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to 2-34: 최후의 길을 가시며 돌아보시는 예수

최후의 길을 가시며 돌아보시는 예수

1957.02.10 (일), 한국 전본부교회

2-21
최후의 길을 가시며 돌아보시는 예수
누가복음 22:54-62

[기 도]

아버님, 일주일 동안을 뜻을 중심삼고 싸워 나오던 아들딸들, 사탄의 간교한 계교에 꼬임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싸워 나오던 아들딸들이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오니, 아버지께서 친히 현현하시어 각자의 몸 마음을 주관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 마음에 사무친 원한을 갖고 있는 자가 있사옵니까? 몸에 사탄의 흔적을 가진 자가 있사옵니까? 사랑 많으신 나의 아버님, 그들에게 재창조의 역사를 나타내시옵고, 긍휼의 손길을 펴시사 당신이 원하시는 뜻앞에 부족함이 없는 마음과 몸으로써 아버님께 경배드릴 수 있는 모습들이 되게끔, 이 시간 아버님께서 은사를 내려주셔서 성별해 주시옵기를 간절해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이여!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불러 우주적인 섭리를 예고 시키시려는 아버지의 뜻 앞에 저희들 머리를 숙이고 엎드렸사오니, 이 시간 친히 저희들 마음에 명령하시옵고, 저희들 몸을 충동시키시어서 원하시는 선의 동산을 향하여, 원하시는 선의 뜻을 향하여, 원하시는 승리의 동산을 향하여 줄달음칠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또, 뜻을 향하여 분발할 수 있는 저희들 될 수 있게 일으켜 주시옵고, 자각적인 힘과 자각적인 결심을 갖고 나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직까지 아버지 앞에 합당치 못한 죄악의 요소가 남아 있는 저희들이오니, 아버님이시여! 존엄하신 능력의 역사로 저희들의 죄악의 요소를 제거하여 주시옵고, 권능의 손길로써 어루만져 주시어 회개의 마음을 일으켜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이날은 거룩한 날, 복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날이오니 민족을 위하여 모이는 수많은 제단을 축복하여 주옵시고, 승리의 봉화를 들 수 있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영광과 위로를 받기 위하여 이 시간 경배드리고 있는 수많은 아들딸들을 축복하시옵고, 성령의 역사를 내려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의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직고하기 위해 모였사오니 아버지 앞에 합당한 자신들인가 다시 한번 자신들을 분석할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고, 아버지께 합당하지 못한 미비한 사실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모든 것을 회개하고 모든 것을 직고하여 아버님의 충고와 아버님의 권고를 받을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직 싸움의 노정이 남아있는 이때, 저희들 마음을 합하여 생명의 동산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아들딸들이 지방에 널려 복음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수고의 제단을 쌓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이 어느 곳에 모이든지 아버님께서 친히 역사하셔서 승리의 아들딸임을 증거해 주시옵고, 아버님께서 친히 운행하시고 역사하실 수 있는 승리의 제단을 쌓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아들딸들, 자기를 중심삼은 어떠한 관념이나 주의 주장을 갖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써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놓고, 분부하시는 말씀에 의해 자신의 부족함을 통회하며 아버지 앞에 아뢸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의 재창조의 손길에 붙들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맡겼사오니 사탄이 침범하는 이 시간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성별의 역사로 일으키시어 아버님께서 친히 주관할 수 있으며, 아버님의 영광만이 나타나는 이 시간 되게 이끌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옵나이다. 아멘.

2-23
말 씀
오늘 이 시간은 `최후의 길을 가시며 돌아보시는 예수’라는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 드리겠습니다.

