지 그들의 갈길과 그들이 행하여야 할 표준을 당신께서 열어 주시고 제시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이 나라에 당신의 권고의 손길이 커야 할 것을 느끼게 되옵고 아버님의 천정이 이 민족 전체에게 미쳐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믿고 있사오니, 끝날에 맡기실 전체의 사명을 먼저 이 자리에 참석한 아들딸들에게 맡겨 주시옵고, 그리하여 이들이 어둠 가운데 헤매고 있는 삼천만 민족을 깨우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시며, 사망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는 불쌍한 이방민족들까지도 깨우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인간들이 세워놓은 뜻과 인간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하늘이 움직여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나이다. 인간의 제도와 인간의 형식은 끝날 심판대 앞에서 사라질 것이로되 천륜을 향한 성실한 마음과 천륜을 대한 지성과 충절만은 심판대를 넘어 아버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어 찬양과 영광을 받는 날이 있게 하는 것을 아오니, 아버님, 하늘을 향하여 충절에 사무친 마음을 지니고 하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충복의 아들딸이 되어서 끝날에 아버님의 심판대를 넘어갈 수 있고, 아버님의 내적 심정에 기억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약속하신 말씀과 허락하신 은사가 내려지기를 바라며 엎드렸사오니, 이 한 해도 싸움의 노정을 가야 하는 이 아들딸들에게 내적 외적으로 사무쳐 오는 아버님의 감동의 역사가 그 몸마음을 폭발시키어서 죄의 요소를 제압하고 선의 실체로 승화시켜 갈 수 있도록 아버님의 역사가 이 시간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 흩어진 마음을 모아 상처난 흔적을 아버님 앞에 내어놓고 있는 그대로 바쳐드리고자 하오니 긍휼의 손길로써 붙드시옵고, 승리의 향유를 바르시어서 싸매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한시간을 아버님 앞에 맡겼사오니 사탄이 틈타는 시간 되지 말게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주의 이름으로써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2-153
말 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주는 나의 선한 목자’입니다. 이런 제목으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모셔야 할 주인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물까지도 주인을 잃어 버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의 주의(主義)와 주장(主張)중에 참다운 주인으로부터 우러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불완전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탈피하여 완전한 것을 찾으려 하고 있으며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평안을 찾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2-153
사랑·생명·소망의 中心으로 오신 예수님
인간은 타락함으로 인하여 생명과 사랑과 소망의 주인을 잃어버렸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중심삼고 영원한 사랑의 동산에서 영원한 이상을 노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하여 이것을 잃어버리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이것을 다시 찾아주기 위하여 오랜 역사를 거쳐오며 수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모든 인간은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몸으로 하여금 마음을 따르게 함으로써 참마음의 소유자가 될 때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연히 되어지는 게 아닙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갖은 고난과 투쟁의 역사를 거쳐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주적으로 가로막혀 있는 운명의 길을 어떻게 뚫고 나가야 되겠느냐…. 이 운명의 길은 우리 인간이 지금까지 넘지 못하고 안타까와했던 한맺힌 고개인데 인간이 이러한 운명의 고개를 넘기 전에는 본연의 참주인, 즉 선과 사랑과 이상의 주인공 되시는 분을 찾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주인공이신 하나님께서는 본연의 인간과 함께 즐기며 함께 살아가려는 그 이상을 중심삼고 타락한 인간들을 다시 끌어올리시는 구원섭리를 6천년 동안이나 해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본연의 이상동산을 그리워해 온 우리들이지만, 우리는 미급하고 미진하기 때문에 완전한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싸움의 노정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 자신들임을 살려보아야 하고, 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사탄과 악한 사람들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를 어두움 가운데서 끌어올리시기 위하여 내·외적으로 수고하시는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살펴서 악의 세력과 싸워 이김으로써 이 전체의 서러움, 전체의 원한을 청산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복귀의 노정을 거쳐가지 못하게 되고, 복귀의 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우리는 끝날에 참주인공으로 오시는 아버지를 대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생명의 인간으로 세우시기 위해서 모든 인간이 영원하신 주인공을 맞을 수 있는 그 한 동산까지 이끌어 주어야 할 책임을 지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미약하고 불비한 인간들에게 생명의 중심으로서, 그리고 소망과 사랑의 중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들이 맞아야 할 그 소망의 중심을 역사적인 소망의 끝에 가서 맞이할 수 있게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실생활 