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to 2-19: 복귀를 위한 예수님의 생애관

복귀를 위한 예수님의 생애관
1957.01.06 (일), 한국 전본부교회

2-7
복귀를 위한 예수님의 생애관
마태복음 6:16-34

[기 도]

아버님! 지난 1년간을 아버지께서 보호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새해 첫 주일을 맞아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는 이 한 시간이옵나이다.

이제 저희들 과거의 미비함과 부족함을 돌이켜서 이 한 해, 이 한 시간부터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성별된 몸 마음이 되어 온유겸손히 경배드리고자 하오니, 사랑의 아버님, 받아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에 아버지 앞에 합당치 못한 어떠한 주의와 주장이 있사올진대 이것을 다 제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몸에 악의 침범을 받아 더럽혀진 바가 있사올진대 성령의 불길로써 이것을 태워 주시오며, 긍휼의 은사로써 용서하여 주시옵고, 지으셨던 본성에 화하는 몸이 되어 아버지의 기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 되게 성별시켜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한날부터 거룩함의 은사가 연결되어 악한 사탄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능력의 역사가 저희들을 통하여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 몸이 움직여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만물을 화동시키고, 천상에 계신 아버지를 기쁘게 드릴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고, 저희들의 이 모임이 아버지가 바라시는 참된 모임이 되게 이끌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이 있는 정성을 다 바치어 아버님 속에 감추어졌던 사랑을 실현시켜 드리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사옵고, 아버님의 6천년 섭리의 경륜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사오니, 아버님이여!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스스로가 성별된 입장에 서게 허락하시옵고, 아버님의 성별된 능력을 받아 아버님이 들려주신 지팡이를 들고 홍해를 가르던 모세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한 해 삼천만민족에게 아버님의 축복을 내려 주시옵고, 이 민족을 위하여 모이는 수많은 교단위에 아버지의 영광과 사랑이 머무시옵고, 당신의 숨은 아들딸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뜻을 나타내시어서 어서 속히 삼천리반도가 승리의 동산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잠들어 있는 이 민족이 환희의 영광을 아버지께 돌려드리고, 복귀의 뜻을 이 천지 위에 진동시킬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숨은 성도들의 정성의 마음을 저희가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수많은 교단을 움직이시어 삼천만민족을 깨우치고, 또 이 민족을 동원하여 24억 인류를 깨우쳐 본연의 동산을 어서 속히 이룰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세우신 새로운 약속과 새로운 법도로 저희의 몸마음을 성별하여 취하시옵고, 아버지의 그 기쁨심의 은혜를 저희에게 내려 주시옵소서. 약속과 화답이 여기에 성립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시간 이후부터는 아버지 앞에 승리의 제물로 바쳐질 수 있도록 아버지의 보호의 손길이 길이길이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뜻만을 위하여 저희의 몸마음과 모든 것을 다바칠 수 있는 충효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도 지방에 널려서 말씀을 붙들고 외로운 제단을 맡고 있는 무리가 있사오니 그들을 사탄으로부터 성별시켜 주시옵고, 어두움의 세력 앞에 아버님의 실증적인 능력을 세우시어서 존엄하신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랑스런 자녀들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또 모이는 곳곳마다 아버님의 아들딸들이 아버님의 권능의 힘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고,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여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시간 삼위신이 운행하시어 기쁨과 영광의 부활의 역사가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처음시간부터 끝시간까지 아버님의 성령이 저희의 몸 마음에 충만케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009
말 씀
`복귀를 위한 예수님의 생애관(生涯觀)’ 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에게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2-9
한 人間의 生의 價値
타락한 인류는 아직까지 세계가 입증해 줄 수 있고, 땅이 입증해 줄 수 있으며, 하늘이 입증해 줄 수 있는 영원한 생(生)의 가치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에게는 개인의 생의 가치를 찾고, 개인을 거쳐 세계적인 생의 가치를 찾고, 세계를 넘어 천적인 영원한 생의 가치를 찾아야 할 복귀의 사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섭리의 뜻을 세워놓고 전체의 생의 가치를 찾아나오신 그 목적은 어디에서 종결될 것인가? 그것은 여러분 한 자체나 세계에서 종결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되어 하나님이 기쁠 수 있는 동시에 세계가 기쁠 수 있고, 세계가 기쁠 수 있는 동시에 개인이 기쁠 수 있는 생애의 가치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하늘의 구원섭리도 끝날 것이요, 사탄을 중심한 세계적인 인륜도 끝날 것이며, 개인적인 도덕관념도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류에게는 이러한 생애노정을 개척해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개체적인 자기로만 보기 쉽지만 여러분 자체 가운데는 창조의 전체이념(全體理念)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먼저 세계적인 생의 가치를 나타내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야 여러분의 개인적인 생의 가치가 성립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생의 가치를 찾기 위하여 생활해 나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자체를 분석하여 자신이 요구하는 천성의 생명을 대신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야 되고, 역사적인 모든 이념을 하나로 귀일시켜 세계적인 생을 완결지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여러분 개인의 생활적인 면에서 영원한 생이나 세계적인 생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생의 발판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지금의 생이 세계적인 생을 거쳐 영원한 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적인 생을 세워야 할 인간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복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6천년간 수고해 오셨는데, 하나님의 이런 수고의 역사를 복귀섭리역사라고 합니다.