2-23
예수님의 강림과 유대민족의 不信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허락한 영원한 이상의 동산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즉, 아담 해와는 하나님과 동고동락할 수 있는 선의 동산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는 서글픈 생애를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품을 떠나온 인간들은 지금까지 서러운 심정으로 하나님을 돌아보며 수난의 6천년 역사를 걸어나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선조들이 하늘을 향하여 돌아보는 생애의 길을 간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모든 인류도 자신들의 본연의 위치 회복을 바라서 하늘을 향하여 돌아보는 생애노정을 거쳐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께서도 땅 위에서 하늘을 향하여 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을 찾으셨던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나타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복음에 의해 자기의 생애노정을 돌이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 수 있기를 바라셔서 하나의 조건으로서, 하늘의 사랑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나, 그 당시 인간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수많은 인간들은 하늘을 향하여 돌아보게 할 수 있는 그러한 주인공을 맞이하여 올바로 모시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늘을 향하여 돌아보며 나아가는 생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역사는 흘러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여러분도 어차피 하늘을 향하여 돌아보며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자체의 힘으로는 하늘을 향하여 도저히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서 돌아갈 수 없는 인간들로 하여금 돌아갈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만일 인간들이 그가 바라보는 방향대로 바라보고, 그가 걷는 대로 걸었다면, 인간들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소원을 성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중심 뜻이었음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당시 유대교인은 물론이요 이스라엘민족과 온 세계 인류가 예수님을 붙들고 하늘을 향하여 돌아보며 나아가야 할 생의 목적을 완성하여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인간들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인간들은 인간들대로 갈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가는 걸음을 멈추고 땅을 향하여 돌아보는 입장에 계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인간들 가운데는 오늘날까지 6천년이란 기나긴 역사 과정을 거쳐 오면서 하늘을 향하여 돌아서고, 하늘을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한 성도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인간들을 대신하여 하늘을 향해 고난의 길을 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 자기의 생명과 자기의 사랑과 자기의 행동을 바친 성도, 즉 숫것의 제물이 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무친 원한이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을 박차고 하늘을 향하여 애원하며 나아가야 할 인간들이 땅에 고착되어 땅의 소망을 중심삼아 예수님을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땅을 대하여 섭리하셨던 뜻이 좌절되었습니다. 당시 땅 위의 인간들이 원하는 뜻을 성취시켜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거쳐오면서 하나님께서 땅을 다시 돌아보아야 할 입장에 서게 되었고, 예수와 성신도 땅을 대하여 다시 바라보아야 할 입장에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30여 평생 바라던 소원은 무엇이었던가?그분의 소원은 단지 남을 위하는 것이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쫓겨날 때 느끼던 슬픔과 서러움의 마음을 지녔으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오직 남을 위하는 생활을 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당시의 인간들이 자신의 모든 소원을 회복하여 줄 수 있는 주인공으로 알고 예수님을 향하여 돌아설 수 있었던들 예수님은 십자가에 나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지한 인간들을 일깨우기 위해 30여 생애를 거치시는 예수님과 동반하여 같은 행동으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야 할 이스라엘민족들이 예수님을 배반하니 예수님은 자신이 가야 할 발걸음을 멈추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로부터 맡겨진 사명을 완결시킬 수 없게 된 예수님은 인간을 위하여 다시 하늘을 향해 바라보는 입장에 서서 인간 대표의 몸으로서 하나님 품으로 찾아들어가는 걸음을 걷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위하여 성심성의를 다하고, 예수님이 걸어나가시는 그 방향으로 대신 걸어드리고 대신 보호해 드렸다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대하시듯이,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 대신 인간을 대할 수 있었고, 나아가 이 땅에서 기쁨의 제단을 갖추어 영광의 한날을 맞이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인간들이 하늘을 향하여 나아가는 그 걸음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는 예수대로 인간들은 인간들대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창조원리적인 책임을 지고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가는 방향을 돌이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품으로 나아갈 수 있는 승리의 한날을 이루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땅 위에 오셨던 예수님은 이스라엘민족의 배척을 받아 십자가에까지 나아가게 되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어 섭리하신 뜻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2-025