가운데 임재하셔서 우리에게 새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어 드리는 분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우리는 소망과 생명의 중심을 이렇게 우리생활 속에 세워 놓으신 하나님의 은사 앞에 하나되어서 그 참다운 주인공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드려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우주적인 주인공, 우주적인 생명의 중심존재인 예수 그리스도, 즉 우리의 나아갈 길을 이끌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으면 우리들은 소망도 찾을 수 없을 것이요, 생명과 이상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의 중심, 즉 사랑의 중심이시며 생명의 중심이신 예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역사하시고 싸워오신 그분의 내적인 사정, 외적인 사정과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된 주인공 되신 예수님과 하나될 수 없는 것이요, 창조주 하나님과도 하나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모든 인간에게 있어 생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사랑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또 이상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예수님이 나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어떠한 수고의 길을 걸으셨는가를 여러분들은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불쌍하게 태어나셔서 불쌍한 생활을 하셨습니다. 말할 수 없는 천대를 받으시며 악의 세력과 싸우셨고, 진정으로 자기의 편이된 동지를 얻지 못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돌아가신 후 오늘날까지 수천년 동안 인간을 괴롭히고 있는 사탄을 물리치기 위하여 싸우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서러운 심정 속에 지내고 계신 예수님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155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價値
이 시간 봉독한 가운데 목자가 면양과 산양 중에서 면양은 오른편에 산양은 왼편에 갈라 세운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분별하여 선한 무리는 오른편으로 악한 무리는 왼편으로 갈라놓으실 최후의 심판의 때가 온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판날에는 어떠한 조건을 기준으로 하여 좌.우편으로 갈라놓으실 것인가. 예수님이 태어나면서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전체적인 생애노정을 기준으로 하여 심판의 조건을 세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려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예수님의 전 생애노정을 본받아 그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하고, 그분이 느끼셨던 내적. 외적 심정을 체휼해야 하며, 그분이 생각하신 것을 나도 생각해야 되겠고, 또 그분의 소망을 나의 소망으로 삼아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될 수 없고, 그분을 우리의 주인공으로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인간의 주인공이 되시어서 역사적인 사탄과의 싸움을 홀로 책임지고 계신 예수님을 도와 그분을 대신하여 싸우고 그분의 일을 대신 맡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분을 인간의 구주로 보내셔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또한 부모로서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예수님을 통하여서만 하나님을 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타락권내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을 생각해 볼 때, 예수가 못다 걸은 생애노정과 넘어야 할 역사적인 운명이 우리에게 그대로 남아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실 수 없으며, 하나님을 우리에게 영원한 아버지로 모실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껴야 되겠습니다.

또, 봉독해 드린 성경에는 예수님의 굶주리신 사정과 목마르신 사정, 그리고 나그네 되신 사정, 헐벗으신 사정, 병드신 사정, 옥에 갇히신 사정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오른편의 무리들에게, `내가 이렇게 어려운 사정에 있을 때 너희들이 나를 도와 주었다’고 말씀하실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생존시에 따르던 제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심판을 당하게 될 끝날의 기독교인들에게 권고하신 말씀인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됩니다.

여기서 주리고 목말랐다 하심은 주께서 느낀 말할 수 없는 슬픈 사정을 상징한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셨기 때문에 나그네된 사정을 말씀하신 것이고,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에 옥에 갇히신 사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재림주님이 끝날에 이러한 사정을 당하실 것을 예고하신 예수님의 생애노정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 가운데서 다른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서러움과 슬픔과 고통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나면서부터 이렇게 고통스런 생활을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움을 참으며 생애노정을 가셨던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 우리 자신도 그분이 체휼하셨던 서러움과 외로움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천적인 생의 노정을 걸어가신 그분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입장이 됩니다.