이런 천주적인 생의 가치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4천년수고의 노정을 거친 후에 그 전체적인 생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한분을 보내셨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몸이로되 그 몸은 영원하고 무한한 세계적인 생을 대신하였고, 영원한 개인의 생을 대신하셨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오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그분은 현실을 토대로 하여 영원한 소망을 나타내야 했으며, 하늘땅 위에 영원히 실존할 수 있는 생의 가치를 증거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명을 띠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표준을 중심으로 생활하셨던가?예수님은 자기 개인의 생을 위하여 생활하시지 않았고, 세계의 생을 위하여 생활하셨으며, 나아가서는 그것을 넘어서 영원한 생을 위하여 한날한날을 싸우셨습니다.이것이 예수님의 생활의 표준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바라보신 그 바라봄과 느끼신 그 느낌, 생활하신 그 생활은 자기 개인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것들은 개인적인 동시에 세계를 대표했고, 세계를 대표한 동시에 하나님을 대신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복음의 말씀도 예수 일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세계를 위한 말씀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대신한 영원한 생명의 말씀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느끼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이라 할진대는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의 내용을 깨달을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을 성취해 드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11
예수님이 세우신 사랑의 基準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무엇을 내세웠던가?예수님은 사랑을 내세웠습니다. 즉,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하늘 땅 위에 완결시키기 위해서 새로운 복음을 전하셨는데 그 복음의 중심이 바로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개인이 자기 일신의 생을 영원한 가치의 기준에 결부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남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랑인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남을 자기 이상 사랑하는 것으로 생의 가치기준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적인 전체의 생의 가치를 대표해 나타나셨던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자기 개체의 구원을 위해서는 남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사랑을 소유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나를 위한 사랑보다도 동료를 위한 사랑, 동료를 위한 사랑보다도 세계를 위한 사랑, 세계를 위한 사랑보다도 하나님과 영계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까지 위하는 사랑을 갖고 나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개체의 생의 가치를 찾기 위한 개체적인 관념을 가지고, 혹은 개체적인 사랑을 가지고 사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친구를 사랑하실 때도 단지 그 친구관계에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그 이면에는 세계를 대신해 사랑한다는 관념을 갖고, 또,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랑한다는 마음을 갖고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사랑은 일대일 관계에서의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개인을 사랑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내포돼있고, 우주적인 사랑이 내포되어 있으며, 개인적인 사랑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이것을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야만 예수님의 생의 가치를 올바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자신의 생의 표준을 어느 기준까지 세웠는가, 세계를 위하여 자신이 존재한다는 기준을 세웠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희생하면서 친구를 사랑할 때에도 그 이면에는 세계를 위하여 사랑한다는 관념을 지니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세계적인 구원의 사랑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동시에 전체를 위해서도 죽을 수 있는 희생과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과 생명과 인격의 주인공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때 하늘을 향하여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죽음의 고개를 넘어서 아버지의 뜻대로만 살기를 원하셨던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노정에는 놀라운 사랑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주적인 생명을 복귀하기 위한 사명을 지니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의 가치를 찾기 위해 내세운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도 역시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인간 개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세계를 위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위하고, 영원한 세계 즉 영계에 있는 영인들까지도 위하는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전체 복귀의 생을 감당해야 할 우리들이 한날 한날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예수님의 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에 부딪치든지 그날 그 시간에 느끼는 감정으로서만 대해서는 안 됩니다. 우주적인 전체의 성품을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대신하겠다는 각오와 결심으로 모든 것을 대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한날 한날의 생활을 거쳐야만 세계적인 생을 완결지을 수 있고, 영원한 생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의 하루하루의 생활이 여러분 자체에만 미쳐지는 순간적인 생명의 가치를 갖고 있다 할진대는 영원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무궁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는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영원하신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생 동안 매일매일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돌아가셨지만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려 하셨던 하나님의 뜻은 계속 이루어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2-13