베드로를 돌아보신 예수님의 心情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 골고다산정의 외로운 길을 거쳐나갈 때 누구를 다시 돌아보았느냐 하면, 사랑하는 12사도의 대표인 베드로를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뒤를 제일 먼저 따라야 할 베드로의 마음이 변하게 될까봐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염려하는 자신의 마음이 비통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베드로를 돌아 보셨던 예수님의 그 시선을 오늘날 여러분들이 다시 느끼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그래서 하늘의 뜻과 완전히 분리된 입장에 서게 되었으며 예수님과는 관계없는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아시는 예수님이셨지만 땅 위의 어느 누구 한 사람이라도 죽음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뒤를 사수해 줄 수 있으며, 마음으로 몸으로 동정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을 찾고자 하셨기 때문에, 사랑하는 수제자인 베드로를 돌아보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의 참사람을 찾고자 하신 뜻이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를 바라보는 그 시선 속에 사무쳐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전체적인 섭리를 책임지고 오신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입장에 서게 될 때 이 이상 슬픈 장면이 없을 것입니다.왜냐하면 인간들의 불신으로 인해 골고다의 길, 죽음의 길을 가는 자신의 사명을 인계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고자 하는 예수님은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사무쳤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예수의 애달픈 심정을 알아주셨고, 예수님의 서러운 사정을 염려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30여 평생 오직 하늘의 서러운 사정을 대신하여 걸어나온 수고의 노정을 회고해 보게 될 때, 인간 대하여 책망하고 싶고 땅을 대하여 저주하고 싶은 마음이 사무쳤던 것입니다.그 런데 자신의 그러한 마음을 억누르고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어 따르고 있는 베드로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내적 심정을 오늘날 여러분들이 느끼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뜻을 대신 인계받아 만민 앞에 떳떳이 설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외롭게 고난의 노정으로 일생을 끝맺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베드로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는 과거 예수님과 맺은 본성의 사랑의 인연을 잊지 못하여 외로운 가운데서 신음하며 말할 수 없이 처량한 입장에 처했을 것입니다. 서러운 예수님을 모욕하고, 죄없는 예수님을 원망하며, 죄없는 예수님을 묶어 끌고 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베드로의 마음도 물론 몹시 아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전 인류를 돌이키기 위한 대표적인 사명을 띠고 오신 메시아인 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제자들을 대신하여 나서지 못하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입장에 서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처해 있는 베드로 앞에 계집종들이 나와 그리스도의 무리가 아니냐고 질문하게 될 때 세 번씩이나 `모른다’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 일신의 모습이 땅 위의 인간들을 대표한 입장이었음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과 베드로의 입장에 다시 한번 회고해 보게 될 때,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한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다시 돌아보신 것을 베드로와 예수님 사이에서만 벌어졌던 사실이 아니라 전 역사과정이 그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 세계 인류가 하늘길을 가는 데 있어서 사탄 앞에 그리스도의 뜻을 대신한 참다운 크리스찬의 모습으로 나서는 데에는 반드시 사탄의 참소가 세 번씩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6천년 역사 속에서 아담의 입장, 예수의 입장, 재림주의 입장을 상징하여 나타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또한 끝날에 있어 세계적인 1차대전, 2차, 3차대전의 형태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이처럼 전 역사노정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여러분 개인의 신앙노정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2-27
베드로의 自覺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주를 만나기 직전에 어떠한 일이 있을 것인가?