지상에서 예수님은 30여 평생 서럽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걸으셨으며 승천한 이후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도 서럽고 외로운 길을 걸어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 일신을 위하여 이런 길을 가신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 때문에, 즉,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 앞에 찾아 세우기 위하여 자진해서 그 고통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굶주리신 때도 있었고, 목마르신 때도 있었고, 또 병들었을 때도 있었고, 나그네 될 때도 있었고, 갇히신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외적인 면에서만이 아니고 내적인 면에서도 그러한 어려운 사정을 느끼신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아 그 뜻을 이루어드려야 할 이스라엘민족에게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생명이 고갈된 것을 느꼈고, 하나님의 소망이 고갈된 것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책임지기 위하여 예수님은 혈혈단신 나그네가 되어 온 이스라엘 곳곳을 헤매시면서 유대백성들을 찾아다녔던 것입니다. 원래는 유대백성이 그런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백성들이 그런 길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들을 대신하여 아무도 맞아주지 않는 사람들속에서 그 스스로가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을 찾고 참다운 생명과 사랑을 세우기 위해 그런 나그네길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또, 자신들이 고통을 당하고 갇히우는 입장에 있어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을 대신하여 고통을 당하시고 갇히우는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2-157
예수님을 모셔야 할 성도들
이러한 생애를 걸으시다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여 승천하신 이후에도 지금까지 같은 심정으로 우리들을 찾아오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기쁜 마음으로 영화를 누리거나 자유스럽게 사시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도 내외적으로 극심한 굶주림과 목마름을 당하고 있는 불쌍한 이 땅의 인간들을 동정하고 또 참다운 생명의 길을 찾기 위하여 헤매고 있는 성도들을 염려하여 그 스스로가 무한한 고통속에 계시면서, 구속 당하고 있는 성도들을 대신하여 부자유한 입장에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이 땅을 떠나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한시도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실 수 없는 입장에 계신 예수님의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열 두 제자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며,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의 서러움이 풀리기 전에는 예수님도 평안할 수 없다는 말씀인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정을 알아서 나 한 사람으로 인해서 예수님이 더욱 외로와하시고 고통을 당하시며 구속을 당하시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사정을 우리 자신이 몸 마음으로 체휼하여 예수님의 사정을 알고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염려를 풀어드려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 대신 이 땅의 인간들을 염려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끝날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대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고난의 30여년의 생애와 2천년 동안의 기나긴 섭리노정을 거쳐 오면서 슬픔과 외로움과 고통에 사무쳤던 예수님의 애달픈 사정이 예수님에게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애달픈 사정을 우리가 도맡아 가지고 예수님을 안위시켜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갈 수 없고, 예수님을 대하여 주님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전 생애를 바쳐서 마음과 몸으로 예수님의 사정과 통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 참다운 주인으로 오신 예수님이지만 그분은 인간들로부터 온전히 주인으로 모심을 받지 못하고 계십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하여 일하고 계신 예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지음받은 만물도 기쁨으로 주관하실 수 없는 입장에 계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인간들이 슬픔과 괴로움과 외로움 속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룸으로써 영광스러운 입장에 계시지 않으면 만물을 기쁨으로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영광과 기쁨의 참주인을 맞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먼저 역사노정에 쌓여 있는 주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림으로써 주님을 기쁘기 해드릴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이 우리를 주관하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주관하시지 못하면 하나님도 역시 우리를 주관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온전히 예수님의 주관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예수님과 완전한 사랑의 인연을 맺을 수 없으며, 따라서 예수님을 참주인공으로 모실 수 없습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서럽게 하고, 외롭게 하며, 그분을 고통스럽게 하고, 그분을 구속(拘束)하는 요소가 여러분 자체에 남아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여러분은 그리스도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또, 역사를 대신하여 예수님의 서러움을 여러분이 책임질 수 있는 중심을 세우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역사적인 섭리를 담당해 나오시는 예수님 앞에 피주관자로 설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 한 사람을 주관하고 싶어하시는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우주적인 소망일 것이며, 또 예수님이 세우신 뜻이 있다면 그 뜻 또한 우주적인 뜻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이 원하는 사랑과 영광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분 개인만을 위한 사랑과 영광이 아니고 우주적인 사랑과 영광일 것입니다.