참성도의 生活의 中心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즉, 예수님을 믿고 나가는 데 있어 우리의 중심으로 세워져야 할 관념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님과 같이 개인을 위해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태어났고, 하늘을 위해서 태어났다는 이런 관념을 지녀야 되겠습니다. 위해서 사는 생활에서만, 즉 남을 위하는 사랑과 봉사의 생활을 해야만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예수님을 믿고 그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할진대는 그 감사를 자신만의 감사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 감사를 만민을 위한 감사로 세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가 있다면 그는 세계적인 사명을 질 것이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사명까지 책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생활의 중심을 갖고 산다면, 우리는 낙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고 어떠한 곤고에 부딪치더라도 충분히 그것을 딛고 넘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금 봉독한 성경 말씀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모든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먹을 것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고, 입을 것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전체를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전체의 가치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자기 개인의 생활을 해결하는 것보다 먼저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염려하고, 나아가 세계적인 문제보다도 천주적인 문제를 위해 염려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또한 그러한 각오를 갖고 사는 사람에게는 자기 하나의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드려야 할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한날 한날의 생활이 자기 자체의 내외적인 문제만을 해결하는 삶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문제를 넘어서 전체적인 문제와 관계를 지어 영원한 가치를 실현시켜 놓겠다는 책임감을 갖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럴때 여러분은 천적인 복음의 뜻을 성취해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전도의 길을 나서면 하나님이 같이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그러한 사랑의 마음을 갖고 위하는 생활을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사랑의 재창조역사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너무나 자기 중심적으로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나를 위해 수고했고, 나를 위해 사랑해 왔습니다. 금후의 여러분들은 이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하늘을 향하여 사랑을 요구하더라도 뭇 인류를 위한 사랑을 요구해야 하겠고,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까지도 위할 수 있는 사랑을 요구해야 되겠습니다.

인간의 영원한 생명을 찾기 위해 내려온 역사가 섭리노정이요, 세계적인 생을 찾기 위해 남아진 것이 인류역사노정이며, 하루의 생을 찾기 위한 것이 생활노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인간의 가치적인 관계로 바라볼 때, 세계적인 생을 찾기 위한 것이 인륜이며, 개인적인 생을 찾기 위한 것이 도덕관념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문제가 나 한 자체에서 관계맺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영원히 아버지가 보장할 수 있는 생명의 가치를 지니려면 사랑을 중심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관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관은 무엇이었던가? 그의 생애관은 사랑을 중심삼고 위하는 마음과 우주적인 주인의 심정을 가지고 한날 한날 생활을 지배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주적인 생을 복귀 하기 위해 세운 생애관의 중심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한날 한날의 생활에서 어떤 사소한 문제에 부딪치더라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전체적인 생명의 복귀운동을 책임졌다는 마음으로 그것을 대해야 되겠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귀를 위한 사랑의 실천자로 나섰던 것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2-15
예수님의 使命을 상속받아 뜻을 완결해야 할 우리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여러분 스스로가 남을 위해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전체적인 생명과 인연맺게 되어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입증해 줄 수 있는 생의 가치를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주적인 생을 복귀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오신 분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봉사와 개인적인 희생과 개인적인 고난의 노정을 거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책임을 지는 데 있어서도 당대에서만 책임지려고 하시지 않았고, 전체적인 복귀의 사명이 끝날 때까지 전 인류의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각오를 갖고 사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2천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까지 우주적인 