베드로가 하늘 향하여 ‘모른다’ 하던 배반의 시간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을 맞이한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그러한 때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외적인 베드로의 입장을 거슬러올라가 승리하신 예수님의 뒤를 따르면서 자신을 찾아 세워야 할 역사적이고 섭리적이며 신앙적인 운명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운명의 고개를 넘어야 하는 우리들은 어떤 입장에서 어떤 책임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부활하시기 전에 골고다의 길을 걸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 전 세계 기독교인은 재림의 때에 주와 함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하여 최후의 골고다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한 시대가 분명히 나타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떠한 입장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느냐? 베드로에게 사랑하는 선생님이 아무 죄 없이 로마병정에 의해 끌려갈 때, 속으로는 애달파하면서도 겉으로는 `안다’ 하지 못했던 순간이 있었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세상적인 어떤 조건 때문에 본의 아니게 예수를 `모른다’고 해야 할 처지에 놓일 때가 있을 것인데, 그 때에 예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 우리들은 그런 자신을 놓고 항상 조심하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땅 위에서 골고다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은 영계에서도 오늘날까지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지상과 영계에서 사랑하는 성도들을 뒤에 두고, 친히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을 걸어오신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사탄과 일대 판가리 싸움을 전개시키실 것입니다.

그런 접전의 시기가 땅 위에 나타날 때 우리들은 어떤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했던 것과 같은 입장에 서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입장에 서서 우리의 모든 사정과, 우리의 모든 죄와 우리의 모든 부족함을 털어놓고 우리 자신을 재반성하면서, 예수님이 걸어가신 수고의 길을 사수할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 서지 못하면,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어려운 입장에 서신 스승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예수님은 진정으로 자신의 몸을 돌이켜 베드로를 바라보았습니다.그래서 자신의 어려움이나 자신의 슬픔, 자신의 사정도 잊어 버리시고 돌아보시는 예수님을 본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일대 변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베드로 자신은 그토록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당신의 서러움도 잊으신 채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주고, 자신의 앞길을 염려해 주시는 것을 보고 베드로의 감정을 폭발되었던 것입니다.또 주님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했던 옛 인연을 느끼고 순간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의 뜻 하나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각오하고, 하늘을 향하여 죽음의 길을 가면서도 조금도 인간적인 슬픔에 사무치지 않고 늠름하게 인간 구원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애쓰는 것과 부족한 자신까지도 염려해 주시는 것을 보면서 베드로는 마음으로 부족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즉, 베드로는 오로지 예수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 바쳐야 할 제자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의 입장과 예수님을 대신해야 할 자신의 입장을 비교해 볼 때,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가 있음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했지만, 주님처럼 하늘을 중심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중심하고 믿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시선 앞에 몸둘 바를 모를 정도의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즉, 불신의 자아를 놓고 탄식했던 것입니다.

2-29
베드로의 통회와 새 決心의 價値
하늘을 향한 신앙노정에 있어서 영원불변의 모습으로 우주적인 사명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밀고 나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순간, 베드로의 마음이 일변해서 일생 동안 주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충동감이 일어났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불신의 자아를 깨닫게 될 때부터 베드로는 예수님과 자기와의 관계, 혹은 서로의 생애노정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더더욱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의 뜻 하나를 위해서, 이 땅 위의 만민을 위해서 자신의 행복을 구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전부를 하늘앞에 제물로 바치고, 십자가에 끌려가시면서도 원망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세 제자는 자신들의 생애가 너무 개인중심적이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를 중심하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제자들은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고, 예수님이 늘 소원하시던 뜻을 인계맡아 이 땅 위에서 그 뜻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하고 맹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 베드로는 어떤 것을 느꼈는가? 자신의 불신을 느끼는 동시에 주위의 불신을 느꼈던 것입니다.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죄 없다고 할 예수 그리스도를, 악한 주위 사람들이 묶어 놓고, 채찍질하면서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베드로는 핍박당하시는 예수님의 시선 속에서 예수님의 서글프고도 외로운 마음을 꿰뚫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억울한 입장에서도 하늘길을 지켜나가는 것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뜨거운 시선 앞에 베드로는 주위 환경의 불손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편이 될 수 없는 악한 무리들을 멸하기 위해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주위의 불손한 세력과 싸우겠다는 정의로운 각오를 했던 것입니다.

하늘을 향하여 나가는 예수님의 선한 불변의 모습과 주위환경의 불손함은 천양지차(天壤之差)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돌아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선을 통하여 베드로는 자신의 어리석었던 생애를 청산할 수 있었으며, 주위환경을 정화하여 선의 기준을 세워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더더욱 하나님께로 향했던 것입니다.

말없이 하늘을 위하여, 땅을 위하여, 만민을 위하여, 뜻을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돌아가심을 통해 베드로는 저절로 주님을 존경하게 되었고, 그 돌아가심 앞에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이 최후로 돌아보셨던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자신을 알아주는 사도가 있음을 느끼게 했고, 끊어졌던 하늘과 인간의 인연이 회복되는 순간임을 느끼게 했던 것입니다.베드로 혼자만 하늘과 땅, 그리고 만민과 수많은 사도들을 대표하여 하나님 뜻 앞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놓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며 통회의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이처럼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고난당하시는 것을 보고 베드로만이 통곡하면서 슬피 울었던 것입니다.이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도들을 중심삼고 역사할 수 있는 기준, 예수님과 인간들이 서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뜻만을 붙들고 부활과 재림의 때를 고대하던 것과 같은 입장을 여러분들도 어차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베드로와 같은 입장도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이것이 여러분의 신앙의 노정에 남아진 최후의 운명이라 할 진대, 여러분들은 심각한 입장에서 진지하게 예수님과 자신 사이를 되돌아 보면서 예수님의 지조를 본받을 수 있어야 하며, 예수님의 그 자세 앞에 몸 굽혀 통회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믿고 나오는 신앙생활 가운데서 주님이 우리를 염려하듯이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얼마만큼 염려하면서 살았느냐가 문제입니다.자신은 예수를 염려하면서 일생동안 살았다고 하지만, 어찌 죽음의 자리를 헤쳐나가면서 베드로를 바라보던 예수님의 생애에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이제 탕감복귀원칙에 의해서 예수님이 죽음의 길에서 무리들을 돌아보시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죽음의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돌아볼 줄 아는 자신들이 되어야 합니다.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을 대신하는 입장에 서는 동시에 예수님을 영광의 자리에 모셔 드리기 위해 우리가 돌아보면서 예수님의 고통을 대신하고 예수님의 염려를 대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한 때가 있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에게 그런 한때가 없다면, 끝날 즉 부활의 영광을 맞이할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었던 것과 같이 여러분이 부활의 주님을 붙들고 `나의 주’요, `나의 신랑’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베드로를 돌아보심으로써 비로소 베드로와 세 제자는 찾았으나 예수님을 직접 붙들고 천국까지 가 있는 성도들은 없다는 것입니다.