2-159
하나님의 사랑·생명·소망과 연결돼야 할 인간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 자신에게 서러움이 있습니까? 외로움과 고통이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구속을 당하고 있습니까? 우주적인 주인공 되시는 주께서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이런 슬픔과 외로움, 또는 고통을 당하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나 한 사람의 작은 슬픔일지라도 또는 고통일지라도 그것이 나 한 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까지 미쳐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서러움이 사무치게 되면 이것은 만물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의 서러움이 되고, 내게 외로움이 있으면 이것은 만물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의 외로움이며, 내게 고통이 있다면 이것은 우주를 대신한 예수님의 고통이 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서러움과 고통을 청산하고 극복해 나가지 않는다면 우주적인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을 생활적인 주인공으로 모실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대신 사탄이 침범하게 되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막아낼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예수님의 사정과 통하지 못한다면 역사적인 섭리를 책임 지고 싸워오시는 예수님의 사정이 여러분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서러움이 풀리지 않게 되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어 그 영광을 하늘 앞에 돌려들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개개인의 서러움을 전체적인 서러움으로 느껴 염려하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각각 한 개체로되 전체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분적인 존재인 여러분 개개인이 전체의 표준을 대신하여 완성한 기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전체의 뜻도 성취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 한 사람이 완성되지 않으면 예수께서 세워나가시는 전체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또 전체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예수님은 전체를 대표한 선한 목자로서 우리를 주관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앞에 소망의 실체로 나타나기 위해서, 또 우주적인 생명의 실체, 우주적인 사랑의 실체로 나타나기 위해서 오랜동안 역사해 오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목자의 이끌림을 받는 양으로서 그분이 동하면 나도 동하고, 그분이 정하면 나도 정하고, 또 그분이 즐거워하면 나도 즐거워하는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통하여 우주적인 원한을 푸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통하여서도 이루어 지지 않는 동시에 나를 통하여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지극히 작은 개체들이지만 우주적인 선한 목자를 대신하고, 또 그분을 모시고 살아가야 하고,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서러움과 외로움, 혹은 고통을 당할 때가 있을지라도 나보다 더한 괴로움 속에 계신 예수님의 사정을 생각하여 그 어려움을 이겨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할 줄 모른다면 여러분은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2-161
기 도
아버님, 당신이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 되시어서 온 천하 만물을 온전히 주관하시고 그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한날이 어서 속히 이 땅에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인하여 멀어진 당신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하여 영원하신 선의 주관자로, 또 영원하신 이상의 주관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으나 아버님을 대신하여 실체로 오신 예수님을 주로 모시지 못한 인간들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을 서럽게 해 드린 것이 선조들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임을 알고 있사옵고, 오늘날 저희들이 부족하여 아직도 예수님의 서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하오니, 선한 목자의 위업을 상속받아 만물만상 앞에 어엿이 나서기를 바라는 아버님의 소망을 이루어드릴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고, 예수님의 소망을 이루어 드릴 수 있게 허락해 주시며, 아버님의 생명과 아버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생명과 예수님의 사랑을 갖고 나타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러한 저희들이 되지 않는다면 선한 목자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운 사정을 금후에 인간세계에서 영원히 풀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오니, 저희의 마음문을 여시어 저희를 향해 부르짖고 있는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서러운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외로운 사정을 알고, 수고하시는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보니 몸둘바를 찾지 못하겠나이다. 아버님이시여, 부디 저희들의 슬픔과 외로움과 수고와 고통을 예수님께 떠넘기기 위해 애걸복걸하는 처참한 모습들이 되지 말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저희들 이제 사탄의 모든 비밀과 아버님의 내적 사정과 예수님의 내적 심정까지 알아서 아버님의 그 사정을 맡고, 예수님의 서러움과 외로움과 고통과 부자유하심을 맡아서 억만 사탄과 싸울 수 있도록 힘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들의 사정을 염려하시며 수심에 잠겨 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저희가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시고, 예수님은 오늘도 저희들의 애달픈 사정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리시는 고통을 느끼고 계신 주라는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하늘을 대하여 서러워하고, 하늘을 대하여 슬퍼하고 하늘을 대하여 외로운 입장이 될 때, 이것을 위로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큰 외로움과 더 큰 슬픔과 더 큰 고통을 느끼시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던 저희들이옵니다.

이제 예수님의 고통보다도 내 고통이 크고, 예수님의 슬픔보다도 내 슬픔이 크며, 예수님의 어려움보다도 내 어려움이 클지라도 오히려 예수님의 슬픔을 제거해 드리기 위하여 애걸할 수 있으며, 예수님의 외로움과 고통을 제거해 드리기 위하여 애걸하고 염려할 수 있는 참아들딸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선한 목자의 뒤를 따르고 선한 목자의 사무친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저희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여기 모인 아들딸들, 이제 몸과 마음을 다 드려야 할 역사적인 대열에 동참한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또, 저희들에게는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이 있는 것을 알았사옵고, 아니 싸울래야 아니 싸울 수 없는 책임과 사명이 있는 것을 알았사오니, 저희들이 나아가는 길에 슬픔과 외로움과 혹은 고통스러움이 있을지라도 이를 이겨낼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보이지 않는 사탄이 저희들의 생활 속에 직접적으로 침범하여 환난과 공포를 일으킬지라도 이를 대적하여 묵묵히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예수님의 대신 사명자들이 되게 해주시고, 예수님의 생을 대신 이어갈 수 있는 아들딸로서 이 시간 저희들을 새로이 세워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 모두의 마음과 몸을 당신의 소원 성취를 위하여 쓰시어서 저희가 아버님의 기쁨이 될 수 있으며, 영광이 될 수 있으며, 당신의 자랑이 될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고, 아버님 뜻대로 주관하시고 명령하실 수 있고, 아버지께서, 또 주께서 취하시어 오른편에 두실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올 때에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기도 드렸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