생의 복귀의 사명을 책임져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만으로 그 사명을 완결하지 못하시자, 성신을 보내 역사하셨으며,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까지 동원해서 그 사명을 완결시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이러한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복귀하기 위해 오셨다 갔지만 그 일을 완결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그 일을 이루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날까지도 이 땅 위에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수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임은 예수님 자체만으로는 완결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통해 그 사명을 완결시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 그 사명을 완결시키고자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우주적인 생의 복귀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우리들이 그 사명을 책임지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여러분 일대(一代)에서 그 사명을 종결시켜야 할 책임을 느낀다면, 여러분의 일생을 통하여 기필코 그 사명을 이루겠다는 굳은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제 오늘날 여러분들은 한날 한날의 생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섭리역사과정에서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세워 나왔던 우주적인 생의 복귀의 사명자로서 수고해 오셨던 그리스도의 뜻이 여러분을 통하여 완결되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먼저 여러분 자체를 하늘 앞에 맹세의 조건물로 세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계를 위하여, 하늘 땅을 위하여 혹은 뭇 백성을 위하여 단 한번 맹세의 조건을 세웠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통하여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생을 바쳐 수고해나온 그 기준을 일시에 넘어섰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앞으로 어느 한때 하늘 앞에나 세계 앞에, 또는 개인 앞에 드려지는 하나의 맹세의 제물이 되겠다는 관념을 확실히 가져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곳에 가든지, 어떠한 곳에 처하여 어떤 일을 하든지 그날 그 시간에 처한 환경에서 언제나 맹세의 조건물로 서기 위하여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생활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아버지 앞에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찾아 드려야 할 사명이 남아있으니, 여러분들은 자신을 맹세의 조건물로 세워 예수님의 생과 관계맺을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 자체를 세계적인 조건물로 세우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 지금까지 수고 해온 수많은 선지자들을 대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맹세의 제물이 되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개체 개체가 그러한 맹세의 조건을 조성해야 여러분은 하나에서부터 둘이 되고, 넷이 되고 세계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이 이루어질 때 생의 가치를 찾기 위한 세계적인 고난이 종결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을 찾기 위한 세계적인 고난을 종결시킬 수 있는 여러분 개체에서 형성되어 교회·사회·국가·세계에까지 확대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 우주적인 생을 복귀하시려는 섭리의 뜻은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러한 섭리의 뜻을 대하여 나온 여러분 자체를 생각해볼 때나, 또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생각해 볼 때,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대신하는 개인과 가정이 나와서 사회.국가.세계까지 연결시킨 기준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에서부터 전체가, 즉 세계 인류 전체가 그 권내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생의 복귀의 사명은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17
끝날의 성도들이 가져야 할 삶의 目的
참된 개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웠으나 지금까지 가정·사회·국가·세계에로 확대되어 나가지 못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이 우주적인 서러움으로 남아졌고, 또 하나님의 서러움, 천주적인 서러움으로서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인간들은 그러한 서러움을 풀고, 영원한 하늘의 승리가 이루어지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신을 통해서 하늘과 땅의 전체의 섭리의 가치를 증거하고, 하늘 땅의 전체의 사랑을 나타내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바라는 생의 가치관과 하나님께서 전체 섭리를 이루기 위해 바라시는 우주적인 생의 가치관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소망의 천륜을 표준한 생애노정을 거쳐 개인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세계적인 생활과 우주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마음 자세를 갖춰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마음 자세가 갖춰져 나간다면 그 뜻을 다 실천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내적인 면에서는 계속해서 전체와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천국은 너희 마음속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지니고 우주적인 사랑과 진리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간 개개인에게 부여하신 모든 가치를 완결시켜서 그것이 그들 각자의 근본이 되어야 천국이 이뤄진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천국권에 속한 개인들이 모여 단합해 가지고 세계적인 생명운동을 일으키고, 영계에 있는 수많은 선영인들까지 전체와 관계를 맺게 해줄 수 있을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주적인 생을 복귀하시려던 그 뜻이 그런 사람들을 통하여 종결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주적인 생의 복귀의 사명을 띠고 오신 