2-31
예수님을 돌아보아야 할 성도의 책임
이제 끝날에 처한 여러분이 예수님과 동거할 수 있고, 예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참성도, 예수님의 사랑받는 참제자가 되려면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죽음길을 가시면서도 베드로를 돌아보신 것과 마찬가지로, 진정으로 예수님을 염려하고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탄 대해 싸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그렇지 못하다 할진대는 영광의 주를 붙들고 하나님께 경배드릴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우리는 하루 하루의 생활 전체를 통해 예수님을 위하여 염려하는 생활은 하지 못했습니다.그러니 예수님께서 수백, 수천번 우리를 찾아오셨지만 불신하는 우리의 생활 때문에 할 수 없이 돌아서시면서 서러운 눈으로 우리는 바라만 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서러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실 때가 많았지만 우리들은 그분의 사정과 그분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했고 자신의 뜻대로만 되어지기를 바라는 편한 신앙생활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는 시선 앞에서 자신의 일생과 예수님의 일생을 비교해 보았을 때, 자신의 불신을 자책했고 너무나 자신을 중심하고 살았다는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을 예수님의 30여 평생과 비교해 보고, 하나님을 위하여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역사하여 오신 예수님의 역사적인 생애노정과 비교해 볼 때, 여러분은 베드로가 느끼던 것과 같이 자기를 중심해서 살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불신의 자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할진대 여러분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만날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떠한 자리까지 나가야 합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쉴 사이없이 주시하는 그 시선에 맞추어서 예수님의 마음을 체휼할 수 있어야 하고,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둔 골고다의 산정이 아니고,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 부활의 은사의 자리까지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자신을 중심삼은 신앙관념을 가지게 된 것을 통회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중심삼고 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사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내가 구원 얻기위하여, 나만 잘되기 위해서 믿는다는 관념을 가지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살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이 잘되기 위한 신앙관념을 갖고 나온 베드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배반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 여러분도 자기 중심한 신앙관념을 갖고 있다 할진대, 어느 때, 어느 순간, 어느 시기에 자신도 알 수 없는 사이에 하늘을 배척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즉 여러분들은 자신을 믿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 자신을 찾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예수님을 찾는 신앙생활, 자신을 위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을 찾는 신앙생활을 할 때에 말할 수 없는 고난이 그를 가로막게 되었고 드디어는 예수님과의 관계도 끊기게 되었던 사실을 깨닫고 여러분들은 그러한 자리를 피하여야 합니다.자신을 위하는 신앙생활로부터 예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신앙생활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베드로가 불신의 환경을 믿음의 환경으로 회복하고 그가 불신한 것을 마음 아파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하나님이 바라시지 않는 불신을 보고 말할 수 없는 의분심과 적개심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바라시는 선(善)의 노정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도 자신을 중심삼은 선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이어야 하고, 또 그 선이 자신과 관계 맺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선을 찾을 때에야 비로소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환경을 보고 서러워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베드로의 입장을 대신하여 세계인류를 위해 서러워할 수 있고, 하늘땅을 위해 서러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여러분에게는 아버지 앞에, 예수님 앞에, 혹은 성신 앞에 최후의 승리의 공적을 쌓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그리고 골고다의 길을 가고 있는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고 그분의 뒤를 따라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자기를 염려하는 자가 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의 고통을 잊으며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면서 `선생님이여’ 라고 권고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즉,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염려의 시선을 받는 사람이 되지 말고 오히려 예수님의 입장에 들어가 염려의 심정으로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모습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어느 누가 이 일을 하였습니까?다만 예수님만이 이 일이 성취되는 한날을 고대하며 인간들을 위하여 오늘날까지 수고의 역사(役事)를 거듭하여 나왔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생활 가운데서 예수님의 염려의 대상이 되지 말고 여러분에게 전소망(全所望)을 걸고 계신 예수님의 뜻과 또 하나님의 섭리에 반역하는 자신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베드로가 예수님을 불신한 후에 자신을 되돌아보고 탄식했듯이, 여러분도 자신의 불신을 탄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애달픈 예수님의 사정을 통한 마음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나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나도 가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나서서 골고다를 넘어야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실 수 있고 하늘앞에 기쁨과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2-34
기 도
인류의 역사노정을 가로막고, 하늘의 승리의 터전을 쌓으면서 우주적인 골고다의 심정으로 슬픈 대로를 거쳐가야 할 사명이 오늘날 24억 인류에게 남아 있사오니, 사랑의 아버님이여, 예수님을 보내시고 염려하던 당신의 염려는 옛날의 골고다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고 오늘 저희들의 목전에도 그 염려가 사무쳐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현재의 자신을 부족함을 염려하여 울 수 있는 자도 물론 되어야 하겠지만, 먼저 예수님이 뜻하시는 결실을 염려하여 울 수 있는 아들딸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 자체의 불완전함을 염려하여 우는 자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악한 세상이 되어 예수님을 대하여 아우성치며 훼방하는 사탄의 농락을 보고 눈물지을 수 있고, 참회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생애노정에서 항상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시선을 느끼면서 탕감복귀의 노정을 완결짓기 위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복귀의 제물로 자신을 바쳐드렸듯이, 저희들도 어느날 어느때에 예수님께서 저희를 찾아오신다 하더라도 저희를 바라보시는 시선과 찾아오신 그 발걸음을 잊지 말게 허락하시옵소서. 또 이제까지 저희들이 예수님의 그 시선과 발걸음을 배척한 때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음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님! 저희가 한번이 아니라 두번 세번까지 배반할지라도 변함없이 저희 인간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심정을 얼마나 위로해 드렸으며, 얼마나 하늘 앞에 눈물 흘렸는가 하는 것을 회개하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여, 외로운 당신의 아들딸들, 세계적인 심판의 때가 멀지 않았사옵고 우주적인 골고다의 동산이 저희 목전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아오니 저희들이 자신을 중심삼은 신앙노정을 걸어가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생명은 저희 것이 아니옵고, 저희가 생활하는 생애도 저희 것이 아니오며, 저희가 소망하는 소원도 저희 것이 아니었사오니, 저희들을 위하여 사는 생활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능력과 저희의 요구와 저희의 욕망, 이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 갖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의 죽음길에 나갈지라도 마침내 예수님의 변함없는 믿음을 알아가지고 베드로가 마음으로 탄식하여 하나님을 신봉하는 동지로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을 보고 눈물지은 것과 같이 골고다의 심판날이 오기 전에 저희들이 예수님 앞에 회개의 눈물을 흘릴 수 있으며 우주적인 회개를 도맡아 아버지 앞에 울 수 있고 자신의 잘못을 토로할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시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들이 예수님의 발걸음을 대신 걷겠사오니,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이 땅의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사명을 맡겨주시옵고, 남아진 골고다의 길을 저희들이 걸어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그리하여 저희들이 세계 도처의 사탄을 쳐부수어서 승리의 영광의 터전을 이루어 저희들 생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실 수 있게끔 인도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끝날에 아버지의 뜻을 기필코 저희들이 이루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불신의 자아를 벗어나서 영원히 믿을 수 있는 자아로서 불신의 세상을 떠나게 역사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와 함께 영원토록 안식할 수 있고, 하늘편에 서 아버님의 사랑을 갖고 억만 사탄을 굴복시켜 호령할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