예수님을 따르던 그 당시의 사람들이 그러한 예수님의 사명을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입장에서 예수님을 대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시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보다도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더 소망하고 그것들을 생의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루의 생활을 하나님을 대신해 살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 살고, 세계를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각오를 갖고 사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홀로가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이 세상 끝까지 하나님이 같이하고 예수님이 같이하고, 성신이 같이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백성들이 이러한 관계를 모르고 자기만을 위하는 생활적인 관념을 갖고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한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떠한 외적인 세상의 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안일을 위한 것이나 개인이 잘살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우리가 잘사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목적이 바뀌어질 때는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이루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그 일이 막혀버린다는 거예요. 반면에 인간들이 예수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여러분에게 있어서, 문제는 여러분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어느 정도까지 희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인을 위해 희생하면 개인적인 주인공이 될 것이요, 세계를 위하여 희생하면 세계적인 주인공이 될 것이요, 하늘땅을 위하여 희생하여 승리적인 생애 기준을 세운다면 하늘 땅을 주관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들이 자신의 인격을 닮아 생명적인 가치를 찾아 세우도록 지금까지 배후에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개체를 찾아 세워 이런 생의 복귀운동을 일으키는 것은 인류역사적인 면에서 볼 때, 또 현실의 세계적인 면에서 볼 때, 혹은 미래의 영원한 소망적인 면에서 볼 때, 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울러 여러분의 책임도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먹고 사는 모든 생활의 표준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전체적인 생을 복귀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하겠고, 또, 여러분은 하나님이 찾으시려는 전체 생명의 가치를,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셨던 사랑을 중심하여 실천하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나서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야만 하나님께서 우주적인 생을 복귀하시려는 뜻이 여러분을 통하여 완결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천국이요, 그러한 개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께 함께하시고, 더욱 기뻐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19
기 도
복귀의 생명을 천주적으로 인연맺기 위하여 천륜의 법도를 세우시어 섭리하여 오신 아버님의 수고의 역사를 저희들이 마음으로 느끼게 되옵나이다. 아버님! 당신께서 세계적인 생의 가치를 세우기 위하여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셨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저희들 되게 인도하여주시옵소서.

개체에서부터 전체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지 않는 종교는 하나님께서 간섭하실 수 없다는 것이 천법인 것을 알았사오니, 이제 저희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라는 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가치를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생의 각오를 저희들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저희 개체의 생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싸움터에서 사탄의 침범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도록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생의 가치의 복귀노정을 저희들이 대신해 나가는데 있어서 사탄의 참소가 있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저희 개인의 생애로부터 세계의 생, 우주의 생까지 뻗어나가는 노정에 있어서 사탄의 참소받는 자들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당당하게 사탄의 참소를 한날의 생활에서 막아내고, 역사적인 면에서 막아내겠다는 각오를 지니고, 그 생명과 책임을 완수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가 영원하신 생명의 가치를 지닌 세계적인 생을 이루기 위해서는 땅 위에서 만물을 주관하셨던 예수님의 완전한 인격을 닮아야 할 것을 아오니 사랑의 아버님 그리스도의 그 인격을 닮을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또, 저희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실제적으로 싸움의 노정을 걸어야 할 입장에 처해 있사오니, 아버님, 사회생활에 있어서나 아버지 앞에 세워나가는 인격적인 면에서, 혹은 인간들에게 주어야 할 사랑의 면에 있어서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도록, 아버님, 이끌어 주시옵소서. 영원하신 아버지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가 세우신 생명적인 가치를 저희들이 지니고, 그 가치를 이 땅에서 실현시킬 수 있게 주관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일을 책임지는 저희가 되어야만 개인으로부터 세계를 거쳐 하늘땅까지 연결된다는 것을 이 시긴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외적인 모든 조건을 물리치고 전체적인 생명의 기준과 생의 가치를 찾기 위하여 저희들 스스로 각오하여 모든 조건을 맹세의 제물로 삼아 싸워 나갈 수 있는 아들딸 되게 이끌어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을 아버님의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고, 이들을 맡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